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 / 梵網經古迹記卷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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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망경고적기 제2권梵網經古迹記 卷第二
청구사문 태현 지음靑丘沙門 太賢集

(D) 10지十地

Ⓐ 초지初地(入平等慧體性地, 體性平等地)

노사나불께서 말씀하셨다.
“천 명의 부처들이여, 잘 들어라. 너는 앞에서 10지란 어떤 뜻이 있는지를 물었다. 불자여, 보리살타의 입평등혜체성지入平等慧體性地1)이다. 진실한 법을 증득하고 진실한 교화를 행하여 일체의 행(자리행과 이타행)을 이룬다. (불과佛果의) 꽃을 피우고 (어둠의 종자를 파척하여) 밝게 빛나며, (법계에 대한 깨달음을) 원만하게 구족한다. 사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왕의 과보를 섭수하고, 승乘을 사용하여2) 자재하게 교화하고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진여의 이치에 수순하여 교화하며, 신통력에 의해 (중생을 조복시킨다.)3) 10력十力ㆍ10호十號4)ㆍ18불공법十八不共法과 부처님의 정토에 머물고자 하는 한량없는 큰 서원과 변재무애辯才無畏와 일체의 논論(五明論)과 일체의 행을 자신(我)이 모두 얻어서 들어가니, 부처님의 집안에 태어나 들어가고 불성佛性의 대지에 앉아서 일체의 장애와 범부의 원인과 과보를 끝내 받지 않으며, 크게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하나의 불국토에서 한량없는 불국토에 들어가고, 1겁으로부터 한량없는 겁에 들어가며, 설할 수 없는 법을 중생을 위해 설할 수 있다. 일체법을 반조反照하여 보고,5) 일체법을 역순逆順으로 보며,6) 항상 이제에 들어가지만 제일의제에 머문다.7) (이러한) 하나의 지혜에 의해 10지의 차례를 알고, (각 계위에서 닦아야 할) 낱낱의 일을 중생에게 현시하며, 항상 마음마다 중도에 머문다. 하나의 지혜에 의해 일체 불국토의 차별적 성품과 부처님께서 설하신 (여러 가지) 법을 알지만, (한맛임을 알기 때문에) 신심身心은 변동하지 않는다. 하나의 지혜에 의해 12인연과 10악十惡의 종성種性을 알지만 항상 선도善道에 머문다. 하나의 지혜에 의해 유와 무의 두 가지 모양을 본다. 하나의 지혜에 의해 10선지행十禪支行과 37도三十七道8)에 들어가는 것을 알지만, 일체의 색신을 육도六道에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한다.) 하나의 지혜에 의해 시방의 색과 색에 대해서 분분히 알고 여러 가지로 일으켜서 색의 과보를 영수領受하여 들어가되, 마음마다 속박되는 것이 없다. 빛과 빛이 일체를 비추어 진여의 세계를 두루 가득 채운다. 그러므로 무생無生의 이치 속에서 신인信忍9)의 공혜空慧가 항상 현전하니, 제1지와 제2지에서부터 불계佛界에 이르는 것과

003_0432_a_02L梵網經古迹記卷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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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_0432_a_04L靑丘沙門太賢集

003_0432_a_05L
盧舍那佛言千佛1)諦聽 [60] 汝先問地者
003_0432_a_06L有何義若佛子菩提薩埵入平等慧體
003_0432_a_07L性地眞實法化一切行華光滿足
003_0432_a_08L天果乘用任化無方理化神通十力
003_0432_a_09L十號十八不共法住佛淨土無量大
003_0432_a_10L辯才無畏一切論一切行我皆得
003_0432_a_11L2) [61] 生入佛家坐佛性地一切障礙
003_0432_a_12L夫因果畢竟不受大樂歡喜從一佛
003_0432_a_13L入無量佛土從一劫入無量劫不可
003_0432_a_14L說法爲可說法反照見一切法逆順見
003_0432_a_15L一切法常入二諦而在第一義中
003_0432_a_16L一智知十地次第一一事示衆生而常
003_0432_a_17L心心中道以一智知一切佛土殊品
003_0432_a_18L佛所說法而身心不變以一智知十二
003_0432_a_19L因緣十惡種性而常住善道3)一智 [62]
003_0432_a_20L有無二相以一智知入十禪支行三十
003_0432_a_21L七道而現一切色身六道以一智知十
003_0432_a_22L方色色分分了起入受色報而心心
003_0432_a_23L無縛光光照一切是故無生信忍空
003_0432_a_24L常現在前從一地二地乃至佛界

003_0432_b_01L그 중간의 일체의 법문을 일시에 행하기 때문이다. 평등지(초지)의 바다와 같은 공덕과 행과 원願을 간략하게 내어 보였으니, 바닷물 한 방울을 털끝에 찍어낸 것과 같을 뿐이다.”

(네 번째는) 10지를 밝혔는데, 이 가운데 질문을 서술한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a. 장문章門

이것은 초지인데, 이 가운데 장문을 제시하면서 “평등혜체성지”라고 한 것에서 “평등혜”라는 것은 증득하는 주체인 지혜이고, “체성”이라는 것은 증득해야 할 대상인 진여이며, “지”는 곧 총괄하는 것이다.

b. 행상行相

다음은 행상인데, 이 가운데 “진실한 법”이라는 것은 내적으로 증득하는 문이고, “진실한 교화”라는 것은 외적으로 교화하는 문이다. 이 두 가지 이익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일체의 행을 이룬다.”라고 했다. 참된 무루無漏의 행으로 바로 불과佛果를 감感하는 것을 “꽃을 피우고”라고 했고, 열매를 맺어 어둠의 종자를 파척하는 것을 “밝게 빛나며”라고 했으며, 법계를 두루 증득하는 것을 “원만하게 구족한다.”라고 했다. “사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왕의 과보”라는 것은 보과報果를 섭수한 것이고, “승을 사용하여 자재하게 교화하고”라는 것은 세속의 문에 의해 교화하는 것이며,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진여의 이치에 수순하여 교화하며”라는 것은 승의의 문에 의해 교화하는 것이다.
“10력 등을 모두 얻어서 들어가니”라는 것은, 『유가사지론』에서 “초지 이상에서 140가지의 불공불법不共佛法10)을 분분히 얻는다.”11)라고 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정토의 큰 서원”이라는 것은 타수용토他受用土에 머물고자 하는 서원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일체의 논”이라는 것은 오명론五明論12)이고, “일체의 행”이라는 것은 그 오명에 대해 여러 가지 짓는 바가 있는 것이다. “불성의 대지에 앉아서”라는 것은 이미 대지大地13)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일체의 장애”라는 것은 분별기의 장애이고, “범부의 원인과 과보”라는 것은 삼악취三惡趣(지옥ㆍ축생ㆍ아수라)와 북취北趣(北俱盧洲14) )와 무상천無想天15) 등이다.16)
“하나의 불국토에서 한량없는 불국토에 들어가고”라는 것은 하나의 국토에서 움직이지 않고 여러 국토에 이르기 때문이다. “1겁으로부터 한량없는 겁에 들어가며”라는 것은 일념一念 중에 삼제三際(과거ㆍ현재ㆍ미래)를 섭수하기 때문이고, 혹은 1겁을 펼쳐서 다겁多劫으로 삼기 때문이다. “설할 수 없는 법을 중생을 위해 설할 수 있다.”라는 것은 내적으로 증득한 매우 깊은 법을 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을 섭수하여 지혜로 돌아가는 것을 “일체법을 반조하여 보고”라고 했다. “항상 이제에 들어가지만” 등이라는 것은 이제를 노닐며 비추지만

003_0432_b_01L其中間一切法門一時而行故略出平
003_0432_b_02L等地功德海藏行願如海一渧毛頭許
003_0432_b_0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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述曰明十地中牒問可知
此初地
003_0432_b_05L中擧章門言平等慧體性地者平等
003_0432_b_06L慧者能證智也體性者所證眞也
003_0432_b_07L地卽總也
次行相中眞實法者
003_0432_b_08L證門也眞實化者外化門也具此
003_0432_b_09L二利言一切行眞無漏行正感佛
003_0432_b_10L言華實破闇種名光徧證法界
003_0432_b_11L言滿足四天果者攝報果也乘用任
003_0432_b_12L化者世俗門化無方理化者勝義
003_0432_b_13L門化
於十力等皆得入者如瑜伽云
003_0432_b_14L初地已上分得百四十不共佛法故
003_0432_b_15L淨土大願者堪住他受用土願故
003_0432_b_16L切論者五明論也一切行者於彼
003_0432_b_17L五明多有所作坐佛性地者已入大
003_0432_b_18L地故一切障礙分別起障凡夫因
003_0432_b_19L惡趣北4) [63] 無想天等
從一佛土
003_0432_b_20L入無量土者不動一國至諸國故
003_0432_b_21L一劫入無量劫者於一念中攝三際故
003_0432_b_22L或舒一劫爲多劫故不可說法爲可
003_0432_b_23L說者堪說內證甚深法故攝法歸智
003_0432_b_24L名反照見一切法常入二諦等者

003_0432_c_01L마음의 참된 실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10지의 차례를 알고”라는 것은 10지의 계위이고, “낱낱의 일을 중생에게 현시하며”라는 것은 10지의 행이다. “신심은 변동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한맛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10악”이라는 것은 살생 등이다. 비록 흑품黑品(黑業ㆍ惡業)을 알지만 백품白品(白業ㆍ善業)에 머물기 때문이다. “하나의 지혜에 의해 유와 무의 두 가지 모양을 본다.”라는 것은 삼성三性17)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분분히 알고 여러 가지로 일으켜서”라는 것은 분분히 색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고, 여러 가지로 색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색의 과보를 영수하여 들어가되”라는 것은, 유색有色(욕계ㆍ색계 등의 색을 갖춘 세계)의 과보를 영수하여 들어가기 때문이니, 곧 무색계無色界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마음마다 속박되는 것이 없다.”라는 것은 비록 정려靜慮에 머물지만 욕계欲界 등에 태어나는 것이어서 (속박됨이 없는 것이다.)
지혜의 광명이 항상 비추어서 진여의 세계를 두루 가득 채우기 때문에 무생의 이치 속에서 신인의 공혜가 항상 현전하니, 곧 다섯 가지 인(五忍)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신인信忍의 처음(下品, 初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 중간의 일체의 법문”이라는 것은 10도十度(10바라밀)이다.

c. 맺음말

“간략하게 내어 보였으니” 이하는 맺은 것이다. 초지는 큰 바다와 같은데, 지금 간략하게 내어 보였음을 밝힌 것이다.

Ⓑ 제2지(善慧體性地, 體性善慧地)

a. 장문章門

“불자여, 보리살타의 선혜체성지善慧體性地이다.”

제2지인데, 이 가운데 세 가지가 있다. 장문을 들었기 때문이고, 해당 지위에서의 행을 설했기 때문이며, 자세하게 설한 품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에 장문을 제시한 것이다. “선혜”라고 한 것은 계를 범하는 악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b. 해당 지위에서의 행行

a) 총괄적으로 표방함

“청정함을 얻고 실상을 밝게 통달하며 일체의 선근을 일으키니, 이른바 자慈ㆍ사捨ㆍ혜慧 등으로 일체 공덕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해당 지위에서의 행을 밝혔는데, 이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총괄적으로 표방했기 때문이고, 개별적으로 풀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이다.
“청정함을 얻고 실상을 밝게 통달하며 일체의 선근을 일으키니”라는 것은 행의 체를 제시한 것이다.

003_0432_c_01L照二諦宅心眞故
知十地次第者
003_0432_c_02L地位也一一事示衆生者地行也
003_0432_c_03L身心不變者會一味故十惡者
003_0432_c_04L生等也雖知黑品住白品故一智
003_0432_c_05L見有無二相者達三性故分分了起
003_0432_c_06L別別了知色故別別生起色故
003_0432_c_07L入受色報者趣入領受有色報故
003_0432_c_08L不生無色也而心無縛者雖住靜慮
003_0432_c_09L生欲界等
慧光恆 [30] 徧滿眞故
003_0432_c_10L生理中信忍空慧常現前也卽五忍
003_0432_c_11L之第二初故其中間一切法門者
003_0432_c_12L度也
略出下結初地大海今略出
003_0432_c_13L

003_0432_c_14L
若佛子菩提薩埵善慧體性地

003_0432_c_15L
述曰第二地中有三章門故地行
003_0432_c_16L指廣故此初擧章言善慧者
003_0432_c_17L犯戒惡故

003_0432_c_18L
淸淨明達一切善根所謂5) [64] 捨慧一切
003_0432_c_19L功德本

003_0432_c_20L
述曰第二地行中有二總標故
003_0432_c_21L釋故此初也淸淨明達一切善根者
003_0432_c_22L「諦聽」無{甲}「入」一作「出」「一智」一作
003_0432_c_23L「以一切智」
「趣」作「州」{乙}「慈」下一有
003_0432_c_24L「悲喜」{甲}

003_0433_a_01L말하자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慈”이니, 즐거움을 주는 것에 있어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捨”이니, 염오를 여의는 것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본에서는 (“자慈” 뒤에 “비悲ㆍ희喜”를 집어넣어서) 사무량四無量18)을 갖추기도 했다. 셋째는 “혜慧”이니, 깨달음을 증득하고 통달하는 근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체 공덕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라는 것은 앞의 “선근”이라는 명칭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b) 개별적으로 풀이함

(a) 첫 번째 관찰 : 혜선근慧善根의 관찰

ⓐ 관찰함

“처음에 대공大空에 들어가는 지혜를 관찰한 것으로부터 방편도지方便道智를 일으켜 모든 중생이 고제苦諦가 아님이 없음을 본다. 모두 식심識心(고통을 아는 마음)이 있어서 삼악도三惡道에서 칼에 찔리고 몽둥이로 맞는 것 등과 같은 일체의 고뇌를 반연하는 가운데 식識을 생기하는 것을 고제苦諦라고 한다. 세 가지 고苦의 모양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19) 예컨대 (처음은) 신초각身初覺(身根에 처음으로 일어나는 覺)이다. 칼ㆍ몽둥이라는 색음色陰과 신근이라는 색음을 좇아 두 가지가 반연하는 가운데 알아차림(覺)이 생겨나는 것을 행고行苦의 연緣이라 한다. 다음은 의지각意地覺이다. 신근에 있어서 알아차림의 소연所緣인 것, 곧 칼ㆍ몽둥이 및 몸의 부스럼 등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에 고고苦苦의 연緣을 알아차리니 거듭되기 때문에 고고라고 한 것이다. 다음은 수행각受行覺이다. 앞의 두 가지 마음이 반연했던 과거의 신근이라는 색음이 무너지고 부스럼이 났던 것에 대해 고통의 알아차림을 생기하기 때문에 괴고壞苦의 연緣이라 한다. 이로써 세 가지 각은 차례대로 세 가지 마음을 낳기 때문에 고고고苦苦苦라고 한다.”

개별적으로 풀이한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앞의 자ㆍ사ㆍ혜와) 역순으로 혜ㆍ사ㆍ자를 풀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첫 번째 관찰에 해당하는 것으로 혜慧를 풀이한 것이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관찰하기 때문이고, 교화하여 인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이다.
“대공에 들어가는 지혜를 관찰한 것”이라고 한 것은, 말하자면 처음에 가장 뛰어난 진여인 대공에 들어가는 지혜를 관찰하는 것이다. 처음에 들어간 마음으로부터 마침내 후득後得의 (대비大悲를) 일으키고 교방편도지巧方便道智 가운데 모든 중생이 고제가 아님이 없음을 본다. 무엇 때문인가. 모두 고통을 아는 마음이 있어서 삼악도에서부터 선취善趣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주는 것을 반연하는 가운데 식識을 생기하여 영수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고통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세 가지 고苦가 있다. (“여신초각如身初覺”에서) “여如”라고 한 것은 (예로부터) 서로 전해 온 것에 말하기를, “서로 같은 것을 ‘여如’라 하니, 일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신초각”이라는 것은 오식五識이다. “칼ㆍ몽둥이”라는 것은 외연外緣(外境)이고, “신근”이라는 것은 내연內緣(內根)이다. 근根과 경境을 아울러 색色이라 하기 때문에

003_0433_a_01L擧行體也謂有三種一慈與樂爲
003_0433_a_02L最故二捨離染之本故或有經本
003_0433_a_03L具四無量三慧證達之原故一切
003_0433_a_04L功德本者釋上善根名義也

003_0433_a_05L
1) [65] 觀入大空慧方便道智中見諸衆
003_0433_a_06L無非苦諦皆有識心三惡道刀
003_0433_a_07L一切苦惱緣中生識名爲苦諦
003_0433_a_08L苦相者如者如身初覺從刀杖身色陰
003_0433_a_09L二緣中生覺爲行苦緣次意地覺
003_0433_a_10L2) [66] 所緣得刀杖及身瘡腫等法故
003_0433_a_11L覺苦苦緣重故苦苦次受行覺二心
003_0433_a_12L緣向身色陰壞瘡中生苦覺故名爲壞
003_0433_a_13L苦緣是以三覺次第生三心故爲苦苦
003_0433_a_14L

003_0433_a_15L
述曰別釋有三逆次第釋慧捨慈故
003_0433_a_16L初亦有二觀察故化導故此初也

003_0433_a_17L
言觀入大空慧者謂初觀入於最勝
003_0433_a_18L眞如大空之慧從初入心遂起後得
003_0433_a_19L巧方便道智中見諸衆生無非苦諦
003_0433_a_20L何以故皆有識苦之心三途乃至善
003_0433_a_21L苦緣中生識領故
何等爲苦
003_0433_a_22L有三苦言如者相傳云相似如也
003_0433_a_23L指事言故言身初覺者五識也
003_0433_a_24L刀杖者外緣也從身者內緣也

003_0433_b_01L“색음”이라 했다. 두 가지가 반연하는 가운데 식識을 내어 각覺하기 때문에 이러한 식을 “행고의 연”이라 하니, 솔이심率爾心20)이 다분히 사수捨受(非苦非樂受)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음은 의식각意識覺(意地覺)이다. (앞과) 동일하게 칼ㆍ몽둥이 및 몸의 종기 등을 반연하여 오식과 상응하는 고수苦受와 자체의 우근憂根을 인발하여 생기하니, “고고의 연”이라 한다. “거듭되기 때문에 고고라고 한 것이다.”라는 것은, 핍박이 거듭되는 것을 “고고”라고 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것이다.
다음은 세 번째로 일어나는 것이니, 추념의식追念意識21)을 “수행각”이라 한다. 앞에서 감수했던 것을 미루어서 반연하여 행하기 때문이다. 앞의 두 가지 각覺이 반연했던 신身 등이 일찍이 미묘하게 무너지는 것에 대해 근심과 괴로움을 내기 때문에 “괴고의 연”이라 한다.
이로써 세 가지 자리에서 식識이 점차로 세 가지 고통을 내기 때문에 “고고고”라고 한다. 이 세 차례의 고苦라는 글자는 차례대로 이전에 설한 행고行苦 등의 세 가지 고통을 맺은 것이다.

