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인왕경소(仁王經疏) / 仁王經疏卷中【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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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경소권중【본】仁王經疏卷中【本】
제3편 교화품(敎化品第三)
“오인五忍의 법은 모든 불보살이 닦는 반야바라밀이고, 십지十地의 교화행은 모든 보살의 청청한 본업本業이다.”
제3편 교화품(敎化品第三)
이 품을 해석하는 데 대략 두 가지 내용이 있다. 첫째는 품의 이름을 해석하는 것이고, 나중은 경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제1장 품명 해석
보살이 중생을 교화할 때, 선善을 대중에게 보여 주는 것을 ‘교敎’라고 하고 그들로 하여금 악惡을 고치게 하는 것을 ‘화化’라고 한다. ‘품’의 뜻은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 혹은 중생을 가르쳐서(敎) 악을 떠나게 하고 〔그들을〕 고쳐서(化) 선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교화’라고 했을 수도 있다.
『본기』에 의하면, 이 품의 종지는 〔오인五忍에 의거해서〕 보살이 공을 증득하는 계위를 구별한 것에 대해 설명한 것이므로 ‘오인품五忍品’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교화품’이라 한 것에는 본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오인의 보살이 중생을 거두어 교화하기 때문에, 둘째는 여래께서 오인법으로 여러 왕들을 교화하시기 때문에 ‘교화품’이라 한 것이다.
제2장 경문 해석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십지행十地行을 수호하는 보살은 어떤 행을 행해야 되고, 어떤 행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어떤 모습의 중생을 교화해야 됩니까?”

두 번째는 경문에 의거해서 해석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두 가지 수호에 대해 자세하게 해석하면서 문장을 세 가지로 구별했었다. 처음의 「관공품觀空品」에서는 불과佛果의 수호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는 자리행에 해당한다. 다음의 「교화품敎化品」에서는 십지보살의 이타행에 대해 해석하고, 마지막의 「이제품二諦品」에서는 두 가지 수호의 근거가 되는 이치를 설명할 것이다. 이상으로 불과의 수호에 대해 이미 다 설명했고, 이하에서는 두 번째로 십지행의 수호에 대해 해석하겠다.
이 품 안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처음은 왕이 세 가지 질문을 일으킨 것이고, 나중은 세존께서 대답하신 것이다.
1. 왕의 질문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경문에는 두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의 “부처님께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십지행을 수호하는 보살은”이라 한 것은 이전 품에서 설했던 ‘십지행을 수호하는 보살’ 즉 수호하는 사람(能護人)을 내걸어 놓은(牒) 것이다. 다음에 “어떤 행을 행해야 되고 …”라고 한 것은 묻는 말을 바로 일으킨 것이다.

001_0057_b_02L仁王經疏卷中【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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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057_b_04L西明寺沙門圓測撰

001_0057_b_05L敎化品第三

001_0057_b_06L
將釋此品略有二義初解品名
001_0057_b_07L正釋文菩薩化生以善示衆名敎
001_0057_b_08L彼改惡爲化品義如上或可敎衆離
001_0057_b_09L化令住善故名敎化依本記云
001_0057_b_10L此品宗明1)分別菩薩得空之階位
001_0057_b_11L言五忍品而言敎化品者自有二義
001_0057_b_12L一五忍菩薩攝化衆生二者如來以
001_0057_b_13L五忍法敎2)敎化諸王故名敎化品

001_0057_b_14L
白佛言衆生可化

001_0057_b_15L
釋曰第二依文正釋上來廣釋二護
001_0057_b_16L文別有三初觀空品明護佛果
001_0057_b_17L自利行次敎化品釋十地菩薩利他
001_0057_b_18L後二諦品辨二護所依理上來
001_0057_b_19L3)辨護佛果訖自下第二4)釋十
001_0057_b_20L地行於此品中大分爲二初王發
001_0057_b_21L三問後世尊5)正答6)卽初也
001_0057_b_22L有兩節初白佛言護十地行菩薩者
001_0057_b_23L牒前品中護十地行菩薩卽能護人
001_0057_b_24L次云7)何可行等者正發問辭

001_0057_c_01L물음에는 세 가지 의도가 있다. 첫째로 “어떤1) 행을 행해야 하고”라고 한 것은 보살의 자리행으로서 행해야 될 법에 대해 물은 것이다. 둘째로 “어떤 행으로 중생을 교화하며”라고 한 것은 이타행에 대해 물은 것이니, 즉 어떤 지地의 행에 의거해서 중생을 교화할 수 있는지를 물은 것이다. 셋째로 “어떤 모습의 중생을 교화해야 됩니까.”라고 한 것은 교화되는 중생이 실재의 모습(實相)인지 실재가 아닌 모습(不實相)인지를 물은 것이다.
또는 처음에는 자리행이 어떤 행의 모습에 의거하는지를 물었다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오인五忍의 행’을 들어서 그에 답한 것이다. 다음에는 이타행이 어떤 지위의 행에 의거하는지를 물은 것이다. 따라서 ‘십지행’을 들어서 그에 답한 것이다. 마지막에는 어떤 모습의 중생을 교화해야 되는지를 물은 것이다. 따라서 ‘허깨비(幻化) 몸으로 허깨비 중생을 보면서 그를 교화한다’고 답하였다. 해당 경문에 가서 해석할 것이다.
이 품에서는 이타행을 설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처음에 자리행에 대해 물었는가?
보살행을 수호하는 것은 자기와 남을 모두 이롭게 하는 것인데, 뛰어난 측면을 설했기 때문에 다만 ‘교화’라고 말한 것이다.
2. 세존의 대답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오인五忍이 바로 보살법이니,

두 번째는 여래께서 바로 대답하신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앞의 두 가지 질문에 답한 것이다. 나중의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앞서 말하길” 이하는 세 번째 질문에 답한 것이다.
1) 앞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
전자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두 가지 질문에 바로 답한 것이다. 다음의 “이때 백만억” 이하는 왕이 게송으로 찬탄한 것이다. 마지막의 “부처님께서 도과道果를 증득한 모든” 이하는 여래께서 인가하신 것이다.

⑴ 여래의 대답
두 가지 질문에 답한 곳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앞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아울러 이타행에 대해서도 대답한 것이다. 나중의 “부처님께 말하였다.” 이하는 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아울러 자리행에 대해서도 대답한 것이다.

① 첫 번째 질문의 대답
전자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주장을 표시하며 간략하게 답한 것이다. 다음의 “선남자여” 이하는 차례대로 자세하게 해석한 것이다.

001_0057_c_01L有三意一行可行者問菩薩自利可
001_0057_c_02L行法二云何行化衆生者問利他行
001_0057_c_03L謂依何地行能化衆生三以何相衆
001_0057_c_04L生可化者問所化生實不實相又解
001_0057_c_05L初問自8)利依何行相故以五忍行答
001_0057_c_06L次問利他依何位行故以十地行
001_0057_c_07L答之後問何相衆生可化故以幻化
001_0057_c_08L見幻化衆生而敎化之至文當
001_0057_c_09L問豈不此品說利他行如何初問
001_0057_c_10L自利行耶答護菩薩行通利自他
001_0057_c_11L勝說故但言敎化

001_0057_c_12L
佛告大王五忍是菩薩法

001_0057_c_13L
釋曰第二如來正答於中有二
001_0057_c_14L答前二問後佛告大王汝先言下
001_0057_c_15L第三問前中有三初正答二問
001_0057_c_16L爾時百萬下王以偈讚後佛告諸得
001_0057_c_17L道下如來述可就答二問於中有
001_0057_c_18L初正答前問9)一答利他後白
001_0057_c_19L佛言下正答後問兼答自利前中
001_0057_c_20L有三初標宗略答次善男子下
001_0057_c_21L「分別菩薩」作「五忍分爲五別菩薩」{甲}「敎」
001_0057_c_22L無「甲」
「辨」作「釋」{甲}「釋」下有「護」{甲}
001_0057_c_23L「正」作「將」{甲}「卽」作「則」{甲}「何」下
001_0057_c_24L有「行」{甲}
「利」下有「行」{甲}「一」無{甲}
001_0057_c_25L「一」疑剩{乙}

001_0058_a_01L마지막의 “중생의 본업이” 이하는 해석하고 나서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다.

가) 간략한 대답
앞의 간략한 대답에서 경문은 다시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처음은 수를 표시하며 간략히 답한 것이다. 다음은 수에 의거해서 이름을 나열한 것이다. 마지막은 오인의 자성에 대해 결론지은 것이다.

㈎ 수의 표시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이하의 결론짓는 경문에서 “모든 불보살이 본래 수행했던 바”라고 한 것에 준해 보면, 지금은 질문에 맞춰 답하였으므로 단지 ‘보살’이라고만 한 것이다.2)

㈏ 이름의 나열

복인伏忍의 상·중·하와 신인信忍의 상·중·하와 순인順忍의 상·중·하와 무생인無生忍의 상·중·하와 적멸인寂滅忍의 상·하3)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수에 의거해서 이름을 나열한 것이다.
십지 이전의 삼현三賢은 아직 무루를 증득하지 못하고 내증內證할 수도 없으며, 단지 번뇌를 조복시켜 제어할 수는 있어도 영원히 끊지는 못하니, 이것을 ‘복伏’이라 한다. ‘인忍’은 인해忍解를 말하니, 그 체는 바로 혜慧이다. ‘복’으로 ‘인’을 표시하였기 때문에 ‘복인’이라 한다. 초지와 제2지와 제3지에서는 무루의 믿음을 얻기 때문에 ‘신인’이라 한다. 제4지와 제5지와 제6지는 무생인에 나아가기 때문에 ‘순인’이라 한다. 제7지와 제8지와 제9지에서는 혜의 마음을 무생無生의 이치 가운데 안주하게 하므로 ‘무생인’이라 한다. 관정보살지灌頂菩薩地4)와 여래지如來地에서는 제일의第一義의 적멸진여寂滅眞如를 관하므로 ‘적멸인’이라 한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 인에 대해 여러 교에서 다르게 설한다.
『보살영락본업경』에 의하면 대략 여섯 가지 종성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습종성習種性, 둘째는 성종성性種性, 셋째는 도종성道種性, 넷째는 성종성聖種性, 다섯째는 등각성等覺性, 여섯째는 묘각성妙覺性이다.5)
그 경의 뜻은, 차례대로 십주十住와 십행十行과 십회향十廻向과 십지十地와 금강심金剛心과 여래지如來地를 말하려는 것이다.6) 자세하게 나누면 42종류 현성이 있으니, 이른바 십해十解(십주)와 십행과 십회향과 십지와 등각과 묘각이다.
『선계경善戒經』과 『유가사지론』 제47권에 의하면 보살지는 열세 가지 주住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종성주種性住이고 둘째는 해행주解行住이며, 십지가 열 개의 주이고 불지佛地가 하나의 주이므로 곧 열세 가지 주라고 한 것이다.7) 이와 같은 문장은 다 진술할 수가 없다.

001_0058_a_01L第廣釋後衆生本業下釋已總結
001_0058_a_02L前略答中文復有三初標數略答
001_0058_a_03L次依數列名後結示自性此卽初也
001_0058_a_04L1)准下結文諸佛菩薩本所修行
001_0058_a_05L隨問答但言菩薩

001_0058_a_06L
伏忍上中下寂滅忍上下

001_0058_a_07L
釋曰第二依數列名謂地前三賢
001_0058_a_08L得無漏不能內證但能伏除而不
001_0058_a_09L永斷名之爲伏忍謂忍解體卽是
001_0058_a_10L以伏標忍名爲伏忍初二三地
001_0058_a_11L得無漏信故名信忍四五六地
001_0058_a_12L無生忍名之爲順七八九地2)安住
001_0058_a_13L慧心無生理中名無生忍灌頂菩薩
001_0058_a_14L及如來地觀第一義寂滅眞如名寂
001_0058_a_15L滅忍然此五忍諸敎不同若依本業
001_0058_a_16L瓔珞經略開六性一習種性二性
001_0058_a_17L種性三道種性四聖種性五等覺
001_0058_a_18L六妙覺性解云彼經意者如次
001_0058_a_19L十住十行十迴向十地金剛心
001_0058_a_20L如來地廣開卽有四十二賢聖所謂
001_0058_a_21L十解十行十迴向十地等覺
001_0058_a_22L依善戒經瑜伽四十七菩薩地
001_0058_a_23L開爲十三住一者種性二者解行
001_0058_a_24L地爲十佛地爲一卽名十三如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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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설하는 세 가지 복인의 지위에 대해 대략 세 가지 해석이 있다.8)
① 한편으로 『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십신을 습종성이라고 하고, 십해를 성종성이라고 하며, 십행을 도종성이라고 한다. 십회향 이상은 견도에 속하니, 경에서 설한 ‘신인信忍’ 등이 그 종성이기 때문이다. 또 다음의 경문에서 “십신十信과 십지十止와 십견심十堅心”이라고 하였기 때문에9) 십신이 습종성임을 알 수 있다.≻
②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경에서 말한 십신은 습종성이고, 십해와 십행은 성종성이며, 십회향은 도종성이다.≻
어떻게 십신이 습종성임을 알 수 있는가?10)
예를 들어 양梁 『섭대승론석』에서는 “ 얼마나 되는 시간 동안 수행해야 십지의 정행正行이 원만해질 수 있는가?”11)라고 하였고, “ 다섯 종류 사람이 있으니, 3아승기겁에 수행이 원만해지거나 혹은 7아승기겁 혹은 33아승기겁이 걸린다.”12)라고 하였다. ‘다섯 종류 사람’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요행인願樂行人은 첫 아승기겁을 채운다. 다음에 세 사람이 있으니, 청정의요행인清淨意樂行人과 유상행인有相行人과 무상행인無相行人이다. 이들은 앞의 여섯 지와 제7지에서 제2아승기겁을 채운다. 이 다음부터 다섯 번째 무공용행인無功用行人은 제3아승기겁을 채운다. 그 『섭대승론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요행인에는 본래 네 종류가 있으니, 즉 십신과 십해와 십행과 십회향을 말한다. 마치 수다원 이전에 네 가지 방편위13)가 있는 것과 같다.”14) 자세하게 설하면 그 논과 같다.
십신의 초심初心은 승기수15)에 들어가니 이치상 습종성의 지위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 따르기 때문에 십해와 십행은 성종성에 속하고 십회향심은 도종성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치에 맞게 알아야 한다.
③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경에서 말한 세 품의 복인은 『보살영락본업경』의 세 종류 복인과 같은 것이다.16)
비록 세 가지 설이 있지만 마지막 설이 바르다.17)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처음의 설과 같다면,

001_0058_b_01L等文不可具述然此所說三伏忍位
001_0058_b_02L略有三釋一本記云十信爲習種性
001_0058_b_03L十解爲性種3)十行爲道種性
001_0058_b_04L迴向已上卽屬見道經說信等爲其
001_0058_b_05L性故又下4)經云十信十止十堅心
001_0058_b_06L故知十信爲習種性一云此經十信
001_0058_b_07L爲習十解十行爲性十迴向爲道
001_0058_b_08L種性如何得知十信爲習解云
001_0058_b_09L梁攝論論曰於幾時中修行十地
001_0058_b_10L正行得圓滿論曰有五人於三僧祗
001_0058_b_11L修行圓滿或七阿僧祇或三十
001_0058_b_12L三阿5)僧祗言五人者一願樂行人
001_0058_b_13L滿初僧祗次有三人謂淸淨意樂行
001_0058_b_14L6)有相行人無相行人於前六地
001_0058_b_15L及第七地滿第二阿僧祇從此已後
001_0058_b_16L第五無功用行人滿第三僧祇彼釋
001_0058_b_17L論云願樂行人自有四種謂十信
001_0058_b_18L十解十行十迴向如須陀洹前有四
001_0058_b_19L方便廣說如彼解云十信初心
001_0058_b_20L僧祇數理應攝在習種性位由斯義
001_0058_b_21L十解十行性種性攝十迴向心
001_0058_b_22L道種性攝如理應知一云此經三
001_0058_b_23L品伏忍如瓔珞經三種伏忍雖有三
001_0058_b_24L後說爲正所以者何若如初說

001_0058_c_01L어째서 경에서 “복인의 성스런 모태는 30인”18이라고 설하겠는가? 마땅히18) 성스런 모태가 되는 사람은 40종류가 있다고 설했어야 한다. 또 『보살영락본업경』에서 ‘현성은 42종류’라고 했던 것과도 어긋나니, 마땅히 현성에 52인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19) 만약 그 다음의 설과 같다면, 두 가지 과실은 이전과 동일하다.20) 또 그 논에서 인용했던 ‘원요위願樂位에 네 종류 사람이 있다’는 문구는 진제眞諦 자신이 검토해 보고는 이 논의 바른 문구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대당大唐 『세친론본』과 『대업본』21)에는 모두 이 문구가 없다. 따라서 세 가지 해석 중에 마지막 설이 바르니, 이것이 여러 성스런 가르침과 잘 맞고 도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 총괄적 결론

이것을 모든 불보살이 닦는 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합니다.

세 번째는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다. 오인五忍이 바로 행해야 될 법이니, 이는 혜慧를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세한 해석

선남자여, 처음으로 상신想信22)을 낸 항하사 같은 중생들이 복인을 수행하여,

이하는 두 번째로 오인을 자세하게 해석한 것이다. 이는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 복인伏忍
복인伏忍을 설한 곳에서는 삼현三賢이 같지 않으므로 다시 세 가지로 구분된다.

㉮ 습종성習種性
이것은 첫 번째로 습종성習種性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방편위를 밝힌 것이다. 둘째는 지위에 들어갔음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는 교화의 힘을 나타낸 것이다. 넷째는 이승을 넘어섰다고 해석한 것이다. 다섯째는 수승한 인(勝因)을 밝힌 것이다.

a. 방편위方便位
이것은 첫 번째로 방편위를 설명한 것이다.
“처음으로 상신想信23)을 낸”이라 한 것은 아직 십주에 들지 못한 십신의 사람이다. 말하자면 처음으로 발심하였지만 아직 이치를 보지 못했으므로 ‘상신’이라고 하였다. 장이 삼장長耳三藏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습종성 이전에는 세 가지 상想을 가지고 발심하니, 즉 가상假想을 일으키는 것과 경상輕想을 일으키는 것과 신상信想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가상을 일으킨다’는 것은 세 종류 힘을 빌리는 것이다.

001_0058_c_01L如何經說伏忍聖胎三十人7)應說
001_0058_c_02L聖胎人有四十又違本業經說賢聖
001_0058_c_03L四十二種應說賢聖有五十二若如
001_0058_c_04L次說二失同前又彼所引願樂位
001_0058_c_05L四種人者眞諦自8)非論正文
001_0058_c_06L由斯大唐世親論本及大業本皆無
001_0058_c_07L此文故三釋中後說爲正順諸聖
001_0058_c_08L不違道理

001_0058_c_09L
名爲諸佛菩薩脩般若波羅蜜

001_0058_c_10L
釋曰第三總結五忍是可行法9)
001_0058_c_11L以慧爲性如經可知

001_0058_c_12L
善男子脩行伏忍

001_0058_c_13L
釋曰自下第二廣釋五忍卽分爲五
001_0058_c_14L就伏忍中三賢不同復分爲三
001_0058_c_15L卽第一釋習種性於中有五一明方
001_0058_c_16L便10)菩薩入位三顯化力四釋超
001_0058_c_17L五彰勝因此卽第一明方便也
001_0058_c_18L初發相信者未入十住十信人也
001_0058_c_19L初發心而未見理名爲想信長耳
001_0058_c_20L三藏云習種性前有三想發心
001_0058_c_21L假想發輕想發信想發假想發者
001_0058_c_22L「准」作「唯」{甲}「安住慧心」作「慧心安住」
001_0058_c_23L{甲}
「性」無{甲}「經」無{甲}「僧」無{甲}
001_0058_c_24L「有」上有「無」{甲}「也」作「耶」{甲}「案」
001_0058_c_25L作「安」{甲}
「心」無{甲}「菩薩」作「辨」{甲}

001_0059_a_01L첫째는 좋은 벗의 힘이니, 즉 선지식을 말한다. 둘째는 행의 힘이니, 즉 율의律儀24)를 수지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법의 힘이니, 즉 공통적인(通) 힘과 개별적인(別) 힘 두 가지를 말한다. 공통적인 힘이란 여래장이고, 개별적인 힘이란 신·〔근·염·정·혜〕 등 오근이다. 이 세 가지 힘이 연이 되어 불보리에 대해서 가상으로 ‘보리’의 상想을 일으키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스스로를 편안하게 하고 남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문들이 ‘파랗지 않은 색의 상(非靑想)’을 ‘파란색의 상(靑想)’으로 가관假觀25)하여 미혹을 대치시키는 것처럼, 이 중에서도 이러하므로 ‘가상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이후에 상과 상이 그치지 않아서 의미를 오히려 알기 어려워지는데, 비유하면 가벼운 털이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그것을 ‘경상輕想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후에 마음의 길(心路)이 더욱 밝아져서 믿음의 구슬(信珠)이 현현하는데 이것을 ‘신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때 곧 십신의 지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처음으로 상신을 냈다’고 한 것이다.≻
“항하사 같은 중생들이”라고 한 것은, 발심한 자는 많아도 지위에 든 자가 적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비유하면 물고기 알이나 암라수 꽃이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매우 적은 것과 같다.”26)라고 하였다.
“복인을 수습하여”라는 것은 십신을 닦는 것이니, 이는 복인의 방편이 된다. 따라서 『보살영락본업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현명문一賢名門이란 처음으로 발심하여 아직 십주에 올라가기 전에 명자名字만 따르는27) 10인의 보살이 있어서 항상 열 가지 마음을 닦는 것이니, 즉 신심信心·정진심精進心·염심念心·정심定心과 〔혜심慧心·불퇴심不退心·회향심迴向心·호심護心·계심戒心과〕 원심願心을 말한다.”28)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십주十住29) 이전에 신상信想30)의 마음으로 행하는 자는 퇴분선근退分善根31)이다. … 만약 일 겁 내지는 십 겁 동안 십신을 수행한다면 십주에 들어갈 수 있다.”32)

b. 지위에 든 자

삼보三寶에 대해 습종성의 열 가지 마음을 내니, 즉 신심信心과 정진심精進心과 염심念心과 혜심慧心과 정심定心과 시심施心과 계심戒心과 호심護心과 원심願心과 회향심迴向心입니다.

두 번째는 지위에 들어간 자를 밝힌 것이다. 삼보의 복전에 대해 열 종류 마음을 낸 것이다. 열 종류 마음 중에서 앞의 다섯 개는 자리이고, 나중의 다섯 개는 이타이다. 앞의 다섯 가지 마음은 신근信根 등의 오근이다. 뒤의 다섯 가지 마음이란, 첫째는 보시이고, 둘째는 계이며, 셋째는 삼보를 수호하는 것이다. 넷째로 뛰어난 과를 구하는 것을 원심이라 하며, 다섯째로 회심하여 보리를 구하는 것을 회향심이라 한다.

001_0059_a_01L藉三種力一善友力謂善知識
001_0059_a_02L行力謂受律1)三法力謂通別兩
001_0059_a_03L2)通謂如來藏別謂信等五根
001_0059_a_04L此三力於佛菩提假起菩提想
001_0059_a_05L以自安安他如聲聞假觀非3)靑靑想
001_0059_a_06L而能治惑此中4)乖爾名假想發
001_0059_a_07L後想想不已5)當難識譬如輕毛
001_0059_a_08L無所倚著名輕想發此後心路轉明
001_0059_a_09L信珠顯現名信想發卽入十信位
001_0059_a_10L名初發6)想信也恒河沙衆生者
001_0059_a_11L發心者多入位者小是故經云譬之
001_0059_a_12L魚子菴羅樹華7)果甚小修習伏
001_0059_a_13L忍者卽修十信爲伏忍方便故瓔
001_0059_a_14L珞經說一賢名門謂初發心未上
001_0059_a_15L住前有十恒名字菩薩常修十心
001_0059_a_16L信進念定及至願心又曰十信以前
001_0059_a_17L想心中行者是退分善根若一劫至
001_0059_a_18L十劫修行十信得入十住

001_0059_a_19L
於三寶中迴向心

001_0059_a_20L
釋曰第二正辨入位於三寶田
001_0059_a_21L十種心8)就十心中前五自利後五
001_0059_a_22L利他前五心者信等五根後五心
001_0059_a_23L一施二戒三護三寶四求勝果
001_0059_a_24L名爲願心五迴求菩提名迴向心

001_0059_b_01L
『보살영락본업경』과 『화엄경』 등에서 설한 십주는 이 『인왕경』과는 차이가 나는데, 이에 어떤 뜻이 있는가? 거기에서 말한 십주란, 첫째는 발심주發心住이고 둘째는 치지주治地住33)이며 셋째는 수행주修行住이고 넷째는 생귀주生貴住이며 다섯째는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이고 여섯째는 정심주正心住이며 일곱째는 불퇴주不退住이고 여덟째는 동진주童眞住이며 아홉째는 법왕자주法王子住이고 열째는 관정주灌頂住이다.34)
예로부터 전해 오길, 십주에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특수한(別相) 십주이니,35) 예를 들어 『보살영락본업경』에서 설한 ‘발심주’ 등을 말한다. 둘째는 공통된(通相) 십주이니,36) 〔이 『인왕경』에서처럼〕 ‘신심’ 등을 십주의 체로 삼는 것을 말한다. 모든 계위에서 다 십신의 마음을 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살영락본업경』에서도 초지보살은 백법명문百法明門을 닦으니 이른바 십신에 각기 열 가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백법이 된다고 하였다.37) 지금 이 『인왕경』은 공통된 십주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니, 따라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c. 교화의 힘

이는 보살이 조금이나마 중생을 교화할 수 있게 된 것이므로

세 번째는 그의 교화의 힘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십주보살은 동륜왕銅輪王이 되어 두 천하인 남방·서방의 두 국토에서 왕이 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少分) 중생을 교화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38)

d. 이승의 지위를 넘어섬

이미 이승의 모든 선지善地를 넘어선 것이니,

네 번째는 이승의 지위를 넘어섰다고 해석한 것이다.39)

e. 승인勝因을 성취함

모든 불보살은 이 열 가지 마음을 키우고 길러서 성스런 모태(聖胎)로 삼습니다.

다섯 번째는 수승한 인(勝因)을 성취했음을 밝힌 것이다. 즉 불보살들이 행자의 열 가지 마음을 키우고 길러서 성인의 모태를 성취한다는 것이다.

㉯ 성종성性種性

그 다음에 선남자여,40) 간혜乾慧의 성종성性種性을 일으키니, 이에 열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어떤 판본에는 “그 다음에 간혜지干慧地41)의 성종성을 일으키니 이에 열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우선 앞의 판본에 의거하겠다.

이하는 두 번째로 성性종성을 설명한 것이다. 경문은 네 가지로 구별된다.

001_0059_b_01L瓔珞經及華嚴等所說十住與此
001_0059_b_02L經異有何意耶9)後十住者一發心
001_0059_b_03L二持地住三修行住四生貴住
001_0059_b_04L五方便具足住六正心住七不退住
001_0059_b_05L八童眞住九法王子住十灌頂住
001_0059_b_06L舊來相傳10)住二種一者別相
001_0059_b_07L十住如瓔珞經發心住等二者通相
001_0059_b_08L十住謂信心等以爲十住體諸位
001_0059_b_09L皆行十信心故是故本業經中初地
001_0059_b_10L菩薩百法明門所謂十信各有十心
001_0059_b_11L卽百法也今此經中依通相說故不
001_0059_b_12L相違

001_0059_b_13L
是爲菩薩化衆11)

001_0059_b_14L
釋曰第三顯其化力謂十住菩薩
001_0059_b_15L銅輪王王二天下南西二方故言
001_0059_b_16L小分化生也

001_0059_b_17L
12)已超過二乘一切善地

001_0059_b_18L
釋曰第四釋超二乘地

001_0059_b_19L
一切諸佛爲聖胎13)

001_0059_b_20L
釋曰第五彰成勝因14)諸菩薩長
001_0059_b_21L義行者十心令成聖胎故

001_0059_b_22L
復次善男子有十心或有本云次第起于
慧地性種性有十心
001_0059_b_23L且依
15)

001_0059_b_24L
釋曰自下第二明性種性文別有四

001_0059_c_01L첫째는 지위에 들었음을 밝힌 것이고, 둘째는 지위의 체를 나타낸 것이며, 셋째는 섭화攝化에 대해 설명한 것이고, 넷째는 과실을 떠났다고 해석한 것이다.

a. 지위에 듦
이것은 지위에 들었음을 밝힌 것이다.
세 가지 복인伏忍 중에서 두 번째 지위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다음에(復次)’라고 하였다. 세 가지 중에 두 번째를 ‘중품의 복인’이라 한다.
이전의 문혜聞慧와 인접해서 생겨나는 것이 곧 사思심소인데, 이것은 선정의 물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메마른 지혜(乾慧)’라고 하였으니 즉 사혜思慧에 해당한다. 〔어떤 판본에는〕 ‘간干’이라고 해 놓았는데, 이 글자는 잘못된 것이다.42) 따라서 『보살영락본업경』에는 ‘여섯 가지 종성이 있다’고 설하면서 또한 ‘여섯 가지 혜慧’라고 하였다. ‘여섯 가지 종성’이란 이전에 인용했던 것처럼, 습종성과 성性종성과 도종성과 성聖종성과 등각성과 묘각성이고, ‘여섯 가지 혜’란 문혜聞慧·사혜思慧·수혜修慧·무상혜無相慧·조적혜照寂慧43)·적조혜寂照慧이다. 따라서 간혜干慧가 곧 사혜임을 알 수 있다. 훈습해서 이미 종성이 이루어진 것을 성性종성이라고 한다.
“열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라는 것은 그 수를 총괄해서 표명한 것이다.
『선계경』 등에서는 습종성이 뒤이고 성性종성이 앞인데 어째서 이 『인왕경』에서는 습종성이 앞이고 성종성이 뒤인가?
『유가사지론』 등의 설처럼 제8식을 건립하고 현행과 종자의 차별을 분별한 것이니, 종자는 성性이고 현행은 습習이다. 따라서 그 『선계경』에서는 앞은 성종성이고 뒤가 습종성이라고 설한 것이다. 지금 이 『인왕경』과 『보살영락본업경』에서는 제8식을 설하지 않았으니,

001_0059_c_01L一明入位二顯位體三辨攝化
001_0059_c_02L釋離過此明入位於三忍中居第二
001_0059_c_03L故言復次三中第二名中伏忍
001_0059_c_04L與前聞慧隣接而生卽是思數
001_0059_c_05L依定水故名乾慧卽思慧也16)
001_0059_c_06L17)干者此字謬也故瓔珞經說有六
001_0059_c_07L亦名六慧言六性者如前所引
001_0059_c_08L習種性性種性道種性聖種性
001_0059_c_09L覺性妙覺性言六慧者聞慧思慧
001_0059_c_10L修慧18)照寂19)名性慧寂照慧20)故知
001_0059_c_11L干慧卽思慧也習已成性名性種
001_0059_c_12L有十心者總標其數問善戒經
001_0059_c_13L習後性前何故此經習前性後
001_0059_c_14L21)瑜伽等說立第八識分別現行
001_0059_c_15L種子差別種子爲性現行爲習
001_0059_c_16L彼經22)先性後習今此仁王本業
001_0059_c_17L「儀」下有「門」{甲}「力」作「因」{甲}「靑」
001_0059_c_18L下異有「想想」{乙}
「乖」作「亦」{甲}「當」
001_0059_c_19L作「尙」{甲}
「想」異作「相」{乙}果作菓{甲}
001_0059_c_20L「就」作「然」{甲}「後」作「彼」{甲}ㆍ「後」作
001_0059_c_21L「彼」{乙}
「住」下有「有」{甲}「生」下有「巳」
001_0059_c_22L{甲}
「已」無{甲}「也」無{甲}「諸」下有
001_0059_c_23L「佛」{甲}
「本」下有「也」{甲}「言」作「云」{甲}
001_0059_c_24L「干」下有「慧」{甲}「照寂名性慧」作「無相慧
001_0059_c_25L昭寂慧」{甲}
「名性」疑剩{乙}「故」下有
001_0059_c_26L「知」{甲}
「瑜伽」作「善戒經」{甲}「說」作
001_0059_c_27L「論」{甲}

001_0060_a_01L오직 현행일 뿐 종자는 아니므로 처음 일어난 것을 ‘습’이라 하였고 훈습해서 ‘성’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경과 이 경의 설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b. 지위의 체

이른바 네 가지 의지意止 즉 신身·수受·심心·법法의 부정不淨·고苦·무상無常·무아無我와

두 번째는 지위의 체성을 나타낸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네 가지 의지意止, 즉 사념처四念處를 밝힌 것이다. 다음은 세 가지 의지, 즉 삼선근三善根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은 세 가지 의지, 즉 삼세의 인과에 대한 인(三世因果忍)을 밝힌 것이다.

a) 사의지四意止
“네 가지 의지”라고 한 것은 혜慧를 체로 삼는 것이다. ‘의지意止’라고 했는데, ‘의意’는 심왕心王이니 혜의 힘으로 인해 마음이 네 종류 경계에 머물기(止住) 때문에 ‘의지’라고 한 것이다. “신·수·심·법”이란 관찰되는 경계를 밝힌 것이다. “부정·고·무상·무아”라는 것은 네 가지 관으로 네 가지 전도를 제거함을 밝힌 것이다. 이른바 몸이 부정함을 관하여 ‘몸이 깨끗하다’는 전도된 생각을 제거하고, 감각은 고苦임을 관하여 ‘감각은 즐겁다’는 전도된 생각을 제거하며, 마음이 무상함을 관하여 ‘마음이 영원하다’는 전도된 생각을 제거하고, 법에 아가 없음을 관하여 ‘법에 아가 있다’는 전도된 생각을 제거한다.

b) 삼선근三善根

세 가지 의지 즉 세 가지 선근인 자慈·시施·혜慧와,

두 번째는 세 가지 선근으로 진瞋·탐貪·치癡를 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 종류 선근이 마음을 세 종류 경계에 머물도록 하기 때문에 ‘세 가지 의지’라고 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자慈’는 무진無瞋선근이고, ‘시施’는 무탐無貪선근이며, ‘혜慧’는 무치無癡선근이니, 그 순서대로 진과 탐과 치를 제거한다. 살바다종의 주장은 이상과 같다.
이제 대승에 의하면 본래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편에서는 살바다종과 동일하게 무치선근은 혜를 체로 삼는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혜를 떠나서 그밖에 별도로 ‘무치’가 있다고 하니, 예를 들어 『성유식론』 등의 설과 같다.44) 지금 이 경문에서는 살바다의 주장과 동일하게 혜를 체로 삼은 것이다.

c) 삼세인과인三世因果忍

세 가지 의지 이른바 삼세 중에 과거의 원인에 대한 인(過去因忍), 현재의 인과에 대한 인(現在因果忍), 미래의 결과에 대한 인(未來果忍)입니다.

001_0060_a_01L經等不說第八唯現非種初起名習
001_0060_a_02L習以成性故彼此說互不相違

001_0060_a_03L
所謂四意止無我也

001_0060_a_04L
釋曰第二顯位體性文別有三
001_0060_a_05L明四意止卽四念處次明三意止
001_0060_a_06L1)卽三善根後明三意止謂三世因
001_0060_a_07L果忍言四意止者用慧爲體而言
001_0060_a_08L意止者意謂心王由慧力故令心
001_0060_a_09L止住四種境中故名意止身受心法
001_0060_a_10L辨所觀境也言不淨苦無常無我
001_0060_a_11L2)正明四觀除四顚倒所謂觀身
001_0060_a_12L不淨能除淨倒觀受是苦能除樂
001_0060_a_13L觀心無常能除常倒觀法無我
001_0060_a_14L能除我倒

001_0060_a_15L
三意止三善根慈施慧也

001_0060_a_16L
釋曰第二三善根斷瞋貪痴此明三
001_0060_a_17L種善根令心止住三種境故名三意
001_0060_a_18L慈是無瞋3)無貪慧是無痴
001_0060_a_19L其次第除瞋貪痴薩婆多宗義如上
001_0060_a_20L今依大乘自有兩釋一云同薩婆
001_0060_a_21L無痴善根以慧爲體一云離慧
001_0060_a_22L以外別有無痴如成唯識等今此
001_0060_a_23L經文同薩婆多用慧爲體

001_0060_a_24L
三意止4)未來果忍也

001_0060_b_01L
세 번째는 삼세의 인과를 소연으로 삼는 인忍을 밝힌 것이다. 과거를 소연으로 삼는 경우 〔과거란〕 오직 인因이지 과果는 아니다. 현재를 소연으로 삼는 경우 〔현재란〕 인이기도 하고 과이기도 하니, 전과 후에 대응되기 때문이다.45) 미래를 소연으로 삼는 경우 〔미래란〕 오직 과일 뿐 인은 아니니, 후시後時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혜를 체로 삼으니, 앞의 경계를 인가하여 받아들이기(忍受) 때문에 ‘인忍’이라 한다.

c. 섭화攝化

이 보살도 또한 모든 중생을 교화할 수 있으니,

세 번째는 보살의 섭화를 밝힌 것임을 알아야 한다.

d. 과실을 벗어남

이미 나(我)와 남(人)과 아는 자(知)와 보는 자(見)와 중생 등의 상을 벗어났고, 또 외도의 전도된 상으로 그것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네 번째는 과실을 떠났음을 밝힌 것이다.46)
“나와 남과…벗어났고”라는 것은 아견을 멀리 떠났음을 말한다. 그런데 저 아견에는 많은 명칭들이 있으니, 즉 나와 남과 아는 자와 보는 자와 중생 등이다. 예를 들어 『유가사지론』에는 여덟 종류의 명칭이 나오고, 『대반야경』에는 13가지 명칭이 나온다.
“외도의 전도된 상으로”라고 한 것은 62견 등을 말한다.47)

㉰ 도종성道種性

그 다음에 선남자여, 상품의 복인(上伏忍)을 수행하여 평등한 도에 들어가는 것을 도종성지道種性地라고 합니다.48) 어떤 판본에는 “다시 열 가지 도종성지가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우선49) 앞의 판본에 의거하겠다.

세 번째는 도종성지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네 가지로 구별된다. 첫째는 지위의 총명總名을 표시하였고, 둘째는 지위의 체성을 나타냈으며, 셋째는 섭화의 분제를 밝혔고, 넷째는 뛰어난 작용을 나타낸 것이다.

a. 전체적 이름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초지에 들면 파악하는 자(能取)과 파악되는 것(所取)을 떠난 평등한 성도라고 하는데, 이것이 성도에 대해 원인이 되기 때문에 ‘도종성’이라고 하였다.

b. 지위의 체

그는 이른바 색色·식識·상想·수受·행行을 관하여 계인戒忍·지견인知見忍·정인定忍·혜인慧忍·해탈인解脫忍을 얻고,

두 번째는 지위의 체성을 따로 나타낸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다섯 가지 인忍의 체를 밝혔고, 다음은 세 가지 인의 체를 나타냈으며, 마지막은 두 가지 인의 체를 밝혔으니, 모두 합해서 열 가지 인이 된다. 경문의 뜻을 총괄적으로 해석하자면, 유정이 유전할 때 오온五蘊을 체로 삼아

001_0060_b_01L
釋曰第三緣三世因果忍謂緣過去
001_0060_b_02L唯因非果若緣現在亦因亦果
001_0060_b_03L前後故緣未來5)唯果非因在後
001_0060_b_04L時故此亦是慧忍受前境故名爲
001_0060_b_05L

001_0060_b_06L
是菩薩亦能化一切衆生

001_0060_b_07L
釋曰第三攝化應知

001_0060_b_08L
已能過所不能壞

001_0060_b_09L
釋曰第四離過謂過我人等者
001_0060_b_10L離我見然彼我見有衆多名謂我
001_0060_b_11L人知者見者衆生如瑜伽有八種
001_0060_b_12L依大般若有十三名言外道倒想者
001_0060_b_13L六十二見等

001_0060_b_14L
復次善男子修行6)上伏忍進入平等
001_0060_b_15L名爲道種性地或有本云復有十道
7)十種性地旦依前本

001_0060_b_16L
釋曰第三釋道種性地文別有四
001_0060_b_17L標位總名二出位體性三攝化分齊
001_0060_b_18L四辨勝用此卽初也8)謂入初地
001_0060_b_19L能所取平等聖道此與聖道爲因性
001_0060_b_20L名道種性

001_0060_b_21L
所謂觀色解脫忍

001_0060_b_22L
釋曰第二別出體性文別有三
001_0060_b_23L明五忍次顯三忍後辨二忍合成
001_0060_b_24L十忍總釋意云有情流轉五蘊爲

001_0060_c_01L삼계三界의 처소에서 떠다니는데 그 근본을 찾아보면 이제二諦를 떠나지 않으니, 따라서 열 가지 인이 된다는 것이다.50)
‘인忍’이란 인가하여 이해하는 것(忍解)을 말하니, 그 체는 곧 혜慧이다. 앞의 경문에 나오는 ‘오인’은 과를 따라 이름을 건립한 것이니, 오온을 관하여 오분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뒤의 경문에 나온 ‘오인’은 경계를 따라 이름을 건립한 것이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a) 5인忍의 체
이것은 첫 번째로 오온을 관하여 〔10인 중에〕 앞의 다섯 가지 인忍을 얻었음을 밝힌 것이다.
색온을 관하여 곧 계인戒忍을 얻으니, 표계表戒·무표계無表戒51)는 모두 색온이기 때문이다. 이 경문에 준해보면 표계와 무표계는 모두 색법이다.52)
식온을 관하여 지견인知見忍을 얻으니, 요별의 ‘식識’과 지견의 ‘혜慧’는 의미상으로 서로 따르기 때문이다.
상온을 관하여 정인定忍을 얻으니, 저 가상假想으로 선정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네 가지 무색정無色定이 상想을 따라서 획득되는 경우와 같다.53)
수온을 관하여 혜인을 얻으니, ‘수受’에 의지해서 사선四禪을 건립하고 ‘선禪’에 의지해서 지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수’를 관하여 ‘혜인’을 얻는다고 하였다.54)
‘해탈인’이란 해탈신解脫身이다. 해탈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유위해탈이니 곧 승해勝解에 해당하고, 둘째는 무위해탈이다.55) 여기서는 행온에 속한 번뇌를 끊음으로 인해 단지 행온에 속한 승해만 얻는 것을 ‘해탈인’이라고 했음을 밝힌 것이다. 경계에서 자재한 것을 ‘해탈’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비바사론』과 『불지경론』에서는 모두 ‘승해를 해탈신으로 삼는다’고 설한다.56) 그러므로 행온을 관하여 해탈인을 얻는다고 하였다.
자세하게 분별하면 그 의미는 『별장』과 같다.

001_0060_c_01L流三界處尋其根本不離二諦
001_0060_c_02L故成十忍忍謂忍解9)然卽是慧
001_0060_c_03L10)文五忍從果立名由觀五蘊得五
001_0060_c_04L分法身故後之五忍從境立名
001_0060_c_05L卽可知此卽第一明觀五蘊得前五
001_0060_c_06L11)謂觀色蘊便得戒忍表無表戒
001_0060_c_07L皆色蘊故准此經文表無表戒
001_0060_c_08L是色也觀識蘊得知見忍以了別識
001_0060_c_09L與知見慧義相順故觀想蘊得定忍
001_0060_c_10L以彼假想能入定故如四無色由想
001_0060_c_11L故得觀受蘊得慧忍以依受故
001_0060_c_12L於四禪由依禪故能發12)者慧是故
001_0060_c_13L觀受而得慧忍解脫忍者是解脫
001_0060_c_14L解脫有二種一者有爲解脫卽是
001_0060_c_15L勝解二者無爲解脫此明由斷行蘊
001_0060_c_16L所攝煩惱偏得行蘊所攝勝解名解
001_0060_c_17L脫忍於境自在名解脫故是故婆
001_0060_c_18L及佛地論皆說勝解爲解脫身
001_0060_c_19L13)觀行蘊得解脫忍若廣分別
001_0060_c_20L如別章

001_0060_c_21L「卽」作「有」{甲}「正」上有「者」{甲}「無」
001_0060_c_22L上有「是」{甲}
「未」上有「至」{甲}「世」無{甲}
001_0060_c_23L「上」無{甲}「十」無{甲}「謂」無{甲}「然」
001_0060_c_24L作「體」{甲}
「文」作「之」{甲}「謂」上有「表」
001_0060_c_25L{甲}
「者」作「智」{甲}「觀」上有「由」{甲}

001_0061_a_01L
b) 3인의 체

삼계의 인과를 관하여 공인空忍·무원인無願忍·무상인無相忍을 얻습니다.

두 번째는 세 가지 인을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삼계의 고苦를 관하여 공인空忍을 얻으니, 고과苦果 상에서 ‘공’의 뜻을 건립했기 때문이다.57) 삼계의 인因을 관하여 무원인無願忍을 얻으니, 번뇌와 업이 집제集諦라는 인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과를 통틀어 관하여 무상인無相忍을 얻으니, 인과의 공함을 증득하여 ‘모습 없음’을 증득하기 때문이다.
또는 욕계의 인과를 관하여 무원인을 얻으니, 〔그 인과는〕 극히 싫어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색계의 인과를 관하여 공인을 얻으니, 그 인과는 거친 법(麤法)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욕계와 색계를 관함에 의해 무상인을 얻으니, 십상十相58)의 법들이 대부분 다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해석들을 모두 다 진술할 수가 없다.

c) 2인의 체

이제의 허虛·실實을 관하되, 일체법의 무상함을 〔관하여〕 무상인無常忍을 〔얻는다〕 하고 일체법의 공함을 〔관하여〕 무생인無生忍을 얻는다 합니다.

세 번째는 이제인二諦忍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속제를 관하여 무상인을 얻고, 진제를 관하여 무생인을 얻으니, 이것은 유위와 무위에 의거해서 이제를 해석한 것이다.

c. 섭화의 분제

이 보살은 열 가지 견고한 마음(十堅心)으로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또한 네 천하를 교화하면서

세 번째는 섭화의 분제를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도종성은 금륜왕金輪王이 되어 네 천하를 교화한다는 것이다.59)
또는 “이 보살은 열 가지 견고한 마음으로”라고 한 것은 앞의 열 가지 인忍을 결론지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d. 뛰어난 작용

모든 중생에게 선근을 생기게 합니다.

네 번째는 그의 뛰어난 작용을 나타낸 것이니, 의미가 분명하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 신인信忍

또 신인信忍의 보살은 이른바 선善·달達·명明 중에서 행하는 자로서

둘째는 신인을 밝힌 것이다. 경문은 네 가지로 구별된다. 첫째는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둘째는 장애를 제거했음을 밝힌 것이다. 셋째는 섭화의 분제를 밝힌 것이다. 넷째는 행을 발하는 종자를 밝힌 것이다.

㉮ 이름과 지위
이것은 첫 번째로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신인信忍”이란 이름을 표시한 것이니, 무루의 믿음으로 삼보 등을 믿기 때문에 ‘신인’이라 한다.

001_0061_a_01L
觀三界因1)2)無相忍

001_0061_a_02L
釋曰第二釋三忍謂觀三界苦得空
001_0061_a_03L於苦果上立空義故於三界因
001_0061_a_04L無願忍以煩惱業3)爲諦因故通觀
001_0061_a_05L因果得無相忍證因果空證無相
001_0061_a_06L又解觀欲界因果得無願4)極可
001_0061_a_07L厭故觀色因果以得空離麁法故
001_0061_a_08L欲色得無相諸十相法多分盡故
001_0061_a_09L是等釋不可具述

001_0061_a_10L
觀二諦虛實得無生忍

001_0061_a_11L
釋曰第三明二諦忍謂觀俗得無常
001_0061_a_12L觀眞得無生忍此約有爲無爲
001_0061_a_13L釋二諦

001_0061_a_14L
5)菩薩6)四天下

001_0061_a_15L
釋曰第三攝化分齊謂道種性
001_0061_a_16L金輪王化四天下又解是菩薩十
001_0061_a_17L堅心者結上十忍

001_0061_a_18L
生一切衆生善根

001_0061_a_19L
釋曰第四辨其勝用義顯可知

001_0061_a_20L
又信忍菩薩所謂善達7)明行者

001_0061_a_21L
釋曰第二明信忍文別有四一標
001_0061_a_22L名配位二明除障三明攝化分齊
001_0061_a_23L四明發行種子8)卽第一標名配位
001_0061_a_24L言信忍者標名以無漏信信三寶

001_0061_b_01L“선善·달達·명明 중에서 행하는 자”라고 한 것은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니, 이하의 경문에서 설한 것과 같다. ‘선’은 선각善覺을 말하니, 초지보살은 두 가지 공을 현증現證하기 때문에 ‘선각’이라고 한다. ‘달’은 이달離達을 말하니, 이른바 제2지에서 계를 범하는 허물을 떠나고 진·속의 경계에 통달하기 때문에 ‘이달’이라고 한다. ‘명’은 명혜明慧를 말하니, 제3지에서 〔문혜·사혜·수혜라는〕 삼혜의 빛으로 제법을 밝히기 때문에 ‘명혜’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지地의 오온 상에서 가립된 사람을 “행하는 자(行者)”라고 하였다.

