한국불교전서

괄허집(括虛集) / 括虛集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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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허집 제2권(括虛集卷之二)
문文
『표충사도총섭안록』 중수 서문(表忠祠都揔攝案錄重修序)
만력萬曆 임진년(1592)에 나라가 존망의 운수를 맞이하여 섬나라 오랑캐가 반역을 일으켰다.팔도가 모두 짓이김을 당할 때 청허淸虛·송운松雲·기허騎虛 등 세 분의 대사가 있었으니, 이들은 공문空門의 큰 깨달음을 이루신 분들로, 한 번 죽음으로써 나라의 은혜를 갚으려는 계책을 내놓았다.성조聖祖(선조)께서는 이를 가상히 여기시고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라는 호칭을 제수하시어 특별히 은총을 베푸셨다.세 분의 대사는 감격하여 지우知遇를 받음에 눈물을 뿌리고 청허를 수장으로 삼기로 맹세하고 의병을 모아 중국 원병을 도와 적을 베고 포로를 잡았는데 그 수가 매우 많았다.
조정에서 일본에 사신을 보내기로 논의할 때 송운당松雲堂이 한 납자로서 바다를 건너가 마침내 임금의 위덕을 멀리 드러내고 추악한 무리들의 낯빛을 바꾸게 하였다.이때 두 대사의 명성이 중국과 일본에 떨쳤으나, 두 대사는 모두 하루아침에 사직하고 몸을 운관雲關1)으로 되돌렸다.기허 대사는 전장에서 쓰러져 마침내 순절하였는데 충혼의백忠魂義魄이 늠름하게 생기가 있었다.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았으니, 비록 행과 불행의 다름은 있지마는, 모두 지난날 가졌던 오랜 다짐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
성상聖上께서 왕위를 계승하시자 개연히 추념하여 세 대사는 불세출의 충신으로 법에 마땅히 사당을 지어야 한다고 하시고, 특별히 밀주密州(밀양) 관내의 서쪽 삼강동三綱洞에 사당을 짓도록 명하시고 표충表忠이라 선액宣額2)하셨다.그리고 본부本府에 명하여 세시歲時에는 법도에 맞게 제사를 올리도록 하였고, 춘조春曺(예조)에 명하여 선문禪門의 종사宗師로서 여망을 받고 있는 세 명을 임명하여 사당을 운영하도록 하였다.즉 원장院長, 도총섭都摠攝, 도유사都有司이며, 별도로 한 사람을 임명하여 도승통都僧統이라 하고 모두 인장을 가지고 일을 관장하도록 하였는데,

010_0312_c_02L括虛集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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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12_c_04L1)

010_0312_c_05L表忠祠都揔攝案錄重修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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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曆壬辰國家値崇圮 [1] 之運島夷犯順
010_0312_c_07L八路麋潰時則有若淸虛松雲騎虛三
010_0312_c_08L大師俱以空門大覺出一死報國之計
010_0312_c_09L聖祖嘉之授八道都揔攝之號以寵異
010_0312_c_10L三大師感激知遇灑涕誓師淸虛
010_0312_c_11L以義旅助天兵斬獲甚多及朝廷議遣
010_0312_c_12L使日本松雲以一衲渡海終使王靈遠
010_0312_c_13L而醜類革面當是時二大師之名
010_0312_c_14L震華夷而二大師皆一朝謝事返身雲
010_0312_c_15L騎師橫屍戰場卒以身殉忠魂義魄
010_0312_c_16L凛凛有生氣其或死或生雖有幸不幸
010_0312_c_17L之殊而皆可謂不負宿心矣聖上嗣極
010_0312_c_18L慨然追念以爲三師不世之忠法宜得
010_0312_c_19L特命建祠密州治之西三綱洞裏
010_0312_c_20L額曰表忠命本府歲時致祭如儀
010_0312_c_21L春曺帖禪門宗師之負輿望者三人使
010_0312_c_22L之營祠事曰院長曰都捴攝曰都有
010_0312_c_23L又別帖一人曰都僧統並許以印章
010_0312_c_24L「文」一字編者補入

010_0313_a_01L팔도의 승려를 겸하여 통솔하는 것은 오직 도총섭이 그리하였다.이는 모두 이 사祠를 높여 뒤에 오는 사람들을 권면하기 위한 것이다.
아, 성대하도다.지금 환응喚應 법로法老는 총림叢林의 숙덕宿德으로서 응당 도총섭으로 선발되신 분인데, 전임자前任者의 인명안人名案을 가지고 이를 큰 책으로 새롭게 만들고자 하여 소승에게 서문을 부탁하셨으나, 소승은 외람되어 감당할 수가 없다.그러나 가만히 역내域內(밀양)의 총섭의 등급(秩)을 생각해 보니,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등급이 지극히 높고, 그 명위名位와 늠록廩祿이 혁연赫然히 중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끝내 감히 표충사表忠祠와 항례抗禮(동등한 자격으로 예를 받음)할 수 없음은, 조정 관직에 계급이 있는 것처럼 상하가 서로 이어지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형세가 스스로 부득이해서 그러한 것이다.왜 그러한가? 다만 선문이 귀의하여 우러르는 바가 표충사에 있기 때문이니 그 임무가 오히려 중차대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고래가 숨을 죽이고, 바다의 파도가 놀라게 하지 않는 때이다.그러나 이 임무를 맡은 사람은 마땅히 세 분 대사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 시절이 평탄하면 곧 우뚝한 바위산(㠌巖)에 깃들여 살면서 묘계妙契를 고요히 닦아 저 세 분 대사의 심인心印을 전승하고, 혹시라도 불행히 세 분 대사가 겪었던 때를 만나면 곧 또 마땅히 충성심을 떨치고 성심을 다하여 목숨을 버리고 의를 향해 달려 나가, 세 분 대사가 이룬 성취와 같이 한 연후에야 바야흐로 이 임무를 다했다 일컬을 것이요, 성지聖旨에 보답했다 할 것이다.만약 이러한 마음을 버리고 그럭저럭 하는 일 없이 지내면 살아서는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바가 없을 것이요, 죽어서는 후세에 전하는 말이 없을 것이다.곧 이것이 국가가 도총섭이라는 이름을 두어서 석가釋家의 영예와 이익을 삼으려 한 것이니 어찌 깊이 부끄러워할 만하지 않겠는가? 여러 장로들 가운데 반드시 이 안案에 임해서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하고 힘쓰는 이가 있을 것이니, 이 안이 과연 총림에 도움 되는 바가 있음을 알겠다.
『김룡사주지안록』 서문(金龍寺住持案綠序)

010_0313_a_01L治事而其兼領八路緇髠則惟都捴攝
010_0313_a_02L爲然皆所以崇本祠而勸來世也
010_0313_a_03L呼盛哉今喚應法老以叢林宿德
010_0313_a_04L選爲都揔攝取前任人名案新之以大
010_0313_a_05L屬小釋爲序小釋猥不敢當然竊
010_0313_a_06L伏念域內揔攝之秩至南北兩城而極
010_0313_a_07L其名位廩祿非不赫然以重而終
010_0313_a_08L不敢與表忠抗禮此非有上下相承之
010_0313_a_09L如朝廷官職之有階級而其勢自不
010_0313_a_10L得不爾者何也只以禪門之所歸仰
010_0313_a_11L在表忠故也其任顧不重且大歟方今
010_0313_a_12L鯨鯢帖息海波不驚然居是任者
010_0313_a_13L當以三大師之心爲心時平則棲身㠌
010_0313_a_14L精修妙契以傳夫三大師之心印
010_0313_a_15L脫不幸而遇三大師之時則又當奮忠
010_0313_a_16L竭誠捨生趍義如三大師之成就然後
010_0313_a_17L方可以穪是任而答聖旨矣若捨是
010_0313_a_18L悠碌碌生而無報於佛恩死而無聞於
010_0313_a_19L後世則是國家建置都揔攝之名以爲
010_0313_a_20L釋家之榮利而已豈不重可愧耶諸長
010_0313_a_21L老必有臨是案而惕然警勵者矣愚知
010_0313_a_22L是案之果有補於䕺林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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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13_a_24L金龍寺住持案綠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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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안(任案)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임원任員의 이름을 나열하여 그 자취를 잃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우리 불가는 비록 이름과 행적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는 초연하지만 하나의 절 안에는 백수십 명이 위로는 성전聖殿의 공진供進을 받들고 아래로는 승도僧徒의 계율을 다스리며, 그 밖에 공사 간의 사역과 빈객의 접대와 제반 응수에서 절목節目이 많고 번거로워 이를 통솔하여 다스릴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된다.그러므로 반드시 절 안에 그 사무에 명망 있는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 일을 맡기니 이름을 주지住持라 한다.그런데 주지의 소임은 매년 교체되는바, 이에 그 사람의 이름을 차례로 적어서 훗날의 고찰에 대비하는 것이다.
아, 이 안을 작성함에 어찌 다만 그러할 뿐이겠는가? 장차 후세 사람들이 이 안을 열어 보고는 손가락으로 그 이름을 짚어 말하기를, 어떤 스님은 현명했고 어떤 스님은 현명하지 못했으며, 어떤 스님은 능력 있었고 어떤 스님은 능력 없었다고 하게 할 것이니, 곧 이 안이야말로 다만 스승으로 모시고 따를 만한 밝은 거울일 뿐만 아니라 또한 경계하고 징계할 수 있는 전철前轍이 될 것이다.앞으로 이를 이어 주지 소임을 맡은 사람이라면 어찌 또한 스스로 힘써야 하는 까닭을 알지 않겠는가?
삼성암 불량과 등촉계 서문(三聖庵佛糧及燈燭契序)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원이요, 인仁은 오상五常의 첫째이니, 인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효로써 어버이를 공경한다.그러므로 고금의 치소緇素(승속)들이 다투어 삼보三寶에 뜻을 두면서도 어버이를 존경했고, 육도六度(육바라밀)에 정성을 다하면서도 중생을 구제했다.
이 암자는 곧 신라 세 성인의 도량이다.성인은 비록 사라졌으나 도량은 아직도 남았는데, 이루어짐과 무너짐이 한결같지 않아 향불이 오래전에 끊어졌다.혜惠 도인이란 분이 옛 암자를 중수하고 단신檀信(시주)들과 함께 도모하여 논에 물을 대고 등촉燈燭을 모연하여 영원히 삼보를 공양하고자 하였다.
아, 인을 미루어 중생을 구제하는 자 누구인가? 도인이로다.효를 거행하여 어버이를 우러르는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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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案之有錄所以列任員之名不沒其
010_0313_b_02L跡也我佛家雖超然於名跡之外而一
010_0313_b_03L寺之中百十人爲上奉聖殿之供進
010_0313_b_04L攝僧徒之戒律其他公私之役使賔客
010_0313_b_05L之接待諸般酬應節目浩繁不可無
010_0313_b_06L統領之人故必擇寺中之有名望該事
010_0313_b_07L務者一人以任之而號爲住持每年
010_0313_b_08L替代於是列書其人之名以備後日之
010_0313_b_09L是案之作豈徒然哉將使後人
010_0313_b_10L之披閱是案指點其名曰某師賢
010_0313_b_11L不賢某師能某不能云爾則是案也
010_0313_b_12L不但爲可師可法之明鑑抑亦爲可戒
010_0313_b_13L可懲之前轍繼此以往凡居住持之任
010_0313_b_14L盍亦知所以自勉乎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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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13_b_16L三聖庵佛糧及燈燭契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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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孝百行之源仁乃五常之首仁以濟
010_0313_b_18L孝以尊親是故古今緇素競志於
010_0313_b_19L三寶而尊親翹誠於六度而濟衆是庵
010_0313_b_20L乃新羅三聖道場而聖雖云滅
010_0313_b_21L場猶存成毁不一香火久絕有惠道
010_0313_b_22L重脩古庵仍與檀信合謀灌之以
010_0313_b_23L水田募之以燈燭永作三寶之供
010_0313_b_24L推仁濟衆者誰道人也擧孝尊親者誰

010_0313_c_01L단신이로다.내 그 일을 가상히 여겨 아름다운 이름을 간략히 적어서 뒤에 오는 이들에게 보이고자 하노라.
칠봉산 백련암 고루와 후각 중수기(七峯山白蓮庵古樓與後閣重修記)
명나라 세 번째 경인년(1770) 겨울에 나는 강우江右(경상우도)에서 이 암자로 주석처를 옮겼다.그해 봄 암자의 여러 스님들이 재원을 모으고 장인을 불러 오래된 누각 하나를 중수하였는데, 옛 모습에 보태어 복원하면서 나에게 기문을 써 달라 부탁하였다.
무릇 사물이란 이름 없는 것이 없는데, 오직 이 누각만이 오래도록 이름도 없고 기문도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는 대개 과거에 그럴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이 누각은 이미 산과 물 사이에 있으니, 산은 일곱 봉우리(七峯)요 물은 쌍계雙溪로다.쌍계의 물에는 일곱 봉우리의 구름이 은은히 한 누각 속에 그림자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니 이름을 운영雲影이라 함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구름은 색色이요, 그림자는 공空이로다.그림자는 구름을 떠나지 않고 구름은 그림자를 떠나지 않으니, 공즉색空即色이요 색즉공色即空이로다.공과 색의 이치가 구름과 그림자에 있도다.하물며 구름이 산수의 운치를 함유하고 있음에랴. 구름 그림자(운영루)에 올라 산 그림자를 좋아하는 이는 어진 이의 즐거움이 있고, 구름 그림자에 올라 물그림자를 좋아하는 이는 지혜로운 이의 즐거움이 있으니, 어진 이와 지혜로운 이의 즐거움이 또한 구름과 그림자에 있도다.이를 유추하여 확장하면, 무릇 귀와 눈을 스쳐 가는 것으로서 드러나는 것은 해와 달, 바람과 천둥, 산천초목이요,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굴신왕래屈伸往來와 소장진퇴消長進退이니, 옛날의 때를 씻고 새로운 지식을 계발함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군자의 마음이 어찌 잠시라도3) 앞으로 나아가지 않음이 있겠는가? 이 누각에 오르는 자는 혹 형색形色 사이에 뜻을 풀어놓기도 하고 냄새와 맛(臭味) 가운데 정을 즐기기도 하리라. 이를 비유하면 마치 벌과 나비가 아침저녁으로 끊임없이 윙윙거리며 그칠 줄 모르는 것과 같아, 마음을 비록 수고롭게 쓰지만 얻는 것은 적을 것이다.이것이 어찌 저 구름과 그림자의 깊은 뜻을 설명하는 데 충분하겠는가?

010_0313_c_01L檀信也余嘉其事略署芳名以示來
010_0313_c_02L後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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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13_c_04L七峯山白蓮庵古樓與後閣重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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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明三庚寅冬余自江右停塵于此菴
010_0313_c_06L是年春庵之諸緇集財取工重修一古
010_0313_c_07L以增舊制屬余而記之凡物無無
010_0313_c_08L名之物獨此樓久而無名無記何耶
010_0313_c_09L是蓋古之未遑焉斯樓旣在山水間
010_0313_c_10L有七峯水有雙溪雙溪之水七峯之
010_0313_c_11L影影隱現於一樓之中名之曰雲影
010_0313_c_12L庶乎其可也雲者色也影者空也
010_0313_c_13L影不離雲雲不離影空即色色即空
010_0313_c_14L空色之理在乎雲影況雲含山水之趣
010_0313_c_15L登雲影而愛山影者有仁者之樂登雲
010_0313_c_16L影而愛水影者有智者之樂仁智之樂
010_0313_c_17L亦在乎雲影也因觸類而長之則凡經
010_0313_c_18L乎耳目者顯而日月風霆山川草木
010_0313_c_19L隱而屈伸徃來消長進退無不足以
010_0313_c_20L滌舊染而啓新知也君子之心曷甞
010_0313_c_21L有斯須之不進哉登斯樓者或騁意於
010_0313_c_22L形色之間娛情於臭味之中比如遊蜂
010_0313_c_23L野蝶憧憧朝夕而不知止用心雖勞
010_0313_c_24L而所得者寡矣是烏足語夫雲影之㴱

010_0314_a_01L성현의 학문은 귀중하도다.이치를 궁구하고 성을 다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한 치의 얽매임도 없게 한 연후에 형식(形似)의 밖에서 그것을 구하고, 정의情意의 바깥에서 그것을 만나, 외물에 빠지지 아니한 채 각각 그 즐거움을 만나면, 곧 사물이 모두 내가 오래도록 쓰더라도 다함이 없는 고로, 얻은 것을 따라 만족하고 이르는 바에 따라 편안하며 우거寓居하는 곳에 따라 즐겁다.또 이익과 녹봉이 이를 더럽히지 못하고, 산림이 이를 맑게 하지 못하며, 나가고 머무름과 숨고 드러남(出處隱現)에 장차 마땅하지 않은 바가 없을 것이다.반드시 이러한 후에 바야흐로 구름과 그림자의 뜻을 더불어 논할 수 있을 것이니, 훗날 이 누각에 오르는 자들은 어찌 서로 권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칠봉산 영지암기七峯山靈芝庵記
세상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땅에는 범상하지 않은 기운이 있다.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 땅 위에는 풀과 나무가 있다.풀 가운데 영지가 있듯 이슬 가운데는 감로가 있어, 투명하게 떨어지고 눈부시게 솟아나니, 어찌 범상한 것들이 나란히 할 수 있겠는가? 무릇 천지 사이에 가득한 것 가운데 머리가 둥글고 발이 모난 사람이 꿈틀거리는 미물 중에서 우뚝한 것은, 어찌 천지의 기운이 이룬 바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가운데 범상치 않은 것은 대개 드물다.읍의 서쪽에 산이 있어 무성하게 융기隆起했으니 곧 산 가운데 범상치 않은 것이다.봉우리의 한 줄기가 서쪽에서 남으로 흐르고, 또 남으로 뻗다가 살짝 동쪽으로 돌며 감싸 한 구역을 이루었다.비록 높은 나무숲과 큰 골짜기는 없지만 봉우리가 돌고 골짜기가 굽어 형체와 형세가 평온하며, 샘에는 감로 맛 나는 물이 있고 풀에는 영지의 이채로움이 있으니, 이는 터가 범상치 않은 것이다.이와 같은 땅이 있는데도 아껴 두고 개발하지 아니한 채 땅이 거칠고 무성한 가운데 저절로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갑술년(1754) 봄에 이름을 취신就信이라고 하는 청신사淸信士가 재물을 모으고 힘을 다하여 작은 암자를 세우고 이름을 영지암靈芝庵이라 하였다.그 제도가 비록 웅장하게 트이지는 못했으나,

010_0314_a_01L趣乎聖賢之學貴乎窮理盡性使此
010_0314_a_02L心無一之累然後求之於形似之外
010_0314_a_03L之於情意之表不溺乎物各適其樂
010_0314_a_04L則物皆我用用之久而無盡故隨所取
010_0314_a_05L而足隨所至而安隨所寓而樂利祿
010_0314_a_06L不能使之汚山林不能使之淸出處隱
010_0314_a_07L現將無所不宜必如是而後方可與論
010_0314_a_08L雲影之旨矣後之登斯樓者盍相勉焉

010_0314_a_09L

010_0314_a_10L七峯山靈芝庵記

010_0314_a_11L
世有非常之人地有非常之氣天有雨
010_0314_a_12L地有草木草有靈芝焉露有甘露
010_0314_a_13L沆然而降燁然而秀豈可凡常齒
010_0314_a_14L凡盈天地間頭圓足方之人融峙
010_0314_a_15L蠢動之物夫孰非天地之氣之所成
010_0314_a_16L就其中非常者盖鮮矣邑之西有山焉
010_0314_a_17L蔚然而隆起乃山之非常也峯之一支
010_0314_a_18L自西而南又南迤而稍東回合而作一
010_0314_a_19L雖無崇林巨壑而峯回谷曲體勢
010_0314_a_20L平穩泉有甘露之味草有靈芝之異
010_0314_a_21L此基之非常也有地如此而慳秘不發
010_0314_a_22L自在於灌水荒翳之中此殆有待於人
010_0314_a_23L去甲戌春有淸信士其名就信
010_0314_a_24L財殫力建小庵名曰靈芝制度雖未