ⓑ 교화하여 인도함

“일체의 마음이 있는 중생에게 있어서 이 세 가지 고통이 한량없는 고뇌를 일으키는 인연이 되는 것을 보기 때문에 ‘내가 이 가운데에서 교화도삼매敎化道三昧에 들어가 일체의 색신色身을 육도에 나타내어 열 가지 변재로 온갖 법문을 설하리라’라고 한다. 말하자면 고식苦識과 고연苦緣이다. 칼ㆍ몽둥이 등의 반연하는 도구(外觸境)와 고식苦識이 몸에 작용하는 것과 종기가 나며 무너져 없어지는 것(內觸境)이 있는데, 내촉과 외촉 가운데 어떤 경우는 두 가지 촉을 모두 갖추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갖추지 않기도 한다. 두 가지 연(내근과 외경)을 갖추면 식이 생기하고 식이 지어지며 식이 감수하고 식이 접촉하니, 이것을 고식苦識이라 한다. 두 가지 연이 작용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말미암아 마음마다 색을 반연하니, 이 마음이 촉경을 접촉하여 괴로움을 당하면서 번뇌의 독을 받을 때를 고고苦苦라고 한다. 마음이 식을 반연하여 처음에 근문根門에 있다가 (돌연히) 소연의 경계를 알아차리는 것(覺)을 고각苦覺이라 한다. 마음이 지어지고 마음이 감수하고 촉식觸識이 촉경觸境을 알아차리지만 아직 번뇌의 독을 받지 않을 때를 행고行苦라고 한다. 핍박하여 알아차림을 일으키니, 마치 돌을 깎을 때 불꽃이 일어나는 것처럼 (고통이 일어나) 몸과 마음을 태운다. 생각마다 생겨나고 소멸하며 (수명이 다하여) 몸이 흩어져 무너지고 전변하며 허깨비와 같이 사라질 때 식은 괴연壞緣에 들어간다. 연緣이 모였다가 흩어지니 마음이 고통스럽고 마음이 괴로워진다. 비록 현재에는 감수하고 생각할 뿐이지만, 나중에 흩어지고 무너지는 연을 만나면 그 전에 있었던 것을 염오된 마음으로 집착하여 마음마다 버리지 않으니, 이것을 괴고壞苦라고 한다. (이것이) 삼계의 모든 것이 (처한 현실인) 고제에 (대한 설명)이다. 다시 무명無明이 한량없는 선악의 마음을 모으고 일체의 업을 지으며

003_0433_b_01L境並色故言色陰二緣中生識覺故
003_0433_b_02L此識名爲行苦之緣率爾多分起捨
003_0433_b_03L受故次意識覺同緣刀杖及身瘡等
003_0433_b_04L引生五識相應苦受及自憂根名苦
003_0433_b_05L苦緣重故苦苦者釋逼迫重名苦
003_0433_b_06L苦也次起第三追念意識名受行
003_0433_b_07L於前所受追緣行故於前二覺
003_0433_b_08L所緣身等曾妙壞中生憂惱故名壞
003_0433_b_09L苦緣是以三位識漸生三苦故爲苦
003_0433_b_10L苦苦此三苦字如次結前行等三苦

003_0433_b_11L
一切有心衆生見是三苦起無量苦惱
003_0433_b_12L因緣故我於是中入敎化道三昧現一
003_0433_b_13L切色身於六道中十種辯才說諸法門
003_0433_b_14L謂苦識苦緣刀杖緣具苦識行身瘡
003_0433_b_15L腫發壞內外觸中或具不具具二緣
003_0433_b_16L生識識作識受觸識名爲苦識
003_0433_b_17L行二緣故心心緣色心觸觸惱受煩
003_0433_b_18L毒時爲苦苦心緣識初在3) [67] 覺緣
003_0433_b_19L名爲苦覺心作心受觸識覺觸未受
003_0433_b_20L煩毒時是名行苦逼迮生覺如斲石
003_0433_b_21L於身心念念生滅身散壞轉變化
003_0433_b_22L識入壞緣緣集散心苦心惱受念
003_0433_b_23L4) [68] 心心不捨是爲壞苦三界一
003_0433_b_24L切苦諦復觀無明集無量心作一切

003_0433_c_01L서로 잇고 서로 연결하여 습인習因이 되고 집인集因이 되는 것을 관찰하니, 이것을 집제集諦라고 한다. 바른 견해에 의해 해탈의 과를 얻기 위해 공공지空空智라는 도체道體에 의지하여 마음마다 이어지게 하니, 이지도도제以智道道諦라고 한다. 유有라는 고통의 과보를 다하고 유를 불러모으는 원인도 다하여 청정하게 한맛으로 비춘다. 체성體性인 미묘한 지혜에 의해 적멸한 하나의 진리에 도달한다. 혜품慧品을 구족한 것을 ‘근根’이라 한다. 일체 지혜의 성품은 공으로부터 일어나 관觀에 들어간다. 이것이 첫 번째 선근이다.”

두 번째는 교화하여 인도하는 것이다. 일체의 마음이 있는 중생에게 있어서 이 세 가지 고통이 팔고八苦 등을 일으키는 인연이 되는 것을 보기 때문에 이 지위의 보살은 교화도삼매에 들어가 모든 과환過患을 설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싫어하여 등지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여기에서 “선정(교화도삼매)에 들어가”라는 것은 의업意業이 자재한 것이고, “색신을 육도에 나타내어”라는 것은 신업身業이 자재한 것이며, “열 가지 변재로 법문을 설하리라.”라는 것은 어업語業이 자재한 것이다. “열 가지”라는 것은, 전해 오는 설에 말하기를, “첫째는 자상自相이니, 사상事相22)을 설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동상同相이니, 이상理相23)을 설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행상行相24)이고, 넷째는 설상說相이며, 다섯째는 지상智相이고, 여섯째는 무아만상無我慢相이며, 일곱째는 대소승상大小乘相이고, 여덟째는 보살지상菩薩地相이며, 아홉째는 여래지상如來地相이고, 열째는 작주지상作住持相25)이다.”라고 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이것이 통한다.『십지론』에서 설한 것26)과 같다.
“고식”이라는 것은 고통의 체이니, 여기에서 장차 사제문四諦門을 설하기 때문이다. “고연”이라는 것은 소의所依이니, 자체의 심왕心王과 근根에 의지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칼ㆍ몽둥이 등의 반연하는 도구”라는 것은 외부의 촉경(外觸境)이다. “고식이 몸에 작용하는 것과 종기가 나며 무너져 없어지는 것”이라는 것은 내부의 촉경(內觸境)이다. 고식苦識이 작용하여 잡아서 지니고 감수한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내신內身의 접촉이기 때문이다. “칼” 등이 몸을 파괴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는) 두 가지 촉을 모두 갖추기도 하고”라고 했고, “종기” 등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는) 갖추지 않기도 한다.”라고 했다. 소의연所依緣을 갖추면 요별了別이 생기하기 때문에 “식이 생기하고”라고 했다.

003_0433_c_01L相續相連習因集因名爲集諦
003_0433_c_02L見解脫空空智道心心名以智道道諦
003_0433_c_03L盡有果報盡有因淸淨一照體性妙
003_0433_c_04L寂滅一5) [69] 慧品具足名根一切慧
003_0433_c_05L起空入觀是初善根

003_0433_c_06L
述曰第二化導諸有心者見是三
003_0433_c_07L起八苦等之因緣故此地菩薩
003_0433_c_08L入敎化道三昧說諸過患令生厭背
003_0433_c_09L於中入定意業自在現身六道
003_0433_c_10L業自在十辯說法語業自在十者
003_0433_c_11L傳說一自相說事相故二同相
003_0433_c_12L理相故三行相四說相五智相
003_0433_c_13L無我慢相七大小乘相八菩薩地相
003_0433_c_14L九如來地相十作住持相卽古今恆
003_0433_c_15L爾通也如十
地論
苦識者苦體也於此
003_0433_c_16L說四諦門故苦緣者所依也依自
003_0433_c_17L心王及根起故刀杖緣具者外觸境
003_0433_c_18L苦識6) [70] [31] 瘡腫發壞者內觸境也
003_0433_c_19L以覺苦識所行執受內身觸故刀等
003_0433_c_20L破身故具二觸瘡等自生故言不
003_0433_c_21L具所依緣生了別故名爲生識
003_0433_c_22L「初」無{甲}「覺」下有「重」{甲}「根」作「煩」
003_0433_c_23L{甲}
「染」一作「保」{甲}「諦」作「識」{甲}
003_0433_c_24L「行」下有「身」{乙}

003_0434_a_01L“식이 지어지며”라는 것은 사思이고, “식이 감수하고”라는 것은 수受이며, “식이 접촉하니”라는 것은 촉觸이다. 이와 같이 하나로 모여서 합해진 것을 고식苦識이라 한다. 수승한 것을 따라서 드러내어 우선 세 가지 심소心所를 들었다.
그런데 이 고제는 차별적 관점에서 보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고고苦苦이다. 근根ㆍ경境에 의지하기 때문에 “두 가지 연이 작용하기 (때문에)”라고 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생각마다 몸과 종기 등을 반연하기 때문에 “마음마다 색을 반연하니”라고 했다. 이 마음이 촉경을 접촉하여 괴로움을 당하면서 번뇌의 독을 받는 것을 “고고”라고 한다.
둘째는 행고行苦이다. 두 가지 고통의 근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두어서 설했다. “마음이 식을 반연하여”라는 것은 (“마음”과 “식”은) 명칭에 있어서 차별된 것이다. 처음에 근문根門에 있다가 다분히 솔이심率爾心이 소연의 경계를 알아차리는 것을 행고각行苦覺이라 한다. 사思ㆍ수受 및 촉觸이 겨우 경촉境觸을 알아차리기만 할 뿐 아직 번뇌의 독을 감수하지 않았을 때 사수捨受가 현전하는 것을 “행고”라고 한다.
셋째는 괴고壞苦이다. 경계가 끊어지는 것에 대해 고통을 낳는 것으로, 마치 돌을 깎을 때 불꽃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곧 행고의 돌을 핍박하여 깎음으로 말미암아 괴멸 등의 고통을 내어 몸과 마음을 태우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찰나마다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이니, 곧 미세한 괴고壞苦이다. 또 한 번의 생을 사는 몸이 흩어져 무너지고 전변하여 허깨비와 같이 사라질 때 식이 그 안에서 요별하기 때문에 “식은 괴연에 들어간다.”라고 했다. 처자妻子와 진귀한 보물 등이 존속하는 것을 “연이 모였다가”라고 했고, 그 뒤에 무너지는 것을 “연이 흩어지니”라고 했다. 이때 마음의 고통이 더욱 증가하여 마음이 괴로워진다. 비록 현재에는 감수하고 생각할 뿐이지만, 나중에 흩어지고 무너지는 연을 만나면 먼저 존속했던 것을 연모하고 집착하여 생각마다 버리지 않으니, 이것을 “괴고”라고 한다.
앞에서 설한 것을 총괄적으로 맺어서 말하기를, “(이것이) 삼계의 모든 것이 (처한 현실인) 고제에 (대한 설명)이다.”라고 했다.
다음은 집제를 밝혔다. 무명이 한량없는 선악의 마음을 인발하고 모아서 일체의 업을 짓고, 습기가 상속하면서 번뇌의 습인이 되고 모든 업의 집인이 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을 집제라고 한다.
다음은 도제를 밝혔다. “바른 견해”라는 것은 원인이고, “해탈”이라는 것은 결과이며, “공공지”라는 것은 도체이니, 이공二空의 지혜를 말한다. 세간에 대한 바른 견해를 원인이라 하고, 세간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을 결과라고 하며,

003_0434_a_01L識作思也識受受也觸識觸也
003_0434_a_02L如是一聚合名苦識以隨顯勝
003_0434_a_03L擧三心所
然此苦諦差別有三一者
003_0434_a_04L苦苦依根境故言行二緣由此
003_0434_a_05L念緣身瘡等故言心心緣色此心
003_0434_a_06L對觸惱之境領受煩毒爲苦苦也
003_0434_a_07L二者行苦二苦本故處中說言心緣
003_0434_a_08L識者名之差別初在根發 [32] 多分率
003_0434_a_09L覺所緣境名行苦覺思受及觸
003_0434_a_10L覺境觸未受毒時捨受現前名爲
003_0434_a_11L行苦三者壞苦境切生苦1) [71]
003_0434_a_12L謂由緣逼*斲行苦石出壞等苦
003_0434_a_13L燒身心也此有二種刹那生滅
003_0434_a_14L細壞苦若一期身散壞轉變如幻化
003_0434_a_15L識於中了故言識入壞緣也妻子珍
003_0434_a_16L存名緣集彼後敗壞名爲緣散
003_0434_a_17L爾時心苦轉增心惱雖現受念後散
003_0434_a_18L壞緣戀著前存念念不捨是爲壞苦
003_0434_a_19L總結上云三界一切苦諦也
次明集
003_0434_a_20L謂觀無明引集無量善惡之心
003_0434_a_21L一切業習氣相續煩惱習因諸業
003_0434_a_22L集因名爲集諦
次明道諦正見因
003_0434_a_23L解脫果也空空智道體也
003_0434_a_24L二空智以世間正見爲因出世解脫

003_0434_b_01L모든 성인의 발자취를 도道라고 하는데, 견도見道ㆍ수도修道 등으로 구별되는 것을 “마음마다 이어지게 하니”라고 했다. 총괄적으로 맺어서 “이지도도제以智道道諦라고 한다.”라고 했다.
다음은 멸제滅諦를 밝혔다. 유라는 고통의 과보를 다하고 유를 불러모으는 원인도 다하여 장애를 여의고 청정하게 한맛으로 비춘다. 체성體性(본래 갖추고 있는 것)인 성인의 미묘한 지혜에 의해서 일어나는 간택簡擇(바르게 판단하는 것)의 힘으로 적멸한 하나의 진리에 도달한다.
“혜품을 구족한 것을” 이하는 총괄적으로 처음의 혜선근慧善根을 맺은 것이다. “공으로부터 일어나”라는 것은 속제에 대한 지혜이고, “관에 들어간다.”라는 것은 진제에 대한 지혜이다.

(b) 두 번째 관찰 : 사선근捨善根의 관찰

“두 번째로 일체의 탐착을 버리고 일체가 평등하고 공한 것임을 알아서 버리는 것을 행하는 것을 관찰한다. 무연행無緣行27)에 의해 모든 법에 대해 공제空際(공의 궁극)와 하나의 모양을 관찰하여, ‘내가 관찰하니, 시방에 있는 대지의 흙은 모두 나의 옛 몸이 사용했던 예전의 흙이고, 네 개의 큰 바닷물도 내가 예전에 사용했던 물이며, 일체의 겁화劫火도 나의 옛 몸이 예전에 사용했던 불이고, 일체의 바람도 내가 예전에 사용했던 기운이다. 나는 지금 이 지위에 들어가 법신을 원만하게 구족하고, 나의 예전의 몸을 버려 필경 사대四大28)에 의해 이루어진 분단생사分段生死29)하는 청정하지 않은 예전의 몸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이것을 사품捨品을 구족했다고 한다.”

역순으로 관찰함에 있어서 두 번째로 사선근을 관찰하는 것이다. 처음에 총괄적으로 표하여 “두 번째로 일체의 탐욕의 장애를 버리고 평등하고 공한 것임을 알아서 버리는 것을 행하는 것을 관찰한다.”라고 했다.
다음은 행상을 밝혔다. 무연행無緣行에 의해 법에 대해 공제와 하나인 진여의 모양을 관찰한다. 또한 세속이 평등한 문을 관찰하니, 말하자면 (지금 이) 대지의 흙은 내가 이미 사용했던 오래된 예전의 흙이라고 관찰하여 사대四大에 대해서 모두 그렇게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지위에 들어가”라는 것은 이구지離垢地(10지 중 제2지)이다. “필경 (사대에 의해 이루어진 분단생사하는) 청정하지 않은 (예전의) 몸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십주비바사론』에서 “초지의 보살은 오욕五欲에 대해 번뇌를 일으키고 근심을 짓지만 그보다 높은 지위의 보살은 그렇지 않다.”30)라고 했다. 무시이래로 이어져 온 음애婬愛에 의해 태내에 의탁하여 생겨난 몸을 받고 버려졌던 시신尸身이 대지를 이룰 정도인 것 등을 관찰하여 지금 오욕에 대해 허물과 근심을 짓지 않으니, 다시 태내에 의탁하여 생겨난 몸을 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003_0434_b_01L爲果羣聖之迹名道見修等別名心
003_0434_b_02L總結名以智道道諦
次明滅諦
003_0434_b_03L盡有苦果盡有集因離障淸淨一味
003_0434_b_04L所照體性以聖妙智擇力寂滅一諦
003_0434_b_05L
慧品具足已下總結初慧善根
003_0434_b_06L起空者俗智入觀者眞智

003_0434_b_07L
第二觀捨一切貪著行一切平等空捨
003_0434_b_08L無緣而觀諸法空際2) [72] 我觀一切十
003_0434_b_09L方地土皆吾昔身所用故土四大海水
003_0434_b_10L是吾故水一切劫火是吾昔身故所用
003_0434_b_11L一切風輪是吾故所用氣我今入
003_0434_b_12L此地中法身滿足捨吾故身畢竟不
003_0434_b_13L受四大分段不淨故身是爲捨品具足

003_0434_b_14L
述曰逆次第二觀捨善根初總標云
003_0434_b_15L第二觀彼捨一切貪障而行平等空
003_0434_b_16L之捨也
次明行相以無緣行觀法
003_0434_b_17L空際一眞如相又觀世俗平等之門
003_0434_b_18L謂觀地土吾所已用舊故土等四大
003_0434_b_19L皆然我今入此地者離垢地也
003_0434_b_20L竟不受不淨身者如十住論初地菩
003_0434_b_21L於五欲中煩惱作患上地不然
003_0434_b_22L始婬愛受胎生身所棄尸身成大
003_0434_b_23L地等今於五欲不作過患更不應受
003_0434_b_24L胎生身故

003_0434_c_01L
(c) 세 번째 관찰 : 자선근慈善根의 관찰

“세 번째로 차례대로 교화의 대상인 일체중생에게 인도와 천도의 즐거움과 10지의 즐거움과 10악을 지음으로써 (삼악도에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여의는 즐거움과 묘화삼매妙華三昧를 얻는 즐거움에서부터 부처님의 즐거움에 이르기까지의 즐거움을 주는 것을 관찰한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자품慈品을 구족하는 것이다. 보살은 이때 이 지위에 머물러 어리석음도 없고 탐욕도 없으며 분노도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 평등한 하나의 진리에 대한 지혜에 증입하니 일체의 행의 근본이다. 부처님의 일체 세계에 노닐면서 한량없는 법신을 나타내어 교화한다.”

역순으로 관찰함에 있어서, 세 번째로 자선근을 관찰하는 것이다. “묘화삼매”라는 것은 일승삼매一乘三昧이니 총괄적으로 원인을 섭수한 것이고, “부처님의 즐거움”이라는 것은 결과이다.
나중에 맺어서 이루는 것을 밝혔다. “어리석음도 없고 탐욕도 없으며 분노도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라고 한 것은, 차례대로 맺으면서 앞의 혜품ㆍ사품ㆍ자품 등의 선근을 이룬 것을 밝힌 것이다. 평등한 지혜에 증입하니 모든 보살의 행의 근본이다. “한량없는 법신을 나타내어 교화한다.”라는 것은 물에 비친 달처럼 법신의 영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c. 자세히 설한 품을 가리킴

「일체중생천화품一切衆生天華品」31)에서 설한 것과 같다.

셋째는 자세히 설한 품을 가리켰다. 나머지 지地도 이것에 준한다.

Ⓒ 제3지(光明體性地, 體性光明地)

“불자여, 보리살타의 광명체성지光明體性地이다. 삼매에 의해 생기한 분명히 이해하는 지혜(三昧解了智)에 의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법문인 12법품十二法品의 명미구名味句32)를 아니, (12법품이라는 것은) 중송重頌ㆍ기별記別ㆍ직어直語ㆍ게偈ㆍ불청설不請說ㆍ율계律戒ㆍ비유譬喩ㆍ불계佛界ㆍ석사昔事ㆍ방정方正ㆍ미증유未曾有ㆍ담설談說이다. 이 법의 체성은 이름은 동일하지만 뜻은 구별된다.”

a. 장문章門

제3지인데, (이 지의) 이름을 “광명”이라고 한 것은 발광지發光地(지혜의 광명이 일어나는 지위)이기 때문이다.

b. 행상行相

a) 자신을 이익 되게 함

(a) 능전能詮을 아는 것

다음은 행상인데, 이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을 이익 되게 하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을 이익 되게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다. 능전能詮(언어)을 알기 때문이고, 소전所詮(언어에 의해 나타내려는 뜻)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이다.