㉯ 장애의 제거

삼계의 색번뇌의 속박을 끊고,

두 번째는 장애를 제거했음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이 장애의 제거에 대해 여러 교에서 다르게 설한다.
진실한 정리正理에 의하면, 예를 들어 『성유식론』 제10권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모든 장애는 두 가지 장애(二障)60)에 속하는 것이다. 번뇌장煩惱障 중에서, 견도소단見道所斷의 종자를 극희지極喜地인 견도의 최초에 끊고, 그 장애의 현기現起를 십지 이전에 이미 조복시켰다. 수도소단修道所斷의 종자를 금강유정金剛喩定이 현전할 때 모두 단박에 끊고, 그 장애의 현기를 십지 이전에 점차로 조복시키다가 초지 이상에서는 단박에 다 조복시켜서 영원히 현행하지 않도록 한다. 마치 아라한들처럼 고의적인 힘으로 이전의 일곱 개 지에서 그것을 잠시 현기시키더라도 과실이 되지 않는데, 팔지 이상에서는 끝내 현행하지 않는다.61)
소지장所知障 중에서, 견도소단의 종자를 극희지인 견도의 최초에 끊고, 그 장애의 현기를 십지 이전에 이미 조복시켰다. 수도소단의 종자를 십지 중에서 점차로 단멸시키다가 금강유정이 현전할 때 비로소 영원히 다 끊고, 그 장애의 현기를 십지 이전에 점차로 조복시키다가 십지에 이르러 비로소 영원히 다 끊는다. 팔지 이상에서는 육식과 함께 하는 것은 다시 현행하지 않으니, 무루의 관심觀心과 과果가 상속하여 그것과는 거스르기 때문이다.62) 제7식과 함께 하는 것은

001_0061_b_01L9)故名信忍言善達明中行者
001_0061_b_02L位如下經說善謂善覺初地菩薩
001_0061_b_03L證二空故名善覺達卽離達所謂
001_0061_b_04L二地離犯戒垢達眞俗境故名離達
001_0061_b_05L10)卽明慧謂第三地以三慧光11)
001_0061_b_06L諸法故名明慧此上三地五蘊假
001_0061_b_07L名爲行者

001_0061_b_08L
斷三界色煩惱縛

001_0061_b_09L
釋曰第二明除障也然此除障
001_0061_b_10L敎不同就實正理如成唯識第十卷
001_0061_b_11L謂一切障二障所12)煩惱障中
001_0061_b_12L見所斷種於極喜地見道初斷彼障
001_0061_b_13L現起地前已伏修所斷種金剛喩
001_0061_b_14L定現在前時一切頓斷彼障現起
001_0061_b_15L前漸伏初地已上能13)頓盡令永不
001_0061_b_16L如阿羅漢由故意力前七地中
001_0061_b_17L雖暫現起而不爲失八地已上
001_0061_b_18L竟不行所知障中見所14)斷種於極
001_0061_b_19L喜地見道初斷彼障現起地前已伏
001_0061_b_20L修所斷種於十地中漸次斷滅
001_0061_b_21L剛喩定現在前時方永斷盡彼障現
001_0061_b_22L地前漸伏乃至十地方永斷盡
001_0061_b_23L八地已上六識俱者不復現行
001_0061_b_24L漏觀心及果相續能違彼故第七

001_0061_c_01L여전히 현행할 수 있고, 법공法空의 지智·과果가 일어나는 지위에서 비로소 조복된다.63) 앞의 다섯 가지 전식轉識은 설사 아직 전의轉依64)하지 못했더라도 무루로써 조복되었기 때문에 장애를 현기시키지 않는다.65)
비록 수도의 십지에서 번뇌장의 종자를 모두 단멸시키지 못하더라도 그 추중麤重66)은 또한 점차로 단멸시킨다. 이로 인해서, ‘이장의 추중 하나하나를 모두 세 가지 주住에서 끊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한 것이다.67) 비록 모든 주에서 모두 추중을 끊기는 하지만 세 가지 지위에서 두드러지기 때문에 편중해서 설한 것이다.68)
그런데 이 경문의 경우, 우선 이 「교화품」에 의하면 십지 이전의 복인에 대해서는 ‘조복시키되 끊지는 않았다’고 하였고, 신인의 세 가지 지위에 대해서는 ‘삼계의 색번뇌의 속박을 끊었다’고 하였으며, 순인의 세 가지 지위에 대해서는 ‘삼계의 심번뇌 등을 끊었다’고 하였고, 무생인의 지위에 대해서는 또한 ‘삼계의 심습기·색습기 등을 끊었다’고 하였으며, 적멸인寂滅忍에 이르러 ‘불보살이 삼계의 심습기를 끊는다’고 하였다.
이 다음의 경문은 「수지품受持品」에서 설해진다. 초지에서 탐貪을 끊고, 제2지에서 진瞋을 끊으며, 제3지에서 치癡를 끊고, 제4지에서 견見을 끊으며, 제5지에서 의疑를 끊고, 제6지에서 삼계의 집인集因·집업集業의 모든 번뇌를 끊으며, 제7지에서 삼계의 습인習因·업과業果를 끊고, 제8지에서 마음과 마음의 적멸함을 관하며, 제9지에서 마음과 마음의 상을 소멸시키고, 제10지에서는 일체법해탈을 증득하여 금강대金剛臺에 머문다고 하는데, 이것은 모든 지地의 우열의 차별을 나타내기 위해

001_0061_c_01L俱者猶可現行法空智果起位方伏
001_0061_c_02L前五轉識設未轉依無漏伏故
001_0061_c_03L不現起雖於修道十地位中皆不斷
001_0061_c_04L15)滅煩惱障16)種而彼麁重17)熏漸斷滅
001_0061_c_05L由斯故說二障麁重一一皆有三住
001_0061_c_06L斷義雖諸住中皆斷麁重而三位顯
001_0061_c_07L是故偏說然此經文且依此品
001_0061_c_08L前伏忍18)而伏非斷信忍三地說斷
001_0061_c_09L三界色煩惱縛順忍三地能斷三界
001_0061_c_10L心等煩惱無生忍地19)釋三界心
001_0061_c_11L色等習至寂滅忍佛菩薩斷三界心
001_0061_c_12L20)卽此下文受持品說初地斷貪
001_0061_c_13L二地斷瞋三地斷癡四地斷見五地
001_0061_c_14L斷疑六地斷三界集因集21)七地
001_0061_c_15L斷三界習因業果八地觀心心寂滅
001_0061_c_16L九地22)滅心心相十地證一切法解脫
001_0061_c_17L住金剛臺者爲顯諸地勝劣差別
001_0061_c_18L「果」下有「空忍無忍」{甲}「至」無{甲}「爲」
001_0061_c_19L下有「集」{甲}
「極」上有「忍」{甲}「菩薩」下
001_0061_c_20L有「十堅心作轉輪王亦能化」{甲}

001_0061_c_21L「明」下有「中」{甲}
「即」作「有」{甲}「苦」作
001_0061_c_22L「等」{甲}ㆍ「苦」疑「戒」{乙}
「即」作「有」{甲}
001_0061_c_23L「明」下有「解」{甲}
「攝」無{甲}「頓」下有「伏」
001_0061_c_24L{甲}
「斷」作「顯」{甲}「滅」無{甲}「種」無
001_0061_c_25L{甲}
「熏」作「亦」{甲}「而伏」作「伏而」{甲}
001_0061_c_26L「釋」作「斷」{甲}ㆍ「釋」疑「斷」{乙}「即」作
001_0061_c_27L「有」
「果」作「業」{甲}「滅」疑「觀」{乙}

001_0062_a_01L장애의 추중에 의거해서 탐·진 등을 〔끊는다고〕 설한 것이지, 진실한 의미에 의거해서 말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진실한 정리正理에 따르면 앞에서 설한 것처럼, 번뇌장 중에서는 견도소단의 종자를 견도위에서 영원히 끊고 수도소단의 종자를 반드시 금강유정에 이르러서야 한 찰나에 비로소 단박에 끊을 수 있는 것이다. 소지장의 경우는 지와 지마다 따로 끊는다. 따라서 번뇌장 중에 ‘지위 지위마다 끊는다’고 한 것은 추중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한 색번뇌·심번뇌에 대해 본래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편에서는 경계를 따라 이름을 붙인 것이니, ‘색’을 소연으로 삼는 것은 색번뇌라고 하였고 ‘심’을 소연으로 삼는 것은 심번뇌라고 했다고 한다. 혹은 비유를 따라 이름을 붙인 것일 수도 있으니, 색과 심을 서로 대비해 보면 색은 거칠고 심은 미세하기 때문에 거친 미혹은 색번뇌라고 하였고 미세한 미혹은 심번뇌라고 했다고 한다.
‘색·심의 습기(色心習)’라고 했는데, 습기 중에서 거친 습기는 다만 ‘색·심의 번뇌’라고 하고 미세한 습기는 ‘색·심의 습기’라고 한다.
습기는 무엇을 체로 삼는가?
예로부터 전해 오는 설은 다음과 같다. 이장二障의 종자 중에서 거칠어서 끊기 쉬운 것을 ‘정사正使’라고 하고, 미세해서 끊기 어려운 것을 ‘습기習氣’라고 한다. 자은 삼장은 『유가사지론』 등에 의거해서 습기를 설하면서 무감임성無堪任性69)을 또한 추중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이장의 종자의 힘으로 인해 이끌려 나온 유루의 오온상에는 무감임성이 있는데, 그것은 소의인 오온과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것이다. 별개의 체성이 없기 때문에 ‘다르지 않다’고 하고, 끊은 것과 끊지 않은 것이 차별되기 때문에 ‘동일하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이 추중은 체성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끊음으로써〕 별도로 택멸무위를 획득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끊는 계위는 다음과 같다. 우선 번뇌장 중에서70) 견도소단의 종자는 오직 하나의 품이고, 그로 인해 인발되어진 습기는 한량없는 품이 있다. 이승二乘에 의거해 말하면, 7방편에서부터 점차로 습기를 끊다가 아라한에 이르러

001_0062_a_01L障麁重說貪瞋等非就實義所以
001_0062_a_02L1)者何就實正理如前所說煩惱障
001_0062_a_03L見所斷種見位永斷修所2)
001_0062_a_04L要至金剛一刹那中方能頓斷
001_0062_a_05L所知障地地別斷故知煩惱障中
001_0062_a_06L位斷者就麁重說然此所說色心煩
001_0062_a_07L自有兩釋一云從境得名若緣
001_0062_a_08L色者名色煩惱若緣心者名心煩
001_0062_a_09L或可從喩得名色心相望色麁心
001_0062_a_10L細是故麁惑名色煩惱其細惑者
001_0062_a_11L心煩惱色心習者就習氣中若麁
001_0062_a_12L習氣但言色心煩惱若微細者
001_0062_a_13L色心習3)習氣以何爲體解云
001_0062_a_14L相傳說二障種子若麁易4)名爲
001_0062_a_15L正使細而難5)名爲習氣慈恩
001_0062_a_16L三藏依瑜伽等說6)習氣無堪任性
001_0062_a_17L亦名麁重謂申二障種子力故所引
001_0062_a_18L有漏五蘊上有無堪任性與所依蘊
001_0062_a_19L非一非異無別體性故言非異斷不
001_0062_a_20L斷別故言非一然此麁重無體性故
001_0062_a_21L不能別得7)擇滅8)法無爲9)斷位
001_0062_a_22L且加煩惱障中見所斷種唯有
001_0062_a_23L一品所引習氣有無量品若依二
001_0062_a_24L從七方便漸斷習氣乃至羅漢

001_0062_b_01L무여의열반에 들 때 그 소의를 따라서 〔습기도 함께〕 버려진다. 대승에 회심한 자는 보살의 견도에 이르러 무간도無間道일 때 견도소단의 종자와 그에 의해 인발되어진 습기를 끊고, 해탈도解脫道일 때 비로소 수도소단의 종자를 다 끊을 수 있다. 나아가 보살의 금강심金剛心일 때에 비로소 인발되어진 습기마저 다 끊을 수 있고, 묘각위에 이르면 해탈도에서 비로소 다 끊을 수 있다. 자세하게 분별하면 『성유식기成唯識記』71)와 같다.
그렇다면 어째서 『인왕경』 등에서는 ‘모든 지에서 탐·진 등을 끊는다’고 하였는가? 또 〔『성유식론』에서〕 보살지의 경우 ‘이장의 종자를 세 가지 지위에서 끊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한 것과는 어떻게 회통시켜 해석하겠는가?
앞에서 인용했던 『성유식론』 제10권의 설과 같다. 이런 도리를 따라서, 『보살영락본업경』 상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 것이다. “삼현의 보살은 삼계의 번뇌의 거친 것과 업도業道의 거친 것을 조복시키고, 상속하는 과에서도 또한 거친 것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 견도의 희인喜忍에서는 〔축생·아귀·지옥이라는〕 삼도의 업도를 조복시키고, 이인離忍에서는 인人의 업도를 조복시키며, 명인明忍에서는 여섯 천天의 업도를 조복시킨다. 염인焰忍에서는 모든 견見의 업도를 조복시키며, 승인勝忍에서는 의疑·견見의 업도를 조복시킨다. 현인現忍에서는 인因의 업도를 조복시키고,72) 무생인無生忍에서는 과果의 업도를 조복시키며, 부동인不動忍에서는 색인色因의 업도를 조복시키고, 광인光忍에서는 심인心因의 업도를 조복시킨다. 적멸인寂滅忍에서는 심·색 두 가지 습기의 업도를 조복시키고, 무구인無垢忍에서는 습기의 과도果道를 조복시킨다. ‘습’은 이전에 이미 끊었지만 과를 아직 부숴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불자여, 삼현을 복단伏斷이라 이름하니, 희인 이상에서는 조복시키기도 하고 끊기도 하며, 모든 번뇌에 대한 각인覺忍이 현전할 때 법계 중의 모든 무명을 단박에 남김없이 끊는다.”73) 이것도 모든 지위의 우열의 차이를 나타내고자 하여 그에 맞춰 설한 것이지 진실한 정리正理는 아니다. 설사 그 밖의 교에서 이와 다르게 설하는 경우라고 해도 이에 준해서 생각해야 한다. 자세하게 분별하면 구체적인 것은 『별장』과 같다.

001_0062_b_01L入無餘依隨所依捨若迴心者至菩
001_0062_b_02L薩見道無間道時斷見所斷種所引
001_0062_b_03L習氣解脫道時方能斷盡修所斷種
001_0062_b_04L乃至菩薩金剛心時方能斷盡所引
001_0062_b_05L習氣至妙覺位解脫道中方能斷
001_0062_b_06L若廣分別如成唯識記問若爾
001_0062_b_07L如何此經等云於諸地中斷貪瞋等
001_0062_b_08L又菩薩地說二障種有三位斷
001_0062_b_09L何會釋解云10)上所引成唯識論
001_0062_b_10L第十卷說由此道理本業瓔珞上卷
001_0062_b_11L所說三賢菩薩伏三界煩惱麁業道
001_0062_b_12L麁相續果亦不起麁是見道喜忍
001_0062_b_13L伏三11)道業道離忍伏人中業道
001_0062_b_14L忍伏六天業道焰忍伏諸見業道
001_0062_b_15L忍伏疑見業道光忍伏心因業道
001_0062_b_16L生忍伏果業道不動忍伏色因業道
001_0062_b_17L光忍伏心因業道寂滅忍伏心色二
001_0062_b_18L習業道無垢忍伏習果道習前已斷
001_0062_b_19L而果不敗亡是故佛子三賢名爲伏
001_0062_b_20L喜忍已上亦伏亦12)斷一切煩惱
001_0062_b_21L覺忍現時法界中一切無明頓斷無
001_0062_b_22L亦顯諸位勝劣異故擬宜而說
001_0062_b_23L實正理設有餘敎異此13)亦應准
001_0062_b_24L若廣分別具如別章

001_0062_c_01L
㉰ 섭화의 분제

백 불百佛·천 불千佛·만 불萬佛의 국토에서 교화하면서 백 신百身·천 신千身·만 신萬身의 신통과 한량없는 공덕을 나타냅니다.

두 번째는 섭화의 분제를 밝힌 것이다. 즉 초지는 백 부처님의 국토에, 제2지는 천 부처님의 국토에, 제3지는 만 부처님의 국토에 화신을 나타내니, 세 가지 지의 차별은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또 신통과 한량없는 공덕을 나타내는 것이 차별되니, 즉 초지는 신통으로 백 부처님의 국토에서, 제2지는 천 부처님의 국토에서, 제3지는 만 부처님의 국토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 행을 발하는 종자

그는 항상 열다섯 가지 마음을 우선으로 하니,

네 번째는 행을 발하는 종자를 밝힌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열다섯 가지 마음을 우선으로 한다고 총괄해서 표명한 것이다. 다음은 열다섯 가지 마음을 나열한 것이다. 마지막은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다.

a. 총괄적 표명
이것은 열다섯 가지 마음이 행을 발하는 근본 종자임을 총괄해서 표명한 것이다.

b. 이름의 나열

사섭법四攝法과 사무량심四無量心과 사홍원四弘願과 삼해탈문三解脫門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열다섯 가지 마음을 나열한 것이다. 사섭법 등 네 문의 공덕이 곧 열다섯 가지 마음의 공덕이 되는 것이다.
“사홍원”이란 예를 들어 『보살영락본업경』에서 설한 것처럼, 일체중생이 고제를 건너고 집제를 끊으며 멸제를 증득하고 도제를 닦기를 원하는 것을 ‘네 가지 큰 원’이라고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하면 그 경과 같다.74)

c. 총괄적 결론

이 보살은 선지善地에서어떤 판본에는 ‘선각지善覺地에서부터’라고 되어 있다.살바야에 이르기까지 이 열다섯 가지 마음을 일체행의 근본 종자로 삼습니다.

세 번째로 총괄해서 결론지었음을 알아야 한다.

001_0062_c_01L
能化無量功德

001_0062_c_02L
釋曰第二攝化分齊謂初地百佛國
001_0062_c_03L二地千佛國三地萬佛國所現化身
001_0062_c_04L三地差別准上應知又現神通
001_0062_c_05L量功德14)差別謂初地神15)動百佛
001_0062_c_06L二地千佛國三地萬佛國土也

001_0062_c_07L
常以十五心爲首

001_0062_c_08L
釋曰第四明發行種子文別有三
001_0062_c_09L總標以十五心爲首次列十五心
001_0062_c_10L總結16)卽總標十五心爲發本種

001_0062_c_11L
四攝法三解脫門

001_0062_c_12L
釋曰第二列十五心謂四攝等四門
001_0062_c_13L功德便成十五心功德也17)言弘18)
001_0062_c_14L如瓔珞經說願一切衆生度苦斷集
001_0062_c_15L證滅修道名四弘願具說如彼

001_0062_c_16L
是菩薩從善地或有本云
從善覺地
根本19)種子

001_0062_c_17L
釋曰第三總結應知

001_0062_c_18L「者」無{甲}「斷」作「顯」「習氣」下有「者」
001_0062_c_19L{甲}
「斷」作「顯」{甲}「斷」作「顯」{甲}「習
001_0062_c_20L氣」下有「者」{甲}
「擇」作「釋」{甲}「法」無
001_0062_c_21L{甲}
「斷」作「顯」{甲}「上」作「前」{甲}「道」
001_0062_c_22L作「界」{甲}
「斷」作「顯」{甲}「說」下有「者」
001_0062_c_23L{甲}
「差別」下有「應知」{甲}「通」無{甲}
001_0062_c_24L「卽」作「無」{甲}
「言」下有「四」{甲}「願」下
001_0062_c_25L有「者」{甲}
「種子」下有「者」{甲}

001_0063_a_01L
㈐ 순인順忍

또 순인順忍의 보살은 이른바 견見·승勝·현법現法으로서

세 번째는 순인을 밝힌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다음은 장애를 제거했음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은 섭화의 분제를 나타낸 것이다.

㉮ 이름과 지위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무생인의 관에 수순하기 때문에 “순인”이라 하였다. “견見·승勝·현법現法”이란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견’은 염혜炎慧를 말하니, 즉 제4지에서 도품의 견을 획득했기 때문에 ‘견’이라 한다. ‘승’은 난승難勝이니, 제5지에 해당한다. ‘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중생을 권화할 때 마음에 번뇌의 난(垢難)이 없는 것이다. 둘째는 교화되는 대상이 따르지 않아도 마음에 번뇌의 난이 없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난을 물리치고 난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난승지難勝地’라고 한다. ‘현법’이란 제6현전지現前地에 해당하니, 십이연관十二緣觀이 항상 현전해 있는 것을 ‘현전지’라고 한다.

㉯ 장애의 제거

삼계의 심번뇌 등의 속박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두 번째는 장애를 제거함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이 지위에서는 마음을 소연으로 삼는 번뇌의 속박을 끊으므로 ‘심번뇌의 속박을 끊는다’고 하였다. 혹은 이전 지위의 색번뇌가 거칠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지위의 심번뇌는 미세함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에 ‘심心’에 비유한 것일 수도 있다. ‘등等’이라 한 것은 심소의 번뇌까지 함께 다룬 것이다.

㉰ 섭화의 분제

따라서 하나의 몸을 시방의 불국토에 나타내고 한량없는 불가설의 신통으로 중생을 교화합니다.

세 번째는 섭화의 분제를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실재 몸(實身)을 시방의 불국토에 나타내고 무량한 신통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한다는 것이다. 혹은 시방의 국토에 각기 하나의 화신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에 ‘하나의 몸’이라 했을 수도 있다.
어째서 신인信忍에서는 백 개의 몸 등을 나타냈는데 이 순인順忍에서는 다만 ‘하나의 몸’이라 했는가?
신인에서는 그의 화작해 낸 몸(化身)을 밝혔기 때문에 여러 개의 몸이라고 설했지만 이 순인에서는 실재의 몸(實身)을 설했기 때문에 ‘하나의 몸’이라 한 것이다.
보살의 몸은 일시에 시방에 도달할 수 있는가, 아닌가?
두 가지 설이 있다.

001_0063_a_01L
又順忍菩薩1)2)現法

001_0063_a_02L
釋曰第三順忍文別有三初標名
001_0063_a_03L配位次明除障後顯攝化分齊
001_0063_a_04L3)卽初也順無生忍觀名爲順忍
001_0063_a_05L見勝現法者配位見謂炎慧卽第四
001_0063_a_06L得道品見故名爲見4)卽難勝
001_0063_a_07L是第五地難有二5)義一勸6)難化衆
001_0063_a_08L心無7)垢難二所化不從心無垢
001_0063_a_09L能退二難於難得勝名難勝地
001_0063_a_10L言現法者卽是第六現前地十二緣
001_0063_a_11L觀恒現在前名現前地

001_0063_a_12L
8)9)10)煩惱縛

001_0063_a_13L
釋曰第二明其除障謂此位中
001_0063_a_14L緣心煩惱繫縛名心煩惱縛或望前
001_0063_a_15L位色煩惱麁顯此位中心煩惱細
001_0063_a_16L喩於心所言等者等心所也

001_0063_a_17L
故現一身化衆生

001_0063_a_18L
釋曰第三11)攝化分齊謂現一實身
001_0063_a_19L於十方佛國中現無量通化衆生或
001_0063_a_20L可於十方國12)各現一化身化衆生
001_0063_a_21L言一身問何故信忍現百身等
001_0063_a_22L順忍中但言一身解云信忍明其
001_0063_a_23L化身故說多身此說實身故說一
001_0063_a_24L問菩薩身一時到十方不答有

001_0063_b_01L한편에서는 도달할 수 있다고 하니, 그 몸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도달할 수 없다고 하니, 실재의 몸이 여러 곳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두 가지 해석이 있지만 우선 뒤의 설에 의거하였다.

㈑ 무생인無生忍

또 무생인無生忍의 보살은 이른바 원遠·부동不動·관혜觀慧로서석

네 번째는 무생인을 설명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다음은 장애를 제거함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은 섭화의 분제를 밝힌 것이다.

㉮ 이름과 지위
“무생인”이라 한 것에 대해 여러 설이 다르다. 어떤 이는 변계소집성을 무생無生이라 한다고 설하니, 그 자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변계소집성과 원성실성을 모두 무생이라고 했다고 설하니, 예를 들어 『해심밀경』과 『유가사지론』의 설과 같다. 혹은 삼성을 모두 무생이라 했다고 설한다. 말하자면 본성상으로 생함이 없고, 자연적으로 생함도 없으며, 혹惑·고苦가 생함이 없으니,75) 예를 들어 『성유식론』 등에서 설한 것과 같다.76)
“이른바 원遠·부동不動·관혜觀慧로서”라는 것은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제7지를 원행遠行이라고 하니, 공용심功用心의 최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제8지를 ‘부동’이라고 하니, 상相·용用·번뇌煩惱로 동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77) 제9지를 ‘관혜’라고 하니, 사무애해四無礙解로 유정들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 장애의 제거

또한 삼계의 심·색 등의 습기 번뇌78)를 제거하므로79)
두 번째는 장애를 제거함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이전의 지위에서 이미 색번뇌·심번뇌를 끊었고, 이제 이 지위에서 끊는 것은 미세하므로 ‘심·색 등의 습기’라고 하였다.

㉰ 섭화의 분제

불가설·불가설한 공덕의 신통을 나타냅니다.

세 번째는 섭화의 분제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 적멸인寂滅忍

그 다음은 적멸인寂滅忍이니,

다섯 번째는 적멸인을 설명한 것이다. 경문은 네 가지로 구별된다. 첫째는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둘째는 장애를 제거함을 밝힌 것이다. 셋째는 이제二諦에 의거해서 차이를 밝힌 것이다.

001_0063_b_01L兩說一云能到不思議故一云不
001_0063_b_02L實身不可在多處故雖有兩13)釋 
001_0063_b_03L且依後14)

001_0063_b_04L
又無生忍15)觀慧

001_0063_b_05L
釋曰第四明無生忍文別有三
001_0063_b_06L標名配位次明除障後明16)攝化分
001_0063_b_07L言無生忍者諸說不同有說17)
001_0063_b_08L遍計所執名爲無生無自體故
001_0063_b_09L說遍計所執及圓成實皆名無生
001_0063_b_10L解深18)密瑜伽論或說三性皆名無生
001_0063_b_11L謂本性無生自然無生惑苦無生
001_0063_b_12L成唯識等言所謂遠不動19)慧者
001_0063_b_13L七地名遠行至功用心最後邊故
001_0063_b_14L八地名不動相用煩惱不能動故
001_0063_b_15L地名觀慧四無礙解化有情故

001_0063_b_16L
亦斷三界心色等習煩惱

001_0063_b_17L
釋曰第二明除障也謂於前位已斷
001_0063_b_18L色心煩惱今此位中所斷微細名心
001_0063_b_19L色等習

001_0063_b_20L
現不可說20)21)神通

001_0063_b_21L
釋曰第三22)攝化分齊如經可知

001_0063_b_22L
復次寂滅忍

001_0063_b_23L
釋曰第五辨寂滅忍文別有四
001_0063_b_24L標名配位23)辨其除障三約諦辨

001_0063_c_01L넷째 “무연無緣의” 이하는 섭화攝化의 분제를 나타낸 것이다.

㉮ 이름과 지위
전자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했고, 다음은 작용을 찬탄했으며, 마지막은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a. 이름의 표시
이것은 이름을 표시한 것이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적寂’은 선정(定)이고 ‘멸滅’은 혜慧이니, 선정에 의지해서 혜를 일으키고 모든 번뇌를 소멸시키기 때문에 ‘적멸인’이라고 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법상法相을 떠난 궁극의 진여를 ‘적멸’이라 하고, 그 경계를 소연으로 삼는 지智를 ‘적멸인’이라 한 것이다.≻

b. 작용의 찬탄

부처님과 보살이 똑같이 이 인을 써서 금강삼매金剛三昧에 들어갑니다.

두 번째는 작용을 찬탄한 것이다.
“금강”이라 한 것에는 본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끊는 지(能斷智)를 ‘금강’이라 하니, 그것은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인왕경』은 이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다. 둘째는 끊어지는 혹(所斷惑)을 ‘금강’이라고 하니, 성질이 강해서 끊기 어려운 것이 금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역 『반야경』을 ‘능단금강반야경’이라고 이름하였다. 혹은 ‘금강’이란 〔끊어지는 대상(所斷)뿐만 아니라〕 끊는 주체(能斷)에도 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부처님과 보살은 똑같이 이 인을 쓴다고 하였다.

c. 배속되는 지위

하품의 인(下忍) 중에서 행하는80) 것을 보살이라 하고, 상품의 인(上忍) 중에서 행하는 것을 살바야라고 합니다.

001_0063_c_01L四無綠下所化分齊前中有三
001_0063_c_02L初標名次讚用後配位此卽標名
001_0063_c_03L若依本記寂是定滅是慧依定發
001_0063_c_04L滅諸漏故名寂滅忍一云離諸
001_0063_c_05L法相究竟眞如名爲寂滅緣彼境
001_0063_c_06L名寂滅忍

001_0063_c_07L
佛與菩薩入金剛三昧

001_0063_c_08L
釋曰第二讚用言金剛者自有二
001_0063_c_09L一能斷智名爲金剛能斷一切
001_0063_c_10L諸煩惱24)今此經依此而說二所
001_0063_c_11L斷惑名爲金剛性强難斷25)似金剛
001_0063_c_12L故新翻般若名爲能斷金剛26)
001_0063_c_13L可金剛亦屬能斷由此義故佛與
001_0063_c_14L菩薩同用此忍

001_0063_c_15L
27)忍行中行28)般若

001_0063_c_16L「至」無{甲}「現法」上有「所謂見勝」{甲}
001_0063_c_17L「卽」作「有」{甲}
「卽」作「無」{甲}「義」無{甲}
001_0063_c_18L「難」無{甲}「垢」作「惱」{甲}「斷」作「顯」
001_0063_c_19L{甲}
「至」無{甲}「煩惱」上有「三界心等」{甲}
001_0063_c_20L「攝」作「標」{甲}「各」下有「各」{甲}「釋」作
001_0063_c_21L「說」{甲}
「說」作「釋」{甲}「觀慧」上有「菩薩
001_0063_c_22L所謂遠不動」{甲}
「攝」作「標」{甲}「名」無{甲}
001_0063_c_23L「密」下有「及」{甲}「慧」上有「觀」{甲}「至」
001_0063_c_24L無{甲}
「神通」上有「不可說功德」{甲}「攝」作
001_0063_c_25L「標」{甲}
「辨」作「辯」{甲}「故」下有「故」{甲}
001_0063_c_26L「似」作「如」{甲}「惑」作「或」{甲}ㆍ「惑」疑「或」
001_0063_c_27L{乙}
「忍」下有「中」{甲}「般」作「婆」{甲}

001_0064_a_01L
세 번째는 지위에 배속시킨 것이다. “살바야”란 여기 말로 일체지一切智라고 한다.

㉯ 장애의 제거

똑같이81) 제일의제第一義諦를 관하여

두 번째는 장애를 제거함을 밝힌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관하는 경계를 밝혔고, 다음은 장애를 제거함을 밝혔으며, 마지막은 두 가지 도의 차별적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a. 관의 경계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부처님과 보살은 똑같이 진여라는 제일의제를 관한다는 것이다.
이 지위에서 〔부처님과 보살은〕 똑같이 관하는데, 우열의 차이가 있는가, 없는가? 우열의 차이가 있다면, 『보살영락본업경』에서는 무엇을 등각等覺이라고 한 것인가? 우열의 차이가 없다면, 어째서 『유가사지론』에서는 여덟 번의 설명(復次)으로 우열의 차별에 대해 해석했는가?
여러 설이 다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여를 소연으로 하는 경우에는 우열이 없지만 속제의 경계를 소연으로 하는 경우에는 우열이 다르다. 따라서 그 경과 논이 서로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제로는 우열이 다르다. 따라서 『열반경』에서는 십지보살은 불성을 문견聞見하고 여래지에서는 불성을 안견眼見한다고 하였다.82) 구체적으로 설하면 그 경과 같다. 또 『유가사지론』에서는 14일과 15일83)에 보이는 월광月光으로 두 가지 지위를 비유하였기 때문에,84) 두 가지 지위에 결정코 우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등각에서〕 ‘등’이라는 것은 똑같이 하나의 장애를 끊기 때문에 ‘등’이라 설한 것이다.≻ 자은 삼장의 뜻은 후자의 해석을 따르는 것이다.

b. 장애의 제거

삼계의 심습기를 끊으니,

두 번째는 제거되는 장애를 나타낸 것이다. 이전의 지위에서 이미 색·심의 두 종류 거친 습기를 끊었고, 이제 이 지위에서는 색심의 두 종류 미세한 습기까지 끊는다. 끊어지는 것이 가장 미세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 다만 ‘심습기’라고 하였다.

c. 도道의 차별

무명의 상이 다하는 것을 금강이라 하고, 상이 다함에 상이 없는 것을 살바야라고 합니다.85)

세 번째는 두 가지 도道의 차별적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이 경문의 해석에서 여러 설이 다르다.

001_0064_a_01L
釋曰第三配位薩婆1)若此云一切
001_0064_a_02L

001_0064_a_03L
其觀第一義諦

001_0064_a_04L
釋曰第二辨其除障文別有三
001_0064_a_05L明觀境次辨除障後顯二道差別之
001_0064_a_06L此卽初也謂佛菩薩同觀眞如
001_0064_a_07L第一義諦問此位同觀有勝劣不
001_0064_a_08L有勝劣本業經中何名等覺若無
001_0064_a_09L勝劣如何瑜伽八復次釋勝劣差別
001_0064_a_10L答云諸說不同一云緣眞2)卽無勝
001_0064_a_11L若緣俗境勝劣不同故經與論
001_0064_a_12L互不相違一云據實勝劣不同
001_0064_a_13L涅槃云十地菩薩聞見佛性於如
001_0064_a_14L來地眼見佛性具說如彼又瑜伽
001_0064_a_15L論十四五曰所見3)月光喩二位
001_0064_a_16L知二位定有勝劣而言等者等斷一
001_0064_a_17L故說爲等慈恩三藏意從後釋

001_0064_a_18L
斷三界心習

001_0064_a_19L
釋曰第二正辨除障於前位中
001_0064_a_20L斷色心二種麁習今此位中亦斷色
001_0064_a_21L心二種細習爲顯所斷最微細故
001_0064_a_22L名心習

001_0064_a_23L
無明盡相爲薩婆若

001_0064_a_24L
釋曰第三正辨二道4)差別相然釋

001_0064_b_01L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명이 다한 상(無明盡相)이 금강의 진상(金剛盡相)이다’라고 한 것은 무간도의 상을 나타낸 것이다. 실제로는 모든 번뇌가 다하였지만 근본에 의거해서 설하기 때문에 다만 ‘무명이 다한 상’이라고 하였고, 곧 이러한 상을 ‘금강의 진상’이라고 하였다. 해탈도 중에서는 이미 무명의 상이 다함도 넘어서기 때문에 ‘무상이 살바야다(無相爲薩婆若)’라고 하였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무명의 상이 다한 것을 금강이라 하고”라는 것은 무간도의 상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이 지위에서는 유루의 상이 다하는데 근본에 의거해서 설하기 때문에 무명의 상이 다하는 것이 금강이라고 하였다. “상이 다함에 상이 없는 것을 살바야라고 합니다.”라는 것은 해탈도를 나타낸 것이다. “상이 다함에 …”이라 한 것은 무간도일 때 미혹의 상이 다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경계와 지혜라는 서로 다른 상이 있기 때문에 ‘상이 없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지위에서는 무명의 상이 다하고 또한 경계와 지혜라는 서로 다른 상도 없어졌기 때문에 “상이 다함에 상이 없는 것을 살바야라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비록 두 가지 해석이 있지만 우선 후자에 의거하겠다.

㉰ 이제에 의거해 차이를 밝힘

세속제와 제일의제를 넘어선(超度) 것이 제11지地의 살운야각薩云若覺86)이니, 이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며 맑고 깨끗하며 항상 머물면서 변치 않으며 진제眞際와 동등하고 법성과 동등합니다.

세 번째는 이제에 의거해서 차이를 밝힌 것이다. 삼현은 대부분 세속제에 머물고, 십지는 대부분 진제에 머문다. 삼현을 넘어서기 때문에 세제를 넘어서고, 십지를 넘어서기 때문에 제일의제를 넘어선다. 세속제를 넘어서기 때문에 ‘유’가 아니고, 제일의제를 넘어서기 때문에 ‘무’도 아니다. 따라서 제11지가 되는 것이다.
“살운야각薩云若覺”에 대해 본래 두 가지 설이 있다. 한편에서는 살바야薩婆若는 일체지一切智이고, 살운야는 일체종지一切種智라고 한다. 그러나 『본기』에 의하면 모두 ‘일체지’라고 번역한다.
“맑고 깨끗하며 항상 머물면서 변치 않으며 진제와 동등하고 법성과 동등합니다.”라고 한 것은 ‘살운야’에 대해 거듭 해석한 것이다. ‘항상 머무는(常住)’ 모습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다르다. 한편에서는 이 경문에 준해볼 때 ‘여래가 상주하면서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음’을 뜻한다고 한다.

001_0064_b_01L此文諸說不同一云無明盡相爲
001_0064_b_02L金剛盡相者顯無間道相據實一切
001_0064_b_03L煩惱皆盡就根本說是故但言無明
001_0064_b_04L盡相卽用此相爲金剛盡相解脫
001_0064_b_05L道中已過無明盡相故言無相爲薩
001_0064_b_06L婆若若依本記無明盡相爲金剛者
001_0064_b_07L顯無間道相謂於此位5)涉相盡
001_0064_b_08L就根本說故言無明盡相爲金剛盡
001_0064_b_09L無相爲薩婆若者顯解脫道
001_0064_b_10L盡相等者無間道時惑相雖盡猶有
001_0064_b_11L境智異相故不言無相於此位中
001_0064_b_12L無明相亦無境智異相6)故盡相無
001_0064_b_13L相爲薩婆若雖有兩釋且依後釋

001_0064_b_14L
超度世諦等法性

001_0064_b_15L
釋曰第三約諦辨異三賢多住世諦
001_0064_b_16L十地多住眞諦度三賢故超世諦
001_0064_b_17L十地故超第一義諦超世諦故非有
001_0064_b_18L超第一義諦故非無故爲第十一地
001_0064_b_19L薩云若覺自有兩說一云薩婆若名
001_0064_b_20L一切智薩云若7)一切種智若依
001_0064_b_21L本記皆翻一切智言湛然淸淨
001_0064_b_22L住不變同眞際等法性者重釋薩
001_0064_b_23L云若常住之相諸說不同一云
001_0064_b_24L准此文如來常住無生無滅一云

001_0064_c_01L한편에서는 ‘항상 상속하기 때문에 상주라고 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것은 「삼신장三身章」87)의 설과 같다.

㉱ 섭화의 분제

무연無緣의 대비大悲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니, 살바야의 수레를 타고 삼계에 와서 교화합니다.

네 번째는 섭화의 분제를 밝힌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주장을 표시하며 간략히 해석한 것이다. 나중은 주장에 의거해서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a. 간략한 해석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모든 유정들은 교화하는 자이든 교화되는 자이든 모두 삼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대비’는 교화하는 도구(具)이고 ‘중생’은 교화되는 경계(境)이며 ‘살바야’는 교화의 체體이다. 대비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생연衆生緣이고, 둘째는 법연法緣이며, 셋째는 무연無緣이다.88) 처음은 외도와 공통되는 것이고, 다음은 이승과 공통되는 것이며, 마지막은 오직 부처님과 보살에 속한다. 자세하게 분별하면 예를 들어 『대지도론』 제23권 및 『불지경론』 제5권 등의 설과 같다.
이제 불세존들이 대비의 힘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데, 일체지의 수레를 타고 삼계에 와서 교화한다는 것이다.

b. 자세한 해석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번뇌는 삼계의 장藏을 벗어나지 않고, 모든 중생의 과보인 스물두 가지 근根도 삼계를 벗어나지 않으며, 제불의 응신應身·화신化身·법신法身도 삼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하는 두 번째로 주장에 의거해서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바른 이치를 진술한 것이다. 다음의 “삼계의 밖에는” 이하는 이교의 스승의 설을 논파한 것이다. 마지막의 “대왕이여, 나는 항상 말하였습니다.” 이하는 예전의 말을 인용해서 지금의 말을 증명한 것이다.

a) 바른 이치를 진술함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이 경문에는 네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번뇌라는 인因이다. 혹惑으로 인해 업을 발하여 삼계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 둘째는 생사라는 과果이다. 감득感得한 과보의 체가 삼계에 속하는 것을 말한다. 22가지 근 중에서

001_0064_c_01L相續常故說常住具如三身章

001_0064_c_02L
無緣大8)悲來化三界

001_0064_c_03L
釋曰第四9)攝化分齊文別有二
001_0064_c_04L標宗略釋10)依宗廣釋此卽初也
001_0064_c_05L謂一切有情能化所化皆不離三界
001_0064_c_06L大悲是能化之具衆生是所化之境
001_0064_c_07L薩婆若是能化之體大悲有三一衆
001_0064_c_08L生緣二法緣三無緣初通外道
001_0064_c_09L通二乘後唯佛及菩薩若廣分別
001_0064_c_10L智度論二十三及佛地論第五等
001_0064_c_11L佛世尊以大悲力化一切衆生
001_0064_c_12L一切智來化三界

001_0064_c_13L
善男子亦不出三界

001_0064_c_14L
釋曰自下第二依宗廣釋文別有三
001_0064_c_15L初申正理次三界外下破異師說
001_0064_c_16L大王我言下引古證今11)卽初也
001_0064_c_17L若依本記此有四義一煩惱12)
001_0064_c_18L惑發業生三界13)報故二生死果
001_0064_c_19L所感果體屬三界二十二根中
001_0064_c_20L「若」下有「者」{甲}「卽」無{甲}「月光」下
001_0064_c_21L有「以」{甲}
「差別」下有「之」{甲}「涉」作
001_0064_c_22L「漏」{甲}
「故」下有「云」{甲}「名」下有「名」
001_0064_c_23L{甲}
「悲」下有「至」{甲}「攝」作「標」{甲}
001_0064_c_24L「依」無{甲}
「卽」無「用」作「因」{甲}「報」
001_0064_c_25L作「根」{甲}

001_0065_a_01L세 가지 무루근89)은 삼계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삼계의 몸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셋째는 지혜의 체이다. 말하자면 부처님의 삼신三身에 있는 모든 지혜를 ‘지혜의 체’라고 하고, 〔이 지혜로〕 삼계의 처소에서 교화하기 때문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넷째는 지혜의 작용이다. 삼계 내에 교화되는 중생이 있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나타냈는데,90) 그 뜻은 불지佛智로 삼계를 교화하는 작용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이다. 비록 이름(名)·형상(相)에서는 이 네 가지 의미가 있기는 해도 모두 허망한 것이다. 삼계의 속박을 벗어난다면, 제일의제를 이치에 맞게 보되 다시는 교화하는 자라든가 교화되는 자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이 경문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처음은 번뇌와 과보의 체가 삼계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삼계의 처소에 있으므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음은 22가지 근을 설명한 것이다.91) 삼무루근은 삼계의 처소에 있고, 안근眼根 등의 오근과 오수근五受根과 남근男根·여근女根·의근意根·명근命根의 체도 삼계에 속하고, 신근信根 등의 오근도 삼계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삼신은 비록 삼계에 속하지는 않지만 또한 삼계에 있기 때문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혹은 세 가지 무루근도 삼계의 아홉 근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삼계에 있다고 했을 수도 있다.

b) 이설을 논파함

삼계 밖에는 중생이 없는데 부처님은 어디에서 교화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항상 말하였으니, 삼계 밖에 별도로 하나의 중생계장衆生界藏이 있다는 것은 외도의 『대유경大有經』에서 설한 것이지 일곱 부처님(七佛)이 설하신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는 이교의 스승의 설을 논파한 것이다. 경문에는 두 개의 절이 있다. 처음은 저 외도의 주장을 내걸어 놓은(牒) 것이고, 나중은 외도와 똑같다고 지적한 것이다.
외도는 다음과 같이 의심한다. ‘이승의 성자는 삼계의 밖으로 벗어난 자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삼계의 밖에 중생이 없다면 부처님의 이승교二乘敎는 누구를 대상으로 교화한 것인가?’ 이로 인해 그들은 ‘삼계의 밖에 교화되는 중생이 있다’고 헤아린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그들을 논파하시면서, 삼계의 밖에 하나의 중생계가 있다는 것은 복세사가92) 외도의 『대유경』에서 설한 것이지 일곱 부처님이 설하신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대유大有’93)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여섯 가지 구의(六句義)를 설하니, 첫째는 실實 구의이고 둘째는 덕德 구의이며 셋째는 업業 구의이고

001_0065_a_01L無漏根雖非三界依三界身故言
001_0065_a_02L不出三智慧體謂佛三身所有智慧
001_0065_a_03L名智慧體化三界處故言不出四智
001_0065_a_04L慧用反顯界內有所化生意明佛智
001_0065_a_05L化三界用雖名相中有此四義皆是
001_0065_a_06L虛妄若出三界繁縛卽見第一義
001_0065_a_07L理不復見有能化所化也今解此文
001_0065_a_08L有其三義初煩惱及果體屬三界
001_0065_a_09L三界處故言不出次辨二十二根
001_0065_a_10L三無漏根在三界處眼等五根
001_0065_a_11L五受根男女意命體屬三界信等
001_0065_a_12L五根有屬有1)後佛三身雖非三
001_0065_a_13L亦在三界故言不出或可三無
001_0065_a_14L漏根2)後三界九根中起故說在
001_0065_a_15L

001_0065_a_16L
三界外非七佛之所說

001_0065_a_17L
釋曰第二破異師說文有兩節初牒
001_0065_a_18L彼外計後指同外道謂外疑云
001_0065_a_19L不二乘聖者出三界外若言三界外
001_0065_a_20L無衆生佛二乘敎何所化耶由斯
001_0065_a_21L計云三界外所化衆生是故世尊破
001_0065_a_22L三界外有一衆生界者吠世史迦
001_0065_a_23L外道大有經中說非七佛說言大
001_0065_a_24L有者彼說六句義一實二德三業

001_0065_b_01L넷째는 대유大有 구의이며 다섯째는 동이同異 구의이고 여섯째는 화합和合 구의이다.94) 그들이 ‘대유’를 설하기 때문에 ‘『대유경』’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삼계의 밖에 변역생사가 있지 않는가. 어째서 이 『인왕경』에서는 삼계의 밖에는 중생이 없다고 설했는가?
진제 삼장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이에 본래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실제로는 삼계의 밖에는 변역생이 있다. 그런데 이 경에서는 아직 이런 의미를 밝힌 것은 아니므로 또한 과실이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거하는 중에서도, 예를 들어 성문장聲聞藏인 4아급마阿笈摩에서는 단지 부처님 몸(佛身)이 무상한 법이라 설할 뿐 아직 불성佛性으로서의 상주하는 몸의 의미를 밝히지는 않았으므로, ‘부처님 몸이 무상하다’고 설한다 해도 또한 과실은 없다. 이것도 이와 같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치에 의거해서 해석하면, 분별하는 마음을 따라서 ‘삼계가 있고 또 삼계의 밖에 변역생이 있다’고 헤아리는 것은 모두 이치에 맞지 않다. 이로 인해, ‘삼계 밖에 생사가 있다’는 헤아림을 끊은 것이니, 실제로 도리어 삼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대품경』에서는 ‘삼계에서 나와서 살바야에 이르니, 부동不動에 〔머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95) 이러한 경문 등에 준해 보면, 삼계의 밖을 벗어나서 별도의 유정은 없으니, 이런 뜻에 의거해서 경문을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은 삼장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변역생사에는 별도의 업과業果는 없다. 그것은 삼계의 모든 업과에 의지하고, 변제정邊際定96)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점점 수승해지고 점점 오묘해지기 때문에 ‘변역’이라 한 것이다. 삼계의 문에서는 본업本業의 과를 따르므로 곧 〔변역생사는〕 그 계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인왕경』에서는 ‘삼계의 밖을 벗어나서 별도의 유정은 없다’고 하였으니, 모든 성스런 가르침과 서로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자세하게 분별하면 그 의미는 『별장』과 같다.

c) 증명

대왕이여, 나는 항상 말하였습니다. ‘삼계 번뇌를 끊고 과보가 다한 모든 중생들을 불佛이라 이름하고, 자성의 청정함을 각살운야성覺薩云若性이라 이름한다’라고.

세 번째는 예전의 말을 인용해서 지금의 말을 증명한 것이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삼계를 끊는다’는 것은 여섯 가지 식을 제거한 것이니, 이것을 ‘업이 청정하다’고 한다.

001_0065_b_01L四大有五同異3)和合句義彼說
001_0065_b_02L大有名大有經問豈不三界外有變
001_0065_b_03L易生死云何此經說三界外無衆生
001_0065_b_04L答眞諦三藏自有兩釋一恒解者
001_0065_b_05L據實界4)外變易生而此經中未明
001_0065_b_06L此義亦無有過依佛敎中5)聲聞
001_0065_b_07L藏四阿笈摩但說佛身是無常法
001_0065_b_08L明佛性常住身義說佛無常亦無過
001_0065_b_09L此亦如是依佛敎故二依理釋
001_0065_b_10L隨分別心計有三界及三界外有變
001_0065_b_11L易生皆不稱理6)此斷所計界外
001_0065_b_12L生死據實還是不出三界故大品云
001_0065_b_13L從三界中出至薩婆若以不動故
001_0065_b_14L7)唯此等經無別有情出三界外
001_0065_b_15L依此意釋經可知慈恩三藏作如
001_0065_b_16L是釋變易生死無別業果卽依三
001_0065_b_17L界所有業果由邊際定轉勝轉妙
001_0065_b_18L名變易三界門中隨本業果卽彼
001_0065_b_19L界攝故此經云出三界外無別有
001_0065_b_20L而諸聖敎互不相違若廣分別
001_0065_b_21L義如別章

001_0065_b_22L
大王我常語覺薩云若性

001_0065_b_23L
釋曰第三引古證今若依本記
001_0065_b_24L三界者謂除六識名爲業8)斷煩

001_0065_c_01L‘번뇌를 끊는다’는 것은 아타나식阿陀那識 즉 제7식을 제거한 것이니, 이것을 ‘번뇌가 청정하다’고 한다. ‘과보가 다했다’는 것은 아뢰야식阿賴耶識 즉 제8식을 제거한 것이니, 이것을 ‘과가 청정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청정함을 일컬어 ‘불佛’이라고 한다. “자성의 청정함을 (각)살운야성이라 이름한다.”라는 이 말의 뜻을 설하자면, 이 세 가지가 청정한 모든 중생을 ‘불’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를 때, 설사 불과를 얻었다고 해도 삼계를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 총괄적 결론

중생의 본업本業이 바로 모든 불보살이97) 본래 수행했던 바이고,

세 번째는 다 해석하고 나서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오인五忍을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고, 나중은 지위의 장단長短을 밝힌 것이다.

㈎ 오인에 대한 총괄적 결론
이것은 오인을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 지위의 장단

다섯 가지 인忍 중에는 열네 가지 인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두 번째는 14가지 인에 대응시켜서 지위의 장·단을 설명한 것이다.98) 말하자면 다섯 가지 인을 14가지 인에 대응시키면 상호간에 서로 소속되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②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

〔왕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어째서 보살은 본업이 청정하게 중생을 교화한다고 합니까?”

이하는 두 번째로 이타행에 대해 대답하면서 아울러 자리행에 대해서도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앞은 질문이고 뒤는 대답이다.

가) 왕의 질문
이것은 질문에 해당한다.

나) 여래의 대답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1지地에서 최후의 한 지에 이르기까지 자기 〔지地의〕 영역(所行)과 부처님 〔지의〕 영역 일체를 지견知見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두 번째로 여래께서 바로 답하신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간략하게 답하고, 나중에 자세하게 답한다.

㈎ 간략한 대답
이것은 간략한 대답이다. 경문에는 세 개의 절이 있다.
처음의 절은 업의 의지처가 되는 지地를 밝힌 것이니, 즉 극희지에서 법운지까지를 말한다.

001_0065_c_01L惱者阿陀那卽第七識說煩惱淨
001_0065_c_02L報盡者除阿賴耶是第八識說爲
001_0065_c_03L果淨如是三淨名之爲佛自性淸
001_0065_c_04L名薩云若性此意說云一切衆
001_0065_c_05L三種淨者卽名爲佛由此應知
001_0065_c_06L設得佛果不出三界

001_0065_c_07L
衆生本業是諸佛菩薩本所修行

001_0065_c_08L
釋曰第三釋已總結文別有二
001_0065_c_09L總結五忍後辨位長短9)卽總結
001_0065_c_10L如經可知

001_0065_c_11L
五忍中十四忍具足

001_0065_c_12L
釋曰第二對十四忍辨位長短謂五
001_0065_c_13L忍對十四忍展轉相攝尋卽可知

001_0065_c_14L
白佛言化衆生

001_0065_c_15L
釋曰自下第二正答利他兼釋自利
001_0065_c_16L於中有二先問後答10)此卽問也

001_0065_c_17L
佛言從一地一切知見故

001_0065_c_18L
釋曰此卽第二如來正答於中有二
001_0065_c_19L先略後廣此卽略答文有三節
001_0065_c_20L明業所依地謂從極喜乃至法雲
001_0065_c_21L「在」無{甲}「後」作「從」{甲}ㆍ「後」疑「從」{乙}
001_0065_c_22L「和合」作「合和」{甲}「外」下有「有」{甲}
001_0065_c_23L「聲聞藏」無{乙}
「此斷」作「斯」{甲}「唯」
001_0065_c_24L作「准」{甲}
「諦」作「淨」{甲}「卽」作「無」{甲}
001_0065_c_25L「此卽問也」無{甲}

001_0066_a_01L
이 경문에서는 어째서 십지만 설했는가?
십지 이전의 삼현은 현인이기는 해도 성인은 아니고, 묘각이라는 한 지는 이미 보살지를 넘어섰다. 따라서 인위因位 중에서 뛰어난 것으로 대답한 것이다.
다음의 절은 두 가지 행을 구별시킨 것이다. 첫째는 자지自地에서 현행된 처處이니, 십지의 각자의 지에 의해 현행된 경계를 말한다. 둘째는 부처님에 의해 현행된 경계(境處)이니, 묘각지에서 현행된 경계를 말한다. 즉 앞의 십지에서는 다만 자기에 의해 현행된 처소에서 행하고, 마지막 금강정金剛定99)의 일념에는 공통으로 두 가지 처소에서 행한다. 따라서 다음의 경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진삼매理盡三昧를 얻어 부처님이 행하시는 곳을 함께 하니, … 부처님의 경계를 함께 한다. 〔이하 생략〕”100) 또 『보살영락본업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자여, 보살은 이때 대적문大寂門에 머무니, 〔중간 생략 … 행行은〕 십지를 넘어섰고 해解는 부처님과 동일하여 〔불좌에〕 앉는다.”101) 구체적인 것은 그 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마지막 절의 “일체를 지견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것은 ‘청정을 성취했음’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십지행의 본업이 청정하니, 그것은 다 지견의 힘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초지에서 마지막 불지까지 〔본업이 청정하다’〕 라고 하는데, 그 밖의 것은 앞의 설과 같다.

