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해동조계제육세원감국사가송(海東曺溪第六世圓鑑國師歌頌) / 圓鑑國師語錄重刊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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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 조계 제6세 원감국사가송
원감국사어록 중간 서문 圓鑑國師語錄 重刊 序文
우리 해동 불교는 전진前秦의 승려인 순도順道와 아도阿道가 구마라집鳩摩羅什의 삼론종三論宗을 고구려에 전한 때로부터 비롯되니, 이는 눈 속에서 매화가 그 향기를 발한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 뒤 신라와 고려 시대에 와서는 전해지지 않은 종파가 없었으니, 이는 온갖 꽃이 요란하게 그 색깔을 자랑한 것과 같다고 하겠다.
화쟁 국사(和諍國師 : 元曉)의 해동종海東宗은 잡화(雜花 : 華嚴)의 뜻을 밝힌 것이요, 보조 국사(普照國師 : 知訥)의 조계종은 염화(拈花 : 禪)의 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 양가兩家는 모두 독창적으로 자신의 종지宗旨를 수립하여 제가諸家를 회통하였으니, 이는 우담발화1)가 때가 되었을 때 한 번 꽃을 피운 것과 같다고 하겠다.
조계종은 옛날 승평부昇平府지금의 순천부順天府의 송광사松廣寺에서 창시되었다. 송광사에 수선사修禪社가 있는데 그 수선사의 법주法主가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인가印可하여 수십 세世를 전해 내려왔다. 그동안 국사國師의 칭호를 받은 자가 16인이요, 조사祖師의 칭호를 받은 자가 또한 16인이나 되었으므로, 예로부터 명승名僧이 이 사원에 머무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다. 그래서 송광사가 홀로 승보僧寶 종찰宗刹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통도사通度寺는 부처의 유골과 가사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불보佛寶 종찰이라고 부르고, 해인사海印寺는 고려대장경의 판본板本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法寶 종찰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승보 종찰인 송광사를 합쳐서 조선의 삼보 종찰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송광사가 중하게 여김을 받는 것은 승보 종찰이기 때문이요, 승보가 중하게 여김을 받는 것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인데, 탄식할 만한 것은 송광사의 승보가 기록을 일실逸失한 것이 많다고 하는 점이다.지금 설월 선사雪月禪師가 이 사원의 주지를 맡으면서 거의 10년 동안 유적을 찾아 잃어버린 기록을 보충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내가 『조선불교통사』를 지을 때에도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 중에도 미진한 점이 있었으니, 예를 들면 수선사修禪社의 제6세 법주法主인 원감 국사圓鑑國師의 문집과 어록이 있다는 사실만 『문헌비고文獻備考』에 실려 있을 뿐이요,『원감집圓鑑集』 1권과 『원감국사어록圓鑑國師語錄』 1권은 고려 승려 충지冲止가 지은 것이다. 그의 호號는 원감圓鑑이요, 속성俗姓은 위씨魏氏요, 이름은 원개元凱이다. 고종 무신년에 등과登科하여 관직이 한림翰林에 이르렀으며, 그 뒤에 승려가 되었다. 일찍이 시를 짓기를 ‘누가 알리요 계족산 속의 노승이,

006_0370_a_01L[海東曹溪第六世圓鑑國師歌頌]

006_0370_a_02L圓鑑國師語錄重刊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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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海東佛敎始自秦僧順道阿道傳羅
006_0370_a_05L什之三論宗於高句麗是猶雪中寒梅
006_0370_a_06L聞其香耳至于羅麗無宗不傳是猶
006_0370_a_07L百花繚亂弄其色耳和諍國師海東宗
006_0370_a_08L是雜花之旨也普照國師曹溪宗是拈
006_0370_a_09L花之法也此兩家俱能獨創自樹
006_0370_a_10L通諸家則如優曇鉢花時一現耳
006_0370_a_11L溪宗創於古昇平府今順
天郡
之松廣寺寺有
006_0370_a_12L修禪社社之法主心心相印傳世數
006_0370_a_13L號國師者十有六號祖師者亦十有
006_0370_a_14L自古名僧以住是寺爲榮故松廣
006_0370_a_15L獨得僧寶宗刹之美名焉通度寺以藏佛骨袈
故號佛寶宗刹