003_0434_c_01L
第三次觀於所化一切衆生與人天樂
003_0434_c_02L十地樂離十惡畏樂得妙華三昧樂
003_0434_c_03L至佛樂如是觀者慈品具足菩薩爾時
003_0434_c_04L住是地中無癡無貪無瞋入平等一諦
003_0434_c_05L一切行本遊佛一切世界現化無
003_0434_c_06L量法身

003_0434_c_07L
述曰逆次第三觀慈善根妙華三昧
003_0434_c_08L一乘三昧總攝因也佛樂果也

003_0434_c_09L
後結成言無癡無貪無瞋如次結前
003_0434_c_10L慧捨慈品善根成也入平等智諸菩
003_0434_c_11L薩行本也現化無量法身者如水中
003_0434_c_12L法身影故

003_0434_c_13L
如一切衆生天華品說

003_0434_c_14L
述曰第三指廣餘地準此

003_0434_c_15L
若佛子菩提薩埵光明體性地以三昧
003_0434_c_16L解了智知三世一切佛法門十二法品
003_0434_c_17L名味句重頌記別直語不請說
003_0434_c_18L律戒譬喩佛界昔事方正未曾有
003_0434_c_19L談說是法體性3) [73] [33] 義別

003_0434_c_20L
述曰第三地名光明者發光地故

003_0434_c_21L
次行相中有二自利故利他故
003_0434_c_22L亦有二知能詮故知所詮故此初
003_0434_c_23L「斲」作「」{乙}次同「一」下有「切」{甲}
003_0434_c_24L「一」下各本有「切」

003_0435_a_01L
“삼매에 의해 얻은 모든 것을 분명히 이해하는 지혜에 의해”라는 것은 수승한 선정에 의지하여 세 가지 지혜33)를 발생하기 때문이다. “삼세의 부처님의 법문”이라는 것은 12분교十二分敎(12법품)34)의 명구문신名句文身(名句味身)이니, 능전能詮을 두루 섭수하기 때문이다. “중송”이라는 것은 응송應頌(산문과 운문이 함께 섞인 것)이다. 이것은 불료의不了義로 “기별記別(미래에 성불할 것을 수기하는 것)”와 상대하기 때문에 앞에 두 가지를 세운 것이다. “직어”라는 것은 계경契經이다. 이것은 오직 장행長行(산문)만 있어서 풍송諷頌인 게偈(운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와 상대하기 때문에 다음에 두 가지를 세운 것이다. “불청설”이라는 것은 자설自說(無問自說)이고, “계율(율계)”이라는 것은 인연因緣이며,35) “불계”라는 것은 본생本生(부처님의 본생담)이고, “석사”라는 것은 본사本事(과거의 일)이며, “방정”이라는 것은 방광方廣(철학적으로 심오한 내용을 담은 경문)이고, “미증유”라는 것은 희법希法(희유한 법)이며, “담설”이라는 것은 논의論議(부처님께서 논의하고 문답하여 온갖 법의 내용을 명백히 말한 것)이다. “이름은 동일하지만”이라는 것은 한 종류의 명구문이기 때문이다. “뜻은 구별된다.”라는 것은 열어서 열두 가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b) 소전所詮을 아는 것

“이 명미구 가운데에서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을 설한다. 분단分段의 형태로 생명을 받으니, 처음에 식識이 태내에 들어가고, 사대四大가 증장하여 색심色心(名色)이 이루어지며, 육주六住36)라고 하는 것이 일어나고, 근根(인식 기관) 가운데 실질적인 알아차림이 일어나지만 아직 고통과 즐거움을 분별하지 못하니 촉식觸識이라 하며, 또한 고통과 즐거움을 알아차리는 식이 이루어지니 세 가지의 감수 작용37)이라고 하고, 연달아 알아차리고 그 감수한 것에 애착함이 끝이 없으며, 욕취欲取ㆍ아어취我語取ㆍ견취見取ㆍ계취戒取(戒禁取)38)가 일어나고, 선업과 악업에 의지하여 유有가 이루어지며, 식이 처음으로 생겨나는 것을 ‘태어남(生)’이라고 하고, 식이 끝나는 것을 ‘죽음(死)’이라고 한다. 이 열 가지 품에 의해 현재의 고통과 현재의 인연과 (인연의) 결과를 관찰한다.”39)

두 번째는 소전을 아는 것이다. “분단의 형태로 생명을 받으니”라고 한 것은 분단생分段生40)이다. “처음에 식이 태내에 들어가고”라는 것은 식지識支의 자리이고, “사대가 증장하여 색심이 이루어지며”라는 것은 명색지名色支이며, “육주라고 하는 것이 일어나고 근 가운데 실질적인 알아차림이 일어나지만”이라는 것은 식識을 발할 수 있는 자리이니 육처지六處支(六根支)이기 때문이고, “아직 고통과 즐거움을 분별하지 못하니 촉식이라 하며”라는 것은 촉지觸支이며, “고통과 즐거움을 알아차리는 식이 이루어지니 세 가지의 감수 작용이라고 하고”라는 것은 수지受支이고, “연달아 알아차리고 그 감수한 것에 애착함이 끝이 없으며”라는 것은 애지愛支이니 항상 애착하기 때문이며, “욕欲”은 욕취이고, “아我”는 아어취이며, “견見”은 견취이고,

003_0435_a_01L
三昧解了智者以依勝定發三慧
003_0435_a_02L三世佛法門者十二分敎名句
003_0435_a_03L文身遍攝能詮故重誦者應頌
003_0435_a_04L不了義對記別故在前立二直語
003_0435_a_05L契經此唯長行對諷頌偈故
003_0435_a_06L立二不請說者自說戒律者因緣
003_0435_a_07L佛界者本生昔事者本事方正者
003_0435_a_08L方廣未曾有者希法談說者論議
003_0435_a_09L言名一者一種名句文故義別者
003_0435_a_10L開爲十二分故

003_0435_a_11L
是名味句中說一切有爲法分分受生
003_0435_a_12L初入識胎四大增長色心名六住於根
003_0435_a_13L起實覺未別苦樂名觸識又覺苦樂
003_0435_a_14L名三受連連覺著受無窮以欲我見
003_0435_a_15L戒取善惡有識初名生識終名死
003_0435_a_16L十品現在苦因緣果觀

003_0435_a_17L
述曰第二知所詮也分分受生者
003_0435_a_18L分段生也初入識於胎卽識支位也
003_0435_a_19L四大增長色心者名色支也名六住
003_0435_a_20L於根中起實覺者堪發識位爲六處
003_0435_a_21L支故未別苦樂名觸識者觸支也
003_0435_a_22L覺苦樂識名三受者受支也連連覺
003_0435_a_23L著受無窮者愛支也恆著愛故
003_0435_a_24L謂欲取我謂我語取見卽見取

003_0435_b_01L“계戒”는 계금취이니 합해서 취지取支라고 하고, “선업과 악업에 의지하여 유가 이루어지며”라는 것은 유지有支이며, “식이 처음으로 생겨나는 것을 ‘태어남(生)’이라 한다.”라는 것은 생지生支이고, “식이 끝나는 것을 ‘죽음(死)’이라 한다.”라는 것은 사지死支이다. “이 열 가지 품”이라는 것은 (12연기에서) 무명지無明支와 행지行支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통과 현재의 인연과 (인연의) 결과를 관찰한다.”라는 것은 식 등의 다섯 가지 지支를 “현재의 고통”이라 하고, 애ㆍ취ㆍ유의 세 가지를 “현재의 인연”이라 하며, 생生ㆍ노사老死(死)의 두 가지를 “인연의 결과”라고 한다. 능히 그것을 관찰하기 때문에 “관찰한다.”라고 했다.

b) 타인을 이익 되게 함

“‘이 행상을 중도의 지혜로 관찰하니, 나는 오래전에 이미 집착을 여의었기 때문에 자체의 성품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광명체성지光明體性地에 들어가서 신통력과 총지와 변재를 얻고 마음마다 공을 행한다. 시방의 불국토에서 겁을 자유자재하게 운용하며, 전전하면서 백겁이나 천겁 동안 교화하며, 그 국토에서 신통력을 기르고 부처님 앞에서 예경하며 법의 말씀을 자문하여 수지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다시 육도에 몸을 나타내어 하나의 음성 속에서 한량없는 법품을 설하는데, 중생은 각자 분분히 마음으로 얻고자 하는 법을 듣는다.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의 음성과 하나의 진리의 음성으로 (교화한다.) 국토가 같지 않으니, 몸과 마음에 있어서 기연機緣에 맞추어 차별된 모습으로 교화한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이 연에 의해 생겨나는 행상을 중도의 지혜로 관찰하니, 나는 오래전에 이미 유ㆍ무의 집착을 여의었기 때문에 자체의 성품이 없다’라고 한다. 증득해야 할 것을 알고 나서, 또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 (광명체성지에) 들어가서 총지와 변재를 얻고, 부처님을 섬기면서 법을 전수받으며, 육도에 몸을 나타내어 기연機緣에 따르고 응하여 설법한다. “겁을 자유자재하게 운용하며”라는 것은, 『유마경』에서 “하루를 펼쳐서 7대겁과 같게 한다.”41)라고 한 것과 같다. 전전하면서 교화하기 때문에 “전전하면서 백겁이나 천겁 동안 교화하며”라고 했다. “국토가 같지 않으니, 몸과 마음에 있어서 기연에 맞추어 차별된 모습으로 교화한다.”라는 것은 그 국토의 욕구에 따라 세 가지 업(신업ㆍ구업ㆍ의업)을 차별된 모습으로 나타내어 교화하는 것이다.

c. 지금 설한 부분이 약출한 것임을 밝히고 자세하게 설한 품을 가리킴

이는 묘화광명지 가운데 한 털끝만큼만 간략하게 연 것이다. 「법품法品」과 「해관법문천삼매품解觀法門千三昧品」42)에서 설한 것과 같다.


003_0435_b_01L卽戒禁取合取支也善惡有者
003_0435_b_02L支也識初名生生支也識終名死
003_0435_b_03L死支也言是十品者除無明行支故
003_0435_b_04L現在苦因緣果觀者識等五支名現
003_0435_b_05L在苦愛取有三名現在因緣生老
003_0435_b_06L死二名因緣之果能觀察彼名之
003_0435_b_07L爲觀

003_0435_b_08L
是行相中道我久已離故無自體性
003_0435_b_09L入光明1) [74] 總持辯才心心行空
003_0435_b_10L十方佛土中現劫化轉化百劫千劫
003_0435_b_11L土中養神通禮敬佛前諮受法言
003_0435_b_12L現六道身一音中說無量法品而衆生
003_0435_b_13L各自分分得聞心所欲之法苦空無常
003_0435_b_14L無我一諦之音國土不同身心別化

003_0435_b_15L
述曰第二利他也菩薩念言於是緣
003_0435_b_16L生行相以中道智我久已離有無著
003_0435_b_17L無自體性知所證已亦爲利他
003_0435_b_18L入總持辯事佛受法現身六道
003_0435_b_19L應說法現劫化者如維摩經一日舒
003_0435_b_20L爲七大劫等展轉化故言轉化百千
003_0435_b_21L國土不同身心別化者隨其國欲
003_0435_b_22L三業別化

003_0435_b_23L
是妙華光明地中略開一毛頭許如法
003_0435_b_24L品解觀法門千三昧品說

003_0435_c_01L
지금 설한 것이 약출한 것임을 밝히고 자세하게 설한 것을 가리켰으니, “저 두 품에서 이미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 제4지(體性爾焰地)

a. 자분행自分行

“불자여, 보리살타의 체성지 가운데 진제와 속제의 경계를 마주하여(爾眞燄俗) 분명히 아는 것이다. (일체법은) 단멸하는 것도 아니고 상주하는 것도 아니다. 상즉하여 생겨나고 상즉하여 머물며 상즉하여 소멸하니, 하나의 시기이고 하나의 시간이며 하나의 유有이지만, 인연因緣(種)에 차이가 있어서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인연에 의거하여 중도가 성립되니, 동일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니며, 범부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세계와

003_0435_c_01L
述曰第三存略指廣如彼二品已
003_0435_c_02L廣說故

003_0435_c_03L
若佛子菩提薩埵體性地中爾眞燄俗
003_0435_c_04L不斷不常卽生卽住卽滅一世一時一
003_0435_c_05L種異異現異故因緣中道非一非二
003_0435_c_06L非善非惡非凡非佛故佛界凡界一一
003_0435_c_07L是名爲世諦其智道觀無一無二
003_0435_c_08L道定品所謂諸佛心行初覺定因
003_0435_c_09L思覺靜覺上覺念覺慧覺觀覺
003_0435_c_10L猗覺樂覺捨覺是品品方便道心心
003_0435_c_11L入定果是人住定中燄燄見法行空
003_0435_c_12L若起念定入生心定生愛順道法
003_0435_c_13L名法樂忍住忍證忍寂滅忍

003_0435_c_14L
述曰第四地行相中有二自分行故
003_0435_c_15L勝進行故此初也
梵云爾*燄
003_0435_c_16L2)所知 [75] 今配二諦故言爾眞燄俗
003_0435_c_17L離增減故言不斷不常如無量劫
003_0435_c_18L是一念況生住滅一世一時一有
003_0435_c_19L有者一妙有也雖眞一味因緣不
003_0435_c_20L故言種異異如因緣別果亦不同
003_0435_c_21L故言現異旣雖無相不壞假名故言
003_0435_c_22L因緣中道也旣無定性名中道故
003_0435_c_23L非一二等如文可知
然隨假相
003_0435_c_24L「通」無{甲}「所知」作「知所」又疑寫倒{甲}

003_0436_a_01L범부의 세계가 낱낱이 (차별되는 것을) 세제世諦라고 하고, 그 지혜와 도리로 관찰하면 동일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니, (이러한 경계는) 현묘한 경계를 아는 지혜(玄道)와 선정(定)의 품류에 의해서만 알려진다. 이른바 모든 부처님의 심행心行에 있어서 처음의 깨달음은 선정을 원인으로 한다. (이렇게 해서) 신각信覺ㆍ사각思覺ㆍ정각靜覺ㆍ상각上覺ㆍ염각念覺ㆍ혜각慧覺ㆍ관각觀覺ㆍ의각猗覺ㆍ낙각樂覺ㆍ사각捨覺을 행한다. 이 여러 가지 품류의 방편도方便道로 마음마다 선정의 과果(覺慧)에 들어간다. 이 사람은 선정에 머무는 가운데 불꽃을 일으켜 세속법을 보고 승의공勝義空을 행한다. 또 염念과 정定에서 일어나 중생을 연하는 마음을 내는 선정에 들어가서 자애심을 내고, 도법에 수순하여 중생을 교화하니, 법락인法樂忍이라 하고 주인住忍이라 하며 증인證忍이라 하고 적멸인寂滅忍이라 한다.”

제4지이다. 행상을 밝혔는데, 이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자분행自分行을 밝혔기 때문이고, 승진행勝進行43)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범어 음사어 “이염爾燄(ⓢjñeya)”은 곧 소지所知(인식 대상)의 뜻이다.44) 지금 이제二諦에 배속하기 때문에 “진제와 속제의 경계를 마주하여 분명히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증익과 손감의 허물45)을 여의기 때문에 “단멸하는 것도 아니고 상주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한량없는 겁이라고 해도 곧 한 생각이니, 하물며 생겨남과 머묾과 소멸함이 하나의 시기이고 하나의 시간이며 하나의 유라고 하는 것임에랴. “하나의 유”라는 것은 하나의 오묘한 유이다. 비록 참된 한맛이지만 인연에 의해 섞이지 않기 때문에 “인연에 차이가 있어서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했다. 만약 인연에 차별이 있으면 결과도 또한 같지 않기 때문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했다. 이미 비록 모양이 없지만 임시로 지어진 명칭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인연에 의거하여 중도가 성립되니”라고 했다. 이미 결정적 성품이 없는 것을 “중도”라고 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등은 문장과 같으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임시로 시설된 모양을 따라서 부처님과 범부 등이 낱낱이 차별되는 것을 세제라고 한다. 그런데 승의勝義의 지혜와 도리로 관찰하면 그것에는 동일한 것도 없고 다른 것도 없으니, 어떤 법이 있어서 그 진제를 관찰할 것인가. 그러므로 총괄적으로 들어서 “현묘한 경계를 아는 지혜(玄道)와 선정(定)의 품류에 의해서만 알려진다.”라고 했다. “현玄(현묘한 경계)”이란 곧 소연所緣이고, “도道(지혜)”란 지혜를 말하며, “정定(선정)”이란 소의所依를 말한다.
“부처님의 심행에 있어서”라고 한 것은 결과를 제시하고 원인을 나타낸 것이다.46) “처음의 깨달음은 선정을 원인으로 한다.”라는 것은, 처음에 공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선정이 곧 원인이 되니, 깨달음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품류”라고 하는 것인가? 열 가지가 있다. 처음의 세 가지(신각ㆍ사각ㆍ정각)는 차례대로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이다. 다음의 칠증위七證位는 칠각지七覺支47)이다.48) “상각”은 정진精進이니 상위의 계위로 올라가기 때문이고, “관각”은 정定이니 결과로부터 이름하기 때문이며, “의각”은 안安(輕安)이니 구역에서 “의猗”라고 의역했기 때문이고, (“낙각”에서) “낙”은 희喜이다.
제4지의 보살이 점차 장애를 끊을 때 방편도의 힘으로 생각마다 선정의 과인 각혜覺慧에 진입한다. 이 사람은 선정에 머무는 가운데 지혜의 불꽃을 일으키기 때문에 세속법을 보고 승의공을 행한다.
“또 염과 정에서 일어나”라는 것은, (“염”은) “정”의 직접적 원인이어서 “염”을 아울러 제시한 것이다. “일어나”라는 것은 나오는 것이다. 앞에서 일으킨 법을 연緣하고 공을 연하는 선정에서 일어나 바로 유정有情을 연하는 마음을 내는 선정에 들어가서 자애로운 마음을 내어 애념하며, 도법에 수순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이미 법을 사랑하여 즐거워하니 “법락인”이고, 덕德을 지켜서 물러나지 않으니 “주인”이며, 진제를 증득하여 들어가니 “증인”이라 하고, 망妄에서 벗어나니 “적멸인”이라 하는데, 이는 이름의 차별일 뿐이다.

b. 승진행勝進行

“그러므로 여러 부처님께서 (보살이) 광광화삼매光光華三昧에 들어간 가운데 한량없는 부처님의 영상을 나타내어 손으로 정수리를 만지고 하나의 음성으로 법을 설한다. (보살은) 백천 가지를 일으키면서도 선정에서 나오지 않고, 선정에 머물고 선정을 맛보고 즐거워하면서 선정에 밀착하고 선정에 탐닉하여 1겁ㆍ천 겁 동안 선정에 머물며, 부처님께서 연화좌蓮華座에서 온갖 법을 설하시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은 공양하고 법을 들으면서 1겁 동안 선정에 머문다. 그때 여러 부처님께서 광명을 내는 가운데 정수리를 만지며 선정의 품류의 출상出相ㆍ진상進相ㆍ거향상去向相을 깨닫게 하기 때문에(發起) (생사의 세계에) 침몰하지 않고 (열반의 세계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003_0436_a_01L與凡等一一差別名爲世諦然勝義
003_0436_a_02L智道觀彼無一二如何等法觀彼眞
003_0436_a_03L故總擧言玄道定品也玄卽所緣
003_0436_a_04L道謂慧也定謂所依
言佛心行者
003_0436_a_05L果顯因初覺定因者初悟空理
003_0436_a_06L卽因也覺之因故何等名品謂有
003_0436_a_07L十種初三如次聞思修慧次七證位
003_0436_a_08L七覺支也上覺精進以上昇故
003_0436_a_09L定也從果名故1) [76] 安也
003_0436_a_10L翻猗故樂謂喜也四地菩薩漸斷障
003_0436_a_11L方便道力念念進入定果覺慧
003_0436_a_12L是人住定起慧燄故見世俗法行勝
003_0436_a_13L義空
若起念定者定之親因并擧
003_0436_a_14L念也起者出也出前緣法緣空定者
003_0436_a_15L卽入有情緣心定中生慈心愛以順
003_0436_a_16L道法化生旣愛法樂名法樂忍
003_0436_a_17L德不退名爲住忍入眞名爲證忍
003_0436_a_18L出妄名寂滅忍名之差別也

003_0436_a_19L
故諸佛於入光光華三昧中現無量佛
003_0436_a_20L以手摩頂一音說法百千起發而不出
003_0436_a_21L住定味樂定著定貪定一劫千劫
003_0436_a_22L住定見佛蓮華座說百法門是人
003_0436_a_23L養聽法一劫住定時諸佛光中摩頂
003_0436_a_24L起定品出相進相去向相故不沒不退

003_0436_b_01L(이승二乘의 지위로) 떨어지지 않으며, (인위因位에) 머물지 않는다. (이렇게) 정삼매법頂三昧法으로 상락인上樂忍을 얻음으로써 (일체의 장애를) 영원히 다하여 남은 것이 없어진다. 바로 일체 부처님의 국토에 들어가 한량없는 공덕품을 수행하고, 행위마다 모두 광명이 빛난다. 선권방편善權方便에 들어가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체성이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임을 볼 수 있게 한다. 이 사람은 이 지위에 태어나고 머무는 가운데 법문을 실천하고 교화함이 점점 깊고 미묘해져서 공화관지空華觀智로 체성중도體性中道에 들어가니, 일체의 법문품을 원만하게 충족하여 금강金剛과 같은 경지에 도달한다.”