㈏ 자세한 해석

본업本業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본업에 대해 자세하게 대답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해석될 문구를〕 내걸어 놓은 것(牒)이고, 나중은 해석한 것이며, 마지막의 “그러므로” 이하는 결론지은 것이다.

㉮ 해석될 문구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 자세한 해석

백 불국토에 머무는 보살은 염부제의 사천왕四天王102)이 되어 백 개의 법문을 닦고 이제二諦의 평등을 증득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합니다.

이하는 두 번째로 십지十地를 자세하게 해석한 것이니, 곧 열 가지로 구분된다.

a. 선각지善覺地
이것은 첫 번째로 선각지善覺地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처음은 거주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둘째는 왕의 지위에 배속시킨 것이다. 셋째는 닦는 법문을 나타낸 것이다. 넷째는 선각지의 차별적 행을 해석한 것이다. 다섯째는 선각지의 공통적 작용(業)을 밝힌 것이다.
“백 불국토에 머무는”이라 한 것은 거주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토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설법의 국토이니, 백억의 일월日月 세계에서 소승을 교화한다. 둘째는 신통의 국토이니, 억억의 일월에서 중승中乘을 교화한다. 셋째는 지혜의 국토이니,

001_0066_a_01L此文何故但說十地答地前三賢
001_0066_a_02L而非聖妙覺一地已超菩薩故因位
001_0066_a_03L隨勝而答1)簡別二行一自所
001_0066_a_04L行處2)十地自所行境二佛所行
001_0066_a_05L境處謂妙覺地所行境界前之十地
001_0066_a_06L3)了自行所行處後金剛一念
001_0066_a_07L行二處故下經云得理盡三昧同佛
001_0066_a_08L行處如佛境界乃至廣說又如瓔
001_0066_a_09L珞經云佛子菩薩爾時住大寂門
001_0066_a_10L至過十地解與佛同坐具如彼說
001_0066_a_11L言一切知見故者釋成淸淨謂十地
001_0066_a_12L本業淸淨皆由知見力所生故
001_0066_a_13L從初地乃至後佛地餘如前說

001_0066_a_14L
本業者

001_0066_a_15L
釋曰第二廣答本業文別有三
001_0066_a_16L牒次釋後是故下結此卽牒也

001_0066_a_17L
若菩薩4)化一切衆生

001_0066_a_18L
釋曰自下第二廣釋十地卽分爲十
001_0066_a_19L此卽第一釋善覺地文分爲五一居
001_0066_a_20L土寬狹二配屬王位三顯習法門
001_0066_a_21L釋地別行五辨地通業5)住百佛國
001_0066_a_22L居土寬狹本記云國土有三
001_0066_a_23L說法土百億日月化小乘二神通
001_0066_a_24L億億日月化中乘三智慧土

001_0066_b_01L한량없는 세계에서 보살을 교화한다. 지금 ‘백 불국토’라고 한 것은 설법의 국토이다.≻
“염부제의 사천왕이 되어”라는 것은 왕의 지위에 배속시킨 것이다.
이 경의 의도는 다만 천왕天王을 취하려는 것이지 염부제까지 취하려는 것은 아닌데 어째서 여기서는 염부제의 사천왕이 된다고 했는가?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천왕 중에 다만 염부제를 거느리는 증장천왕增長天王103)이 되니, 남방이 수승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천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틀어 네 종류 천왕이 되지만, 수승한 방편을 기준으로 설했기 때문에 다만 ‘염부제의 왕’이라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열 명의 왕에 대해 여러 교에서 다르게 설한다. 『십지경』에 의하면 초지 보살은 염부왕이 되고, 제2지보살은 전륜성왕이 된다.104) 육욕천六欲天 중에서는 사천왕을 제외하고, 사정려四靜慮 중에서는 제3선禪을 제외하고, 그 밖의 여덟 곳에서 그 차례대로 여덟 가지 왕위가 된다.105) 지금 이 『인왕경』에 의하면 육욕천과 사정려 중에 그 차례대로 열 가지 왕위를 받는데, 염부왕과 전륜왕을 제외시켰다.
“백 개의 법문을 〔닦고〕”라는 것은 세 번째로 닦는 법문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곧 자리행이다. 앞에서 설한 것처럼, 십신十信 중에는 하나하나마다 십신을 갖추어 행하기 때문에 ‘백 개의 법문’이라 하였다.
“이제의 평등을 증득한 마음으로”라는 것은 네 번째로 선각지의 차별적 행을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초지에서는 처음으로 진여를 증득하는데, 진제와 속제가 한맛(一味)으로서 일치하지도 않고 분리되지도 않음을 여실하게 알게 된다.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교화한다’는 뜻이 성립할 수 있고,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법이 모두 공함’을 증득하는 것이다.
“일체 중생을 교화합니다.”라는 것은 다섯 번째로 선각지의 공통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즉 지와 지마다 모두 중생의 교화를 업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하에도 아홉 지地가 있고, 〔선각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다섯 단락으로 되어 있으니, 이에 준해서 해석해야 한다.

b. 이달지離達地

천 불국토에 머무는 보살은 도리천忉利天의 왕이 되어 천 개의 법문을 닦고 십선도十善道로 일체 중생을 교화합니다.

001_0066_b_01L量世界化菩薩今言百佛國土者
001_0066_b_02L法土也言作閻浮四天王者配屬王
001_0066_b_03L問此經意但取天王非閻浮提
001_0066_b_04L如何此云作閻浮四天王耶答此有
001_0066_b_05L兩釋一云於四天王中但作領閻
001_0066_b_06L浮提增長天王由南勝故不作餘王
001_0066_b_07L一云通作四種天王就勝方便故
001_0066_b_08L言閻浮提王然此十王諸敎不同
001_0066_b_09L十地經初地菩薩作閻浮王二地
001_0066_b_10L菩薩作轉輪聖王六欲天中除四
001_0066_b_11L天王四靜慮中除第三禪餘八處
001_0066_b_12L如其次第作八王位今依此經
001_0066_b_13L六欲天中及四靜慮如其次第
001_0066_b_14L十王位除閻浮王及轉輪王言百
001_0066_b_15L法門者第三顯習法門卽自利行
001_0066_b_16L上所說於十信中一一具行十信
001_0066_b_17L言百法門也言二諦平等心者第四
001_0066_b_18L釋地別行謂於初地創證眞如
001_0066_b_19L實了知眞俗一味非卽非離非卽故
001_0066_b_20L化義得成非離故證法皆空言化一
001_0066_b_21L6)衆生第五顯地通行地地皆用
001_0066_b_22L化生爲業下有九地多作五段
001_0066_b_23L此應釋

001_0066_b_24L
若菩薩化一切衆生

001_0066_c_01L
두 번째는 이달지離達地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다시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처음에 “천 불국토에 머무는”이라 한 것은 거주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둘째로 “도리천의 왕이 되어”라는 것은 왕의 지위에 배속시킨 것이다. ‘도리천’이란 범음이 잘못 생략된 것이다. 갖추어서 말하면 제려나帝戾那(ⓢTrayas)여기 말로 ‘삼三’이라고 한다.등릉실橙稜實106)(ⓢtriṃśa)여기 말로 ‘삼십三十’이라고 한다.제바題婆(ⓢdeva)여기 말로 ‘천天’이라고 한다.라고 해야 한다. 보사유 삼장寶思惟三藏107)은 당연히 이것은 ‘삼십삼천’이라고 하였다.108)
셋째로 “천 개의 법문을 닦고”라고 한 것은 닦는 법문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십신의 마음 하나하나마다 늘려서 백 가지 마음을 닦기 때문에 ‘천 개의 법문’이라 한다. 뒤의 지에서도 점점 증가시켜 닦으니, 이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자세한 것은 『보살영락본업경』 제2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109)
넷째로 “십선도十善道로”라고 한 것은 이달지의 차별적 행을 해석한 것이다. 열 가지 선업을 닦으면서 계戒를 행하는 지地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일체 중생을 교화합니다.”라는 것은 이달지의 공통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c. 발광지發光地

십만 불국토에 머무는 보살은 염천炎天110)의 왕이 되어 십만 개의 법문을 닦고 사선정四禪定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합니다.

세 번째는 발광지發光地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다시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염천炎天”이란 여기 말로 ‘시분時分’이라 한다. 그 밖의 경문은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d. 염혜지炎慧地

백억 불국토에 머무는 보살은 도솔천兜率天의 왕이 되어 백억 개의 법문을 닦고 도품道品을 행함으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합니다.

네 번째는 염혜지炎慧地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다시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도솔천兜率天”이란 여기 말로 ‘희족喜足’이라고 한다. “도품”이란 37도품111)을 말한다.

001_0066_c_01L
釋曰第二釋離達地文復有五
001_0066_c_02L千佛國土7)8)土寬狹二作忉利
001_0066_c_03L天王者9)業王位忉利天者此是
001_0066_c_04L10)言訛略11)具足應言帝戾那此云

001_0066_c_05L橙稜貫此云
三十
題婆此云
寶思惟三藏云
001_0066_c_06L當此三十三天三修千法門者顯習
001_0066_c_07L法門謂十信心一一增修一百心故
001_0066_c_08L名千法門後漸增修准此12)應知
001_0066_c_09L如瓔珞經第二卷說四十善道者
001_0066_c_10L地別行修十善業行戒地故五化
001_0066_c_11L一切衆生者顯地通行

001_0066_c_12L
若菩薩化一切衆生

001_0066_c_13L
釋曰第三釋發光地文復有五
001_0066_c_14L炎天者此云時分餘文准上

001_0066_c_15L
13)菩薩一切衆生

001_0066_c_16L
釋曰第四釋炎慧地14)復有五
001_0066_c_17L率天者此云喜足道品卽是三十七
001_0066_c_18L道品

001_0066_c_19L
001_0066_c_20L「簡」作「蕳」{甲}「十地」下有「中」{甲}「了
001_0066_c_21L自行所行處」作「行自所行處」{甲}
「至」下有
001_0066_c_22L「二諦平等心」{甲}
「住」上有「言」{甲}「衆
001_0066_c_23L生」下有「者」{甲}
「中」下有「者」{甲}「土」無
001_0066_c_24L{甲}
「業」作「屬」{甲}「言」作「音」{甲}「也」
001_0066_c_25L無{甲}
「應」作「花」{甲}「菩薩」下有「住百億
001_0066_c_26L佛國土中」{甲}
「復」作「後」{甲}

001_0067_a_01L
e. 난승지難勝地

천억 불국토에 머무는 보살은 화락천化樂天의 왕이 되어 천억 개의 법문을 닦고 이제二諦·사제四諦·팔제八諦로 일체 중생을 교화합니다.

다섯 번째는 난승지難勝地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에 다섯 개의 구가 있다.
“이제”라는 것은 세속제와 제일의제이고, “사제”라는 것은 고제·집제·멸제·도제이다. “팔제”라고 한 것에 대해 여러 설이 다르다. 한편에서는 유작有作·무작無作112) 두 종류 사제를 합해서 팔제라고 설했다고 한다. 『본기』에 의하면,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와 분단分段·변역變易과 선善·불선不善과 정행正行을 팔제라고 한 것이다. 『현양성교론』 제8권에서는 행고제行苦諦와 괴고제壞苦諦와 고고제苦苦諦와 유전제流轉諦와 유식제流息諦와『유가사지론』에서는 ‘환멸還滅’이라고 하였다.잡염제雜染諦와 청정제清淨諦와 정방편제正方便諦를『유가사지론』에서는 ‘정가행正加行’이라고 하였다.팔제라고 한다.113)
〔『현양성교론』의 8제 중에〕 차례대로 〔앞의 3제는〕 세 가지 고苦이고, 유전제란 생사이고, 유식제란 열반이며, 〔잡염제란 혹惑·업業·생生의〕 세 종류 잡염이고, 〔청정제란〕 그것을 끊음으로써 획득된 청정한 무위이며, 〔정방편제란〕 그것을 끊는 방편의 성도에 해당하니, 이것을 팔제라고 한 것이다.
『유가사지론』 제46권에서도 『현양성교론』과 동일하게 설한다. 그런데 그 두 논에서는 개수를 늘이는 문에서 하나씩 늘여서 십제까지 이르니,114) 자세하게 설하면 그 논과 같다.
이제 『십지경』에 의거해서 14제 중에 뒤의 여덟 가지 ‘제’를 가지고 이 경문을 해석하겠다. 앞의 여섯 가지 제는 이 경에서 말한 이제와 사제이다. ‘팔제’라는 것에 대해 『십지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의 자상自相과 동상同相을 깨달았기 때문에 상제相諦를 잘 안다. 법의 차별을 깨달았기 때문에 차별제差別諦를 잘 안다. 음陰·계界·입入을 분별하는 것에 대해 깨달았기 때문에 설성제說成諦를 잘 안다. 몸과 마음의 고뇌를 깨달았기 때문에 사제事諦를 잘 안다. 모든 도道가 생겨나서 상속하는 것에 대해 깨달았기 때문에 생제生諦를 잘 안다. 필경에는 모든 열뇌熱惱를 소멸시키기 때문에 진무생지제盡無生智諦를 잘 안다. 불이不二의 행을 일으키기 때문에 영입도지제令入道智諦를 잘 안다. 모든 법상을 바로 깨달았기 때문에

001_0067_a_01L
1)菩薩化一切衆生

001_0067_a_02L
釋曰第五釋難勝地文有五句
001_0067_a_03L二諦者卽世俗諦第一義諦言四
001_0067_a_04L諦者卽苦集滅道諦言八諦者
001_0067_a_05L說不同一云有作無作二種四諦
001_0067_a_06L說爲八若依本記苦苦壞苦行苦
001_0067_a_07L分段變易不善正行名爲八
001_0067_a_08L顯揚第八行苦諦壞苦苦苦
001_0067_a_09L流息瑜伽云
還滅
雜染淸淨正方便
001_0067_a_10L瑜伽云
正加行
名爲八諦解云如次三苦
001_0067_a_11L流轉生死流息涅槃2)三種雜染
001_0067_a_12L斷彼所得淸淨無爲3)卽彼能斷方便
001_0067_a_13L聖道名八諦也若依瑜伽4)第四十
001_0067_a_14L亦同顯揚然彼二5)增數門中
001_0067_a_15L增一至十廣說如彼今依十地
001_0067_a_16L四諦中後八種諦以釋此文前之
001_0067_a_17L六諦6)卽此經中二諦四諦言八諦
001_0067_a_18L十地經云覺法自相同相故
001_0067_a_19L知相諦覺法差別故善知差別諦
001_0067_a_20L分別陰界入故善知說成諦覺身心
001_0067_a_21L苦惱故善知事諦覺諸道生相續
001_0067_a_22L7)善知生諦畢竟滅一切熱惱故
001_0067_a_23L善知盡無生智諦起不二行故善知
001_0067_a_24L令入道智諦正覺一切法相故善知

001_0067_b_01L일체보살지차제성취제一切菩薩地次第成就諦를 잘 알고 또 집여래지제集如來智諦를 잘 안다. 이것은 신해信解의 힘으로 아는 것이지 일체구경지一切究竟智를 얻어서 아는 것은 아니다.”115)
『십지경』에서는 아홉 개의 제를 설했는데 어째서 팔제라고 하는가?
이 경의 의도는 묘각의 뛰어남을 나타내려고 〔여덟 번째 제를〕 두 개의 제로 나눈 것이고,116) 『십지경론』의 의도는 동일한 대승임을 밝히려고 〔그 두 개의 제를〕 합해서 한 개로 삼았으니, 앞의 일곱 가지 제는 대승과 소승에 공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이 경은 팔제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다.

f. 현전지現前地

십만억 불국토에 머무는 보살은 타화천他化天의 왕이 되어 십만억 개의 법문을 닦고 십이인연十二因緣의 지혜로 일체 중생을 교화합니다.

여섯 번째는 현전지現前地를 해석한 것이다. 이에 또한 다섯 개의 구가 있으니,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g. 원행지遠行地

백만억 불국토에 머무는 보살은 초선初禪의 왕이 되어 백만억 개의 법문을 닦고 방편지方便智와 원지願智로 일체 중생을 교화합니다.

일곱 번째는 원행지遠行地를 해석한 것이다. 이에 또한 다섯 개의 구가 있다.
“방편지와 원지”라고 한 것은 다음과 같다. 중생을 버리지 않고 법무아法無我의 〔가르침을〕 일으킨 것을 ‘방편지’라고 하니, 방편의 힘으로 일곱 가지 문을 지어서 중생의 일을 거두는 것이다. 원願의 힘으로 중생을 붙잡는 것을 항상 최우선으로 삼는 것을 ‘원지’라고 한다. 이 원지는 방편지의 제1문에 속하는 것이지, 십바라밀 중의 ‘방편과 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117)
‘일곱 가지 문’이란 다음과 같다.118) 첫째는 원력으로 중생을 붙잡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그 밖의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치법을 설하여 번뇌의 오염과 수번뇌를 소멸시키고 적멸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셋째는 모든 장애를 소멸시키기 위해서다. 넷째는 대법중회大法衆會에 모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가까이서 직접 보고 들어 공양하고 수행해서 복덕을 생하게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물었던 것에 대해 잘 해석해 주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것은 『십지경론』 제9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119)

h. 등관지等觀地

백만 미진수微塵數의 불국토에 머무는 보살은 제2선第二禪의 범왕梵王이 되어 백만 미진수의 법문을 닦고 방편지方便智와 신통지神通智를 짝지어 비추며 일체 중생을 교화합니다.

여덟 번째는 등관지等觀地를 해석한 것이다. 이에 또한 다섯 개의 구가 있다.

001_0067_b_01L一切菩薩地次第成就諦及善知集
001_0067_b_02L如來智諦以信解力故知非得一切
001_0067_b_03L究竟智故問經說九諦如何8)言八
001_0067_b_04L答經意欲顯妙覺勝故開爲二諦
001_0067_b_05L意欲明同大乘故合爲一數前之七
001_0067_b_06L諦通大小故故今此經依八諦說

001_0067_b_07L
9)菩薩化一切10)

001_0067_b_08L
釋曰第六釋現前地亦有五句
001_0067_b_09L上應知

001_0067_b_10L
若菩薩化一切衆生

001_0067_b_11L
釋曰第七釋遠行地亦有五句
001_0067_b_12L方便智願智者不捨衆生起法無我
001_0067_b_13L名方便智由方便力能作七門攝衆
001_0067_b_14L生事願力取生恒爲上首名爲願
001_0067_b_15L卽此願智當方便智第一門攝
001_0067_b_16L十度中方便及願言七門者一願力
001_0067_b_17L取生敎化餘衆生故二說對治
001_0067_b_18L滅煩惱染及隨煩惱使寂滅故三爲
001_0067_b_19L滅諸障故四於大法衆會集故五見
001_0067_b_20L聞親近供養修行生福德故六轉
001_0067_b_21L11)輪故七所問善釋故具如十地
001_0067_b_22L論第九卷說

001_0067_b_23L
若菩薩化一切衆生

001_0067_b_24L
釋曰第八釋等觀地12)亦有五句

001_0067_c_01L
“방편지와 신통지를 짝지어 비추며”라고 했는데, 진제와 속제를 짝지어 비추면서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을 ‘방편지’라고 하고, 관에 든 가운데 신통을 일으키기 때문에 ‘신통지’라고 하였다.

i. 선혜지善慧地

백만억 아승기 미진수의 불국토에 머무는 보살은 제3선第三禪의 대범왕大梵王이 되어 백만억 아승기 미진수의 법문을 닦고 사무애지四無礙智로 일체 중생을 교화합니다.

아홉째는 선혜지善慧地를 해석한 것이다. 이에 또한 다섯 개의 구가 있으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j. 법운지法雲地

불가설·불가설의 불국토에 머무는 보살은 제4선第四禪의 대정천왕大靜天王인 삼계의 주인이 되어 불가설·불가설의 법문을 닦고 이진삼매理盡三昧를 얻어서 부처님이 행하신 곳을 함께 하며 삼계의 근원을 다함으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니, 마치 부처님의 경계와 같습니다.

열 번째는 법운지法雲地를 해석한 것이다. 이에 또한 다섯 개의 구가 있다.
첫째는 거주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왕의 지위에 배속시킨 것이다. “대정천왕”이란 색구경천色究竟天120)의 마혜수라천왕摩醯首羅天王이다. “삼계의 주인”이라고 했는데, 삼계의 왕과 구별시키기 위해 ‘삼계의 주인’이라고 한 것이다.
셋째로 “불가설·불가설의 법문을 닦고”라는 것은 닦는 법문을 나타낸 것이다.
넷째로 “이진삼매를 얻어서” 이하는 법운지의 차별적 행을 해석한 것이다. 각행覺行이 이미 원만해진 것을 ‘이진理盡’이라고 하였다. 불·여래와 똑같이 미세한 장애를 끊은 것을 일컬어 “부처님이 행하신 곳을 함께 하며”라고 하였다. 무명은 삼계의 본원本原인데 이 지에서 다 없어지므로 “근원을 다함으로써”라고 하였다. 『본기』에서는 ‘아뢰야식은 이것을 본원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다섯째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니,

001_0067_c_01L雙照方便神通智者雙照眞俗互不
001_0067_c_02L13)爲方便於入觀中能發神通
001_0067_c_03L故名神通智

001_0067_c_04L
若菩薩化一切衆生

001_0067_c_05L
釋曰第九釋善慧地亦有五句
001_0067_c_06L文可知

001_0067_c_07L
若菩薩如佛境界

001_0067_c_08L
釋曰第十釋法雲地亦有五句
001_0067_c_09L居土寬狹如文可知二配屬王位
001_0067_c_10L大靜天王者色究竟天摩醯首羅天
001_0067_c_11L14)王言三界主者15)簡三界王故
001_0067_c_12L三界主三脩16)不可說不可說法門者
001_0067_c_13L顯習法門17)德理盡下釋地別行
001_0067_c_14L18)覺行已滿名曰理盡與佛如來
001_0067_c_15L斷細障名同佛行無明卽是三界本
001_0067_c_16L此地能盡名爲盡原若依本記
001_0067_c_17L阿賴耶識以此爲本原五敎化一切
001_0067_c_18L「菩薩」下有「住千億」{甲}「十」無{甲}「卽」
001_0067_c_19L作「無」{甲}
「第」作「初」{甲}「論」作「諦」{甲}
001_0067_c_20L「卽」作「無」{甲}「所」作「故」{甲}「言」作
001_0067_c_21L「云」{甲}
「菩薩」下有「住十萬億」{甲}「衆」
001_0067_c_22L下有「生」{甲}
「輪」無{甲}「亦」作「又」{甲}
001_0067_c_23L「違」下有「名」「王」下有「宮」{甲}「簡」
001_0067_c_24L作「蕳」
「不可說不可說法門者」作「不不可
001_0067_c_25L可說說法法門門者」{甲}
「德」作「得」{甲}
001_0067_c_26L「覺」作「學」{甲}

001_0068_a_01L마치 부처님의 경계와 같습니다.”라고 한 것은 법운지의 공통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 총괄적 결론

그러므로 모든 보살의 본업本業인 교화의 행이 청정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보살의 업을 결론지은 것이고, 나중은 여래의 업을 결론지은 것이다.

a. 보살의 업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b. 여래의 업

시방의 모든 여래들 또한 이 업을 닦아서 살바야의 과에 오르고 삼계의 왕이 되어 일체의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합니다.”

두 번째는 여래의 업에 대해 결론지은 것이다.

⑵ 왕의 찬탄

이때 백만억 항하사의 대중들이 각자 자리에서 일어나 한량없는 불가사의한 꽃을 뿌리고 한량없는 불가사의한 향을 사르며 석가모니불과 한량없는 대보살에게 공양하고서 합장한 채 바사닉왕이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을 들었다.

이하는 두 번째로 월광왕月光王이 게송으로 찬탄한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대중들이 공양한 것이고, 다음은 월광왕이 바로 찬탄한 것이며, 마지막의 “당시 모든” 이하는 대중들이 이익을 얻었음을 밝힌 것이다.

① 대중의 공양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경문에는 두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은 향과 꽃으로 공양한 것이고, 나중은 합장한 채 청문하는 것이다.
『십지경론』에 의하면 공양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이양利養공양이니, 의복이나 와구 등을 말한다. 둘째는 공경恭敬공양이니, 향과 꽃과 깃발과 덮개 등을 말한다. 셋째는 행行공양이니, 신행信行과 계행戒行 등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두 번째의 공경공양에 해당한다.

② 왕의 찬탄

〔왕이〕 이제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찬탄했다.

두 번째는 월광왕이 찬탄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게송의 문장을 발기하는 것이고, 나중은 게송으로 바로 찬탄한 것이다.

가) 게송을 발기함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게偈’라는 것에 대해 본래 두 가지 설이 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게’는 ‘갈竭’이니, 의미를 완전히 포괄하였기(竭盡) 때문에 ‘게’라고 이름한다.≻121)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른 범음에 따르면 ‘가타伽他(ⓢgāthā)’라고 하니, 여기 말로 ‘송頌’이라고 한다. ‘게’라고 한 것은 잘못 생략된 것이다. 그런데 설해지는 게에는 반드시 네 개의 구가 갖추어져야 한다. 범음 발타鉢陀(ⓢpada)는 여기 말로 ‘적迹’이라고 번역하는데, 비유하면 모든 코끼리의 네 발자국(四跡)이 몸을 이루는 것처럼 ‘게’도 이와 같다.≻

001_0068_a_01L衆生如佛境界者顯地通行

001_0068_a_02L
是故1)2)行淨

001_0068_a_03L
釋曰第三總結文別有二初結菩
001_0068_a_04L薩業後結如來業此卽初也

001_0068_a_05L
若十方無量衆生

001_0068_a_06L
釋曰第二結如來業

001_0068_a_07L
爾時3)波羅蜜

001_0068_a_08L
釋曰自下第二月光偈讚於中有三
001_0068_a_09L初大衆供養次月光正讚後時諸下
001_0068_a_10L辨衆得益此卽初也文有兩節
001_0068_a_11L香華供養後合掌聽聞依十地論
001_0068_a_12L養有三種一者利養供養謂衣服臥
001_0068_a_13L具等二者4)恭敬供養謂香華幡蓋
001_0068_a_14L三者行供養謂修行信成戒行等
001_0068_a_15L當第二敬供養也

001_0068_a_16L
今於佛前以偈歎5)

001_0068_a_17L
釋曰第二月光正讚於中有二
001_0068_a_18L發起頌文後以偈正讚此卽初也
001_0068_a_19L言偈者自有二說一云偈者竭也
001_0068_a_20L攝義竭盡故名爲偈一云依正梵
001_0068_a_21L6)名爲伽他此云頌而言偈者
001_0068_a_22L訛略也然所說偈必具四句梵音
001_0068_a_23L鉢陀此翻爲迹7)外譬8)眞如諸9)
001_0068_a_24L四跡成身偈亦如是

001_0068_b_01L
나) 게송으로 찬탄함

“세존은 도사이고 금강의 체이니
심행이 고요하게 법륜을 굴리시네.

이하는 두 번째로 게송으로 바로 찬탄한 것이다. 이 중에 모두 29개의 게송과 반半 송이 있는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처음 한 게송과 반 송은 부처님의 공덕을 간략하게 찬탄한 것이다. 다음 “오인五忍의” 이하 25개의 게송은 오인의 공덕을 자세하게 찬탄한 것이다. 마지막 “여래의” 이하에 3개의 게송이 있으니, 부처님의 교화의 업을 찬탄한 것이다.

㈎ 처음의 1송 반半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한 곳에서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에 나오는 반 게송은 부처님 자체를 찬탄한 것이니, 곧 불보佛寶를 찬탄한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반 게송은 부처님의 설법을 찬탄한 것이니, 곧 법보法寶를 찬탄한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반 게송은 부처님이 거두신 대중을 찬탄한 것이니, 곧 승보僧寶를 찬탄한 것이다.

㉮ 불보佛寶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게송의 문구에 대해 여러 설이 다르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게송의 처음 두 구는 부처님의 삼업에 다섯 가지 의미가 갖추어졌음을 밝힌 것이다. 첫째로 “세존世尊”이란 위덕威德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도사導師”란 지혜를 갖추었다는 것이다. 셋째로 “금강의 체(金剛體)”란 법신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넷째로 “심행이 고요하게(心行寂滅)”라는 것은 해탈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다섯째로 “법륜을 굴리시네.”라는 것은 타인을 교화하는 공덕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다섯 가지 중에서 ‘금강의 체’란 법신의 공덕을 찬탄한 것이고, 나머지 세 구는 수용신受用身을 찬탄한 것이며, ‘법륜을 굴린다’는 것은 그의 화신化身을 찬탄한 것이다. 삼신의 개별적 모습은 구체적으로는 『별장』의 설과 같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의 두 구는 부처님의 삼밀三密122)을 찬탄한 것이다. 처음의 한 구는 부처님의 신밀身密을 찬탄한 것이다. 일체의 공덕을 갖추어서 대중들에게 존중받는 자를 ‘세존’이라 하고, 상호相好123)가 원만하여 중생을 인도하는 자를 ‘도사’라고 한다. 그 몸이 파괴되지 않는 것이 마치 금강과 같으므로 ‘금강의 체’라고 하였다. 뒤의 구에서는 두 종류 밀密을 찬탄하였다. 처음의 네 자字는 그의 의밀意密을 찬탄한 것이다. 내면으로 진여를 증득하여 능能·소所의 상을 떠났기 때문에 ‘심행이 적멸하다’고 하였다. 뒤의 세 자는 그의 어밀語密을 찬탄한 것이다. 멀든 가깝든 똑같이 듣고

001_0068_b_01L
世尊導師金剛體心行寂滅轉法輪

001_0068_b_02L
釋曰自下第二以偈正讚此中總有
001_0068_b_03L二十九10)行偈半大分爲三初一偈
001_0068_b_04L略歎佛德次五忍下二十五偈
001_0068_b_05L廣歎五忍德後如來下有三偈
001_0068_b_06L佛化業就歎佛德文別有三初有
001_0068_b_07L半偈歎佛自體卽歎佛寶次有半
001_0068_b_08L歎佛說法卽歎法寶後有半偈
001_0068_b_09L歎佛攝衆卽歎僧寶此卽初也
001_0068_b_10L此頌文諸說不同若依本記頌初
001_0068_b_11L二句明佛三業具足五義一世尊者
001_0068_b_12L威德具足二導師者智慧具足
001_0068_b_13L金剛體者法身具足四心行寂滅者
001_0068_b_14L解脫具足五轉法輪者化他具足
001_0068_b_15L五中金剛體者歎法身德餘之
001_0068_b_16L三句歎受用身轉法輪者讚其化
001_0068_b_17L三身別相具如別章一云初二
001_0068_b_18L讚佛三密11)之一句12)佛身
001_0068_b_19L具一切德衆所尊重名爲世尊
001_0068_b_20L相好圓滿引導衆生名爲導師
001_0068_b_21L身不壞猶如金剛故名金剛體
001_0068_b_22L後句中讚二種密初之四字讚其
001_0068_b_23L意密內證眞如離能所相故名心
001_0068_b_24L行寂滅後之三字讚其語密遠近

001_0068_c_01L가로막히는 곳이 없음을 일컬어 ‘법륜을 굴린다’고 한다. 자세하게 분별하면 『삼밀경三密經』의 설과 같다.124)

㉯ 법보法寶

팔변의 홍음으로 대중 위해 설하시니
이때 백만억 대중이 도를 얻었네.

두 번째는 부처님의 설법을 찬탄한 것이다. 경문에는 두 개의 절이 있다. 처음은 〔부처님의〕 오묘한 언변을 찬탄한 것이고, 나중은 〔대중이〕 이익을 얻었음을 찬탄한 것이다.
언사가 교묘한 것을 ‘변辨’이라 하고, 멀든 가깝든 다 두루 듣는 것을 ‘홍洪’이라 한다. ‘여덟 가지 음성’이라는 것에 대해 예를 들어 『범마유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음성에는 여덟 종류가 있다. 첫째는 가장 좋은 음성(最好聲)이고, 둘째는 알기 쉬운 음성(易了聲)이며, 셋째는 부드러운 음성(濡軟聲)이고, 넷째는 조화로운 음성(調和聲)이며, 다섯째는 숭고한 지혜의 음성(尊慧聲)이고, 여섯째는 그릇됨이 없는 음성(不誤聲)이며, 일곱째는 깊고 오묘한 음성(深妙聲)이고, 여덟째는 여자가 아닌 자의 음성(不女聲)이다.”125) 또 『보살영락본업경』에도 여덟 종류 음성이 나오는데, 말하자면 내內·외外·인因·과果 그리고 네 가지 무애(四無礙)의 음성을 여덟 가지로 삼은 것이다. 또 『현우경』과 『십주단결경』 등에도 여덟 종류가 나오는데, 이와는 다르다.126) 번거로울까 봐 서술하지 않겠다.
“이때 백만억 대중들이 도를 얻었네.”라고 한 것은 두 번째로 대중들이 이익을 얻었음을 찬탄한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 승보僧寶

이때 여섯 하늘과 사람들이 출가도에 들어
비구중이 되어 보살행을 이루었네.

세 번째는 부처님이 거두신 대중을 찬탄한 것이다. 말하자면 법을 설한 당시에 육욕천六欲天의 모든 천들과 사람 대중들이 출가도와 보살행 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어째서 육욕천이 출가 대중 가운데 있는가?

001_0068_c_01L同聞無所壅隔名轉法輪若廣分
001_0068_c_02L如三密經

001_0068_c_03L
八辨洪音爲衆說時衆得道百萬億

001_0068_c_04L
釋曰第二讚佛說法文有兩節
001_0068_c_05L讚妙辨後讀13)德益言詞巧妙爲辨
001_0068_c_06L遠近皆遍曰洪言八音者如梵魔喩
001_0068_c_07L經云佛說法聲有其八種一最好聲
001_0068_c_08L二易了聲三濡軟聲四調和聲11)
001_0068_c_09L慧聲六不15)誣聲七深妙聲八不女
001_0068_c_10L又瓔珞經有八種聲謂內外因
001_0068_c_11L及四無礙聲卽爲八也又賢愚經
001_0068_c_12L十住斷結經等亦說八種與此不同
001_0068_c_13L恐繁不述言時衆得道百萬億者
001_0068_c_14L二讚衆得益如經可知

001_0068_c_15L
時六天人16)皆出家道成比丘衆菩薩行

001_0068_c_16L
釋曰第三歎佛攝衆謂說法時
001_0068_c_17L欲諸天及人民衆成出家道及菩
001_0068_c_18L薩行等問如何六天有出家衆17)益依
001_0068_c_19L「至」無{甲}「行淨」上有「一切菩薩本業」{甲}
001_0068_c_20L「波羅蜜」上有「般若」{甲}「恭」無{甲}「曰」
001_0068_c_21L作「言」{甲}
「音」作「意」{甲}「外」無{甲}
001_0068_c_22L「眞」無{甲}
「象」作「像」{甲}「行」無{甲}
001_0068_c_23L「之」作「云」{甲}
「佛」無{甲}「德」作「得」{甲}ㆍ
001_0068_c_24L「德」疑「得」{乙}
「五」下有「尊」{甲}{乙}「誣」
001_0068_c_25L作「誤」{甲}
「皆」無{甲}ㆍ「皆」疑無{乙}「益」
001_0068_c_26L作「答」{甲}

001_0069_a_01L
『본기』에 의하면 출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마음으로 출가하는 것이고, 둘째는 외형적으로 출가하는 것이다. 지금 육욕천은 불법佛法에 의지해서 모두 생사의 집을 벗어났기 때문에 〔출가 대중이라고 해도〕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 25개의 게송

五忍功德妙法門   오인의 공덕 설한 묘한 법문을
十四正士能諦了   열네 분 보살들이 확실히 알았으니
三賢十聖忍中行   삼현과 십성은 인 중에서 행하고
唯佛一人能盡原   부처님 한 분만 근원을 다하였네.

이상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간략하게 다 찬탄하였다. 이하는 두 번째로 25개의 게송으로 오인을 자세하게 찬탄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 나온 한 송은 오인을 총괄해서 찬탄한 것이다. 나중의 “불佛·중衆…” 이하 24개의 게송은 오인을 따로따로 찬탄한 것이다.

㉮ 총괄적 찬탄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경문에는 세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의 한 구는 알려지는 법(所了法)을 찬탄한 것이다. 다음에 나온 한 구는 아는 사람(能了人)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에 나온 두 구는 그들의 우열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는 부처님 이외의 사람들은 장애를 아직 제거하지 못했으므로 다 궁구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지智’라고 하지 않고 다만 ‘인忍’이라고 하였다. 오직 부처님 한 분만이 인의 근원을 다하실 수 있으니, 장애가 이미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 개별적 찬탄

불·중·법의 바다 같은 삼보 창고
한량없는 공덕을 그 안에 거두었네.

이하는 두 번째로 24개의 게송이 있으니, 오인을 따로따로 찬탄한 것이다. 경문은 네 가지로 구별된다. 첫째로 다섯 개의 게송이 있으니, 복인伏忍을 찬탄한 것이다. 둘째 “선각” 이하 다섯 개의 게송은 신인信忍을 찬탄한 것이다. 셋째 “염혜” 이하에 네 개의 게송이 있으니, 순인順忍을 찬탄한 것이다. 넷째 “원달” 이하에 열 개의 게송이 있으니, 무생인無生忍과 적멸인寂滅忍 두 가지 인을 합해서 해석한 것이다.

a. 복인伏忍
복인을 설한 곳에서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에 나온 한 개 반의 게송은 방편위를 읊은 것이다. 다음에 나온 한 개의 게송은 정위正位를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에 나온 두 개 반의 게송은 복인의 세력을 나타낸 것이다.

a) 방편위方便位
전자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2구는 믿음의 근거가 되는 경계를 밝힌 것이다. 다음에 나온 2구는 신심을 냈음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에 나온 2구는 왕위王位에 배속시킨 것이다.

(a) 믿음의 근거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삼보의 뜻을 해석하면 구체적으로는 『별장』의 설과 같다.

001_0069_a_01L本記云出家二種一心出家二形
001_0069_a_02L出家今六欲天依於佛法1)皆出
001_0069_a_03L生死家故不相違

001_0069_a_04L
五忍功德能盡原

001_0069_a_05L
釋曰上來略歎佛德訖自下第二二
001_0069_a_06L十五偈廣歎五忍於中有二初有
001_0069_a_07L一頌總歎五忍後佛衆下二十四頌
001_0069_a_08L別讚五忍此卽初也文有三節初之
001_0069_a_09L一句讚所了法次有一句辨能了
001_0069_a_10L後有二句顯其勝劣此明除佛
001_0069_a_11L以外障未除故不能窮盡故不名智
001_0069_a_12L但名爲忍唯佛一人能盡忍源
001_0069_a_13L已盡故

001_0069_a_14L
佛衆法海三寶藏無量功德攝在中

001_0069_a_15L
釋曰自下第二有二十四2)別讚
001_0069_a_16L五忍文別有四一有五偈歎伏忍
001_0069_a_17L二善覺下五偈歎信忍三炎慧下有
001_0069_a_18L四偈歎順忍四遠達下有十偈合釋
001_0069_a_19L無生寂滅二忍就伏忍中文別有三
001_0069_a_20L初有一偈半頌方便次有一偈3)
001_0069_a_21L正位4)二偈半顯勢力前中有三
001_0069_a_22L初之二句信所依境次有二句
001_0069_a_23L發信心後有二句配屬王位此卽
001_0069_a_24L初也釋三寶義具如別章

001_0069_b_01L
(b) 신심을 냄

십선의 보살은 큰 마음을 발하여
길이 삼계의 괴로운 윤회 바다를 떠나니

두 번째는 그의 발심을 밝힌 것이다. 『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십신十信의 보살은 큰 마음을 발하여 삼계를 벗어나려 하는데, 아직 삼계를 영원히 벗어날 수는 없다 해도 삼악도의 고통을 멀리 떠날 수 있다. 그러므로 총괄해서 ‘길이 삼계를 떠난다’고 한 것이다.≻

(c) 왕위에 배속시킴

중품·하품의 십선은 속산왕이고
상품의 십선은 철륜왕이네.어떤 판본에 ‘보寶’라고 한 것은 오류이다.

세 번째는 왕위에 배속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십선의 업도 중에서 하품은 속산왕粟散王의 지위를 얻고, 상품은 철륜왕鐵輪王의 지위를 얻는다. 소왕小王들이 많은 것이 마치 곡식들을 뿌려 놓은 것과 같으므로 비유를 따라서 호칭을 세워 ‘속산왕’이라 하였다. 『보살영락본업경』에 의하면 십선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상품은 철륜왕이 되고 중품은 속산왕이 되며 하품은 인왕人王이 된다.127)

b) 정위正位

習種銅輪二天下   습종성은 두 천하의 동륜왕이고
銀輪三天性種性   세 천하의 은륜왕은 성종성이며
道種堅德轉輪王   도종성의 견덕은 전륜왕이니
七寶金光四天下   칠보의 황금빛으로 네 천하를 비추네.

두 번째의 한 게송은 그 정위正位를 읊은 것이다. 말하자면 십주보살인 습종성은 동륜왕銅輪王이 되어 두 천하를 다스리고, 십행보살인 성性종성은 은륜왕銀輪王이 되어 세 천하를 다스리며, 십회향 보살인 도종성은 금륜왕金輪王이 되어 네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일곱 보배’라고 한 것은 윤보輪寶, 군사를 감독하는 신하(主兵臣寶), 창고를 감독하는 신하(主藏臣寶), 코끼리(象寶), 말(馬寶), 여인(女寶), 여의주(如意珠寶) 등의 보배를 말한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 보배는 네 종류 윤왕들이 모두 갖고 있는가, 아닌가?
모두 다 갖추고 있지만 우열의 차이가 있다. 따라서 『대비바사론』 제30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전륜왕의 힘도 일정하지 않다. 네 개의 주洲를 다스리는 왕은 나라연那羅延의 힘을 갖고 있다.‘나라연’이란 여기 말로 ‘인종人種’이라고 한다. 사람과 천녀가 교합해서 낳은 자로서, 근본은 사람의 종류이기 때문에 ‘인종’이라 한다.세 개의 주를 다스리는 왕은 벌랑가伐浪伽128)의 힘을 갖고 있다. 두 개의 주를 다스리는 왕은 발라새건제鉢羅塞建提의 힘을 갖고 있다.‘발라새건제’란 대력을 지닌 귀신으로서 귀취鬼趣에 속한다.

001_0069_b_01L
十善菩薩苦輪海

001_0069_b_02L
釋曰5)二明其發心依本記云
001_0069_b_03L信菩薩由發大心求出三界雖未
001_0069_b_04L卽能永出三界以能遠離三惡道苦
001_0069_b_05L是故總言長別三界

001_0069_b_06L
中下品鐵輪王或有本云
寶者謬也

001_0069_b_07L
釋曰第三配屬王位謂十善業道中
001_0069_b_08L下品者得粟散王若上品者得鐵
001_0069_b_09L輪王小王衆多猶如散粟從喩立
001_0069_b_10L名粟散王依本業經十善有三
001_0069_b_11L上品鐵輪中品粟散下品人王

001_0069_b_12L
習種四天下

001_0069_b_13L
釋曰第二一偈頌其正位謂十住菩
001_0069_b_14L薩習種性作銅輪王王二天下十行
001_0069_b_15L菩薩性種性銀輪王王三天下
001_0069_b_16L迴向菩薩道種性金輪王王四天下
001_0069_b_17L言七寶者輪寶主兵臣寶主藏臣
001_0069_b_18L象寶馬寶女寶6)如意珠寶
001_0069_b_19L如是七寶四種輪王皆具有不
001_0069_b_20L皆悉具有而勝劣異故大婆沙三十
001_0069_b_21L卷云諸轉輪王力亦不定王四洲者
001_0069_b_22L有那羅延力那羅延者此名人種人與天女
和合7)王而生根本是人種類
001_0069_b_23L故名
人種
王三洲者8)9)根伽力王二
001_0069_b_24L洲者有鉢羅塞建提力是大力鬼神
是鬼趣攝也

001_0069_c_01L한 개의 주를 다스리는 왕은 마하낙건나摩訶諾健那129)의 힘을 가진다.‘마하낙건라’는 여기 말로 ‘노형露形’이라고 하니, 이는 사람 중의 신神이다.이들의 네 가지 윤보에도 차별이 있다. 네 개의 주를 다스리는 왕은 금으로 된 윤보를 갖고 있으니, 그 양이 정확히 4구로사俱盧舍130)이다. 세 개의 주를 다스리는 왕은 은으로 된 윤보를 갖고 있으니, 그 양이 정확히 3구로사이다. 두 개의 주를 다스리는 왕은 동으로 된 윤보를 갖고 있으니, 그 양이 정확히 2구로사이다. 한 개의 주를 다스리는 왕은 철로 된 윤보를 갖고 있으니, 그 양이 정확히 1구로사이다. 네 가지 윤보에 이런 차별이 있는 것처럼, 그 밖의 보배도 우열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네 개의 주를 다스리는 왕은 나머지 다른 보배도 가장 수승하고 내지는 한 개의 주를 다스리는 왕은 그 밖의 보배도 가장 하열하다.”131)

c) 세력

복인의 성스런 모태는 30인이니
십신과 십지와 십견심이요

세 번째는 그것의 세력을 나타낸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의 한 게송은 부처님에 대해서 〔그 복인이 지닌〕 힘을 밝힌 것이고, 나중의 한 송 반은 보살에 대해서 〔그 복인이 지닌 힘을〕 밝힌 것이다.

(a) 불佛과 복인의 관계
전자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구는 세 종류 복인을 표시한 것이고, 나중에 나온 두 구는 세력을 바로 찬탄한 것이다.

ⓐ 세 종류 복인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 구는 30인忍을 총괄해서 표명한 것이다. 다음 구는 세 가지 지위에 따로 배속시킨 것이다. ‘십신十信’이란 십신의 계위고, ‘십지十止’란 십해十解의 계위며, ‘십견심十堅心’이란 십행의 계위다.≻
지금 해석하면 그렇지 않다. 십신은 십해에 해당하고 또한 십주十住라고도 하고,

001_0069_c_01L一洲者有摩訶10)路健那力此名露形
是人中神

001_0069_c_02L此四輪寶亦有差別王四洲者
001_0069_c_03L金輪寶其量正等四俱盧舍王三洲
001_0069_c_04L有銀輪寶其量正等三俱盧舍
001_0069_c_05L王二洲者有銅輪寶其量正等二俱
001_0069_c_06L11)廬舍王一洲者有鐵輪寶其量正
001_0069_c_07L等一俱盧舍如四輪寶有此差別
001_0069_c_08L知餘寶亦有勝劣謂王四洲者餘寶
001_0069_c_09L最勝12)乃至一洲者餘寶最劣

001_0069_c_10L
伏忍聖胎13)賢心

001_0069_c_11L
釋曰第三顯其勢力文別有二
001_0069_c_12L14)之一偈對佛辨力後一偈半就菩
001_0069_c_13L薩辨前中有二初之二句標三伏
001_0069_c_14L後有二句正讚勢力此卽初也
001_0069_c_15L若依本記初句15)總標三十忍次句
001_0069_c_16L別配三位言十信者卽十信位
001_0069_c_17L止者卽十解位十堅心者卽十行
001_0069_c_18L今解不爾十信卽十解亦名十
001_0069_c_19L「皆」無{甲}ㆍ「皆」疑無{乙}「頌」作「偈」{甲}
001_0069_c_20L「顯」作「頌」{甲}「二」作「兩」{甲}「二」作
001_0069_c_21L「三」{甲}
「如意」無{甲}「王」無{甲}ㆍ「王」疑
001_0069_c_22L無{乙}
「代根」作「伐浪」{甲}「根」作「限」
001_0069_c_23L{乙}
「路」作「諾」{甲}ㆍ「路健」一作「洛諾」{乙}
001_0069_c_24L「廬」作「盧」{甲}「乃至」下有「王」{甲}
001_0069_c_25L「賢」作「堅」{甲}
「之」作「云」{甲}「總標」作
001_0069_c_26L「摽」{甲}

001_0070_a_01L십행을 십지十止라고 하며, 십회향을 십견심이라고 하니, 앞에서 이미 설했던 것과 같다.132)

ⓑ 복인의 힘

삼세의 제불도 이 중에서 행하였으니
이 복인에서 나지 않은 이 없다네.

두 번째는 복인의 세력을 찬탄한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b) 보살과 복인의 관계

모든 보살행의 본원이므로
발심하고 신심내기 어렵다지만

두 번째는 보살에 대해서 〔그 복인이 갖는 힘을〕 밝힌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발심을 표시한 것이고, 나중은 〔자리·이타의〕 두 가지 이익을 해석한 것이다.

ⓐ 발심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발심”이라 한 것에 대해 『현양성교론』 제2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 종류의 발심이 있다. 첫째는 세속발심世俗發心이다.133)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지자智者를 따르며 그 앞에 공손하게 머물면서 증상된 뜻을 일으켜서 서원의 말을 발설하면 그것을 장로가 기억(憶念)하는 것이다. 혹은 성자가 기억한다고 하거나, 혹은 오파타야134)가 기억한다고 한다. ‘저는 이와 같은 이름으로 오늘부터 처음 무상보리심을 발하였으니, 이는 모든 유정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무릇 제가 닦는 육바라밀은 다 무상보리를 증득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 모든 보살마하살과 화합하여 출가합니다. 원컨대 존자께서 제가 보살임을 증지해 주십시오.’ 두 번째와 세 번째도 이와 같다.135) 둘째는 증법성발심證法性發心이다.136) 예를 들어 어떤 한 사람이 이미 첫 번째 겁의 아승기야(제1아승지겁)를 거쳤다면 그는 이미 보살 초지인 극희지를 증득하였고 이미 보살정菩薩定의 무생위無生位에 들었으며 이미 무상보리와 보리의 방편을 여실하게 알았으며 이미 자신이 장차 대보리의 과果에 가까워질 것이고 거의 가까워졌음을 깨닫는다. 그는 자타가 다 평등함을 이해했기 때문에 대아大我137)의 뜻을 획득하고, 이미 유전流轉에 머물지 않는 적멸의 보살도에 이르렀기 때문에 광대廣大한 뜻을 획득한다. 이와 같기 때문에 대보리의 원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을 ‘증법성발심’이라고 한다.”138)
『대승장엄경론』 제7권에 의하면 발심에는 네 종류가 있다.

001_0070_a_01L十行名十止十迴向名十堅心
001_0070_a_02L上已說

001_0070_a_03L
三世諸佛伏忍生

001_0070_a_04L
釋曰第二正讚勢力如文可1)

001_0070_a_05L
一切菩薩信心難

001_0070_a_06L
釋曰第二對菩薩辨於中有二
001_0070_a_07L標發心後釋二利此卽初也言發
001_0070_a_08L心者顯揚第二有二發心一世俗
001_0070_a_09L發心謂如有一隨智者前恭敬而住
001_0070_a_10L起增上意發誓願言長老憶念
001_0070_a_11L言聖者憶念2)者鄔3)波柁耶我如
001_0070_a_12L是名從今日始發無上菩提心爲欲
001_0070_a_13L饒益諸有情故從今已往凡我所修
001_0070_a_14L六波羅蜜皆爲證得無上菩提故我
001_0070_a_15L今與諸菩薩摩訶薩和合出家願尊
001_0070_a_16L證知我是菩薩第二第三亦4)復如
001_0070_a_17L二證法性發心謂如有一已過第
001_0070_a_18L一劫阿僧5)祇耶已證菩薩初極喜地
001_0070_a_19L已入菩薩定無生位已如實知無上
001_0070_a_20L6)菩提方便已悟自身將近等近大菩
001_0070_a_21L7)解自他悉平等故得大乘意
001_0070_a_22L已至不住流轉寂滅菩薩道故得廣
001_0070_a_23L大意由如是故於大菩提願不退轉
001_0070_a_24L8)是證發心莊嚴第七發心有四

001_0070_b_01L“첫째는 신행信行발심으로서 신지信地를 말한다. 둘째는 정의淨依발심으로서 〔십지 중〕 앞의 일곱 가지 지地를 말한다. 셋째는 보득報得발심으로서 뒤의 세 가지 지를 말한다. 넷째는 무장無障발심으로서 여래지를 말한다.”139)
『유가사지론』 제72권에서는 열 종류 발심을 설하는데 번거로울까 봐 서술하지 않겠다.
이제 『인왕경』의 이 문장은 두 가지 발심 중에서는 세속발심에 해당하고, 네 종류 발심 중에서는 신행발심에 해당한다. 『보살영락본업경』에 의하면 이것은 십신의 지위에 있는 것이니, 즉 열 가지 신심을 말한다. 신심마다 열 가지가 있어서 백 가지 법문을 닦게 되기 때문에 ‘행의 근본’이라 한다.140) 혹은 십주 중의 초발심주初發心住라고 볼 수도 있다.