010_0314_b_01L시원하고 높은 것이 좌선하여 선정에 들 만하며, 향을 사르고 등촉을 켜서 생령生靈들이 축리祝釐(축원)하는 곳으로 삼을 만하였다.이로부터 물외物外에 노니는 운수납자가 득의연하게 노닐면서 단 샘물을 마시고 영지를 따며, 노송에 기대어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외부로는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를 구하며, 내면으로는 마음과 정신이 하나 되는 경지를 얻어 스스로 즐거워하는 바가 있을 것이니, 이러한 이는 범상치 않은 사람일 것이다.잠깐 사이에 유연히 마음에 부합하여 나를 잊은 채 대상을 관하고, 대상을 잊은 채 도道를 관하며, 천지天地를 한집안과 같이 보고, 만세萬世를 하루아침과 같이 보며, 자신의 몸을 만물과 같이 보아, 만물이 그를 맑게 하지 못하고 더럽게 하지도 못하면, 세상에서 말하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이란 말을 바로 이 사람에게 붙일 수 있을 것이다.천지의 범상하지 않은 기운을 모아 신령한 땅의 범상치 않은 음악을 관장하는 사람은 앞에서 말한 범상치 않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복우산 백련암 신창기伏牛山白蓮庵新創記
나는 갑술년(1754) 가을에 일선군一善郡(경북 선산) 북쪽 백련정사白蓮精舍에 발길이 머물렀다.정사의 주지는 곧 동문인 장락 봉로長洛峯老였다.나에게 말하기를, “이 암자를 새로 경영하게 된 것은 실로 본사 대중의 힘에 의지한 것인데, 공을 적은 기문이 아직까지 없으니 어찌 흠이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그대에게 기문을 구하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장로에게 대답하였다.
“저 같은 조충雕蟲4)의 작은 재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그러나 이 암자는 복우산伏牛山의 서쪽, 낙수洛水(낙동강)의 위쪽에 있는데, 옛날에 다람쥐와 도깨비가 다니던 시내가 지금은 어엿한 담장과 숫돌 계단으로 바뀌어 있고, 옛날 가시덤불과 탱자나무 가시가 있던 곳이 지금은 큰 용마루와 큰 서까래로 변하여 우뚝 서서 나는 듯합니다.그 동쪽에 청화산靑華山, 남쪽에 금오산金烏山, 서쪽에 축서산鷲棲山, 북쪽에 가라산迦羅山이 별처럼 벌여 있고 바둑돌처럼 펼쳐져 있으며,

010_0314_b_01L可宏▼(氵+闊)爽塏足可以爲安禪靜慮焚香
010_0314_b_02L點燭爲生靈祝釐之所也自此物外雲
010_0314_b_03L得得棲遲飮甘泉而採靈芝倚老
010_0314_b_04L松而觀浮雲求之物我之表得之心神
010_0314_b_05L之內有以自樂焉此人之非常也
010_0314_b_06L次之頃悠然有會乎心忘我以觀物
010_0314_b_07L忘物以觀道視天地猶一家視萬世猶
010_0314_b_08L一朝視其身同乎萬物而萬塲莫能使
010_0314_b_09L之淸莫能使之汚世所謂仙風道骨
010_0314_b_10L方可屬斯人而鍾天地非常之氣管靈
010_0314_b_11L區非常之樂者非向所謂非常之人也
010_0314_b_12L

010_0314_b_13L

010_0314_b_14L伏牛山白蓮庵新創記

010_0314_b_15L
余甲戌秋屨及於一善之北白蓮精舍
010_0314_b_16L精舍之主乃同門長洛峯老也語及於
010_0314_b_17L余曰是菴之營新實藉於本寺衆力
010_0314_b_18L而記功迨闕得非欠事歟玆以徵記於
010_0314_b_19L余復於老曰如某之雕蟲小技
010_0314_b_20L敢當也然玆庵也處於牛山之西
010_0314_b_21L水之上昔日▼(鼠+且)鼯魑魅之蹊今化爲垣
010_0314_b_22L墻礱砌昔日荆榛枳棘之區今化爲大
010_0314_b_23L甍巨桷巋然翼然其東之靑華南之
010_0314_b_24L金烏西之鷲棲北之迦羅星羅碁布

010_0314_c_01L왼쪽에 감천甘泉, 오른쪽에 위수渭水가 또한 모두 낙수를 향해 흘러갑니다.낙수의 바람 부는 돛과 물결 이는 노, 물고기와 자라, 갈매기와 백로, 그리고 복우산의 밝은 달과 맑은 바람, 돌아가는 구름과 지는 저녁노을이 모두 한 암자의 시원하게 높게 트인 전망을 돕고 있어, 마침내 산신령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 골짜기 신을 경하하기도 합니다.만약 여러 공들의 어진 수고가 아니었더라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 이 땅의 수승함이 이제야 드러낸 것이 이와 같은 신령이라면, 옛날에 허물어짐은 누구의 허물인지요? 진실로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추어 두었기에 그 사람을 기다려 발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릇 복우산의 높이 솟은 형세는 낙수를 고리처럼 둘러 누르고 있고, 긴 물결 넘실거리는 낙수는 복우산을 비껴 두르고 있는데, 그 창연蒼然한 빛과 호연浩然한 기운이 떠서 하나가 되어 마침내 태허太虛5)의 충막沖漠6)한 본원本源으로 귀의합니다.이 암자는 이미 본원의 가운데 있었으니 가히 홍몽鴻濛7)을 끼고 희이希夷8)에 이르렀다고 할 만합니다.또 ‘백련白蓮’이라는 아름다운 편액을 얻었는데, ‘백’은 오방색의 하나로 서쪽에 속하는 것이고, ‘연’은 만 가지 꽃 중의 왕으로 꽃과 열매가 동시에 열립니다.이는 곧 대개 서방西方 구품九品 연화蓮花의 묘함을 취하여 일컬은 것입니다.대저 이와 같은즉, 어찌 수고로이 정진한 후에 비로소 구품연대에 오르겠습니까? 옛사람이 하는 말 중에 서천西天이 곧 이승(此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이로써 보건대 백련은 곧 구품이요, 구품은 곧 백련입니다.원근이 전혀 없고 피차가 또한 없으니 함께 하나의 원융하고 청정한 곳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이 곳간은 다만 살타薩埵9)의 씨(因)를 저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박가薄伽10)의 열매(果)를 저장하기 위한 것입니다.또한 낙수의 맑은 바람이 여기에 감추어져 있고, 우산의 밝은 달이 여기에 감추어져 있습니다.이로 말미암아 풍월을 노래하는 무리들이 바람 따라 달려왔다가 돌아감을 잊고, 인과因果를 닦는 무리들이 운집하여 흩어지지 아니하니, 곧바로 충막한 근원과 원융한 곳간과 그 장구함을 같이할 것입니다.

010_0314_c_01L左之甘泉右之渭水亦皆宗歸於洛水
010_0314_c_02L洛水之風帆浪楫魚鼈鷗鷺與牛山之
010_0314_c_03L霽月淸風歸雲落霞皆助爲一庵之爽
010_0314_c_04L遂使岳靈載喜谷神載賀倘非諸
010_0314_c_05L公之賢勞其何能如是玆地之勝
010_0314_c_06L顯於今者若是之神而其廢於古者
010_0314_c_07L是誰之咎歟良由天慳地秘有待其人
010_0314_c_08L而發焉乎夫牛山之體勢嶐起而環挹
010_0314_c_09L洛水洛水之長波浩浩橫帶牛山
010_0314_c_10L蒼然之色浩然之氣浮而爲一終歸
010_0314_c_11L乎太虛冲漠之本源是庵也旣在本源
010_0314_c_12L之中則可謂挾鴻蒙致希夷者也又得
010_0314_c_13L白蓮之佳扁白者五色之一而屬於
010_0314_c_14L西也蓮者萬花之王而花果同時也
010_0314_c_15L則盖取西方九品蓮花之妙而稱云
010_0314_c_16L如是則何勞精進而後方登九品
010_0314_c_17L人有言曰西天即此土也以是觀之
010_0314_c_18L蓮即九品九品即白蓮了沒遠近
010_0314_c_19L無彼此偕造乎一圓融淸淨之藏是藏
010_0314_c_20L非但爲藏之於薩埵之因薄伽之果
010_0314_c_21L亦乃洛水之淸風于以藏之牛山之
010_0314_c_22L皓月于以藏之由是批風抹月之輩
010_0314_c_23L馳而忘歸修因向果之流雲集而不▼((林/月)+攴)
010_0314_c_24L直與冲漠之源圓融之藏同其久長

010_0315_a_01L그러한즉 암자의 장구함은 이에 의거하여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로는 말하기를, “암자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은 실로 변함없는 이치에 매여 있어 거스를 방도가 없습니다.다만 백련이라는 이름은 과연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곧 당시 공을 세운 사람의 이름은 이미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대가 오늘 공을 기록한 이름 또한 이에 따라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내가 다시 말하였다.“이는 곧 진실로 그러합니다.그러나 이름이라는 것은 실질의 손님이요, 실질은 이름의 주인입니다.그 이름도 마침내 태허의 충막한 경계로 돌아가 그칠 것이니 어찌하겠습니까?” 장로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암 후불탱기華藏庵後佛幀記
대개 진불眞佛11)이라는 것은 한량이 없고 한계(邊表)12)가 없어 어떤 한 물건도 그것과 대등할 수 없고 어떤 한 물건도 그것을 덮을 수 없다.그런즉 그 몸의 크기는 수미산과도 비교하여 헤아릴 수 없고, 넓기는 태허太虛와도 비교할 수 없다.이 때문에 진실로 색色과 상相이 무너지고 완성됨을 그 사이에서 생각할 수 없다.그러나 한량이 없는 그 양은 언설言說로 헤아릴 수 있고, 한계 없는 형상은 새기고 빚은 것으로써 형체를 드러낼 수 있다.바로 이것이 가불假佛이다.그런데 빌린 것(假)은 사람에게 있지 부처에게 있지 않다.옛날 우전왕于塡王은 나무에 부처를 새겼고,13) 가섭 존자迦葉尊者는 금을 넓게 도포했으니14) 불상을 세우는 풍속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도다.
암자를 다시 경영하게 된 것은 무인년(1758)인데 그림을 수리하는 일에는 여력이 없었으니, 채색 비단의 그림이 퇴색하여 날아가 버리자 보는 이들이 한숨을 짓곤 했다.이에 순헌順憲과 자유自有 두 스님이 개연히 중건하고자 하는 뜻을 지녀 을유년(1765) 봄 정월에 시주와 재원을 모으고 훌륭한 솜씨를 가진 장인을 초대하여 금칠할 곳은 금칠하고 그릴 곳은 그렸다.한 달도 채 못 되어 일을 다 마치었으니

010_0315_a_01L則庵之久長憑此而可想長老曰
010_0315_a_02L之成毁實係於理之常也不足逆圖
010_0315_a_03L但白蓮之稱果如所說而不滅則當時
010_0315_a_04L樹功之人名旣不滅君之今日記功之
010_0315_a_05L又從而不滅余復曰是則固是
010_0315_a_06L名者實之賔實者名之主也其名畢
010_0315_a_07L亦歸於太虛冲漠之際而止之則奈
010_0315_a_08L如之何長老莞爾領之

010_0315_a_09L

010_0315_a_10L華藏庵後佛幀記

010_0315_a_11L
蓋眞佛也者無限量無邊表無一物
010_0315_a_12L可等伊也無一物能盖伊也然則之身
010_0315_a_13L之大不可以須彌比之量之廣不可以
010_0315_a_14L太虛比是以固不可以色相之壞也完
010_0315_a_15L爲念於其間也然無限量之量
010_0315_a_16L之以言說也無邊表之形形爲以雕塑
010_0315_a_17L是爲假佛也而假者在人也不在
010_0315_a_18L佛也昔者于塡王以木以刻之迦葉
010_0315_a_19L尊以金以博也像設之風其來也尙矣
010_0315_a_20L庵之重營在戊寅之歲而力未暇於繪
010_0315_a_21L事之改也色綵彫飛見者興嗟爰有
010_0315_a_22L芘蒭曰順憲曰自有慨然有重新之志
010_0315_a_23L乃於乙酉春正月募人鳩財邀幻手而
010_0315_a_24L金之金也繪之繪也不月之內功告

010_0315_b_01L곧 화장회상華藏會上 한 부, 대비大悲 석상石像 한 구軀, 용천龍天(천룡팔부) 및 신기神祇(신령들) 한 무리였다.아, 이른바 화관花冠, 영락瓔珞, 천의天衣 등으로 장엄한 무리들이 찬란하게 눈에 가득하니,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과 달이 밝게 빛나는 것과 같고, 허공 속의 등과 촛불이 밝게 서로를 비추는 것과 같다.칠처구회七處九會의 위의와 보타암굴寶陁巖窟15)의 자태가 황홀하게 여기에 옮겨 온 듯하니 진정한 화장세계華藏世界로다.마침내 조연한 사람과 우러러보며 예배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이 훌륭한 일에 의지하여 여래묘장엄如來妙莊嚴의 나라에 이르게 하리라. 그러한즉 이것은 곧 가설한 것(假)에 의지하여 진실(眞)에 들어가는 것이다.아, 두 스님의 공덕이란 광대하고 심원하다 하지 않겠는가? 나 또한 이 일을 주관한 사람으로 두 스님의 자취가 사라져 전하지 않을 것이 안타까워 대략 그 경과를 적는다.
운암사 극락전 중창기雲巖寺極樂殿重剏記
바다(발해) 동쪽에는 이름난 산이 많이 있는데, 그 산에는 임궁琳宮과 범우梵宇가 있다.불상을 모시고 경전을 보관하며, 재齋를 진설하여 송주誦呪하는 것은 모두 도를 숭앙하는 단초들이다.지금 문주聞州(문경) 남쪽 그윽한 역참(幽郵) 서쪽에 산이 있으니 재악산宰嶽山이요, 절이 있으니 운암사雲岩寺로다.고기古記를 살펴보면 글자가 무뎌져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절은 대개 오래된 것이다.당唐 의봉儀鳳 원년 을묘년16)에 의상 조사義湘祖師가 범우를 창건했는데, 불행히도 만력萬曆 임진년(1592)에 병화를 만나 재해를 입었다.다만 처음에 순치順治 15년 무술년(1658) 가을에 이르러 산인山人 영준靈俊이 승료僧寮를 세웠고, 강희康熈 18년 을사년17)에 비구 해특海特, 인경印瓊, 극한克閒 등이 이어서 법전法殿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만물의 흥폐와 존망의 운수가 그 사이에 있어, 이 전각도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여러 차례 무너짐을 만났으니 괴이할 것 없도다.건륭乾隆 47년 계묘년18)

010_0315_b_01L即華藏會上一部也大悲石像一軀
010_0315_b_02L龍天神祇一衆也所謂花冠瓔
010_0315_b_03L珞天衣莊嚴之屬燦爛盈目比如天中
010_0315_b_04L星月皎皎碧落也空裏燈燭光光互映
010_0315_b_05L七處九會之儀寶陁巖窟之態
010_0315_b_06L移斯焉眞華藏世界也遂使助緣者瞻
010_0315_b_07L禮者皆仗勝事畢至於如來妙莊嚴域
010_0315_b_08L則是乃依假入眞也二士之功
010_0315_b_09L德也不曰廣大而㴱遠乎余旣幹是事
010_0315_b_10L者也惜其二士之蹟湮沒無傳粗記
010_0315_b_11L日月也

010_0315_b_12L

010_0315_b_13L雲巖寺極樂殿重剏記

010_0315_b_14L
海以東多有名山山有琳宮梵宇戴像
010_0315_b_15L藏經設齋誦呪者蓋所以崇道之端也
010_0315_b_16L今聞州南幽郵之西有山焉宰嶽有寺
010_0315_b_17L焉雲岩也按古記則字頑未詳而寺
010_0315_b_18L盖古也唐儀鳳元年乙卯義湘祖師
010_0315_b_19L剏梵宇不幸萬曆壬辰兵燹被災
010_0315_b_20L特首順治十有五年戊戌秋山人靈俊
010_0315_b_21L建僧寮至康熈十八年乙巳比丘海 [1]
010_0315_b_22L瓊克閒等尾建法殿云然凡物之廢興
010_0315_b_23L存亡有數存於其間則是殿也多閱星
010_0315_b_24L累値顚覆不足恠也乾隆四十七

010_0315_c_01L여러 스님들이 힘을 분담해 모연하여 을사년(1785) 봄에 비로소 옛 절을 철거하고 그 제도를 확장하였다.아, 앞뒤의 을사년이 홀로가 아니라 서로 응한 것이다.만약 지금 스님들의 공이 없었다면 어찌 옛 스님들의 덕을 드러낼 수 있었겠는가? 옛 스님들이 먼저 터를 잡지 않았더라면 어찌 지금 스님들이 뒤이어 새로 지을 수 있었겠는가? 고금古今이 서로 부합하여 공덕功德이 갖추어졌도다.이에 경전과 불상을 모시고 재법齋法을 독송하니 그 도를 도답게 하고 그 즐거움을 즐거워한 것이다.이 운물雲物(경물, 경색)을 따라 모두 흐뭇하게 만족하는 표정이 있으니, 고인古人이 이름을 지은 뜻이 또한 여기에 있다 하겠다.절의 스님이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기에 내 그 일을 적어 훗날 살펴볼 수 있도록 하노라.
도솔산 삼성암 중수기兜率山三聖庵重修記
유혜維慧 도인은 나와 동갑인데 마음은 조사의 관문에 들어가고 발길은 아름다운 산을 두루 편력하였다.물결에 올라탄 빈 배처럼, 산굴을 나왔다 돌아가는 구름처럼 지내느라 6, 7년 이래 아득히도 소식을 듣지 못했다.그러던 중 병신년(赤猴之年, 1776) 중추仲秋에 소백산小白山으로 나를 찾아와 삼성암三聖庵 중수기重修記를 요청하며 말하였다.
“상산商山 읍치邑治 서북 모퉁이의 도솔산兜率山 아래 하나의 명승지가 있으니, 동부洞府19)는 그윽하고 한적하며, 천석泉石은 밝고 아름답습니다.뒤로 막은 것은 곧 천 길의 석벽이요, 앞으로 마주한 것은 만첩의 연봉蓮峯입니다.멀고 가까운 강과 산이 함께 두 손 모아 읍揖을 하고 있고, 창밖은 완연히 천연의 수묵水墨 병풍이 되었습니다.이는 이른바 천지간에 비밀스럽게 감추어 둔 영진靈眞의 굴택窟宅이라 하겠습니다.우리 해동의 원효元曉, 의상義湘, 나옹懶翁 3대 성사聖師가 여기에서 석장을 쉬고, 풀을 꼬아 암자를 엮어 자수용自受用20)의 청정淸淨 낙토樂土로 삼았습니다.시내 소리를 듣고 산 빛을 바라보며 그 도를 도답게 하고 그 즐거움을 즐기며 안신입명安身立命(몸을 편안히 하고 목숨을 보전함)하는 터로 만들었습니다.오호라, 세 성인이 서방으로 천화하시고 풍월만이 홀로 남은 터에 조상弔喪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010_0315_c_01L年癸卯諸緇均力募緣乃乙巳春始
010_0315_c_02L撤舊宇恢拓其制上下乙巳非獨
010_0315_c_03L也相應若非今緇之功寧顯古師之德
010_0315_c_04L不有古師之先卜豈有今緇之後剏
010_0315_c_05L今相符功德斯備於是奉經像誦齋
010_0315_c_06L而道其道樂其樂從此雲物欣欣
010_0315_c_07L然皆有德色古人命題之志亦在乎斯
010_0315_c_08L寺僧徵記于余余書其事俾後有
010_0315_c_09L攷焉