앞의 「일월도품日月道品」49)에서 이미 이 뜻을 밝혔다.

두 번째는 승진행이다. 그 보살이 들어간 선정 속에서 여러 부처님께서 영상影像을 나타내어 (가피하고 이것에 의해 보살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백천 가지를 일으키면서도”라는 것은 정진精進의 법문이다. “선정에 밀착하고”라는 것은 “선정에 머물고”를 풀이한 것이고, “선정에 탐닉하여”라는 것은 “선정을 맛보고 즐거워하면서”를 풀이한 것이다. 그러나 선법善法에 속하는 욕구이고 번뇌에 속하는 탐욕은 아닌 것이니, 이미 선정에 대한 애착을 끊었기 때문이다.
“발기發起”라는 것은 깨닫게 하는 것이니, 저 정품의 세 가지 모양(출상ㆍ진상ㆍ거향상)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보살의 선정의 힘은 삼유三有를 넘어서기 때문에 “출상”이라 하고, 이승二乘의 멸滅50)을 넘어서기 때문에 “진상”이라 하며, 대승의 과를 향하기 때문에 “거향상”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광명을 내어 출상을 깨닫게 하기 때문에 보살은 생사의 세계에 침몰하지 않고 열반의 세계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진상을 깨닫게 하기 때문에 이승에 떨어지지 않으며, 거향상을 깨닫게 하기 때문에 인위에 머물지 않는다. 이러한즉 선정의 품류의 공덕을 원만하게 구족한다.
정수리를 만지며 깨닫게 하는 것을 “정삼매법”이라 하고, 생사의 세계에 침몰하는 것 등의 하열한 지위를 여의는 것을 “상락인”이라 하며, 공덕이 원만하게 갖추어진 것을 “영원히 다하여 남은 것이 없어진다.”라고 한다. “한량없는 공덕품”이란 복덕이고, “행위마다 모두 광명이 빛난다.”라는 것은 지혜이다. “부처님의 체성이 상ㆍ낙ㆍ아ㆍ정임을 볼 수 있게 한다.”라는 것은 마음으로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문장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앞의 「일월(도품)」” 이하는 다른 품을 가리킨 것이다.

Ⓔ 제5지(慧照體性地, 體性慧照地)

“불자여, 보리살타의 혜조체성지이다.

003_0436_b_01L不墮不住頂三昧法上樂忍永盡無
003_0436_b_02L卽入一切佛土2) [77] 修行無量功德
003_0436_b_03L行行皆光明入善權方便3)敎化 [78]
003_0436_b_04L切衆生能使得見佛體性常樂我淨
003_0436_b_05L人生住是地中行化法門漸漸深妙
003_0436_b_06L空華觀智入體性中道一切法門品滿
003_0436_b_07L猶如金剛上日月道品已明斯義

003_0436_b_08L
述曰第二勝進行於彼菩薩所入定
003_0436_b_09L諸佛現影而起發故
百千起發者
003_0436_b_10L精進法門也著定者釋住定也
003_0436_b_11L定者釋味樂定也然善法欲非貪
003_0436_b_12L煩惱已斷定愛故
發起者覺發也
003_0436_b_13L警彼定品三種相故菩薩定力超三
003_0436_b_14L有故名爲出相超二乘滅名爲進
003_0436_b_15L向大乘果名去向相佛光覺發
003_0436_b_16L出相之故菩薩不沒生死不退涅槃
003_0436_b_17L覺發進相之故不墮二乘覺發去向
003_0436_b_18L相故不住因位是則定品功德滿足

003_0436_b_19L
謂摩頂發起名頂三昧法離沒等劣
003_0436_b_20L名上樂忍功德圓備名永盡無餘
003_0436_b_21L無量功德品福也行行皆光明
003_0436_b_22L見佛體性常樂我淨者令心解故
003_0436_b_23L餘文可解上日月下指餘品也

003_0436_b_24L
若佛子菩提薩埵慧照體性地法有十

003_0436_c_01L(증득해야 할) 법에 열 가지의 능력을 발생하는 품이 있어서 일체의 공덕을 낳는 행을 일으킨다. (이는) 하나의 지혜의 방편에서 일어난다. (첫째는) 선악의 두 가지 업이 다르게 작용하는 것을 아는 것51)이니, 처력품處力品이다. (둘째는) 선업을 지은 것과 악업을 지은 것을 아는 것이니, 업지력품業智力品이다. (셋째는) 일체중생이 육도에 태어남에 있어서 욕구하는 것과 소원하는 것을 아는 것이니, 과욕력품果欲力品52)이다. (넷째는) 육도중생의 종성이 차별되어 같지 않은 것을 아는 것이니, 성력품性力品53)이다. (다섯째는) 일체중생의 선근善根과 악근惡根이 낱낱이 동일하지 않은 것을 아는 것이니, 근력품根力品이다. (여섯째는) 삿된 선정과 바른 선정과 선정과 관련이 없는 것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정력품定力品이라 한다. (일곱째는) 일체의 원인과 결과에 있어서 이러한 원인을 타는 것과 이러한 결과를 탄 것이, (그 원인에 의해) 어떤 과처果處에 이르는 것이며 어떤 원인이 되는 도를 타서 (그 결과에) 도달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니, 이를 도력품道力品이라 한다. (여덟째는) 오안五眼54)으로 일체법을 알고 일체의 생을 받아 태어나는 것을 꿰뚫어 보기 때문이니, 천안력품天眼力品이라 한다. (아홉째는) 백겁의 일을 낱낱이 아는 것이니, 숙세력품宿世力品이다. (열째는) 일체의 윤생번뇌潤生煩惱55)를 소멸하고 일체의 업業에 있어서 발업무명發業無明56)을 소멸하는 것이니, 해탈력품解脫力品이다. 이 열 가지 능력이 발생하는 품에 대한 지혜에 의해 스스로 닦아야 할 것의 원인과 결과를 알고, 또한 일체중생이 (닦아야 할 것에 있어서)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구별하여 안다.”

제5지이다.

a. 장문章門

장문을 제시한 것에서 “혜조”라고 한 것은 비로소 (진제와 속제를) 아울러 비추기 때문이다.57)

b. 행상行相

a) 자분행自分行

(a) 지혜

이 지위에서의 행상에 두 가지가 있으니, 자분행을 밝혔기 때문이고, 승진행을 밝혔기 때문이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지혜를 밝혔기 때문이고, 신통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 총괄적으로 표방함

총괄적으로 표방하여 말했으니, “(법에) 열 가지의 능력을 발생하는 품이 (있어서) 일체의 공덕을 낳는 행을 일으킨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나타냄58)

첫째, “하나의 지혜의……처력품이다.”라는 것에서 (“하나의 지혜의 방편에서 일어난다.”라는 것은 열 가지를 총괄하는 구절이고, 나머지가 여기에 해당되니, “처력품”은)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59)이다. 둘째, 자업지력自業智力60)이다. 셋째,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61)이니, 육도중생이 지닌 의요의 뛰어남과 하열함을 알기 때문이다. 현행現行을 의요하는 것을 “과욕”이라 한다. 넷째,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이니, 종성을 알기 때문이다. 다섯째,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62)이다. 여섯째, 정려해탈지력靜慮解脫智力이니, 범부와 성인의 선정의 차별을 알기 때문이다. “바른 선정”이라는 것은 성인의 선정이다. 일곱째, 변취행지력徧趣行智力63)이니,

003_0436_c_01L種力生品起一切功德行以一慧方便
003_0436_c_02L知善惡二業別行處力品善作惡作
003_0436_c_03L業智力品一切欲求願六道生生果欲
003_0436_c_04L力品六道性分別不4) [79] 性力品一切
003_0436_c_05L善惡根一一不同根力品邪定正定不
003_0436_c_06L是名定力品一切因果乘是因
003_0436_c_07L是果至果處乘因道是道力品五眼
003_0436_c_08L知一切法見一切受生故天眼力品
003_0436_c_09L百劫事一一知宿世力品於一切生煩
003_0436_c_10L惱滅一切受無明滅解脫力品是十
003_0436_c_11L力品智知自修因果亦知一切衆生因
003_0436_c_12L果分別

003_0436_c_13L
述曰第五地
擧章云慧照者始雙照
003_0436_c_14L
地行有二自分故勝進故初亦
003_0436_c_15L有二智故通故此初也
總標云
003_0436_c_16L力生品者起一切功德行故
一以一
003_0436_c_17L慧至處力品者處非處智力也二自
003_0436_c_18L業智力三種種勝解智力能知六道
003_0436_c_19L意樂勝劣故現行意樂名爲果欲
003_0436_c_20L四種種界智力知種姓故五根上下
003_0436_c_21L智力六靜慮解脫智力能知凡聖定
003_0436_c_22L差別故正定聖也七徧趣行智力
003_0436_c_23L「猗」作「倚」{甲}「中」一無{甲}「敎化」作
003_0436_c_24L「化敎」{甲}
「同」一作「定」{甲}

003_0437_a_01L취과趣果(과보로서 도달하게 될 곳)의 방편을 알기 때문이다. 이 원인을 타면 반드시 어떤 과처果處에 이르는 것인지, 이 과果를 탄 것은 (어떤) 인도因道를 탄 것으로 말미암은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대법론)』에서 “대승과 소승의 교법이 섭수하는 경계를 깨달아 들어간다.”64)라고 한 것과 같다. 여덟째, 사생지력死生智力65)이다. “오안으로 일체법을 알고”에서 (“오안”은) 무리 지어 총괄한 숫자를 든 것이니, 혜안慧眼ㆍ법안法眼 등으로 일체법을 알고, 천안天眼으로 모든 형태의 생生을 받아 태어나는 것을 꿰뚫어 보기 때문이다. 아홉째,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66)이다. 열째, 누진지력漏盡智力67)이다. “일체의 업”이라는 것은 순현수順現受68) 등이다. 윤생번뇌가 소멸하면 발업무명도 소멸하기 때문이다.

(b) 신통력通力力

“몸과 마음과 입이 다르게 작용하면서 청정한 국토를 더러운 국토로 만들고 더러운 국토를 미묘한 즐거운 국토로 만들며, 선한 모습을 굴려 악한 모습을 짓게 하고 악한 모습을 굴려 선한 모습을 짓게 할 수 있으며, 색을 색이 아닌 것이 되게 하고 색이 아닌 것을 색이 되게 하며, 남자를 여인으로 만들고 여인을 남자로 만들며, 육도를 육도가 아닌 것69)이 되게 하고 육도가 아닌 것을 육도가 되게 하며, 내지 지ㆍ수ㆍ화ㆍ풍을 지ㆍ수ㆍ화ㆍ풍이 아닌 것이 되게 한다. 이 사람은 이때 큰 방편의 힘으로 일체중생을 좇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경계를 나타내니, 아래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발을 들고 발을 내리는 일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통력이니 세 가지 업을 (달리) 변화시켜서 자유자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미 중생을 좇아 인식할 수 없는 경계를 나타내니, 아래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발을 들고 발을 내리는 일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b) 승진행勝進行

“이 사람은 크고 밝은 지혜를 얻으니, 점점 나아가고, 분분히 부처님의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증득하며, 빛나고 빛나며 한량없고 한량없으며,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의 법문을 현재 눈앞에서 행한다.”

두 번째는 승진분행이다. “크고 밝은 지혜”라는 것은 총괄하여 제시한 것이다. “점점 나아가고”라는 것은 가행도加行道이고, “분분히 부처님의 일체종지를 증득하며”라는 것은 무간도無間道이며, “빛나고 빛나며 한량없고 한량없으며”라는 것은 해탈도解脫道이고,

003_0437_a_01L能知趣果方便故謂知乘是因必至
003_0437_a_02L果處及乘是果由乘因道故如對
003_0437_a_03L法云悟入大小乘敎所攝境故八死
003_0437_a_04L生智力言五眼知一切法者類擧總
003_0437_a_05L慧法眼等知一切法以天眼見諸
003_0437_a_06L受生故九宿住隨念智力十漏盡智
003_0437_a_07L一切受者順現受等潤生煩惱
003_0437_a_08L發業無明滅故

003_0437_a_09L
而身心口別用以淨國土爲惡國土
003_0437_a_10L惡國土爲妙1) [80] 能轉善作惡轉惡
003_0437_a_11L作善色爲非色非色爲色以男爲女
003_0437_a_12L以女爲男以六道爲非六道非六道爲
003_0437_a_13L六道乃至地水火風非地水火風
003_0437_a_14L爾時以大方便力從一切衆生而見
003_0437_a_15L不可思議下地所不能知覺擧足下足
003_0437_a_16L

003_0437_a_17L
述曰第二通力三業變化自在用故
003_0437_a_18L旣從衆生現不可識下地不知覺擧
003_0437_a_19L足下足事

003_0437_a_20L
是人大明智漸漸進分分2) [81] 光光無
003_0437_a_21L量無量不可說不可說法門現在前行

003_0437_a_22L
述曰第二勝進分行大明智者
003_0437_a_23L擧也漸漸進者加行道也分分智
003_0437_a_24L無間道也光光無量無量者

003_0437_b_01L“불가설불가설의 법문”이라는 것은 승진도勝進道이다.70)

Ⓕ 제6지(體性華光地)

“불자여, 보리살타의 체성화광지이다. 일체의 세계에서 열 가지 신통명지품神通明智品을 갖추어서 일체의 중생에게 온갖 변화를 현시한다. (첫째,) 천안명지天眼明智에 의해 삼세의 국토의 티끌처럼 많은 일체의 색이 분분히 모여 육도중생의 몸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 알고, 낱낱의 몸을 구성하는 티끌처럼 많은 미세한 색이 신체의 거대한 색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 분분히 안다. (둘째,) 천이지天耳智에 의해 시방삼세十方三世71)의 육도중생의 고통과 즐거움의 음성이 (고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음音이고, (고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성聲이라는 것과 (나머지) 일체법의 성聲을 안다. (셋째,) 천신지天身智에 의해 일체의 색과 색이 색이 아닌 것과 (남자와 여인이) 남자의 형상도 아니고 여인의 형상도 아닌 것을 알아 한 생각에 시방삼세의 국토와 겁의 분량에 두루 통하여 크고 작은 국토에 따라 (그에 맞는) 티끌처럼 많은 수의 몸을 나타낸다. (넷째,) 천타심지天他心智에 의해 삼세의 중생이 마음에서 행한 것과 시방의 육도에 살아가는 일체의 중생이 마음마다 생각한 것에 있어서 고통과 즐거움과 선과 악 등의 일을 안다. (다섯째,) 천인지天人智에 의해 시방삼세의 국토에 머무는 일체의 중생이 과거세에 지은 것에 의해 (현재) 고통과 즐거움을 받고 목숨의 과보를 받는 것을 알고 낱낱이 목숨이 백겁 동안 이어지는 과정을 안다. (여섯째,) 천해탈지天解脫智에 의해 시방삼세의 중생이 해탈하는 방도를 알아 (그 역량에 따라) 일체의 번뇌를 끊어 없애게 하니, 많든 적든, (적게는) 1지一地의 장애에서부터 (많게는) 10지十地까지의 장애에 이르기까지 멸하고 멸하여 모두 다하게 한다. (일곱째,) 천정심지天定心智에 의해 시방삼세의 국토에 머무는 중생의 마음이 선정에 든 것과 선정에 들지 않은 것과 선정에 든 것도 없고 선정에 들지 않은 것도 없음과 선정을 일으키는 방법과 섭수하는 것이 있는 삼매와 온갖 삼매를 안다. (여덟째,) 천각지天覺智에 의해 일체의 중생에 대해 이미 성불한 이와 아직 성불하지 못한 이에서부터 일체의 육도에 살아가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음마다 생각하는 것을 알고, 또한 시방의 부처님이 마음속에서 생각한 것을 설한 법을 안다. (아홉째,) 천념지天念智에 의해 백겁ㆍ천겁ㆍ대겁ㆍ소겁에 일체의 중생이

003_0437_b_01L脫道也不可說不可說法門勝進道
003_0437_b_02L

003_0437_b_03L
若佛子菩提薩埵體性華光地能於一
003_0437_b_04L切世界中十神通明智品以示一切衆
003_0437_b_05L生種種變化3) [82] 天眼明智知三世國
003_0437_b_06L土中微塵等一切色分分成六道衆生
003_0437_b_07L一一身微塵細色成大色分分知
003_0437_b_08L以天耳智知十方三世六道衆生苦樂
003_0437_b_09L音聲非非音非非聲一切法聲以天
003_0437_b_10L身智知一切色色非色非男非女形
003_0437_b_11L於一念中徧十方三世國土劫量大小
003_0437_b_12L國土中微塵身以天他心智知三世衆
003_0437_b_13L生心中所行十方六道中一切衆生
003_0437_b_14L心所念苦樂善惡等事以天人智知十
003_0437_b_15L方三世國土中一切衆生宿世苦樂受
003_0437_b_16L一一知命續百劫以天解脫智
003_0437_b_17L十方三世衆生解脫斷除一切煩惱
003_0437_b_18L多若少從一地乃至十地滅滅皆盡
003_0437_b_19L以天定心智知十方三世國土中衆生
003_0437_b_20L定不定非定非不定起定方法
003_0437_b_21L所攝受三昧百三昧以天覺智知一切
003_0437_b_22L衆生已成佛未成佛乃至一切六道人
003_0437_b_23L心心亦知十方佛心中所說法以天念
003_0437_b_24L知百劫千劫大小劫中一切衆生

003_0437_c_01L목숨을 받는 것과 그 목숨의 길고 짧음을 안다. (열째,) 천원지天願智에 의해 일체의 중생이 현자와 성자의 지위인 10지와 30심 가운데 낱낱의 수행의 문에서 서원하여, 혹은 고통을 (버리고) 즐거움을 구하는 것과 혹은 법을 구하여 법이 아닌 것을 끊는 것과 같은 일체의 구하는 것을 알고, 열 가지 서원과 백천 가지의 큰 서원의 품류를 구족한다. 이 사람은 이 지위에 머물면서 열 가지 신통명神通明 가운데에서 한량없는 몸과 마음과 입이 차별적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 지위의 공덕을 설하기를 백천만 겁 동안 해도 다하여 끝나는 일이 없지만, 이곳에서는 석가불에게 신통명품神通明品을 간략하게 열었다. 「관십이인연품觀十二因緣品」72)에서 설한 것과 같다.