ⓑ 자리와 이타

신심을 얻으면 결코 물러서지 않고
나아가 무생의 초지도에 들어가

두 번째는 〔자리·이타의〕 두 가지141) 이익되는 행을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의 두 구는 자리행을 밝힌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한 구는 이타행을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의 한 구는 두 가지 이익에 대해 동시에 결론지은 것이다.

ㄱ. 자리행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신심”이라 했는데, 『대승장엄경론』에 의하면 이것은 상품上品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 논의 제7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아승기겁 동안 다 행하고 나서, 길이 믿음을 증장시키니, 많은 선善들이 믿음을 따라 모여, 또한 바다처럼 가득 갖추어지네. 〔‘아승기겁 동안 다 행하고 나서 길이 믿음을 증장시킨다’는 것은,〕 모든 보살행을 1아승기겁142) 동안 다 행하고 나면 이때 믿음을 키워서 비로소 상품에 이른다는 것이다.”143) 그 문장에 준해 보면 〔저 신심은〕 십회향에 해당한다. 지금 이 『인왕경』 문장은 십주의 제7불퇴주第七不退住를 거듭 찬탄한 것이다.
이 종성보살은 이 경에서 말한 것처럼 결코 물러나지 않는 것인가? 혹은 물러나는 경우가 있는가? 설사 그렇다면 어떤 과실이 있는가? 만약 물러난다고 하면, 이 『인왕경』에서 설한 것과 어떻게 회통시켜 해석하겠는가? 만약 물러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보살영락본업경』 등의 설과 어떻게 회통시켜 해석하겠는가?
이 의미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다르다.
첫째, 용맹보살종에서는 종성보살은 결정코 불퇴不退라고 한다. 따라서 『금강선론』제1권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001_0070_b_01L信行發心謂信地二淨依發心
001_0070_b_02L前七地三報得發心謂後三地
001_0070_b_03L無障發心謂如來地若依瑜伽七十
001_0070_b_04L說十種發心恐繁不述今此經
001_0070_b_05L二發心中世俗發心四種發心
001_0070_b_06L當信行發心若依本業在十信位
001_0070_b_07L十信心9)信心有十修百法門故言
001_0070_b_08L行本或十住中初發心住

001_0070_b_09L
若得信心初地道

001_0070_b_10L
釋曰第二釋自利行文別有三
001_0070_b_11L之二句明自利10)次有一句顯利
001_0070_b_12L他行11)後一句雙結二利此卽初也
001_0070_b_13L言信心者依莊嚴論此當上品故彼
001_0070_b_14L第七云行盡阿僧祇長信令增長
001_0070_b_15L善隨信集亦具如海滿釋云若諸
001_0070_b_16L菩薩行行盡一阿僧祇劫爾時長養
001_0070_b_17L於信方至上品若准彼文當十迴
001_0070_b_18L今此經文重讚十住第七不退也
001_0070_b_19L問此種性菩薩爲如此經必不退耶
001_0070_b_20L或有退耶設爾何失若言退者
001_0070_b_21L經所說如何會釋若言不退本業經
001_0070_b_22L如何會釋解云此義兩釋不同
001_0070_b_23L一龍猛菩薩宗種性菩薩決定不退
001_0070_b_24L故金剛仙論第一卷中作如此說

001_0070_c_01L“그런데 이 습종성의 사람은 또한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종성이 결정된 자이고, 둘째는 종성이 결정되지 않은 자이다. … 결정되지 않은 자는 아직은 결정적으로 성지性地 내지는 초지에 들어갈 수는 없다. 간혹 나아가거나 물러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 선지식을 만나면 물러나지 않지만, 만나지 못하면 물러나서 외도 범부 및 이승의 지위에 들어간다. 혹은 성性종성도 여전히 물러나 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144) 마명보살馬鳴菩薩의 『기신론』에서도 이와 동일하게 설한다.145)
또 〔『금강선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낙장엄경』에서는 성지보살性地菩薩은 결정코 물러나지 않는다고 설한다. 그러므로 『보만론寶鬘論』 중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나온다.〕
어떤 사람이 용수보살에게 물었다. “『지지경地持經』에서 성지보살도 물러나서 아비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용수가 대답하였다. “『지지경』에서는 성지보살도 지옥에 떨어진다고 했지만 나는 감히 이런 말은 하지 않겠다. 어째서인가? 『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에서 성지보살은 끝내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또 『낙장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지보살이 일시에 염부제의 중생을 살해한다면 비록 이런 죄가 있다 해도 오히려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사천하 내지는 대천세계의 중생을 살해한다 해도 또한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이 사람은 광겁曠劫 동안 수행해서 제불을 많이 공양하여 공덕과 지혜의 선근이 무르익었으므로 비록 중죄를 짓는다 해도

001_0070_c_01L此習種性人亦有二種12)者性決定
001_0070_c_02L二者13)不定不定者未能決定入於
001_0070_c_03L性地乃至初地容有進退故言不
001_0070_c_04L若遇善知識卽不退若不遇者退
001_0070_c_05L入外凡及二乘地或性種性猶退墮
001_0070_c_06L地獄馬鳴菩薩起信論中亦同此說
001_0070_c_07L又樂莊嚴經中說性地菩薩決定不
001_0070_c_08L退是故寶鬘論中有人間龍樹菩薩
001_0070_c_09L地持經中道性地菩薩退墮阿毘
001_0070_c_10L地獄此義云何龍樹菩薩答言地持
001_0070_c_11L經中雖云性地菩薩14)墮地獄我不
001_0070_c_12L15)明作如是說何以故不增不減經中
001_0070_c_13L明性地菩薩畢竟不墮地獄16)又樂
001_0070_c_14L莊嚴經中說性地菩薩若一時殺閻
001_0070_c_15L17)提衆生雖有此罪猶不墮地獄
001_0070_c_16L若殺四天下乃至大千世界衆生
001_0070_c_17L不墮地獄何以故此人曠劫修行
001_0070_c_18L供諸佛功德智慧善根純18)雖造
001_0070_c_19L「知」作「者」{甲}「者」作「言」{甲}「波柁」
001_0070_c_20L作「婆拕」{甲}
「復」作「後」{甲}「祗」作「企」
001_0070_c_21L{甲}
「菩提」下有「及菩提」{甲}「果」下有
001_0070_c_22L「證」{甲}
「是」下有「謂」{甲}「信心」作「心
001_0070_c_23L心」{甲}
「行」無{甲}「後」下有「之」{甲}
001_0070_c_24L「者」下有「一」{甲}
「不定不定」作「不不定定」
001_0070_c_25L{甲}
「墮」下有「於」{甲}「明」作「敢」{甲}{乙}
001_0070_c_26L「又」無{甲}「提」無{甲}「熟」作「就」{甲}

001_0071_a_01L복덕의 힘이 크기146) 때문에 죄가 점차 소멸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는 마치 뜨거운 철 냄비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저절로 차츰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이로써 증험하여 알 수 있으니, 성지보살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경의 어긋나는 점을 어떻게 회통시켜 해석하겠는가?
『지지경』에서 ‘들어간다’고 말한 것은 십지 이전의 보살을 재촉하고 겁주어서 그로 하여금 두려움을 내서 속히 초지를 증득하게 하려는 것이지 실제로 아비지옥에 들어간다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십지경』에서 권한 것과 같으니, 팔지보살에게 ‘그대들은 적멸정寂滅定에 즐겨 머물지 말라’고 권한다. 그런데 팔지보살은 이미 지위가 공용을 벗어나 영원히 의식적으로 힘쓰는 일이 없고 순간순간 생함이 없이 자유자재로 저절로 나아가는데, 어찌 적멸정에 즐겨 머무는 일이 있어서 권유를 빌어서 비로소 나아가겠는가. 제9지와 제10지와 내지는 불지佛地에 빨리 들어가기를 바라기 때문에 마치 권하는 듯했지만147) 실제로 적멸정에 즐겨 머문다는 말은 아니다. … 이것도 이와 같으니, 실제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떨어진다’고 한 것은 빨리 초지를 증득하게 하려는 것이지 실제로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따라서 성종성 이상은 한결같이 불퇴不退임을 알 수 있다.148)
둘째, 자씨보살종에서는 종성보살도 물러나서 악취에 들어가거나 외도 범부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앞에서 인용했던 『보살영락본업경』 제1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상심信想心 중에서 행하는 자는 퇴분退分선근이다. 모든 선남자는 1겁이나 2겁 내지는 10겁 동안 십신을 수행해야 십주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사람은 이때 처음의 한 주住부터 제6주까지 이르고, 제6의 반야바라밀을 닦으면 정관正觀149)이 현전하게 된다. 그 후에 모든 불보살과 선지식을 만나서 보호받게 되므로 제7주로 넘어가서 항상 머물면서 물러나지 않는다. 이 제7주 이전은 ‘퇴분’이라 한다. 불자여, 물러나지 않는 자로서 제6의 반야에 들어가

001_0071_a_01L重罪以福德力故罪卽消滅不墮
001_0071_a_02L地獄如熱鐵以一渧水投之於
001_0071_a_03L卽自消滅以此驗知性地菩薩
001_0071_a_04L不墮地獄問若爾者二經相違
001_0071_a_05L何會通解云地持經中道言入者
001_0071_a_06L摧怖地前令其生懼速證初地
001_0071_a_07L謂實入阿鼻地獄如十地經中勸
001_0071_a_08L八地菩薩言汝莫樂住寂滅然八地
001_0071_a_09L菩薩旣位出功用永絶識務念念
001_0071_a_10L無生運運自進豈有樂住寂滅
001_0071_a_11L勸方進也1)欲速入九地十地乃至佛
001_0071_a_12L是故加勸非謂實樂住寂滅
001_0071_a_13L2)實如是實不墮地獄言其墮者
001_0071_a_14L欲令速證初地非謂實墮也故知性
001_0071_a_15L種以上一向不退二慈氏菩薩宗
001_0071_a_16L性菩薩亦有退入惡趣墮入外凡
001_0071_a_17L前所引木業經第一卷云信想心中
001_0071_a_18L行者3)是分善根諸善男子若一劫
001_0071_a_19L二劫乃至十劫修行十信得入十
001_0071_a_20L是人爾時從初一住至第六住中
001_0071_a_21L若修第六般若波羅蜜上觀現在前
001_0071_a_22L後値諸佛菩薩知識所護故出到第
001_0071_a_23L七住常住不退自此七住以前
001_0071_a_24L爲退分佛子若不退者入第六般

001_0071_b_01L공空을 수행하여 나(我)도 남(人)150)도 주재자(主者)도 없고 끝내 생함이 없음을 안다면, 반드시 정위定位에 들어갈 것이다. 불자여, 만약 선지식을 만나지 못한 자라면 1겁이나 2겁 내지는 10겁 동안 보살심에서 물러나니, 예를 들어 나의 최초 모임의 대중 가운데 팔만 사람이 물러났던 경우와 같다. 마치 정목천자淨目天子와 법재왕法才王과 사리불舍利弗 등처럼 제7주에 들고 싶었지만 도중에 나쁜 인연을 만났기 때문에 물러나 범부의 불선한 악惡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다.151) 이들을 습종성의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그는 물러나서 외도에 들어가 1겁이나 10겁 내지는 천 겁에 이를 때까지 대사견大邪見과 오역죄五逆罪를 짓고 악행을 짓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을 퇴상退相이라고 한다.”152)
이러한 문장들에 준해 볼 때 또한 물러나는 자도 있다. 그런데 『낙장엄경』 등에서 ‘물러나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예를 들어 『보살영락본업경』에서 제6의 바라밀을 닦아서 선지식을 만난 경우와 같다. 따라서 종성에서 물러나는 자와 물러나지 않는 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십신의 지위에는 물러나지 않는 자가 있는가, 아닌가?
이에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퇴분도 있고〕 또한 불퇴도 있다. 따라서 『보살영락본업경』 제1권에서는 십신의 여섯 번째를 불퇴심不退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십주와 차이점이 있다면, 십주의 제7주는 지위가 불퇴인 것이고, 십신의 여섯 번째는 오직 믿음에 있어서 물러나지 않을 뿐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퇴의 뜻은 없다. 그러므로 이 경의 제6권에서는 ‘시施’라고 하였고, 『보살영락본업경』 제2권 자체에서 설하길 ‘계심戒心’이라고 하였다.153) 이에 따를 때, 십주의 제6주 이전은 한결같이 ‘퇴’이고 제7주 이후에야 비로소 ‘불퇴’라고 이름한다. 그런데 십신의 여섯 번째를 ‘불퇴’라고 한 것은 번역가의 오류이다.≻

ㄴ. 이타행

중생 교화를 깨달아 가며 행하니

두 번째는 이타행을 나타낸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ㄷ. 총괄적 결론

이것을 보살의 초발심이라 하네.

세 번째는 두 가지 이익을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다. 이상으로 믿음에 있어서 불퇴인 자를 밝히면서 복인의 지위를 설명하였다.

001_0071_b_01L修行於空無我主者畢竟無生
001_0071_b_02L入定位佛子若不値善知識者
001_0071_b_03L一劫4)二劫乃至十劫退菩薩心
001_0071_b_04L我初會衆中有八萬人退如淨目天
001_0071_b_05L法才王舍利弗等欲入第七住
001_0071_b_06L其中値惡因緣故退入凡夫不善惡
001_0071_b_07L不名習種性人退入外道若一
001_0071_b_08L若十劫乃至千劫作大邪見及
001_0071_b_09L五逆無惡不造是爲退相准此等
001_0071_b_10L亦有退者而樂莊嚴等說不退
001_0071_b_11L如本業經修第六度遇善知識
001_0071_b_12L故知種性有退不退問十信位
001_0071_b_13L不退不此有兩釋一云亦有不退
001_0071_b_14L故本業經第一卷說十信第六名不
001_0071_b_15L退心而與十住有差別者十住第
001_0071_b_16L七住位不退十信第六唯信不退
001_0071_b_17L一云無不退義是故此經第六名施
001_0071_b_18L本業第二自說戒心由斯十住第六
001_0071_b_19L已前一向是退第七住後方名不退
001_0071_b_20L而言十信第六不退者5)譯家謬也

001_0071_b_21L
敎化衆生覺中行

001_0071_b_22L
釋曰第二顯利他行如文可知

001_0071_b_23L
是名菩薩初發心

001_0071_b_24L
釋曰第三總結二利上來明信不退

001_0071_c_01L
또는 “모든 보살행” 이하 한 개 반의 게송은 신인信忍의 방편위를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승장엄경론』에서 아승기의 끝(末)은 상품의 신심이라고 설했기 때문에 이치에 어긋나는 것은 없다.154)

b. 신인信忍

선각의 보살은 사천왕이니

이하는 두 번째로 다섯 개의 게송이 있는데 신인信忍을 따로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네 가지로 구별된다. 첫째로 두 개의 게송이 있으니, 선각지善覺地를 해석한 것이다. 둘째로 하나의 게송이 있으니, 이달지離達地155)를 설명한 것이다. 셋째로 하나의 게송이 있으니, 명혜지明慧地를 해석한 것이다. 넷째로 하나의 게송이 있으니, 장애를 끊는 분제를 밝힌 것이다.

a) 선각지善覺地
이것은 첫 번째에 해당한다. 경문에는 일곱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둘째는 선각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는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넷째는 일승에 올랐음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는 선각지의 차별적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여섯째는 공덕을 구족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일곱째는 이치를 깨달아서 움직이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a) 이름과 지위
이것은 첫 번째로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즉 처음으로 생공生空·법공法空 두 가지 공과 무상無相의 견도와 세 가지 마음 등을 깨달았기 때문에 ‘선각’이라고 한다. 지위를 배당시키면 위의 경문과 같다.

(b) 차별적 행

이제를 짝지어 비추는 평등한 도로

두 번째는 선각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진제의 해석에 의하면, ‘짝지어 관한다(雙觀)’는 것에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관에 들어서 진제를 보는 것이고, 둘째는 관에서 나와 속제를 보는 것이다. 출관과 입관을 합해서 설했기 때문에 ‘짝지어 관한다’고 한 것이다. 자은 삼장에 의하면, 일시에 짝지어 소연으로 삼기(雙緣) 때문에 ‘짝지어 관한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짝지어 관하는 것에 대략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방편위에서 짝지어 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십회향 중의 사선근위四善根位에서 한 찰나에 이름(名)과 대상(義) 등을 소연으로 삼아 ‘가짜로 있을 뿐 진실로 없으며(假有實無),

001_0071_c_01L說伏忍位又解一切菩薩已下
001_0071_c_02L一偈半說信忍方便以莊嚴論說僧
001_0071_c_03L6)末上品信故於理無違

001_0071_c_04L
善覺菩薩四天王

001_0071_c_05L
釋曰自下第二有五偈別釋信忍
001_0071_c_06L別有四一有兩偈釋善覺地二有一
001_0071_c_07L明離遠地三有一偈釋明慧地
001_0071_c_08L四有一偈斷障分齊此卽第一也
001_0071_c_09L有七節一標名配位二顯地別行
001_0071_c_10L化土寬狹四辨7)登一乘五釋地別
001_0071_c_11L六顯德具足七入理不動此卽
001_0071_c_12L第一標名配位謂初覺生法二空
001_0071_c_13L相見道及三心等故名善覺配位
001_0071_c_14L如上

001_0071_c_15L
雙照二諦平等道

001_0071_c_16L
釋曰第二顯地別行依眞諦釋
001_0071_c_17L觀二義一入觀見眞二出觀見俗
001_0071_c_18L入合說故云雙觀慈恩三藏一時
001_0071_c_19L雙緣故名雙觀然此雙觀略有四
001_0071_c_20L一方便雙觀謂十迴向中四善
001_0071_c_21L根位於一刹那緣名義等假有實
001_0071_c_22L「欲」下有「令」{甲}「實」無{甲}「是」下有
001_0071_c_23L「退」{甲}
「二却」無{甲}「譯」作「澤」{甲}
001_0071_c_24L「末」作「未」{甲}
「登」作「證」{甲}ㆍ「登」一作「證」
001_0071_c_25L{乙}

001_0072_a_01L가짜 있음은 속제이고 진실한 없음이 진제임’을 관하는 것이다.156) 이 중에 처음 닦을 때는 전과 후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157) 완전히 익숙해진 지위에서는 곧 짝지어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증득한 지위(證位)에서 짝지어 관하는 것이니, 예를 들면 이 『인왕경』에 해당한다. 셋째는 공을 들여(功用) 짝지어 관하는 것이니, 이는 난승지難勝地에 해당한다. 넷째는 자유자재로(任運) 짝지어 관하는 것이니, 이는 팔지 이상에 해당한다. 지금 이 경에서는 증득한 지위에서의 짝지어 관함을 말한 것이다.

(c) 교화하는 국토

중생을 권화하며 백 국토에 노닐며

세 번째는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d) 일승一乘에 오름

처음 일승의 무상도에 오르네.

네 번째는 일승에 올랐음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이 경문의 해석에서 여러 설들이 다르다. 한편에서는 이치에 의거해서 ‘일승’이라고 말했다고 하고, 한편에서는 행에 의거해서 ‘일승’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것은 『별장』의 설과 같다.

(e) 선각지의 차별적 이름들

이치를 깨친 반야를 주住라고 하고
머물며 덕행을 생하면 지地라고 하니

다섯 번째는 선각지의 차별적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의미상으로 극희지極喜地를 또한 ‘주住’라고도 이름하니, 지혜가 이치에 머물기 때문이다. 곧 그러한 반야를 또한 ‘지地’라고도 이름하니, 그것이 모든 공덕을 생하기 때문이다.

(f) 공덕의 구족

초주의 한 마음에 덕행을 구족하여
여섯 번째는 공덕을 구족함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초지初地의 일념에 팔만사천 바라밀을 구족한다는 것이다.

(g) 이치에서 움직이지 않음

제일의제에서 움직이지 않네.

일곱 번째는 이치에 들어 움직이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이치에 깨달아 들어갔을 때는 분별에 의해 동요되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혹은 물러나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을 수도 있다.

b) 이달지離達地

離達開士忉利王   이달의 보살은 도리천의 왕이니
現形六道千國土   형상을 육도의 천 국토에 나타내고
無緣無相第三諦   무연과 무상과 제3제에 있어서
無無無生無二照   무158)도 없고 생도 없고 둘도 없음을 비추네.

두 번째로 이 한 게송의 문구는 이달지離達地를 해석한 것이다.

001_0072_a_01L無假有是俗實無卽眞於中初習
001_0072_a_02L有前後若純1)熟位卽得雙觀
001_0072_a_03L證位雙觀如卽此經三功用雙觀
001_0072_a_04L難勝地四任連雙觀八地2)以上
001_0072_a_05L於此中證位雙觀

001_0072_a_06L
權化衆生遊百國

001_0072_a_07L
釋曰第三化土寬狹

001_0072_a_08L
始登一乘無相道

001_0072_a_09L
釋曰第四辨登一乘然釋此文3)
001_0072_a_10L說不同一云就理說一乘一云
001_0072_a_11L行說一乘具如別章

001_0072_a_12L
入理般若名爲住住生德行名爲地

001_0072_a_13L
釋曰第五釋地4)別名義謂極喜地
001_0072_a_14L亦名爲住智住理數卽彼般若
001_0072_a_15L名爲地生諸德故

001_0072_a_16L
初住一心足德行

001_0072_a_17L
釋曰第六顯德具足謂初地一念
001_0072_a_18L足八萬四千波羅蜜

001_0072_a_19L
於第一義而不動

001_0072_a_20L
釋曰第七入理不動謂入理時
001_0072_a_21L分別所動故名不動或不退故
001_0072_a_22L5)而不動

001_0072_a_23L
離達開士忉利王6)無無生無二照

001_0072_a_24L
釋曰第二此一頌文釋離達地

001_0072_b_01L경문에는 세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다음은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이달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이달의 보살은 도리천의 왕이니”라고 한 것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그는 계를 범하는 허물을 떠나서 한맛의 진여를 통달하여 비추기 때문에 ‘이달’이라 하였으니, 삼십삼천왕三十三天王(도리천왕)에 해당한다.
“형상을 육도의 천 국토에 나타내고”라는 것은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무연無緣과 …”라는 것은 세 번째로 이달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이 경문의 해석에서 여러 설이 다르다.
첫째, 『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앞의 구는 경계의 청정함을 밝힌 것이고 뒤의 구는 지혜의 청정함을 밝힌 것이다. ‘무연’이란 의타기依他起의 가짜 연(假緣)이 공함을 말하고, ‘무상’이란 분별分別(변계소집)의 가짜 상(假相)이 공함을 말하며, ‘제3제’란 진실眞實(원성실)의 성공性空을 말한다. 삼성三性을 버리고 삼무성三無性을 보존한 것이다.159) “무도 없고”라는 것은 분별성이 없다는 것이니, 그것은 체가 없기 때문이다. “생도 없고”라는 것은 의타성의 공함을 말한다.160) “둘도 없음을 비추네.”라는 것은 원성실성의 공함을 말한다. 그런데 이 ‘비춤(照)’이라는 말은 앞의 두 가지에도 모두 공통된다.≻
둘째, 자은 삼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앞의 구는 경계의 청정함을 밝힌 것이고 뒤의 구는 지혜의 청정함을 밝힌 것이니, 준해 보면 이전의 해석과 동일하다. ‘무연’이란 ‘생의 자성 없음(生無自性性)’을 말한다. 그 체는 곧 의타기이니, 자재천自在天 등에서 생겨나는 것은 없고 연으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161) ‘무상’이란 ‘상의 자성 없음(相無自性性)’을 말한다. 이것은 곧 변계소집의 상相이니, 자체가 없다는 것이 그것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제3제’라고 한 것은 ‘승의의 자성 없음(勝義無自性性)’을 말한다. 〔원성실은〕 진여를 체로 삼으니, 집착되는 바가 없는 참된 공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청정한 지(能淨智)에 대한 해석은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162)

c) 명혜지明慧地

明慧空照炎天王   명혜의 공조163)는 염천의 왕이니
應形萬國導群生   만 국토에 응현하여 중생을 이끌고
忍心無二三諦中   인심忍心은 둘 없는 제3제 중에서
出有入無變化生   유를 벗어나 무에 들어가 변화생하네.

세 번째로 하나의 게송 문구가 있으니, 명혜지明慧地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에는 세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다음은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명혜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인심忍心”이란 관하는 지(能觀智)에 해당한다.

001_0072_b_01L有三節初標名配位次化土寬狹
001_0072_b_02L經可知後顯地別行言離達開士忉
001_0072_b_03L利王者標名配位離犯戒垢達照
001_0072_b_04L一味眞如故名離達卽當三十三天
001_0072_b_05L言現形六道千國土者辨土寬狹
001_0072_b_06L言無緣等者第三顯7)土別行釋此
001_0072_b_07L經文諸說不同一本記云上句明境
001_0072_b_08L下句明智淨言無緣者依他假
001_0072_b_09L緣空無8)分別假相空第三諦者
001_0072_b_10L眞實性空解云除遣三性存三無
001_0072_b_11L性也言無無者是無分別性以體
001_0072_b_12L無故言無生者依他性空言無二
001_0072_b_13L照者圓成實性空然此照言該通上
001_0072_b_14L慈恩三藏云上句境淨下句智
001_0072_b_15L准同前釋言無緣者生無自性
001_0072_b_16L性體卽依他無自在天等爲緣生故
001_0072_b_17L言無相者相無自性性卽所執相
001_0072_b_18L無自體9)其性故言第三諦者
001_0072_b_19L義無自性性眞如爲體而無所執
001_0072_b_20L空相故釋能淨智准前應知

001_0072_b_21L
明慧空照變化生

001_0072_b_22L
釋曰第三有一偈文釋明慧地文有
001_0072_b_23L三節初標名配位次化土寬狹如經
001_0072_b_24L可知後顯地別行言忍心者10)

001_0072_c_01L“둘 없는(無二)”이라 한 것은 유와 무의 두 가지 상을 떠난 것을 말하니, 즉 ‘둘 없음’을 제3제로 삼는 것이다. “유를 벗어나”라고 한 것은 삼계의 존재를 벗어나는 것이고, “무에 들어가”라고 한 것은 분단分段의 존재를 떠나서 변화생變化生에 들어가는 것이다. “변화생”이란 곧 변역생사變易生死에 해당한다.
〕 어떻게 제3지 중에서 유를 벗어나 무에 들어가 변화로 생한다는 것이 곧 변역생사에 해당함을 알 수 있는가?
예를 들어 『현양성교론』에서는 변역생사를 또한 ‘변화變化’라고 이름한다. 또 제3지는 시施·계戒·수修164) 중의 수정지修定地이니, 변제정邊際定(색계 4정려의 최상품)의 힘으로 말미암아 변역생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제3지에서 변역생을 받음을 알 수 있다.

d) 장애를 끊는 분제

善覺離明三道人   선각·이달·명혜의 세 도인은
能滅三界色煩惱   삼계의 색번뇌를 단멸시키고
還觀三界身口色   다시 삼계의 몸·입의 색을 관하여
法性第一無遺照   법성의 제일의第一義를 남김없이 비추네.

네 번째로 하나의 게송이 있으니, 미혹을 끊는 분제를 밝힌 것이다. 즉 앞에서 말한 선각과 이달과 명혜라는 세 지위의 보살은 삼계의 색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린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삼계의 색이 실유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아래에 나오는 반 송은 끊을 수 있는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저 보살은 다시 삼계의 몸·입이라는 색에서 법성으로서의 제일의 진여를 관하여 남김없이 비추기 때문에 비로소 끊을 수 있다.〔‘남김없이 비춘다(無遺照)’는 문구가〕 어떤 판본에는 ‘무유조無唯照’라고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c. 순인順忍

炎慧妙光大精進   염혜의 묘광은 대정진이니
兜率天王遊億國   도솔천의 왕이 되어 억 국토에 노닐고
實智緣寂方便道   ‘적정을 소연으로 삼는 실지’와 방편도로
達無生照空有了   법성의 제일의第一義를 남김없이 비추네.

이하는 세 번째로165) 네 개의 게송이 있으니 순인順忍을 해석한 것이다.

001_0072_c_01L是能觀之智言無二者謂離有無二
001_0072_c_02L卽用無二爲第三諦言出有者
001_0072_c_03L出三界有言入無者離分段有
001_0072_c_04L變化生變化生者11)卽是變易生死
001_0072_c_05L12)如何13)得知第三地中出有入無
001_0072_c_06L變化生卽是變易生死解云如顯揚
001_0072_c_07L變易生死亦名變化又第三地
001_0072_c_08L卽施戒修中修定地由邊際定力
001_0072_c_09L變易生故知第三地受變易生

001_0072_c_10L
善覺無遺照

001_0072_c_11L
釋曰第四有一偈明斷14)惑分齊
001_0072_c_12L上善覺離達明慧三位菩薩能斷三
001_0072_c_13L界色煩惱縛所以者何執三界色爲
001_0072_c_14L實有故下有半頌釋斷所由以彼菩
001_0072_c_15L還觀三界身口色上法性第一眞
001_0072_c_16L無遺照故方能斷也或有本云無
15)唯照者謬也

001_0072_c_17L
炎慧妙16)17)空有了

001_0072_c_18L
釋曰自下第二有四偈釋順忍
001_0072_c_19L「熟」作「就」{甲}「以」作「已」{甲}「諸說不
001_0072_c_20L同」作「諸不退同」{甲}
「別」無{甲}「而」作
001_0072_c_21L「爲」{甲}
「無」作「死」{乙}「土」作「地」{甲}
001_0072_c_22L「相」下有「者」{甲}「其」作「具」{甲}「卽」
001_0072_c_23L作「無」{甲}
「卽」作「無」{甲}「如」上有「問」
001_0072_c_24L{甲}
「得」作「由」{甲}「惑」作「戒」「唯」
001_0072_c_25L無{甲}
「光」下有「大精進」{甲}「至」下有「達
001_0072_c_26L無生照」{甲}

001_0073_a_01L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 나온 세 게송은 수행의 지위를 밝힌 것이다. 나중에 나온 한 게송은 미혹을 끊는 분제를 밝힌 것이다.

a) 수행의 지위
전자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에 나온 한 게송은 염혜지炎慧地를 밝힌 것이다. 다음에 나온 한 게송은 승혜지勝慧地를 밝힌 것이다. 마지막에 나온 한 게송은 법현지法現地를 밝힌 것이다.

(a) 염혜지炎慧地
이것은 염혜지를 밝힌 것이니, 십지 중의 제4염혜지에 해당한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다음은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은 염혜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염혜의 묘광”이란 첫 번째로 지地의 차별적 이름을 표시한 것이다. 도품道品 중에 ‘혜慧’의 빛으로 소지장을 끊는 것이 마치 불꽃이 땔감을 태우는 것과 같으므로 법과 비유를 짝지어 들어서 ‘염혜의 묘광’이라고 하였다. 십바라밀 중에 정진精進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대정진”이라고 하였다.
왕에 배당시키고 국토를 포괄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염혜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내면서 “적정을 소연으로 삼는 실지와 방편도”라고 한 것은 간략하게 두 가지 지智로 나눈 것이다. 즉 첫째 진실한 근본지根本智는 오직 적정의 진여를 소연으로 삼는다. 둘째 후소득後所得의 방편지方便智는 진제와 속제를 통틀어 소연으로 삼기 때문에, 지금 우선 ‘방편도’라는 〔이름만〕 들었고 소연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166) 다음 구는 두 가지 지혜를 거듭 해석한 것이다. “무생에 통달하고”라는 것은 앞의 실지實智를 해석한 것이다. “공과 유를 다 비추네.”라는 것은 후득지를 해석한 것이니, 진제와 속제를 통틀어 비춘다는 것이다.

(b) 승혜지勝慧地

勝慧三諦自達明   승혜는 삼제167)에 스스로 통달하고
化樂天王百億國   화락천의 왕으로 백억 국토를 다스리니
空空諦觀無二相   공공제를 관하여 두 가지 상이 없고
變化六道入無間   육도에서 변화하며 틈 없는 곳에도 들어가네.

두 번째로 하나의 게송이 있으니 승혜지勝慧地를 밝힌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다음은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은 승혜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승혜勝慧”라는 것은 난승지難勝地이다. 진지眞智·속지俗智 두 가지 지는 화합하기 힘들지만 화합할 수 있으므로 ‘난승’이라 한다. 지금 이 경문의 뜻은, 진·속을 잘 알고 제일의第一義를 잘 알기 때문에 ‘승혜’라고 하고, 스스로 명료하게 통달한 것이지 다른 이의 힘으로 인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승혜’라고 한다는 것이다.
지위의 분제에 배당시키는 것은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공공제를 관하여 … 틈 없는 곳에도 들어가네.”라고 한 것은

001_0073_a_01L中有二初有三偈正明行位後有
001_0073_a_02L一偈明斷惑分齊前中有三初有
001_0073_a_03L一偈明炎慧地次有一偈明勝慧
001_0073_a_04L後有一偈明法現地此明炎慧
001_0073_a_05L卽十地中第四炎慧地文別有
001_0073_a_06L初標名配位次化土寬狹後顯
001_0073_a_07L地別行炎慧妙光者第一標地別名
001_0073_a_08L道品慧光斷所知障如炎燒薪
001_0073_a_09L喩雙擧名爲炎慧妙光於十度中
001_0073_a_10L精進度名大精進配王攝土如經
001_0073_a_11L可知顯別行中言實智緣寂方便道
001_0073_a_12L略開1)二智謂一實根本智唯緣
001_0073_a_13L寂靜眞如二後所得方2)便智通緣
001_0073_a_14L眞俗故今且擧方便道不辨所緣
001_0073_a_15L句重釋二智達無生者釋上實智
001_0073_a_16L空有了者釋後得智通照眞俗

001_0073_a_17L
3)4)入無間

001_0073_a_18L
釋曰5)二偈明勝慧地文別有三
001_0073_a_19L初標名配位次化土寬狹後顯地別
001_0073_a_20L言勝慧者卽難勝地眞俗二智
001_0073_a_21L難合能合故名難勝今此經意
001_0073_a_22L知眞俗及第一義能了知故名爲
001_0073_a_23L勝慧自達明了不由他力故名勝
001_0073_a_24L配位分齊如經可知言空空諦

001_0073_b_01L세 번째로 승혜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진제의 문에서는 ‘공’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인공이고 둘째는 법공이다. 따라서 ‘공공제를 관한다’고 하였다. 혹은 유와 무가 모두 공함을 ‘공공’이라 했을 수 있다. 유와 무의 상을 떠난 것을 ‘두 가지 상이 없다’고 하였다. 속제의 문에서는 육도에서 변화함에 있어 아무리 미세한 곳이라도 들어가지 못함이 없으므로 ‘틈 없는 곳에도 들어간다’고 하였다.≻

(c) 법현지法現地

法現開士自在王   법현의 보살은 자재천의 왕이니
無二無照達理空   둘도 없고 비춤도 없이 이공理空에 통달하고
三諦現前大智光   삼제를 현전시킨 큰 지혜의 빛으로
照千億土敎一切   천억 국토 비추며 일체를 교화하네.

세 번째로 하나의 게송이 있으니 제6지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다음은 제6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은 교화하는 국토의 분제를 나타낸 것이다.
“법현法現”이란 제6지이다. 생공生空·법공法空168)을 소연으로 삼는 관이 현전해 있기 때문에 ‘법현’이라고 이름한다. 곧 여섯 종류 천 중에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왕이다.
“둘도 없고 비춤도 없이 … 큰 지혜의 빛으로”라고 한 것은 제6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진제가 곧 속제이고 속제가 곧 진제이므로 ‘둘이 없다’고 하였다. 혹은 유와 무의 상을 떠났기 때문에 ‘둘이 없다’고 했을 수도 있다. 증득하는 주체와 증득되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비춤이 없다’고 하였다. 내면으로 생공·법공의 두 가지 공을 증득하였기 때문에 ‘이공에 통달한다’고 하였다. 진·속 이제와 제일의제를 구족하여 증득했기 때문에 ‘삼제를 현전시킨 큰 지혜의 빛’이라고 하였다.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은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b) 미혹의 제거

염·승·법현은 무상정으로
삼계의 ‘마음에 미혹한 번뇌’를 씻어 버리고

이하는 두 번째로 하나의 게송이 있으니, 미혹을 끊는 분제를 밝힌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의 앞의 반 송은 미혹을 끊었음을 밝힌 것이고, 나중의 뒤의 반 송은 끊을 수 있는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a) 미혹을 끊음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염炎”은 염혜이고, “승勝”은 승혜이며, “법현法現”은 법현을 말한다. 이와 같은 세 사람이 무루의 선정을 일으켜서

001_0073_b_01L6)7)至入無間者第三顯地別行
001_0073_b_02L記釋云就眞諦門空有二義一者人
001_0073_b_03L二者法空故曰空空諦觀或可
001_0073_b_04L有無皆8)空曰空空9)雖有無相名無
001_0073_b_05L二相俗諦門中變化六道無細不
001_0073_b_06L故言入無間

001_0073_b_07L
法現開士自在10)

001_0073_b_08L
釋曰第三有一偈釋第六地文別
001_0073_b_09L有三初標名配位次顯地別行
001_0073_b_10L化土分齊言法現者是第六地
001_0073_b_11L生空觀法現在前故名爲法現
001_0073_b_12L六天中他化自在天王也言無二無
001_0073_b_13L11)12)至大智光者顯地別行眞卽是
001_0073_b_14L俗卽是眞故言無二或可離有
001_0073_b_15L無相故言無二無能所證故言無
001_0073_b_16L內證生法兩空故言達理空
001_0073_b_17L足能證眞俗二諦及第一義故言三
001_0073_b_18L諦現13)前大智光化土寬狹如文可
001_0073_b_19L

001_0073_b_20L
14)15)迷心惑

001_0073_b_21L
釋曰自下第二有一偈明斷惑分齊
001_0073_b_22L文別有二初上半正明斷惑後下半
001_0073_b_23L釋斷所由此卽初也炎謂炎慧
001_0073_b_24L卽勝慧法現卽是法現如是三人

001_0073_c_01L모두 유와 무의 두 가지 상을 떠나고 또 파악하는 자(能取)와 파악되는 것(所取)의 상이 없음을 일컬어 “무상정”이라 하였다. 이상의 세 사람의 지智는 삼계에서의 마음에 미혹한 거친 번뇌를 씻어낼 수 있으니, 이치상 실제로는 ‘색과 심에 미혹한 번뇌’를 통틀어 끊는 것이지만 우열을 나타내려고 우선 “마음에 미혹한 번뇌”라고 설한 것이다.

(b) 끊을 수 있는 이유

공혜의 고요한 무연관으로
다시 마음의 공하고 한량없는 과보를 관하네.

두 번째는 끊을 수 있는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공을 소연의 경계로 삼기 때문에 “공혜空慧”라고 한다. 관의 행상이 고요해서 인식하는 자(能緣)와 인식되는 대상(所緣)의 상이 없기 때문에 “무연관”이라 하였다. 앞의 구에서 ‘무상정無相定’이라고 한 것은 의지처인 선정(所依定)을 나타낸 것이고, 이 구는 그에 의지하는 관지(能依觀智)를 나타낸 것이다. 이전의 ‘마음에 미혹된 번뇌’는 마음을 소연의 경계로 삼기 때문에 끊는 지(能斷智)로 다시 마음의 공함을 관하는 것이다. “한량없는 과보”란 관찰되는 경계가 한량없는 삼계의 마음의 과보(心報)임을 나타낸 것이다.

d. 무생인無生忍과 적멸인寂滅忍

원달의 무생은 초선의 왕이니

이하는 네 번째로 열 개의 게송이 있으니, 마지막 두 가지 인忍을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개 반의 게송은 하품의 무생인無生忍을 따로 해석한 것이다. 다음의 “등관” 이하 다섯 개의 게송은 두 가지 인을 합해서 해석한 것이다. 마지막의 “원지” 이하 두 개 반의 게송은 상품의 적멸인寂滅忍을 해석한 것이다.

a) 하품의 무생인
전자에 두 가지가 있다.

001_0073_c_01L無漏定皆離有無二相及無能取所
001_0073_c_02L取相名無相定此上三智能洗16)
001_0073_c_03L三界迷心麁惑理實通斷迷色心惑
001_0073_c_04L欲顯勝劣且說迷心

001_0073_c_05L
17)定慧寂18)19)無量報

001_0073_c_06L
釋曰第二20)釋所由緣空爲境故言
001_0073_c_07L空慧行相寂靜無能緣所緣相
001_0073_c_08L名無緣觀前云無相定者顯所依定
001_0073_c_09L此句21)卽顯能依觀智前迷心惑
001_0073_c_10L心爲境故能斷智還觀心空無量
001_0073_c_11L報者現所觀境無量三界心報

001_0073_c_12L
遠達無生初禪王

001_0073_c_13L
釋曰自下第四有十偈釋後二忍
001_0073_c_14L中有三初兩偈半別釋下品無生忍
001_0073_c_15L次等觀下五偈合釋二忍後圓智下
001_0073_c_16L兩偈半釋上品寂滅忍前中有二
001_0073_c_17L「二」無{甲}「便」無{甲}「慧」下有「三諦自
001_0073_c_18L達明」{甲}
「至」下有「變化六道」{甲}「二」下
001_0073_c_19L有「一」{甲}
「觀」下有「無二相變化六道」{甲}
001_0073_c_20L「至」無{甲}
「空」下有「故」{甲}「雖」作「離」
001_0073_c_21L{甲}
「王」下有「至敎一切」{甲}「照」下有「達
001_0073_c_22L理空三諦現前」{甲}
「至」無{甲}「前」作「在」
001_0073_c_23L{甲}
「勝」下有「法現無相定能洗三界」{甲}
001_0073_c_24L「至」無{甲}
「力」無{甲}{乙}「定」異作「空」{乙}
001_0073_c_25L「然」下有「無緣觀還觀心空」{甲}「至」無{甲}
001_0073_c_26L「釋」下有「斷」{甲}「卽」作「無」{甲}

001_0074_a_01L처음은 행상行相을 자세하게 해석한 것이다. 나중은 미혹을 끊는 분제를 밝힌 것이다.

(a) 행상行相
행상을 해석한 곳에서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다음은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은 원달지의 차별적 행상을 나타낸 것이다.

ⓐ 이름과 지위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원달의 무생은 초선의 왕이니”라고 한 것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이것은 제7지에서 공용위功用位의 최후의 끝(邊際)에 이른 것이니, 오로지 진여무생관眞如無生觀을 짓기 때문에 ‘원달지遠達地’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해심밀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 지에서는 빠짐 없고 간격 없이 무상無相을 깨달아 들어가니, 이는 제6지에서 〔무상관이〕 잠시 현전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또 이 지는 제8청정지와 근접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원행지遠行地’라고 한다.≻169)

ⓑ 교화하는 국토

항상 만억 국토에서 중생을 교화하네.

두 번째는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앞의 경문에 준해 보면 ‘백만억’이라고 말해야 하지만 대략 큰 수를 들었으므로 ‘만억’이라고 한 것이다.

ⓒ 차별적 행상경

未度報身一生在   보신을 벗지 못한 하나의 생生에 있다가
進入等觀法流地   나아가 등관의 법류지에 들어가서
始入無緣金剛忍   처음으로 무연의 금강인을 깨달아
三界報形永不受   삼계의 과보 몸(報形)을 영원히 받지 않으니
觀第三義無二照   제3의第三義를 관하여 둘 없음을 비추고
二十一生空寂行   스물한 가지 생에서 공적행을 일으키네.

세 번째170)는 원달지의 차별적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경문에는 다섯 개의 구절이 있다.
첫째는 보신에 머무는 시간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이 지에는 분단생分段生을 받는 단 하나의 몸만 남아 있다. 따라서 『대지도론』에서는 7지보살은 아직 충신虫身인 육신肉身을 버리지 못한다고 하였다.171) 혹은 21가지 생生 중에서 최후의 한 생이기 때문에 “하나의 생”이라 했을 수도 있다.172)
둘째는 수승한 지위에 들어갔음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들어간 지에서는 이제를 짝지어 관하기 때문에 “등관等觀”이라고 하고, 성스런 도를 항상 행하므로 “법류法流”라고 한다.
셋째는173) 처음으로 깨달아 들어가는 행상을 밝힌 것이다. 이에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으로 제8지에 들어가면 〔관이〕 자유자재로(任運) 일어나기 때문에 “무연無緣”이라고 하였다. 공용을 발동시키지 않는 것이 마치 금강과 같기 〔때문에 “금강인”이라 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7지에서 처음으로 무생無生을 증득하고 분별의 상을 떠나기 때문에 ‘무연’이라고 하였고, 그 지혜가 견고하고 날카로운 것을 ‘금강인’이라 한 것이다.≻
넷째는 분단생을 받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001_0074_a_01L廣釋行相後斷惑分1)釋行相中
001_0074_a_02L文別有三初標名配位次化土寬狹
001_0074_a_03L後顯地別相2)卽初也言遠達無
001_0074_a_04L生初禪王者標名配位也此七地至
001_0074_a_05L3)功用位最後邊際純作眞如無生
001_0074_a_06L故名遠達地如解4)5)密謂此地
001_0074_a_07L無缺無間證入無相不同六地
001_0074_a_08L暫時現前又復隣近第八淨地具斯
001_0074_a_09L二義名遠行地

001_0074_a_10L
常萬億土敎衆生

001_0074_a_11L
釋曰第二化土寬狹若准前文
001_0074_a_12L百萬億略擧大數故言萬億

001_0074_a_13L
未度報身空寂行

001_0074_a_14L
釋曰第二顯地別相文有五節
001_0074_a_15L住報時分謂此地中受分6)段生
001_0074_a_16L一身在故智度論云七地菩薩
001_0074_a_17L捨虫7)身肉身或可二十一生中
001_0074_a_18L後一生故言一生二進入勝位
001_0074_a_19L所入地雙觀二諦故言等觀聖道
001_0074_a_20L8)恒行故言法流二始入行相此有
001_0074_a_21L兩釋一云始入第八任運而起
001_0074_a_22L曰無緣功用不動猶若金剛一云
001_0074_a_23L第七初證無生離分別相名曰無緣
001_0074_a_24L其智堅利名金剛忍四不受分段

001_0074_b_01L이에 또한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편에서는 제8지 이상에서 영원히 받지 않는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제7지도 영원히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다섯째는 경계에 의거해서 관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구는 진제를 관하는 것이고, 뒤의 구는 속제를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이에 또한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8지에서 제3제第三諦를 관하여 유와 무의 상을 떠나는 것을 “둘 없음을 비추고”라고 하였다. 지혜로 분단分段의 21가지 생을 관하여 공적한 행을 일으킨다.≻ 한편에서는 제7지에서 이제의 관을 일으킨 것이라 하는데, 〔그 밖은〕 앞의 해석과 거의 동일하다.

(b) 미혹을 끊는 분제

삼계의 애습愛習이 도정道定을 따르니
원달의 보살만 홀로 진실하게 요달하네.

두 번째는 미혹을 끊는 분제를 밝힌 것이다. 그런데 이 경문의 해석에서 여러 설이 다르다.
첫째,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삼계의 애습 …”이라는 한 구에서는, 삼계의 애愛가 모두 이치에 맞게 수순하되 다시는 달리 보지 않기 때문에 “도정道定을 따르니”라고 하였다. “원달 …”이라는 한 구에서는, 이전 〔보살들이〕 아직 여여함을 증견證見하지 못했던 것과 구별시켰기 때문에 “홀로 〔진실하게〕 요달하네.”라고 하였다.
둘째,174) 한 부류의 여러 논사들은 『십지경』에 의거해서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님을 사랑하는 습기가 있는데 그것이 도정道定을 거스르지 않으므로 ‘도정에 따른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애의 습기는 원달의 보살만 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의 경문은 미혹을 끊음에 대해 밝힌 것은 아니다.≻
지금 해석하면 그렇지 않다. 이 경문은 미혹을 끊는 분제를 밝힌 것이다.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까닭은, 〔이전의〕 모든 지위와 마찬가지로 이치상 미혹을 끊는 분제를 합해서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문은 미혹을 끊음에 대해 밝힌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두 개의 경에 의거해서 이 경문의 뜻을 해석하겠다.
첫째, 『십지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원행지의 사람을 ‘번뇌가 있는 자’라고 하지 않으니, 〔그에게〕 모든 번뇌가 현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여래의 지혜를 탐하여 구하지만 아직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자’라고도 하지 않는다.”175) 이 『인왕경』도 이와 같아서, 부처님의 지혜를 사랑하는 습기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정에 따른다’고 하였다. “원달의 보살만 홀로 진실하게(諦) 요달하네.”라고 했는데, ‘제’란 ‘진실함(諦實)’을 말한다. 이전의 여섯 지에서는 다만 번뇌를 끊었고 아직 습기는 끊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제7지에서 ‘홀로 진실하게 요달한다’고 한 것이다.

001_0074_b_01L有兩釋一云八地已9)上永不受
001_0074_b_02L七地當永不受五依境辨觀
001_0074_b_03L句觀眞後句緣俗亦有兩釋一云
001_0074_b_04L第八觀第三諦離有無相名無二照
001_0074_b_05L10)却觀分段二十一生作空寂行一云
001_0074_b_06L第七作二諦觀大同前釋

001_0074_b_07L
三界愛習獨諦了

001_0074_b_08L
釋曰第二斷惑分齊然釋此文
001_0074_b_09L說不同一本記云三界愛習一句
001_0074_b_10L三界愛11)須如理不復別見故言
001_0074_b_11L順道定遠達一句別前未證見如如
001_0074_b_12L故言獨了一一類諸師依十地經
001_0074_b_13L作此釋有愛佛習不違道定故名
001_0074_b_14L順道定如是愛習遠達正12)獨能
001_0074_b_15L解了而此段文不辨斷惑今解不
001_0074_b_16L此文正明斷惑分齊所以知然
001_0074_b_17L諸位中理應合釋斷惑分齊故知此
001_0074_b_18L文正明斷惑今依二經釋此文意
001_0074_b_19L十地經云此遠行地不名有煩惱者
001_0074_b_20L一切煩惱不行故貪求如來智慧未
001_0074_b_21L滿足故不名無煩惱者此經亦爾
001_0074_b_22L佛智慧習未斷故13)名順道定遠達
001_0074_b_23L正士獨諦了者諦謂諦實前之六
001_0074_b_24L但斷煩惱未斷習氣故今第七

001_0074_c_01L
둘째, 『해심밀경』에 의하면 앞의 설과는 조금 다르다. 말하자면 초지에서 십지까지는 고의적인 힘으로 번뇌를 일으키기 때문에 오염된 모습이 없고, 자기 몸에서 고苦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과실이 없으며, 유정계有情界에서 고를 끊는 원인이 되므로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176) 이러한 세 가지 의미에서 이 『인왕경』에서도 ‘도정에 따른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삼계의 애습’이란 그 『해심밀경』에서는 ‘추중麤重’이라 하였고, 이 『인왕경』에서는 ‘애습’이라 하였지만, 그 의미는 동일하다.

b) 두 가지 인을 합해서 해석함

등관의 보살은 제2선의 왕이니

두 번째로 다섯 개의 게송은 두 가지 인忍을 합해서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에 나온 네 개의 게송은 세 가지 품을 따로따로 해석한 것이다. 나중에 나온 하나의 게송은 미혹을 끊는 분제를 밝힌 것이다.

(a) 개별적 해석
전자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 한 개 반177)의 게송은 등관지等觀地를 해석한 것이다. 다음 한 게송은 혜광지慧光地를 해석한 것이다. 마지막 한 개 반의 게송은 관정위灌頂位를 해석한 것이다.