010_0315_c_10L

010_0315_c_11L兠率山三聖庵重修記

010_0315_c_12L
有維慧道人與我同年心入祖關
010_0315_c_13L遍佳山如駕浪虛舟出峀歸雲六七
010_0315_c_14L年來邈然無聞矣赤猴之中秋訪余
010_0315_c_15L于小白山中因要三聖庵重修記曰
010_0315_c_16L山邑治之西北隅兠率山下一名區
010_0315_c_17L府幽閑泉石明媚後障則石壁千尋
010_0315_c_18L前對則蓮峯萬疊遠近江山拱揖窓外
010_0315_c_19L宛作天然水墨屏此所謂天地之秘藏
010_0315_c_20L靈眞之窟宅也我海東元曉義湘懶翁
010_0315_c_21L三大聖師憇錫于玆紉草結庵以爲
010_0315_c_22L自受用淸淨樂土聽泉聲觀嶽色
010_0315_c_23L其道樂其樂作安身立命之處也
010_0315_c_24L三聖西化風月獨吊於遺墟者久矣

010_0316_a_01L순치順治 연중에 이르러 어떤 산인이 이 암자를 다시 수리하고 편액을 ‘삼성三聖’이라 붙였습니다.또 강희康熈 연간에 이르러 어떤 개사開士가 두 번째 창건주가 되었습니다.건륭乾隆 을미년(1775)에 빈도貧道가 묘향산에서 재차 여기에 이르렀을 때 암자는 폐사된 지 오래였습니다.기둥을 어루만지며 탄식하기를, ‘암자의 흥폐와 사람의 존몰은 그 사이에 서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로서 괴이할 것 없다.그러나 세 성인께서 안신입명하던 터가 장차 잡초에 파묻혀 남은 것이 없고, 또 한 사람도 살펴보는 이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하고 이에 여러 스님들과 함께 중수할 일을 상의하여, 모연하고 재물을 모은 결과, 금년 봄에 공사를 시작하여 7개월을 지나 도끼질의 공을 겨우 마쳤습니다.무릇 당실堂室과 난간(軒檻), 주방과 계단과 담이 옛 제도보다 더 성하여 바라봄에 날아갈 듯한 것이 마치 도솔천兜率天의 궁전 같았습니다.이로부터 바위 숲과 경물의 빛이 더욱 배가되었으니, 바라건대 한마디 말을 벽에 걸어, 오는 이로 하여금 옛일을 고찰하고 느끼는 바가 있게 했으면 합니다.무너지고 보수한 내력에 아무런 언사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대답하였다.“저는 강의를 파한 지 6, 7년 동안 다시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하물며 수년 동안 깊은 병에 시달렸음이리오. 다만 내 말을 돌아가 암자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내 마땅히 훗날 병이 나은 후 한번 그곳을 찾아가서 여러 선사와 더불어 세 성인의 안신입명하던 터에 나란히 앉아 객진客塵을 떨치고 심경心境을 잊으리다.그 후 불자拂子를 세우고 주장자를 던지며 그 본지풍광本地風光을 희롱하면 곧 세 성인의 면목이 그 즉시 밝게 나타나고, 세 성인의 도가 더욱 빛을 발하여 드러날 것이리라. 도인은 이미 세 번째 창건주가 되었으니 곧 여러 수선 도반들과 함께 절대로 한가하고 느긋하게 나날을 보내지 마시고, 옛 마음의 전지田地를 거듭 닦아 모두 함께 고인의 안신입명처에 이르러 그것을 천지에 세워서 뒤에 오는 후인들에게 드리우도록 하시오. 그리하면 그것이 곧 삼성암의 참된 기문이 될 것이오니

010_0316_a_01L至順治年中山人某重修是菴扁之
010_0316_a_02L曰三聖又至康熈年間開士某乃第
010_0316_a_03L二剏主也乾隆乙未歲貧道自香岳
010_0316_a_04L再到此庵庵廢久矣拊楹而歎曰
010_0316_a_05L之廢興人之存沒相尋於其間者
010_0316_a_06L之常也無足恠者然三聖之安身立命
010_0316_a_07L將蕪沒無餘而無一人覷着可乎
010_0316_a_08L於是與諸緇衆合謀重修之役因募緣
010_0316_a_09L鳩財經始於今年春七閱月而斧斤之
010_0316_a_10L功纔畢凡堂室軒檻▼(广*畐)厨階垣益增
010_0316_a_11L舊制望之翼如依俙兠率天宮也
010_0316_a_12L此岩林景物倍增顏色願借一言揭之
010_0316_a_13L使來者有考而有感隨毁而隨補
010_0316_a_14L其無辤乎余復曰余自罷講六七年來
010_0316_a_15L不復事筆硯而況數年沈痾之久乎
010_0316_a_16L以余之說歸告庵中人曰吾當他日病
010_0316_a_17L除後一往其中與諸禪列坐於三聖
010_0316_a_18L安身立命處拂客塵忘心境然後竪
010_0316_a_19L拂子擲柱杖弄得箇本地風光則三
010_0316_a_20L聖之面目昭昭於當下而三聖之道
010_0316_a_21L愈益光顯矣道人旣是第三重剏之主
010_0316_a_22L則與諸禪輩切勿閒漫度日重修古心
010_0316_a_23L田地偕到於古人安身立命處建諸天
010_0316_a_24L垂玆來裔則方是三聖之眞記

010_0316_b_01L어찌 다시 문자를 쓰오리까?”
장산 보장암기藏山寶藏菴記
성상聖上(영조) 52년 병신년(1776) 봄 정월 기회旣晦에 괄허자括虛子는 소백산 중에 있었는데, 두심斗心이라 하는 한 납자가 문을 두드리며 글을 구하여 말하였다.“영월부寧越府 남쪽 백 리 밖에 장산藏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높이 솟아 구름 속에 꽂혀 있고 백석白石이 뒤섞여 늘어서 있어, 청량산淸凉山과 비교하여 위아래를 다툴 만한 뛰어난 경계입니다.그곳에는 도솔암兜率庵 옛터가 있는데 여우와 토끼가 지나가고 사슴들이 노니는 곳이 되었습니다.산인山人 처조處照가 이를 개연히 여겨 저와 함께 대중의 인연을 모집하여 갑오년(1774) 봄에 처음 역사를 시작하여 옛터를 개척하고 새 암자를 지었으니 문은 돌로, 기와는 판자로 하여 당실堂室과 주헌厨軒을 만든 것이 무릇 열여덟 칸입니다.편액은 보장암寶藏庵이라 했습니다.바라건대 스님께서 한마디 말을 내려 주시어 암자의 이름을 길이 전하고자 합니다.”
나는 곧 그 입을 막으면서 말하였다.“그만두십시다.우리 부처님과 조사들께서는 만법萬法을 하나의 허공으로 삼으셨는데, 지금 그대는 허공으로부터 와서 허옹虛翁에게 청하고 있으니, 이는 허공 가운데 허공이 될 뿐입니다.다만 제 이야기를 암자 사람들에게 돌아가 전하기 바랍니다.나는 그 산과 절 이름도 모르고 과연 어디 있는지 실로 알지 못합니다.백규白圭가 숨겨져 있는가, 황금이 숨겨져 있는가, 구름 달과 바람 꽃이 숨겨져 있는가, 구름 놀과 천석泉石이 숨겨져 있는가? 아니라면 이곳에 거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마음 씀(用心)에 부지런히 하게 해야 합니다.우리 범부의 오장산五藏山 중에는 무진장한 보배가 감추어져 있습니다.비춤이여, 비춤이여! 비추는 방법을 아는가? 비추는 곳에 처하여 항상 고요하고, 고요한 곳에 처하여 항상 비추어 보면, 비추고 고요함이 동시에 이루어지니, 이것이 처하고 비춤의 보장寶藏입니다.마음이여, 마음이여! 마음 쓰는 것을 아는가? 마음을 재량하여 경계(境)를 관하며, 경계를 재량하여 마음을 관하면, 마음과 경계가 서로를 잊는 경지에 이르니,

010_0316_b_01L何文字之爲焉

010_0316_b_02L

010_0316_b_03L藏山寶藏菴記

010_0316_b_04L
上之五十二年丙申春正月旣晦括虛
010_0316_b_05L子在小白山中有一衲斗心名者叩門
010_0316_b_06L而乞文曰寧越府南百里外有曰藏山
010_0316_b_07L隆起而揷雲白石錯列與淸凉山
010_0316_b_08L上下絕特之境有兠率古墟狐兎之所
010_0316_b_09L麋鹿之所遊山人處照慨然於此
010_0316_b_10L與我同募衆緣始役於甲午春拓古基
010_0316_b_11L搆新庵門以石瓦以板所以爲堂室
010_0316_b_12L厨軒者凡十八間矣扁曰寶藏庵
010_0316_b_13L公賜一言壽庵名余即掩其口曰
010_0316_b_14L吾佛祖示萬法爲一虛今君以虛來
010_0316_b_15L請於虛翁者是虛中之虛但以余之說
010_0316_b_16L歸告庵中人曰吾不知山與庵名實果
010_0316_b_17L安在其爲白圭之藏耶黃金之藏耶
010_0316_b_18L雲月風花之藏耶雲霞泉石之藏耶
010_0316_b_19L則使居此者行住坐臥兢兢業業
010_0316_b_20L於用心於我凡夫五藏山中得無盡寶
010_0316_b_21L藏也照乎照乎知爲照乎處照而常
010_0316_b_22L處寂而常照照寂同時之底是處
010_0316_b_23L照之寶藏心乎心乎知爲心乎斗心
010_0316_b_24L而觀境斗境而觀心心境兩忘之底

010_0316_c_01L이것이 마음을 재량하는 보장입니다. 이곳에 이르러 보면 곧 색색色色마다 보장이요 소리(聲聲)마다 보장이니, 이것이 이른바 여래如來의 정법안장正法眼藏입니다.장산의 보장은 다만 이와 같을 수 있을 따름이니 어찌 암자를 지은 공덕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한 어찌 괄허括虛의 갈등葛藤을 쓰겠습니까?”
이에 마음으로 수긍하고 웃으며 말하기를, “말씀을 받들어 듣겠습니다.” 하였다.
보장암 불상기寶藏菴佛像記
보장암寶藏庵의 심心 두타頭陁가 수백 리를 달려 용산龍山으로 나를 찾아와서 불상기佛像記를 청하였다.“빈도貧道는 지난 계사년(1773) 봄에 처조處照 수좌首座와 함께 힘을 나누어 재원을 모은 후, 용면龍眠(화사)21) 정일定一을 초빙하여 영산탱靈山幀 한 부를 그리고 대비상大悲像 한 구軀를 빚었습니다.겨를이 없어 못 한 것은 기문이오니 한마디 말씀을 내려 주십시오.”
나는 말하였다.“말겁末劫의 시대에 불사佛事를 조성하니 매우 수승한 일입니다.대개 불교는 다만 공적空寂을 종지로 삼으므로 색과 형상을 빌려 나타내지 않습니다.하물며 언설言說이겠습니까?”
심은 말하였다.“바람은 본래 텅 빈 것이나 나무로 인하여 바람을 점치고, 부처는 본래 공하나 색에 즉하여 뵐 수 있는 고로, 우전왕于塡王은 불상을 새겨 흠모하였고, 대가섭大迦葉은 불상을 도금하여 공경했습니다.이것은 색色과 상相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말하였다.“그러한즉 부처는 마음 밖의 물질이 아니고, 생生은 부처 밖의 마음이 아닙니다.고로 세존께서는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 하셨고, 남전南泉은 ‘부처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이 셋은 곧 하나이고 하나는 곧 셋으로, 셋과 하나가 함께 원융하고 함께 사라집니다.공은 곧 색이요 색은 곧 공으로, 공과 색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니, 마침내 알아차리기 어려운 도입니다.마음이여, 마음이여! 비춤의 궁극으로 돌아가 이러한 마음 바탕에 도달하면 덕산德山의 방棒과 임제臨濟의 할喝이 분부하는 바가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어찌 수고로이 수백 리를 와서

010_0316_c_01L是斗心之寶藏也到這裏看則色色也
010_0316_c_02L聲聲也藏此所謂如來正法眼藏
010_0316_c_03L藏山之寶藏直能如是而已矣夫何記
010_0316_c_04L草之功德亦何用括虛之葛藤乎於是
010_0316_c_05L心服而笑曰敬聞命矣

010_0316_c_06L

010_0316_c_07L寶藏菴佛像記

010_0316_c_08L
寶藏心頭陁騁數百里見余于龍山
010_0316_c_09L仍請佛像記曰貧道去癸巳春與處照
010_0316_c_10L首座分力聚財邀龍眠定一繢靈山
010_0316_c_11L幀一部塑大悲像一軀姑未遑者
010_0316_c_12L請垂一言余曰末刼造佛事甚殊
010_0316_c_13L而盖佛也者但以空寂爲宗猶不
010_0316_c_14L假色相況言說乎心曰風雨虛而因
010_0316_c_15L樹占風佛本空而即色見佛故于塡王
010_0316_c_16L刻像以慕之大迦葉鍍金以敬之此非
010_0316_c_17L色相耶余曰然則佛非心外之色
010_0316_c_18L非佛外之心故世尊云心佛及衆生
010_0316_c_19L是三無差別南泉云不是佛不是心
010_0316_c_20L不是物是三即一一即三三一俱圓
010_0316_c_21L俱泯空即色色即空空色不一不二
010_0316_c_22L畢竟定當不得底道理也心乎心乎
010_0316_c_23L與照照之窮到於恁麽田地則德山棒
010_0316_c_24L臨濟喝始知有分付在矣何勞數百里

010_0317_a_01L이 늙은이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심은 곧 이를 받아서 떠났다.
월현당기月現堂記
문인門人 체운體雲이 조령鳥嶺으로부터 용산龍山에 있는 나를 찾아와 월현당月現堂 기문을 부탁하며 말하였다.“이 당이 앞서 세워진 것은 순치順治 18년 기사년22) 4월 보름인데, 당시 일을 주관한 이는 옛 기록이 명확지 않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대개 세워진 지가 오래되어 거의 허물어지기 직전인데, 화사化士23) 지순智詢 등 세 명이 재물을 모으고 장인을 불러 건륭乾隆 45년 경자년(1780) 4월 보름에 중수하였으니, 그 전말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보이고자 합니다.”
나는 말하였다.“전에 당을 세운 것이 4월 보름이요 중수한 날도 4월 보름으로, 연도는 비록 다르나 달과 날짜가 부합하는군요. 진실로 만물의 흥기는 때를 기다림이 있음을 알겠습니다.또 4월은 곧 12월 중의 순양純陽이 지극한 달24)이고, 망월望月(보름)은 곧 30일 밤 중의 원만함이 지극한 날입니다.이 당에 거하는 자가 반드시 순양純陽 명정明正한 도를 닦아 원만하고 치우치지 않는 이치를 증득한다면 곧 성천性天25)과 심월心月26)이 당장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그러한 후 바야흐로 월현月現의 의미를 믿을 것입니다.”
문인은 이에 마음으로 납득하고 떠나갔다.
윤장기輪藏記
우리 석가모니(釋師子)27)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횡설수설橫說竪說하신 법통法統은 경률론經律論 삼장三藏을 벗어나지 않는다.삼장이 비록 다르나 또한 나의 일심一心을 벗어나지 않는다.일심은 곧 삼장이요 삼장은 곧 일심이니, 삼장과 일심이 함께 원만하기도 하고 함께 사라지기도 한다.알아차리기 어려운 도를 묘법妙法이라 하는데 묘법은 다만 방촌方寸(마음)에 있으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역』에 말하기를 “매일같이 쓰면서도 모른다.”28)고 한 것이다.

010_0317_a_01L而喃喃於此老也心乃受而去

010_0317_a_02L

010_0317_a_03L月現堂記

010_0317_a_04L
門人體雲自鳥嶺來勤予于龍山
010_0317_a_05L求月現堂記曰堂之前剏在於順治十
010_0317_a_06L八年己巳四月之望而當時幹事者
010_0317_a_07L古記不明故不錄而蓋建之久矣頹毁
010_0317_a_08L將迫有化士智詢等三人募財召工
010_0317_a_09L重修於乾隆四十五年庚子四月之望
010_0317_a_10L願記顚末以示來後余曰堂之前刱
010_0317_a_11L旣在四月之望重修又在於四月之望
010_0317_a_12L則年雖殊而月日符合固知物之興
010_0317_a_13L有待於時也且四月乃十二月中純陽
010_0317_a_14L之極望月乃三十夜中圓滿之極居此
010_0317_a_15L堂者必修純陽明正之道以證圓滿不
010_0317_a_16L偏之理則性天心月當下現前矣
010_0317_a_17L後方信月現之旨也門人乃心納而去

010_0317_a_18L

010_0317_a_19L輪藏記

010_0317_a_20L
我佛釋師子四十九年橫說竪說之法
010_0317_a_21L不出經律論三藏也三藏雖殊
010_0317_a_22L不出我一心一心即三藏三藏即一心
010_0317_a_23L三一俱圓俱泯定當不得之道曰妙法
010_0317_a_24L妙法只在方寸而不知故易曰日用不

010_0317_b_01L이러한 법인法印으로써 황권黃卷(불경)을 만들어서 윤각輪閣 안에 보관하는 것이다.바퀴가 굴러 쉬지 않는 것은 법륜이 항상 굴러감을 비유한다.원하노니 깊은 지혜를 갖춘 여러분이여, 정진하여 물러섬이 없이 반드시 얻을 수 없는 도리를 얻으시기를.
송죽동 사우정기松竹洞四友亭記
경자년(白鼠, 1780) 여름(流金)29) 송죽동松竹洞 주인이 씩씩하게 나를 찾아와서 말하였다.“금년 봄에 작은 집을 마을 서쪽 송죽동에 지었습니다만, 겨우 거문고와 책 그리고 궤장几杖30)을 들여놓을 만한데, 장차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으로 삼고자 합니다.청컨대 이러한 뜻을 담은 이름을 짓고 기를 지어 주십시오.”
나는 말하였다.“주인은 이미 송죽동에 집을 세웠습니다.무릇 송죽松竹이라는 것은 초목 중의 군자이니, 이를 좋아하는 이는 사람 중의 군자입니다.또 소나무는 겉은 곧고 속은 단단하며, 대나무는 속은 비고 겉은 곧은 고로, 서리를 업신여겨 절개가 더욱 드높고, 눈을 아랑곳하지 않아 지조가 더욱 깨끗합니다.그러므로 고인은 이들을 군자君子와 대부大夫에 비유했던 것입니다.이미 소나무와 대나무가 있으니 역시 마땅히 바람과 달이 있겠지요. 무릇 바람은 팔방八方에 순응하여 만물을 흔들리게 하나, 맑고 텅 비어 있습니다.달은 밝은 빛을 드날려 깊은 어둠을 깨뜨리나, 이지러지고 차기를 반복합니다.소나무는 바람을 띠면 옥이 깨지는 소리를 내며, 대나무는 달을 맞이하면 황금을 체로 거른 색을 띱니다.색은 눈을 맑게 하고 소리는 귀를 시원하게 할 수 있습니다.이 네 가지를 가지고 이름을 지을 수 있습니다.이름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니, 하필 병든 노인에게 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더욱 간절하게 청하기에 나는 마침내 붓을 들고 종이를 펴서 주인에게 말하였다.“훗날 선생을 맞이하여 이 방에 앉아, 학동들에게 소나무를 가리켜 그 곧음을 가르치며, 대나무를 가리켜 그 지조(貞)를 가르치고, 바람을 가리켜 그 맑음을 가르치고, 달을 가리켜 그 밝음을 가르치고 싶소. 이렇게 어리석고 막힌 것을 격발시킨 후에, 효제충신孝悌忠信과 예의염치禮義廉耻의 도를 그들에게 가르친 다음,