제6지이다.

a. 장문章門

장문을 제시한 것에서 “화광”이라고 한 것은 반야의 직접적 원인이니, 경계를 비추어 어둠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b. 행상行相

다음에 이 지위에서의 행상을 밝혔는데, 이 가운데 처음에는 총괄적으로 표방하고 나서 (다음의) “천안명” 이하에서는 개별적으로 열 가지 신통을 나타내었다.
“열 가지 신통”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천안통이다. 티끌처럼 많은 사대四大라는 색이 분분히 모여 육도중생의 몸을 이루는 것을 알고, 낱낱의 몸을 이룬 미세한 색이 분분히 신체의 거대한 색을 이루는 것을 또한 분분히 안다. 둘째는 천이통이다. “(고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음音이고, (고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성聲이라는 것”은 전해 오는 설에 말하기를, “음과 성의 공空을 아울러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일체법의 성聲”이라는 것은 나머지 일체의 성이다. 어떤 사람은 해석하기를, “법의 소라(法蠡)73) 등과 같은 가르침을 듣는 것이다.”라고 했다.
셋째는 천신통天身通이니, 곧 신경통神境通이다. 일체의 색을 알고, 색이 색이 아닌 것 등의 성품을 알며, 한 생각에 시방의 국토의 분량과 삼세겁의 분량에 두루 통하여 나라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 공간과 시간과 동일하게 티끌처럼 많은 수의 몸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넷째는 천심통天心通이니, 곧 타심지他心智이다. 다섯째는 천인통天人通이다.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알기 때문이니, 곧 숙주지宿住智이다. 여섯째는 천해탈통天解脫通이니, 곧 누진지漏盡智이다. 모든 중생의 해탈의 방편을 알기 때문이다. “멸하고 멸하여 모두 다하게 한다.”라는 것은 열 가지 장애74)를 멸하기 때문이다. 이후의 네 가지 신통은

003_0437_c_01L命命久近以天願智知一切衆生賢聖
003_0437_c_02L十地三十心中一一行願若求苦樂
003_0437_c_03L法非法一切求十願百千大願品具足
003_0437_c_04L是人住地中十神通明中現無量身心
003_0437_c_05L口別用說地功德百千萬劫不可窮盡
003_0437_c_06L而爾所釋迦略開神通明品如觀十二
003_0437_c_07L因緣品中說

003_0437_c_08L
述曰第六地
擧章云華光者般若正
003_0437_c_09L照境破闇故
次地行中初總標
003_0437_c_10L天眼明下別顯十通十通者
003_0437_c_11L天眼通知微塵數大色分成六道衆
003_0437_c_12L生身及一一身細分成大亦分分知
003_0437_c_13L二天耳通言非非音非非聲者傳說
003_0437_c_14L并知音聲空故一切法聲者餘一切
003_0437_c_15L有說聞法蠡等敎也三天身通
003_0437_c_16L卽神境通知一切色及知色之非色
003_0437_c_17L等性於一念中通於十方國土之量
003_0437_c_18L三世劫量隨國大小現齊爾所時塵
003_0437_c_19L數身故四天心通卽他心智五天
003_0437_c_20L人通知人事故卽宿住智六天解
003_0437_c_21L脫通卽漏盡智知諸衆生解脫方便
003_0437_c_22L滅滅皆盡者滅十障故已後四
003_0437_c_23L「樂」下有「國」{甲}「智」作「知」{甲}「以」無
003_0437_c_24L{甲}

003_0438_a_01L모두 타심통他心通을 차별화한 것이다. 차례대로 타인의 선정(定)ㆍ지혜(慧, 覺)ㆍ염念ㆍ원願을 아는 것을 바로 넷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선정에 든 것도 없고 선정에 들지 않은 것도 없음”이라는 것은 앞의 두 가지 마음(선정에 든 것과 선정에 들지 않은 것)이, 체성이 공하기 때문이다. “30심”이라는 것은 지전地前의 마음이다. “일체의 구하는 것”이라는 것은 법과 법 아닌 것에 대해 (법을) 닦고 (법이 아닌 것을) 끊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이라는 것은 단지 이곳에서는 10신통명에 해당하는 것만 석가불에게 간략하게 설했음을 밝힌 것이다.

Ⓖ 제7지(滿足體性地, 體性滿足地)

“불자여, 보리살타의 만족체성지이다. 이 법 가운데 열여덟 가지의 성인의 지혜의 품에 들어가니, 아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몸에 누漏(번뇌)의 허물이 없는 것이고, 입에 말로 인한 죄가 없는 것이며, 생각에 잘못된 생각이 없는 것이고, 여덟 가지 법75)을 여읜 것이며, 일체법 가운데 버리는 것이고, 항상 삼매에 있는 것이니, 이것이 이 지위에 들어가서 여섯 가지 품을 구족하는 것이다. 다시 이 지혜로부터 여섯 가지 원만하게 구족한 지혜를 생기하니, 삼계의 결結(번뇌)과 습기를 끝내 받지 않고자 하기 때문에 욕구족欲具足을 이루고, 일체의 공덕과 일체의 법문에 있어서 추구하는 것을 원만하게 이루기 때문에 진심족進心足을 이루며, 일체의 법의 일과 일체의 겁의 일과 일체의 중생의 일을 한마음 속에서 일시에 알기 때문에 염심족念心足을 이루고, 이 이제의 모양인 육도중생(속제)과 일체의 법(진제)을 (알기 때문에) 지혜족智慧足을 이루며, 10발취인十發趣人에서부터 일체의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결結을 없애고 습기를 없애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해탈족解脫足을 이루고, 일체의 중생에 대해 다른 사람과 자신의 제자가 누漏가 없고 모든 번뇌의 습기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지지타신해탈족以智知他身解脫足을 이룬다. 이 사람은 여섯 가지에 들어가 밝은 지혜를 원만하게 구족한 가운데 곧 지혜를 일으키니, 몸은 육도중생의 심행心行을 따라서 (다양한 형태를 나타내고,) 입은 한량없는 법문을 잘 설하여 일체의 중생에게 열어 보이기 때문이며, 일체의 중생의 심행을 따라서 항상 삼매에 들면서도 시방의 대지를 진동시키고 허공에 꽃을 변화하여 나타내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에 행하는 것이 있게 하고, 대명大明을 구족하여 과거 일체의 겁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것을 보고

003_0438_a_01L皆是他心通之差別如次知他定
003_0438_a_02L慧念願立爲四故非定非不定者
003_0438_a_03L以上二心體性空故三十心者
003_0438_a_04L前心也一切求者於法非法求修斷
003_0438_a_05L言而爾所者但明爾所十通明者
003_0438_a_06L於釋迦略說也

003_0438_a_07L
若佛子菩提薩埵滿足體性地入是法
003_0438_a_08L十八聖人智品下地所不共所謂
003_0438_a_09L身無漏過口無語罪念無失念離八
003_0438_a_10L一切法中捨常在三昧是入地六
003_0438_a_11L品具足復從是智生六足智三界結習
003_0438_a_12L畢竟不受故欲具足一切功德一切
003_0438_a_13L法門所求滿故進心足一切法事
003_0438_a_14L切劫事一切衆生事以一心中一時知
003_0438_a_15L念心足是二諦相六道衆生一切
003_0438_a_16L法故智慧足知十發趣人乃至一切
003_0438_a_17L無結無習故解脫足是一切衆生
003_0438_a_18L知他人自我弟子無漏無諸煩惱習故
003_0438_a_19L以智知他身1)解脫 [83] 是人入六滿足
003_0438_a_20L明智中便起智身隨六道衆生心行
003_0438_a_21L口辯說無量法門品示一切衆生故
003_0438_a_22L一切衆生心行常入三昧而十方大地
003_0438_a_23L虛空化華故能令衆生心行以大
003_0438_a_24L明具足見過去一切劫中佛出世亦是

003_0438_b_01L또한 일체중생의 마음을 열어 (그들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며, 집착이 없는 지혜로 현재 시방의 일체의 국토에 계시는 일체의 부처님과 일체의 중생의 마음과 마음이 행하는 것을 보고, 신통력을 내는 지혜로 미래의 일체의 겁에 일체의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고 일체의 중생이 이 부처님으로부터 도道를 받아 법을 듣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a. 장문章門

제7지인데, 이 가운데 장문을 제시한 것에서 “만족”이라 한 것은, 공용이 원만하기 때문이다.

b. 행상行相

a) 실제로 행함

이 지위에서의 행상에 두 가지가 있으니, 실제로 실천하는 것을 밝혔기 때문이고, 교화하는 모습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열여덟 가지의 성인의 지혜”라는 것은 분수에 따라 18불공법十八不共法을 얻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소疏를 지어 말하기를, “처음의 여섯 가지 품 가운데 (첫 번째에서) ‘몸에 누漏의 허물이 없는 것이고’라는 것은 살생ㆍ도둑질ㆍ음행의 업과 습기를 여의기 때문이고, 두 번째에서 ‘입에 말로 인한 죄가 없는 것이며’라는 것은 망어妄語 등의 네 가지 죄를 짓는 말76)을 여의기 때문이며, 세 번째에서 ‘생각에 잘못된 생각이 없는 것이고’라는 것은 탐욕을 여의고 분노와 삿된 견해를 여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 밖에도 자세하게 설했는데 이는 옳지 않다. 이와 같은 열 가지 악은 앞의 제2지에서 이미 영원히 여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몸에 누의 허물이 없는 것이고”라는 것은 몸에 오류와 과실이 없는 것이고, “입에 말로 인한 죄가 없는 것이며”라는 것은 조급하고 포악한 음성이 없는 것이며, “생각에 잘못된 생각이 없는 것이고”라는 것은 망령되고 잘못된 생각이 없는 것이다.
“여덟 가지 법을 여읜 것이며”라는 것은 잘 분별하여 버리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아라한은 세간의 여덟 가지 법에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여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은 버리고, 보살은 여덟 가지의 법의 성품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일체법 가운데 버리는 것이고”라는 것은 여러 가지 (차별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생사와 열반에 대해 차별하는 생각이 없이 가장 뛰어나게 크게 버리는 것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항상 삼매에 있는 것이니”라는 것은, 선정이 아닌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는 이 지위에 들어가서 원만하게 구족하는 것이다.
두 번째 여섯 가지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욕구족欲具足이니, 삼계의 결結에 대해 두려워함이 없이 소지장所知障을 청정히 할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구족”이라는 것은 지금은 무감無減77)이라고 한다. 둘째는 정진구족精進具足(진심족)이니, 구하는 것을 원만하게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염구족念具足(염심족)이니, 모든 법과 겁과 사람의 일을 멀리까지 억념하기 때문이다.

003_0438_b_01L示一切衆生心以無著智見現在十方
003_0438_b_02L一切國土中一切佛一切衆生心心所
003_0438_b_03L以神通道智見未來中一切劫一切
003_0438_b_04L佛出世一切衆生從是佛受道聽法故

003_0438_b_05L
述曰第七地中擧章云滿足者功用
003_0438_b_06L滿故
地行有二實行故化相故
003_0438_b_07L初也
言十八聖人智者以隨分得十
003_0438_b_08L八不共法故古有作疏云初六中
003_0438_b_09L無漏過者離殺盜婬業及習故二口
003_0438_b_10L無語罪者離妄語等四罪語故三念
003_0438_b_11L無失念者離貪離瞋及邪見故乃至
003_0438_b_12L廣說非也如此十惡前第二地
003_0438_b_13L永離故今解身無漏過者身無誤失
003_0438_b_14L口無語罪者無卒暴音也念無
003_0438_b_15L失念者無忘失念也
離八法者
003_0438_b_16L不擇捨羅漢由執世間八法專求自
003_0438_b_17L捨利他事菩薩遠離八法性故
003_0438_b_18L一切法中捨者無種種想也於生死
003_0438_b_19L涅槃無差別想由住第一大捨故
003_0438_b_20L在三昧者無不定心也此六入地之
003_0438_b_21L所滿足
第二六者一欲具足於三
003_0438_b_22L界結無所怖畏堪求所知障淸淨故
003_0438_b_23L言具足者今云無減也二精進具足
003_0438_b_24L所求能滿故三念具足遠憶諸法劫

003_0438_c_01L넷째는 혜구족慧具足(지혜족)이니, “중생”이라는 것은 세제世諦이고, “일체의 법”이라는 것은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다. 네 가지로 중첩되는 가운데 단지 처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해탈구족解脫具足(해탈족)이니, 모든 해탈을 알아서 아직 얻지 않은 것에 대해 물러나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지타해탈족知他解脫足(以智知他身解脫足)이니, 곧 선정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반드시 선정의 힘으로 말미암아 제자의 마음도 또한 염오됨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여기에서 여섯 가지 구족에 들어간 가운데 다시 뒤의 것을 일으켜 여섯으로 나뉜 것을 원만하게 갖추고자 하기 때문에 곧 지혜를 일으킨다. 첫째는 몸으로 육도중생의 심행을 따라서 다양한 형태를 나타낸다. 둘째는 입으로 법을 잘 설하여 중생에게 열어 보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중생의 마음을 따라 선정에 들면서도 (대지를) 진동시킨다. “허공에 꽃을 변화하여 나타내기 때문에”라는 것은 꽃을 비처럼 뿌리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에 행하는 것이 있게 하는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는 차례대로 세 가지 업에 있어서 지혜를 따르는 행이다. 넷째는 대명을 구족하여 과거의 부처님을 보고 또한 중생의 심안心眼을 열어 볼 수 있게 한다. 다섯째는 집착이 없는 지혜로 현재의 부처님을 보는 것 등을 행한다. 여섯째는 신통력을 내는 지혜로 미래의 부처님을 보는 것 등을 행한다. 여기에서 “대명”, “집착이 없는 (지혜)”, “신통력을 (내는 지혜)”라는 것은 (차례대로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에 통달하는 지혜이니, 이름에 있어서 차별이 있는 것이다.

b) 교화하는 모습

“이 열여덟 가지 성인의 지혜에 머물면, 마음마다 삼매에 들어 삼계의 티끌처럼 많은 색이 바로 나의 옛 몸이고 일체중생이 바로 나의 부모임을 관찰하고, 지금 이 지위에 들어가서 일체의 공덕과 일체의 신광神光(지혜)과 일체의 부처님께서 행한 법에서부터 8지와 9지의 일체의 법문품에 이르기까지 ‘내가 모두 이미 들어갔다’라고 알기 때문에 일체의 불국토에서 부처가 되어 도를 이루고, 법륜을 굴리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멸도(열반)에 드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며, 전전하면서 타방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국토에서 교화한다.”

두 번째는 교화하는 모습인데, 이 가운데 앞은 평등함을 관찰하여 자비를 일으키는 문이고,

003_0438_c_01L人事故四慧具足衆生者世諦也
003_0438_c_02L一切法者第一義諦也四重之中
003_0438_c_03L且擧初故五解脫具足知諸解脫
003_0438_c_04L未得不退故六知他解脫足卽定不
003_0438_c_05L退也必由定力知弟子心亦無染故

003_0438_c_06L
是人入此中六足中更欲起後滿分
003_0438_c_07L六故便起智也一身隨六道心行而
003_0438_c_08L二口辯說法示衆生故三隨衆生
003_0438_c_09L入定振動言虛空化華者以雨
003_0438_c_10L華故能令衆生心有所行上三如次
003_0438_c_11L三業隨智行也四以大明具足見過
003_0438_c_12L去佛亦令衆生心眼得見五以無著
003_0438_c_13L見現在佛等六以神通智見未來
003_0438_c_14L佛等此中大明無著神通者達三世
003_0438_c_15L名之差別也

003_0438_c_16L
住是十八聖人中心心三昧觀三界微
003_0438_c_17L塵等色是我故身一切衆生是我父
003_0438_c_18L而今入是地中一切功德一切神
003_0438_c_19L2) [84] 一切佛所行法乃至八地九地中
003_0438_c_20L一切法門品我皆已入故於一切佛國
003_0438_c_21L土中示現作佛成道轉法輪示入滅
003_0438_c_22L轉化他方過去來今一切國土中

003_0438_c_23L
述曰第二化相中先觀平等慈悲門
003_0438_c_24L「解脫」一作「六通」{甲}「光」一作「呪」{甲}

003_0439_a_01L다음은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헤아리는 것이며, 나중은 변화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역량과 능력을 헤아리는 것에서 “일체의 공덕”이라는 것은 복덕품이고, “일체의 신광”이라는 것은 지혜품이며, “일체의 부처님께서 행한 법” 등이라는 것은 결과를 증득하는 법문 및 승진勝進의 법문 가운데 이미 들어가서 이해한 것이다.

Ⓗ 제8지(佛吼體性地, 體性佛吼地)

“불자여, 보리살타의 불후체성지이다. 법왕위삼매法王位三昧에 들어가 그 지혜가 부처님과 같다. 불후삼매佛吼三昧를 얻기 때문에 열 가지 품의 대명大明에 들어가게 하는 선정의 문이 항상 바로 앞에 있다. 꽃(果地)과 광명(因地)과 관련된 법을 설하는 음성에 의해 심삼매心三昧에 들어간다.”

a. 선정을 행함

제8지인데, 이 가운데 다섯 가지 행이 있다. 이것은 처음에 선정을 행하는 것이다.
처음에 공용이 없는 것78)을 법왕위삼매에 들어간 것이라고 하니, 그 지혜는 불과佛果와 같다. 법을 설하는 선정79)이기 때문에 비록 설한 것이 있더라도 모양이 없고, 공용이 없는 것에 머물기 때문에 “부처님과 같다.”라고 했다. 뒤에서 말한 “내공內空” 등의 열 가지 대명혜大明慧80)에 들어가게 하는 선정의 문이 저절로 흘러나오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이 얻은 과지와 어둠을 제거하는 것과 관련된 가르침을 설하는 음성으로 인해 보살이 얻어야 할 심정心定(심삼매)에 들어간다. “꽃”은 능히 증득한 결과이고, “광명”은 어둠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b. 지혜를 행함

“그 공에 대한 지혜(대명혜)라는 것은, 내공內空을 아는 지혜의 문이고 외공外空을 아는 지혜의 문이며, 유위공有爲空을 아는 지혜의 문이고 무위공無爲空을 아는 지혜의 문이며, 성공性空을 아는 지혜의 문이고 무시공無始空을 아는 지혜의 문이며, 제일의공第一義空을 아는 지혜의 문이고 공도 역시 공임을 아는 지혜의 문이며, 공도 공이라는 것도 다시 공임을 아는 지혜의 문이고, 공도 공이라는 것도 다시 공이라고 한 것도 공임을 아는 지혜의 문이다. 이와 같은 열 가지 공의 문은 아래의 지위의 보살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허공평등지虛空平等地는 설할 수 없고 설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는 지혜를 행하는 것이다. “내공” 등은 『변중변론辯中邊論』81)ㆍ『대지도론』에서 자세히 설한 것82)과 같다. 열 번째인 “공도 공이라는 것도 다시 공이라고 한 것도 공임을 아는 지혜의 문”에서 아홉 번째인 “공도 공이라는 것도 다시 공임을 아는 지혜의 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한다. 총괄적으로 열 가지의 공성평등지空性平等地(허공평등지)를 맺었는데, 열 가지 문으로 임시로 설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설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003_0439_a_01L次量自力能後現變化力能之中
003_0439_a_02L一切功德者福品也一切神光者
003_0439_a_03L智品也一切佛所行法等者證果法
003_0439_a_04L及勝進法門中已入解也

003_0439_a_05L
若佛子菩提薩埵佛吼體性地入法王
003_0439_a_06L位三昧其智如佛佛吼三昧故十品
003_0439_a_07L大明1) [85] 常現在前華光音入心三昧

003_0439_a_08L
述曰第八地中有五種行此初定行

003_0439_a_09L
初無功用名入法王位三昧也其智
003_0439_a_10L似果說法定故雖有所說而於無
003_0439_a_11L相無功用住故言似佛下內空等十
003_0439_a_12L大明慧所入定門任運流故諸佛得
003_0439_a_13L果除闇敎音入菩薩心定也華能
003_0439_a_14L得果光除闇義

003_0439_a_15L
其空慧者謂內空慧門外空慧門
003_0439_a_16L爲空慧門無爲空慧門性空慧門
003_0439_a_17L始空慧門第一義空慧門空空慧門
003_0439_a_18L空空復空慧門空空復空空慧門如是
003_0439_a_19L十空門2) [86] 所不知虛空平等地
003_0439_a_20L可說不可說

003_0439_a_21L
述曰第二慧行謂內空等如辨中
003_0439_a_22L邊智論廣說於此第十泯第九也
003_0439_a_23L總結十空性平等地可以十門假說
003_0439_a_24L而不著故亦不可說

003_0439_b_01L
c. 신통력을 행함

“신통도를 내는 지혜를 얻어서 일념지一念智로 일체법에 대해서 분분히 차별되어 다른 것을 알고, 한량없는 불국토에 들어가 낱낱의 부처님 앞에서 법에 대해 질문하여 가르침을 받는다. 법을 굴려 일체중생에게 주어 제도하니, 법의 약을 일체중생에게 베풀어 줌으로써 뛰어난 법사가 되고 뛰어난 도사導師가 된다. 네 가지 마구니83)를 파괴하고 법신을 구족하여 변화하고 변화하니,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 여러 부처님의 숫자에 들어가고, 여러 (보살의) 제9지와 제10지의 숫자에도 들어간다. 법신을 길러서 백천 가지의 다라니문陀羅尼門과 백천 가지의 삼매문과 백천 가지의 금강문金剛門과 백천 가지의 신통문과 백천 가지의 해탈문을 얻으니, 이와 같은 백천 가지의 허공평등문虛空平等門 가운데에서 크게 자유자재함을 얻어 한 생각에 한순간에 행한다.”