ⓐ 등관지等觀地
등관지를 밝힌 곳에서 경문은 네 가지로 구별된다.178) 첫째는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둘째는 그것의 뛰어난 작용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는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넷째는 등관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ㄱ. 이름과 지위
이것은 첫 번째로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ㄴ. 뛰어난 작용

변역생하는 법신으로 한량없는 빛을 놓아

두 번째는 그의 뛰어난 작용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이 등관지에서 변역생變易生을 받는 것을 “법신”이라 하였으니, 법성의 진여를 증득하여 생겨난 몸이기 때문에 ‘법신’이라 한 것이다.

001_0074_c_01L名獨諦了二依解深14)密經與前少
001_0074_c_02L謂從初地乃至十地由故意力
001_0074_c_03L煩惱故無染汚相於自身中不生
001_0074_c_04L苦故無有過失於有情界能斷苦
001_0074_c_05L有無量功德以此三義故此經
001_0074_c_06L言順道定而言三界愛習者彼云麁
001_0074_c_07L此云愛習其義一也

001_0074_c_08L
等觀菩薩二禪王

001_0074_c_09L
釋曰第二五偈合釋二忍文別有
001_0074_c_10L初有四偈別釋三品後有一偈
001_0074_c_11L斷惑分齊前中有三初一偈平
001_0074_c_12L等觀地次一偈文釋慧光地後一
001_0074_c_13L偈半釋灌頂位就等觀中文別有
001_0074_c_14L一標名配位二顯其勝用三化
001_0074_c_15L土寬狹四顯地別行此卽第一標名
001_0074_c_16L配位

001_0074_c_17L
變生法身無量光

001_0074_c_18L
釋曰第二顯其勝用謂於此地
001_0074_c_19L變易生名爲法身證法性如所生身
001_0074_c_20L「齊」下有「廣」{甲}「卽」作「無」{甲}「功」
001_0074_c_21L無{甲}
「深密」下有「廣說」{甲}「密」作「蜜」
001_0074_c_22L{甲}
「段」作「以」{甲}「身肉」作「肉」{甲}
001_0074_c_23L「恒」作「垣」{甲}
「上」無{甲}「却」作「智」{甲}
001_0074_c_24L「須」作「順」{甲}「士」無{甲}「名」作「故」
001_0074_c_25L{甲}
「密」作「蜜」「甲」

001_0075_a_01L혹은 모든 공덕의 의지처이기 때문에 ‘법신’이라 일컬은 것이니, 이것은 한량없는 빛을 놓아 모든 국토를 비춘다.

ㄷ. 교화하는 국토

백 항하사 국토에 들어가 일체를 교화하네.

세 번째는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ㄹ. 차별적 행상

삼세 항하사 겁의 일을 두루 비추니

네 번째로 세 개의 구가 있으니, 등관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그에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처음 구는 속제를 비추는 것이고, 다음 구는 거듭 해석한 것이며, 마지막 구는 진제를 비추는 것이다.

ㄱ) 속제를 비춤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본기』에 의하면, 도道 이전을 과거라고 하고, 도의 중간을 현재라고 하며, 도 이후를 미래라고 한다.

ㄴ) 삼세를 비춤

반조하고, 낙의 헛됨과 끝없는 흐름을 알아

두 번째 구는 삼세를 두루 비춤을 거듭 해석한 것이다.
『본기』에 의하면, “반조返照하고”라고 한 것은 과거 십지 이전의 일을 되돌아 비추는 것이고, “낙의 헛됨(樂虛)”이란 현재의 즐거움을 소연으로 하여 그것이 헛되어 진실한 즐거움이 아님을 아는 것이며, “끝없는 흐름(無盡源)”이란 미래의 도 이후에도 그 흐름(源)이 끝이 없음을 비추어 아는 것이다.

ㄷ) 진제를 비춤

제3제에서 항상 고요하네.

세 번째는 그가 진제를 비춤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제8지에서는 관지觀智가 고요하여 진여라는 제3제를 비추어 안다는 것이다.

ⓑ 혜광지慧光地

慧光開士三禪王   혜광의 보살은 제3선의 왕이니
能於千恒一時現   천 항하사 국토에 일시에 나타나
常在無爲空寂行   항상 무위의 공적행에 있으면서
恒沙佛藏一念了   항하사의 불장을 한 생각에 요달하네.

두 번째로 한 개의 게송은 혜광지慧光地를 해석한 것이다.179)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다음은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혜광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이 지에서는 사변四辨180)을 획득하기 때문에 비록 진여무위眞如無爲의 공한 행(空行)에서도 항하사 같은 부처님의 삼장三藏의 성스런 가르침을 한 생각에 요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001_0075_a_01L名爲法身1)惑諸功德所依止故
001_0075_a_02L稱爲法身放無量光照諸國土

001_0075_a_03L
入百恒土化衆生

001_0075_a_04L
釋曰第三化土寬狹

001_0075_a_05L
圓照三世恒劫事

001_0075_a_06L
釋曰第四有三句顯地別行有其
001_0075_a_07L三義初句照俗次句重釋後句照
001_0075_a_08L此卽初也2)依本記云道前爲過
001_0075_a_09L道中爲現在道後爲未來

001_0075_a_10L
返照樂虛無盡源

001_0075_a_11L
釋曰第二句重釋圓照三世依本
001_0075_a_12L記云言返照者返照過去地前之事
001_0075_a_13L言樂虛者緣現在樂虛而不實樂
001_0075_a_14L無盡源者照知未來道後不可盡其
001_0075_a_15L

001_0075_a_16L
於第三諦常寂然

001_0075_a_17L
釋曰第三明其照眞謂第八地
001_0075_a_18L智寂然3)智眞如第三諦也

001_0075_a_19L
慧光開士一念了

001_0075_a_20L
釋曰第二一偈釋慧光地文別有
001_0075_a_21L初標名配位次化土寬狹如文
001_0075_a_22L可知後顯地別行謂此地中得四
001_0075_a_23L辨故雖在眞如無爲空行而恒沙佛
001_0075_a_24L三藏聖敎一念能了

001_0075_b_01L
ⓒ 관정위灌頂位

관정의 보살은 제4선의 왕이니

세 번째로 한 개 반의 게송은 관정위灌頂位를 해석한 것이다.181)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다음은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은 관정지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ㄱ. 이름과 지위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관정灌頂”이라 한 것에 대해 예를 들어 『화엄경』 제27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유하면 전륜왕의 태자가 왕의 모습을 성취했을 때 왕이 사대해四大海의 물을 떠다가 … 태자의 정수리에 부어 주면 곧 ‘관정대왕灌頂大王’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으니, 직職을 받을 때 제불께서 지혜의 물을 이 보살의 정수리에 부어 주면 ‘관정법왕灌頂法王’이라 이름한다. …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대지혜직지大智慧職地에 들어갔다고 한다.”182)

ㄴ. 교화하는 국토

억 항하사 국토에서 중생을 교화하네.

두 번째는 교화하는 국토의 넓고 좁음을 밝힌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ㄷ. 차별적 행상

始入金剛一切了   처음 금강심金剛心에 들어 일체를 마치고
二十九生永已度   스물아홉 생에서 영원히 벗어났으니
寂滅忍中下忍觀   적멸인 중에서는 하인下忍의 관이요
一轉妙覺常湛然   한번 전환되면 묘각이 항상 고요하네.

세 번째는 관정지灌頂地의 차별적 행을 나타낸 것이다. 경문에는 네 개의 절이 있다. 첫째는 뛰어난 작용을 밝힌 것이니, 즉 금강의 한 생각으로 장애를 끊는 것을 이미 마쳤거나 혹은 경계를 비추는 것을 이미 마쳤다고 할 수도 있다. 둘째는 생에서 벗어남을 밝힌 것이니, 즉 30생 중에서 한 생이 아직 다하지 않았음을 말한다.183) 셋째는 품수品數로는 하인下忍의 지위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넷째는 지위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니, 즉 해탈도解脫道로 곧 묘각妙覺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b) 미혹을 끊는 분제

等慧灌頂三品士   등관·혜광·관정 세 품의 보살은
除前餘習無明緣   이전의 남은 습기인 무명의 연을 제거하니
無明習相故煩惱   무명습기의 모습인 옛 번뇌184)
二諦理窮一切盡   이제의 이치를 궁구하면 일체가 없어지네.

두 번째로 한 게송은 미혹을 끊는 분제를 나타낸 것이다. 앞에서 말한 등관等觀과 혜광慧光과 관정灌頂 세 품의 보살은 이전의 마음을 소연으로 삼는(緣心) 무명습기를 다 제거한다. 말하자면 무간도無間道가 현전할 때 무명습기의 모습인 옛 번뇌 등 일체가 다 없어진다는 것이다.

c) 적멸인寂滅忍

等慧灌頂三品士   원지의 무상은 삼계의 왕이니
除前餘習無明緣   삼십 생이 다하여 평등한 대각을 이루고
大寂無爲金剛藏   대적의 무위는 금강장과 같으며
一切報盡無極悲   모든 과보가 다하고 무극의 자비만 있네.

세 번째로 두 개 반의 게송이 있으니, 묘각위妙覺位를 밝힌 것이다.

001_0075_b_01L
灌頂菩薩四禪王

001_0075_b_02L
釋曰第三一偈半釋灌頂位文別
001_0075_b_03L有三初標名配位次化土寬狹
001_0075_b_04L顯地別行此卽初也言灌頂者
001_0075_b_05L嚴經第二十七云譬如輪王太子
001_0075_b_06L就王相取四大海水灌子頂上
001_0075_b_07L名爲灌項大王菩薩亦如是受職時
001_0075_b_08L諸佛以智水灌是菩薩頂名灌頂法
001_0075_b_09L是名菩薩入大智慧職地

001_0075_b_10L
於億恒土化群生

001_0075_b_11L
釋曰第二化土寬狹如文可知

001_0075_b_12L
始入金剛常湛然

001_0075_b_13L
釋曰第三顯地別行文有四節
001_0075_b_14L明勝用謂金剛一念斷障已了
001_0075_b_15L可照境已了二辨度生謂三十生中
001_0075_b_16L一生未盡三顯品數位在下忍
001_0075_b_17L辨入位謂解脫道卽成妙覺

001_0075_b_18L
4)一切盡

001_0075_b_19L
釋曰第二一偈斷惑分齊於上等
001_0075_b_20L觀慧光灌頂三品除前緣心無明習
001_0075_b_21L謂無間道現在前時無明習相故
001_0075_b_22L煩惱等一切皆盡

001_0075_b_23L
圓智無相無極悲

001_0075_b_24L
釋曰第三有兩偈半明妙覺位

001_0075_c_01L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세 가지 공덕을 찬탄한 것이고, 나중의 “제일의제” 이하는 그 공덕을 거듭해서 찬탄한 것이다.

(a) 세 가지 공덕을 찬탄함
전자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름을 표시하고 지위에 배당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원만한 지혜로 무상無相을 소연으로 삼기 때문에 “무상”이라고 하였다. 혹은 지혜의 작용이 인식하는 자(能緣)와 인식되는 대상(所緣)의 모습을 떠나 있기 때문에 ‘무상’이라 했을 수도 있다.
둘째는 생이 다하는 분위分位를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30생이 다하고 모든 경계에 대해 평등하게 깨닫는 것을 일컬어 “평등한 대각(等大覺)”이라고 하였다. 이상의 두 구는 지덕智德185)을 찬탄한 것이다.
셋째는 대무위大無爲를 증득했음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유여有餘·무여無餘의 두 종류 원적圓寂(열반)이 파괴될 수 없는 것이 마치 금강장金剛藏과 같다는 것이다. 이 한 구는 단덕斷德186)을 찬탄한 것이다.
넷째는 대자비大慈悲를 갖추었음을 밝힌 것이다. 즉 생사를 다하고 무극無極의 자비를 갖춘 것을 말하니, 이것은 은덕恩德187)을 나타낸다. 미래가 다하도록 〔자비가 이어지기〕 때문에 “무극”이라 한 것이다.

(b) 공덕을 거듭 찬탄함

제일의제에서 항상 안은하니
근원과 본성을 다 궁구한 묘지가 현존하며

두 번째로 한 개 반의 게송이 있으니, 그 공덕을 거듭해서 찬탄한 것이다. 경문에는 세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의 두 구는 경계에 의거해서 지혜를 찬탄한 것이다. 다음에 두 구가 있으니, 지위에 의거해서 공덕을 찬탄한 것이다. 마지막에 두 구가 있으니, 시時에 의거해서 공덕을 찬탄한 것이다.

ⓐ 경계에 의거해 지혜를 찬탄함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내면으로 진제를 증득하여 분별에 의해 동요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안은하고”라고 하였다. 생사의 세속적 근원을 궁구하고 열반의 참된 성품을 다 궁구하여 묘각지妙覺智를 성취했으므로 “묘지가 현존하며.”라고 하였다.

ⓑ 지위에 의거해 찬탄함

삼현과 십성은 과보에 머물지만
부처님 한 분만 정토에 계시며

두 번째는 지위에 의거해서 공덕을 찬탄한 것이다. 말하자면 처음 삼현三賢에서 관정위灌頂位까지는 유루의 법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므로 “과보에 머물지만”이라고 하였다.

001_0075_c_01L別有二初正讚三德後第一義下
001_0075_c_02L讚其德前中有四一標名配位
001_0075_c_03L圓滿智緣無相故名爲無相或可
001_0075_c_04L智用離能所緣故5)爲無相二盡
001_0075_c_05L6)分位謂三十生盡於一切境
001_0075_c_06L等而覺名等大覺此上二句讚智
001_0075_c_07L德也三證大無爲謂有餘無餘二種
001_0075_c_08L圓寂不可破壞如金剛藏此之一
001_0075_c_09L讚斷德也四具大慈悲謂盡生
001_0075_c_10L具無極悲此顯恩德窮未來際
001_0075_c_11L7)言無極

001_0075_c_12L
第一義諦妙智存

001_0075_c_13L
釋曰第二有一偈半重讚其德
001_0075_c_14L有三節8)之二句就境讚智次有
001_0075_c_15L二句就位讚德後有二句約時讚
001_0075_c_16L此卽初也謂內證眞諦非分別
001_0075_c_17L所動故言常安隱窮生死俗源
001_0075_c_18L涅槃眞性成妙覺智9)故妙智存

001_0075_c_19L
三賢十聖居淨土

001_0075_c_20L
釋曰第二就位讚德謂始從三賢
001_0075_c_21L灌頂位有漏未盡言住果報唯佛一
001_0075_c_22L「惑」作「或」{甲}ㆍ「惑」疑「或」{乙}「依」上有
001_0075_c_23L「初」{甲}
「智」作「知」{甲}「慧」下有「灌頂」
001_0075_c_24L{甲}
「爲」無{甲}「分」作「別」{甲}「言」作
001_0075_c_25L「云」{甲}
「之」作「云」{甲}「故」下有「言」{甲}

001_0076_a_01L오직 부처님 한 사람만 생사의 과보가 다하고 유루의 법이 없기 때문에 “정토에 계시며”라고 하였다.

ⓒ 시에 의거해 찬탄함

모든 중생은 잠시 과보에 머물지만
금강의 근원에 오르면 정토에 거한다네.

세 번째는 시時에 의거해서 공덕을 찬탄한 것이다. 말하자면 일체의 중생은 비록 시작은 없어도 끝나는 때가 있으므로 “잠시 과보에 머물지만”이라고 하였고, 오직 부처님 한 사람은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으므로 “정토에 거한다네.”라고 하였다.188)

㈐ 교화의 업에 대한 찬탄

여래의 삼업 공덕은 한계가 없으니
나 지금 월광은 삼보께 귀례합니다.

이하는 세 번째로 부처님의 삼업을 찬탄한 것이다. 경문은 다섯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의 두 구는 삼업을 총괄해서 찬탄한 것이다. 둘째로 하나의 게송이 있으니, 삼업을 따로 따로 찬탄한 것이다. 셋째로 반 게송이 있으니, 설법에 두려움이 없음을 찬탄한 것이다. 넷째로 반 게송이 있으니, 대지를 진동시킴을 찬탄한 것이다. 다섯째로 반 게송이 있으니, 부처님께서 흔쾌히 설해 주심을 찬탄한 것이다.

㉮ 총괄적 찬탄
총괄적 찬탄을 설한 곳에서, 처음의 한 구는 삼업을 총괄해서 찬탄한 것이고, 나중에 나온 한 구는 자기가189) 귀례歸禮함을 나타낸 것이다.
“삼업의 공덕은 한계가 없으니”라는 것은 앞에서 설한 것처럼 신업이 견고하고 의업이 고요하며 구업으로 잘 설하시는 것이 모두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한계가 없다고 하였다. 이로 인해 “나 지금 〔월광은〕 삼보께 귀례합니다.”라고 한 것이다.

㉯ 개별적 찬탄

法王無上人中樹   법왕은 위없으니 사람 중의 큰 나무
覆蓋大衆無量光   대중을 덮어 주며 한량없는 빛을 내고
口常說法非無義   항상 설법하심에 이익 아닌 것 없으며
心智寂滅無緣照   마음의 지혜 고요하여 연이 없이 비추네.

이하는 두 번째로 한 개의 게송이 있으니, 삼업을 개별적으로 찬탄한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에 나온 두 구는 신업을 따로 찬탄한 것이다. 비유하면 큰 나무가 사람들을 덮어 주는 것처럼, 여래가 신업의 힘으로 덮어 주는 것도 그렇다는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한 구는 구업을 따로 찬탄한 것이다. 이치에 맞게 법을 설하여 이익(義利)190)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한 구가 있으니, 의업을 따로 찬탄한 것이다. 그 마음이 고요해서 무연無緣의 대비로 널리 유정을 비춘다는 것이다.

㉰ 두려움 없음을 찬탄함

사람 중의 사자가 대중 위해 설하니
대중들이 기뻐하며 황금 꽃을 뿌리네.

세 번째는 설법에 두려움이 없음을 찬탄한 것이다. 경문에는 두 개의 구절이 있다.

001_0076_a_01L生死報盡無有漏法故居淨土

001_0076_a_02L
一切衆生居淨土

001_0076_a_03L
釋曰第三約時讚德謂一切衆生
001_0076_a_04L無有始而有盡時名暫住報唯佛
001_0076_a_05L一人有始無終名居淨土

001_0076_a_06L
如來三業禮三寶

001_0076_a_07L
釋曰自下第三讚佛三業文別有五
001_0076_a_08L一初二句總讚三業二有一偈
001_0076_a_09L讚三業三有半偈讚說無畏四有
001_0076_a_10L半偈讚能動地五有半偈讚佛快
001_0076_a_11L就總讚中初之一句總讚三業
001_0076_a_12L1)後有一句顯已歸禮言三業德無
001_0076_a_13L極者如前所說身業堅固意業寂
001_0076_a_14L口業能說皆無窮盡故言無極
001_0076_a_15L由斯我今敬禮三寶

001_0076_a_16L
法王無上無緣照

001_0076_a_17L
釋曰自下第二有一偈別讚三業
001_0076_a_18L中有三初有二句別讚身業譬如
001_0076_a_19L大樹覆蓋人衆如來身力覆蓋亦然
001_0076_a_20L次有一句別讚口業稱理說法
001_0076_a_21L無義利後有一句別讚意業其心
001_0076_a_22L寂靜無緣大悲普照有情

001_0076_a_23L
2)中師子散金華

001_0076_a_24L
釋曰第三讚說無畏文有兩3)

001_0076_b_01L처음의 한 구는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 두려움이 없음을 찬탄한 것이고, 나중의 한 구는 〔대중들이〕 기뻐하며 공양한 것이다.

㉱ 대지를 진동시킴을 찬탄함

백억만 국토가 여섯 가지로 크게 진동하니
중생의 부류마다 묘한 과보 받았네.

네 번째로 반 게송이 있으니, 대지를 진동시킴을 찬탄한 것이다. 경문에는 두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은 부처님이 대지를 진동시킴을 찬탄한 것이고, 나중은 중생들이 묘한 과보를 받았음을 찬탄한 것이다.

㉲ 쾌설快說을 찬탄함

천존께서 명쾌히 열네 왕을 설해 주시니
내가 지금 간략히 부처님을 찬탄하였네.”

다섯 번째로 반 게송이 있으니, 부처님께서 명쾌히 설해 주심을 찬탄한 것이다. 경문에는 두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 구는 부처님께서 명쾌히 여러 왕들에 대해 설해 주심을 찬탄한 것이고, 나중 구는 자기가191) 설법을 찬탄한 뜻을 진술한 것이다.

③ 대중의 이익

이때 모든 대중들이 월광왕月光王이 열네 왕의 한량없는 공덕장功德藏을 찬탄하는 것을 듣고

이하는 세 번째로 대중이 이익을 얻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본기』에 의하면 일곱 종류 이익이 있으니, 경문은 일곱 가지로 구분된다.

가) 문혜聞慧
이것은 첫 번째로 문혜聞慧를 획득한 이익을 밝힌 것이다.

나) 사혜思慧

큰 법의 이익(大法利)을 얻었다.

두 번째는 사혜思慧를 획득한 이익을 밝힌 것이다. 이미 사혜가 문혜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큰 법의 이익”이라고 하였다.

다) 수혜修慧

곧 좌중에 있던 십 항하사의 천왕들과 십 항하사의 범왕들과 십 항하사의 귀신왕 내지는 삼취三趣의 중생들이 무생법인을 얻었고,

세 번째는 수혜를 얻는 이익을 밝힌 것이다. “삼취三趣”란 〔지옥·아귀·축생의〕 세 가지 악취를 말한다.
어째서 악취가 수혜를 얻을 수 있는가?
살바다종에서는 악취가 수혜를 얻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지만, 지금 대승종에서는 또한 수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대운경大雲經』에서는 모든 축생 등이 정율의定律儀192)를 얻었다고 하였다.193)

라) 현재안락주現在安樂住

팔부八部의 아수라왕194)은 현재에 귀신의 몸을 바꿔서 천상에서 도를 받았으며,

네 번째는 현재안락주現在安樂住를 밝힌 것이다.
“팔부의 아수라”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001_0076_b_01L之一句讚說無畏後有一句歡喜
001_0076_b_02L供養

001_0076_b_03L
百億萬土受妙報

001_0076_b_04L
釋曰第四有半偈讚能動地文有
001_0076_b_05L兩節初讚佛動地後衆受妙報

001_0076_b_06L
天尊快說4)難佛

001_0076_b_07L
釋曰第五有半偈5)歎佛快說文有
001_0076_b_08L兩節初句讚佛快說諸王後句
001_0076_b_09L已讚說之意

001_0076_b_10L
時者大衆無量功德藏

001_0076_b_11L
釋曰自下第三辨衆得益若依本
001_0076_b_12L有七種益卽分爲七此卽第一
001_0076_b_13L6)開慧益

001_0076_b_14L
得大法利

001_0076_b_15L
釋曰第二得思慧益以已思慧
001_0076_b_16L於聞慧名大法利

001_0076_b_17L
卽於座中無生忍

001_0076_b_18L
釋曰第三得修慧益言三趣者
001_0076_b_19L三惡7)趣問如何惡趣能得修慧8)
001_0076_b_20L薩婆多宗不許惡趣能得修慧今大
001_0076_b_21L乘宗亦得修慧故大雲經諸畜生
001_0076_b_22L得定律9)

001_0076_b_23L
八部天上受道

001_0076_b_24L
釋曰第四現在安樂住言八部阿修

001_0076_c_01L사천왕四天王이 머무는 곳 아래 네 종류 아수라왕이 있는데, 첫째는 라후羅睺 아수라이고 둘째는 비마질다라毘摩質多羅이며 셋째는 파리波利이고 넷째는 비루사毘樓闍이다. 수미산 아래에 또 사대四大의 아수라가 있으니, 첫째는 타누陀㝹이고 둘째는 부루마富樓魔이며 셋째는 파라가波羅訶이고 넷째는 두모루兜牟樓이다.

마) 정위正位

삼생三生에 정위正位에 드는 자 혹은 사생四生이나 오생五生이나 내지는 십생十生에 〔정위에 들 자들이〕 정위에 들었고,

다섯 번째는 정위正位를 밝힌 것이다.

바) 정안위淨眼位

성인의 종성을 증득하였으며,

여섯 번째는 정안위淨眼位를 밝힌 것이다. “성인의 종성을 증득했으며(證聖人性)”라는 네 글자는 이승이 획득한 것을 말한다.

사) 미래락주未來樂住

모든 한량없는 과보를 얻었다.

일곱 번째는 미래락주未來樂住를 밝힌 것이다. 이미 성스런 가르침을 듣고서 생보生報·후보後報195)의 한량없는 과를 얻는 것이다.
‘③대중의 이익’에 대한 또 다른 해석〕 또는 대중이 이익을 얻었음을 밝힌 곳에서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고도 한다. 처음은 총체적 이익을 밝힌 것이니, 대중이 교법을 듣는 것을 말한다. 나중의 “곧 좌중에” 이하는 그들의 개별적 이익을 나타낸 것이니, 즉 모든 천·귀신 내지는 인·축생·지옥까지 초지의 무생법인을 얻었음을 말한다. 그 밖의 경문에 대한 해석은 이전의 설과 거의 동일하다.
비록 두 가지 설이 있지만 우선 앞의 설에 의거하겠다. 지옥 중생이 초지의 무생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⑶ 여래의 영해領解

부처님께서 도과道果를 획득한196) 모든 실재의 천중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월광왕은 이미 과거의 만 겁 동안 용광왕불龍光王佛의 법 중에서는 사주四住보살이었고 나는 팔주八住보살이었는데, 이제는 내 앞에서 크게 사자후獅子吼197)를 토하였습니다.

이하에서는 세 번째로 여래가 영해領解198)한 것을 진술한다.

001_0076_c_01L羅者四天王住下有四阿修羅王
001_0076_c_02L羅睺阿修羅二毘10)摩質多羅三波
001_0076_c_03L四毘樓闍須彌山下又有四大
001_0076_c_04L阿修羅一陀㝹11)富樓魔三波羅訶四兜牟樓

001_0076_c_05L
三生得入正位

001_0076_c_06L
釋曰第五正位

001_0076_c_07L
證聖人性

001_0076_c_08L
釋曰第六淨眼位證聖人性四字
001_0076_c_09L是二乘所得

001_0076_c_10L
得一切無量報

001_0076_c_11L
釋曰第七未來樂住旣聞聖敎
001_0076_c_12L生報後報無量果也又云就得益中
001_0076_c_13L文別有二初明總益謂衆聞法
001_0076_c_14L卽於下顯其別益謂諸天鬼神
001_0076_c_15L至人畜地獄得初地無生法忍餘文
001_0076_c_16L大同前說雖有兩說且依前說
001_0076_c_17L獄能得初地無生不應理故

001_0076_c_18L
佛告諸行得道大師子吼

001_0076_c_19L
釋曰自下第三如來述成領解文別
001_0076_c_20L「後」作「復」{甲}「中」無{甲}「卽」作「節」
001_0076_c_21L{甲}
「難」作「嘆」{甲}「歎」作「嘆」{甲}「開」
001_0076_c_22L作「聞」{甲}ㆍ「開」疑「聞」{乙}
「趣」作「道」{甲}
001_0076_c_23L「益」作「答」{甲}「儀」下有「勘」{甲}「摩」
001_0076_c_24L作「莊」{甲}
「富」作「馬」{甲}

001_0077_a_01L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왕이 잘 설하였음을 찬탄한 것이다. 나중의 “선남자여 …” 이하는 설해진 법을 찬탄한 것이다.

① 잘 설한 자에 대한 찬탄
전자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세존께서〕 왕이 잘 설했음을 찬탄하신 것이고, 나중은 세존께서 찬탄의 말을 진술하신 것이다.

가) 왕을 찬탄함
첫째로199) 잘 설했음을 밝힌 곳에는 두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은 알려줄 대중을 표시한 것이고, 나중은 대중 앞에서 〔월광을〕 칭찬한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즉 청중 중에서 천중天衆이 가장 우수한데, 어떤 자는 성스런 과를 얻기도 한다. 이는 실재이지 화작이 아니다. 따라서 “도과를 획득한 실재의 천중”이라고 하였다.
“선남자여 …”라고 한 것은 두 번째로 대중 앞에서 칭찬한 것이니, 지금이 예전보다 뛰어나서 ‘사자후’가 되었다고 서술한 것이다. 말하자면 과거의 용광불 곁에서 그는 제4염혜지炎慧地의 보살이었고 나는 제8등관지等觀地의 보살이었는데, 나는 지금 부처가 되었고 그대는 제9지에 이르러 사자후가 되었다고 한 것이다.

나) 찬탄의 진술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대가 말한 것은 참된 뜻을 얻은 말이니, 이는 사의思議할 수 없는 것이고, 탁량度量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이 일을 아십니다.

두 번째는 여래께서 진술하신 것이다. 경문에는 두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은 교법이 이치에 맞음을 찬탄한 것이고, 나중은 〔교법에 의해 드러나는〕 소전所詮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왕이 설한 교법은 소전의 이치에 부합하니, 교법과 이치가 상응하기 때문에 거듭해서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사의思議할 수 없고 …”라고 했는데, 〔이는 소전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다.〕 삼현三賢의 경계가 아닌 것을 ‘사의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용수는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言語道斷) 심행의 처가 멸하였다(心行處滅)’고 해석하였고,200) 세친 등은 ‘마음과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心言路絶)’고 했는데,201) 그 의미는 동일하다. 십지의 경계가 아닌 것을 ‘탁량度量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비교해서 더 뛰어난 공덕을 찬탄한202)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이 일을 아십니다.”라고 하였다.

② 설해진 법에 대한 찬탄

선남자여, 그 설한 바의 열네 가지 반야바라밀, 즉 삼인三忍 그리고 지마다 있는 상·중·하의 삼십 가지 인忍의 모든 행장行藏과 모든 불장佛藏은 불가사의한 것입니다.203)

두 번째는 설해진 법을 찬탄한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설해진 바(=반야바라밀)를 바로 찬탄한 것이다. 다음의 “선남자여, 이 열네 가지 법문은” 이하는 〔열네 가지 법문의〕 작용을 찬탄하며 수학을 권한 것이다. 나중의 “이때 모든 대중들 가운데” 이하는 대중의 공양을 밝힌 것이다.

001_0077_a_01L有二初讚王能說後善男子下讚所
001_0077_a_02L說法前中有二初讚王能說後世
001_0077_a_03L尊述讚二能說中文有二節初標
001_0077_a_04L所告衆後對衆正讚此卽初也
001_0077_a_05L聽衆中天衆最勝或得聖果是實
001_0077_a_06L非化故名得道果實天衆言善男
001_0077_a_07L子等者第二對衆正讚叙今勝古
001_0077_a_08L師子吼謂於過去龍光佛邊爲第四
001_0077_a_09L炎慧開士我爲第八等觀開士我今
001_0077_a_10L成佛汝來第九地作師子吼

001_0077_a_11L
如是如是乃至知斯事

001_0077_a_12L
釋曰第二如來述成文有兩節
001_0077_a_13L讚敎稱理後顯所詮理此卽初也
001_0077_a_14L所說敎稱所詮理敎理相應是故
001_0077_a_15L重言如是如是言不思議等者
001_0077_a_16L三賢境名不思議龍樹釋云言語
001_0077_a_17L道斷心行處滅世親等云心言路
001_0077_a_18L其義一也非十地境名不可度
001_0077_a_19L此卽校量難勝功德是故唯佛與
001_0077_a_20L乃知斯事

001_0077_a_21L
善男子不可思議

001_0077_a_22L
釋曰第二讚所說法文別有三初正
001_0077_a_23L讚所說次善男子是十四法門下讚
001_0077_a_24L用勸修後時諸衆中下大衆供養

001_0077_b_01L
가) 설해진 법을 찬탄함
바로 찬탄한 곳에서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불가사의不可思議’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다음의 “선남자여” 이하는 ‘불가탁량不可度量’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마지막 “나는 이제” 이하는 ‘오직 부처님만 아신다(唯佛乃知))’는 것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 불가사의不可思議에 대한 해석
‘불가사의’를 해석한 곳에서 경문은 다시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처음은 주장을 표명하며 간략하게 설한 것이다. 다음은 외인이 따져 물은 것이다. 마지막은 세존께서 자세하게 해석하신 것이다.

㉮ 주장의 표명
전자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괄해서 그 수를 나타낸 것이니, 즉 “열네 가지 반야바라밀”이라 한 것을 말한다. 둘째는 그에 해당되는 것을 따로 서술한 것이니, 즉 십지 이전의 세 가지 인忍이 있고, 〔십지의〕 지와 지마다 세 개의 품이 있으므로 30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두 가지 장藏을 구별한 것이다. 즉 “모든 행장行藏”이란 앞의 13인이고, “모든 불장佛藏”이란 최상품의 적멸인寂滅忍을 말한다. 이 두 종류는 모든 공덕을 포괄하기 때문에 ‘장藏’이라고 하였다. 넷째는 ‘불가사의하다’고 결론지은 것이니, 이와 같은 두 가지 장을 불가사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 따져 물음

“어째서입니까?”

두 번째는 외인이 따져 물은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행장과 불장을 모두 ‘불가사의하다’고 했는가?

㉰ 자세한 해석

“모든 부처님들은 이 중에서 생하고 이 중에서 멸하며 이 중에서 교화하지만,

이하는 세 번째로 주장에 의거해서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오직 불장에 의거해서 ‘부사의不思議’를 설명한 것이다. 다음의 “모든 중생” 이하는 두 가지 장을 합해서 해석하면서 ‘부사의’를 설명한 것이다.

a. 불장佛藏에 의거한 설명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경문에 대해 본래 두 가지 설이 있다.204)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중에서 생하고 이 중에서 멸하며 이 중에서 교화하지만”이라고 한 것은 법신에는 형상이 없으나 중생을 위해서 형상을 나타낸 것이니, 즉 왕궁에서 태어나고 쌍림雙林에서 멸도하며 감응感應에 따라서 교화한 것을 말한다.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교화함도 없습니다.”라고 했는데, 그 작용이 더욱 고요하기 때문에 체에서는 생함도 멸함도 교화함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도 없고 타인도 없으며”라는 것은 남과 자기가 둘 다 사라진 것이다. “제일의第一義에는 둘이 없으니”라는 것은 경계와 지혜가 함께 끊어진 것이다.

001_0077_b_01L正讚中文別有三初釋不可思議
001_0077_b_02L善男子下釋不可度量後我今下
001_0077_b_03L唯佛乃知就不思議中文復有三
001_0077_b_04L標宗略說次外人徵詰後世尊廣釋
001_0077_b_05L前中有四一總標其數謂十四般
001_0077_b_06L二別叙屬當謂地前三忍地地
001_0077_b_07L三品成三十忍三二藏分別謂一
001_0077_b_08L切行藏者前十三忍一切佛藏者
001_0077_b_09L寂滅忍由此二種攝諸功德名之爲
001_0077_b_10L四結不思議如是二藏名不可
001_0077_b_11L思議

001_0077_b_12L
何以故

001_0077_b_13L
釋曰第二外人徵詰依何義故
001_0077_b_14L藏佛藏皆不思議

001_0077_b_15L
一切諸佛是中化

001_0077_b_16L
釋曰自下第三依宗廣釋文別有
001_0077_b_17L初唯就佛藏明不思議次一切衆
001_0077_b_18L生下合釋二藏明不思議此卽初
001_0077_b_19L然此文自有兩說一云是中生
001_0077_b_20L是中滅是中化者法身無像爲物
001_0077_b_21L故形以王宮現生雙林託滅隨感
001_0077_b_22L應故所以化也無生無滅無化者
001_0077_b_23L用彌寂故體無生滅化也無自他者
001_0077_b_24L彼己兩亡第一無二者境智俱絶

001_0077_c_01L“교화하는 것도 아니고 교화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라고 했는데, 그 대적大寂을 말한다면 교화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 작용에 의거하면 교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도 아니고 상이 없으니(非無無相)”205)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유有와 무無는 상대적이라서 유가 있다면 무도 있게 되고 무가 있다면 유도 있게 되겠지만, 지금은 유와 무가 둘 다 무임을 밝히기 때문에 ‘무도 아니고 상도 없다’고 하였다. “옴도 없고 감도 없습니다.”라는 것은 가고 오는 모습이 끊어졌음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중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미 온 것(已來)에도 ‘온다’는 것이 없고 아직 오지 않은 것(未來)에도 ‘온다’는 것이 없으니, 이미 온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떠나서 오는 모습을 얻을 수 없다. 이미 간 것(已去)에도 ‘간다’는 것이 없고 아직 가지 않은 것(未去)에도 ‘간다’는 것이 없으니, 이미 간 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을 떠나서 가는 모습을 얻을 수 없다.≻206)
이제 이 경문을 해석하겠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화신化身이 상相과 일치하면서도 상이 없다’는 점에 의거해서 ‘불가사의’를 설명한 것이다. 나중은 힐난을 따라가며 거듭 해석한 것이다.

a) 화신化身에 의거한 설명
전자에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세 가지 상相을 건립한 것이고, 나중은 세 가지 상을 버린 것이다.

(a) 세 가지 상을 건립함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생하고”란 지덕智德을 밝힌 것이고, “이 중에서 멸하며”란 단덕斷德을 밝힌 것이며, “이 중에서 교화하지만”이란 은덕恩德을 나타낸 것이다.207) 이것은 화신에 의거해서 이와 같이 해석한 것이다. 혹은 수용신과 법신에 공통적으로 의거해서 앞의 ‘생한다’는 등의 문구를 해석할 수도 있다. 이치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

(b) 세 가지 상을 버림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교화함도 없습니다.

두 번째는 ‘생하는 모습’ 등의 세 가지 상을 버린 것이다. ‘상의 자성 없음(相無自性)’에 의거했기 때문에 ‘생하는 모습’ 등의 세 가지 상이 없다고 설한 것이다.

b) 힐난을 따라 거듭 해석함

자기도 없고 타인도 없으며, 제일의第一義에는 둘이 없으니, 교화하는 것도 아니고 교화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무無도 아니고, 상相이 없으니208) 옴도 없고 감도 없습니다.

두 번째는 힐난을 따라서 거듭 해석한 것이다. 비록 ‘교화함이 없다’고 했지만 그 모습에 대해 알기 어렵기 때문에 거듭해서 해석하였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앞은 법이고 뒤는 비유다.

(a) 법
법에는 다섯 가지 의미가 있어서 연속해서 서로 해석해 간다. 첫째로 “자기도 없고 타인도 없으며”라는 것은 앞에서 ‘교화함이 없다’고 한 말을 해석한 것이다. 이미 자기와 타인이 없는데, 어떻게 교화함이 있겠는가? 둘째로 “제일의에는 둘이 없으니”라는 것은 ‘자기와 타인이 없다’고 한 것을 해석한 것이다. 제일의 중에는 자기와 타인이라는 두 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교화하는 것도 아니고 교화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라는 것은 앞에서 ‘둘이 없다’고 한 것을 해석한 것이다.

001_0077_c_01L化非不化者談其大寂非化據其大
001_0077_c_02L用非不化非無無相者有無相對
001_0077_c_03L有有可有無若有無可有有今明有
001_0077_c_04L無俱無故言非無無相無來去者
001_0077_c_05L去來相絶故中論云已來亦無來
001_0077_c_06L來亦無來離已來未來來相不可得
001_0077_c_07L已去亦無去未去亦無去離已去未
001_0077_c_08L去相不可得今釋此文於中有
001_0077_c_09L初就化身卽相無相明不思議
001_0077_c_10L後逐難重釋前中復二初立三相
001_0077_c_11L遣三相此卽初也是中生者明智
001_0077_c_12L是中滅者辨斷德是中化者
001_0077_c_13L恩德此約化身作如是釋或可通
001_0077_c_14L依受用法身釋上生等如理應思

001_0077_c_15L
而無生無滅無化

001_0077_c_16L
釋曰第二遣生等三相約相無自性
001_0077_c_17L故說無生等三相

001_0077_c_18L
無自他無去來

001_0077_c_19L
釋曰第二逐難重釋雖云無化
001_0077_c_20L相難知故重釋之於中有二先法
001_0077_c_21L後喩法有五義展轉相釋一無自
001_0077_c_22L他者釋上無化旣無自他如何有
001_0077_c_23L二第一無二者釋無自他第一
001_0077_c_24L義中無自他二故三非化非不化者

001_0078_a_01L즉 ‘교화하는 것(化)’이란 교화하는 주체(能化)를 말하고, ‘교화하지 않는 것(不化)’이란 교화되는 대상(所化)을 말하니, 주체와 대상이 둘 다 부정되기 때문에 제일의에는 둘이 없다는 것이다. 넷째로 “무도 아니고(非無)”라는 것은 ‘무’를 버린 것이다. 이전에 이미 ‘유’를 버렸기 때문에 다시 ‘무’라고 여기는 것을 부정하였으니, 〔무라고 하면〕 악취공惡取空209)과 같기 때문에 ‘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섯째로 “상相이 없으니 옴도 없고 감도 없습니다.”라는 것은 유와 무를 짝지어 버린 것이다. ‘상’이란 유와 무의 상이니, ‘옴(來)’이란 유의 상이고 ‘감(去)’이란 무의 상이다. 이제 이 반야는 유와 무를 짝지어서 버리기 때문에 상이 없으니 옴도 없고 감도 없다고 하였다.

(b) 비유

마치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법동품의 비유(法同喩)를 든 것이다.

b. 행장行藏·불장佛藏에 의거한 해석

모든 중생은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니, 얽매임도 없고 풀려남도 없으며,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며 인과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번뇌의 〔대상인〕 나(我)·남(人)·아는 자(知者)·보는 자(見者)·받는 자(受者)·아소我所210)들의 모든 고수행苦受行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이하는 두 번째로 두 가지 장藏211)을 합해서 해석하면서 ‘부사의’를 설명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앞은 해석이고, 나중은 결론이다.

a) 해석
해석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인人과 법法을 상대시켜서 ‘부사의’를 설명한 것이다. 나중은 경境과 지智를 상대시켜서 ‘부사의’를 설명한 것이다.

(a) 인人·법法에 의거한 설명
전자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는 인공을 밝혔고, 나중에는 법공을 밝혔다.

ⓐ 인공人空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경문에는 두 개의 구절이 있다. 처음은 세 가지 의미에서 아상我相이 공함을 설명한 것이다. 나중의 “번뇌의 〔대상인〕” 이하는 ‘아我’의 여러 가지 이름들에 의거해서 인공을 설명한 것이다.

ㄱ. 아상我相의 공함
이것은 세 가지 의미에서 공한 모습을 밝힌 것이다. 세 가지 의미란, 첫째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얽매임도 없고 풀려남도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며 인과가 아닌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니”라는 것에 대해 여러 설이 다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는 것은 총구總句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모든 중생에게 다 태어남과 죽음이 있는 것을 ‘생멸’이라고 하는데, 죽음과 태어남을 짝지어 버리기 때문에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고 하였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함이 없다’는 것은 상견常見을 버린 것이니, 그들은 ‘아’는 생겨나면 멸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멸함이 없다’는 것은 단견斷見을 버린 것이니, 그들은 ‘아’는 단멸해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001_0078_a_01L釋上無二謂化是能化不化是所化
001_0078_a_02L能所俱非故第一義無有二也
001_0078_a_03L非無者遣無前已遣有便撥爲無
001_0078_a_04L同惡取空故言非無五無相無來去
001_0078_a_05L雙遣有無所言相者是有無相
001_0078_a_06L來者有相去者無相今此般若
001_0078_a_07L遣有無故言無相無來去也

001_0078_a_08L
如虛空故

001_0078_a_09L
釋曰第二擧法同喩

001_0078_a_10L
一切衆生行空故

001_0078_a_11L
釋曰自下第二合釋二藏明不思議
001_0078_a_12L文別有二先釋後結釋中有二
001_0078_a_13L人法相對辨不思議後境智相對
001_0078_a_14L不思議前中有二初明人空後明
001_0078_a_15L法空此卽初也文有兩節初以三
001_0078_a_16L辨我相空後煩惱下就我衆名
001_0078_a_17L以辨人空此卽三義以辨空相言三
001_0078_a_18L義者一無生無滅二無縛無解
001_0078_a_19L非因非果非不因果言無生無滅者
001_0078_a_20L諸說不同一云無生無滅卽是總
001_0078_a_21L謂一切衆生皆有生死名爲生
001_0078_a_22L雙遣死生故言無生無滅一云
001_0078_a_23L無生者遣常見彼計我生而不滅故
001_0078_a_24L無滅者遣斷見彼計我滅而不續故

001_0078_b_01L
“얽매임도 없고 풀려남도 없으며”라고 한 이하는 따로따로 해석한 것이다. 이미 중생이 없다면, 어느 누가 얽매이거나 풀려난다고 하겠는가? 따라서 『대지도론』 제51권 「무박무탈품」212)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중五衆(오온)에는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 필경 공하여 짓는 자(作者)가 없다면 누가 얽매이고 풀려나겠는가. 범부인의 법은 헛되어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속박도 아니고, 성인의 법은 필경 공하여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해탈도 아니다.”213)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살은 이 도道 안에 머물되 모든 번뇌에 끌려서 범부 안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속박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무루의 법으로써 번뇌를 깨뜨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해탈도 아니다’고 한다.”214) 구체적으로 설하면 그 논과 같다. 진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인공人空의 진여는 번뇌에 속박되지 않고 또한 지혜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하여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며”라는 것은 〔인과를〕 짝지어 버린 것이다. 위세사衛世師(ⓢVaiśeṣika)외도가 ‘아我는 짓는 자(作者)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因이라 설하였고, 승거僧佉(ⓢSāṃkhya)외도가 ‘아는 받는 자(受者)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과果라고 설한 것이니, 따라서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라고 하였다.215)
“인과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라고 한 것은 세속의 이치에 의거하면 인과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ㄴ. ‘아’의 이명에 의거한 설명
“번뇌의 〔대상인〕”이라고 한 이하는 ‘아’의 여러 가지 이름에 의거해서 인공을 설명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 ‘번뇌’라고 한 것은 ‘집착의 주체인 법(能執法)’을 나타낸 것이니, 이른바 아견我見번뇌를 말한다. 나와 남 등에 대한 집착이 행자를 괴롭히고 어지럽히기 때문에 ‘번뇌’라고 한다.
나중에 “나와 남…”이라 한 것은 ‘집착의 대상이 되는 아(所執我)’를 밝힌 것이다. 여러 가지 많은 이름이 나오는데,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아의 다섯 가지 이름을 밝힌 것이니, 즉 ① 나(我) ② 남(人) ③ 아는 자(知者) ④ 보는 자(見者) ⑤ 받는 자(受者)이다.
나중의 “아소我所들 …”이라고 한 것은 아소의 공함을 밝힌 것이다. 앞의 다섯 종류 ‘아’에 모두 아소가 있으니, 즉 첫 번째 ‘나의 것(我所)’에서 내지는 다섯 번째 ‘받는 자의 것(受者所)’까지를 말한다. 다섯 종류를 총괄해서 표명하여 ‘아소가 공하다’라고 한 것이다.
버려지는(所遣) 법체216)는 통틀어 세 가지 수受를 포함한다. 이른바 고수苦受를 고고苦苦라고 하고 낙수樂受를 괴고壞苦라고 하며 사수捨受를 행고行苦라고 하는데,

001_0078_b_01L言無縛無解者自下別釋旣無衆生
001_0078_b_02L說誰名爲有縛有解故智論五十一
001_0078_b_03L縛脫品云五衆無縛無脫若畢竟空
001_0078_b_04L無有作者誰縛解凡夫人法虛誑
001_0078_b_05L不可得故非縛聖人法畢竟空不可
001_0078_b_06L得故非解乃至云菩薩住是道中
001_0078_b_07L煩惱不牽墮凡夫中故言不縛不以
001_0078_b_08L諸無漏法破煩惱故言不解具說如
001_0078_b_09L眞諦解云人空眞如非煩惱所
001_0078_b_10L亦非智慧所了空無所得故
001_0078_b_11L非因非果者雙遣衛世師外道
001_0078_b_12L我爲作者說名爲因僧佉外道
001_0078_b_13L我爲受者名爲果故言非因非果
001_0078_b_14L非不因果者依俗理非無因果
001_0078_b_15L煩惱下就我衆名以辨人空於中
001_0078_b_16L有二初煩惱者出能執法所謂我
001_0078_b_17L見煩惱我人等惱亂行者故名煩惱
001_0078_b_18L後我人等者辨所執我有衆多名
001_0078_b_19L中有二初辨我五名一我二人
001_0078_b_20L知者四見者五受者後我所等者
001_0078_b_21L辨我所空謂前五種我皆有我所
001_0078_b_22L第一我所乃至第五受者所總標五
001_0078_b_23L故言我所空所遣法體通攝三
001_0078_b_24L所謂苦受名苦苦樂受名壞苦

001_0078_c_01L따라서 세 가지 수를 ‘고수苦受’라고 통칭하였다.217) 곧 이 세 가지 수는 모두 유위행有爲行으로서 똑같이 ‘나’에 의해 버려지는 법들이기 때문에 “모든 고수행이 공하기218)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 법공法空

모든 법의 모임(法集)인 허깨비(幻化) 같은 오음五陰은 합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니, 법은 법성과 동일하여 고요한 공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법공法空을 설명한 것이다. 그에 네219) 개의 구가 있다.
첫째, “모든 법의 모임”이란 이름을 표시하고 그것이 ‘가假’임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법은 모인 것이기 때문에 ‘가’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둘째, “허깨비 같은 오음”이란 비유를 들어 법체를 나타낸 것이다. 허깨비 같은 오음은 ‘사람’ 〔등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가法假라고 한다.220)
셋째, “합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니”라는 것은 법의 별상別相을 나타낸 것인데, 이에 대해 여러 설들이 다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음이 몸을 이루는 것을 ‘합한다’고 하고, 나중에 분리되어 흩어질 때를 ‘흩어진다’고 하는데, 이 두 가지 모습을 짝지어 버리기 때문에 ‘합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다’고 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분별지는 생사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합함이 없다’고 하고, 항상 대비를 일으켜서 일부러 열반에 들지 않기 때문에 ‘흩어짐도 없다’고 한다.≻
넷째,221) “법은 법성과 동일하여”라는 것은 허망을 거두어 진실에 귀속시키는 문이니, 모든 법들은 다 진여를 본성으로 삼기 때문이다.

(b) 경계·지혜에 의거한 설명

법의 경계는 공하니, 공空·무상無相·부전不轉은 전도가 아니고 허깨비(幻化)를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삼보도 없고 성인도 없으며 육도도 없으니, 마치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경계와 지혜를 상대시켜서 ‘부사의’를 설명한 것이다. 이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경계의 공함을 설명한 것이고, 나중은 지혜의 공함을 해석한 것이다.

ⓐ 경계의 공함
전자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앞은 법이고, 나중은 비유다.

ㄱ. 법
법 중에 두 가지가 있다.

ㄱ) 전체적 공
처음에 “법의 경계가 공하니”라고 한 것은 전체적 공(總空)의 모습을 설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경계는 공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ㄴ) 개별적 공
나중의 “공空·무상無相·부전不轉 …”이라 한 것은 그 개별적 공(別空)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경문에는 세 개의 절이 있다. 처음은 법공을 밝힌 것이다. 다음의 “삼보도 없고”라는 것은 인공·법공 두 가지 공에 공통된다. 마지막의 “성인도 없으며 육도도 없으니”라는 것은 인공을 밝힌 것이다.
처음에 ‘공’이라 한 것은 공삼매空三昧의 경계이다. ‘무상’이란 무상삼매無相三昧의 경계이니,

001_0078_c_01L受名行苦是故三受通名苦受
001_0078_c_02L此三受皆有爲行同是我所遣法
001_0078_c_03L言一切苦受行苦故也

001_0078_c_04L
一切法集寂然空故

001_0078_c_05L
釋曰第二明法空也有其五句
001_0078_c_06L一切法集者標名辨假謂一切法集
001_0078_c_07L故名假二幻化五陰者擧喩出體
001_0078_c_08L幻五陰非人故名爲法假三無合無
001_0078_c_09L散者顯法別相諸說不同一云
001_0078_c_10L陰成身名爲合後離散時名爲散
001_0078_c_11L雙遣二相故言無合無散由無分別
001_0078_c_12L不住於生死故名無合常起大
001_0078_c_13L故不入於涅槃故言不散五法
001_0078_c_14L同法性者攝妄歸眞門一切諸法
001_0078_c_15L用如爲性

001_0078_c_16L
法境界空如虛空故

001_0078_c_17L
釋曰第二境智相對辨不思議
001_0078_c_18L中有二初辨境空後釋智空前中
001_0078_c_19L有二先法後喩法中有二初法境
001_0078_c_20L界空者明總空相謂一切境無不
001_0078_c_21L空者後空無相不轉等者釋其別空
001_0078_c_22L文有三節初明法空次無三寶者
001_0078_c_23L於人法二空後無聖人六道者明人
001_0078_c_24L空也初言空者空三昧境言無相

001_0079_a_01L열 가지 상이 없기 때문이다. ‘부전’이란 무원삼매無願三昧 경계이니, 고苦·집集의 오염이 전환되어(轉) 무루의 청정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세 경계는 모두 전도되지 않은 것이고 허깨비같이 허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222) 다음의 ‘삼보도 없다’는 것은 인공·법공 두 가지 공을 짝지어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의 ‘성인도 없다’는 것은 교화하는 자의 공함을 나타낸 것이고, ‘육도도 〔없다〕’는 것은 교화되는 대상의 공함을 나타낸 것이다.