010_0317_b_01L知也以此法印出爲黃卷藏于輪閣
010_0317_b_02L輪轉不息者比法輪常轉也願諸
010_0317_b_03L㴱智精進不退必得不得底道理焉

010_0317_b_04L

010_0317_b_05L松竹洞四友亭記

010_0317_b_06L
白鼠流金月松竹洞主人得得來訪於
010_0317_b_07L余曰今春築小室於村西松竹洞而僅
010_0317_b_08L可容琴書几杖也將欲爲訓蒙之所
010_0317_b_09L以此義名而記之予曰主人旣置室于
010_0317_b_10L松竹洞夫松竹者草木之君子愛此
010_0317_b_11L人之君子也又松者外直而中堅
010_0317_b_12L竹者中虛而外貞故凌霜而節益抗
010_0317_b_13L傲雪而操愈潔是故古人取比君子大
010_0317_b_14L夫也旣有松竹而亦宜乎風與月也
010_0317_b_15L夫風者順八方動萬物而淸虛月者
010_0317_b_16L揚明輝破幽昏而虧盈松帶風則碎玉
010_0317_b_17L其聲竹迎月則篩金其色色可以淸眼
010_0317_b_18L聲可以爽耳根於此四者可以取
010_0317_b_19L名不虛得自有其義之存焉何必
010_0317_b_20L求之病老耶於是請益切遂握管伸紙
010_0317_b_21L言於主人曰他日邀先生坐是室
010_0317_b_22L學子指松而訓其直指竹而訓其貞
010_0317_b_23L風而訓其淸指月而訓其明激發蒙滯
010_0317_b_24L然後乃敎之以孝悌忠信禮義廉耻之

010_0317_c_01L점차 풍風·아雅·부賦·비比에 나아가 독실하게 한다면 곧 성현의 구역에 날을 헤아려 이를 수 있으리다.그러면 곧 소나무를 취하여 이름으로 하는 것이 좋겠소? 대나무를 취하여 이름으로 하는 것이 좋겠소? 바람과 달을 취하여 이름으로 하는 것이 가능하겠소? 아, 하나의 방 안에 네 가지 아름다움을 갖추었으니,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니 마침내 이름을 사우실四友室이라 하리다.생각하건대 주인께서 이 네 벗을 사랑하고 네 벗의 의미를 알면 어찌 다만 군자를 이룰 뿐이겠소? 또한 저 괄허括虛 병로病老의 말이 부질없지 않음을 알리라.”
대미산 석선암기待彌山石仙庵記
월악산月嶽山 동쪽 대미산待彌山 모퉁이에 한 석굴이 있는데 사면이 깎은 듯 저절로 십홀十笏의 방장方丈이 이루어져 있다.푸른 시내는 천 굽이요 푸른 바위는 만 길이며, 첩첩의 높은 봉우리들은 마치 손을 마주 잡고 읍하는 듯하다.사자 모양의 바위와 호랑이 같은 돌이 노려보는 듯, 웅크려 있는 듯하다.그 밖에 맑은 소沼와 너럭바위, 비췻빛 병풍과 푸른 숲의 수승함이 모두 이 굴의 그윽한 풍취를 돕고 있으니, 대미산의 으뜸가는 경치로다.
마을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옛날 기질이 청수하고 수염과 눈썹이 희고 큰 사람이 여러 해 동안 이곳에 숨어 살았는데, 곡기를 끊고 밤이면 곧 굴에 들어왔다가 낮이면 대臺로 나가는데, 나무하는 아이들과 소 치는 노인들이 간혹 볼 때면 놀라고 괴이하게 생각했으니, 사람으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그리고 신선으로 화한 후 굴의 천장에서 돌이 떨어져 문을 닫아 버려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오호라, 기이하도다.문이 닫힌 것은 장차 문을 열기 위한 조짐이었던가? 석선암石仙庵에는 원불願佛의 그림 흔적이 흐릿하게 암벽 위에 있다.굴 밖에는 또한 유지遺趾를 이어 감싼 나무가 있고, 많은 무더기의 꽃이 오래된 섬돌 가에서 절로 피었다가 지곤 한다.을미년(1775) 봄에 화사化士 연징演澄은 단월檀越 조감봉趙甘奉과 더불어 탄식하며 말하기를, “명승지가 폐해졌는데 개발하지 않으면 사람이리오.” 하며

010_0317_c_01L轉篤於風雅賦比之上則聖賢之
010_0317_c_02L可計日而至矣然則取松而名之可
010_0317_c_03L取竹而名之可乎取風月而名之亦
010_0317_c_04L可乎一室之內四美俱而闕一不
010_0317_c_05L遂名之曰四友室惟主人愛此四友
010_0317_c_06L而知四友之義則豈獨成君子而已
010_0317_c_07L知夫括虛病老之不謾語

010_0317_c_08L

010_0317_c_09L待彌山石仙庵記

010_0317_c_10L
月嶽之東待彌之隅有一石窟四面
010_0317_c_11L如削自作十笏方丈碧溪千回蒼岩
010_0317_c_12L萬丈疊巚重巒若拱若揖獅岩虎石
010_0317_c_13L如眄如蹲其他澄湫盤石翠屛蒼林之
010_0317_c_14L皆助乎一窟之幽趣而待彌之第一
010_0317_c_15L景也土人相傳曰古之有氣質淸癯
010_0317_c_16L鬚眉皓大者纍紀遯此休糧絕粒
010_0317_c_17L夜則入窟晝則出臺樵童牧叟或見
010_0317_c_18L驚恠難可以人物辨之仙化之後
010_0317_c_19L窟額石墮閉門令人不入嗚呼異哉
010_0317_c_20L閉門者將開門之兆耶石仙願佛之繪
010_0317_c_21L依俙於岩壁之上窟外又有遺址連
010_0317_c_22L抱之木數叢之花倚古砌而自開自落
010_0317_c_23L歲在乙未春化士演澄與檀越趙
010_0317_c_24L甘奉發歎曰名區廢而不開者人也

010_0318_a_01L곧 그 나무들을 잘라 내고 가시덤불을 베어, 청오靑烏31)의 풍감風鑑(관상, 지세를 보는 것)을 빌리지 않고서도 드디어 백납白衲의 도량을 열고 편액을 석선암이라 하였다.
아, 지난날의 기와가 무너지자 오늘날 곧 옥이 이루어졌으니, 훗날 이곳에 머무는 이들은 마땅히 이리泥犂(지옥)의 고생을 생각하고 특별히 용맹심을 발휘하여 의망疑網을 끊고 객진客塵(번뇌)을 맑게 하며, 해탈향解脫香을 사르고 반야등般若燈을 켜며, 조주차趙州茶를 마시고 선열식禪悅食을 맛보며, 호손자猢猻子(마음)를 죽이고 수고우水牯牛(물소)를 조복시켜 금색계金色界에 오르면 곧 그 이름을 금선金仙이라 하리라. 이는 석선石仙보다 나음이 천 배, 만억 배이니 힘쓸지어다.힘쓸지어다.
금강암 중수기金剛庵重修記
이 암자를 누가 금강金剛이라 했을까? 금강은 어떤 물건인고? 이름 없는 가운데 억지로 이름 붙인 것이니, 진묵겁塵墨劫32) 전前 공왕空王33)의 옛 전각과 곧장 비교해도 다른 차이가 없다.어느 누가 큰 장인이 되어 금강을 두드려 옛 전각을 만들었는가?
그러나 이렇다 하더라도 한 조각의 텅 비고 한적한 땅에 던져진 채 아무도 찾아보는 이 없는 지 오래되었다.대들보와 기둥은 기울어졌고 담장과 벽은 무너져 훼손되었으니, 그림자 없는 늙은 작가作家34)의 수단이 아니라면 그 누가 또 있어 금강의 견고한 힘을 내어 기운 것을 바르게 하고, 무너진 것을 일으켜 여러 선화자禪和子로 하여금 공왕의 옛 전각 안에서 유희하며, 한 자루의 금강검金剛劍을 잡아 공왕전의 상면, 하면, 동쪽, 서쪽 방향을 편하게 사용하게 하겠는가?
바라건대 금강암에 이른 자들은 금강의 견고한 덕을 얻어 저 그림자 없는 노인이 금강암을 만든 은혜에 보답하기를. 그렇다면 비로소 ‘무엇이 공왕전空王殿 속의 면목인가’를 터득하리라. 하하하. 이 무슨 갈등35)인가?

010_0318_a_01L乃伐其樹芟其荆不借靑烏之風鑑
010_0318_a_02L遂開白衲之道場扁曰石仙庵
010_0318_a_03L之瓦解今則玉成後之居斯者當念
010_0318_a_04L泥犂之苦特發勇猛之志絕疑網
010_0318_a_05L客塵爇解脫香點般若燈飮趙州茶
010_0318_a_06L餐禪悅食殺猢猻子伏水牯牛登金
010_0318_a_07L色界則是名金仙其勝於石仙者
010_0318_a_08L餐萬億倍勉之勉之

010_0318_a_09L

010_0318_a_10L金剛庵重修記

010_0318_a_11L
者固庵子誰名金剛金剛何物無名
010_0318_a_12L中强名則直與塵墨刼前空王古殿子
010_0318_a_13L無異無別阿那箇作大匠打金剛
010_0318_a_14L古殿乎然雖如是拋在一片空閑之地
010_0318_a_15L無人覷着久矣樑柱傾斜墻壁頹毁
010_0318_a_16L不是無影老作家之手段其誰復能有
010_0318_a_17L出金剛堅固之力斜者正頹者起
010_0318_a_18L諸禪和子游戱於空王古殿裏把得一
010_0318_a_19L柄金剛劒便用於空王殿之上面下面
010_0318_a_20L東方西方乎願到金剛者得金剛堅利
010_0318_a_21L之德酬他無影老之作金剛恩始得
010_0318_a_22L如何是空王殿裏之面目呵呵是甚麽
010_0318_a_23L葛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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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봉사 법화암 중수기鳴鳳寺法華庵重修記
계사년(1773) 겨울 나는 호서湖西(충청 지방)에서 이 암자로 옮겨 주석하였다.암자는 절에서 동쪽으로 백 보가량 떨어져 있는데 동부洞府36)가 특별하게 열렸으니 경계境界가 그윽하고 깊어 실로 좌선하여 선정에 드는 이들이 머물 만한 곳이었다.그러나 암자가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고찰할 수 있는 기록이 없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는데, 암자가 오래되어 집이 무너지고 기울어 쓰러질 근심이 눈앞에 닥쳐왔다.그곳에는 스님 대여섯 명이 살고 있었는데, 가난으로 중수할 수 없어 모두 흩어지려 하였다.
이듬해 봄에 나 또한 묘향산으로 가려고 했으나 대중이 길을 막고 머물기를 청하였다.이에 나는 대중과 약속하기를, “이 암자는 옛사람이 지어 그 마음 씀의 수고로움을 볼 수 있으나 무너짐이 이와 같으니, 만약 보수하지 않으면 곧 어찌 후인의 책망을 면할 수 있겠는가? 다만 암자의 물력物力이 쇠락하였고 모연한 재물도 없으니 오직 여러분이 각자 스스로 힘을 내고 손을 모아야 완성할 수 있을 뿐이오.”라고 하였다.대중이 모두 그러리라 답하였다.이에 장인을 불러 3월 초에 일을 시작하였다.마침내 여러 스님들과 더불어 굳은살이 박이는 수고를 함께 나누고 각자 식량을 먹으며 각자 노력한 결과 썩은 대들보, 꺾이고 부러진 서까래, 이미 무너진 계단과 담장,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당실堂室 등이 하나같이 모두 새롭게 되었다.무릇 제도와 면모가 지난 것보다 배는 찬란하게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씻고 다시 보게 할 정도여서, 보는 이들이 모두 축하하였다.아, 지금 또 기문이 없으면 후인들이 지금의 사람을 책망함이 지금 사람이 옛사람을 책망함만 못지않을 줄을 어찌 알겠는가? 이에 대략 그 경과를 적어 후에 오는 이에게 보인다.
제자 영허의 제문(祭弟子影虛文)
오호라, 말을 하려니 목이 메고 생각하려니 창자가 찢어지는데, 내 어찌 글을 지어 그대를 곡하겠는가?

010_0318_b_01L鳴鳳寺法華庵重修記

010_0318_b_02L
癸巳冬余自湖西移錫于是庵庵在
010_0318_b_03L寺之東百步而洞府別開境界幽㴱
010_0318_b_04L實安禪入定者爲可棲息也剏在何代
010_0318_b_05L而無記可考是可歎也已年久屋弊傾
010_0318_b_06L覆之患迫朝夕而居僧五六輩貧不
010_0318_b_07L能重修皆欲渙散翌年春余亦將作
010_0318_b_08L香山之行大衆遮路請留乃與衆約曰
010_0318_b_09L斯菴也作於古之人可見其用心之勤
010_0318_b_10L而頹圮若是苟不補緝則庸免後人之
010_0318_b_11L責耶但庵中物力凋殘亦無募緣之財
010_0318_b_12L惟在諸君之各自出力合手而完役耳
010_0318_b_13L僉曰諾於是召匠始役于三月之初
010_0318_b_14L遂與諸衲子同分胼胝之苦各食其粮
010_0318_b_15L各努其力凡棟梁之朽腐者桷梠之摧
010_0318_b_16L折者階垣之已毁者堂室之未備者
010_0318_b_17L一皆新之凡制度面勢煥然倍昔
010_0318_b_18L人拭目改觀焉見者皆賀今又無
010_0318_b_19L則安知後人之責今日之人不如
010_0318_b_20L今人之責昔日之人也哉玆以略記年
010_0318_b_21L以示來後耳

010_0318_b_22L

010_0318_b_23L祭弟子影虛文

010_0318_b_24L
嗚呼欲言哽塞欲思膓裂吾尙忍爲

010_0318_c_01L그대는 곧은 소나무와 굳센 대나무의 바탕과 지수명경止水明鏡 같은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고, 성품은 어질고 말은 공순하여 사람들이 칭찬하는 바 되었다.불행히 관세丱歲(유년)에 부친을 여의고 이로 인하여 옷소매를 끊고37) 입산하였다.스승 문하에서 오륙 년 동안 힘든 일을 맡아 하다가 16세에 낙발落髮하고 17세에 책 꾸러미를 지고 용산龍山 화장암華藏庵으로 나를 찾아왔다.배움길에 처음 들어설 때부터 이미 신통한 해득력이 있어 내 출중하게 여겨 자주 감탄하며 말하기를, “참으로 이른바 아직 날개가 돋지 않은 홍곡鴻鵠38)이지만 구름을 찌르는 뜻이 있고, 땅에 떨어진 사자지만 바다를 가르는 기상을 품었도다.”라고 하였다.채찍질하지 않아도 학업에 큰 진전이 있었고, 정성을 다하여 대중을 대하며 또한 겸손과 공손함을 다하였다.남들이 불교 밖의 책을 보면 곧 반드시 불학으로 권장하였고, 남들에게 머리 기를 것을 권하는 말을 들으면 또한 반드시 정색하며 거절하였다.내 일찍이 그릇을 중히 여겨 말하기를, “나이는 비록 어리나 뜻은 노숙하구나. 하물며 너의 재능이 나보다 훌륭하고, 국량이 나보다 넓으며, 이해함이 나보다 나음에랴. 내 일찍이 듣기를 백락伯樂39)의 마구간에 준마가 많다고 들었는데, 나는 백락이 아닌데도 너를 얻을 수 있었구나. 다만 남천藍茜이 본색을 잃게 하였도다.40)”라고 하였다.
정해년(1767) 가을에 그대를 혜암惠巖의 해회海會에 보내니 과현課玄하고 논리를 세움이 실로 부합하지 않은 것이 없어 대중이 모두 감복했었다.기축년(1769)에 나에게 돌아오자 사람들이 모두 단에 오르기를 기대하였다.그때 그대의 나이 23세라, 아직 고인古人이 입실한 때가 아니라서 비록 단을 세워 건당建幢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노쇠해진 걸 우려하여 오히려 법호와 의발을 일찍이 비밀히 그대에게 부촉했던 일이 있었다.경인년(1770) 겨울에 갑자기 대두大痘(홍역)를 앓았는데 내가 진력으로 구호하여 마침내 병이 나았다.내가 그대를 어루만지며 다른 이들에게 말하기를, “진중珍重하라. 조개 속에 밝은 구슬이 있는 것이 흔치 않음과 같고, 불 속의 연꽃 같으니, 이 제자가 죽지 않음은 거의 부처님의 힘이요 내 힘은 아니니라.” 하였다.신묘년(1771) 봄에 함께 황강黃崗의 청을 받아들여 갔고, 여름에 해제한 후 다시 책 보따리를 꾸려 스승을 따라가고자 하였기에 나는 허락하였다.또 붕 사미鵬沙彌에게 함께 가도록 하며

010_0318_c_01L文以哭汝耶汝生而有貞松勁竹之質
010_0318_c_02L止水明鏡之資性仁語恭人所稱焉
010_0318_c_03L不幸丱歲失怙因以絕裾入山執勞師
010_0318_c_04L門者五六年十六落髮十七負笈
010_0318_c_05L余于龍山華藏庵初入學路已有神
010_0318_c_06L余多之而歎曰眞所謂鴻鵠未羽
010_0318_c_07L有凌雲之志狻猊落地而懷劈海之氣
010_0318_c_08L不加鞭繩學業大進推誠接物
010_0318_c_09L盡遜順見人看外書則必以佛學勸之
010_0318_c_10L聞人勸長髮則又必正色以拒之余甞
010_0318_c_11L器重之曰年雖少而志則老矣况汝才
010_0318_c_12L長於我而量寛我解勝我我曾聞伯
010_0318_c_13L樂之厩多駿駒吾非伯樂而能得汝耶
010_0318_c_14L只令藍茜沮本色也丁亥秋送汝于惠
010_0318_c_15L巖海會課玄立論無不允叶衆皆服
010_0318_c_16L己丑還我人皆登壇望之時汝年
010_0318_c_17L二十三尙非古人入室之年故雖未設
010_0318_c_18L壇建幢慮我衰老猶以法號衣鉢
010_0318_c_19L有密付之之事矣庚寅冬忽遘大痘
010_0318_c_20L我盡力救護終見勿藥我撫汝詑人曰
010_0318_c_21L珍重如蚌裏明珠希有如火中蓮花
010_0318_c_22L此子之不死殆佛力也非吾力也
010_0318_c_23L卯春同赴黃崗之請解夏後更欲治
010_0318_c_24L笈從師余諾之又命鵬沙彌偕之

010_0319_a_01L고인의 삼등설三登說로써 힘쓰기를 권면하였다.다시 혜암의 문을 두드려 새롭게 깨달은 것을 능숙하게 풀어내니 더욱 사람들을 괄목하게 하였다.명성이 사방에서 날리니, 듣는 청중이 모두 기뻐하여 그대를 불법 중의 동량으로 일컬었다.
임진년(1772) 봄 나는 더욱 늙고 지쳐 장차 솥을 던지려는 뜻을 구하고자 대중을 버리고 멀리 방장산方丈山 벽송암碧松庵으로 옮겨 가면서 서로 만날 때를 기약하지 않았다.헤어지려는 때에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로 기뻐하였으나 자네가 수척해진 것이 의아하여 물어보니 곧 “객지 생활이 쓸쓸하고 나그네 주머니가 궁핍합니다.” 하였다.나는 측연하고 불쌍히 여겨 억지로 위로하여 말하기를 “법을 위하다 몸을 잃는 것은 철인哲人이 감내하는 바인데 어찌 고생으로 생각할 것인가?” 하니, 그대는 다시 청하기를 “산에서 노닐며 보배를 줍는 것보다 집으로 돌아가 참된 자신을 기름이 더 낫겠습니다.” 하였다.나는 도리어 그를 꾸짖으며 “북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그리 급한가? 나는 장차 그대로 하여금 모든 대방가大方家 참방을 마치게 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게 한 후에 이 행行을 저버리지 않기 바랐었네. 지금 그대 얼굴이 수척해지고 그대 말이 슬픈 것을 보니 자네 말을 따르겠네.” 하면서 마침내 그대를 보내 먼저 돌아가도록 하였다.때는 곧 4월 5일이었다.그대가 돌아갈 때 그대가 무더위에 멀리 방장산에서 돌아가 황강黃岡에 이름을 걱정했었네. 그대 병이 이미 한 달이었는데 그대는 다시 일어났고, 나 역시 여러 대중과 모의하여 겨울 결제일에 그대를 용산 청하당靑霞堂으로 올려 보내려 했었다.때는 곧 9월로 함께 음산陰山의 상회祥會에 참석하였으니 자네에게는 골수를 얻은 경사가 있었고 나에게는 구슬을 되찾은 기쁨이 있었다.자네가 먼저 돌아가고 나도 곧 뒤따라 돌아갔으니 곧 자네 병이 이미 7일째였다.나는 그 병이 잦음을 의아하게 여겨 그 증세를 진단하고 그 얼굴을 본즉, 또한 죽는 것을 염려하지 않았었다.
오호라, 하룻밤 사이에 기가 막혀 숨을 못 쉬고 혀가 굳어져 말을 못 하니 비록 모자간의 정과 스승 제자의 의리라 한들 서로 바라만 보고서 구제할 수 없었다.자네 또한 응시했으나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드디어 10월 초구일 밤에 갑자기 시적示寂했으니, 오호라, 무성無聲 삼매三昧에 들어갔는가?