셋째는 신통력을 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통력을 내는 지혜로 모든 일을 두루 알고 한량없는 국토에 들어가서 신통력으로 경계를 비추어 보기를 마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처럼 하며 나머지 진실한 지혜로 사事에 통달하고 이理에 통달하여 행과 앎이 깊고 세밀해져서 뜻대로 분명히 아는 것이다.
“법을 굴려 일체중생에게 주어 제도하니”라는 것은 자신이 아는 것을 중생에게 주는 것이다. 보살이 법신을 구족하여 온갖 변화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 불과佛果와 서로 유사하니,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 여러 부처님의 숫자에 들어가니 하물며 제9지와 제10지의 수임에랴.”라고 한 것이다. “(허공)평등문”이라는 것은 다라니문 등이다. 행해야 할 대상인 진여문眞如門 가운데에서 크게 자유자재함을 얻어 한 생각에 한순간에 수행한다.

d. 설법을 행함

“겁을 겁이 아니라고 설하고 겁이 아닌 것을 겁이라고 설하며,84)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설하고 도를 도가 아니라고 설하며, 육도중생이 아닌 것을 육도중생이라고 설하고 육도중생을 육도중생이 아니라고 설하며, 부처님이 아닌 것을 부처님이라고 설하고 부처님을 부처님이 아니라고 설한다.”

넷째는 설법을 행하는 것이다. 겁은 공한 것이어서 겁이 아니라고 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 겁이 아닌 것을 겁이라고 설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이것에 준한다.

e. 비춤을 행함

“제불체성삼매諸佛體性三昧에 들어가고 나오면서 (자신의 본성을) 돌이켜서 비추어 보고, (연기하는 것을) 수순하여 비추어 보고 거꾸로 비추어 보며,

003_0439_b_01L
神通道智以一念智知一切法分分別
003_0439_b_02L而入無量佛國土中一一佛前諮受
003_0439_b_03L轉法度與一切衆生而以法藥施一
003_0439_b_04L切衆生爲大法師3) [87] 導師破壞四
003_0439_b_05L法身具足化化入佛界是諸佛數
003_0439_b_06L是諸九地十地數中長養法4) [88] 百千陀
003_0439_b_07L羅尼門百千三昧門百千金剛門
003_0439_b_08L千神通門百千解脫門如是百千虛空
003_0439_b_09L平等門中而大自在一念一時行

003_0439_b_10L
述曰第三通行謂神通智徧知諸事
003_0439_b_11L入無量土神通照境如眼見色
003_0439_b_12L眞實智達事達理行解深細如意識
003_0439_b_13L轉法度與一切衆生者以己之解
003_0439_b_14L授與衆生也菩薩法身示現諸化
003_0439_b_15L果相似言入佛5) [89] 是諸佛數況是
003_0439_b_16L九地十地數也平等門者陀羅尼門
003_0439_b_17L所行眞如門中而大自在一念一
003_0439_b_18L而修行也

003_0439_b_19L
劫說非劫非劫說劫非道說道道說
003_0439_b_20L非道非六道衆生說六道衆生六道衆
003_0439_b_21L生說非六道衆生非佛說佛佛說非佛

003_0439_b_22L
述曰第四說行劫空非劫然不都
003_0439_b_23L非劫說劫餘皆準此

003_0439_b_24L
而入出諸佛體性三昧中反照順照

003_0439_c_01L앞을 비추어 보고 뒤를 비추어 보며, 인因을 비추어 보고 과果를 비추어 보며, 공空을 비추어 보고 유有를 비추어 보며, 제1중도의제(第一中道義諦)를 비추어 본다. 이 지智는 오직 8지地에 이르러야 증득하는 것이고, 아래의 지위에서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전도되지 않으며, 벗어나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으며, 태어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

이 지위의 법문품法門品은 한량없고 한량없으며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이다. 지금 간략하게 이 지위 가운데 백천 부분으로 나눈 것에서 한 털끝 정도의 일만 열었다. 「나한품羅漢品」85)에서 이미 밝혔다.

다섯째는 비춤을 행하는 것이다. “제불체성삼매”라는 것은, 전하는 설에서 말하기를, “과덕果德에 상응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돌이켜서 비추어 보고”라는 것은 자신의 본성을 되돌려서 비추어 보기 때문이다. “수순하여 (비추어 보고) 거꾸로 (비추어 보며)”라는 것은 수순하여 나오는 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로 연기를 관찰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경계에 수순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이하는 지혜를 행함으로 얻는 힘을 밝힌 것이다. 공용을 여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작동하지 않고”라고 했고, 영원히 염오를 조복시키기 때문에 “전도되지 않으며”라고 했으며, 항상 생공生空(衆生空)을 증득하기 때문에 “벗어나지도 않고”라고 했고, 법공法空을 알아 상속하지 않으니 “들어가지도 않으며”라고 했으며, 영원히 다시 분단생사를 받지 않기 때문에 “태어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맺는 글은 알 수 있을 것이다.

Ⓘ 제9지(佛華嚴體性華嚴地, 體性華嚴地)

a. 내적으로 증득함

“불자여, 보리살타의 불화엄체성지佛華嚴體性地이다. 불위의정佛威儀定과 여래삼매자재왕왕정如來三昧自在王王定에 아무 때나 들어가고 나온다.”

제9지인데, 이 가운데 “불화엄”이라고 한 것은 네 가지 무애無礙86)로 장엄한 행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 지위에서의 행상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적으로 증득하는 것을 밝혔기 때문이고, 외적으로 교화하는 것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이다.
불위의정과 설법자재왕정說法自在王定(여래삼매자재왕왕정)을 나타내어 항상 눈앞에 있기 때문에 다시 들어가고 나옴에 있어서 별도의 시간이 없다.

b. 외적으로 교화함

“시방의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백억 개의 해와 달이 주위를 도는 백억 개의 사천하에서

003_0439_c_01L逆照前照後照因照果照空照有
003_0439_c_02L照第一中道義諦照是智惟八地所證
003_0439_c_03L下地所不及不動不到 [34] 不出不入
003_0439_c_04L生不滅是地法門品無量無量不可
003_0439_c_05L說不可說今以略開地中百千分一毛
003_0439_c_06L頭許事羅漢品中已明

003_0439_c_07L
述曰第五照行諸佛體性三昧者
003_0439_c_08L傳說果德相應故反照者還照自故
003_0439_c_09L言順逆者如順逆觀緣起餘皆隨境
003_0439_c_10L不動已下明智行力離功用故言不
003_0439_c_11L永伏染故言不倒恒證生空言不
003_0439_c_12L法空不續言不入永不復受分段
003_0439_c_13L生死故言不生不滅也結文可解

003_0439_c_14L
若佛子菩提薩埵佛華嚴體性地以佛
003_0439_c_15L威儀如來三昧自在王王定出入無時

003_0439_c_16L
述曰第九地中言佛華嚴者具四
003_0439_c_17L無礙莊嚴行故地行有二內證故
003_0439_c_18L外化故此初也現佛威儀定及說
003_0439_c_19L法自在王定恒現前故更無出入別
003_0439_c_20L時也

003_0439_c_21L
於十方6)三千世界 [90] [35] 百億日月百億四
003_0439_c_22L「定」一作「空」{甲}「地」下一有「各」{甲}
003_0439_c_23L「大」一無{甲}
「身」下一有「具足」{甲}「界」
003_0439_c_24L作「果」{甲}{乙}{丙}
「三天世界」作「十世界中」又
003_0439_c_25L其註曰一作「二天世界」{甲}

003_0440_a_01L일시에 성불하여 법륜을 굴리고 멸도하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일체의 불사佛事를 행한다. 한마음 속에서 일시에 일체의 중생에게 일체의 색신을 나타내어 보이는데, 80종호八十種好와 32상三十二相87)을 갖추어 자유자재하게 큰 즐거움을 누리니 허공과 같이 걸림이 없으며, 한량없는 대비와 지혜의 광명에 의해 복덕의 모양과 지혜의 모양으로 장엄하여 하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며 육도六道의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일체의 법을 벗어났지만, 항상 육도에 나아가서 한량없는 몸과 한량없는 입과 한량없는 뜻을 나타내어 한량없는 법문을 설하면서 능히 마구니의 세계를 굴려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고 부처님의 세계를 굴려 마구니의 세계에 들어가며, 다시 일체의 견해를 굴려 부처님의 견해에 들어가고 부처님의 견해를 굴려 일체의 견해에 들어가며, 부처님의 성품을 굴려 중생의 성품에 들어가고 중생의 성품을 굴려 부처님의 성품에 들어간다. 그 지위의 광명은 광명과 광명이 비추고, 지혜와 지혜가 비추며, 밝게 빛나고 밝게 빛난다. 사무외四無畏88)와 사무량과 10력과 18불공법과 팔해탈을 갖추고, 열반을 증득하니,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하나의 도에 계합하여 청정해진다. 그러나 일체의 중생이 부모와 형제라는 생각을 일으켜 그들을 위해 설법하기를 일체의 겁이 다할 때까지 하여 불도의 과를 얻게 한다. 또한 일체의 국토에 몸을 나타내어 일체의 중생이 그 모습을 아버지와 같은 것으로 어머니와 같은 것으로 보게 하고, 천마天魔와 외도도 그 모습을 아버지와 같은 것으로 어머니와 같은 것으로 보게 한다. 이 지위에 머무는 가운데 생사의 변제로부터 일어나 금강심金剛心의 변제에 이르기까지 한 생각이 일어나는 마음 가운데 이와 같은 일을 나타내고 한량없는 중생의 세계로 굴러서 들어간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것을 간략하게 설하였으니 바다에서 퍼 올린 한 방울의 물과 같을 뿐이다.

두 번째는 외적으로 교화하는 것이다. “시방의 삼천대천세계에 있는(十界)”이라는 것은 시방의 삼천대천세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타낸 낱낱의 몸은 32상과 80종호를 구족하여 자유자재하게 노닐며 걸림이 없음이 허공과 같다. 한량없는 대비와 지혜의 광명에 의해 복덕의 모양과 지혜의 모양으로 법신을 장엄했다. “일체의 법을 벗어났지만” 등이라고 한 것은 육취사생법六趣四生法89)에 속박되지 않지만 육취사생을 행하여 마구니의 세계 등을 굴려 부처님의 세계 등에 들어가니, 성품이 평등하기 때문에 설함에 걸림이 없는 것이다.

003_0440_a_01L天下一時成佛轉法輪乃至滅度
003_0440_a_02L切佛事以一心中一時示現一切衆生
003_0440_a_03L一切色身八十種好三十二相自在樂
003_0440_a_04L虛空同無量大悲光明1) [91] [36] 莊嚴
003_0440_a_05L天非人非六2) [92] 一切法外而常行六
003_0440_a_06L現無量身無量口無量意說無量
003_0440_a_07L法門而能轉魔界入佛界佛界入魔界
003_0440_a_08L復轉一切見入佛見佛見入一切見
003_0440_a_09L性入衆生性衆生性入佛性其地光
003_0440_a_10L光光照慧慧照明燄明燄無畏無量
003_0440_a_11L十力十八不共法解脫涅槃無爲一道
003_0440_a_12L淸淨而以一切衆生作父母兄弟爲其
003_0440_a_13L說法盡一切劫得道果又現一切國土
003_0440_a_14L爲一切衆生相視如父如母天魔外道
003_0440_a_15L相視如父如母住是地中從生死際起
003_0440_a_16L至金剛際以一念心中現如是事而能
003_0440_a_17L轉入無量衆生界如是無量略說2)
003_0440_a_18L海一渧 [93] [37]

003_0440_a_19L
述曰第二外化十世界者十方大
003_0440_a_20L千故所現身別相好具足自在無
003_0440_a_21L與虛空同無量大悲智慧光明
003_0440_a_22L福相智相莊嚴法身言一切法外等
003_0440_a_23L非趣生法而行趣生轉魔界等入
003_0440_a_24L佛界等性平等故說無礙也
光光

003_0440_b_01L
“광명과 광명이 비추고”라는 것은 두 가지 공을 비추기 때문이다. “지혜와 지혜가 비추며”라는 것은 그 뒤(두 가지 공을 비춘 뒤)에 일어나는 (두 가지 공에 대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밝게 빛나고 밝게 빛난다”라는 것은 무간도와 해탈도를 이루기 때문이다. 사무외와 사무량과 10력과 18불공법과 팔해탈八解脫90) 등을 갖추고 머묾이 없는 열반을 증득하여 두 변에 머물지 않으니,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하나의 도에 계합하여 소지장所知障이 청정해진다.
모든 중생에 대해 부모 등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설법하기를 겁이 다할 때까지 하여 불도의 과를 얻게 한다. “생사의 변제로부터 일어나”라는 것은, 처음 보리심을 발한 때부터 금강심金剛心을 얻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소원과 행을 한마음에 나타내어 중생의 세계에 들어가 교화하는 것이다.

Ⓙ 제10지(入佛界體性地, 體性入佛界地)

“불자여, 보리살타의 입불계체성지入佛界體性地이다. 그 큰 지혜(체)에 의해 공(두 가지 공, 작용)을 알지만, 공함과 공함(두 가지 공)이 다시 공함을 알아 허공과 같이 성품이 평등한 지혜를 얻고, 여래의 성품을 갖추어 열 가지 공덕품을 구족한다. (법계는) 공하여 모두 하나의 모양이고 체성이 무위無爲이며, (법신은) 신神이 허공과 같고 체는 하나이며, 법마다 법성法性과 함께하기 때문에 여래如來라고 한다. 사제四諦와 이제二諦에 수순함에 상응하고, 생사의 수레바퀴의 변제를 다하며, 법에 의해 법신을 길러 두 가지 모양이 없으니, 이를 응공應供이라 한다. 일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일을 두루 덮어서 정지正智와 성해탈지聖解脫智를 얻고, 일체법의 유有ㆍ무無와 일체의 중생의 근기를 알기 때문에 이를 정변지正徧知라고 한다. 지혜의 광명을 밝힘과 수행함이 부처님의 과에 이르렀을 때 구족되기 때문에 이를 명행족明行足이라 한다. 삼세의 부처님의 법에 잘 가서 도달한 법이 선대의 부처님의 법과 같다.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날 때에도 선하고 선하며,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도 선하고 선하니, 이것을 선선善善91)이라 한다. 이 사람은 이러한 뛰어난 덕을 행하니, 세간에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의 결박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에 세간해탈世間解脫이라 한다. 이 사람은 일체법에서 부처님의 위신에 들어가는데, 위의와 형상을 마치 부처님과 대사(보살)가 하는 것과 같이 하고, 세간(에 들어가 중생을) 해탈하게 하니, (전자의 의미에서) 무상사無上士라고 하고,92) (후자의 의미에서 세간해世間解라고 한다.) 일체의 중생을 조복시키고 수순하게 하니 장부丈夫라고 한다. 하늘과 사람 가운데 처하여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질문하여 법의 말씀을 받는 스승이 되기 때문에 천인사天人師이다.

003_0440_b_01L照者二空故慧慧者彼後智故
003_0440_b_02L燄明燄者無間解脫故備四無畏
003_0440_b_03L四無量十力十八不共法八解脫
003_0440_b_04L無住涅槃不住二邊無爲一道
003_0440_b_05L所知障淨爲諸衆生作父母等說法
003_0440_b_06L窮劫令得道果從生死際起者
003_0440_b_07L初發心至金剛心所有願行於一心
003_0440_b_08L入衆生界而敎化也

003_0440_b_09L
若佛子菩提薩埵入佛界體性地其大
003_0440_b_10L慧空4)空復 [94] [38] 空空復空如虛空性平等
003_0440_b_11L有如來性十功德品具足空同一
003_0440_b_12L體性無爲神虛體一法同法性
003_0440_b_13L名如來應順四諦二諦盡生死輪際
003_0440_b_14L養法身無二是名應供徧覆一切世界
003_0440_b_15L中一切事正智聖解脫智知一切法有
003_0440_b_16L一切衆生根故是正徧知明明修
003_0440_b_17L佛果時足故是明行足善逝三世佛
003_0440_b_18L法同先佛去 [39] 佛去時善善來時善
003_0440_b_19L是名善善是人行是上德入世間中
003_0440_b_20L敎化衆生使衆生解脫一切結縛故名
003_0440_b_21L世間解脫是人一切法上入佛威神
003_0440_b_22L如佛大士行處爲世間解脫名無上
003_0440_b_23L調順一切衆生5) [95] 爲丈夫於天人
003_0440_b_24L敎化一切衆生諮受法言故是天

003_0440_c_01L미묘한 본체를 얻어 두 가지 모양이 없고, 불성佛性과 현각玄覺을 이루어 항상하고 항상하면서 크게 원만하며, 일체의 중생이 예배하기 때문에, 존경하기 때문에 불세존佛世尊이라 한다. 일체의 세상 사람들이 질문하고 답변을 받아 가르침을 받들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위인 것이니, 이 지위는 일체의 성인이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불계지佛界地라고 한다.”

a. 장문章門

제10지인데, 이 가운데 장문을 제시한 것에서 “입불계”라고 한 것은 (부처님의) 직위를 받기 때문이다.

b. 행상行相

a) 행의 공덕

다음은 이 지위에서의 행상을 밝혔는데, 이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행의 공덕을 밝혔기 때문이고, 행의 수승한 이익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이다.

(a) 체와 용을 냄

먼저 체와 용을 내어서 “큰 지혜에 의해 공을 알지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공의 작용이 또한 다시 공하기 때문에 “공함과 공함이 다시 공함을 알아”라고 했다. 다시 공하여 소취所取와 능취能取가 이미 평등하여 허공과 같기 때문에 “허공과 같이 성품이 평등한 지혜를 얻고”라고 했다.
“불과의 덕성德性(여래의 성품)을 갖추어 열 가지 덕을 구족한다.”라고 했으니, 이것은 총괄적으로 표방한 것이다. “열 가지”라는 것은 열 가지 명호이다.
첫째는 여래이다. 청정한 법계는 하나의 모양이고 무위無爲이며, 그 가운데 나타난 법신도 신神은 허공과 같고 체는 하나이며, 일체의 사법事法이 소멸하여 법성과 함께하니,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는 것을 여래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에서는 뜻을 (앞에서) 제시하고, 뒤에 명호를 두었다. 둘째는 응공이다. 지혜를 얻었으니 경계에 수순함에 상응하고, 번뇌를 끊었으니 후세의 존재를 받지 않는 것에 상응하며, 법신을 길러 두 가지 모양이 없으니 정법을 기르는 것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정변지이다. 유정과 기세간의 일을 두루 덮고 모든 법과 유정을 두루 알기 때문이다. 정각正覺에 의해 아는 것을 “정지”라고 하고, 물들고 집착하는 것이 없는 것을 “성해탈지”라고 한다. 넷째는 명행족이다. 원인을 행함과 명明을 증대함이 이미 원만한 경지에 이르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선서善逝이다. 삼세의 부처님의 법에 잘 가는데, 그 도달한 법이 앞서 계셨던 부처님과 같다.