ㄴ. 비유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것은 두 번째로 비유를 들어 법공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 지혜의 공함

반야에는 지知도 없고 견見도 없으며, 그것은 행行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며 인因도 아니고 수受도 아닙니다. 일체의 비추는 모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도道를 행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혜의 공함을 밝힌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법이고, 다음은 비유이며, 마지막은 〔비유와 법을〕 결합시킨 것이다.

ㄱ. 법
법 중에 두 가지가 있다.

ㄱ) 지知 등 6상을 버림
처음은 ‘지知’ 등의 여섯 가지 상을 버린 것이다.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度)을 ‘지知’223)라고 하고, 미루어 구하는 것(推求)을 ‘견見’이라고 하며, 경계를 거치는 것(歷境)을 ‘행行’이라고 하고, 헤아려 생각해 보는 것(籌慮)을 ‘연緣’이라고 하며, 과를 불러오는 것(招果)을 ‘인因’이라고 하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領納)을 ‘수受’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모습은 모두 다 공하다.

ㄴ) 버리는 이유
나중은 버리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따라서 “일체의 비추는 모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도를 행하는 모습224)입니다.”라고 하였다.

ㄴ. 비유

이러한 도를 행하는 모습은 마치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법동품의 비유를 든 것이다.

ㄷ. 결합

법의 모습이 이와 같으니 어찌 유심有心으로 얻을 수 있고 무심無心으로 얻을 수 있겠습니까.225)
세 번째는 총괄해서 〔앞의 교법과〕 결합시킨 것이다. “법의 모습이 이와 같으니”라는 것은 앞의 여섯 가지 공의 모습과 결합시킨 것이다. “어찌 유심으로 얻을 수 있고 무심으로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는데, ‘유심’은 분별分別의 마음이고 ‘무심’은 무분별無分別의 마음이니, 어떻게 유심으로 얻을 수 있고 무심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혹은 ‘어찌 유심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은 유심의 증득을 차단한 것이니, 그 경계가 모두 공한데 어떻게 유의 마음으로 무의 경계를 증득하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무심으로 얻는다’는 것은 무심의 증득을 인정한 것이니, 즉 경계가 공하기 때문에 무분별의 마음으로 공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226)

001_0079_a_01L無相三昧境無十相故言不轉
001_0079_a_02L是無願三昧境以苦集染不可
001_0079_a_03L轉爲無漏淨故如上三境皆非顚倒
001_0079_a_04L非如幻化是虛妄故次言無三寶者
001_0079_a_05L雙顯人法二空後言無聖人者明能
001_0079_a_06L化空言六道者辨所化空言如虛
001_0079_a_07L空故者第二擧喩喩法空相

001_0079_a_08L
般若無知照相故行道

001_0079_a_09L
釋曰第二智空於中有三初法
001_0079_a_10L後合法中有二初遣知等六相
001_0079_a_11L比度名智推求言見歷境稱行
001_0079_a_12L慮名緣招果名因領納名受如是
001_0079_a_13L六相悉皆是空後釋遣所由故言
001_0079_a_14L不得一切照相故行道相

001_0079_a_15L
斯行道相如虛空故

001_0079_a_16L
釋曰第二擧法同喩

001_0079_a_17L
法相如是無心得

001_0079_a_18L
釋曰第三總合法相如是者合上
001_0079_a_19L六種空相言何可有心得無心得者
001_0079_a_20L有心是分別無心是無分別心如何
001_0079_a_21L有心得無心得或可何可有心得者
001_0079_a_22L遮有心得其境皆空如何有心得無
001_0079_a_23L境也無心得者許無心得謂以境
001_0079_a_24L空故無分別心能得空也

001_0079_b_01L
b) 결론

그래서 반야의 공덕은 중생 중에서 행을 얻을 수 없음에도 행하고, 오음의 법 중에서 행을 얻을 수 없음에도 행하며, 경계 중에서 행을 얻을 수 없음에도 행하고, 해解 중에서 행을 얻을 수 없음에도 행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앞의 네 가지 의미를 결론지은 것이다. 경문에는 네 개의 구절이 있다. 첫째로 사람 중에서 행을 얻을 수 없으니, 중생이 공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법 중에서 행을 얻을 수 없으니, 법이 공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경계 중에서 행을 얻을 수 없으니, 인식 대상(所緣)이 공하기 때문이다. 넷째로 해解 중에서 행을 얻을 수 없으니, 인식 작용(能緣)이 공하기 때문이다.

c. 이장二藏의 불가사의에 대한 총괄적 결론

그러므로 반야는 불가사의한 것입니다.227)
세 번째는 두 가지 장藏의 불가사의에 대해 짝지어 결론지은 것이다.228)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에는 지혜에 의거해 총괄해서 결론지었고, 나중에는 사람에 의거해 따로따로 결론지었다.

a) 지혜의 의거한 결론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b) 사람에 의거한 결론

그리고 모든 보살들이 어떤 판본에는 ‘제불보살諸佛菩薩’이라고 되어 있다.229) 이 가운데서 행하기 때문에 또한 불가사의하고, 모든 여래께서 허깨비같이 머물지 않는 법들 가운데서 교화하시기에 또한 불가사의합니다.

두 번째는 사람에 의거해서 ‘부사의’를 설명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보살이 경계가 없는데도 행하므로 또한 부사의함을 밝힌 것이다. 나중은 제불께서 환 같은 경계 가운데서 중생을 교화하시므로 또한 부사의함을 밝힌 것이다. 혹은 전자는 뒤의 경문인 ‘불보살장佛菩薩藏’에 대해 결론지은 것이고, 후자는 앞의 경문인 ‘불장의 불가사의’에 대해 결론지은 것일 수도 있다.230)

㈏ 불가탁량에 대한 해석

선남자여, 이 공덕장功德藏은, 설사 한량없는 항하사만큼의 제13위 관정灌頂보살들이 이 공덕을 설한다 해도 백천억 분의 일이고, 가령 왕이 설한 것에 비하면 바다의 물 한 방울과 같은 것입니다.

이하는 두 번째로 비교해서 뛰어남을 찬탄하면서, 앞에서 말한 ‘불가탁량不可度量’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왕이 설했던 반야의 공덕이 큰 바다의 물과 같다면 관정보살이 설한 그 공덕은 바다의 물 한 방울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야의 공덕이 불가사의함을 알 수 있다.
관정보살은 그 지위가 왕보다 뛰어난데 어째서 공덕은 월광왕에 미치지 못한다고 설했는가?
지위에서 논하자면 왕이 관정보살에 미치지 못하지만, 지금은 부처님의 가호加護를 입어서 왕이 보살보다 뛰어나다.

001_0079_b_01L
是以般若行而行

001_0079_b_02L
釋曰第二結上四義文有四節
001_0079_b_03L人中行不可得以生空故二法中行
001_0079_b_04L不可得以法空故三境中行不可得
001_0079_b_05L所緣空故四解中行不可得能緣空
001_0079_b_06L

001_0079_b_07L
是故般若不可思議

001_0079_b_08L
釋曰第三雙結二藏不可思議文別
001_0079_b_09L有二初依智總結後就人別結
001_0079_b_10L卽初也

001_0079_b_11L
而一切諸菩薩或有本云
諸佛菩薩
亦不可思議

001_0079_b_12L
釋曰第二約人明不思議文別有二
001_0079_b_13L初明菩薩無境而行亦不思議後明
001_0079_b_14L諸佛如幻境中行化衆生亦不思議
001_0079_b_15L或先結後文佛菩薩藏後結前文佛
001_0079_b_16L藏不思議

001_0079_b_17L
善男子如海一滴

001_0079_b_18L
釋曰自下第二挍量歎勝釋上不可
001_0079_b_19L度量謂王所說般若功德如大海水
001_0079_b_20L灌頂菩薩說其功德如海一滴故知
001_0079_b_21L般若功德不可思議問灌頂菩薩
001_0079_b_22L位勝王如何說德不及月光解云
001_0079_b_23L位而論王卽不及菩薩今佛加護
001_0079_b_24L勝菩薩

001_0079_c_01L
㈐ 유불내지唯佛乃知에 대한 해석

나는 지금 간략하게 일부분(分義)231)의 공덕을 설하였으니, 모든 중생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과거·미래·현재의 한량없는 모든 여래께서 인가하신(述可) 바이고, 삼현과 십성도 한량없이 찬탄하는 것이니, 이는 월광왕의 일부분의 공덕입니다.232)

이하는 세 번째로 앞에서 ‘오직 부처님만이 아실 수 있다’는 말을 해석한 것이다.233) 경문에는 세 개의 절이 있다. 처음은 지금의 부처님(今佛)께서 반야의 일부분의 공덕에 대해 설법하셨음을 밝힌 것이다. 나중의 “또한” 이하는 제불이 동일하게 설하심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의 “삼현” 이하는 13보살들이 함께 공덕에 대해 설했음을 밝힌 것이다.
“일부분(分義)”이라는 것은 왕의 공덕을 이루 다 설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분’이라 한 것이다.
혹은 삼현三賢과 십성十聖이 찬탄의 대상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월광왕이 삼현·십성의 한량없는 공덕에 대해 찬탄한 것을 인가한 것이다.

나) 수학의 권유

선남자여, 이 열네 가지 법문은 삼세의 모든 중생과 모든 삼승과 모든 부처님이 닦아 익혔던 것이고 미래의 제불도 이와 같습니다.

두 번째는 작용을 찬탄하면서 닦기를 권하신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바로 찬탄하면서 닦기를 권한 것이다. 다음의 “어째서입니까.”라고 한 것은 대왕이 되물은 것이다. 나중의 “모든 부처님들과” 이하는 자세하게 해석한 것이다.

㈎ 찬탄과 권유
전자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찬탄하면서 닦기를 권한 것이다. “모든 … 경우란” 이하는 다른 길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 권유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즉 ‘선남자여, 이와 같은 열네 가지 법문은 모든 중생과 삼승과 제불들 내지는 미래의 제불들께서 닦아 익히신 것’이라고 한 것이다.

㉯ 다른 길이 없음

모든 불보살 중에 이 문을 따르지 않고 살바야를 얻는 경우란 있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다른 길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 따져 물음

“어째서입니까?”

두 번째는 왕이 되물은 것이다.

㈐ 자세한 해석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자세한 해석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바른 길임을 표명한 것이다. 다음의 “그러므로” 이하는 그 바른 길을 제시해 준 것이다. 마지막의 “이 사람은 … 을 넘어서서” 이하는 과果를 들어서 뛰어남을 찬탄한 것이다.

㉮ 바른 길의 표시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오직 이 문門이 있을 뿐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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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今略述一切衆生

001_0079_c_02L
釋曰自下第三釋上唯佛能知
001_0079_c_03L有三節初明今佛說法般若分義功
001_0079_c_04L次亦爲下明諸佛同說後三賢下
001_0079_c_05L明十三開士共說功德言分義者
001_0079_c_06L王功德不可盡故名爲分義或可三
001_0079_c_07L賢十聖顯所讚也謂卽述可月光王
001_0079_c_08L歎三賢十聖無量功德

001_0079_c_09L
善男子亦復如是

001_0079_c_10L
釋曰第二歎用勸修於中有三
001_0079_c_11L正歎勸修次何以故者大王反徵
001_0079_c_12L一切佛下廣釋前中二初正歎勸修
001_0079_c_13L後若一切下顯無異路此卽初也
001_0079_c_14L善男子如是十四法門一切衆生
001_0079_c_15L乘諸佛乃至未來諸佛之所修習

001_0079_c_16L
若一切諸佛無有是處

001_0079_c_17L
釋曰第二顯無異路如文可知

001_0079_c_18L
何以故

001_0079_c_19L
釋曰第二大王反徵

001_0079_c_20L
一切佛無異路故

001_0079_c_21L
釋曰第三廣釋文別有三初標正
001_0079_c_22L次是故下示其正路後是人超
001_0079_c_23L過下擧果歎勝此卽初也唯有此
001_0079_c_24L更無異路

001_0080_a_01L
㉯ 열네 갈래 길

그러므로 모든 선남자들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모든 인忍의 법문 즉 신인信忍·지인止忍·견인堅忍·선각인善覺忍·이달인離達忍·명혜인明慧忍·염혜인炎慧忍·승혜인勝慧忍·법현인法現忍·원달인遠達忍·등각인等覺忍·혜광인慧光忍·관정인灌頂忍·원각인圓覺忍에 대해 듣게 된다면,

두 번째는 바른 길을 제시해 준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이상의 열네 가지 인문忍門에 의지해서 수학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길의 수승함을 찬탄함

이 사람은 백겁 천겁의 한량없는 항하사겁 동안의 생과 생의 고난을 넘어서서 이 법문에 들어가 현재 몸으로 과보를 얻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과를 들어서 〔14가지 길의〕 뛰어남을 찬탄한 것이다. 이에 두 종류 이익이 있다. 첫째는 모든 고난을 넘어서는 것이다. 둘째는 현재 몸(現身)으로 과보를 얻는 것이니, 즉 성스런 과(聖果) 등을 얻는 것을 말한다.

다) 대중의 공양

이때 모든 대중들 가운데 십억 명의 동명同名인 허공장해虛空藏海 보살들이 법락法樂을 기뻐하면서 각각 허공에 꽃을 뿌려 한량없는 화대華臺를 변화해 내니, 그 위에는 한량없는 대중이 있어, 〔보살들이 그들에게〕 열네 가지 바른 행을 설해 주었다. 십팔 명의 범梵과 육욕천의 왕들도 역시 보배꽃을 뿌리고 각각 허공대虛空臺 위에 앉아 열네 가지 바른 행을 설하였고, 이것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그 이치(義理)를 이해하였다. 한량없는 모든 귀신들도 몸을 나타내어 반야바라밀을 수행하였다.234)

이하는 세 번째로 대중의 공양을 나타낸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보살이 향과 꽃을 대중에게 공양하면서 열네 가지 바른 행을 설하는 것이다. 다음의 “십팔 명의 범과 육욕천의 왕” 이하는 여러 천들이 공양하면서 수지하고 독송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의 “한량없는 모든 귀신들” 이하는 귀신들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했음을 밝힌 것이다. 경문이 분명하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2)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앞서 ‘어떤 모습의 중생을 교화하게 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하는 두 번째로 왕의 세 번째 질문에 대답하여 ‘전도 없이 중생을 교화하라’고 하신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이전의 질문을 내걸어 놓은(牒) 것이다. 다음은 부처님께서 바로 대답하신 것이다. 마지막의 “이때 모든 한량없는” 이하는 당시 대중들이 이익을 얻었음을 밝힌 것이다.

⑴ 이전의 질문을 내걺(牒)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부처님께서 이전의 왕의 세 번째 질문을 내걸어 놓으신 것이다. 즉 ‘가립과 실재의 문 중에서는 어떤 모습의 중생을 교화하게 되는가’235)라고 물었던 것을 말한다.

⑵ 여래의 정답

만약 허깨비 같은 몸으로 허깨비를 본다면, 이는 보살이 참된 행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여래께서 바로 답하신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간략한 대답이고, 나중은 자세한 해석이다.

① 간략한 대답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즉 “허깨비 같은 몸”이란 교화하는 보살에 해당하고, “허깨비를 본다면”이라 한 것은 교화되는 대상이 허깨비 같다는 것이다.
이 ‘허깨비 같다(如幻)’는 것에 대해 본래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화하는 자와 교화되는 대상은 모두 의타기이고, 이것은 실재가 아니기 때문에 ‘허깨비 같다’고 설한 것이다.

001_0080_a_01L
是故一切圓覺忍者

001_0080_a_02L
釋曰第二示其正路謂無異路故
001_0080_a_03L依上十四忍門應當修學

001_0080_a_04L
此人超過現身得報

001_0080_a_05L
釋曰第三擧果歎勝有二利益一超
001_0080_a_06L諸苦難二現身得報謂得聖果等

001_0080_a_07L
時諸衆中十四正行

001_0080_a_08L
釋曰自下第三大衆供養文別有三
001_0080_a_09L初菩薩香華供養大衆說十四正行
001_0080_a_10L次十八梵天下諸天供養受持讀誦
001_0080_a_11L後無量鬼神下明鬼神修行般若
001_0080_a_12L顯可知

001_0080_a_13L
佛告大王衆生相可化

001_0080_a_14L
釋曰自下第二答第三問無倒化
001_0080_a_15L文別有三初牒前問次佛正答
001_0080_a_16L後時諸無量下時衆得益此卽初也
001_0080_a_17L謂佛牒前第三問假實門中何相衆
001_0080_a_18L生可化

001_0080_a_19L
若以眞行化衆生

001_0080_a_20L
釋曰第二如來正答文別有二
001_0080_a_21L略答後廣釋此卽初也謂以如幻
001_0080_a_22L之身者是能化菩薩見幻化者
001_0080_a_23L所化如幻此如幻者自有兩釋
001_0080_a_24L能化所化皆是依他而非實故

001_0080_b_01L예를 들면 『아비달마경阿毘達磨經』에서 여덟 가지 비유로 의타기를 나타낸 것과 같다.236)≻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없기(無) 때문에 허깨비 같다고 하고, 인연으로 생겨난 법은 모두 공하기 때문에 허깨비 같다고 설한 것이다. 이는 모든 『반야경』의 설과 같으니, 이하의 답하는 경문도 모두 이에 준해서 해석해야 한다.≻

② 자세한 해석

중생의 식識237)은 처음 한 생각(一念)의 식도 나무나 돌과는 달라서

이하는 두 번째로 자세하게 해석한 것이다.238)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교화되는 대상이 환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나중의 “대왕이여, 보살에게는” 이하는 교화하는 자가 환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가) 교화되는 대상
교화되는 대상을 설한 곳에서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해석이고, 나중의 “모든 허깨비” 이하는 ‘허깨비 같음’에 대해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다.

㈎ 해석
해석하는 곳에서 일곱 종류 가假를 해석하였으니, 곧 일곱 가지로 구분된다. 일곱 종류 가라는 것은, 첫째는 법가法假이고, 둘째는 수가受假이며, 셋째는 명가名假이고, 넷째는 상속가相續假이며, 다섯째는 상대가相待假이고, 여섯째는 연성가緣成假이며, 일곱째는 인생가因生假이다.

㉮ 법가法假에 대한 해석
이것은 첫 번째로 법가를 설명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법가를 바로 설명한 것이고, 나중의 “대왕이여, 범부의” 이하는 범부와 성인이 취하는 경계에 우열의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a. 법가
전자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본식本識이 색과 심을 발생시킴을 밝힌 것이다. 나중의 “중생의 근본” 이하는 색과 심이 음陰·계界 등을 이룸을 밝힌 것이다.

a) 본식本識이 색色·심心을 이룸
전자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생식受生識을 설명한 것이다. 둘째로 “생득선” 이하는 선악종자식善惡種子識을 설명한 것이다. 셋째로 “처음의 일념” 이하는 시時에 의거해서 중생을 이루는 색과 심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a) 수생식受生識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중생의 식”이란 모든 식들을 총괄해서 표명한 것이니, 이에 대해 본래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로 진제 삼장은 모두 아홉 가지 식을 건립하였다. 첫 번째의 아마라식阿摩羅識은 진여본각眞如本覺을 본성으로 삼는 것이다. 얽혀 있을 때는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하고 얽힘에서 벗어났을 때는 법신法身이라고 한다. 아마라식은 여기 말로 ‘무구식無垢識’이라고 하니, 예를 들어 「구식장九識章」에서 설한 것과 같다. 여덟 가지 식에 대해서는 여러 논사들과 거의 동일하게 설한다. 둘째로 자은 삼장은 다만 여덟 가지 식을 건립하였다.

001_0080_b_01L說之如幻如阿毘達磨經八喩顯依
001_0080_b_02L1)一云無故如幻因緣所生法
001_0080_b_03L是空故說之如幻如諸般若下
001_0080_b_04L文中皆准此釋

001_0080_b_05L
衆生後異木石

001_0080_b_06L
釋曰自下第二廣中有二初明所化
001_0080_b_07L如幻後大王若菩薩下明能化如幻
001_0080_b_08L就所化中文別有二先釋後一切幻
001_0080_b_09L化下總結如幻就正釋中釋七種
001_0080_b_10L卽分爲七言七假者一法假
001_0080_b_11L受假三名假四相續假五相待假
001_0080_b_12L六緣成假七因生假此卽第一明法
001_0080_b_13L文別有二初正明法假後大王
001_0080_b_14L凡夫下凡聖取境勝劣差別前中
001_0080_b_15L有二初明本識能生色心2)後衆
001_0080_b_16L生根本下色心成陰界等前中有三
001_0080_b_17L一明受生識二生得善下明善惡種
001_0080_b_18L子識三初一念下約時明成衆生色
001_0080_b_19L此卽初也言衆生識者總標諸
001_0080_b_20L自有兩釋一眞諦三藏總立九
001_0080_b_21L一阿摩羅識眞如本覺爲性
001_0080_b_22L纏名如來藏出纏名法身阿摩羅識
001_0080_b_23L此云無垢識如九識章餘之八識
001_0080_b_24L同諸師二慈恩三藏但立八識

001_0080_c_01L제9식은 없으며, ‘아마라’라는 것은 제8식 중에서 정분淨分의 제8식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러 교에서 식을 건립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다. 어떤 곳에서는 다만 여섯 가지 식을 설하고 제7식과 제8식을 설하지 않으니, 예를 들어 모든 『반야경』과 같다. 혹은 여덟 가지 식을 설하니, 예를 들어 『금광명경金光明經』 등과 같다. 그런데 모든 『반야경』에서 설한 ‘육식六識’에는 본래 상·중·하 세 개의 품이 있으니, 상품의 미세한 것을 ‘뢰야賴耶’라고 하고, 중품을 ‘말나末那’라고 하며, 하품을 ‘육식六識’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세 품은 의근意根에서 생기기 때문에 ‘의식意識’이라고 이름한다.
“처음 한 생각의 식도 나무나 돌과는 달라서”라고 했는데, 어떤 곳에서 생을 받든 간에 생을 받는 찰나의 처음 일념의 식을 ‘생을 받는 식(正受生識)’이라고 한다. 이 식은 오직 이숙異熟이고 자성분별自性分別239)이니, 나무와 돌과는 다르고 강한 분별은 없다.240)

(b) 선악종자식善惡種子識

생득선生得善과 생득악生得惡이 있으니, 악은 한량없는 악한 식識의 근본이 되고 선은 한량없는 선한 식의 근본이 됩니다.241)

두 번째는 선악종자식善惡種子識을 설명한 것이다.
종자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별한다면, 그것은 세 가지 훈습熏習을 갖추고 있다. 첫째는 명언훈습名言熏習이고, 둘째는 유지훈습有支熏習이며, 셋째는 아견훈습我見熏習이다. 처음의 하나는 삼성에 통하고, 직접적 원인(因緣)이 되어 과법果法을 발생시킨다.242) 다음의 유지훈습은 오직 선악의 성질이고 선취·악취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243) 마지막 아견훈습은 오직 염오染汚이다.244) 이 뒤의 두 종류는 생겨난 과법에 대해 증상연增上緣이 된다.245) 그런데 제8식에는 본래 세 가지 상相이 있다. 첫째는 인상因相이니, 종자식種子識을 말한다.246) 둘째는 과상果相이니, 수생식受生識을 말한다.247) 셋째는 자상自相이니, 두 종류를 합해서 자상이라고 설한 것이다.
실제로는 종자는 세 가지 성질을 갖추고 있지만 두드러진 측면을 설했기 때문에 〔선악종자식이라고 하고〕 무기無記를 설하지는 않았다. 이와 같은 선악에는 모두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생득生得이고,

001_0080_c_01L第九識而言阿摩羅者第八識中淨
001_0080_c_02L分第八然諸敎立識不定有處但說
001_0080_c_03L六識不說七八如諸般若或說八
001_0080_c_04L如金光明等而諸般若所說六
001_0080_c_05L自有三品謂上中下上品細者
001_0080_c_06L名爲賴邪3)中末那下名六識如是
001_0080_c_07L三品從意根生故名意識言初一
001_0080_c_08L念識異木石者隨生何處受生刹
001_0080_c_09L初一念識名正受生識唯是異
001_0080_c_10L自性分別異於木石無强分別

001_0080_c_11L
若生得善識本

001_0080_c_12L
釋曰第二明善惡種子識就種子識
001_0080_c_13L若具分別具三熏習一名言熏習
001_0080_c_14L有支熏習三我見熏習初一通三性
001_0080_c_15L以爲因緣能生果法次有支薰習
001_0080_c_16L唯善惡性生善惡趣後我見唯是
001_0080_c_17L染汚此後二種於所生果作增上
001_0080_c_18L然第八識自有三相一者因相
001_0080_c_19L是種子識二者果相謂受生識
001_0080_c_20L者自相合說二種以爲自相據實
001_0080_c_21L種子具有三性就勝說故不說無
001_0080_c_22L如是善惡皆有二種一者生得
001_0080_c_23L「化」作「他」ㆍ「化」作「他」{乙}「後」異無
001_0080_c_24L「中」下疑有「名」ㆍ「中」下有「名」{乙}

001_0081_a_01L둘째는 방편方便이다.248) 처음에 생을 받을 때 다만 생득을 획득하고 방편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혹은 이 경문에서 우선 생득을 설하였고 방편은 설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본기』에 의하면, 생득의 선과 악이란 다음과 같다.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본성을 따라서 있는 것이지 외적 조건(外緣)을 따라 있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생득’이라 한다. 이치를 등지고 허망을 이루니, 허망 때문에 악이 일어나므로 악도 생득적인 것이지 변화(化)에 따른 것은 아니다.≻

(c) 시時에 의거한 설명경

처음의 일념에서 금강金剛의 마지막 일념까지 그 중간에 불가설 불가설의 식을 생해서 중생의 색과 심을 이룹니다.

세 번째는 시時에 의거해서 중생의 색·심이 이루어짐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종자식을 따라서 처음의 일념에서부터 금강의 일념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는 말할 수 없이 많은 이숙식異熟識249)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근본이 되어 중생의 색·심을 이룬다는 것이다.
중생을 이루려면 세 가지의 취집 즉 색법과 심법과 불상응법을 갖추어야 하는데, 어째서 불상응법을 설하지 않았는가?
색법과 심법 상에서 모든 불상응법을 가립했기 때문에 이는 가립이지 실재가 아니다. 실재에 의거해서 설했기 때문에 ‘색·심’만 설한 것이다.
또 대승의 여러 교설들이 다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양조梁朝의 『섭대승론석』에서는 ‘모든 유위법은 색과 심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250)『밀엄경密嚴經』을 조사해 보라. 『백법론百法論』에서도 이 경을 인용하여 ‘불상응법’을 설명하고 있다.
모든 중생들에게는 본제本際가 있는가, 아닌가? 있다고 하면, 어째서 경에서는 ‘중생의 본제는 알 수 없다’고 설했는가?251) 없다고 하면, 이 경에서 설한 것과 어떻게 회통시키겠는가?『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 등을 조사해 보라.
〔본제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이 문제에 의거해서, 모든 종파의 다른 설들을 총괄적으로 정리해 보면, 그것을 네 구로 만들 수 있다.
첫째는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사새부彌沙塞部에서는 시두중생時頭衆生이 있고,252) 〔그 밖의 것은〕 연을 따라 있게 된다고 건립한다. 예를 들어 진제의 『부집기』 중에서 설한 것과 같다.253) 그런데 그 종에서는 비록 글로 된 것은 없어도 의미상으로는 ‘무반열반성無般涅槃性과 불과佛果의 불멸’을 설했으므로 그것이 처음의 구가 될 수 있다.254)

001_0081_a_01L二者方便初受生時但得生得
001_0081_a_02L非方便或可此中且說生得不說
001_0081_a_03L方便若依本記生得善惡者由有
001_0081_a_04L如來藏故有避苦求樂之心此心從
001_0081_a_05L本性而有不由外緣故言生得
001_0081_a_06L理成妄妄故興惡惡亦生得不由
001_0081_a_07L化也

001_0081_a_08L
初一念衆生色心

001_0081_a_09L
釋曰第三約時辨成衆生色心謂由
001_0081_a_10L種子從初一念至於金剛於中生
001_0081_a_11L不可說異熟識爲本成衆生色心
001_0081_a_12L成衆生具三聚謂色心及不相應
001_0081_a_13L何不說不相應法解云依色心上
001_0081_a_14L立諸不相應是假非實就實說故但
001_0081_a_15L1)又解大乘諸敎不同如梁朝
001_0081_a_16L攝大乘云諸有爲法不出色心勘密
嚴經
001_0081_a_17L百法論引經
說不相應
問諸衆生有本際不若言
001_0081_a_18L有者如何經說衆生本際不可知
001_0081_a_19L言無者此經所說復如何通勘不增不
減經等

001_0081_a_20L解云卽依此義總約諸宗所說不
001_0081_a_21L有其四句一有始無終謂彌沙
001_0081_a_22L塞部中立有時頭衆生隨緣而有
001_0081_a_23L眞諦部執記中說而彼宗中雖無成
001_0081_a_24L義說無般涅槃性及佛果不滅者

001_0081_b_01L
둘째는 시작은 없어도 끝은 있는 것이다. 즉 살바다종과 경부와 대승에서 말하는 ‘종성이 결정된 이승’을 말한다.255)
셋째는 시작도 있고 끝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사새부종에서 볼 때 ‘이승의 성자가 무여열반의 지위에 들어간 경우’를 말한다.256)
넷째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다. 무열반성과 부정종성과 보살종성을 말하니,257) 예를 들어 『유가사지론』 등의 설과 같다.
그 밖에 다른 논사들의 설은 다 진술할 수가 없다.
『본기』에 의하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이치에 의거해서 논하면, 번뇌가 앞에 있다거나 뒤에 있다고 설할 수는 없다. 둘째로 교화의 문에 의거하면, 우선 수생受生 등에 의거해서 그것을 ‘처음(初)’이라 설한 것이다.

b) 색·심이 음·계를 이룸

이것이258) 중생의 근본으로서 색을 색개色蓋라고 하고, 심을 식개識蓋·상개想蓋·수개受蓋·행개行蓋라고 합니다. ‘개’란 가리고 덮는 작용을 하는 것이고, ‘신身’259)을 적취積聚라고 이름합니다.

두 번째는 색·심이 음陰·계界 등을 이룸을 밝힌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오음을 이룸을 밝힌 것이다. 나중의 “대왕이여” 이하는 십이처 등을 이룸을 밝힌 것이다.

(a) 오음의 성립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오음을 따로따로 해석한 것이다. 나중은 ‘개蓋’라는 이름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중생의 근본인 색을 “색개”라고 하고 색음色陰이라고도 한다. 뒤의 해당하는 곳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심을 “식개” 등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음을 네 개의 음으로 나눈 것이니, 즉 수受·상想〔·행行·식識〕 등을 말한다.
이른바 “개”라는 것은 ‘음陰’이라는 이름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구역에서는 ‘개’라고 번역했는데, 가리고 덮는다(陰覆)는 뜻이다. 자은 삼장은 그것을 ‘온蘊’이라고 번역했으니, ‘온’은 쌓이고 모인다(積聚)는 뜻이다. 하나하나의 온은 여러 개의 법들이 모여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온’이라고 한다.
“신身을 적취積聚라고 이름합니다.”라는 것은 ‘신’이라는 이름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즉 오온의 법을 다 ‘신’이라고 하니 이것이 ‘온蘊’의 뜻이다.

(b) 십이처의 성립

대왕이여, 이 하나의 색법이 한량없는 색을 생하니,

이하는 두 번째로 색과 심이 십이처 등을 이룸을 밝힌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하나의 색이 한량없는 색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총괄해서 설명한 것이다. 다음의 “눈으로 파악되는 것” 이하는 ‘발생된(所生)’ 모든 색들을 따로따로 설명한 것이다. 마지막의 “이와 같이 하나의 색이” 이하는 ‘발생시키는(能生)’ 색·심에 대해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다.

001_0081_b_01L得成初句二無始有終謂如薩婆多
001_0081_b_02L宗及經部及大乘中定性二乘三有
001_0081_b_03L始有終如彌沙塞部宗中二乘聖者
001_0081_b_04L入無餘位四無始無終者無涅槃性
001_0081_b_05L不定種性及菩薩種性如瑜伽等
001_0081_b_06L師所說不可具陳若依本記有二義
001_0081_b_07L一依理論不可說煩惱在前在後
001_0081_b_08L依敎化門且約受生等說之爲初

001_0081_b_09L
衆生根本身名積聚

001_0081_b_10L
釋曰第二色心成陰界等文別有二
001_0081_b_11L初明成陰後大王下成十二處等
001_0081_b_12L卽初也文別有二初別釋五陰
001_0081_b_13L釋蓋名義謂衆生根本色名色蓋
001_0081_b_14L名色陰如後當釋心名識蓋等
001_0081_b_15L卽開心以爲四陰謂受想等所言
001_0081_b_16L蓋者釋陰名義舊翻爲蓋陰覆爲
001_0081_b_17L慈恩三藏翻之爲蘊蘊是積聚
001_0081_b_18L於一一蘊多法集成故名爲蘊
001_0081_b_19L言身名積聚者釋身名義謂五蘊法
001_0081_b_20L皆名爲身是蘊義

001_0081_b_21L
大王生無量色

001_0081_b_22L
釋曰自下第二明色心成十二處等
001_0081_b_23L文別有三初總明一色生無量色
001_0081_b_24L眼所得下別明所生諸色後如是一

001_0081_c_01L
ⓐ 색의 발생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하나의 색법이 오진五塵 등의 색을 발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 갖추어 말하면 ‘이 하나의 심법이 하나의 심법 혹은 한량없는 심법을 생한다’고 설해야 하지만, 지금은 총괄해서 간략히 말했으므로 다만 ‘식을 발생시킨다’고 한 것이다.

ⓑ 성·향·미·촉의 발생

눈으로 파악되는 것을 색色이라 하고, 귀로 파악되는 것을 성聲이라 하며, 코로 파악되는 것을 향香이라 하고, 혀로 파악되는 것을 미味라고 하며, 몸으로 파악되는 것을 촉觸이라 합니다.

두 번째는 생겨난 여러 가지 색들을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오경五境을 발생시킴을 밝힌 것이다. 나중은 오근五根을 발생시킴을 밝힌 것이다.

ㄱ. 오경五境의 발생
오경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소조所造의 오경을 설명한 것이고, 나중은 능조能造의 사대四大를 해석한 것이다.260)
ㄱ) 소조색所造色
이것은 오경을 해석한 것이다. 다 갖추어 말하면 ‘법처에 속하는 색(法處所攝色)’도 설해야 한다.261) 혹은 이 경에서는 법처에 속하는 색까지는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설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ㄴ) 능조색能造色

단단히 지탱하는 것을 지地라고 하고, 수水는 적시는 것이며, 화火는 따뜻한 것이고, 가볍게 움직이는 것을 풍風이라 합니다.

두 번째는 능조의 사대를 밝힌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ㄴ. 오근五根의 발생

오식五識을 발생시키는 곳을 근根이라 하니,

두 번째는 오근을 발생시킴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사대에 의해 만들어진 안근眼根 등의 오근이 오식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오근’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총괄적 결론

이와 같이 하나의 색과 하나의 심에는 불가사의한 색과 심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총괄해서 결론지은 것이다. 하나의 색이 열 종류 색을 생하니, 즉 오근과 오경을 말한다. 간략히 하려고 법처의 색은 설하지 않았다. 하나의 심은 십이처에서 의근을 생기게 하고, 십팔계에서 육식계와 의계를 생기게 한다. 그런데 해석하면서 설하지 않은 것은 간략히 하려 했기 때문이다.

b. 범성凡聖의 우열

대왕이여, 범부의 육식六識은 거칠기 때문에 가명假名의 청靑·황黃이나 네모남(方)·둥금(圓) 등의 한량없는 가짜 색법을 얻는 것이고,

이하는 두 번째로 범부와 성인이 취하는 경계에 우열의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001_0081_c_01L色下總結能生色心此卽初也
001_0081_c_02L一色法能生五塵等色若具應言此
001_0081_c_03L一心法生一心法或無量心今總
001_0081_c_04L略故但說生識

001_0081_c_05L
眼所得爲色身得爲觸

001_0081_c_06L
釋曰第二釋所生多色文別有二
001_0081_c_07L明生五境後明生五根境中有二
001_0081_c_08L明所造五境後釋能造四大此釋五
001_0081_c_09L若具應言法處所攝色或可此經
001_0081_c_10L不明法處所攝色是故不說

001_0081_c_11L
堅持名地輕動名風

001_0081_c_12L
釋曰第二能造四大如文可知

001_0081_c_13L
生五識處名根

001_0081_c_14L
釋曰第二明生五根謂四大所造眼
001_0081_c_15L等五根能生五識故名五根

001_0081_c_16L
如是一色一心色心

001_0081_c_17L
釋曰第三總結一色生十種色
001_0081_c_18L五根五境略而不說法處色也一心
001_0081_c_19L於十二處能生意根於十八界
001_0081_c_20L生六識及與意界而釋中不說者
001_0081_c_21L存略故

001_0081_c_22L
大王凡夫無量假色法

001_0081_c_23L
釋曰自下第二凡聖取境勝劣差別
001_0081_c_24L「心」上有「色」{乙}

001_0082_a_01L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범부의 경계를 밝히면서 가짜를 얻지 실재를 얻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나중은 성인의 경계를 밝히면서 실재를 얻지 가짜를 얻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a) 범부의 경계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b) 성인의 경계

성인의 육식은 청정하기 때문에 실법實法의 색·향·미·촉 등 모든 실재하는 색법262)을 얻습니다.

두 번째로 성인의 경계는 실재를 얻은 것이지 가짜를 얻은 것이 아님을 밝혔다. 그런데 이 경문의 의미를 알기가 어려우니, 이에 대해 여러 설이 다르다.
『본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범부의 육식은 총상總相으로 법을 취하기 때문에 ‘가짜를 얻는다’고 하였고, 성인은 분명하게 네 가지 극미(微) 등을 취하기 때문에 ‘실재를 얻는다’고 한 것이다.≻
또는 범부는 세속의 허망한 여섯 가지 식으로 취하기 때문에 세제世諦인 가명假名의 법을 얻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지금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색 등의 오경에는 모두 두 가지 상이 있다. 첫째는 자상自相이니, 이는 실유實有에 해당한다. 둘째는 공상共相이니, 이는 가유假有에 해당한다.263) 범부의 오식동시의식五識同時意識(오식과 동시에 일어난 의식)은 모두 자상을 파악하니, 이는 현량現量264)이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의 의식은 다만 공상을 파악하니, 이는 비량比量265)이기 때문이다.266) 성인이 경계를 취하는 것도 이와 같다.
지금 이 경문의 뜻은, 거침과 미세함의 문에 의거해서 설하려는 것이다. 즉 범부가 파악한 것은 거친 현량으로 〔알려진 것이기〕 때문에 다만 가짜 경계를 파악한다고 하고, 성인의 현량은 극히 미세하기 때문에 다만 실재를 파악한다고 한다. 이것은 가설假說이다.267)

㉯ 수가受假에 대한 해석

‘중생’이란 세제世諦의 이름입니다.

이하는 두 번째로 수가受假를 설명한 것이다. 네 문으로 분별하였으니 곧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이제二諦로 분별하는 문이고, 둘째는 유무有無로 분별하는 문이며, 셋째는 육취六趣로 분별하는 문이고, 넷째는 사성四姓으로 분별하는 문이다.

a. 이제문二諦門
이것은 첫 번째인 이제의 문이다. 이상에서 설명했듯, 〔하나의 복합물을〕 이루는(能成) 오온을 법가法假라고 하고, 〔그 오온에 의해〕 이루어진(所成) 사람을 수가受假라고 한다. 이와 같은 수가는 이제의 문에서는 가법이고 세속제로서의 이름에 해당한다.268)

b. 유무분별문有無分別門

유有이든 무無이든 다만 중생의 억념憶念을 발생시키는 것을 세제世諦라고 이름하니, 세제의 가법假法은 속이는 허깨비 같기 때문에 ‘유’라고 합니다.

001_0082_a_01L文別有二初明凡境得假非實
001_0082_a_02L明聖境得實非假此卽初也

001_0082_a_03L
聖人六識一切實法

001_0082_a_04L
釋曰第二聖境得實非假然此文義
001_0082_a_05L意難了諸說不同若依本記凡夫六
001_0082_a_06L總相取法故言得假聖人分明
001_0082_a_07L取四微等故言得實又解凡夫俗
001_0082_a_08L虛妄六識故得世諦假名之法今解
001_0082_a_09L色等五境皆有二相一者自相
001_0082_a_10L是實有二者共相卽是假有異生
001_0082_a_11L五識同時意識皆得自相是現量
001_0082_a_12L後念意識但得共相是比量故
001_0082_a_13L聖人取境亦復如是今此經意
001_0082_a_14L麁細門凡夫所得麁乃現量故
001_0082_a_15L得假境聖人現量以極細故但言
001_0082_a_16L得實此卽假說

001_0082_a_17L
衆生者世諦之名也

001_0082_a_18L
釋曰自下第二明受假四門分別
001_0082_a_19L分爲四一二諦分別門二有無門
001_0082_a_20L六趣門四四姓門此卽第一二諦門
001_0082_a_21L如上所說能成五蘊名爲法假
001_0082_a_22L所成之人名爲受假如是受假
001_0082_a_23L諦門中是假法世諦之名也

001_0082_a_24L
若有若無幻化故有

001_0082_b_01L
두 번째는 유무有無로 분별하는 문이다. 말하자면 세속제의 문에서는 가립된 자는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유’라고 하고, 그것은 실재성이 없기 때문에 ‘무’라고도 설한다. 이와 같은 수가受假는 세제의 ‘가법’으로서 속이는 허깨비 같기 때문에 ‘유’라고 하지만 실유하는 것은 아니다.

c. 육취문六趣門

나아가 육도六道에 이르기까지 허깨비(幻化) 중생이 허깨비를 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육취六趣로 분별하는 문이다. 즉 수가로서의 삼계의 사생四生 내지 육도六道는 〔오온으로〕 이루어진(所成) 수가이니, 모두 허깨비 중생이 허깨비를 보는 것이지 실재의 중생이 〔실재를 보는 것은〕 아니다.

d. 사성문四姓門

허깨비가 허깨비를 보는 것이니, 바라문婆羅門·찰리剎利·비사毘舍·수다首陀와 신아神我269) 등의 색·심을 환제幻諦270)라고 합니다.

네번째는 사성四姓271)으로 분별하는 문이다. 그런데 이 경문에 대해 본래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허깨비가 허깨비를 보는 것이니”라는 것은 교화하는 자와 교화되는 대상이 모두 허깨비임을 총괄해서 표명한 것이다. “바라문 … 환제라고 합니다.”라는 것은 교화하는 자와 교화되는 대상을 짝지어 나타낸 것이다. 모두가 네 가지 종성種姓을 갖추고 있고 신아神我와 유정이 색과 심을 갖추고 있는 것을 일컬어 모두 ‘환제幻諦’라고 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허깨비가”라는 것은 교화하는 사람을 표시한 것이고, “허깨비의 … 보는 것을 환제라고 합니다.”까지는 모두 교화되는 대상에 해당한다.≻272)

㉰ 명가名假에 대한 해석

환제의 법은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지 않았던273) 그 전에는 이름(名字)도 없었고 대상의 이름(義名)도 없었다.

세 번째는 명가名假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부처님 이전에는 이름이 없었음을 밝힌 것이다. 나중의 “대왕이여” 이하는 여래께서 이름을 건립하셨음을 밝힌 것이다.

a. 부처님이 출현하시기 전
전자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세속제에는 이름도 없었고 대상의 이름도 없었음을 밝힌 것이다. 다음은 환법에는 이름도 없고 실체도 없음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은 삼계와 육도는 다 이름이 없었음을 밝힌 것이다.

a) 세속제의 이름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환제의 법”이란 세속제를 말한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지 않았던 그 전에 …”라고 한 것은 부처님이 아직 나시지 않았을 때는 ‘말하는 수단으로서의 이름(能說名字)’이 없었고 ‘말해지는 대상의 이름(所說義名字)’도 없었다는 것이다.274)

001_0082_b_01L
釋曰第二有無分別門謂於俗諦門
001_0082_b_02L有假者故名之爲有非實性故
001_0082_b_03L亦說爲無如是受假世諦假誑幻
001_0082_b_04L故有而非實有

001_0082_b_05L
乃至六道幻化衆生見幻化

001_0082_b_06L
釋曰第三六趣門謂受假三界四生
001_0082_b_07L乃至六道所成受假皆幻化衆生
001_0082_b_08L幻化非實衆生

001_0082_b_09L
幻化見幻化名爲幻諦

001_0082_b_10L
釋曰第四四姓分別門然釋此文
001_0082_b_11L有兩釋一云幻化見幻化者總標
001_0082_b_12L能化所化皆是幻化婆羅門乃至名
001_0082_b_13L爲幻諦者雙顯能化所化皆具四姓
001_0082_b_14L神我有情具足色心皆名幻諦
001_0082_b_15L言幻化者標能化人見幻化等
001_0082_b_16L乃至名爲幻諦皆是所化

001_0082_b_17L
幻諦法無義名

001_0082_b_18L
釋曰第三釋名假文別有二初明
001_0082_b_19L佛前無名後大王下明如來立名
001_0082_b_20L中有三初明世諦無名義名次明幻
001_0082_b_21L法無名無體後明三界六道皆無名
001_0082_b_22L此卽初也謂幻諦法者卽世諦
001_0082_b_23L言無佛出世前等者佛未出時
001_0082_b_24L能說名字亦無所說義名字

001_0082_c_01L
b) 이름도 없고 체도 없음

환법幻法은 허깨비이니 이름도 없고 실체(體相)도 없으며,

두 번째는 환법에는 이름도 없고 실체도 없음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환법에는 환화幻化의 작용이 있으니, 이와 같은 체와 용에는 모두 이름도 없고 또한 실체도 없어서 마치 허공꽃275) 등과 같은 것이다.

c) 삼계와 육도의 이름이 없음

삼계의 이름도 없었고 선악의 과보인 육도의 이름도 없었습니다.

세 번째는 삼계와 육도에 다 이름이 없었다고 해석한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b. 부처님이 이름을 지으심

대왕이여, 그러므로 부처님과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중생을 위해서 삼계와 육도의 이름을 지어 주셨으니,

두 번째276)는 여래가 이름을 건립하셨음을 밝힌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세존께서 이름을 건립하셨음을 밝힌 것이다. 다음은 그 이름이 하나가 아니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마지막은 사事를 가리켜서 거듭 해석한 것이다.

a) 이름의 건립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부처님이 아직 출현하시지 않았을 때는 어떤 이름도 없었고, 따라서 세존께서 모든 중생을 위해 모든 이름을 설해 주셨다는 것이다.

b) 결론

이것을 한량없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이름이 하나가 아니라고 결론지은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c) 거듭 해석함

예를 들면 공법空法과 사대법四大法과 심법心法과 색법色法입니다.

세 번째는 사事를 가리켜서 거듭 해석한 것이다. 즉 ‘한량없는 이름’이란 예를 들어 중생의 몸을 이루는 것에는 일곱 가지 이름이 있다고 설하는 것과 같다.277) 첫째는 공법空法이니, 공계空界의 색을 말한다.278) 둘째는 사대를 밝혔으니, 〔지·수·화·풍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셋째는 심법을 밝혔으니, 육식의 마음과 심소유법을 말한다. 넷째는 색법이니, 오근과 오경 그리고 법처에 속하는 색을 말한다. 이와 같은 명칭들은 그 종류가 한둘이 아니다.

㉱ 상속가相續假에 대한 해석

상속가相續假의 법은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니,

이하는 네 번째로 상속가의 법을 밝힌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첫째는 주장을 표명한 것이고, 둘째는 〔도리와〕 반대로 해석한 것(反釋)이며, 셋째는 〔도리에〕 따라서 결론지은 것(順結)이다.

a. 주장의 표명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001_0082_c_01L
幻法幻化無體相

001_0082_c_02L
釋曰第二明幻法無名無體謂幻法
001_0082_c_03L有幻化用如是體用皆無名字
001_0082_c_04L無體相如空化等

001_0082_c_05L
無三界六道名字

001_0082_c_06L
釋曰第三釋三界六道皆無名字
001_0082_c_07L文可知

001_0082_c_08L
大王是故六道名字

001_0082_c_09L
釋曰第三如來立名文別有三
001_0082_c_10L世尊立名次結名非一後指事重釋
001_0082_c_11L此卽初也謂佛未出無諸名字
001_0082_c_12L故世尊爲諸衆生說諸名字

001_0082_c_13L
是名無量名字

001_0082_c_14L
釋曰第二結名非一如文可知

001_0082_c_15L
如空法色法

001_0082_c_16L
釋曰第三指事重釋謂無量名字者
001_0082_c_17L如說成衆生身有其七名一者空法
001_0082_c_18L是空界色二明四大卽分爲四
001_0082_c_19L明心法謂六識心及心所有法
001_0082_c_20L色法謂五根五境法處所攝色
001_0082_c_21L是名字其類非一

001_0082_c_22L
相續假法非一非異

001_0082_c_23L
釋曰自下第四明相續假法文別有
001_0082_c_24L一標宗二反釋三順結此卽初

001_0083_a_01L예를 들어 『본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란 상견常見을 말하니, 전후가 단일하여 멸한다는 의미가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다름’이란 단견斷見을 말하니, 전후가 각기 달라서 이어진다는 의미가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모습은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니”라고 설하였다.≻

b. 반대로 해석함

하나라고 해도 상속하는 것이 아니고, 다르다고 해도 상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도리와는〕 반대로 ‘하나’라고 하거나 ‘다르다’고 할 경우의 과실을 해석한 것이다. ‘하나’라고 해도 상속하는 것이 아니니, 〔불변하는 단일한 체에는〕 이어진다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르다’고 해도 상속하는 것이 아니니, 조각조각 갈라진 체에는 이어진다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c. 결론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속제續諦279)라고 이름합니다.

세 번째는 순리대로 결론지은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 상대가相待假에 대한 해석

상대가相待假의 법은 일체명상대一切名相待라고 하고, 또한 부정상대不定相待라고 하니,

다섯 번째는 상대가를 해석한 것이다. 경문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a. 종류
처음은 두 종류를 표시한 것이다. 첫째는 상피상대相避相待이니, 혹은 결정상대決定相待라고도 한다.280) 예를 들면 모든 법들이 상호간에 상대적인(展轉相待) 것과 같다. 둘째로 상탈상대相奪相待이니, 또한 부정상대不定相待라고도 한다.281) 예를 들면 1척尺의 사물을 혹은 길다고 하고 혹은 짧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바라보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길다’고 말하면 짧음을 빼앗는 것이고, ‘짧다’고 하면 긺을 빼앗는 것이다.
따라서 『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체상대一切相待’란 상피상대에 해당한다. 하나의 법은 모든 법에 대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부정상대’란 상탈상대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장丈이나 척尺 등과 같다.≻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체상대’란〕 정상대正相待이니, 예를 들어 유와 무 등을 설하는 경우나 혹은 색色을 눈(眼)과 상대시키거나 소리(聲)를 귀(耳)와 상대시키는 경우들이다. ‘부정상대’란 방상대傍相待이니, 예를 들면 오경五境이 상호간에 상대적인 것 등을 말한다.≻282)

b. 사례

예를 들어 다섯 가지 색법 등과 유·무의 일체법 등입니다.