010_0319_a_01L古人三登之說勉勵再叩惠庵之扄
010_0319_a_02L新悟强辨益刮人目名聲四飛聞者
010_0319_a_03L咸悅以法中棟梁稱之壬辰春余益
010_0319_a_04L老倦又有將求投釜之意捨衆遠擧方
010_0319_a_05L丈碧松不期相會離合之際一驚一
010_0319_a_06L而恠汝瘦瘠問之則曰客厨冷落
010_0319_a_07L旅槖空匱余惻然憫之强以相慰曰
010_0319_a_08L爲法亡軀哲人所甘何足爲苦汝復
010_0319_a_09L請曰遊山拾寶不如歸養己眞余返
010_0319_a_10L責之曰北歸何太緊乎吾將使汝盡探
010_0319_a_11L大方家畢得其未得然後庶幾不負此
010_0319_a_12L行矣今見爾容癯爾言慽維汝言是
010_0319_a_13L遂送汝先歸時乃四月五日也及汝
010_0319_a_14L念汝觸熱遠歸自方丈經到黃岡
010_0319_a_15L汝病已一月矣汝旣復起我亦謀諸衆
010_0319_a_16L擬以冬制日陞汝于龍山靑霞堂時則
010_0319_a_17L九月共叅陰山祥會於汝有得髓之賀
010_0319_a_18L於我有還珠之喜汝仍先歸我乃後歸
010_0319_a_19L則汝病又七日矣吾訝其頻病而診其
010_0319_a_20L視其貌亦不以死生爲慮嗚呼
010_0319_a_21L宵之間氣塞不收舌强不語雖以母
010_0319_a_22L子之情師資一義相視而莫能救
010_0319_a_23L亦相視而不肯留遂以十月初九日夜
010_0319_a_24L奄忽示寂嗚呼其入無聲三昧耶

010_0319_b_01L몽환夢幻 삼매에 들어갔는가? 하늘이 고이 남겨 두지 않았으니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사람들 말에 채색 구름은 흩어지기 쉽고 좋은 옥은 오래가기 어렵다고 하더니 과연 그러하구나. 그대가 마땅히 나를 곡해야 할 건데 내가 그대를 곡하고 있고, 그대가 마땅히 나를 장사해야 할 건데 내가 그대를 장사하고 있으니, 나를 장사해 줄 사람은 누구이고, 나를 위해 곡해 줄 사람은 누구인가? 강한 이는 죽고 쇠한 이는 살아남았으니, 이른바 하늘은 헤아리기 어렵고 이치는 미루어 알기 어려운 것이로구나. 자네의 집안을 맡아 다스릴 자(幹蠱)41) 오직 그대인데, 그대는 지금 이미 떠나 버린 것을. 이와 같으리란 걸 일찍이 알았더라면 자네 어머니께서 어찌 하루라도 그대를 밀어 산문에 부탁하여 보낼 수 있었겠느냐? 우리 문중에 법을 계승한 자가 오직 그대인데, 그대는 지금 떠나 버린 것을. 이와 같으리란 걸 일찍이 알았더라면 내 어찌 하루라도 헤어져 멀리 방장산으로 보낼 수 있었겠느냐? 그대는 경인년(1770)의 마마(痘)에도 죽지 않았고, 또 6월의 병도 능히 치료되었는데, 어찌하리. 일찍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열흘간의 병에 이같이 일어나지 못하였구나.
나의 법동法棟(불법을 지키는 동량)이 꺾였구나. 명주明珠가 부서졌구나. 10년간의 바늘과 겨자씨의 만남42)이 갑자기 천고에 유명幽冥을 달리하게 되었구나. 그대의 목숨이 과연 여기에 멈추어 그치고야 말았느냐? 나의 인연이 또한 여기에 멈추어 그치고 말았느냐? 아니면 내가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만약 이에 앞서 입실했으면 곧 죽지 않고 목숨을 이을 수 있었을까? 방장산에 있었으면 죽지 않고 액운을 넘겼을까? 황강에 있었으면 곧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귀촌龜村에 물러나 있었으면 곧 죽지 않고 오히려 보존할 수 있었을까? 하늘을 향해 외쳐 보아도 하늘은 말이 없고, 부처님께 호소하지만 부처님도 말씀이 없으시구나. 차라리 그대를 따라 홀연 들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곳으로 돌아감이 더 나을 것 같구나. 힘껏 참아 내고자 하나 슬픔이 끊어지지 않는구나. 석실에 우두커니 앉아 그대의 강설을 생각하니 슬프고, 그대의 몸가짐과 행동거지를 떠올리니 슬프고, 그대의 법려法侶를 대하니 슬프고, 그대의 수택手澤을 바라보니 슬프다.이승에 사는 부생浮生들의 갖가지 허환虛幻하고 무익無益한 슬픔이 떠난 이에게 무슨 보탬이 되는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정은 익숙하고 은혜는 깊어, 잊어버리고자 하나 잊히지 않는다.

010_0319_b_01L入夢幻三昧耶天不愸遺胡至此耶
010_0319_b_02L人言彩雲易▼((林/月)+攴)良玉難久者果然矣
010_0319_b_03L汝宜哭我而我哭汝汝宜塟我而我塟
010_0319_b_04L塟我者誰哭我者誰强者死衰者
010_0319_b_05L所謂天難測而理難推也汝家幹蠱
010_0319_b_06L者惟汝而汝今已矣早知如此爾母
010_0319_b_07L安得一日相推付與山門也吾門嗣法
010_0319_b_08L者惟汝而汝今已矣早知如此我安
010_0319_b_09L得一日相離遠別方丈也汝旣不死於
010_0319_b_10L庚寅之痘又能得瘳於六月之病柰之
010_0319_b_11L曾未幾何而旬日之病不起如是也
010_0319_b_12L吾之法棟摧矣明珠碎矣十載針芥之
010_0319_b_13L [1] 作千古幽顯之別汝之命其果
010_0319_b_14L止於斯而已耶吾之緣亦止於此而已
010_0319_b_15L抑吾不能盡誠而殫其力以至於
010_0319_b_16L斯耶其或先此入室則不死而延命耶
010_0319_b_17L在方丈則死而度厄耶在黃崗則不
010_0319_b_18L死而能存乎退龜村則不死而尙保乎
010_0319_b_19L呼天而天不言訴佛而佛不言寧不若
010_0319_b_20L隨汝而溘然歸於不聞不知之爲愈也
010_0319_b_21L頑忍不絕塊坐石室念汝講說則悲
010_0319_b_22L念汝容止則悲對汝法侶則悲看汝手
010_0319_b_23L澤則悲非不知此世浮生種種虛幻無
010_0319_b_24L益之悲何補逝者而情慣恩㴱欲忘

010_0319_c_01L하물며 지금 나와 그대는 다만 세상 사람이 말하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그치는 것이 아님에 있어서랴. 그대는 비록 죽었지만 가령 내게 또 그대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오히려 위로가 될 것이고, 그대는 비록 죽었지만 가령 내가 일찍 그대의 모임에 불자(麈)를 전하여 선과 교를 염롱拈弄하는 공을 보았다면 오히려 위로가 되리라. 만약 그대에게 좋은 자질과 아름다운 바탕이 없었다면 오히려 잊을 수 있었으련만 하루아침에 그대를 잃고 외로이 홀로 서니 장차 나는 누구를 믿고 살란 말인가? 장차 누구를 의지하여 의발을 전한단 말인가? 이로부터 나는 더욱 이 세상에 뜻이 없어, 물병(軍持)43)도 빌리지 않고 표연히 자취를 끊고 푸른 바다와 봉래산蓬萊山 사이에 두루 유력하다가 이어서 묘향산·칠보산 등 여러 산에 들어가 한 조각 외로이 나는 구름이 되어 어느 곳에서 입멸할지 모르게 하고 싶구나. 그대가 만약 지각이 있다면 나의 먼지를 밟고 나의 뒤를 따라 지난날 방장산에서 노닐던 때와 같이 하지 않겠느냐? 애통하고 애통하구나. 그대가 남긴 글의 남은 조각이 상자에 가득한데 내가 수습하여 책으로 만들어 애오라지 그대에게 그림자와 메아리를 전할 수 없으니 이 또한 슬픈 일이로다.
그러나 서방의 가르침은 본래 말하지 않은 것을 종지로 삼으니, 해타咳唾와 조박糟粕이 어찌 족히 그대의 경중을 가리는 것으로 삼겠는가? 나는 그대를 큰 그릇으로 기대했던 고로, 그대가 도를 이루는 날을 기다려 좋은 호를 다시 내려 주려 했었느니라. 이제 그대에게 고하는 날에 비로소 영허影虛 두 글자로 정녕 내 고심과 충정을 더하노니, 마땅히 깜깜하고 아득한 하늘에 사무치리라. 혼령이 만약 어둡지 아니하면 그 또한 잘 듣고 혹여라도 나를 버리지 않아 함께 그림자 밟으며 허공으로 돌아가면, 유계幽界의 즐거움이 이 세상의 그것과 다름없을 줄을 어찌 알겠는가? 오호라,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눈물은 슬픔을 다 흘려 내리지 못한다.애고애고 하며 슬퍼하는 것이 어찌 영가를 진계眞界에 천도함만 같겠는가? 오늘 49일째를 당하여 향과 차를 간략히 진설하고 먼저 아성亞聖 지장보살에게 공양하고

010_0319_c_01L不可忘况今吾與汝非特世人之所謂
010_0319_c_02L師弟子而已乎汝雖死而使我更有人
010_0319_c_03L如汝則猶以爲慰也汝雖死而使我
010_0319_c_04L早得傳塵于汝會覩其拈弄禪敎之功
010_0319_c_05L則猶可以爲慰也使汝無良材美質
010_0319_c_06L猶可以相忘一朝失汝孑然獨立
010_0319_c_07L使我誰恃而爲命乎將使我誰賴而傳
010_0319_c_08L鉢乎自此吾益無意於此世將欲軍持
010_0319_c_09L不借飄然絕跡遍遊於滄海蓬萊之間
010_0319_c_10L仍入妙香七寶諸山一片孤飛之雲
010_0319_c_11L知滅在何處汝若有知其能躡我之塵
010_0319_c_12L而隨我之後如徃時在方丈之遊耶
010_0319_c_13L矣痛矣汝之遺文殘篇積案溢篋
010_0319_c_14L不能收拾成篇聊以傳汝影響此又可
010_0319_c_15L然西方設敎本不言語爲宗咳唾
010_0319_c_16L糟粕何足爲汝之輕重耶吾以大器望
010_0319_c_17L汝故欲待汝道成之日更錫以嘉號
010_0319_c_18L今於告汝之日始將影虛二字丁寧
010_0319_c_19L吾之苦心哀情當徹於溟漠之間
010_0319_c_20L靈若不昧其亦聽取而毋或棄我
010_0319_c_21L與攝影歸虛則安知幽界之樂無異於
010_0319_c_22L此世也耶嗚呼文不盡說淚不洩悲
010_0319_c_23L與其噭噭而悲曷若薦靈於眞界也
010_0319_c_24L當七七之辰畧設香茶先供亞聖地藏

010_0320_a_01L다음으로 영허의 영령에게 올리노라. 뼈는 사를 수 있지만 영령은 사를 수 없나니, 영령이여, 영령이여, 흠향하소서.
노음산 남장사 관음전 조실 신건 상량문露陰山南長寺觀音殿祖室新建上梁文
삼가 아뢰노니, 대부大府 상진商鎭(경북 상주)의 고찰 남장사南長寺는 하늘이 만든 승경으로 아름다운 이름이 노악露岳에 드날렸고, 땅이 보호하는 영험한 경계로서 원통圓通의 이적을 드러냈다.뒤로는 첩첩 산봉우리가 겹겹이 막혀 있고, 공중에는 미지산彌智山이 우뚝 서 있는데, 앞으로는 쏟아지는 두 줄기 시냇물이 펼쳐져 낙동강으로 넘실넘실 흘러든다.산삼과 복령茯苓, 창출蒼朮44)이 이곳에서 나니 의사가 의지하는 곳이요, 편나무와 남나무·소나무·삼나무가 이곳에서 높이 자라나니 목수들이 도움 받는 곳이다.진감眞鑑 존사尊師께서 이 깊숙한 땅에 주석하였고, 관음觀音 자성慈聖께서 이 신고神臯(신령스러운 땅)에서 정병의 물을 잡으셨으니, 보타락가산과 비슷하며 숭악崇嶽과 방불하다.우리 스승 환응喚應 스님께서 법연法筵을 열어 오묘한 노래를 부르신 곳이며, 지혜의 바다를 건너는 튼튼한 배를 만드신 곳으로서, 땅이 사람을 만나 기이함을 드러낸 것이다.
집터 고르는 안목을 크게 열고, 일을 대중과 도모하여 이을 것을 기약하여 절을 창건할 마음을 크게 일으켰다.이에 스님들을 한번 모이게 하여 단월의 보시를 널리 구하여 세 칸의 선실禪室을 불전 옆에 짓고자 하였다.때는 임신년(玄默涒灘, 1752), 시절은 이삼월(夾鐘姑洗)에 도끼질하는 이는 왼편, 톱질하는 이는 오른편에 서서 공사 시작의 계획을 잡고 스님들도 직분을 맡아 진행하니, 푸른빛은 더 푸르게 붉은빛은 더 붉게 빛이 났다.일을 마침을 경축하며 남은 일은 주실籌室45)에게 맡겨졌다.아하, 저 법우法宇를 보라. 선거禪居하기 딱 좋으니, 십홀十笏의 방 안은 진실로 유마維摩가 쉴 만하고, 7척의 단상은 진실로 만수曼殊(문수보살)46)가 노닐기에 적당하도다.이로써 이른바 해탈의 총림叢林을 완성하였고, 보리의 굴택窟宅을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참선하는 스님들(柏樹霞衲)이 이공二空을 몰아 구름처럼 달려오고, 경전 강의하는 큰 스님들(唄葉龎眉)이 사부대중을 받들어 비처럼 이르니,

010_0320_a_01L次薦影虛靈英可燒者其骨不燒者其
010_0320_a_02L靈乎靈乎尙其格哉

010_0320_a_03L

010_0320_a_04L露陰山南長寺觀音殿祖室新建上
010_0320_a_05L梁文

010_0320_a_06L
伏以大府商鎭古刹南長天作勝區
010_0320_a_07L佳名於露岳地護靈界著異蹟於圓通
010_0320_a_08L背負層巒之重遮空彌智而立立面開
010_0320_a_09L複澗之注瀉入洛江而溶溶參菖苓朮
010_0320_a_10L之是生醫師所賴楩楠松檜之斯秀
010_0320_a_11L匠氏以資眞鑑尊師住虎錫於奧地
010_0320_a_12L觀音慈聖執缾水於神臯依俙寶陁
010_0320_a_13L彷彿崇嶽我師喚應法筵之妙唱智海
010_0320_a_14L之健舟境遇人而呈奇大開相宅之眼
010_0320_a_15L事謀衆而期績誕起創宇之心爰令一
010_0320_a_16L會緇髠廣募求其檀施將以三間禪室
010_0320_a_17L擬結搆於殿傍時當玄默涒灘序屬夾
010_0320_a_18L鐘姑洗斧者左鋸者右計其始功
010_0320_a_19L功分衲徒碧者煥丹者燿賀其卒事
010_0320_a_20L而事歸籌室於戱瞻彼法宇允合禪居
010_0320_a_21L十笏房中寔維摩之可憇七尺壇上
010_0320_a_22L眞曼殊之宜遊玆所謂成解脫之叢林
010_0320_a_23L得菩提之窟宅從玆以來柏樹霞衲
010_0320_a_24L驅二空而雲馳唄葉龎眉奉四部而雨

010_0320_b_01L스승이 법의 이익을 베풂이 마치 가뭄에 두루 쏟아지는 단 장마와 같고, 제자가 종풍宗風을 받음이 마치 시든 풀이 갑자기 따뜻한 햇살을 만난 것과 같도다.이理는 사事로 인해 드러나니 금빛 물결이 만 리 길을 비추고, 체體는 용用과 함께 빛나니 옥의 꽃이 천강千江의 달을 섭수하도다.그림자는 하늘을 나는 난새에 부쳐 멀리 높은 하늘에 오르고, 소리는 화각畫角(뿔피리) 안으로 들어가 멀리 은하수에 도달하리라. 하물며 달이 금모래를 비추고 안개가 옥 계단에 자욱함에랴. 계곡의 신령(谷神)은 제비가 축하하는 날47) 광채를 띠고 있고, 산악의 신령(嶽靈)은 새가 날개를 펴는 날48) 기뻐하도다.이미 사람과 물상이 함께 기뻐하나니 어찌 찬양이 빠질 수 있으리오. 드디어 짧은 노래 불러 긴 들보를 들어 올린다.