003_0440_c_01L人師妙本無二佛性玄覺常常大滿
003_0440_c_02L一切衆生禮拜故尊敬故是佛世尊
003_0440_c_03L一切世人諮受奉敎故是佛地是地中
003_0440_c_04L一切聖人之所入處故名佛界地

003_0440_c_05L
述曰第十地中擧章云入佛界者
003_0440_c_06L受職位故
次地行中有二行功德故
003_0440_c_07L行勝利故此初也
先出體用言大
003_0440_c_08L慧空然二空用亦復空故言空空復
003_0440_c_09L復空所取能取旣平等空故
003_0440_c_10L如虛空性平等智
有果德性十德
003_0440_c_11L具足此總標也十者十號一者如
003_0440_c_12L淸淨法界一相無爲其中法身
003_0440_c_13L神虛體一一切事法泯同法性
003_0440_c_14L所去來名如來故然經擧義末後
003_0440_c_15L配名二者應供智應順境斷應不
003_0440_c_16L受後有法身無二應正法養故
003_0440_c_17L者正徧智 [40] 徧覆有情及器世事周知
003_0440_c_18L諸法及有情故正覺所知名爲正知 [41]
003_0440_c_19L無所染著名聖解脫智四者明行足
003_0440_c_20L因行增明已到滿故五者善逝
003_0440_c_21L逝於三世佛法其所至法同於先佛
003_0440_c_22L「好」作「相」{甲}「道」下一有「現」{甲}「經
003_0440_c_23L於十方至無量意」恐寫誤當作「經於十方至海一
003_0440_c_24L渧」{甲}{丙}
「空復」一無{甲}「名」上有「故」
003_0440_c_25L{甲}

003_0441_a_01L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날 때 많은 이익이 있으니, “세상을 떠날 때에도 선하고 선하며”라고 했다. 또한 세상에 와서 몸을 나타낼 때에도 또한 이익이 있으니, “세상에 오실 때에도 선하고 선하니”라고 했다. “선선이라 한다.”라고 한 것은 “잘 가서”라고 한 것을 맺은 것이다.
여섯째는 세간해世間解이다. 보살이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덕행을 수행하고 세간에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무상사이다. 모든 행법行法에서 (부처님의) 위신威神에 들어가는데 부처님께서 행하신 위의처威儀處와 형처形處와 같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조어장부調御丈夫이다. 세간에 들어가 중생을 해탈하게 함에 있어서 중생의 굳세고 강렬한 번뇌를 조복시켜 수순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천인사天人師이다. 상대방이 물어서 법의 말씀을 받는 스승이기 때문이다. 열째는 불세존佛世尊이다. (미묘한 본체인) 법신을 얻어 두 가지 모양이 없고, (불성과 현각인) 지혜의 몸을 얻어 항상하면서 크게 원만한 것을 “불”이라 하고, 모든 중생이 예배 드리고 존경하는 대상을 “세존”이라 하기 때문이다.

(b) 총괄적으로 맺으면서 불계지의 명칭을 풀이함

다음은 총괄적으로 맺으면서 불계지의 명칭을 풀이했다. 일체의 세간의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이 지위는 각지覺地(佛地)이다. 아래의 지위에서 와서 들어가니, 또한 “계지界地”라고 한다. 능히 많은 성인이 원만함을 지니도록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때 보배 연꽃에 앉은 일체의 보살에게 수기를 주니 (모두) 기뻐하였다. 법신불께서 손으로 그 정수리를 만지시니 견해를 함께하고 배움을 함께하는 보살이 이구동성으로 둘이 없음을 찬탄하였다. 또한 백천억 개의 세계에 계시는 일체의 부처님과 일체의 보살이 일시에 구름처럼 모여 불가설不可說의 법륜인 허공장화도법문虛空藏化導法門을 굴려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지위에서는 불가설의 기묘한 법문품과 기묘한 삼명삼매문三明三昧門과 다라니문을 갖추는데, 그 아래의 지위의 보살과 범부의 심식心識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의 한량없는 몸과 입과 마음만이 그 근원을 다할 수 있다.

「광음천품光音天品」93)에서 설한 십무외十無畏 같은 것이 (여기에서 설한) 불도佛道(불지에 들어가는 도)와 같다.

b) 행의 뛰어난 이익

두 번째는 행의 뛰어난 이익이다. 10지의 보살이 연꽃에 앉아

003_0441_a_01L佛去世時多有所益言去時善善
003_0441_a_02L來現世時亦有所益言來時善善
003_0441_a_03L名善善者結善逝也
六者世間解
003_0441_a_04L菩薩修行上說五種德行入世間中
003_0441_a_05L敎化衆生令解脫故七者無上士
003_0441_a_06L諸行法上入威神似佛所行義 [42] 形處
003_0441_a_07L八者調御丈夫爲世間解脫調
003_0441_a_08L順衆生剛强煩惱故九者天人師
003_0441_a_09L所諮受法言師故十者佛世尊法身
003_0441_a_10L無二智身恒時大滿名佛一切禮拜
003_0441_a_11L及所尊敬名世尊故
次總結釋佛界
003_0441_a_12L地名一切世人受敎之處是故此地
003_0441_a_13L是覺地也下地來入亦名界地
003_0441_a_14L持羣聖圓滿處故

003_0441_a_15L
爾時坐寶蓮華上一切與授記歡喜
003_0441_a_16L手摩其頂同見同學菩薩異口同音
003_0441_a_17L讃歎無二又有百千億世界中一切佛
003_0441_a_18L一切菩薩一時雲集請轉不可說法輪
003_0441_a_19L虛空藏化導法門是地有不可說奇妙
003_0441_a_20L法門品奇妙三明三昧門陀羅尼門
003_0441_a_21L非下地凡夫心識所知惟佛佛無量身
003_0441_a_22L口心意可盡其原如光音天品中
003_0441_a_23L十無畏與佛道同

003_0441_a_24L
述曰第二行勝利十地菩薩坐蓮華

003_0441_b_01L법신불로부터 수기를 받고 정수리를 만지는 은혜를 입었으며, 견해가 같고 배움이 같은 이들로부터 찬탄을 받았다. “법신”이라는 것은 얇은 명주로 가려진 것처럼 과보로서의 몸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내적인 덕이 이미 원만해졌으니, 다시 일체의 부처님과 보살이 법륜을 굴릴 것을 요청하고, (이것에 의해) 세간을 이익 되게 하니, 굴리는 법륜을 “허공장주변용수화도문虛空藏周徧容受化導門”94)이라 했기 때문이다.

범망경고적기 제2권

003_0441_b_01L蒙法身佛授記摩頂及蒙同見同
003_0441_b_02L學讃歎言法身者如隔輕縠見報身
003_0441_b_03L內德已滿更得一切佛菩薩請轉
003_0441_b_04L法輪饒益世間所轉法輪名虛空
003_0441_b_05L藏周徧容受化導門故