006_0370_a_16L海印寺以藏高麗藏經板本故號法寶宗刹
合僧寶宗刹松廣寺共爲朝鮮三寶宗刹
然則
006_0370_a_17L松廣之見重在乎僧寶僧寶之見重在
006_0370_a_18L乎偉蹟而所可慨者松廣僧寶佚其
006_0370_a_19L錄者多今雪月禪師住持是寺且十
006_0370_a_20L年務訪遺蹟以補闕乘余著朝鮮佛敎
006_0370_a_21L通史也多有所藉益而猶有未盡者
006_0370_a_22L即如修禪社第六世法主圓鑑國師
006_0370_a_23L文集語錄俱見文獻備考圓鑑集一卷圓鑑
國師語錄上仝高

006_0370_a_24L麗僧冲止著號圓鑑俗姓魏氏名元凱高宗戊申
登科官至翰林後爲僧甞有詩云誰知鷄足山中

006_0370_b_01L옛날 용두회2) 자리의 빈객이었음을.(誰知鷄足山中老 曾是龍頭座上賓)’이라고 하였다.
그 글을 실제로 얻어 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뒤 병진년(1916년)에 육당(六堂 : 崔南善) 최군崔君이 일본에 노닐면서 사료를 찾던 중에 우연히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峯에게서 『원감국사어록圓鑑國師語錄』을 얻었으므로 그 연기緣起를 지어 『동도역서기東都繹書記』에 올렸다. 송광사의 해은 상인海隱上人이 그 기록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였다. 무오년(1918년) 여름에 서울에 있는 육당 최군을 방문해서는 그것을 빌려서 옮겨적고 돌아와서 그 기록을 송광사에 기부하였다. 설월雪月 선사가 이 기록을 얻고 나서, 다시 진珍 상인上人임석진林錫珍으로 하여금 제서諸書에 산견散見되는 원감 국사의 시와 글을 수집하게 하고는, 이를 합쳐 편집한 뒤에 장차 간행하려고 하면서 나에게 머리말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위魏 한림翰林은 일찍이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서 나라를 빛내고 명성을 떨쳤으며, 그 뒤에 홍진紅塵을 벗어나 승려가 되어 선업善業을 닦았다. 그리고 그가 남긴 법어法語도 이 땅에서 잃어버렸다가 일본에서 되찾아서 지금 『원감록圓鑑錄』이 세상에 행해지게 되었다. 여기에는 원감 국사가 농현弄現한 정신이 깃들어 있고, 육당 거사가 외호外護한 정신이 깃들어 있고, 설월 선사가 주지住持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이 기록 역시 장차 정신계에 크게 기여하여, 많은 정신을 하나의 정신으로 귀일시키고, 하나의 정신이 많은 정신으로 확산될 것을 알겠다. 근화향槿花鄕을 개발하고 연지회蓮池會를 장엄莊嚴하는 것도 바로 이 하나의 정신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기꺼이 서문을 쓰게 되었다.

불기佛紀 2945년 기미년(1919년) 12월 8일 상현 거사尙玄居士 이능화李能和는 쓰다

006_0370_b_01L曾是龍
頭座上賓
而無由得見其書矣歲丙辰六
006_0370_b_02L堂崔君遊桑域訪史材偶從德富蘇
006_0370_b_03L峯氏獲圓鑑國師語錄著其緣起
006_0370_b_04L之于東都繹書記還而附其錄于松廣
006_0370_b_05L雪月師得是書又使珍上人林錫

006_0370_b_06L輯鑑公遺詩與文之散見于諸書者
006_0370_b_07L合編之將附印局屬余爲文以弁其首
006_0370_b_08L余惟魏翰林曾使日本揚國光有聲譽
006_0370_b_09L後脫紅塵而修白業所遺法語亦失
006_0370_b_10L之此土而求諸日本今圓鑑錄得行
006_0370_b_11L于世是則圓鑑國師弄現之精神
006_0370_b_12L所在也六堂居士外護之精神有所在
006_0370_b_13L雪月禪師住持之精神有所在也
006_0370_b_14L故知斯錄亦將大有益於精神界多精
006_0370_b_15L神爲一精神一精神爲多精神開發槿
006_0370_b_16L花鄕莊嚴蓮池會惟此精神而已矣
006_0370_b_17L故余樂爲之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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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紀二千九百四十五年己未臘月八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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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玄居士李能和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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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우담발화優曇鉢花 : 인도의 상서로운 꽃 이름이다. 불교 전설에 의하면, 3천 년에 한 번 꽃이 피는데, 그때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이 세상에 나오거나 부처가 출현하여 설법을 한다고 한다.
  2. 2)용두회龍頭會 : 고려 때 문과 장원급제자들의 모임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