拋樑東        들보 동쪽으로 떡을 던지세
鶴駕淸凉指顧中    학가와 청량이 손짓으로 가리킬 거리에 있네49)
休道六窓昏似柒    육창六窓(육근)이 칠흑같이 어둡다 말을 마오
日輪飛出重雷宮    태양이 겹겹의 우레 궁전에서 날아오르리

南          들보 남쪽으로 떡을 던지세
萬里鵬程接海嵐    만 리 붕정은 바다 안개 접했는데
夜夜祝融峯上望    밤마다 축융봉50) 위에서 바라보면
老星一點照禪庵    노성51) 한 점이 선암을 비추리라

西          들보 서쪽으로 떡을 던지세
王母瑤池路不迷    서왕모의 요지연 길 어둡지 않나니
時復玉蕭聲入耳    때때로 옥퉁소 소리 귓가에 들어올 때
採芝仙度白雲梯    지초 캐는 신선은 백운 사다리 건너리라

北          들보 북쪽으로 떡을 던지세
一座須彌衡斗極    한자리 수미산은 북두성을 저울질하고
雲自無心出峀還    구름은 무심하여 나왔다 들어갔다
騰騰閑影簷前落    뭉게뭉게 한가한 그림자 처마 앞에 떨어지리

上          들보 위쪽으로 떡을 던지세
起看數里羅公杖    일어서서 몇 리 뻗친 나공의 지팡이52) 바라보라
霽天白日廓昭明    갠 하늘 밝은 해 크고 밝게 빛나나니
政是吾人淸氣像    진정 이것이 우리들의 맑은 기상일세

下          들보 아래쪽으로 떡을 던지세
雪眉能植跏趺座    눈썹 흰 노승이 가부좌 틀 만하고
雙猿抱鉢入西東    쌍 원숭이 발우 안고 동서에서 들어오고
百鳥含花飛日夜    온갖 새는 꽃 머금고 밤낮으로 나는구나

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후에는 옥대玉帶가 상서로움을 드리우고, 금선金仙이 복을 내리시기를. 바람과 구름이 자주 변하나 어찌 음양의 괴리가 있으리오. 까마귀(해)와 토끼(달)가 밝음을 교대로 하나 소수巢燧53)가 밝게 빛남을 항상 본다네. 자비심은 바다같이 넓어 장차 깨달음의 길 가는 규승規繩54)이 될 것이요, 법수法壽의 산은 높아 영원히 미혹의 나루터를 건네는 배가 되리라.
운봉사 회현당 상량문雲峯寺會賢堂上梁文
삼가 아뢰노니, 조령鳥嶺 동쪽 기슭에 있는 사불산四佛山의 서쪽 모퉁이에 하늘이 열어 놓은 특별한 승경이 있으니 산은 운달雲達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리고,

010_0320_b_01L師施法利若旱天之遍沛甘霖
010_0320_b_02L受宗風猶萎草之頓遇陽煦理因事現
010_0320_b_03L金波照萬里之程體同用彰玉花攝千
010_0320_b_04L江之月影附翔鸞之尾逈登雲霄
010_0320_b_05L入畫角之中遠透銀漢況且月照金沙
010_0320_b_06L霞濃玉砌谷神帶輝於燕賀之日嶽靈
010_0320_b_07L載喜於鳥革之時旣人物之咸欣寧賛
010_0320_b_08L揚之可闕遂吟短偈以擧脩樑拋樑東
010_0320_b_09L鶴駕淸凉指顧中休道六窓昏似柒
010_0320_b_10L輪飛出重雷宮萬里鵬程接海嵐
010_0320_b_11L夜夜祝融峯上望老星一點照禪庵西
010_0320_b_12L王母瑤池路不迷時復玉蕭聲入耳
010_0320_b_13L芝仙度白雲梯一座須彌衡斗極
010_0320_b_14L雲自無心出峀還騰騰閑影簷前落
010_0320_b_15L起看數里羅公杖霽天白日廓昭明
010_0320_b_16L是吾人淸氣像雪眉能植跏趺座
010_0320_b_17L雙猿抱鉢入西東百鳥含花飛日夜
010_0320_b_18L願上梁之後玉帶垂祥金仙降福
010_0320_b_19L雲累變寧有陰陽之乖離烏兎迭明
010_0320_b_20L常見巢燧之昭朗慈心海濶將爲覺路
010_0320_b_21L之䂓繩法壽山高永作迷津之濟楫

010_0320_b_22L

010_0320_b_23L雲峯寺會賢堂上梁文

010_0320_b_24L
伏以鳥嶺東麓四佛西隅天開別區

010_0320_c_01L땅이 시설한 신령스러운 경계가 있으니 절은 운봉雲峯이라는 색다른 이름을 걸었다.물 흐르는 골짜기는 굽이져 돌고, 산봉우리는 수려하다.
천계天啓55) 연간에 혜총慧聦 명사明師가 처음으로 이 절을 세웠고, 허물어지자 옹정雍正56) 연간에 운중雲衆 스님이 그 뒤에 이 당을 세웠다.그러나 흥성함은 쇠함의 어머니라, 이는 곧 천지天地의 상도常道요, 무너짐은 흥성함의 기반이니, 이 또한 음양陰陽의 운수로다.몇 번이나 쌓인 얼음과 눈에 매몰되어 동량은 곧 부러지려 하고, 여러 번 바람에 뒤집히고 소나기에 뒤흔들려 널기와는 이미 헐어서, 그곳에 사는 이들은 탄식하였고 지나가는 길손들은 안타까워하였다.
절기는 황룡黃龍(무진, 1748)의 봄, 때는 벽토碧兎의 달에 여러 절에 축적한 재물을 기울여 굉장한 규모의 선계(壺中)57)를 다시 회복하였다.중생들이 힘을 써 다시 외관을 고쳐 옛 제도가 이에 회복될 수 있었다.문을 열면 낙락장송 우거졌고, 마루 기둥에 기대면 산 빛이 드높이 보인다.특별한 땅의 안개 노을이 다시 환해지니 이미 신선 구역으로 봉해졌고, 제천의 구름과 달이 다시 맑아지니 어찌 좋은 노래가 없으리오. 정성스레 짧은 노래 불러 들보 드는 것을 도울까 하노라.

樑之東        들보 동쪽으로 떡을 던지세
蹲岩揷翠空      웅크린 바위가 푸른 하늘에 꽂혔네
睡餘閑捲箔      자고 나서 한가로이 주렴 걷으니
杲日暎仙宮      밝은 해가 신선 궁전 비추는구나

南          들보 남쪽으로 떡을 던지세
蒼翠擁精藍      청록 빛이 절집을 감싸 안았는데
樓閣鍾初動      누각에선 쇠북이 처음 울리니
應知禮佛龕      불감에 예경할 줄 응당 알리라

西          들보 서쪽으로 떡을 던지세
層巚與天濟      층층의 봉우리는 하늘과 나란한데
落月掛松樹      지는 달은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고
秋雲生石溪      가을 구름은 석계에서 일어나네

北          들보 북쪽으로 떡을 던지세
尖峯衝斗極      뾰족한 봉우리는 북두성을 찌를 듯한데
夕陽度遠林      석양은 먼 숲을 건너가고
雲族歸山宿      구름 무리는 산굴로 돌아가네

上          들보 위쪽으로 떡을 던지세
玄天覆萬像      하늘은 만 가지 물상을 덮었으니
咫尺白玉京      지척 가까운 곳 백옥경이라
郡仙入瞻仰      여러 신선 들어가 우러러보리

下          들보 아래쪽으로 떡을 던지세
慈雲浮日夜      자비 구름은 밤낮으로 떠 있고
緇徒植跏趺      스님네는 꼿꼿이 가부좌 틀었네
禪味如啖蔗      선미는 사탕수수 씹듯58) 하리라

엎드려 바라노니, 상량을 한 뒤에 숲속의 새는 복(祉)을 드러내고 산 사슴은 인仁으로 귀의하며, 비바람은 순조롭고, 법중法衆은 소림少林의 가을 달 아래 여유롭게 노닐며, 시절이 화평하고 풍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태호太皡59)의 봄바람에 배 두드리며 살아가기를.

010_0320_c_01L稱雲達之嘉號地設靈界寺揭雲峯之
010_0320_c_02L殊名澗谷縈廻崗巒秀麗奧在天啓
010_0320_c_03L慧聦明師建此寺於其初逮至缺
010_0320_c_04L正雲衆釋井此堂於其後然而盛乃衰
010_0320_c_05L寔天地之常敗是興基亦陰陽之數
010_0320_c_06L幾因層氷積雪之埋沒棟樑將摧纍被
010_0320_c_07L顚風驟雨之振凌板瓦已毁居人發歎
010_0320_c_08L過者興嗟序屬黃龍之春時値碧兎之
010_0320_c_09L傾諸寺內之儲物重復壺中之宏規
010_0320_c_10L衆生爲之改觀古制於焉得復開戸闥
010_0320_c_11L而松陰落落倚軒楹而山色巍巍特地
010_0320_c_12L之烟霞再煥旣鑰仙區諸天之雲月重
010_0320_c_13L寧無善頌聊吟短藻助擧修樑
010_0320_c_14L之東蹲岩揷翠空睡餘閑捲箔杲日
010_0320_c_15L暎仙宮蒼翠擁精藍樓閣鍾初動
010_0320_c_16L應知禮佛龕西層巚與天濟落月掛
010_0320_c_17L松樹秋雲生石溪尖峯衝斗極
010_0320_c_18L陽度遠林雲族歸山宿玄天覆萬
010_0320_c_19L咫尺白玉京郡仙入瞻仰慈雲
010_0320_c_20L浮日夜緇徒植跏趺禪味如啖蔗
010_0320_c_21L願上梁之後林鳥效祉山鹿歸仁
010_0320_c_22L順風調法衆優遊於少林之秋月時和
010_0320_c_23L歲稔黎首鼓腹於太皡之春風

010_0321_a_01L
『화엄경』 권선문華嚴經勸善文
『화엄경華嚴經』은 삼천 불조佛祖의 골수요, 팔만대장경의 관할輨轄이라, 왕신王臣이며 장상將相이 존숭(尊尙)하는 바요, 인천人天이며 신귀神鬼가 호지護持하는 바이다.이 때문에 용수龍樹 조사祖師가 용궁에서 찾아서 외워 오셨고,60) 대현大賢 보살菩薩은 대하大夏61)에 천양擅揚하셨도다.화제和帝62)가 용흥龍興(즉위)할 때 보배 덮개를 매달아서 칙강勅講하였고, 천후天后(측천무후)가 임어臨御하여 서문을 써서 품평하였다.몇 행을 적자마자 글자마다 빛을 발하였고, 지신地神이 창을 받들고 천동天童이 꽃을 뿌렸다.하何 도사道士는 이 경을 만들어 700 죄인을 도탄에 빠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였고, 오悟 사문沙門은 이 경을 강해서 500 산신山神을 하늘을 오르는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이와 같은 영이함을 모두 다 늘어놓을 수는 없다.
엎드려 바라노니, 선남자 선여인이여. 티끌 같은 재물이 저녁연기 같음을 살피고, 인간 세상이 아침 이슬 같음을 깨달아, 빈부에 따라 보시하여 이 법보法寶를 이루기를. 그리하면 사나 죽으나 그 공덕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요, 부처님과 조사들이 그 공덕으로 불꽃을 이을 것이니, 힘쓰지 않을 수 있으며 다행이 아닐 수 있겠는가?
대승사 불상 개금 권선문大乘寺佛像改金勸善文
무릇 광박한 것을 포함한 것을 ‘대大’라고 하며, 무거운 것을 옮겨 멀리 이르게 하는 것을 ‘승乘’이라 한다.근래에 옛 사서를 살펴보니 옛적 신라 원효元曉 조사祖師는 신통력으로 중국의 법운사法雲寺 승려 1,012명을 인도해 왔으니, 모두 대법大法으로 태워 멀리 동해 바닷가에 이르게 한 것이다.그중 천 명은 울산蔚山 원적산圓寂山에 머물다 성불하여 마침내 이름을 천성산千聖山이라 고쳤고, 또 일을 맡은 승려 여덟 명은 대구 공산公山에 머물다가 성불하여 드디어 이름을 팔공산八公山이라 고쳤고, 또 네 사람은 상주尙州 공덕산功德山에 머물며 성불하여 드디어 이름을 사불산四佛山이라 고쳤다. 또 다른 일설에 따르면

010_0321_a_01L華嚴經勸善文

010_0321_a_02L
夫華嚴經者三千佛祖之骨髓八萬大
010_0321_a_03L藏之輨轄王臣將相之所尊尙人天神
010_0321_a_04L鬼之所護持是以龍樹祖師▼(扌+突)誦於龍
010_0321_a_05L大賢菩薩擅揚於大夏和帝龍興
010_0321_a_06L懸寶盖而勅講天后臨御述序文以題
010_0321_a_07L纔寫數行字字放光地神奉戟
010_0321_a_08L童散花何道士造此經以脫七百罪人
010_0321_a_09L塗炭之苦悟沙門講此經以登五百山
010_0321_a_10L神騰空之座如是靈異不可俱陳
010_0321_a_11L願善男子善女人省塵財之夕烟覺人
010_0321_a_12L世之朝露貧富隨施成此法寶則存
010_0321_a_13L亡以之而獲益佛祖以之而續焰可不
010_0321_a_14L勉哉可不幸哉

010_0321_a_15L

010_0321_a_16L大乘寺佛像改金勸善文

010_0321_a_17L
夫包含廣愽之謂大運重致遠之謂乘
010_0321_a_18L近按遺史昔新羅元曉祖師以神通力
010_0321_a_19L引中國法雲寺僧一千十二人皆乘之
010_0321_a_20L以大法遠致於東海之岸於中一千
010_0321_a_21L住蔚山地圓寂山成佛遂改名千聖山
010_0321_a_22L又執勞僧八人住大丘地公山成佛
010_0321_a_23L改名八公山又四人住尙州地功德山
010_0321_a_24L成佛遂改名四佛山又有一說焉

010_0321_b_01L신라 때 하나의 큰 돌이 하늘에서 산 정상으로 떨어졌는데, 사면에 네 부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고, 붉은 비단에 싸여 중봉에 우뚝 서 있었기 때문에 또한 사불산이라 이름하였다고 했다.
이에 진평왕眞平王 9년 갑신년63)에 이곳으로 말을 타고 와서 네 여래如來를 바라보며 마침내 그 아래에 절을 창건했는데 편액을 대승大乘이라 하였으니 대승의 뜻은 진실로 까닭이 있는 것이다.당唐 개원開元 원년 을사년64)에 이르러 새로 삼존三尊 불상을 조성하여 도금하였고, 건륭乾隆 갑신년(1764)에 이르러 옛 불전을 다시 수리했다.아, 옛날 갑신년에 처음 창건하고 지금의 갑신년에 중수하니 상하의 갑신년이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서로 딱 맞아떨어진 것으로, 곧 네 부처님의 크신 화통력化通力이 멀리 여기에 미쳐 중흥된 것이로다.신라 왕사王師 망명亡名 비구比丘는 이곳에서 대법을 승乘하고, 인연이 다하자 서방으로 귀의하였는데 무덤 위에 연이 솟아올랐다.고려 왕사王師 나옹 화상懶翁和尙은 이곳에서 대법을 승했는데, 산의 서쪽 묘적암妙寂菴에서 입적하였다.그 후 함허涵虛 조사祖師도 이곳에서 대법을 승한 후 산의 동쪽 반야암般若庵에서 입적하였다.암자는 모두 아직도 남아 있고, 자취도 오히려 그곳에 남아 있으니 가히 명찰이라 할 만하다.
과거에 우리 부처님 여래께서 대법을 승하여 하늘에 오르신 후 오래도록 내려오지 않으실 때, 우전왕于塡王이 추모하여 나무에 새기고 흙으로 빚어 기도하자 곧 감응이 있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곧 복이 없도다.무릇 형상을 빌려서 감응함이 이와 같으므로 이것이 소상塑像이 세워진 연유이니, 부처를 모시는 자는 힘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불전은 비록 다시 새로워졌으나 불상은 곧 겨를이 없어 금니金泥가 다 떨어지고 벗겨져 보기에 위엄이 없었다.비록 부처님의 진체眞體에는 손상됨이 없겠지만 실로 사람들의 안목에 부끄러움이 있어 개금改金하는 데 오래전부터 뜻을 두었다.그러나 일의 규모는 크고 힘은 미약하여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없다.
이에 감히 거친 말로 널리 단문檀門에 고하노니, 바라건대 선남선녀들이여, 재물은 저녁 안개임을 깨닫고 인생은 아침 이슬임을 생각하여 큰 보시의 문을 열고

010_0321_b_01L朝有一大石自天墜於山頂而四面彫
010_0321_b_02L四佛形像褁之以紅紗卓立於中峯故
010_0321_b_03L亦名四佛山於是眞平王九年甲申
010_0321_b_04L駕於此瞻彼四如來遂剏寺於其下
010_0321_b_05L額曰大乘大乘之志良有以也至唐
010_0321_b_06L開元元年乙巳新造佛像三尊塗金
010_0321_b_07L乾隆甲申重修古殿古之甲申初
010_0321_b_08L今之甲申重修上下甲申不期相
010_0321_b_09L乃四佛大化通力遠及於此而重興
010_0321_b_10L新羅王師亡名比丘乘大法於此
010_0321_b_11L緣盡西歸塚上生蓮高麗王師懶翁和
010_0321_b_12L乘大法於此山之西妙寂菴而化
010_0321_b_13L其後涵虛祖師乘大法於此山之東般
010_0321_b_14L若庵而化庵皆猶存跡尙遺之可謂
010_0321_b_15L名刹也昔者我佛如來乘大法上天
010_0321_b_16L久不降時于塡王追慕木以彫土以
010_0321_b_17L祈之則有應不敬則無福夫以假
010_0321_b_18L之而感應猶如是此塑像之所由起
010_0321_b_19L事佛者不可不勉者也殿雖重新
010_0321_b_20L則未暇金泥剝落瞻之無嚴雖無損
010_0321_b_21L於佛之眞體實有愧於人之眼目有志
010_0321_b_22L於改金久矣而事巨力微難以獨成
010_0321_b_23L敢將荒語普告檀門願諸善男善女
010_0321_b_24L覺夕烟之塵財念朝露之人生開大施

010_0321_c_01L큰 공덕을 세우시기를. 공덕의 산에 다시 한 층의 높이를 더하여 대승사를 다시 천년의 옛터에 복구한다면, 곧 무엄無嚴하던 부처님이 유엄有嚴하게 되고 의지할 곳 없는 승려들이 의지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모두 이 글에 감발하여 행함이 어떠하신지?
사불산 진영 안치 발원문(四佛山安影文)
우담화優曇花가 처음 피어 맑은 향이 널리 퍼지더니, 서산西山에 이르러 보배로운 꽃이 거듭 흐드러지게 피었다.우리 능파凌波 스님은 멀리 그 끝을 이으신 분으로 인연이 다하여 입멸하셨다.아, 자비로운 음덕 추모할 길 없어 진영을 그려 사불산四佛山에 안치하나니, 임천林泉이 이로부터 생기를 띠고 건곤乾坤이 영원히 고요하며, 일월이 항상 한가롭고 꽃향기가 넘쳐서 호겁浩劫(영원)토록 쇠해지지 않기를.
괄허설括虛說
어떤 객이 괄허자括虛子에게 와서 묻기를, “그대는 괄허括虛로 헌호軒號를 삼았으니 감히 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하였다.
괄허자는 답하였다.“앉으시오. 내 그대에게 말하리다.무릇 내가 말하는 괄허라는 것은 곧 시방十方의 허공虛空을 감싼 것이지, 만물萬物이 허위虛僞하다는 뜻의 허虛를 말하는 것은 아니오. 이른바 만물의 허라는 것은 물물物物마다 모두 허요, 두두頭頭마다 모두 허인 것이오. 아, 천년의 문장도 지는 해 밖이니 곧 하나의 허요, 만대의 영웅도 한 번의 번개 속이니 곧 하나의 허라오. 달팽이 뿔 위 촉蜀과 만蠻의 소식도 하나의 허요, 봄꿈 속의 장주莊周의 형체와 그림자도 하나의 허요, 한단邯鄲의 베개를 얻음도 하나의 허요, 새옹塞翁의 말을 잃음도 곧 하나의 허인 것이오. 하나라의 사당(夏社)이 없어지고 구정九鼎65)을 이전移奠함도 곧 하나의 허요, 한조漢朝가 이미 망하고 금동선인(銅仙)66)이 눈물을 흘림도 곧 하나의 허요, 선리仙李67)의 꽃이 표연히 떨어지고