003_0441_b_06L
梵網經古迹記卷第二

003_0441_c_01L
  1. 1)입평등혜체성지入平等慧體性地 : 체성평등지ㆍ평등혜체성지 등과 같은 말이다. 평등혜와 체성을 증입하는 지위라는 뜻인데, 전후 맥락의 일관성을 위해 ‘입’을 계위의 명칭에 포함시켜서 풀었다.
  2. 2)사천하를 다스리는~승乘을 사용하여 : 『범망경순주梵網經順硃』 권상(X39, 24a10)에서 “‘사천’은 사천하이고, ‘과’는 전륜왕의 과보이며, ‘승’은 상보象寶ㆍ마보馬寶의 승乘이고, ‘용’은 부려서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을 참조할 것.
  3. 3)신통력에 의해 (중생을 조복시킨다) : 본문에서 ‘神通’을 앞에 연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바로 뒤의 10력에 연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모호한데, 태현은 이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주석서에서 앞에 연결된 것으로 보고 있고, 태현도 ‘10력’을 시작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앞에 연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아서 이렇게 번역했다.
  4. 4)10호十號 : 부처님을 칭하는 열 가지 덕호.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을 말한다.
  5. 5)일체법을 반조反照하여 보고 : 『범망경직해』 권상(X38, 811a22)에서 “‘일체법을 반조하여 본다’라는 것은, 이 보살이 불평등대혜佛平等大慧를 증득하여 반조하여 보되, 범부일 때부터 망妄을 돌이켜서 진眞으로 돌려보내고, 시각지始覺智로서 일체의 염법染法을 멸하고 일체의 정법淨法을 생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곧 망견을 되돌리는 것을 ‘반’이라 하고, 진여를 비추는 것을 ‘조’라고 풀이했다.
  6. 6)일체법을 역순逆順으로 보며 : 『범망경직해』 권상(X38, 811b1)에서 “‘일체법을 역순으로 본다’라는 것은, 곧 평등불혜平等佛慧로 본원인 자성청정심自性清淨心을 보되, 무명불각無明不覺으로 인해 일념이 망령되게 움직여 진여의 이치를 거스르고 무명의 흐름에 수순하여 일체의 정법淨法을 멸하고 일체의 염법染法을 생기하였음을 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곧 진여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을 ‘역’이라 하고 무명의 흐름에 수순한 것을 ‘순’이라고 풀이했다.
  7. 7)『범망경직해』 권상(X38, 811b3)에서, “비록 진제를 비추어도 공에 침몰하지 않고 속제를 비추어도 유에 걸리지 않아서 이제가 원융하여 두 가지 모양이 없음을 깨달아서 항상 제일의제에 머문다.”라고 했다.
  8. 8)37도三十七道 : 보리를 증득하기 위해 실천해야 할 37가지 도. ‘도’는 보리분菩提分ㆍ도품道品 등이라고도 한다. 37가지는 사념주四念住ㆍ사정근四正勤ㆍ사여의족四如意足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ㆍ칠각지七覺支ㆍ팔정도八正道이다. 이론적으로는 이 37가지를 차례대로 실천하면서 점차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각 항목은 사실상 독립된 수행 방법의 체계를 이루어서 그것 하나만으로 수행법이 완결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9. 9)신인信忍 : 다섯 가지 인忍 중 두 번째. 지상地上의 보살이 무루신無漏信을 얻어 수순隨順하여 의심하지 않는 것. 그 가운데 초지初地를 하품이라 하고, 제2지를 중품이라 하며, 제3지를 상품이라 한다.
  10. 10)140가지의 불공불법不共佛法 : 부처님만이 갖추고 있는 140가지의 뛰어난 특징을 일컫는 말. 범부나 여타의 수행자들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불공不共’이라 한다. 32상ㆍ80종호ㆍ사정四淨ㆍ10력ㆍ사무외ㆍ삼념처三念處ㆍ삼불호三不護ㆍ대비大悲ㆍ무망실법無忘失法ㆍ단번뇌습斷煩惱習ㆍ일체종지一切種智(一切種妙智) 등이다. ‘사정’은, 첫째는 신정身淨이니 번뇌의 습기를 지닌 몸을 버리고 여의어 남김이 없이 하고 최상의 몸을 얻어 생멸에 자재한 것이고, 둘째는 경계정境界淨이니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 대상 사물과 언설된 것 등과 같은 모든 경계에 대해 자재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심정心淨이니 번뇌를 모두 여의어 선근이 성숙해지는 것이고, 넷째는 지정智淨이니 모든 무명의 더러움을 버리고 알아야 할 모든 경지에 대해 걸림이 없고 자재한 것 등이다. ‘삼념처’는 정취正趣ㆍ사취邪趣ㆍ비정비사취非正非邪趣의 세 가지 중생을 바른 생각으로 살펴 기뻐하거나 근심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항상 정념과 정지에 안주하는 것이다.(‘삼념처’는 앞의 주석에서 서술한 ‘삼념주’와 같은 것이다.) ‘삼불호’는 몸과 입과 마음이 일으키는 행위가 항상 청정하여 억지로 보호하지 않더라도 어떤 장애도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무망실법’은 해야 할 일을 항상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이다. ‘단번뇌습’은 움직이거나 멈추거나 바라보거나 말씀을 하거나 항상 번뇌에서 일어난 비슷한 여습餘習을 여읜 것이다. ‘일체종지’는 의요익義饒益ㆍ비의요익非義饒益ㆍ비의비비의요익非義非非義饒益의 세 가지 법을 아는 것이다.
  11. 11)『유가사지론』 권38(T30, 499a9).
  12. 12)오명론五明論 : 고대 인도에서 행해지던 학문 분류법. 오명처五明處라고도 한다. 내오명內五明(불교의 오명)과 외오명外五明(외도의 오명)으로 분류하는데, 여기에서는 내오명을 말한다. 첫째는 내명內明이니 자신을 위해 수행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할 줄 아는 것이고, 둘째는 인명因明이니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굴복시킬 줄 아는 것이며, 셋째는 성명聲明이니 자신을 위해 좋은 음성을 내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음성을 들음으로써 믿어 받아들이게 할 줄 아는 것이고, 넷째는 의명醫明이니 다른 사람의 질병을 치료할 줄 아는 것이며, 다섯째는 교명巧明이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하게 할 줄 아는 것이다.
  13. 13)대지大地 : 보살 10지 중 초지初地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고, 제8지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여기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쓰였으니, 곧 환희지歡喜地를 가리킨다.
  14. 14)북구로주北俱盧洲 : ‘북’은 ⓢuttara의 의역어이고, ‘구로’는 ⓢkuru의 음사어이며, ‘주’는 ⓢdvīpa의 의역어이다. 수미산을 둘러싼 네 개의 주州 중 북쪽에 위치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 수명이 천 세이고 중간에 요절하는 일이 없으며 온갖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기는 하지만, 이 때문에 불법을 수용할 자세를 지닐 수 없고 부처님께서도 이곳에 출현하지 않아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을 듣는 것이 불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15. 15)무상천無想天 : 색계 제4선第四禪에 속하는 하늘. 외도의 수행자들이 최고의 열반으로 여기는 곳으로, 이곳에 태어나는 중생은 마치 겨울잠을 자는 벌레처럼 염상念想이 없다. 이 때문에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을 들을 수 없다.
  16. 16)삼악취ㆍ북취ㆍ무상천 등의 세 가지를 보장報障이라 한다.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받은 과보가 현생에서 가행加行의 선근善根을 심는 데 장애로 작용하는 것을 나타낸 말이다. 『구사석론俱舍釋論』 권13(T29, 247a25)에서 “세 가지의 악도를 과보장이라고 한다. 선도善道의 일부도 또한 장애로 작용하니, 북구로주 사람과 무상천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삼악도(삼악취)는 고통과 어리석음 때문에, 북구로주는 무상無常을 감득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무상천은 외도가 최고의 단계로 믿는 것이기 때문에 가행의 선근을 심는 것을 장애한다.
  17. 17)삼성三性 : 유식학에서 설한 세 가지 존재 형태. 앞의 주석에서 설명한 것을 참조할 것.
  18. 18)사무량四無量 : 부처님과 보살이 한량없는 중생을 두루 제도하여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의 마음. 첫째는 자무량慈無量이니, 무량한 중생을 대상으로 그들이 즐거움(樂)을 얻도록 하는 법을 사유하며 자등지慈等至로 들어가는 것이다. 둘째는 비무량悲無量이니, 무량한 중생을 대상으로 그들이 괴로움을 벗어나도록 하는 법을 사유하며 비등지悲等至로 들어가는 것이다. 셋째는 희무량喜無量이니, 무량한 중생이 괴로움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고 내심 깊이 희열을 느낀다고 사유하며 희등지喜等至로 들어가는 것이다. 넷째는 사무량捨無量이니, 무량한 중생이 모두 평등하고 멀거나 가까운 등의 차별이 없다고 사유하며 사등지捨等至로 들어가는 것이다.
  19. 19)어떠한 것인가 : 본문의 ‘如者’를 풀이한 것이다. 『범망경상권고적기강의』 권6(『일본대장경』 20, 138b)에서 “여如는 여하如何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범망경고적기』에서 ‘여如는 서로 같은 것을 말한다’라고 한 것에서 ‘여’는 ‘여신초각如身初覺’에서의 여를 풀이한 것이다.”라고 한 것을 참조하여 풀었다.
  20. 20)솔이심率爾心 : 심식心識이 외부의 대상을 지각할 때 차례대로 일어나는 다섯 가지 마음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것. 한 찰나에 일어나는 것으로, 갑자기 움직이는 대로 맡겨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아직 선악의 분별이 있지 않다.
  21. 21)추념의식追念意識 : ‘추념’은 ‘수념隨念’이라고도 한다. 과거에 감수된 경계를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의식’은 이러한 작용의 주체인 제6 의식을 가리킨다. ‘추념’은 분별을 세 가지로 분류한 것 중 하나이다. 세 가지란, 첫째는 자성분별自性分別이니 직접적인 지각에 의하여 현재의 경계를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작용이고, 둘째는 수념분별이니 과거의 경계를 억상하고 추념追念하는 작용이며, 셋째는 계탁분별이니 아직 지각되지 않은 대상에 대하여 추리하거나 구상하는 것으로 미래의 대상 경계에 작용한다. 제6 의식에 있어서는 세 가지 분별이 모두 작용한다.
  22. 22)사상事相 : 사법事法을 아는 것이니 체가 각각 다른 것을 말한다.
  23. 23)이상理相 : 이법理法을 아는 것이니 성性이든 상相이든 각각 동일한 이치를 갖는 것을 말한다.
  24. 24)행상行相 : 시간에 나아가서 법을 설하는 것이니 삼세에 걸쳐 천류하기 때문이다.
  25. 25)작주지상作住持相 : 항상 작용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26. 26)『십지경론十地經論』 권11(T26, 190b6).
  27. 27)무연행無緣行 : 분별심에 의해 특정 대상을 반연하려는 마음이 없는 평등한 행을 가리킨다.
  28. 28)사대四大 : 물질을 구성하는 네 가지 근본 요소. 지대地大ㆍ수대水大ㆍ화대火大ㆍ풍대風大 등을 가리킨다.
  29. 29)분단생사分段生死 : 계내界內(삼계의 안)에서 윤회하는 범부의 생사를 가리키는 말. 자신이 지은 업인業因에 따라 몸집의 크고 작음, 수명의 길고 짧음 등에 있어서 한정이 있는 형태의 신체로 생사하는 것을 말한다. 상대어는 변역생사變易生死로 부사의변역생사不思議變易生死라고도 한다. 아라한ㆍ벽지불ㆍ대력보살大力菩薩 등과 같은 성자가 삼계에서 생사윤회하는 몸인 분단생사하는 몸을 벗어나 삼계 밖에서 미묘한 작용이 헤아리기 어려운 몸을 받아 이러한 신체로 생사하는 것을 말한다.
  30. 30)『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T26, 20a4. No. 1521)에서 꼭 일치하는 문장은 찾을 수 없다. 본 서에서 10지를 설한 것을 취의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31. 31)「일체중생천화품一切衆生天華品」 : 대본大本 『범망경』의 한 품으로 추정되는 품의 이름이다.
  32. 32)명미구名味句 : 언어를 총괄하여 일컫는 말. 명구문名句文ㆍ명구미名句味 등이라고도 한다. ‘미’는 ‘문文’이라고도 한다. ‘명’은 물질ㆍ소리ㆍ향기 등과 같은 단어를 가리키는 말로 어떤 의미를 갖는 최소 단위이다. 그 개념에 해당하는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갖는다. ‘미(문)’는 saㆍdha 등과 같은 낱낱의 글자를 가리킨다. ‘구’는 단어(名)로 구성된 문장을 가리킨다. 예컨대 ‘제행은 무상하다’ 등과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하며, 이것에 의해 동작ㆍ성질ㆍ시제 등의 관계가 이해된다. 보통 뒤에 ‘신身’을 붙여 명신ㆍ미신ㆍ구신 등이라고 하는데, 이때 ‘신’은 이러한 것들의 집합을 일컫는 말이다.
  33. 33)세 가지 지혜 : 문혜ㆍ사혜ㆍ수혜 등을 가리킨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주석을 참조할 것.
  34. 34)12분교十二分敎 : 부처님의 설법을 문체ㆍ문장ㆍ기술 형식ㆍ내용 등에 의해 12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35. 35)본문에 따르면, 이 부분에 ‘비유’에 대한 해석이 나와야 하는데 누락되었다. 비유란 비유나 우화 등에 의해 교리를 설명한 것이다.
  36. 36)육주六住 : 육근六根ㆍ육처六處 등이라고도 한다. 『범망경직해』 권상(X38, 816a15)에서 “육근이 펼쳐짐으로써 육처六處를 받아들이는 작용이 있으니, 망심妄心의 의지처이기 때문에 ‘육주’라고 한다.”라고 한 것을 참조할 것.
  37. 37)세 가지의 감수 작용 :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를 가리킨다.
  38. 38)욕취欲取ㆍ아어취我語取ㆍ견취見取ㆍ계취戒取(戒禁取) : 총괄하여 사취四取라고 한다. ‘취’는 집지執持ㆍ집취執取의 뜻. 욕취는 욕계의 오욕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탐착을 가리킨다. 아어취는 일체의 내신內身을 반연하여 일어나는 아집我執을 가리킨다. 견취는 삿된 견해를 진실한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인데, 삿된 견해란, 첫째는 몸이 실재한다는 견해(有身見)를 갖는 것이고, 둘째는 한편에 기울어 집착하는 견해(邊執見)를 갖는 것이며, 셋째는 잘못된 견해(邪見)를 갖는 것이고, 넷째는 일정한 견해에 대해 집착하는 것(見取)이다. 계취는 잘못된 계율을 해탈에 이르게 하는 바른 계율이라고 집착하여 믿고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39. 39)이상은 12연기 중 뒤의 열 가지만 설했는데, 이는 현재를 시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과거에 속하는 앞의 두 가지, 곧 무명ㆍ행은 생략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40. 40)앞의 주석에서 분단생사를 설명한 것을 참조할 것.
  41. 41)『유마힐소설경』 권중(T14, 546c8)에서 “어떤 중생이 오래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하고 제도할 만한 사람이라면, 보살은 곧 7일을 연장하여 1겁이 되게 하고, 그 중생으로 하여금 1겁이라고 여기도록 한다. 어떤 중생이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제도할 만한 사람이라면, 보살은 바로 1겁을 줄여서 7일이 되게 하고, 그 중생으로 하여금 7일이라고 여기도록 한다.”라고 했다. 『범망경고적기』의 『유마경』에서 “하루를 펼쳐서 7대겁과 같게 한다.”라고 한 것과 내용은 동일하지 않지만 시간을 자유자재하게 늘이고 줄여서 교화하는 것이라는 취지는 동일하다.
  42. 42)「법품法品」과 「해관법문천삼매품解觀法門千三昧品」 : 대본大本 『범망경』에 수록된 품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43. 43)승진행勝進行 : 이전에 달성한 경지를 바탕으로 다른 뛰어난 수행의 경지를 향해 전진하는 것. 상대어는 자분행自分行이다.
  44. 44)법선法銑의 『범망경소梵網經疏』 권상(X38, 537a3)에서 “범어 음사어 ‘이염’은 지모智母라고 의역하니, 곧 진속의 경계가 능히 지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지모라고 한다.”라고 한 것을 참조하였다.
  45. 45)증익과 손감의 허물 : 증익의 허물이란 허공의 꽃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망상하는 것이고, 손감의 허물이란 식識과 같은 가유假有를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것이다. 상주하지 않음을 아는 것은 증익의 허물을 여의는 것이고, 단멸하지 않음을 아는 것은 손감의 허물을 여의는 것이다.
  46. 46)부처님은 결과이고, 심행은 원인이라는 말이다.
  47. 47)칠각지七覺支 : 37보리분三十七菩提分(보리를 증득하기 위해 행해야 할 37가지 도) 중 하나. 37보리분은 사념주四念住ㆍ사정근四正勤ㆍ사여의족四如意足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ㆍ칠각지ㆍ팔정도八正道이다. 칠각지 중 정진각지는 정법을 부지런히 닦아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고, 염각지는 항상 선정과 지혜를 마음에 두는 것이며, 택법각지는 지혜에 의지하여 참된 법을 선택하고 거짓된 법을 버릴 수 있는 것이고, 정각지는 선정에 들어가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 것이며, 경안각지는 신심이 경쾌하고 안온한 것이고, 희각지는 정법을 얻어 기뻐하는 것이며, 사각지는 마음에 치우침이 없어서 집착하지 않고 평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48. 48)칠증위와 칠각지의 배대를 일부 누락된 것을 반영하여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七證位上覺念覺慧覺觀覺猗覺樂覺捨覺
    七覺支精進覺支(念覺支)(擇法覺支)定覺支安覺支(輕安覺支)喜覺支(捨覺支)
  49. 49)「일월도품日月道品」 : 대본大本 『범망경』의 한 품으로 추정되는 품의 이름이다.
  50. 50)이승二乘의 멸滅 : ‘멸’은 ⓢnirvāṇa의 의역어로, 음사어는 열반涅槃이다. 이승의 열반을 보통 회신멸지灰身滅智라고 정의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앞의 주석을 참조할 것.
  51. 51)『범망경직해』 권상(X38, 819b19)에 따르면, 선업을 지었는데 선보善報를 받지 않고 악업을 지었는데 악보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해 그 이치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예컨대 삼보에 공양하되 사사로운 마음으로 했으면 선업을 지었지만 악보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또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해치는 포악한 동물을 죽였을 경우는 악업을 행했지만 선보를 받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52. 52)과욕력품果欲力品 : 태현의 주석에 따르면,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의 다른 이름이다. 중생이 과果로서 얻기를 바라는 것을 아는 힘을 가리킨다.
  53. 53)『범망경직해』 권상(X38, 819c24)에 따르면, 이근과 둔근, 대승과大乘果와 소승과小乘果 중 어느 것을 얻을 것인지의 여부를 아는 것이다.
  54. 54)오안五眼 : 육안肉眼(육체적인 눈)ㆍ천안天眼(색계의 천인이 선정을 닦아서 얻은 눈. 원근ㆍ전후ㆍ내외ㆍ주야ㆍ상하를 막론하고 모두 볼 수 있는 눈)ㆍ혜안慧眼(二乘人의 눈. 모든 법의 平等과 性空을 분명히 아는 지혜의 눈)ㆍ법안法眼(보살이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일체의 법문을 두루 비추어 보는 눈)ㆍ불안佛眼(앞의 네 가지 눈이 갖춘 작용을 온전히 갖춘 눈. 보지 못하는 것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도 없고 듣지 못하는 것도 없는 눈) 등을 말한다.
  55. 55)윤생번뇌潤生煩惱 : 생을 윤택하게 하는 미혹의 작용. 임종할 때 미래의 과보에 대한 탐애를 일으켜서 다음 생의 과보를 불러서 끌어들이도록 하는 혹업惑業을 가리킨다.
  56. 56)발업무명發業無明 : 업을 발하는 미혹의 작용을 가리킨다.
  57. 57)앞의 네 가지 지위에서는 오직 속제만 관찰하거나, 오직 진제만 관찰하는데, 이 지위에 이르러서는 진제와 속제를 아울러 관찰할 수 있는 지혜를 운용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58. 58)태현의 분과에는 없지만 전후 문맥을 고려하여 역자가 집어넣었다.
  59. 59)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 이치에 맞는 것과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이다.
  60. 60)자업지력自業智力 : 모든 중생이 삼세에 지은 업과 그 과보를 아는 것이다.
  61. 61)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 모든 중생들이 향수하려는 희喜ㆍ낙樂의 차별을 여실히 아는 것이다.
  62. 62)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 : 중생이 지닌 근품根品의 차별과 그에 따른 과보의 양태를 두루 아는 것이다.
  63. 63)변취행지력徧趣行智力 : 모든 중생이, 자신이 지은 유루행有漏行과 무루행無漏行에 의해 그 과보로서 도달하게 될 곳을 여실히 아는 것이다.
  64. 64)『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권14(T31, 763a20).
  65. 65)사생지력死生智力 : 중생이 죽고 태어나는 때와 미래에 자신이 지은 과보에 따라 태어나는 곳, 태어나는 양태 등을 여실히 아는 것이다.
  66. 66)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 : 과거세에 일어난 모든 일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다.
  67. 67)누진지력漏盡智力 :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어 다시는 태어나지 않음을 여실히 아는 것이다.
  68. 68)순현수順現受 : 과보를 받는 시기의 차이에 따라 업을 셋으로 나눈 것 중 하나. 현생에 지은 업의 과보가 현생에 나타나게 되는 업을 말한다. 순차생수順次生受(順後受, 順生受)는 현생에 지은 업의 과보가 다음 생에 나타나 과보를 받게 되는 업을 가리키고, 순후차수順後次受(順不定受)는 현생에 지은 업의 과보가 제3의 생 이후에 나타나 과보를 받게 되는 업을 가리킨다.
  69. 69)『범망경직해』 권상(X38, 820c4)에서 “육도는 곧 범부이고 육도가 아닌 것은 곧 성인이다.”라고 했다.
  70. 70)크고 밝은~것은 승진도이다 : 번뇌를 제거하고 열반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 과정을 네 단계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첫째는 가행도加行道이니, 방편도方便道라고도 한다. 무간도無間道에 들어가기 전에 번뇌를 끊을 것을 희구하여 번뇌를 끊을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준비하는 수행을 행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둘째는 무간도無間道이니 무애도無礙道라고도 한다. 가행도에서 수행한 공덕이 성취되어 바른 지혜를 발하여 직접 번뇌를 끊는 수행을 행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이 단계에서는 어떤 간격도 없이 바로 번뇌를 끊기 때문에 무간도라고 한다. 셋째는 해탈도解脫道이니, 이미 번뇌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증득하여 해탈을 얻는 수행을 행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넷째는 승진도勝進道이니 승도勝道라고도 하고, 앞의 세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도라는 뜻에서 삼여도三餘道라고도 한다. 해탈도를 성취한 뒤에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나머지의 뛰어난 행을 실천하여 완전하게 해탈을 완성하는 수행을 행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71. 71)시방삼세十方三世 : ‘시방’은 동ㆍ서ㆍ남ㆍ북의 사방과 사방의 사이에 있는 간방과 상ㆍ하 등을 가리키는 말로 공간을 총칭하는 말이다. ‘삼세’는 과거ㆍ현재ㆍ미래를 가리키는 말로 시간을 총칭하는 말이다.
  72. 72)「관십이인연품觀十二因緣品」 : 대본大本 『범망경』의 한 품일 것으로 추정되는 품의 이름이다.
  73. 73)법의 소라(法蠡) : ‘蠡’는 ‘螺’라고도 쓴다. 부처님의 설법을 그 목적이나 내용에 따라 분류하여 법고法鼓ㆍ법우法雨ㆍ법검法劍 등의 비유를 사용하는데, ‘법라’는 이러한 비유 중 하나이다.
  74. 74)열 가지 장애 : 10지의 보살이 각 지에서 얻은 지혜에 의해 다스려야 할 열 가지 장애를 가리킨다. 첫째는 이생성장異生性障이고, 둘째는 사행장邪行障이며, 셋째는 암둔장闇鈍障이고, 넷째는 미세번뇌현행장微細煩惱現行障이며, 다섯째는 어하승반열반장於下乘般涅槃障이고, 여섯째는 조상현행장粗相現行障이며, 일곱째는 세상현행장細相現行障이고, 여덟째는 무상중작가행장無相中作加行障이며, 아홉째는 이타중불욕행장利他中不欲行障이고, 열째는 어제법중미득자재장於諸法中未得自在障이다.
  75. 75)여덟 가지 법 : 태현은 주석에서 이를 세간의 팔법이라 했다. 사람의 마음을 선동하는 여덟 가지 세간의 법으로, 이익(利)ㆍ쇠락함(衰)ㆍ비방(毀)ㆍ명예(譽)ㆍ칭찬(稱)ㆍ비난(譏)ㆍ고통(苦)ㆍ즐거움(樂) 등을 말한다.
  76. 76)네 가지 죄를 짓는 말 : 망어ㆍ양설兩舌ㆍ악구惡口ㆍ기어綺語를 가리킨다.
  77. 77)『대품반야경』 권5(T8, 395b22)에서 18불공법을 설하면서 ‘욕무감欲無減’이라 했다.
  78. 78)공용이 없는 것 : 제8지의 보살은 수행력과 본원력을 원만히 갖추고 있으므로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수행이 이루어지고 이타행을 행하기 때문에 제8지 이상을 무공용지無功用地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된 해석인 것 같다.
  79. 79)법을 설하는 선정 : ‘불후삼매’를 설명한 것이다.
  80. 80)열 가지 대명혜大明慧 : 바로 뒤의 ‘지혜를 행함’에서 설한 공혜空慧를 참조할 것.
  81. 81)『변중변론辯中邊論』 권상(T31, 466a13).
  82. 82)『대지도론』 권31(T25, 285b11).
  83. 83)네 가지 마구니 : 열반ㆍ법신 등의 무위법無爲法에 대해 일으키는 네 가지 전도된 견해. 무상無常ㆍ무락無樂ㆍ무아無我ㆍ무정無淨 등을 가리킨다.
  84. 84)겁을 겁이~겁이라고 설하며 : “겁을 겁이 아니라고 설하고”에서 앞의 ‘겁’은 실체적인 것으로서의 겁이고, “겁이 아닌 것을 겁이라고 설하며”에서 ‘겁이 아닌 것’은 허무적멸인 것으로서의 겁이다. 이렇게 해서 실체적인 겁과 허무적멸의 겁을 모두 부정하여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경지가 이루어진다.
  85. 85)「나한품羅漢品」 : 대본大本 『범망경』의 한 품으로 추정되는 품의 이름이다.
  86. 86)네 가지 무애無礙 : 법무애法無礙ㆍ의무애義無礙ㆍ사무애辭無礙ㆍ변무애辨無礙 등을 가리킨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주석을 참조할 것.
  87. 87)80종호八十種好와 32상三十二相 : 부처님과 보살이 몸에 갖추고 있는 특별한 모습을 가리키는 말. 80종호는 주로 은밀하여 보기 어려운 것, 곧 발의 복사뼈가 노출되지 않은 것, 목소리가 코끼리나 우레와 같은 것 등을 가리킨다. 32상은 주로 밖으로 드러나 보기 쉬운 것, 곧 눈이 감청색인 것, 정수리가 보이지 않는 것 등을 가리킨다.
  88. 88)사무외四無畏 : 부처님만이 갖추고 계신 네 가지 측면에서의 두려움 없음을 일컫는 말. 첫째는 제법현등각무외諸法現等覺無畏(一切智無所畏ㆍ正等覺無畏ㆍ等覺無畏)이니, 모든 법을 바르게 깨달았음을 선언함에 있어서 어떤 두려움도 없는 것이다. 둘째는 일체누진지무외一切漏盡智無畏(漏永盡無畏ㆍ漏盡無所畏ㆍ流盡無畏)이니, 모든 번뇌를 다하였음을 선언함에 있어서 어떤 두려움도 없는 것이다. 셋째는 장법불허결정수기무외障法不虛決定授記無畏(說障法無畏ㆍ說障道無所畏ㆍ障法無畏)이니, 장애가 되는 법의 부류를 설함에 있어서 그 설법으로 인해 비난받을 일이 생겨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위증일체구족출도여성무외爲證一切具足出道如性無畏(說出道無畏ㆍ說盡苦道無所畏ㆍ出苦道無畏)이니, 세간을 벗어나는 도리를 설함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89. 89)육취사생법六趣四生法 : ‘육취’는 육도六道와 같은 말로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를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人ㆍ천天 등의 여섯 가지 범주로 분류한 것이고, ‘사생’은 육도의 중생이 태어나는 형태를 태생胎生ㆍ난생卵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 등의 네 범주로 분류한 것이다. 통틀어서 윤회의 세계에 얽매여 있음을 일컫는 말이다.
  90. 90)팔해탈八解脫 : 앞의 주석에서 ‘해탈解脫’을 풀이한 것을 참조할 것.
  91. 91)태현은 선서善逝를 부처님의 명호와 그에 대한 서술, 곧 ‘잘 간다’라는 뜻을 동시에 갖는 것으로 풀었다. 그러나 현재 『범망경』에서는, 선서는 선선善善에 대한 서술어로 보고, 부처님의 명호는 선선이라고 했다.
  92. 92)이 사람은~무상사라고 하고 : 태현은 이를 열 가지 명호 중 ‘세간해’와 ‘무상사’의 두 가지가 혼합된 문장으로 풀었기 때문에 역자도 그 주석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본문을 풀었다.
  93. 93)「광음천품光音天品」 : 대본大本 『범망경』의 한 품으로 추정되는 품의 이름이다.
  94. 94)허공장주변용수화도문虛空藏周徧容受化導門 : 전후 문맥상 ‘허공장주변용수화도문’은 본문의 ‘허공장화도법문’을 가리키는 것 같다. 현존하는 어떤 판본에도 이 표현은 없기 때문에 저본의 차이라기보다는 태현이 그 함의를 좀 더 구체화한 용어라고 보았다. 곧 ‘허공장화도법문’은 ‘허공이 모든 것을 갈무리하는 것처럼 화도하는 법문’이라는 뜻이고, ‘허공장주변용수화도문’이란 ‘허공이 모든 것을 갈무리하는 것처럼 두루 받아들여서 화도하는 문’이라는 뜻이어서 그 의미에 차이가 없다.
  1. 1)「諦聽」無{甲}。
  2. 2)「入」一作「出」。
  3. 3)「一智」一作「以一切智」。
  4. 4)「趣」作「州」{乙}。
  5. 5)「慈」下一有「悲喜」{甲}。
  6. 1)「初」無{甲}。
  7. 2)「覺」下有「重」{甲}。
  8. 3)「根」作「煩」{甲}。
  9. 4)「染」一作「保」{甲}。
  10. 5)「諦」作「識」{甲}。
  11. 6)「行」下有「身」{乙}。
  12. 1)「斲」作「」{乙}次同。
  13. 2)「一」下有「切」{甲}。
  14. 3)「一」下各本有「切」。
  15. 1)「通」無{甲}。
  16. 2)「所知」作「知所」又疑寫倒{甲}。
  17. 1)「猗」作「倚」{甲}。
  18. 2)「中」一無{甲}。
  19. 3)「敎化」作「化敎」{甲}。
  20. 4)「同」一作「定」{甲}。
  21. 1)「樂」下有「國」{甲}。
  22. 2)「智」作「知」{甲}。
  23. 3)「以」無{甲}。
  24. 1)「解脫」一作「六通」{甲}。
  25. 2)「光」一作「呪」{甲}。
  26. 1)「定」一作「空」{甲}。
  27. 2)「地」下一有「各」{甲}。
  28. 3)「大」一無{甲}。
  29. 4)「身」下一有「具足」{甲}。
  30. 5)「界」作「果」{甲}{乙}{丙}。
  31. 6)「三天世界」作「十世界中」又其註曰一作「二天世界」{甲}。
  32. 1)「好」作「相」{甲}。
  33. 2)「道」下一有「現」{甲}。
  34. 3)「經於十方至無量意」恐寫誤當作「經於十方至海一渧」{甲}{丙}。
  35. 4)「空復」一無{甲}。
  36. 5)「名」上有「故」{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