두 번째는 사事를 가리켜서 ‘정상대正相待’를 설명한 것이다.283)

㉳ 연성가緣成假에 대한 해석

모든 법은 다 연성가緣成假로서 중생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연성가를 해석한 것이다. 즉 오음이 연이 되어 가짜 중생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284)

001_0083_a_01L如本記云一是常見前後是一
001_0083_a_02L無滅義故異是斷見前後各異
001_0083_a_03L續義故故說其相非一非異

001_0083_a_04L
一亦不續異亦不續

001_0083_a_05L
釋曰第二反釋一異之失一亦不續
001_0083_a_06L無續義故異亦不續條然別體
001_0083_a_07L續義故

001_0083_a_08L
非一非異故名續諦

001_0083_a_09L
釋曰第三順結可知

001_0083_a_10L
相待假名一切名相待亦名不定相待

001_0083_a_11L
釋曰第五釋相待假文別有二
001_0083_a_12L標二種一者相避相待或名決定相
001_0083_a_13L如一切法展轉相待二相奪相待
001_0083_a_14L亦名不定相待如一尺物或長或短
001_0083_a_15L所望別故言長奪短言短奪長故本
001_0083_a_16L記云一切相待卽是相避相待
001_0083_a_17L法待一切故不定相待卽相奪相待
001_0083_a_18L如丈尺等有云正相待者如說有
001_0083_a_19L無等或色對眼聲對耳等不定相待
001_0083_a_20L傍相待如五境展轉相待等

001_0083_a_21L
如五色等法有無一切等法

001_0083_a_22L
釋曰第二指事辨正相待也

001_0083_a_23L
一切法皆緣成假成衆生

001_0083_a_24L
釋曰第六釋緣成假謂五陰爲緣成

001_0083_b_01L혹은 오음이 연이 되어 가짜 중생을 이루기 때문에 ‘연성가’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수가受假와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연성가는 수가를 포괄하지만 수가는 연성가를 포괄하지는 못한다.

㉴ 인생가因生假에 대한 해석

동시(俱時)적 인과와 이시異時적 인과, 삼세의 선악 등

일곱 번째는 인생가因生假를 밝힌 것이다.
동시적 인과는 예를 들어 현행現行이 종자種子를 훈습하고 종자가 현행을 생하는 경우 등을 설할 때 이것은 동시적 인과에 해당한다.285) 종자가 자기 부류를 서로 생하는 경우 등을 설할 때 이것은 전후 인과 〔즉 이시적 인과의〕 문이다.286)

㈏ 총괄적 결론

일체가 허깨비이고 환제幻諦의 중생입니다.

교화되는 대상을 설한 곳에서 경문을 두 가지로 구별했었다. 앞은 해석이고, 나중은 결론이다.
이상으로 교화되는 대상이 환과 같음에 대해 다 해석하였다. 이것은 두 번째로 교화되는 대상이 환과 같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나) 교화하는 자

대왕이여, 보살에게는 이상과 같이 보여진 바의 중생은 허깨비이고 모두 가짜로 속이는 것이며 마치 허공 중의 꽃과 같은 것입니다. 십주보살과 제불은 오안五眼으로 마치 환제와 같다고 보니, 보살이 중생을 교화함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두 번째로 교화하는 자도 모두 허깨비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⑶ 대중의 이익

이때287) 한량없는 천자天子와 모든 대중들 중에는 복인伏忍을 얻은 자도 있었고, 공인空忍·무생인無生忍을 얻은 자 내지는 일지一地에서 십지十地의 불가설의 덕행을 얻은 자도 있었다.

세 번째는 당시 대중이 이익을 얻었음을 밝힌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은 “복인伏忍을 얻은 자”를 밝힌 것이니, 즉 삼현에 해당한다. 다음에 “공인·무생인을 얻은 자”라고 한 것은 두 종류 인을 얻은 것이다. 이른바 공인과 무생인은 하나하나 모두 공통적으로 십지에 있다. 마지막의 “내지는 …”이라 한 것은 십지의 문을 얻은 것이다. 말하자면 교를 들었던 힘으로 인해 초지에서 십지까지의 모든 덕행을 얻었음을 알아야 한다.

001_0083_b_01L假衆生或可五陰爲緣成假衆生
001_0083_b_02L故名緣成假問若爾受假有何別耶
001_0083_b_03L解云緣成攝受假受假不能攝緣成
001_0083_b_04L

001_0083_b_05L
俱時因果三世善惡

001_0083_b_06L
釋曰第七因生假謂同時因果
001_0083_b_07L說現行熏種子種子生現行等卽是
001_0083_b_08L俱時因果種子自類相生等卽是前
001_0083_b_09L後因果門

001_0083_b_10L
一切幻化是幻諦衆生

001_0083_b_11L
釋曰就所化中文別有二先釋後
001_0083_b_12L上來已釋所化如幻訖此卽第二
001_0083_b_13L結成所化如幻也

001_0083_b_14L
大王爲若此

001_0083_b_15L
釋曰此卽第二結成能化皆幻化

001_0083_b_16L
時有無量不可說德行

001_0083_b_17L
釋曰第三明時衆得益文別有三
001_0083_b_18L明得伏忍謂卽三賢次得空無生忍
001_0083_b_19L得二種忍所謂空及無生忍
001_0083_b_20L一皆通在於十地後乃至等者得地
001_0083_b_21L謂聞敎力能得初地乃至十地所
001_0083_b_22L有德行應知