010_0321_c_01L建大功德使功德山更添一層之高
010_0321_c_02L大乘寺重復千年之舊則佛無嚴而有
010_0321_c_03L僧無依而有依咸感斯文爲如何
010_0321_c_04L

010_0321_c_05L

010_0321_c_06L四佛山安影文

010_0321_c_07L
曇花始發淸香普頒流及西山寶蕚
010_0321_c_08L重爛惟我凌波遠續其端緣終化滅
010_0321_c_09L嗚呼無攀追慕慈蔭繪眞以安四佛
010_0321_c_10L林泉自此生顏乾坤永靜日月常閑
010_0321_c_11L芳芬有餘浩刼無殘

010_0321_c_12L

010_0321_c_13L括虛說

010_0321_c_14L
有客來問括虛子曰子以括虛名軒
010_0321_c_15L問其說括虛子曰吾語子夫余之
010_0321_c_16L所謂括虛者乃括十方之虛空非謂萬
010_0321_c_17L物虛僞之虛也所謂萬物之虛者物物
010_0321_c_18L皆虛也頭頭皆虛也千年文章
010_0321_c_19L陽之外則一虛也萬代英雄一電之中
010_0321_c_20L則一虛也蝸角上蜀蠻之消息一虛也
010_0321_c_21L春夢中莊周之形影一虛也邯鄲之枕
010_0321_c_22L得之而一虛也塞翁之馬失之則一虛
010_0321_c_23L夏社旣屋九鼎移奠則一虛也
010_0321_c_24L炎不噓銅仙垂淚則一虛也仙李之

010_0322_a_01L협마夾馬68)의 향이 사라진즉 하나의 허요, 육조六朝69)의 폐허(丘墟), 오계五季의 풍우風雨가 하나의 허라. 바다가 마르고 산이 무너질 듯한 충신의 분개함도 하나의 허요, 천지처럼 장구한(天長地久) 열사의 한도 하나의 허라. 이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삼천三千의 세계도 바다의 뜬 물거품과 같으니 하나의 허요, 백억百億의 불신佛身이라는 것도 공중의 허깨비 꽃과 같으니 곧 하나의 허라. 사대四大의 바탕은 세 가지 인연(三緣)을 빌려 부지하니 허요, 오온五蘊의 마음은 육진六塵을 대하여 생멸하는 고로 허요, 십사十使70)의 번뇌는 뿌리 없이 피어나는 것이므로 곧 허라. 팔풍훼예八風毁譽71)는 구멍이 없이 생겨나므로 곧 허로다.장張씨가 태어나고 이李씨가 죽으니 다만 생사가 허요, 백로는 희고 까마귀는 검으니 다만 흑백이 허요, 진秦은 망하고 초楚는 남으니 다만 존망이 허요, 서쪽에서 얻고 동쪽에서 잃으니 다만 득실이 허로다.그런즉 영욕榮辱과 부침浮沈이 모두 허요, 귀천貴賤과 현우賢愚 역시 허요,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이 역시 허요, 이해利害와 훼예毁譽가 역시 허로다.고금古今을 조사하고 만물萬物을 살펴보니 가면 갈수록 허요, 상하上下로 달리고 백태百態를 담으니 오면 올수록 허로다.어둡고 혼탁하여 모두 한바탕의 허환虛幻을 만드는구나. 이제 한바탕의 허환으로 공씨孔氏(공자)에게 묻고자 하거늘 곧 행단杏壇이 이미 허요, 석씨釋氏(석가)에게 묻고자 하거늘 곧 영산靈山이 이미 허로다.신에게 물은들 신이 무슨 말을 하며, 하늘에 물은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리오. 땅에게 물은들 땅이 무슨 말을 하며, 산에게 물은들 산은 묵묵하여 말이 없고, 물에게 물은들 곧 물은 아득하여 말이 없도다.창을 열고 달을 마주하니 달은 밝고 밝을 뿐이로다.발을 걷고 바람을 쐬니 바람은 시원하게 불 뿐이로다.호수에서 물고기를 보니 물고기는 나를 모르고, 하늘 밖 솔개를 보니 솔개는 나를 모르는구나.

010_0322_a_01L花飃零夾馬之香消殘則一虛也
010_0322_a_02L朝之丘墟五季之風雨一虛也海渴山
010_0322_a_03L忠臣之憤一虛也天長地久烈士
010_0322_a_04L之恨一虛也乃至佛家所謂三千之世
010_0322_a_05L如海上浮漚則一虛也百億之佛
010_0322_a_06L如空中幻花則一虛也四大之質
010_0322_a_07L假三緣而扶持則虛也五蘊之心對六
010_0322_a_08L塵而生滅則虛也十使煩惱無根而發
010_0322_a_09L則虛也八風毁譽不穴而生則虛也
010_0322_a_10L生也李死也但生死之虛也鷺白也
010_0322_a_11L烏黑也但黑白之虛也秦亡也楚存
010_0322_a_12L但存亡之虛也西得也東失也
010_0322_a_13L得失之虛也然則榮辱浮沉摠是虛
010_0322_a_14L賤賢愚亦是虛治亂興亡亦是虛利害
010_0322_a_15L毁譽亦是虛閱古今視萬物愈徃而虛
010_0322_a_16L馳上下籠百態愈來而虛也冥冥
010_0322_a_17L然混混然都作一場之虛幻也今將一
010_0322_a_18L場之虛幻欲問於孔氏則杏壇已虛
010_0322_a_19L欲問於釋氏則靈山已虛問於神
010_0322_a_20L何言哉問於天天何言也問於地
010_0322_a_21L何言也問于山則山默默而不言
010_0322_a_22L于水則水茫茫而無吾開牕對月
010_0322_a_23L皎皎而已捲箔臨風風瑟瑟而已
010_0322_a_24L上觀魚魚不知我天外觀鳶鳶不知

010_0322_b_01L내 장차 상제上帝에게 물어보고자 하나 상제는 스스로 들어 알 수 없고, 태허太虛에 돌아가 다시 태허에 물어보나 곧 태허는 묵묵히 응답하지 않는구나. 다만 더도 없고 덜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한 덩어리(一體)의 본성이 시방에 두루하여 그것을 나타내 보이도다.나는 이러한 이유로 내 몸을 생멸 중에 생멸하지 않는 참된 성품으로 명명했을 따름입니다.”
객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과 불만족에 대한 이야기(足不足說)
사람 중에는 본디 만족함을 아는 자가 있고 만족함을 모르는 자가 있다.무릇 만족함을 모르는 자는 비록 고대광실에 살아도 만족할 줄 모르고,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만종萬鐘72)의 곡식을 먹어도 만족함을 모르며, 두 주周나라(서주와 동주)를 삼키고 육국六國을 병합해도 만족할 줄 모른다.그러나 만족함을 아는 자는 한 발우의 밥과 한 그릇의 반찬으로도 만족하며, 새끼를 띠로 매고 섶나무를 져도 만족하며, 심지어 하루 종일 한 끼를 먹어도 만족한다.그러한즉 만족함과 만족하지 못함은 외물外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내가 만약 만족하지 않으면 곧 만족할 만한 것에도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만약 만족함을 안다면 곧 만족하지 못할 곳에서도 항상 만족할 것이다.항상 만족함을 아는 자는 항상 만족함을 모르는 자의 웃음거리가 되나 스스로 비웃지는 않는다.고로 항상 만족할 줄 안다.항상 만족을 모르는 자는 항상 만족을 아는 자의 불쌍히 여기는 바 되나 스스로 불쌍한 것을 알지 못한다.고로 항상 만족하지 못한다.그러나 항상 만족함을 아는 자는 만족하지 않을 때가 없고, 항상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때때로 화禍가 생긴다.나는 그중 누가 지혜로운지 모르겠노라.
아, 숲에는 새가 있고 연못에는 물고기가 있다.새는 숲에 머물며 만족하는 자이고, 물고기는 연못에 머물러 있으며 만족하는 자이다.하늘이 만물을 내심은 각각 그 만족할 만한 것에 대해 만족하게 하는 것에 그칠 따름이다.오늘날 만족을 구하는 자는 숲에 처해서 연못을 구하는 자들이다. 만족을 구하는 것이 그침이 없으나

010_0322_b_01L我將試問於上帝上帝不自聽受
010_0322_b_02L而歸之於太虛還問太虛則太虛默默
010_0322_b_03L不應但以無增無減不生不滅之一體
010_0322_b_04L遍十方而現示之余是以名吾身生
010_0322_b_05L滅中不生滅眞性者爾客默然移席而
010_0322_b_06L點頭焉

010_0322_b_07L

010_0322_b_08L足不足說

010_0322_b_09L
人固有知足者又有不知足者夫不知
010_0322_b_10L足者雖高臺廣室而不知足緫百官
010_0322_b_11L食萬鐘而不知足呑二周並六國
010_0322_b_12L不知足知足者飯一盂蔬一盤而足
010_0322_b_13L帶索負薪而足甚焉則並日一食而足
010_0322_b_14L然則足與不足不在於物而在於我
010_0322_b_15L我若不足則於足常不足我若知足
010_0322_b_16L則於不足常足也常知足者常爲不足
010_0322_b_17L者之所笑而不以自笑故常知足
010_0322_b_18L不足者常爲常知足者之所憐而不知
010_0322_b_19L自憐故常不足也然常知足者無時
010_0322_b_20L而不足常不足者有時而禍生吾未
010_0322_b_21L知其孰爲智也有鳥于林有魚于
010_0322_b_22L鳥待林而足者也魚待淵而足者也
010_0322_b_23L天之生物也使之各足其足而止已
010_0322_b_24L之求足者林處而欲淵者也求足不已

010_0322_c_01L그 만족을 맛보고 있는 것도 잃어버리고 있으니, 이 또한 귀감으로 삼기에 충분하다.세상에 만족함을 아는 자는 항상 적고 만족함을 모르는 자는 항상 많다.이는 무슨 까닭인가? 만족함과 만족하지 못함의 기준이 외물에 있지 나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슬프도다.
다투는 승려를 다스린 이야기(治爭僧說)
어떤 두 명의 승려가 이익을 다투며 서로 싸우고 있었다.내가 불러오게 하여 꾸짖었다.“옛날 송宋나라 사람 포공包公이 재상을 할 때 그 군郡의 어떤 사람이 스스로 나와 말하기를, ‘지난번 백금百金을 저에게 맡긴 이가 죽었습니다.그 아들에게 금을 돌려주었으나 받지 않았습니다.바라건대 공께서 그 아들을 불러 받도록 해 주십시오.’ 하였다.공은 탄식하며 이상하게 여겨 곧 아들을 불러 말하였으나, 그 아들은 사양하며 말하기를 ‘선인께서 그런 일이 없으셨습니다.’ 하며 받지 않았다.공은 부득이하여 사관寺觀에 금을 보내 망자를 천도하도록 하였다.저세상 번뇌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오히려 재물을 멀리하고 의義를 사모함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여러분은 이미 불자인데 오히려 속인만 못하단 말인가?” 마침내 청규淸規에 의거하여 규율로 다스렸다.
악자를 경계하는 이야기(誡惡者說)
악에는 유형有形의 악이 있고 무형無形의 악이 있다.무형의 악은 사람을 해치고, 유형의 악은 사람을 죽인다.사람을 죽이는 자는 적고 사람을 해치는 자는 많다.많은 쪽은 죄가 오히려 가볍고, 적은 쪽은 죄가 오히려 무겁다.경중이 비록 다르기는 하나 죄가 되는 것은 같다.반드시 싹이 나지 않았을 때 마음을 다스리고, 어지러워지지 않았을 때 정情을 막아야 한다.무형의 것을 범하여 유형에 미치지 않도록 하라.

010_0322_c_01L並與其所嘗足者而失焉亦足以鑑矣
010_0322_c_02L而世之知足者常少不知足者常多
010_0322_c_03L何以也其足與不足在物不在我也
010_0322_c_04L悲夫

010_0322_c_05L

010_0322_c_06L治爭僧說

010_0322_c_07L
有二僧爭利相閧余呼至而責之昔宋
010_0322_c_08L人包公爲宰時郡有自陳者曰向以百
010_0322_c_09L金寄我者亡矣還金其子其子不受
010_0322_c_10L望公召其子令受之公歎異之即召
010_0322_c_11L語之其子辤白先人無此事讓之不
010_0322_c_12L公不得已付諸寺觀以薦亡者
010_0322_c_13L塵勞中人尙能踈財慕義如此況爾等
010_0322_c_14L旣是佛子而反不如俗子乎遂依淸䂓
010_0322_c_15L律治之

010_0322_c_16L

010_0322_c_17L誡惡者說

010_0322_c_18L
惡有有形之惡又有無形之惡無形之
010_0322_c_19L惡者害人有形之惡者殺人殺人者
010_0322_c_20L害人者多多者罪猶輕小者罪猶
010_0322_c_21L輕重雖殊爲罪一也須治心於未
010_0322_c_22L防情於未亂勿犯於無形而及於
010_0322_c_23L有形焉

010_0323_a_01L
선을 권하는 이야기(勸善說)
대개 사람의 화와 복은 본디 선악을 쌓은 것에 달려 있다.선을 쌓으면 복이 반드시 이르고, 선하지 않은 것을 쌓으면 화가 반드시 다가오나니, 비유하자면 그림자와 메아리가 서로 응하는 것과 같다.무릇 만물이 나면 반드시 죽는 것은 밤과 아침이 반드시 그러한 것과 같다.오호라, 이는 사람이 세상에 처함에 필연적 추세이니, 그 누가 백 년의 육신을 가지고 있겠는가? 바라건대 여러 선남선녀들이여, 세상이 무상함을 깨닫고 재물이 화가 됨을 알아 선하지 않은 것을 행하여 화를 받지 않도록 하라. 반드시 선을 쌓으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홍탄 대사에게 보내는 송서(送洪綻大師序)
그대가 관북關北의 설담雪潭으로부터 영남嶺南의 괄허자括虛者에게 이른 것은 그 뜻이 남쪽을 순방하는 데 있소? 아니면 심경心境을 묻고자 함이오? 설담은 담담澹澹한즉 괄허이며, 괄허 역시 담담하니, 비고 담박한 바탕이 곧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오. 북쪽은 어둡고 남쪽은 밝으니, 밝고 어두운 바탕이 바로 본지풍광本地風光이라오. 어찌하여 남과 북이 다르며 심心과 경境이 다르겠소? 오직 그대는 남과 북, 심心과 경境이 나누어지기 전을 잘 살펴보도록 하오.
송 처사에게 주다(贈宋處士)
귀는 영천頴川의 물73)에 씻지 말고, 입으로는 수양산首陽山의 고사리74)를 먹지 마오. 수양산의 바람과 영천의 달은 천지를 통하고 고금에 걸쳐 지극히 청허淸虛하오. 그러나 비록 밝고 깨끗하더라도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와 같다면 오히려 대의가 사라지고 끊어질까 두렵소.

010_0323_a_01L勸善說

010_0323_a_02L
盖人禍福自係乎善惡之積積善則福
010_0323_a_03L必至積不善則禍必至譬如影響之相
010_0323_a_04L應也凡萬物生必有死猶夜旦之必然
010_0323_a_05L嗚呼人之處世必然之勢其誰有百
010_0323_a_06L年之身乎願諸善男善女覺世無常
010_0323_a_07L知財爲禍無不善而取禍也必積善而
010_0323_a_08L受福焉

010_0323_a_09L

010_0323_a_10L送洪綻大師序

010_0323_a_11L
君自關北雪潭巡曁嶺南括虛者其志
010_0323_a_12L在於巡南耶爲問心境耶雪潭澹澹則
010_0323_a_13L括虛括虛亦澹也虛澹之底即是本
010_0323_a_14L來面目北則暗南則明○明暗之底
010_0323_a_15L是本地風光有何南北之殊心境之異
010_0323_a_16L惟君看取南北與心境未分之前