001_0083_b_23L
仁王經疏中卷本

001_0083_c_01L
  1. 1)『仁王經疏』(H1, 57c)에는 ‘一行可行者’라고 되어 있는데, 一 다음에 云何를 추가해야 한다.
  2. 2)뒤에 나오는 총괄적 결론에서는 ‘모든 불·보살들이 다 본래 오인법을 수행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보살은 어떤 행을 행해야 하고 …”라고 물었기 때문에 그에 맞춰 ‘오인이 바로 보살법이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3. 3)구마라집 역에는 ‘寂滅忍上中下’라고 되어 있고, 원측의 판본에는 ‘寂滅忍上下’라고 되어 있는데, 후자가 바르다. 이 경문은 앞의 4인忍 각각의 상중하와 적멸인의 상하를 합해서 모두 14인을 설한 것이다.
  4. 4)보살의 십지 중에서 제10지를 관정지灌頂地라고 하는데 특히 등각等覺의 계위를 가리킨다.
  5. 5)『菩薩瓔珞本業經』 권1(T24, 12b25) 참조.
  6. 6)원측에 따르면 『菩薩瓔珞本業經』의 여섯 가지 종성은 십주와 십행과 십회향과 십지와 금강심과 여래지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풀이를 덧붙인 것은 앞에서 언급한 5인忍을 보살의 계위와 종성 등과 연관시켜서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전에 복인은 십지 이전의 삼현三賢이라고 했는데, 보살의 계위로는 각기 십주(=십해)와 십행과 십회향에 해당하고 종성으로는 각기 습習·성性·도道에 해당한다. 신인·순인·무생인은 초지에서 제9지까지를 3분한 것으로서 모두 성聖종성에 해당한다. 마지막 적멸인은 금강심(제10관정보살지)과 여래지에 해당하고, 전자는 등각성이고 후자는 묘각성이다.
  7. 7)『瑜伽師地論』 권47(T30, 552c25) 참조.
  8. 8)이하에서는 복인의 계위와 종성 간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 학설이 소개된다. 대승의 일반적 학설에 따르면, 십주와 십행과 십회향과 십지와 등각과 묘각은 각기 차례대로 습종성과 성性종성과 도종성과 성聖종성과 등각성과 묘각성에 해당한다. 그런데 앞의 경문에서 말한 5인의 첫 번째인 복인의 계위와 관련해서 논란이 있었는데, 그 논란의 핵심은 ‘십신’을 복인에 포함시키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하는 그에 대한 견해들을 소개한 것이다.
  9. 9)『仁王般若波羅蜜經』 권1(T8, 827b18)에 나오는 왕의 게송 참조.
  10. 10)이전의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복인은 십지 이전의 삼현三賢으로서 십주·십행·십회향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복인은 십주의 습종성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십신을 습종성으로 보는 경우에는 십신도 복인에 포함됨을 뜻한다.
  11. 11)진제 역·세친 조 『攝大乘論釋』 권11(T31, 229b8).
  12. 12)진제 역·세친 조 『攝大乘論釋』 권11(T31, 229b14).
  13. 13)수다원須陀洹 즉 예류과預流果를 얻기 전에 난煖·정頂·인忍·세제일법世第一法의 네 가지 방편도를 닦는 것을 말한다.
  14. 14)진제 역·세친 조 『攝大乘論釋』 권11(T31, 229b22).
  15. 15)승기수僧祇數란 보살의 수행이 원만해지는 데 소요되는 아승기겁을 말한다.
  16. 16)『菩薩瓔珞本業經』에서는 세 종류 복인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곳은 없지만, 이전의 원측의 풀이(해)에 의거할 때, 복인은 지전의 십주(십해)와 십행과 십회향을 가리키고 각기 『보살영락본업경』에서 말한 습·성·도의 종성에 해당한다.
  17. 17)세 번째 견해를 정설로 간주할 경우, 오인과 보살의 계위와 종성과의 관계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五忍(=14忍)보살의 지위종성
    伏忍十住(=十解)習種性
    十行性種性
    十廻向道種性
    信忍第一地聖種性
    第二地
    第三地
    順忍第四地
    第五地
    第六地
    無生忍第七地
    第八地
    第九地
    寂滅忍第十地等覺性
    如來地妙覺性
  18. 18)『仁王般若波羅蜜經』 권1(T8, 827b18).
  19. 19)이전 원측의 풀이(해)에 따르면, 『菩薩瓔珞本業經』에서 말하는 42종류 현성이란 십해(십주)와 십행과 십회향과 십지와 등각과 묘각을 가리킨다. 이 중에서 복인에 해당하는 사람은 십해·십행·십회향의 30인人이다. 그런데 첫 번째 주장처럼 십신을 습종성으로 간주하는 경우, 복인에 다시 10인이 추가되므로 현성의 수가 모두 52인이 된다는 것이다.
  20. 20)두 가지 과실이란 복인의 성스런 모태가 되는 사람이 40명이 되는 과실, 그리고 현성의 종류가 52인이 되는 과실을 말한다.
  21. 21)‘대당大唐의 세친론본世親論本’이란 현장이 번역한 세친의 『攝大乘論釋』을 가리키고, ‘대업본大業本’ 즉 『大業論』이란 수隋의 천축삼장 급다笈多와 행구行矩 등이 번역한 세친의 『攝大乘論釋論』을 가리킨다. 이외에도 진陳의 천축삼장 진제가 번역한 세친의 『攝大乘論釋』도 있다. 이 세 가지 번역본, 그리고 무성無性의 『攝大乘論釋』과 무착無著의 『攝大乘論』을 합해서 ‘5섭론攝論’이라 한다.
  22. 22)‘상신想信’이 ‘상신相信’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는데, 둘 다 의미는 동일하다. 상신이란 아직 이치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 마음으로 떠올린 표상에 의거해서 믿는 것을 말한다.
  23. 23)『仁王經疏』(H1, 58c)에는 ‘言初發相信者’로 되어 있는데, 앞의 경문에 맞춰서 相은 想으로 수정하였다.
  24. 24)율의律儀(ⓢsaṁvara)란 어떤 특정한 계를 받을 때 지은 신업과 구업을 연으로 하여 내 몸 안에서 발생한 보이지 않는 무표無表의 계체戒體를 말한다. 이 계체는 이후에 악행을 방지하거나 반대로 선행을 발생하는 힘을 갖는다. 이 무표의 계체에는 율의와 불율의不律儀와 비율의비불율의非律儀非不律儀 등 세 가지가 있다. 율의와 비율의는 일정 기간 동안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맹세함으로써 생겨난 계체이고, 마지막 비율의비불율의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다. 이 중에서 율의는 선한 마음과 함께 발생한 계체로서 악계惡戒의 상속을 차단하고 소멸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고, 불율의는 그와 반대되는 것이다.
  25. 25)가관假觀이란 진관眞觀의 반대말로, 사실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방편으로 시설한 상들에 의거해서 관조하는 것을 말한다.
  26. 26)이 경문의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다. 다만 물고기 알이나 암라수 꽃 등은 그 수가 많지만 결실은 극히 적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암라수菴羅樹 혹은 암몰라수菴沒羅樹는 인도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나무로서 꽃은 매우 많지만 열매는 매우 적게 열린다고 한다.
  27. 27)『仁王經疏』(H1, 59a)에는 ‘有十恒名字菩薩’이라고 되어 있는데, 恒은 順으로 수정해야 한다.
  28. 28)『菩薩瓔珞本業經』 권1(T24, 1011c2) 참조.
  29. 29)『仁王經疏』(H1, 59a)에는 ‘十信以前’이라 되어 있는데, 信은 住의 오기다.
  30. 30)『仁王經疏』(H1, 59a)에는 ‘~想心中行者’라고 되어 있는데, 想 앞에 信을 추가해야 한다.
  31. 31)퇴분선근退分善根이란 어떤 나쁜 인연을 만나면 지위에서 물러나는 자를 말한다.
  32. 32)『菩薩瓔珞本業經』 권1(T24, 1014b28).
  33. 33)『仁王經疏』(H1, 59b)에는 ‘二持地住’라고 되어 있는데, 두 경전에는 持는 治로 되어 있다.
  34. 34)이상에서 열거한 십주는 『大方廣佛華嚴經』 권16(T10, 84a22)과 『菩薩瓔珞本業經』 권2(T24, 1017a25) 등에 나온다.
  35. 35)‘별상십주別相十住’란 특정 경전에서만 설해진 ‘십주’를 말한다.
  36. 36)‘통상십주通相十住’란 여러 경전에서 공통적으로 설해진 ‘십주’를 말한다.
  37. 37)『菩薩瓔珞本業經』 권1(T24, 1011c7) 참조.
  38. 38)전륜성왕이 굴리는 윤보輪寶에 금·은·동·철의 네 종류가 있으므로 그 윤왕도 네 종류로 구별된다. 동륜왕銅輪王이란 ‘동’으로 만든 윤보를 굴리는 전륜성왕을 가리킨다. 『仁王般若波羅蜜經』이나 『菩薩瓔珞本業經』 등에서는 이 전륜성왕들을 특히 보살의 수행 계위에 배당시켰다. 철륜왕은 십신위十信位, 동륜왕은 십주위十住位, 은륜왕은 십행위十行位, 금륜왕은 십회향위十迴向位에 해당한다.
  39. 39)이미 중생을 교화하는 이타행을 닦으므로 이승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40. 40)『仁王經疏』(H1, 59b)에는 ‘復次善男子’라고 되어 있는데, 구마라집 역에는 次第라고만 되어 있다.
  41. 41)『仁王經疏』(H1, 59b)의 협주에는 ‘~于慧地’라고 되어 있는데, 于는 干의 오기다.
  42. 42)위의 경문 각주에서 “어떤 판본에는 간혜지라고 되어 있다.”고 한 것을 가리킨다.
  43. 43)『仁王經疏』(H1, 59c)에는 ‘照寂名性慧’로 되어 있는데, 『菩薩瓔珞本業經』에는 ‘無相慧照寂慧’로 되어 있다.
  44. 44)이 논에는 무치無癡심소와 혜慧심소의 법체가 동일하다는 설, 그와는 반대로 두 심소는 별도의 법체를 갖는다는 설이 소개되어 있다. 그 중 후자에 따르면, 탐·진·치는 육식六識과 상응하는 것으로서 정번뇌正煩惱에 속하고 악을 일으키는 작용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이것들을 대치시키는 특별한 심소법의 작용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무치 등의 심소이며, 이것은 모든 선한 마음의 토대가 되므로 선근善根이라고 한다. 『成唯識論』 권6(T31, 30a9)의 ‘무치’에 대한 설명 참조.
  45. 45)현재법은 이후의 법에 대해서는 ‘인’이고 이전의 법에 대해서는 ‘과’이므로, 현재를 관할 때는 인·과를 관한다고 하였다.
  46. 46)『瑜伽師地論』 권50(T30, 577a1)에는 我, 有情, 命者, 生者, 能養育者, 補特伽羅, 意生, 儒童 등의 여덟 종류 명칭이 나온다. 『大般若波羅蜜多經』 권74(T5, 418a8) 등에는 我, 有情, 命者, 生者, 養者, 士夫, 補特伽羅, 意生, 儒童, 作者, 受者, 知者, 見者의 13종류 명칭이 나오는데, 이보다 더 자세한 분류도 행해진다.
  47. 47)‘62견見’에 대해서는 이전 「관공품」의 “62견見도 ‘봄’이라고 이름합니다.”라는 경문의 해석 참조.
  48. 48)구마라집 역에는 이 경문은 ‘復有十道種性地’라고만 되어 있다.
  49. 49)『仁王經疏』(H1, 60b)에는 ‘旦依前本’으로 되어 있는데, 旦은 且의 오기다.
  50. 50)이 보살은 5음五陰과 3계三界와 2제二諦 등의 10법을 관해서 10인忍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51. 51)수계하는 의식에 따라서 말하거나 동작하는 표업表業을 지어서 계를 받는 것을 표계表戒라고 하고, 이미 계를 받고 나서 몸에 보이지 않는 계체가 생겨나면 그것을 무표계無表戒라고 한다.
  52. 52)도종성을 획득한 자가 색온을 관함으로써 마침내 어업語業과 신업身業에 있어서 청정한 계를 갖추게 된 것을 ‘계인戒忍을 얻었다’고 하였다. 유식종에서는 말이나 신체적 행동의 본질은 ‘사思’라고 보지만, 소승의 학설에서는 그러한 표업의 본질은 ‘소리(聲)’나 ‘형색形色’ 등과 같은 색법이고 그로 인해 생겨난 무표의 업력도 일종의 색법으로 보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왕경』에서도 표계와 무표계를 모두 색법으로 간주한 것이라는 말이다.
  53. 53)무색계에서는 미세한 ‘상想과 수受’만 있는 상태에서 네 가지 상을 사유한다.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에서는 선정의 장애가 되는 모든 상想을 제거하고 오로지 ‘공간의 무변한 상’을 사유하고,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에서는 ‘식의 무변한 상’을 사유하며,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에서는 ‘무소유의 상’을 사유하고,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서는 ‘상도 아니고 상이 아닌 것도 아닌 상’을 사유한다.
  54. 54)색계 사선四禪의 본질은 마음을 하나의 경계에 집중한 상태에서 깊이 생각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지혜가 발생하게 된다. 색계 4선은 특히 욕계의 감각(感受)을 떠나서 색계의 감수와 상응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초선과 제2선은 희수喜受·낙수樂受와 상응하고, 제3선은 낙수와 상응하며, 제4선은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와 상응한다.
  55. 55)대상을 확정해서 판단하는 정신작용을 승해勝解(ⓢadhimokṣa)라고 한다. 그런데 소승의 유부에서 ‘유위해탈은 곧 승해에 해당한다’고 한 것은, 지혜의 판단력에 의해 번뇌를 끊고 해탈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이 승해를 해탈의 본질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무위해탈이란 그 지혜의 결택에 의해 드러난 ‘멸滅’ 자체 곧 ‘택멸擇滅’을 가리킨다. 『大毘婆沙論』 권101(T27, 524c10) 참조.
  56. 56)『大毘婆沙論』 권33(T27, 172b7), 『佛地經論』 권4(T26, 308b19) 참조.
  57. 57)공인空忍이란 고제苦諦라는 과果를 관하여 그것이 공함을 아는 것인데, 이때 ‘공’이란 고제의 네 가지 행상 즉 비상非常·고苦·공空·비아非我 중의 하나를 가리킨다.
  58. 58)열 가지 상이란 색상色相·성상聲相·향상香相·미상味相·촉상觸相·생상生相·주상住相·괴상壞相·남상男相·여상女相 등이다.
  59. 59)이 경에서는 네 명의 전륜성왕을 보살의 수행의 계위에 배당시켰는데, 이전의 습종성 보살이 십주十住의 지위로서 동륜왕이 되었다면, 이 도종성 보살은 십행十行의 지위로서 금륜왕이 되어 중생을 교화한다.
  60. 60)이장二障이란 번뇌장煩惱障(ⓢkleśāvaraṇa)과 소지장所知障(ⓢñeyāvaraṇa)을 뜻한다. 번뇌장이란 중생의 몸과 마음을 어지럽혀서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고 생사의 세계에서 떠돌게 만드는 모든 번뇌를 가리킨다. 소지장이란 업을 짓게 하거나 삼계에 태어나게 하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해도 알아야 할 경계를 가려 바른 지혜가 일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번뇌를 가리킨다.
  61. 61)이미 수도소단修道所斷의 번뇌 종자를 다 조복시켰다고 해도 그것을 완전히 단멸시킨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십지 중 앞의 4지에서는 아견我見 등이 일어날 수 있고 7지 이전에는 여전히 탐貪 등이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아라한들의 경우와 같으니, 그들 중에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일부러 가끔 번뇌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두려워하는 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러한 번뇌의 현기는 그 자체로 위험한 것이 아니므로 과실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팔지 이상이 되면 일부러 번뇌를 현기하는 일은 없어진다. 『成唯識論述記』 권10(T43, 589c23) 참조.
  62. 62)육식과 동시에 일어나는 소지장은 팔지 이상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부터는 인공·법공에 대한 무루의 무분별지無分別智와 그 과果인 멸정滅定과 후득지後得智 등이 끊임없이 상속해서 제6식의 두 가지 집착과는 서로 거스르기 때문이다. 『成唯識論述記』
  63. 63)제7말나식과 함께 일어나는 미세한 소지장은 팔지 이상에서도 여전히 현행할 수 있다. 생공生空의 지혜와 과의 행상이 아직 모두 거칠어서 제7식의 미세한 소지장과는 서로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成唯識論述記』 권10(T43, 590a21) 참조.
  64. 64)전의轉依라고 한 것에서, ‘전轉’은 ‘전환해서 버리고(轉捨) 전환해서 얻는다(轉得)’는 뜻이고, ‘의依’는 제8아뢰야식을 뜻한다. 즉 요가 수행을 통해 제8아뢰야식의 번뇌장을 전사하고 열반을 전득하는 것, 소지장을 전사하고 그 안에 있는 무루의 진지眞智를 전득하는 것을 전의라고 한다. 『成唯識論』권10(T31, 55a10) 참조.
  65. 65)전오식前五識의 경우는 설사 아직 전의하여 무루지를 얻지 못했다고 해도, 팔지 이상에서는 제6식의 무루도無漏道의 수승한 힘에 의해 전오식과 함께 일어나는 소지장이 조복되고 대치되기 때문에 더 이상 소지장이 현기하지 않는다. 『成唯識論述記』 권10(T43, 590a24) 참조.
  66. 66)추중麤重은 수면隨眠과 같은 말이다. 유식종에서는 이것을 현행한 번뇌와 구별시켜서 그 번뇌의 습기 즉 종자로 간주하였다. 『瑜伽師地論』 권58(T30, 623a22)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행하거나 현기한 번뇌를 ‘전纏’이라고 한다면, 이 번뇌의 종자가 단멸되지 않고 손상되지 않고 있는 것을 ‘수면隨眠’이라고 하거나 ‘추중麤重’이라고 한다.”
  67. 67)극희주極喜住에서는 모든 악취품의 번뇌 추중을 다 영원히 끊고, 무가행무공용무상주無加行無功用無相住에서는 무생법인을 장애하는 번뇌의 추중을 다 영원히 끊으며, 최상성만보살주最上成滿菩薩住에서는 모든 번뇌의 습기 등을 다 영원히 끊는다. 『成唯識論述記』 권10(T43, 590b9) 참조.
  68. 68)『成唯識論』 권10(T31, 54a6).
  69. 69)무감임성無堪任性이란 추중을 가리키는 말이다. 번뇌장과 소지장의 종자에 의해 야기된 심신心身의 혼매한 상태가 성도聖道를 감당해 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무감임’이라 하고, 그와 반대되는 것을 ‘감임’이라 한다.
  70. 70)『仁王經疏』(H1, 62a)에는 ‘且加煩惱障中’이라 되어 있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加는 잉자이거나 於의 오기인 듯하다.
  71. 71)『成唯識記』란 아마도 원측이 쓴 『성유식론』 주석서인 듯하다.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다.
  72. 72)『仁王經疏』(H1, 62b)에는 ‘光忍伏心因業道’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다음에 나오는 ‘광인光忍’의 문구와 중복된다. 『영락본업경』에 의거해서 ‘現忍伏因業道’로 수정하였다.
  73. 73)『菩薩瓔珞本業經』 권1(T24, 1016b16).
  74. 74)『菩薩瓔珞本業經』 권1(T24, 1011c9) 이하의 게송 참조.
  75. 75)이 해석에 따르면 무생인無生忍이란 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의 자성 없음을 증득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보살이 변계소집의 체성이 전혀 없음을 관하여 체인하는 것을 ‘본성本性무생인’이라고 하고, 의타기성에 의거해서 제법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모두 인연을 따라 생긴 것임을 관하여 체인하는 것을 ‘자연自然무생인’이라고 하며, 제법의 진여법성에는 혹·고 등의 잡염법은 없고 본래 고요함을 체인하는 것을 ‘혹고惑苦무생인’이라 한다.
  76. 76)『成唯識論』 권8(T31, 47b25) 참조.
  77. 77)부동지不動地에 오르면 유무의 상(有無相)과 공용功用과 유루번뇌有漏煩惱 등에 의해 동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78. 78)『仁王經疏』(H1, 63b)에는 ‘~習煩惱’라고 되어 있는데, 구마라집 역에는 ‘煩惱習’으로 되어 있다.
  79. 79)구마라집 역에는 ‘故’가 붙어 있다.
  80. 80)『仁王經疏』(H1, 63c)에는 ‘下忍行中行’이라고 되어 있는데, 忍 다음의 行은 삭제해야 한다.
  81. 81)『仁王經疏』(H1, 64a)에는 ‘其觀第一義諦’라고 되어 있는데, 其는 共의 오기다.
  82. 82)『大般涅槃經』 권27(T12, 527c29)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견見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안견眼見이고 둘째는 문견聞見이다. 모든 불세존은 불성을 안견하시는데 이는 마치 손바닥 안에서 아마륵阿摩勒 열매를 관하는 것과 같다. 십주보살十住菩薩은 불성을 문견하기 때문에 명료하지 않으니, 스스로 결정코 위없는 보리를 얻었음을 알 수는 있지만 모든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음을 알 수는 없다.”
  83. 83)『仁王經疏』(H1, 64a)에는 ‘十四五曰’로 되어 있는데, 曰은 日의 오기인 듯하다.
  84. 84)『유가사지론』에서는 이 비유를 찾을 수 없다. 가령 천태의 『仁王護國般若經疏』 권4(T33, 271b1)에도 십지보살과 부처님의 관觀의 우열을 논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大經』에서 설한 것처럼, 가령 십지보살은 불성을 문견聞見하고 불여래는 불성을 안견眼見한다. 또 십지보살을 유상사有上士라고 하고 부처님을 무상사無上士라고 한다. 또 보살은 14일 밤의 달과 같다면 부처님은 15일 밤의 달과 같다. …” 이 문장에 의하면, 달빛의 비유는 앞의 인용문과 마찬가지로 『열반경』에서 인용된 듯한데, 이 경에서는 이와 일치하는 문구를 찾을 수 없다.
  85. 85)이하의 첫 번째 해석에 따르면, ‘無明盡相爲金剛盡相無相爲薩婆若’라는 경문은 “無明盡相이 金剛盡相이고 無相이 薩婆若이다.”라고 번역된다.
  86. 86)현존하는 구마라집 역 『인왕경』에는 ‘薩婆若覺’이라고 되어 있는데 원측의 판본에는 ‘薩云若覺’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살운야’와 ‘살바야’는 모두 일체지一切智를 가리킨다.
  87. 87)「三身章」이 어떤 책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원측의 『別章』 중 한 장章일 것으로 추측된다.
  88. 88)자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중생연衆生緣이란 모든 중생을 자식처럼 여기면서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없애 주기 위해 일으킨 자비심을 말한다. 둘째 법연法緣이란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해 일으킨 자비심을 말한다. 셋째 무연無緣이란 모든 차별적 견해를 멀리 떠나서 분별하는 마음 없이 평등하게 일으킨 자비심을 말한다.
  89. 89)세 가지 무루근은 앞에서 나열한 22가지 근 중에서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이지근已知根·구지근具知根을 가리킨다. 이것은 의意·낙樂·희喜·사捨·신信·근勤·염念·정定·혜慧 등의 아홉 가지 근을 체로 하여 가립된 것이다. 그 아홉 가지가 증상시키는 힘을 갖고 있어서 무루의 청정한 성스런 법을 발생시키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시 하나의 독립적 근根으로 간주한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서품」의 성문중聲聞衆에 대한 해석문 참조.
  90. 90)다음 경문에서 불교와는 상반되는 견해를 언급하면서 “삼계 밖에 별도로 하나의 중생계장이 있다는 것은 …”이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91. 91)이하에서 언급된 22가지 근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 5가지 감각기관, 그리고 신근의 일부인 남근男根·여근女根, 아뢰야식의 친종자親種子의 한 측면에 의거해서 가립한 명근命根, 의식의 내적 토대 역할을 하는 의근意根, 기쁨이나 고통 등과 같은 내적 느낌인 우근憂根·희근喜根·고근苦根·낙근樂根·사근捨根 등의 5수근受根, 도덕적 근기를 지탱해 주는 신근信根·정진근精進根·염근念根·정근定根·혜근慧根, 그리고 성도를 지탱시켜 주는 세 가지 무루근인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과 이지근已知根과 구지근具知根이다. 『成唯識論』 권7(T31, 41a9) 참조.
  92. 92)복세사가吠世史迦(ⓢVaiśeṣika)란 곧 승론勝論학파를 가리킨다. 그들은 유식학자들과는 가장 대조되는 실재론적 세계관을 가진 학파로서, 이 세계가 그대로 ‘말의 의미(句義 ⓢpada-artha)’라고 하는 강력한 실재론을 전개하였다. 그들은 이 세계를 여섯 가지 구의로 분류하여 설명하였는데, 이하의 해석에서는 그 6구의가 열거된다.
  93. 93)대유大有(ⓢsattā)라는 것은 승론의 강력한 실재론적 세계관을 대변하는 개념이다. 이들은 실체(實 ⓢdravya)나 속성(德 ⓢguṇa) 등과는 구분되는 ‘보편’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한다. 보편이란 예를 들면 ‘동물’의 유類(ⓢjāti)나 ‘소’의 유처럼 다수의 개별자들에게 내재함으로써 어떤 무리들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유’는 더 높은 차원의 보편과 비교하면 ‘종’이라는 특수한 측면도 갖기 때문에 ‘보편이면서 특수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한역 문헌에서는 이것을 ‘동이同異’로 번역한다. 이 보편 중에는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모두 ‘존재(有)’로서 인식되게 하는 최고의 보편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대유’이다.
  94. 94)이 경전의 6구의설은 일반적으로 실체(實 ⓢdravya)·속성(德 ⓢguṇa)·작용(業 ⓢkarman)·보편(同 ⓢsāmānya)·특수(異 ⓢviśeṣa)·내속(和合 ⓢsamavāya) 등으로 분류되는데, 한역 문헌에는 이 6구의 중에 보편(同)과 특수(異)를 대유大有와 동이同異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보편과 특수를 조금 다른 기준에서 가장 높은 보편인 ‘대유’와 그 외에 언제나 ‘보편·특수’로서만 나타나는 ‘유類(ⓢjāti)’로 나눈 것이다. 이와 같은 분류 방식 이외에도 승론의 구의를 10가지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10구의에 대해서는 『勝宗十句義論』 권1(T54, 1262c16) 참조.
  95. 95)이 경에는 “대승은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디에 이르는 것입니까?”라는 수보리의 질문에 대해 부처님이 다음과 같이 답하는 대목이 나온다. “… 불생不生 내지는 무작법無作法의 자성은 삼계를 벗어나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 머물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불생의 자성 내지는 무작법의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이런 이유에서 마하연(=대승)은 삼계에서 나와서 살바야에 이른다고 하니, 부동不動의 법에 머물기 때문이다.” 원측에 의하면, 이처럼 ‘삼계에서 나와서 살바야에 이른다’는 『대품경』의 설법도 『인왕경』과 마찬가지로 이치상으로는 ‘삼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맥락에서 진술된 것이다. 『摩訶般若波羅蜜經』 권6 「出到品」(T8, 260b19) 참조.
  96. 96)변제정邊際定이란 색계 제4정려의 최상품을 가리킨다. 이 선정이 여러 종류의 정려 중에서 가장 수승해서 그것을 초월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변제’라고 하였다.
  97. 97)구마라집 역에는 佛菩薩 다음에 本業이라는 두 자가 추가되어 있다.
  98. 98)‘지위의 장·단을 설명했다’는 것은 인忍의 지위를 길게 늘이면 14인이 되고 짧게 줄이면 5인이 됨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99. 99)금강정金剛定이란 금강유정金剛喩定이라고도 하며, 보살의 제10지 마지막 마음에서 현전하는 선정을 가리킨다.
  100. 100)『仁王般若波羅蜜經』 권1(T8, 827a29).
  101. 101)『菩薩瓔珞本業經』 권2(T24, 1018a29).
  102. 102)사천왕四天王이란 욕계 6천 중에 첫 번째 천으로 사대왕천四大王天·사왕천四王天이라고도 한다. 지국持國·증장增長·광목廣目·다문多聞 등의 천왕과 그 권속들이 머무는 곳이다.
  103. 103)사천왕 중 남방南方에서 중생의 선근을 증장시키는 왕을 증장천왕增長天王이라고 한다.
  104. 104)『十地經論』 권3(T26, 144b28), 권4(T26, 152c16) 참조.
  105. 105)욕계의 첫 번째 천天인 사왕천四王天을 제외하고 도리천忉利天과 야마천夜摩天과 도솔천兜率天과 화자재천化自在天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등 5가지 천에서, 그리고 색계의 제3천을 제외하고 제1천과 제2천과 제4천 등의 3가지 천에서 왕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106. 106)『仁王經疏』(H1, 66c)에는 ‘橙稜貫’이라 되어 있는데, 貫은 아마도 實의 오기인 듯하다.
  107. 107)보사유 삼장寶思惟三藏이란 북인도 가습미라국 출신의 아이진나阿儞眞那를 가리킨다. 당나라 때 낙양에 와서 천궁사天宮寺에 머물면서 『隨求卽得自在陀羅尼經』 등을 번역했다. 『宋高僧傳』 권3 「寶思惟傳」(T50, 720a14) 참조.
  108. 108)도리천의 범음 ‘Trayastriṃśa-deva’를 의역할 경우에는 ‘삼십삼천’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109. 109)『菩薩瓔珞本業經』 권2(T24, 1017a25) 참조.
  110. 110)‘염천炎天’이란 욕계 6천 중의 제3천인 ‘야마천夜摩天’을 가리킨다. 혹은 ‘선시분善時分’ 등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111. 111)37도품三十七道品이란 지혜를 추구하고 열반에 들기 위해 닦는 37종류 수행방법으로서, 37보리분법菩提分法이라고도 한다. 즉 사념처四念處와 사정근四正勤과 사여의족四如意足과 오근五根과 오력五力과 칠각분七覺分과 팔지성도八支聖道 등의 수행법들을 가리킨다.
  112. 112)유작有作·무작無作이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말한다.
  113. 113)『顯揚聖敎論』 권8(T31, 519b29) 참조.
  114. 114)『顯揚聖敎論』 권8(T31, 519c1)과 『瑜伽師地論』 권46(T30, 547c7)에서 한 개의 제에서부터 이제와 삼제 내지는 팔제와 구제와 십제 등으로 수를 늘여 가며 다양하게 제를 분류했던 것을 말한다.
  115. 115)『十地經論』 권7(T26, 163c16).
  116. 116)앞의 『十地經論』에서 여덟 번째 제를 ‘一切菩薩地次第成就諦와 集如來智諦’로 나누었던 것을 말한다.
  117. 117)10바라밀이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 등의 6바라밀에다 다시 방편方便·원願·역力·지智 등의 네 가지 바라밀을 추가한 것이다. 특히 뒤의 방편·원·력·지의 네 가지는 후득지後得智에 해당한다. 그 후득지의 하나인 ‘방편’은 갖가지 간접적 방법으로 지혜를 개발시키는 것이고, ‘원’이란 항상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모두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 경문에서 말한 방편·원이란 이러한 십바라밀에 속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방편지의 일곱 가지 문 중의 첫 번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118. 118)이하는 바로 앞에서 ‘일곱 가지 문을 일으켜 중생의 일을 거둔다’고 한 것에 대해 다시 설명한 것이다. 이때의 ‘방편’이란 십바라밀의 방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十地經』에서 설한 ‘사섭법四攝法’과 연관된다. 말하자면 중생을 거두는 일에 있어서는 이하에 열거되는 일곱 가지 일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방편을 쓴다는 것이다.
  119. 119)이상은 『十地經論』 권9권(T26, 174b3) 참조.
  120. 120)‘색구경천色究竟天’이란 색계의 4선천禪天의 가장 꼭대기로서 최상품의 제4선을 닦는 자가 태어나는 곳이고, 그 과보는 유색계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121. 121)이 주장에 따르면 ‘게’란 한어로 ‘다함’을 뜻하는 ‘갈竭’이나 ‘진盡’을 뜻한다. 말하자면 네 구로 송을 만들어 의미를 똑같이 다 포괄하기 때문에 ‘게’라고 한다는 것이다.
  122. 122)삼밀三密이란 밀교密敎에서 말하는 신身·구口·의意 삼업을 가리킨다. 부처님 삼업의 활동은 매우 미묘하여 범부로서는 알 수 없는 경계이므로 ‘밀密’이라 한다. 밀교에서 우주의 본체인 6대大를 인격화한 것이 대일법신여래大日法身如來인데, 그 신밀身密은 우주의 전체적 활동이고, 그 어밀語密은 우주간의 온갖 언어·음성의 활동이며, 그 의밀意密은 우주간의 온갖 정신활동을 말한다.
  123. 123)‘상호相好’란 불보살의 몸에 갖추어져 있는 수승한 용모 또는 형상을 말한다. 그 중에서 그 특징이 현저해서 알아보기 쉬운 것을 32상相이라 하고, 미세하고 은밀해서 알아보기 어려운 것은 80수호隨好라고 하며, 이 둘을 합해서 ‘상호’라고 한다. 이 상호를 갖춘 이가 세속에 있으면 전륜왕轉輪王이 되고 출가하면 부처님이 된다고 한다.
  124. 124)‘三密經’이란 『密迹經』을 가리키는데, 이 경은 『大寶積經』(T11) 8권~14권에 해당하는 「密迹金剛力士會」 7권을 일컫는다.
  125. 125)『梵摩喩經』 권1(T1, 884b23).
  126. 126)『賢愚經』 권6(T4, 390b23)에는 ‘烏聲, 三尺烏聲, 破聲, 鴈聲, 鼓聲, 雷聲, 金鈴聲, 梵聲’ 등의 여덟 종류 소리가 열거되는데, 이는 다양한 중생과 사물들에서 나는 소리들을 분류한 것이다. 『十住斷結經』 권8( T10, 1030c19)에서는 ‘不男音, 不女音, 不強音, 不軟音, 不清音, 不濁音, 不雄音, 不雌音’ 등으로 구분한다.
  127. 127)『菩薩瓔珞本業經』 권2(T24, 1017a20) 참조.
  128. 128)『仁王經疏』(H1, 69b)에는 ‘有代根伽力’이라고 되어 있는데, 代根伽는 伐浪伽의 오기다. ‘벌랑가’란 신神의 이름이며 ‘묘지妙支’라고 번역된다. 『俱舍論記』 권27(T41, 405b10) 참조.
  129. 129)『仁王經疏』(H1, 69c)에는 ‘摩訶路健那’로 되어 있는데, 『大毘婆沙論』에 路는 諾으로 되어 있다.
  130. 130)구로사俱盧舍(ⓢkrośa)는 길이를 재는 단위로서 ‘명환鳴喚’이라고 의역하기도 한다. 『俱舍論』 권12(T29, 62b10)에 의하면 ‘1궁弓의 오백 배’라고 하는데, 그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여러 설들이 일정하지 않다. 혹은 큰 소의 울음소리나 북소리가 들릴 수 있는 거리, 혹은 마을에서 유행자들이 머무는 숲까지 그 사이에 있는 도로의 길이라고 한다.
  131. 131)『大毘婆沙論』 권30(T27, 156b29).
  132. 132)오인과 보살의 계위와 종성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교화품」의 서두에서 제시한 도표 참조.
  133. 133)세속발심世俗發心은 세속수발심世俗受發心이라고도 하며, 십지 이전의 보살이 아직 견도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는 다만 유루정有漏定에 의지해서 ‘발심’의 말을 진술하면 그것을 일정 기간 동안 섭수攝受하는 것을 말한다. 『瑜伽論記』 권19(T42, 740a10) 참조.
  134. 134)오파타야鄔波拖耶(ⓢupādhyāya)는 의역하면 ‘친교사親敎師’라고 하는데, 즉 직접 가르쳐 주는 스승을 가리킨다.
  135. 135)‘두 번째와 세 번째’란 보살의 수행이 완성되는 데 걸리는 기간인 3아승기겁 가운데 제2아승기겁과 제3아승기겁을 말한다.
  136. 136)증법성발심證法性發心이란 초지에 들어가서 아공·법공에 의해 현현한 진여를 증득한 자가 발심하는 것을 가리킨다. 『瑜伽論記』 권19(T42, 740a12) 참조.
  137. 137)『仁王經疏』(H1, 70a)에는 ‘得大乘意’라고 되어 있는데, 『현양성교론』에는 乘은 我로 되어 있다.
  138. 138)『顯揚聖敎論』 권2(T31, 490c24).
  139. 139)『大乘莊嚴經論』 권2(T31, 595c10).
  140. 140)『菩薩瓔珞本業經』 권2(T24, 1019b2)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불자여, 법문이란 십신十信의 마음을 말하니, 이것이 일체행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십신의 마음에는 하나의 마음마다 10품의 신심信心이 있으므로 백법명문百法明門이 되고, 다시 이 백법명심百法明心의 하나하나 마음마다 백 가지 마음이 있으므로 천법명문千法明門이 되며, …… 이와 같이 백만 아승기의 공덕의 일체 제행이 이 명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141. 141)『仁王經疏』(H1, 70b)에는 ‘第二自利行’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전의 과목 분류에 의거할 때 自는 二로 수정해야 한다.
  142. 142)보살이 부처가 될 때까지 수행하여 걸리는 시간을 3아승기겁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 제1아승기겁을 말한다.
  143. 143)『大乘莊嚴經論』 권7(T31, 623c19).
  144. 144)『金剛仙論』 권1(T25, 803b6).
  145. 145)『大乘起信論』 권1(T32, 581a11)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예를 들면 경에서 간혹 물러나서 악취에 떨어지는 자가 있다고 설한 것은, 그가 실제로 물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초학 보살로서 아직 바른 믿음에 들어가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가 두려워하면서 용맹스럽게 정진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146. 146)『仁王經疏』(H1, 71a)에는 ‘以福德力故’라고 되어 있는데, 力 다음에 大를 추가해야 한다.
  147. 147)『仁王經疏』(H1, 71a)에는 ‘是故加勸’으로 되어 있는데, 加는 如의 오기다.
  148. 148)이상은 『金剛仙論』 권1(T25, 803b14) 참조.
  149. 149)『仁王經疏』(H1, 71a)에는 ‘上觀現在前’이라고 되어 있는데, 上은 正의 오기다.
  150. 150)『仁王經疏』(H1, 71b)에는 ‘修行於空無我主者’라고 되어 있는데, 我 다음에 人을 추가해야 한다.
  151. 151)①정목천자淨目天子는 제6천의 왕태자로서 음욕을 즐겼던 자였다. 부처님의 부정관不淨觀에 대해 듣고서 출가하여 보살도를 행하고, 선방에 들어가 21일간 멸진삼매滅盡三昧를 닦아 제5심第五心을 얻었다. 당시 어떤 마왕魔王이 안다라녀安陀羅女로 하여금 열 가지 외형을 나타내게 하였는데, 이때 태자가 선정에서 일어나 그 여자를 보고 음욕이 생겨서 부처님을 비방하는 말을 하자 제5심에서 물러나서 중생공衆生空의 부정관을 놓쳐 버렸다고 한다. ②법재왕法才王은 4주四住보살로서 태어나 인왕人王이 되었다. 당시 해우왕마海雨王魔가 국토의 칠보七寶를 탐하여 그것을 훔치고 국토를 불태워 버렸다. 왕이 출정을 명하여 십만의 금강두귀金剛頭鬼가 해우왕의 팔만억 병사를 살해하였다. 따라서 왕이 일시적으로 마음에 들어 기분이 좋아졌는데, 그러자 곧 법광오주삼매심法光五住三昧心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③사리불舍利弗은 본래 소승으로서 난煖·정頂·인忍에 머물렀다. 부처님이 멸도하신 후 2겁 동안 순법順法을 닦고, 선다라불禪陀羅佛이 세상에 출현하여 대승행으로 교화할 당시 그는 부처님을 만나 대승을 수행했다. 대승의 마음을 발하여 6주지六住地를 증득하고 시안법施眼法을 행하였다. 어느 날 길에서 한쪽 눈이 어두운 바라문을 만났는데 그가 사리불에게 눈 하나를 구걸하여 얻고 나서는 또 파괴해 버리고 사용하지 않았다. 이때 사리불이 후회하는 마음을 내었는데, 그러자 곧 다시 물러나서 이승의 성문법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本業瓔珞經疏』 권1(T85, 755a15) 참조.
  152. 152)『菩薩瓔珞本業經』 권1(T24, 1014b28).
  153. 153)『菩薩瓔珞本業經』 권2(T24, 1017a14) 등에서는 십주의 이전 단계에서 신상보살信想菩薩이 닦는 십심十心 즉 이른바 신심信心 등 열 종류 마음을 열거하면서 여섯 번째를 ‘계심戒心’이라 하였고 ‘불퇴’라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앞의 학설에서 십신의 여섯 번째를 불퇴라고 간주할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154. 154)앞에서 인용한 『大乘莊嚴經論』의 문장에서 ‘모든 보살행을 1아승기겁을 다 행하고 났을 때라야 믿음이 증장되어 비로소 상품에 이른다’고 했던 것을 가리킨다.
  155. 155)『仁王經疏』(H1, 71c)에는 ‘明離遠地’라고 되어 있는데, 遠은 達의 오기다.
  156. 156)이것은 유식종의 사선근의 방편위에서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사심사관四尋思觀을 가리킨다. 사심사란 명名·의義·자성自性·차별差別 등 네 가지 법이 ‘가립된 존재이고 실제로는 없다(假有實無)’는 것에 대해 사유하는(尋思) 관법을 말한다. ‘명’이란 ‘색色’이나 ‘수受’ 등처럼 어떤 법을 가리키는 언어(能詮)이고, ‘의’란 그 이름들에 의해 언표되는(所詮) 체사體事를 가리킨다. 관행자들은 이름과 그에 의해 지시되는 사물에 대해, 이것들은 모두 자기 마음이 변현해 낸 것으로서 ‘가립된 존재일 뿐 참된 실재가 아니다’라고 심사함으로써 의타기의 공을 깨달아 들어가고, 마침내 4여실지四如實智를 획득하게 된다. 『成唯識論』 권9(T31, 49b2), 『成唯識論述記』 권9(T43, 565a11) 참조.
  157. 157)명名과 의義 등에 의거해서 처음으로 사심사관을 닦을 때는 먼저 명·의 따위는 가유假有임을 관찰하고 나중에 그것이 실무實無임을 관찰하므로 관에 전후의 순서가 있을 수 있다.
  158. 158)구마라집 역 『仁王般若波羅蜜經』 권1(T8, 827b28)에는 ‘無死無生無二照’라고 되어 있는데, 이 구에서 無死는 원측의 판본에는 無無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다음의 해석에 의하면, ‘無無’란 ‘변계소집성의 無’를 가리킨다.
  159. 159)이 문장(해)은 『본기』의 내용이 아니고 원측의 해설이다. 즉 의타기·변계소집·원성실 등의 세 가지 자성을 버리고 그 순서대로 세 가지 무자성無自性을 건립하면서 ‘무연·무상·제3제’라고 했다는 것이다.
  160. 160)유식종에서는 먼저 변계소집된 제법의 상相은 그 자체가 없는 것이므로 ‘상의 자성 없음(相無性)’을 건립하고, 다음에 제법은 유일한 인因에서 생겨나거나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의존해서 생기는 것이므로 ‘생의 자성 없음(生無性)’을 건립한다.
  161. 161)자은 삼장(현장)의 설에 따르면, 유식학에서 ‘의타기성’이라고 한 것은 일체법의 발생(生)의 인과를 밝힌 개념이다. 즉 모든 것은 다른 많은 연에 의지해서 생기므로 이와 같은 연생緣生을 ‘의타기’라고 한다. 이 ‘연생’과 가장 대립되는 견해가 바로 모든 것은 ‘자연적으로 생한다(自然生)’는 것이다. 특히 외도들이 말하는 ‘자연생’이란 크게 두 종류다. 첫째는 모든 것이 원인 없이(無因) 생기는 것이고, 둘째는 대자재천大自在天과 같은 가장 수승한 원인(勝因)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의타기의 존재는 여러 가지 다른 연들이 모여서 생기므로 ‘생生’에 있어서 그런 의미의 자연성은 없다. 따라서 의타성에 있어서 ‘생의 자성 없음(生無自性性)’을 설한 것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成唯識論掌中樞要』 권2(T43, 654a17) 참조.
  162. 162)‘청정한 지(能淨智)’를 밝힌 경문은 “무도 없고 생도 없으며 둘 없이 비추네(無無無生無二照).”라고 한 것을 말한다. 진제와 현장은 모두 이 문구가 삼무성을 관조하는 지혜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았다.
  163. 163)‘명혜의 공조’란 신인信忍의 상품 즉 제3지보살을 가리킨다. 천태에 의하면, 별교別敎의 3지보살이 인공과 법공에 통달하여 인忍을 성취한 것을 ‘공조’라고 한다. 『仁王護國般若經疏』 권4(T33, 274b29) 참조.
  164. 164)‘시施·계戒·수修’란 보시布施·지계持戒·수정修定을 뜻한다. 세속적 차원에서 닦는 이 세 종류 선행을 복福·업業·사事라고 한다. 이 세 종류 행은 선善이기 때문에 복福이고, 신업·어업 등으로 짓는 것이기 때문에 업業이며, 그런 업을 일으키려는 의지(思)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사事라고 한다. 『俱舍論記』 권18(T41, 283a5) 참조.
  165. 165)『仁王經疏』(H1, 72c)에는 ‘自下第二~’라고 되어 있는데, 二는 三의 오기다.
  166. 166)위의 게송에서 ‘실지實智’에 대해서는 ‘적정을 소연으로 삼는’이라는 문구를 넣었던 것과는 달리 ‘방편지方便智’에 대해서는 ‘진속의 이제를 소연으로 삼는’이라는 문구를 넣지 않았던 것을 말한다.
  167. 167)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삼제三諦란 진제와 속제와 제일의제를 말한다.
  168. 168)『仁王經疏』(H1, 73b)에는 ‘緣生空觀法’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생공·법공을 소연으로 삼는 관(緣生法空觀)’의 오기다.
  169. 169)이상은 『解深密經』 권4(T16, 704a23)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70. 170)『仁王經疏』(H1, 74a)에는 ‘第二顯地別相’이라고 되어 있는데, 二는 三의 오기다.
  171. 171)이 문구는 이전의 「관공품」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다. 이것은 『大智度論』 권97(T25, 571a5)에서 ‘제8지의 불퇴전不退轉 보살의 몸에는 벌레가 없다’고 설했던 것을 가리킨다. 칠지까지의 분단신分段身의 몸에는 벌레가 있기 때문에 그 육신을 ‘충신虫身’이라고 한 것이다.
  172. 172)초지에서 제7지까지 각 지마다 상·중·하의 세 가지 품이 있으므로 21가지 생生이 된다. 말하자면 이 중의 최후인 제7지의 상품에서 말후末後의 분단생分段生을 받고 있다가 제8지에 오르면 더 이상 분단생을 받지 않고 변역생變易生을 받는다.
  173. 173)『仁王經疏』(H1, 74a)에는 ‘二始入行相’이라고 되어 있는데, 二는 三의 오기다.
  174. 174)『仁王經疏』(H1, 74b)에는 ‘一一類諸師~’라고 되어 있는데, 맨 앞의 一은 二의 오기다.
  175. 175)『十地經論』 권9(T26, 176b15).
  176. 176)『解深密經』 권4(T16, 708a4) 참조.
  177. 177)『仁王經疏』(H1, 74c)에는 ‘初一偈平’이라고 되어 있는데, 平은 半의 오기다.
  178. 178)이하에서 설명되는 등관지等觀地는 보살의 십지十地 중에서 제8지에 해당한다.
  179. 179)혜광지慧光地란 이전의 부처님 설법에서 언급된 보살의 제9지 즉 선혜지善慧地에 해당한다.
  180. 180)사변四辨이란 사무애변四無礙辯을 말한다. 즉 교법(法)과 그 교법의 의미(義)에 잘 통달하고, 또 여러 종류의 언어(詞)를 잘 알아듣고, 중생의 근기에 맞춰 자유자재로 말하는(辨) 것이다.
  181. 181)관정위灌頂位는 이전의 부처님 설법에서 언급된 보살의 제10지 즉 법운지法雲地에 해당한다.
  182. 182)『華嚴經』 권27(T9, 572b15).
  183. 183)초지의 극희지에서 제10지의 법운지까지 각 지마다 상·중·하 세 개의 품이 있으므로 모두 30생生이 있다. 이제 관정위보살은 법운지의 마지막 상품의 한 생을 남겨 두었으므로 게송에서 ‘스물아홉 생에서 이미 벗어났다’고 한 것이다.
  184. 184)이 세 품의 보살들은 공통적으로 나머지 습기인 무명의 연緣을 제거하는데, 무명습기의 상(無明習相)은 구舊번뇌이기 때문에 ‘고故번뇌’라고 하였다. 천태天台, 『仁王護國般若經疏』 권4(T33, 275c2) 참조.
  185. 185)지덕智德이란 불과佛果에 갖추어진 세 가지 공덕 중의 하나로서, 일체의 법을 평등하게 관찰하는 지혜를 말한다.
  186. 186)단덕斷德이란 불과에 갖추어진 세 가지 공덕 중의 하나로서, 모든 번뇌와 업을 다 끊어서 없애 버린 것을 말한다.
  187. 187)은덕恩德이란 불과에 갖추어진 세 가지 공덕 중의 하나로서, 중생을 구도하려는 원력으로 중생을 건너게 해주는 은혜를 말한다.
  188. 188)이상 「교화품」에서 설해진 부처님의 정설과 왕의 게송에 의거해서, 14인忍과 지위와 종성과 왕위 간의 관계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五忍(=14忍)보살의 지위종성교화하는 국토와 왕위
    伏忍十住(=十解)習種性二天下의 銅輪王王의偈頌
    十行性種性三天下의 銀輪王
    十廻向道種性四天下의 轉輪王
    信忍第一地의 善覺地聖種性第1欲天의 四天王
    第二地의 離達地第2欲天의 忉利天王
    第三地의 發光地(=明慧地)第3欲天의 炎天王
    順忍第四地의 炎慧地第4欲天의 兜率天王
    第五地의 難勝地(=勝慧地)第5欲天의 化樂天王
    第六地의 現前地(=法現地)第6欲天의 他化天王
    無生忍第七地의 遠行地(=遠達地)色界初禪의 王
    第八地의 等觀地色界第2禪의 梵王
    第九地의 善慧地(=慧光地)色界第3禪의 大梵王
    寂滅忍十地의 法雲地(=灌頂菩薩地)等覺性色界第4禪의 大靜天王
    如來地(=薩婆若, 妙覺位)妙覺性三界의 王
  189. 189)『仁王經疏』(H1, 76a)에는 ‘顯已歸禮’라고 되어 있는데, 已는 己의 오기다.
  190. 190)게송에 나온 ‘義’를 원측은 의리義利로 해석하였다. 이 ‘의리’에 대해 친광의 『佛地經論』 권1(T26, 295a18)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이 정토에서 여래는 스스로 모든 유정들의 모든 의리義利를 실제로 지어 주거나, 혹은 모든 유정들이 스스로 모든 의리를 짓도록 한다. 현재의 이익을 ‘의義’라고 하고 미래의 이익을 ‘이利’라고 하며, 세간의 이익을 ‘의’라고 하고 출세간의 이익을 ‘이’라고 하며, 악을 떠나는 것을 ‘의’라고 하고 선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이’라고 하며, 복덕을 ‘의’라고 하고 지혜를 ‘이’라고 한다. …”
  191. 191)『仁王經疏』(H1, 76b)에는 ‘~已讚說之意’라고 되어 있는데, 已는 己의 오기다.
  192. 192)선한 계를 받을 때 지은 신업과 구업이 연이 되어 내 몸 안에서 보이지 않는 무표업無表業이 생겨나면 그것이 이후에 악행을 방지하는 작용을 하고, 반대로 악한 계를 수지함으로써 생겨난 무표업은 선행을 장애하는 작용을 한다. 이 중에서 선한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것을 율의律儀라고 하는데, 특히 색계의 선정에 의해 생겨난 것을 정려율의靜慮律儀 혹은 정율의定律儀라고 한다.
  193. 193)『大雲經』이란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大方等無想經』을 가리킨다. 이 경의 「大衆健度」 제1에는 부처님이 설법할 당시 여러 부류의 대중들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설하는데, 그 마지막에는 맹수나 독사나 맹독성 벌레 등이 모두 자비심을 내었고, 16종의 모든 악율의惡律儀들도 모두 그러했으며, 모든 악도의 중생들이 다 오계五戒를 받았고, 이러한 모든 중생들이 청정한 계행戒行을 수지했다고 한다. 『大方等無想經』 권1(T12, 1080c20) 참조.
  194. 194)구마라집 역 ‘阿須輪王’으로 되어 있으나, 원측의 판본에는 ‘阿修羅’라고 되어 있었던 듯하다.
  195. 195)생보生報란 이 생에서 지은 선업·악업으로 내생에 선악의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후보後報란 과거의 무량한 생 가운데 지었던 선업·악업으로 이 생에서 선악의 과보를 받거나 혹은 미래의 한량없는 생 가운데서 선악의 과보를 받는 것을 말한다.
  196. 196)『仁王經疏』(H1, 76c)에는 ‘佛告諸行得道~’라고 되어 있는데, 行은 잉자剩字이므로 삭제해야 한다.
  197. 197)사자후師子吼란 사람 중의 지존인 부처님의 말씀이 마치 짐승의 왕인 사자가 포효하는 것과 같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 사자후는 말이 수행과 일치한다거나 설법에 있어 두려움이 없고 용맹스러움 등을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특히 말 자체가 이치에 부합하는 것을 가리켜 ‘사자후’라고 하였다.
  198. 198)영해領解란 상대방이 지금까지 설하는 것을 듣고 나서 그 내용을 이해하여 받아들인 것을 말한다.
  199. 199)『仁王經疏』(H1, 77a)에는 ‘二能說中’이라고 되어 있는데, 二는 一의 오기다.
  200. 200)龍樹의 『大智度論』 권2(T25, 71c7) 참조.
  201. 201)『成唯識論』 권2(T31, 6c11) 참조.
  202. 202)『仁王經疏』(H1, 77a)에는 ‘此卽校量難勝功德’이라고 되어 있는데, 難은 歎의 오기다.
  203. 203)이 경에서 말한 ‘열네 가지 반야바라밀’이란 3인忍과 30인을 다음과 같이 14인으로 분류한 것이다. 먼저 3인忍이란 왕의 게송에서 언급된 ‘십신十信과 십지十止와 십견심十堅心’을 말하는데, 원측의 해석에 의하면 그 세 가지는 보살의 계위에서 각기 십지 이전의 십주十住와 십행十行과 십회향十迴向에 해당한다. 다음에 ‘30인’이란 초지에서 제10지까지 10인에 상품·중품·하품의 인이 있으므로 모두 30개가 된다. 이 경문에서 ‘14반야바라밀’이라 한 것은 지전의 3인과 지상의 10인을 합해서 13개로 간주하고 최후의 상품의 적멸인을 별도의 1인으로 취급한 것이다. 또 경문에서 ‘모든 행장行藏’이라 한 것은 앞의 13가지 인을 말하고, ‘모든 불장佛藏’이라 한 것은 최후의 적멸인을 가리킨다.
  204. 204)‘불장佛藏’에 의거한 설명은 『인왕경』의 경문으로는 “모든 부처님은 이 중에서 생하고 … 마치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에 해당하는데, 이 경문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그 중의 한 해석을 이하 첫 단락에서 전부 진술하였다. 다른 하나의 해석은 화신化身의 세 가지 상에 의거해서 해석한 것인데, 여기서부터는 경문을 나누어 따로따로 해석하였다.
  205. 205)이 구절은 구마라집 역 『仁王般若波羅蜜經』에 ‘非相非無相’이라고 되어 있고, 원측과 천태의 주석서에는 모두 ‘非無無相’으로 되어 있다. 원측은 이 문구를 ‘非無’와 ‘無相~’으로 나누어 해석하였다.
  206. 206)이상 『중론』의 인용문은 「觀去來品」(T30, 3c6)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207. 207)이 해석에 따르면 ‘이 중에서 생한다’는 것은 ‘이 중에서 불지佛智가 생한다’는 것을 뜻하고, ‘이 중에서 멸한다’는 것은 ‘이 중에서 모든 번뇌를 소멸시킨다’는 것을 뜻하며, ‘이 중에서 교화한다’는 것은 ‘이 중에서 부처님이 중생구제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뜻한다.
  208. 208)“무도 아니고, 상이 없으니 …”라는 경문은 구마라집 역 『仁王般若波羅蜜經』에는 ‘非相非無相’으로 되어 있고, 원측과 천태의 주석에는 모두 ‘非無無相’로 되어 있다. 원측은 ‘非無’와 ‘無相’으로 나누어서 번역했는데, 이때의 ‘무상’은 뒤의 구와 연결된다. 한편, 천태는 이 문구를 ‘무상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석하였다. “‘무상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그 저변에 깔린 의심을 해석한 것이다. ‘사람들은 태어남도 죽음도 교화함도 없다’는 등의 말을 듣고서 곧 ‘세간을 벗어난 무상無相의 법도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 의심을 풀어 주려고 ‘무상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仁王護國般若經疏』 권5(T33, 277a3) 참조.
  209. 209)악취공惡取空이란 선취공善取空과는 대비되는 말로서, 인과의 도리를 부정한다거나 ‘연으로 생기므로 자성이 없다’고 하는 이치를 알지 못하고 단공斷空의 견해에 떨어진 자를 가리킨다.
  210. 210)원측에 따르면, ‘아소我所’라고 한 것은 의미상으로는 다섯 종류의 아소를 모두 포함한다. 즉 ‘나의 것(我所), 남의 것(人所), 아는 자의 것(知者所), 보는 자의 것(見者所), 받는 자의 것(受者所)’을 통칭한 것이다.
  211. 211)‘두 가지 장’이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행장行藏과 불장佛藏을 말한다. 전자는 14인忍 중에서 앞의 13가지 인을 총칭한 것이고, 후자는 최상의 적멸인을 가리킨다. 이 두 종류가 모든 공덕을 포괄하기 때문에 ‘장藏’이라 한다.
  212. 212)『仁王經疏』(H1, 78b)에는 ‘縛脫品’이라고 되어 있는데, 『大智度論』에는 無縛無脫品으로 되어 있다.
  213. 213)『大智度論』 권46「無縛無脫品」(T25, 393a16).
  214. 214)『大智度論』 권46(T25, 393a22) 참조.
  215. 215)원측은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다’라는 경문을 바이세시까(勝論) 학파와 상키야(數論) 학파의 자아관을 논파한 것으로 해석하였는데, 이것은 『成唯識論』에 근거한 것이다. 이 논에서는 외도들의 자아를 논파하면서 바이세시까와 상키야의 공통적 자아관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첫째는 자아의 본체가 영원하고 두루 편재하며 그 크기는 허공과 같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처하는 곳마다 업을 짓고 고통과 즐거움을 받기 때문이다.” 이 견해를 논파하기 위해, 바이세시까에 대해서는 ‘자아는 업을 짓는 자이다(我爲作者)’라고 할 경우에 생기는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논파한다: ‘그것은 영원하고 편재하기 때문에 움직인다거나 전환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각 개인의 몸을 따라 업을 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 상키야에 대해서는 ‘자아는 업을 받는 자이다(我爲受者)’라고 할 경우에 생기는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논파한다: ‘자아가 영원하고 편재하며 크기가 허공과 같다고 집착한다면, 각 개인의 몸을 따라서 고통과 즐거움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成唯識論』 권1(T31, 1b16), 『成唯識論述記』 권1(T43, 245b5) 참조.
  216. 216)여기서 ‘버려지는(所遣) 법체’란 ‘아’ 등과 같은 주체들에 의해 집착되었다가 다시 버려지는 것들을 말한다. 그것을 법수法數로 나타내면 대표적인 것은 고수苦受 등과 같은 감각들이다.
  217. 217)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느낌을 ‘낙수樂受’라고 하고, 좋지 않은 대상에 대한 느낌을 ‘고수苦受’라고 하며, 좋지도 싫지도 않은 대상에 대한 느낌을 ‘사수捨受’ 혹은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라고 한다. 이 세 가지 수에 의거해서 다시 세 종류 고苦를 구분하기도 한다. 유루의 행온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고통스런 법이 신심을 괴롭히는 것을 ‘고고苦苦’라고 하고, 마음에 맞는 즐거운 법은 생길 때는 즐겁지만 무너질 때는 신심을 괴롭히므로 그것을 ‘괴고壞苦’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밖의 법들은 많은 인연을 따라 만들어져서 무상하게 흘러가는 것이고, 성자가 그것을 관하면서 신심에서 괴로움을 느끼므로 그것들을 ‘행고行苦’라고 한다.
  218. 218)『仁王經疏』(H1, 78c)에는 ‘~行苦故也’라고 되어 있는데, 苦는 空의 오기다.
  219. 219)『仁王經疏』(H1, 78c)에는 ‘有其五句’라고 되어 있는데, 五는 四의 오기인 듯하다. 이하의 해석에 나온 구절은 네 개다.
  220. 220)‘오음五陰’이란 법의 모임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법가法假’에 해당하고, ‘사람’이란 오음을 수용하여 이루어진 복합물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수가受假’에 해당한다. 이 오음은 사람 등을 이루는 요소이지 ‘사람’ 등과 같은 복합물이 아니므로 ‘법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221. 221)‘오음五陰’이란 법의 모임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법가法假’에 해당하고, ‘사람’이란 오음을 수용하여 이루어진 복합물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수가受假’에 해당한다. 이 오음은 사람 등을 이루는 요소이지 ‘사람’ 등과 같은 복합물이 아니므로 ‘법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222. 222)이상에서 언급된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삼매를 삼삼매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서품」의 ‘무학의 세 가지 공을 관하는 문(三空觀門)’에서 자세하게 해석한 바 있다.
  223. 223)『仁王經疏』(H1, 79a)에는 ‘比度名智’라고 되어 있는데, 智는 知의 오기다.
  224. 224)경문에서는 ‘行道’라고 하였고, 해석에서는 ‘行道相’이라 하였다.
  225. 225)이하의 원측의 해석에 의하면, ‘何可有心得 無心得’이라는 문구는 앞의 ‘有心得’을 부정한 것이고 뒤의 ‘無心得’을 인정한 것일 수도 있다. 즉 “어찌 유심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 무심으로 얻는 것이다.”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천태와 길장은 ‘유심有心과 무심無心으로 모두 얻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예를 들면, 천태는 “마음과 경계 모두 공한데 어찌 유심으로 얻을 수 있겠으며, 마음과 경계가 모두 가립(假)이니 어찌 무심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고, 길장은 “유상有相을 떠났기 때문에 유심으로 얻을 수 없고, 무상無相을 떠났기 때문에 무심으로도 얻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천태의 『仁王護國般若經疏』 권5(T33, 277b24), 길장의 『仁王般若經疏』 권4(T33, 336c22) 참조.
  226. 226)이 해석에 의하면, 경문을 ‘何可有心得’과 ‘無心得’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부정이고 후자는 긍정이다.
  227. 227)『仁王經疏』(H1, 79b)에는 ‘是故般若至不可思議’라고 되어 있는데, 가운데 至는 삭제해야 한다.
  228. 228)이전의 과목 분류에는 이 항목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내용상 ‘불가사의’에 대한 ‘㉰자세한 해석’ 중에서 그 세 번째 항목인 ‘c. 총괄적 결론’에 해당한다.
  229. 229)현존하는 구마라집 역에는 ‘諸佛菩薩’이라 되어 있다.
  230. 230)경문의 협주에서 지적했듯, ‘諸佛菩薩’로 되어 있는 판본에 의거해서 해석하면 앞의 경문은 ‘불보살장’의 불가사의함에 대한 결론이고 뒤의 경문은 ‘불(=여래)장’의 불가사의함에 대한 결론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231. 231)여기서 分義란 少分과 같은 뜻이다. 불공不空 역 『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 卷上(T8, 83812) 참조.
  232. 232)『仁王經疏』(H1, 79c)에는 ‘我今略術至一切衆生’이라고 되어 있는데, 一切衆生을 分義功德으로 수정해야 한다.
  233. 233)앞에서 나온 “사의할 수 없고(不可思議) 탁량할 수 없으며(不可度量) 오직 부처님만이 아십니다(唯佛乃知).”라고 설한 경문 중에서, 이상은 ‘불가사의’와 ‘불가탁량’에 대해 해석했고, 이하는 ‘오직 부처님만이 아실 수 있다’는 문구를 해석한다.
  234. 234)『仁王經疏』(H1, 80a)에는 “時諸衆中至十四正行”으로 되어 있는데, 十四正行을 般若波羅蜜로 수정해야 한다.
  235. 235)이 경문에는 ‘云何衆生相可化’라고 되어 있는데, 「교화품」의 서두에 나온 바사닉왕의 세 번째 질문은 “어떤 모습의 중생을 교화합니까.”라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허깨비(幻化) 같은 중생을 교화한다’는 대답이 나오므로 그 취지에 맞춰 여기서도 ‘어떤 모습의 중생을 교화합니까’로 수정하였다.
  236. 236)『阿毘達磨經』은 현존하지 않으며, 이 경의 주석서가 『攝大乘論』이다. 이 논에서는 제법이 다른 여러 가지 인연에 의지해서 생기므로 가유假有일 뿐 실체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여덟 가지 비유(八喩)를 설하는데, 이것을 ‘의타팔유依他八喩’라고 한다. ①환사유幻事喩:경계라는 것이 마치 환술사가 마술로 지어낸 갖가지 사물과 같음을 말한다. ②양염유陽炎喩:심·심소법의 작용이 마치 아지랑이의 흔들림과 같음을 말한다. ③몽경유夢境喩: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수용하는 것이 마치 꿈속에서 본래 없는 것을 수용하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④영상유影像喩:업의 차별에 따라 과의 차별을 내는 것이 마치 거울에 영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⑤광영유光影喩:갖가지 식들을 일으키는 것이 마치 그림자를 갖고 노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⑥곡향유谷響喩:갖가지 언설희론을 일으키는 것이 마치 빈 골짜기에 실체 없는 메아리가 울리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⑦수월유水月喩:맑고 깨끗한 선정의 마음(定心)에서 여실한 지혜가 일어나는 것이 마치 깨끗한 물에 달이 비친 것과 같음을 말한다. ⑧변화유變化喩:진리를 증득한 보살들이 중생들을 가엾게 여겨 여러 가지 변화로 모든 일을 지어내는 것을 말한다. 『攝大乘論』 권2(T31, 140b17) 참조.
  237. 237)『仁王經疏』(H1, 80b)에는 ‘衆生後至異木石’으로 되어 있는데, 後는 識의 오기다.
  238. 238)『仁王經疏』(H1, 80b)에는 ‘自下廣中有二’라고 되어 있는데, 廣 다음에 釋을 추가해야 한다.
  239. 239)여기서 말한 ‘자성분별自性分別’이란 현재의 색법 등의 자성自性 혹은 자상自相을 분별하는 작용으로서 특히 오식이 일으키는 분별을 가리킨다. 중생식은 생을 받는 순간부터 자성분별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나무나 돌과는 다르다.
  240. 240)유식종에서는 제8아뢰야식은 강력한 업의 힘, 즉 이숙습기異熟習氣과 상응하면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제8식을 ‘이숙異熟’이라 부른다. 이 아뢰야식은 최초로 생을 받는 지위(受生位)에서 과거의 업에 대한 총체적 과보(總報)로서 주어지는데, 즉 부모가 애욕의 절정에서 각기 정혈精血을 방출하여 모태 안에서 한 덩어리(=갈라람)로 뭉치는 순간 곧바로 거기에 깃든다. 이 식은 자신이 수용하는 세계를 감각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무나 돌과는 다른데, 아직 언어에 의지해서 명료하게 분별하는 것은 아니다.
  241. 241)『仁王經疏』(H1, 80c)에는 ‘若生得善識本’이라고 되어 있는데, 해석문과 맞지 않는다. 이것은 ‘生得善至善識本’으로 수정해야 한다.
  242. 242)명언훈습종자名言熏習種子란 언어적인 분별 활동에 의해 훈습되어 이루어진 종자를 말한다. 이것은 다시 표의명언表義名言과 현경명언顯境名言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언어를 매개로 작동하는 제육식第六識에 의해 이루어진 습기를 가리키고, 후자는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는 모든 7식의 견분見分의 심·심소법들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습기를 말한다. 이러한 일곱 가지 식에 의해 훈습되어 이루어진 습기는 선·악·무기의 3가지 성질을 가질 수 있고, 모든 유위법을 발생시키는 직접적인 원인(因緣)이 된다. 『成唯識論』 권8(T31, 43b3) 참조.
  243. 243)유지훈습종자有支熏習種子는 업종자業種子라고도 하는데, 선악의 성격을 띤 행위(業)에 의해 만들어진 종자를 말한다. 이것이 미래의 이숙의 과보가 오취五趣 중에서 천天·인人 등과 같은 선취에서 태어나는가 아니면 축생·지옥·아귀 등의 악취에서 태어나는가를 결정짓는다. 『成唯識論』 권8(T31, 43b10) 참조.
  244. 244)아견훈습종자我見熏習種子는 아집습기我執習氣라고도 한다. 아견我見 등의 네 가지 번뇌에 의해 ‘염오된 의(染汚意)’가 아뢰야식을 ‘나’라고 집착함으로써 생겨난 훈습종자를 말한다. 이 훈습종자가 생기고 나면 곧 자기와 타인이 다르다는 분별이 생겨난다. 무성無性의 『攝大乘論釋』 권4(T31, 397a29) 참조.
  245. 245)유식종에 따르면 유지훈습종자는 미래의 이숙과異熟果를 내는 증상연增上緣이라고 한다. 물론 다른 ‘생生’이라는 총체적 결과는 이 생에서 했던 모든 업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다른 생을 이끌어 내는 실질적 능력은 유지훈습종자에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마지막 과보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이후의 다른 수많은 조건(緣)들이 개입되기 때문에 이 종자는 그 결과의 직접적 원인이라기보다는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것(增上緣)’이다. 마지막 순간에 자기의 결과를 직접 발생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명언훈습종자다. 다시 말하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명언훈습종자가 직접적 원인이 되고 유지훈습종자를 보조적 연(增上緣)으로 삼아서 곧바로 다음 생을 산출하게 된다.
  246. 246)제8식은 모든 과법을 낼 수 있는 인因 즉 종자를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종자식’이라고 한다.
  247. 247)제8식은 이전의 업의 총체적 과보果報로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생을 받는 식(受生識)’이라고 한다.
  248. 248)‘생득生得’이란 태어남과 동시에 자연적으로 획득된 것이고, ‘방편方便’이란 방편의 가행加行에 의해 획득된 것을 말한다.
  249. 249)일체종자식을 이숙식異熟識이라고도 한다. 변하여 달라지면서 무르익고(變異而熟) 또 과果가 인因과 이시적으로 무르익기(異時而熟) 때문에 이 식을 이숙식이라고 한다. 『成唯識論述記』 권1(T43, 238c16) 참조.
  250. 250)세친 조·진제 역 『攝大乘論釋』 권2(T31, 160b26)에는 근본식根本識의 다른 이름 중의 하나로서 ‘궁생사음窮生死陰’을 언급하면서 “생사음은 색과 심을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251. 251)‘본제불가지本際不可知’라는 문구는 『中阿含經』 권10(T1, 487b6), 『勝鬘經』 권1(T12, 222b6), 『楞伽經』 권4(T16, 512a12) 등에 나온다.
  252. 252)미사새부彌沙塞部(ⓢMahīśāsaka)란 화지부化地部를 가리키는데, 이들이 말하는 ‘시두중생時頭衆生’이란 모든 것의 유래가 되는 ‘최초의 중생’을 가리킨다. ‘시두중생이 있다’는 것은 예를 들어 승론勝論의 학자들이 ‘과거의 시초가 있고 이때 모든 중생이 이 본제의 한 법으로부터 생겨났다’는 주장과 동일한 것이라고 한다. 『成唯識論述記』 권1(T43, 262c5) 참조.
  253. 253)『部執記』란 진제가 저술한 『部執異論』의 주석서를 가리키는데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다.
  254. 254)이 화지부에서는 모든 것에 시초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유시有始’에 해당한다. 또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한 열반을 이룰 종성이 결여된 자 즉 무반열반성無般涅槃性은 끝내 생사만 추구하고 열반을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고, 또 불과佛果는 불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둘은 모두 ‘무종無終’에 해당한다.
  255. 255)일체유부와 경부종과 대승에서는 모든 것에 시초가 없다고 하는데, 이들의 관점에서 가령 종성이 결정된 이승이 무여열반에 드는 경우는 시초는 없지만 끝에 이른 것이므로 ‘무시유종’에 해당한다.
  256. 256)시초가 있음을 인정하는 화지부의 관점에서 볼 때 이승의 성자가 무여열반에 드는 경우는 시초가 있고 다시 끝에 이른 것이므로 ‘유시유종’에 해당한다.
  257. 257)앞의 경우들을 제외하고 대승의 관점에서 보면, 무열반성과 부정종성과 보살종성은 그 시초와 끝을 말할 수 없는 것이므로 ‘무시무종’에 해당한다.
  258. 258)구마라집 역에는 ‘衆生’ 앞에 是가 있다.
  259. 259)여기서 ‘신身’이란 예를 들어 명신名身·문신文身 등이라 할 때처럼 다수가 모인 것을 뜻한다.
  260. 260)지·수·화·풍은 만물을 구성하는 4대 요소이므로 능조사대能造四大라고 하고, 색·성·향·미·촉은 그 요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소조오경所造五境이라 한다.
  261. 261)법처에 속하는 색이란 무표색無表色과 같은 것을 말한다. 소승의 설일체유부 등에서는 그것은 어업이나 신업 등과 같은 물리적 행동에 의해 유발된 것이므로 ‘색법’으로 간주하고, 감각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의식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법처’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262. 262)『仁王經疏』(H1, 82a)에는 ‘~至一切實法’이라고 되어 있는데, 實 다음에 色을 추가해야 한다.
  263. 263)원측이 제시한 사물의 두 가지 상은 유식논리학자인 진나陳那(ⓢDignāga)에 의해 공식화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식 대상의 종류는 사물의 자상自相(ⓢsva-lakṣaṇa)과 공상共相(ⓢsāmānya-lakṣaṇa)이라는 두 가지가 있고, 직접 지각(現量)은 오직 대상의 특수상을 인식하고 추리(比量)는 대상의 보편상을 인식한다고 말한다. 진나의 공식을 수용하는 중국 법상학자들은 오직 직접 지각에 의해 파악되는 ‘자상’ 즉 사물의 특수상만이 ‘실재’이고, 추리에 의해 알려지는 공상 즉 보편상은 관념적으로 구성된 ‘허구’로 간주한다.
  264. 264)현량現量(ⓢPratyakṣa-pramāṇa)이란 언어적 분별이 배제된 상태에서 대상을 직접 지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다섯 가지 감관으로 외계의 대상을 인식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감각 기관에 의한 직접 지각 이외에도 전 찰나의 감각적 자극에 이어서 곧바로 대상의 현전을 마음으로 지각하는 것(意知覺 ⓢmanovijñāna), 또는 모든 심과 심소에 직감적으로 따르는 자증지自證知(ⓢātmasaṃvedana), 그리고 요가행자가 관을 계속하여 최고도에 달하면 생기는 ‘요가적 직관(ⓢyogijñāna)’ 등을 모두 현량이라고 한다.
  265. 265)비량比量(ⓢanumāna-pramāṇa)이란 추리를 뜻한다. 즉 기존에 이미 알고 있는 사실(=因)에 의거해서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宗)을 추리해서 아는 것을 말한다. 유식의 인명논리에 따르면, 우리는 일상적으로 언어를 매개로 하여 사물을 파악하는데, 이러한 언어적 분별에서는 추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물의 보편상만 알려진다고 한다.
  266. 266)오식五識의 현량現量은 언제나 현재의 사물의 특수상을 인식하고, 오식과 동시에 일어나는 의식도 현량적이며 사물의 특수상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대상 인식의 첫 찰나에 이어서 다음 찰나에 ‘그것은 ~다’라고 하는 의식의 개념적 판단이 들어섰을 때는 그 이해를 생기게 한 원인이었던 법체의 생생한 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 대신 의식은 그것의 흐릿한 보편상의 이미지를 ‘이름’과 결합시킴으로써 무엇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며, 이때 알려지는 상은 추리를 통해 알려지는 보편상(共相)과 같다고 한다.
  267. 267)경문의 의도를 ‘추麤·세細’의 차원에서 설명하기는 했지만, 유식학자인 원측의 입장에서 그다지 명료한 해석으로 여겨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가짜의 말 또는 비유적인 말(假說)’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268. 268)‘중생 혹은 사람’이란 개별적인 법들을 수용함으로써 이루어진 하나의 복합물이므로 ‘수가受假’라고 하고, 이러한 수가로서의 ‘중생’이나 ‘사람’ 등은 세속제의 차원에서 가립된 ‘이름’에 불과하다.
  269. 269)신아神我(ⓢpuruṣa)란 신아제神我諦·아지자我知者 등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개인의 정신적 본체를 가리킨다. 특히 인도의 수론數論학파에서 건립한 25체諦 중의 하나로서, 영원히 독존하면서 모든 것들을 수용하는 자를 가리킨다.
  270. 270)세속제는 실제로는 있지 않지만 ‘있다’고 가짜로 안립된 것으로서 ‘마치 환과 같은 존재(幻有)’이므로 ‘환제幻諦’라고 하였다.
  271. 271)사성四姓이란 고대 인도의 네 가지 종성의 계급을 가리킨다. 바라문婆羅門(ⓢbrāhmaṇa)은 사제계급이고 사성 중에서 가장 상위 계급이다. 베다의 경전을 학습하고 전수하며 기도나 제사를 주관하는 자로서 신과 인간의 매개자이다. 찰제리刹帝利(ⓢkṣatriya)는 왕족으로서 정치와 군사를 담당하는 계급이다. 비사毘舍(ⓢvaiśya)는 농업·공업·상업 등에 종사하는 평민계급이다. 수다라首陀羅(ⓢśūdra)는 최하위의 노예계급이다.
  272. 272)이 해석에 의하면, 위 경문은 “허깨비가 허깨비 같은 바라문·찰리·비사·수다와 신아 등의 색·심을 보는 것을 환제라고 합니다.”라고 번역된다.
  273. 273)구마라집 역에는 ‘幻諦法無佛未出世前’이라고 되어 있는데, 원측의 판본에는 중간의 未자가 빠지고 ‘幻諦法無佛出世前’으로 되어 있었던 듯하다.
  274. 274)‘능설명자能說名字가 없었다’는 것은 말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소설의명자所說義名字가 없었다’는 것은 말로 지시하고자 하는 대상 혹은 의미에 대해 붙여진 이름도 없었다는 것이다.
  275. 275)『仁王經疏』(H1, 82c)에는 ‘如空化等’이라고 되어 있는데, 化는 花의 오기다.
  276. 276)『仁王經疏』(H1, 82c)에는 ‘第三如來立名’이라고 되어 있는데, 三은 二의 오기다.
  277. 277)일곱 가지 이름이란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대와 공空과 색色과 심心을 가리킨다.
  278. 278)『俱舍論』에 의하면 ‘공계空界의 색’이란 입이나 코의 규극竅隙(구멍, 틈)처럼 오로지 밝음과 어두움을 통해서 알려지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명암을 본질로 하는 것인데, 설일체유부에서는 명明·암闇을 12가지 현색顯色 중의 하나인 실색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공계도 색법에 포함시킨다. 반면에 이 논서의 저자 세친과 경부학자들은 이러한 의미의 공계의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와 같은 ‘규극’은 허공을 떠나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俱舍論』 권1(T29, 6c9) 참조.
  279. 279)구마라집 역에는 ‘相續諦’로 되어 있다.
  280. 280)상피상대相避相待란 예를 들어 청색이나 황색 등이 구분되는 것처럼 모든 법들이 ‘상호간에 대비되는 관계(展轉)’에서 상대적으로만 성립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의 상대성은 모든 법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위의 경문에서는 ‘일체명상대一切名相待’라고 하였다.
  281. 281)상탈상대相奪相待란 예를 들어 장長과 단短의 경우처럼 동일한 사물이라도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서 ‘장’이 되기도 하고 ‘단’이 되기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상대적 모습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빼앗는 관계에 있으므로 ‘상탈’이라고 하였다.
  282. 282)이 견해에 따르면, ‘일체상대’란 예를 들어 유·무나 오경·오근의 상대처럼 좀더 보편적인 차원에서 이질적인 것들 간에 성립하는 상대성을 말하고, ‘부정상대’란 예를 들어 5경이라는 동일한 부류 내에서 색·성·향·미·촉 등이 상호간에 상대적으로 성립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전자가 ‘정상대正相待’라면 후자는 ‘방상대傍相待’라고 하였다.
  283. 283)오근과 오경의 5색법, 유와 무의 모든 법은 모두 가장 보편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정식正式의 상대적 관계에 의거해서 건립된 ‘가’이다.
  284. 284)‘五陰爲緣成假衆生’이라는 문구는 연성가에 대한 첫 번째 해석에 해당하는데, 뒤의 ‘혹은’ 이하에서 진술되는 문구와 동일해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285. 285)여기서는 아뢰야식의 종자種子와 현행現行 간의 인과 관계를 논하는데, 종자(因)가 현행(果)을 생하는 경우나 반대로 현행(因)이 종자(果)를 훈습하는 경우에는 인과가 동시적(俱時)이라고 하였다. 잠재된 종자는 현재화된 식들과 더불어 하나의 동일한 경험을 이루지만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부류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몸에서 인과 과가 동시에 양립할 수 있다. 여기서 ‘다른 부류’라고 한 것은 종자는 잠재된 법인 반면 현행은 현현된 법이기 때문이다. 중국 법상학자들은 유위법의 직접 원인으로서의 종자, 그리고 현행된 결과로서의 유위법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인다. 『成唯識論』 권2(T31, 9b10) 참조.
  286. 286)아뢰야식의 종자種子가 만법을 발생시키는 원인으로서 어떤 결과를 산출한다고 할 때, 광의의 의미에서 종자의 결과에는 ‘종자와 현행’이 모두 포함되는데, 여기서는 종자가 종자를 생하는 관계를 논한 것이다. 전 찰나의 종자는 후 찰나의 종자를 산출한 원인이 되는데, 이때 자류自類인 두 종자가 한 찰나에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으므로 원인과 결과는 이시異時적 관계에 있다. 『成唯識論』 권2(T31, 9b13) 참조.
  287. 287)구마라집 역에는 ‘이 법을 설했을 때(說此法時)’라고 되어 있다.
  1. 1)「分別菩薩」作「五忍分爲五別菩薩」{甲}。
  2. 2)「敎」無「甲」。
  3. 3)「辨」作「釋」{甲}。
  4. 4)「釋」下有「護」{甲}。
  5. 5)「正」作「將」{甲}。
  6. 6)「卽」作「則」{甲}。
  7. 7)「何」下有「行」{甲}。
  8. 8)「利」下有「行」{甲}。
  9. 9)「一」無{甲}。ㆍ。「一」疑剩{乙}。
  10. 1)「准」作「唯」{甲}。
  11. 2)「安住慧心」作「慧心安住」{甲}。
  12. 3)「性」無{甲}。
  13. 4)「經」無{甲}。
  14. 5)「僧」無{甲}。
  15. 6)「有」上有「無」{甲}。
  16. 7)「也」作「耶」{甲}。
  17. 8)「案」作「安」{甲}。
  18. 9)「心」無{甲}。
  19. 10)「菩薩」作「辨」{甲}。
  20. 1)「儀」下有「門」{甲}。
  21. 2)「力」作「因」{甲}。
  22. 3)「靑」下異有「想想」{乙}。
  23. 4)「乖」作「亦」{甲}。
  24. 5)「當」作「尙」{甲}。
  25. 6)「想」異作「相」{乙}。
  26. 7)果作菓{甲}。
  27. 8)「就」作「然」{甲}。
  28. 9)「後」作「彼」{甲}。ㆍ「後」作「彼」{乙}。
  29. 10)「住」下有「有」{甲}。
  30. 11)「生」下有「巳」{甲}。
  31. 12)「已」無{甲}。
  32. 13)「也」無{甲}。
  33. 14)「諸」下有「佛」{甲}。
  34. 15)「本」下有「也」{甲}。
  35. 16)「言」作「云」{甲}。
  36. 17)「干」下有「慧」{甲}。
  37. 18)「照寂名性慧」作「無相慧昭寂慧」{甲}。
  38. 19)「名性」疑剩{乙}。
  39. 20)「故」下有「知」{甲}。
  40. 21)「瑜伽」作「善戒經」{甲}。
  41. 22)「說」作「論」{甲}。
  42. 1)「卽」作「有」{甲}。
  43. 2)「正」上有「者」{甲}。
  44. 3)「無」上有「是」{甲}。
  45. 4)「未」上有「至」{甲}。
  46. 5)「世」無{甲}。
  47. 6)「上」無{甲}。
  48. 7)「十」無{甲}。
  49. 8)「謂」無{甲}。
  50. 9)「然」作「體」{甲}。
  51. 10)「文」作「之」{甲}。
  52. 11)「謂」上有「表」{甲}。
  53. 12)「者」作「智」{甲}。
  54. 13)「觀」上有「由」{甲}。
  55. 1)「果」下有「空忍無忍」{甲}。
  56. 2)「至」無{甲}。
  57. 3)「爲」下有「集」{甲}。
  58. 4)「極」上有「忍」{甲}。
  59. 5)「菩薩」下有「十堅心作轉輪王亦能化」{甲}。
  60. 6)
  61. 2)同。
  62. 7)「明」下有「中」{甲}。
  63. 8)「即」作「有」{甲}。
  64. 9)「苦」作「等」{甲}ㆍ「苦」疑「戒」{乙}。
  65. 10)「即」作「有」{甲}。
  66. 11)「明」下有「解」{甲}。
  67. 12)「攝」無{甲}。
  68. 13)「頓」下有「伏」{甲}。
  69. 14)「斷」作「顯」{甲}。
  70. 15)「滅」無{甲}。
  71. 16)「種」無{甲}。
  72. 17)「熏」作「亦」{甲}。
  73. 18)「而伏」作「伏而」{甲}。
  74. 19)「釋」作「斷」{甲}ㆍ「釋」疑「斷」{乙}。
  75. 20)「即」作「有」。
  76. 21)「果」作「業」{甲}。
  77. 22)「滅」疑「觀」{乙}。
  78. 1)「者」無{甲}。
  79. 2)「斷」作「顯」。
  80. 3)「習氣」下有「者」{甲}。
  81. 4)「斷」作「顯」{甲}。
  82. 5)「斷」作「顯」。{甲}。
  83. 6)「習氣」下有「者」{甲}。
  84. 7)「擇」作「釋」{甲}。
  85. 8)「法」無{甲}。
  86. 9)「斷」作「顯」{甲}。
  87. 10)「上」作「前」{甲}。
  88. 11)「道」作「界」{甲}。
  89. 12)「斷」作「顯」{甲}。
  90. 13)「說」下有「者」{甲}。
  91. 14)「差別」下有「應知」{甲}。
  92. 15)「通」無{甲}。
  93. 16)。「卽」作「無」{甲}。
  94. 17)「言」下有「四」{甲}。
  95. 18)「願」下有「者」{甲}。
  96. 19)「種子」下有「者」{甲}。
  97. 1)「至」無{甲}。
  98. 2)「現法」上有「所謂見勝」{甲}。
  99. 3)。「卽」作「有」{甲}。
  100. 4)「卽」作「無」{甲}。
  101. 5)「義」無{甲}。
  102. 6)「難」無{甲}。
  103. 7)「垢」作「惱」{甲}。
  104. 8)「斷」作「顯」{甲}。
  105. 9)「至」無{甲}。
  106. 10)「煩惱」上有「三界心等」{甲}。
  107. 11)「攝」作「標」{甲}。
  108. 12)「各」下有「各」{甲}。
  109. 13)「釋」作「說」{甲}。
  110. 14)「說」作「釋」{甲}。
  111. 15)「觀慧」上有「菩薩所謂遠不動」{甲}。
  112. 16)「攝」作「標」{甲}。
  113. 17)「名」無{甲}。
  114. 18)「密」下有「及」{甲}。
  115. 19)「慧」上有「觀」{甲}。
  116. 20)「至」無{甲}。
  117. 21)「神通」上有「不可說功德」{甲}。
  118. 22)「攝」作「標」{甲}。
  119. 23)「辨」作「辯」{甲}。
  120. 24)「故」下有「故」{甲}。
  121. 25)「似」作「如」{甲}。
  122. 26)「惑」作「或」{甲}ㆍ「惑」疑「或」{乙}。
  123. 27)「忍」下有「中」{甲}。
  124. 28)「般」作「婆」{甲}。
  125. 1)「若」下有「者」{甲}。
  126. 2)「卽」無{甲}。
  127. 3)「月光」下有「以」{甲}。
  128. 4)「差別」下有「之」{甲}。
  129. 5)「涉」作「漏」{甲}。
  130. 6)「故」下有「云」{甲}。
  131. 7)「名」下有「名」{甲}。
  132. 8)「悲」下有「至」{甲}。
  133. 9)「攝」作「標」{甲}。
  134. 10)。「依」無{甲}。
  135. 11)「卽」無。
  136. 12)「用」作「因」{甲}。
  137. 13)「報」作「根」{甲}。
  138. 1)「在」無{甲}。
  139. 2)「後」作「從」{甲}ㆍ「後」疑「從」{乙}。
  140. 3)「和合」作「合和」{甲}。
  141. 4)「外」下有「有」{甲}。
  142. 5)。「聲聞藏」無{乙}。
  143. 6)「此斷」作「斯」{甲}。
  144. 7)「唯」作「准」{甲}。
  145. 8)「諦」作「淨」{甲}。
  146. 9)「卽」作「無」{甲}。
  147. 10)「此卽問也」無{甲}。
  148. 1)「簡」作「蕳」{甲}。
  149. 2)「十地」下有「中」{甲}。
  150. 3)「了自行所行處」作「行自所行處」{甲}。
  151. 4)「至」下有「二諦平等心」{甲}。
  152. 5)「住」上有「言」{甲}。
  153. 6)「衆生」下有「者」{甲}。
  154. 7)「中」下有「者」{甲}。
  155. 8)「土」無{甲}。
  156. 9)「業」作「屬」{甲}。
  157. 10)「言」作「音」{甲}。
  158. 11)「也」無{甲}。
  159. 12)「應」作「花」{甲}。
  160. 13)「菩薩」下有「住百億佛國土中」{甲}。
  161. 14)「復」作「後」{甲}。
  162. 1)「菩薩」下有「住千億」{甲}。
  163. 2)「十」無{甲}。
  164. 3)「卽」作「無」{甲}。
  165. 4)「第」作「初」{甲}。
  166. 5)「論」作「諦」{甲}。
  167. 6)「卽」作「無」。{甲}。
  168. 7)「所」作「故」{甲}。
  169. 8)「言」作「云」{甲}。
  170. 9)「菩薩」下有「住十萬億」{甲}。
  171. 10)「衆」下有「生」{甲}。
  172. 11)「輪」無{甲}。
  173. 12)「亦」作「又」{甲}。
  174. 13)「違」下有「名」。
  175. 14)「王」下有「宮」{甲}。
  176. 15)「簡」作「蕳」。
  177. 16)「不可說不可說法門者」作「不不可可說說法法門門者」{甲}。
  178. 17)「德」作「得」{甲}。
  179. 18)。「覺」作「學」{甲}。
  180. 1)「至」無{甲}。
  181. 2)「行淨」上有「一切菩薩本業」{甲}。
  182. 3)「波羅蜜」上有「般若」{甲}。
  183. 4)「恭」無{甲}。
  184. 5)「曰」作「言」{甲}。
  185. 6)「音」作「意」{甲}。
  186. 7)「外」無{甲}。
  187. 8)。「眞」無{甲}。
  188. 9)「象」作「像」{甲}。
  189. 10)「行」無{甲}。
  190. 11)。「之」作「云」{甲}。
  191. 12)「佛」無{甲}。
  192. 13)「德」作「得」{甲}ㆍ「德」疑「得」{乙}。
  193. 14)「五」下有「尊」{甲}{乙}。
  194. 15)「誣」作「誤」{甲}。
  195. 16)「皆」無{甲}ㆍ「皆」疑無{乙}。
  196. 17)「益」作「答」{甲}。
  197. 1)「皆」無{甲}ㆍ「皆」疑無{乙}。
  198. 2)「頌」作「偈」{甲}。
  199. 3)「顯」作「頌」{甲}。
  200. 4)「二」作「兩」{甲}。
  201. 5)「二」作「三」{甲}。
  202. 6)「如意」無{甲}。
  203. 7)「王」無{甲}ㆍ「王」疑無{乙}。
  204. 8)「代根」作「伐浪」{甲}。
  205. 9)「根」作「限」{乙}。
  206. 10)「路」作「諾」{甲}ㆍ「路健」一作「洛諾」{乙}。
  207. 11)「廬」作「盧」{甲}。
  208. 12)「乃至」下有「王」{甲}。
  209. 13)。「賢」作「堅」{甲}。
  210. 14)「之」作「云」{甲}。
  211. 15)「總標」作「摽」{甲}。
  212. 1)「知」作「者」{甲}。
  213. 2)「者」作「言」{甲}。
  214. 3)「波柁」作「婆拕」{甲}。
  215. 4)「復」作「後」{甲}。
  216. 5)「祗」作「企」{甲}。
  217. 6)「菩提」下有「及菩提」{甲}。
  218. 7)「果」下有「證」{甲}。
  219. 8)「是」下有「謂」{甲}。
  220. 9)「信心」作「心心」{甲}。
  221. 10)「行」無{甲}。
  222. 11)「後」下有「之」{甲}。
  223. 12)。「者」下有「一」{甲}。
  224. 13)「不定不定」作「不不定定」{甲}。
  225. 14)「墮」下有「於」{甲}。
  226. 15)「明」作「敢」{甲}{乙}。
  227. 16)「又」無{甲}。
  228. 17)「提」無{甲}。
  229. 18)「熟」作「就」{甲}。
  230. 1)「欲」下有「令」{甲}。
  231. 2)「實」無{甲}。
  232. 3)「是」下有「退」{甲}。
  233. 4)「二却」無{甲}。
  234. 5)「譯」作「澤」{甲}。
  235. 6)。「末」作「未」{甲}。
  236. 7)「登」作「證」{甲}ㆍ「登」一作「證」{乙}。
  237. 1)「熟」作「就」{甲}。
  238. 2)「以」作「已」{甲}。
  239. 3)「諸說不同」作「諸不退同」{甲}。
  240. 4)「別」無{甲}。
  241. 5)「而」作「爲」{甲}。
  242. 6)「無」作「死」{乙}。
  243. 7)「土」作「地」{甲}。
  244. 8)「相」下有「者」{甲}。
  245. 9)「其」作「具」{甲}。
  246. 10)「卽」作「無」{甲}。
  247. 11)「卽」作「無」{甲}。
  248. 12)「如」上有「問」{甲}。
  249. 13)「得」作「由」{甲}。
  250. 14)「惑」作「戒」。
  251. 15)「唯」無{甲}。
  252. 16)「光」下有「大精進」{甲}。
  253. 17)「至」下有「達無生照」{甲}。
  254. 1)「二」無{甲}。
  255. 2)「便」無{甲}。
  256. 3)「慧」下有「三諦自達明」{甲}。
  257. 4)「至」下有「變化六道」{甲}。
  258. 5)「二」下有「一」{甲}。
  259. 6)「觀」下有「無二相變化六道」{甲}。
  260. 7)「至」無{甲}。
  261. 8)「空」下有「故」{甲}。
  262. 9)「雖」作「離」{甲}。
  263. 10)「王」下有「至敎一切」{甲}。
  264. 11)「照」下有「達理空三諦現前」{甲}。
  265. 12)「至」無{甲}。
  266. 13)「前」作「在」{甲}。
  267. 14)「勝」下有「法現無相定能洗三界」{甲}。
  268. 15)。「至」無{甲}。
  269. 16)「力」無{甲}{乙}。
  270. 17)「定」異作「空」{乙}。
  271. 18)「然」下有「無緣觀還觀心空」{甲}。
  272. 19)「至」無{甲}。
  273. 20)「釋」下有「斷」{甲}。
  274. 21)「卽」作「無」{甲}。
  275. 1)「齊」下有「廣」{甲}。
  276. 2)「卽」作「無」{甲}。
  277. 3)「功」無{甲}。
  278. 4)「深密」下有「廣說」{甲}。
  279. 5)「密」作「蜜」{甲}。
  280. 6)「段」作「以」{甲}。
  281. 7)「身肉」作「肉」{甲}。
  282. 8)。「恒」作「垣」{甲}。
  283. 9)「上」無{甲}。
  284. 10)「却」作「智」{甲}。
  285. 11)「須」作「順」{甲}。
  286. 12)「士」無{甲}。
  287. 13)「名」作「故」{甲}。
  288. 14)「密」作「蜜」「甲」
  289. 1)「惑」作「或」{甲}ㆍ「惑」疑「或」{乙}。
  290. 2)「依」上有「初」{甲}。
  291. 3)「智」作「知」{甲}。
  292. 4)「慧」下有「灌頂」{甲}。
  293. 5)「爲」無{甲}。
  294. 6)「分」作「別」{甲}。
  295. 7)「言」作「云」{甲}。
  296. 8)「之」作「云」{甲}。
  297. 9)「故」下有「言」{甲}。
  298. 1)「後」作「復」{甲}。
  299. 2)「中」無{甲}。
  300. 3)「卽」作「節」{甲}。
  301. 4)「難」作「嘆」{甲}。
  302. 5)「歎」作「嘆」{甲}。
  303. 6)「開」作「聞」{甲}ㆍ「開」疑「聞」{乙}。
  304. 7)「趣」作「道」{甲}。
  305. 8)「益」作「答」{甲}。
  306. 9)「儀」下有「勘」{甲}。
  307. 10)「摩」作「莊」{甲}。
  308. 11)「富」作「馬」{甲}。
  309. 1)「化」作「他」ㆍ「化」作「他」{乙}。
  310. 2)「後」異無。
  311. 3)「中」下疑有「名」ㆍ「中」下有「名」{乙}。
  312. 1)「心」上有「色」{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