010_0323_a_17L

010_0323_a_18L贈宋處士

010_0323_a_19L
耳莫洗頴川水口莫食首陽蕨首陽之
010_0323_a_20L頴川之月通天地亘古今極淸虛
010_0323_a_21L雖皓潔擧世人皆若如此猶恐大義之
010_0323_a_22L滅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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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운관雲關 : 구름 관문, 구름 낀 관문. 여기서는 산중의 수도 도량을 가리킨다.
  2. 2)선액宣額 : 임금이 직접 사당의 이름을 지어 주는 것.
  3. 3)‌잠시라도(斯須) : 『孟子』 「告子 上」에 “평상시는 형을 공경하되 잠시 동안은 향리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庸敬在兄。 斯須之敬在鄕人。)”라고 하였다.
  4. 4)‌조충雕蟲 : 조충전각雕蟲篆刻의 준말로, 벌레 모양이나 전서篆書를 새기듯이 미사여구美辭麗句로 글을 꾸미는 작은 기예技藝를 말한다.
  5. 5)태허太虛 : 우주 만물의 원시적 형태로서 기氣의 본체인 태극太極을 가리킨다.
  6. 6)‌충막沖漠 : 태극의 상태를 말한다. 즉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으되 아무런 작용이 없어 마치 공허한 것 같은 상태를 형용한 말이다.
  7. 7)홍몽鴻濛 : 우주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있어 온 천지자연의 원기이다. 즉 태초의 상태.
  8. 8)‌희이希夷 : 지극한 도. 도의 본체. 『道德經』에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희希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한다.”라고 하였다. 희이홍몽希夷鴻濛은 광활한 세계를 말한다.
  9. 9)‌살타薩埵 : ⓢ Sattva.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약칭. 보살의 갖춘 이름. 부처의 다음가는 위치에 있으면서 용맹스러운 마음으로 불도를 구하고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존재.
  10. 10)‌박가薄伽 : 박가범薄伽梵의 준말로 ⓢ bhagavat의 음역이다. 바가바婆伽婆·바가범婆伽梵으로도 음역하고, 세존世尊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흔히 불佛과 병칭해 불세존佛世尊이라 칭한다.
  11. 11)‌진불眞佛 : ① 진실한 부처님. ② 화신불化身佛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보신불報身佛. ③ 무상無相의 법신法身. 『無量壽經』에 “光明相好。 具如眞佛。”이라 하였고, 『臨濟錄』에 “眞佛無形。 眞法無相。”이라 하였다.
  12. 12)‌한계(邊表) : 변표邊表는 가장자리. 끝. 한계. 변제邊際. 『壇經』과 『信心銘』에 “極小同大。 忘絶境界。 極大同心。 不見邊表。”라 하였다.
  13. 13)‌우전왕于塡王은 나무에 부처를 새겼고 : 인도의 우전왕優塡王이 불상佛像을 만든 것을 말한다.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뒤에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 모친을 위해 석 달 동안 설법하자, 교상미국憍賞彌國(ⓢ Kauśāmbī)의 우전왕이 예불禮佛할 수가 없어서 고뇌하며 우수에 젖자, 신하들이 마침내 우두전단牛頭旃檀으로 5척尺의 불상을 만들어 왕을 위로하였다는 전단서상旃檀瑞像의 고사가 전한다. 이것이 불상의 시초라고 한다. 『增一阿含經』 권28.
  14. 14)‌가섭 존자迦葉尊者는 금을 넓게 도포했으니 : 『付法藏傳』에 “대가섭大迦葉이 옛날에 가난한 여인으로 태어나 불탑佛塔 안에 있는 불상의 얼굴을 보았는데 그 불상은 금빛이 조금 훼손되어 있었다. 그때 그 가난한 여인은 지니고 있던 황금 구슬을 가지고 금을 다루는 기술자를 찾아가서 그 금 구슬로 이지러진 불상의 얼굴을 장식하게 하였다. 그런 연유로 그는 91겁 동안 온몸이 황금색을 띠어 상호相好를 구족具足하였다.”라고 하였다.
  15. 15)‌보타암굴寶陁巖窟 : 보타산寶陁山. 관세음보살이 계신다는 산 이름. ⓢ potalaka. 보타락가補陀落伽 등으로 쓰고, 광명光明·해도海島·소화수小花樹라 번역한다.
  16. 16)‌을묘년 : 당唐 의봉儀鳳 원년은 676년으로 병자년이고, 을묘년은 679년이다. 착오가 있는 듯하다.
  17. 17)‌을사년 : 강희康熙 18년은 기미년으로 1679년이다. 착오가 있는 듯하다.
  18. 18)‌계묘년 : 건륭乾隆 47년은 임인년으로 1782년이다. 계묘년은 1783년이다.
  19. 19)‌동부洞府 : 신선이 사는 곳을 뜻한다. 다른 말로 선부仙府라고도 한다. 동부洞府는 동천洞天과 같다.
  20. 20)‌자수용自受用 : 제불諸佛이 공덕과 이익을 스스로 수용하고 그 즐거움을 스스로 맛보는 것. 다른 중생으로 하여금 그 즐거움을 향유하도록 하는 것은 타수용이라 한다.
  21. 21)‌용면龍眠 : 송대宋代의 저명한 화가 이공린李公麟의 호. 이공린이 벼슬에서 사임한 후 용면산에 들어가 자호를 용면거사라 하였다. 여기서는 유명한 화사畫師를 가리킨다.
  22. 22)‌기사년 : 순치順治 18년은 1661년이며 신축년이다. 기사년은 강희 28년으로 1689년이다.
  23. 23)‌화사化士 : 화주化主. 불사에 필요한 재물을 구해 오는 일을 하는 승려.
  24. 24)‌순양純陽이 지극한 달 : 순양은 순일純一한 양기陽氣. 고대에는 음양의 두 기운이 합하여 우주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믿었는데, 불은 순양이요 물은 순음純陰이 된다. 1년 12개월을 『周易』의 괘卦에 맞추어 나타낼 때, 4월에는 6효 전체가 양효인 건괘乾卦가 되므로 이를 순양월純陽月이라 한다. 『堪輿經』.
  25. 25)‌성천性天 : 천성天性.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본성을 말한다. 『禮記』와 『中庸』에 “천명을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라고 하였다.
  26. 26)‌심월心月 : 달과 같이 밝고 깨끗한 심성을 말한다. 『菩提心論』에 “본마음을 비추어 보라. 담연하게 맑고 청정함이 마치 보름달과 같아, 허공에 밝게 두루 비추니 분별하는 곳이 없다.(照見本心。 湛然清凈。 猶如滿月。 光遍虛空。 無所分別。)”라고 하였다.
  27. 27)‌석가모니(釋師子) : 석사자釋師子는 석존釋尊의 별칭이다. 부처님이 사람 중에서는 왕이 되고, 삼계 가운데서는 무외자재無畏自在한 것이 마치 백수百獸의 왕인 사자와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師子’는 ‘獅子’와 통한다.
  28. 28)‌매일같이 쓰면서도 모른다 : 『周易』 「繫辭傳 上」 제5장에 “음양이 교차하는 것을 도라 하는데, 이를 이은 것이 선이고, 이를 이룬 것이 성이다. 어진 이는 이를 어질다 하고, 지혜로운 이는 이를 지혜롭다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날마다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모르니 군자의 도는 드물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 仁者見之謂之仁。 知者見之謂之知。 百姓日用不知。 故君子之道鮮矣。)”라고 하였다.
  29. 29)‌여름(流金) : 유금流金은 뜨거워서 쇠조차도 녹아내린다는 뜻으로, 날씨가 매우 더운 것을 말한다.
  30. 30)‌궤장几杖 : 안석과 지팡이.
  31. 31)‌청오靑烏 : 풍수가·지관을 말한다. 한나라 때 풍수지리학자인 청오자靑烏子가 묘터를 정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정리하여 『靑烏經』이라는 책을 펴낸 데서 유래한다.
  32. 32)‌진묵겁塵墨劫 : 헤아릴 수 없이 장구한 세월을 표시하는 불교의 용어이다. 진塵은 미진微塵을 뜻하고, 묵墨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모두 갈려서 가루가 되는 것을 뜻하고, 겁劫은 무한대의 시한時限의 단위를 뜻한다.
  33. 33)‌공왕空王 : 제법諸法의 성품이 공空하다는 것을 깨달아 적정寂靜 무애無礙의 경지를 체득했다는 뜻에서 붙여진 부처의 별명이다. 공왕불空王佛은 과거 공겁空劫에 세상에 나온 최초의 부처님을 말한다.
  34. 34)‌작가作家 : 일반적으로는 문학이나 예술의 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말하나, 불교에서는 숙달된 선사, 제일가는 선승을 일컫는 말이다.
  35. 35)‌갈등葛藤 : 문자文字와 언어語言가 마음에 얽혀 있음이 칡과 등나무(葛藤)가 넝쿨로 서로 얽혀 있는 것과 같음을 비유하여 말한 선가禪家의 용어로, 사상事相을 해석하고 설명하려다가 도리어 속박과 얽매임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 또 공안公案 가운데 이해하기 힘든 어구語句를 가리키기도 하고, 나아가 문답 공부를 하면서 쓸데없는 어구를 가지고 노는 것을 ‘쓸데없는 갈등(閒葛藤)’이라 하고, 문자와 언어에 집착하여 진의眞義를 터득하지 못하는 선禪을 ‘문자선文字禪’ 혹은 ‘갈등선葛藤禪’이라 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자신이 하는 말을 겸양으로 표현한 말이다.
  36. 36)‌동부洞府 : 주 19 참조.
  37. 37)‌옷소매를 끊고(絶裾) : 진晉나라 원제元帝가 처음 강좌江左를 지키고 있을 적에, 유곤劉琨이 병주并州·기주冀州·유주幽州 등 세 주의 군사를 도독都督하며 하삭河朔에 있었다. 좌장사左長史 온교溫嶠로 하여금 표表를 받들고 강남에 가서 나오기를 권하게 하니, 온교가 명령을 받들기로 하였는데, 그의 어머니 최씨가 굳이 못 가게 붙잡으므로, 온교는 옷소매를 끊어 버리고 갔다고 한다. 『晉書』 「溫嶠傳」.
  38. 38)‌홍곡鴻鵠 : 큰 기러기와 고니. 포부가 원대하고 큰 인물.
  39. 39)‌백락伯樂 : 춘추시대 진秦나라 사람으로 말을 잘 알아보았다. 『戰國策』 「燕策」에 “어떤 사람이 말을 팔려고 하였으나 3일을 저자에 갖다 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백락이 가서 한 번 쳐다보니, 그 말의 값이 10배로 뛰었다.(伯樂乃環而視之。 去而顧之。 一旦而馬價十倍。)”라고 하였다.
  40. 40)‌남천藍茜이 본색本色을 잃게 하였도다 : 남천이 본색을 잃었다는 말은, 쪽(藍)과 꼭두서니(茜)에서 나온 청색과 홍색이 쪽과 꼭두서니보다 더 진하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비유로 쓴 말이다.
  41. 41)‌집안을 맡아 다스릴 자(幹蠱) : 간고幹蠱는 간부지고幹父之蠱의 준말. 『周易』 「蠱卦 初六」에 “아버지가 잘못한 일을 바로잡는다. 아들이 있으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허물이 없을 것이다.(幹父之蠱。 有子考无咎。)”라고 한 데서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잘 계승하여 처리함을 말한다.
  42. 42)‌바늘과 겨자씨의 만남(針芥之合) : 서로 만나기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땅 위에 바늘 하나를 세워 놓고 하늘 위에서 겨자씨 한 알을 떨어뜨려 바늘에 꿰는 것처럼 불법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南本涅槃經』 「純陀品」.
  43. 43)‌물병(軍持) : 군지軍持는 ⓢ kuṇḍkā의 음역이다. 군지君持·군지君遲·군지軍遲·군정軍挺·군치가捃稚迦 등으로도 음역하며, 물병·정병 등으로 번역한다. 이는 범천과 천수관음 등이 지니는 물건이며, 대승의 비구가 항상 지니는 십팔물十八物 중 하나이다. 물을 가득 채워 휴대하기 편리한 용기이며, 기름·소금·석밀 등 갖가지 것을 담는 데 사용한다. 용도가 같지 않기 때문에 부르는 말 또한 세족병洗足甁·조수병澡水甁·정병淨甁·부정병不淨甁 등으로 차이가 있다.
  44. 44)‌창출蒼朮 : 다년생의 초본식물. 가을에 백색이나 담홍색의 꽃이 핀다. 여린 싹은 먹을 수 있고, 뿌리가 크고 약용할 수 있다.
  45. 45)‌주실籌室 : 방장方丈이나 주지住持, 혹은 그 거실을 가리킨다. 조실祖室의 별칭으로도 쓰인다. 인도의 우바국다優波鞠多 존자尊者가 제자 한 명을 제도할 적마다 산가지(籌) 하나씩을 석실石室 안에 던져 두었는데, 사방 6장丈 되는 그 방이 산가지로 가득 차게 되자, 법을 전수하고 입멸入滅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景德傳燈錄』 권1, 『寶林傳』 권1.
  46. 46)‌만수曼殊 : 만수실리曼殊室利. ⓢ Mañjuśrī의 음역音譯. 문수사리文殊師利. 묘덕妙德 또는 묘길상妙吉祥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47. 47)‌제비가 축하하는 날(燕賀之日) : 『淮南子』에 “큰 집이 낙성되면 제비, 참새가 서로 치하한다.(厦成而燕崔相賀。)”라고 하였다.
  48. 48)‌새가 날개를 펴는 날(鳥革之時) : ‘조혁휘비鳥革翬飛’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공중에 우뚝 선 건물의 모양이 새가 깜짝 놀라서 날개를 펴는 듯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추녀가 꿩이 날아오르는 것 같다는 뜻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을 비유하는 말이다. 『詩經』 「小雅」 ≺斯干≻.
  49. 49)‌학가鶴駕와 청량淸凉이~거리에 있네 : 학가와 청량은 학가산과 청량산을 말한다. 노음산(노악산)은 상주에, 학가산과 청량산은 안동에 있다. 학가산은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 서후면 자품리와 예천군 보문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882m로 안동에서 가장 높다. 동쪽으로 일월산日月山, 서남쪽으로 팔공산八空山, 멀리 북쪽으로 소백산맥이 아련히 보이고, 영남의 북부 지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 부근은 동서로 길쭉하고, 높이가 비슷비슷해 보이는 봉우리 네다섯 개가 500m에 걸쳐 솟아 있다. 서쪽 끝자락은 안동과 예천의 경계이다. 멀리 청량산과 산줄기가 이어져 있다.
  50. 50)‌축융봉祝融峯 : 당나라 때 한유韓愈가 조주자사로 좌천되었을 때 교유하던 태전太顚 선사가 도를 닦던 곳. 중국 오악 중의 하나인 형산衡山의 봉우리이다. 주자朱子가 축융봉에서 술에 취하여 내려오면서 지은 ≺南岳≻ 시에 “내가 만 리 길 올 때 바람 타고 왔는데, 낭떠러지 층층구름 가슴을 열어 주네. 술 석 잔에 호기가 발동하니, 낭랑하게 시를 읊으며 축융봉을 내려가네.(我來萬里駕長風。 絶壑層雲許盪胸。 濁酒三杯豪興發。 朗吟飛下祝融峯。)”라고 하였다.
  51. 51)‌노성老星 : 노인성老人星의 약칭으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남극성南極星을 가리킨다.
  52. 52)‌나공羅公의 지팡이 : 나공은 나공원羅公遠 도사이다. 당 현종 때 나공원이 지팡이를 허공에 던져서 은교銀橋를 만들어, 은교를 통해 현종을 안내하여 월궁에 다녀왔다는 설화가 있다. 『唐逸史』, 『神仙感遇傳』.
  53. 53)‌소수巢燧 : 나무 위에 집을 짓던 유소씨有巢氏와 부싯돌을 쳐서 처음으로 불을 얻어 살던 수인씨燧人氏를 아울러 이르는 말. 혹은 그 시대로, 아득한 옛날. 여기서는 불을 의미하는 듯하다.
  54. 54)‌규승規繩 : 표준, 법칙. 법도. 규구준승規矩準繩에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 上」.
  55. 55)‌천계天啓 : 명나라 희종熹宗 때의 연호로 1621년~1627년.
  56. 56)‌옹정雍正 : 청나라 세종世宗의 연호로 1723년~1735년.
  57. 57)‌선계(壺中) : 호중壺中은 호중천지壺中天地의 준말. 병 안에 세상이 다 있다는 뜻으로 별천지別天地, 신선 세계를 가리킨다.
  58. 58)‌사탕수수 씹듯(啖蔗) : 점점 더 깊어짐을 의미한다. 진晉나라 때 화가 고개지顧愷之가 사탕수수(甘蔗)를 꼬리 부분부터 맛보자,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으니 “점점 더 좋은 맛을 보려고 해서이다.(漸至佳境。)”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있다.
  59. 59)‌태호太皞 : 봄을 맡은 신. 『呂氏春秋』 「孟春紀」에 “맹춘 달은 그 신이 태호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태호는 옛날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목덕木德으로 왕 노릇 한 칭호였는데, 그가 죽자 동방東方에 제사하여 목덕木德의 신이 되었다.”고 하였다.
  60. 60)‌용수龍樹 조사祖師가~외워 오셨고 : 용수 보살이 용궁에 들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승경전을 열람하였는데, 그 가운데 일부를 암송해 유포한 것이 『華嚴經』이라고 한다.
  61. 61)‌대하大夏 : 한대漢代 서역西域 지방의 한 나라.
  62. 62)‌화제和帝 : 후한後漢의 제4대 황제. 재위 88년~106년. 장제章帝의 서자로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귀인貴人 양씨梁氏의 소생이다. 생모인 양귀인은 궁정 내의 다툼 속에서 장제의 황후 두씨竇氏에게 살해당했다. 폐위된 이복형 청하효왕을 대신하여 태자가 되고 88년 9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는데, 두 태후가 수렴청정을 하기 시작하여 황태후의 오빠인 두헌竇憲이 외척으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63. 63)‌갑신년 : 진평왕眞平王 9년은 587년으로 갑신년(564)이 아니라 정미년이다. 착오가 있는 듯하다.
  64. 64)‌을사년 : 당唐 개원開元 원년은 713년인데 을사년(705)이 아니라 계축년이다. 착오가 있는 듯하다.
  65. 65)‌구정九鼎 : 중국 고대 왕권의 상징이다. 전설에 따르면 하夏나라의 시조 우禹가 중국 전역에 명해 모은 청동을 가지고 주조한 것이라고 한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桀王이 상商나라의 탕왕湯王에게 멸망당한 후 은殷나라의 소유가 되었고, 은나라 주왕紂王이 무왕武王에게 멸망되고 나서는 주周나라 왕실의 소유가 되었다. 주나라의 성왕成王이 즉위했을 때 주공周公은 구정을 낙읍으로 옮겨 이곳을 새 도읍으로 정했다고 한다.
  66. 66)‌금동선인(銅仙) : 금선金仙이라고도 하는데, 한나라 무제武帝가 장안長安의 건장궁建章宮 안에 세운 선인승로반仙人承露盤의 선인을 가리킨다. 무제는 천상天上의 선로仙露를 받아 마시기 위해 높이 20장丈의 동주銅柱를 만들고 그 위에 선인이 받치고 있는 승로반을 세웠다. 위魏나라 명제明帝가 이것을 탐내어 옮겨다가 위나라 궁전 앞에 세우도록 명하였는데, 이때 궁관宮官이 선인을 철거하여 수레에 실으려 하자, 선인이 이곳을 떠나기를 슬퍼하는 듯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전설이 있다.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金銅仙人辭漢歌≻를 지어 이를 노래하였다.
  67. 67)‌선리仙李 : 이씨李氏 성을 지닌 걸출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자老子가 이수李樹 아래에서 태어나 성을 이李로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당나라 왕실에서 노자의 후손이라고 자처하였으므로 그 종족을 선리라고 지칭한 데서 유래한다. 참고로 두보의 시에 “선리의 서린 뿌리 크기도 하여, 걸출한 후손들 대대로 빛났어라.(仙李蟠根大。 猗蘭奕葉光。)”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권2 ≺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
  68. 68)‌협마夾馬 : 협마영夾馬營. 명종 천성天成 2년 정해년에 송宋 태조太祖 조광윤趙匡胤이 낙양의 협마영에서 태어났다. 이때 신광神光이 방에 가득하여 사람을 비추었고 특이한 향기가 한 달이 넘도록 흩어지지 아니하여, 그 협마영을 향해아영香孩兒營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69. 69)‌육조六朝 : 후한後漢 멸망 이후 수隋 통일까지 양자강 남쪽의 건강建康에 도읍을 정한 삼국시대의 오吳와 동진東晉, 그리고 남조南朝의 송宋·제齊·양梁·진陳을 가리킨다. 건강은 지금의 남경南京으로 항주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70. 70)‌십사十使 : 수행자의 마음을 지배하고 구속하는 열 가지 번뇌를 말한다. 오리사五利使와 오둔사五鈍使로 구분한다. 신견사身見使·변견사邊見使·사견사邪見使·견취사見取使·계취사戒取使를 오리사라 하고, 탐욕사貪欲使·진에사瞋恚使·무명사無明使·만사慢使·의사疑使를 오둔사라 한다.
  71. 71)‌팔풍훼예八風毁譽 : 팔풍八風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익(利), 손해(衰), 비방(毁), 찬양(譽), 칭찬(稱), 꾸지람(譏), 고통(苦), 쾌락(樂)의 여덟 가지 경계를 바람에 비유한 것이다. 훼예毁譽는 이러한 팔풍 중 비방과 칭찬.
  72. 72)만종萬鐘 : 10만 곡斛. 아주 많은 양. 1종鐘은 6섬 4말.
  73. 73)‌영천頴川의 물 : 요堯임금 때의 은사隱士인 허유許由가 일찍이 기산箕山 아래 영수穎水 북쪽에 은거하였는데, 요임금이 제위를 맡기려 하자 이를 거절하면서 귀를 씻었고, 또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시자 어떤 사람이 표주박 하나를 주니 그것을 나무에 걸어 두었다. 그런데 바람이 불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자 그 표주박까지도 번거롭다고 하며 내버렸다는 고사가 전한다.
  74. 74)‌수양산首陽山의 고사리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은나라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로,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하러 출동하자 말고삐를 잡고 정벌의 부당함을 간하였으나 무왕이 듣지 않았다. 후에 무왕이 은나라를 멸하고 천자가 되어 천하가 주나라에 복종하였으나,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러워하여 수양산에 숨어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서 굶어 죽었다고 한다. 『史略』 권1 「周」.
  1. 1)「文」一字。編者補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