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기암집(奇巖集) / 奇巖集序

ABC_BJ_H0156_T_001

008_0157_a_01L
기암집奇巖集
기암집奇巖集 서문
강좌江左(東晉의 이칭) 이래로 상문桑門1)에서 시도詩道로 자처한 자가 각 시대마다 부족하지 않았으나, 이것이 어찌 빈빈彬彬(문채와 바탕이 조화되어 훌륭함)한 것이겠는가. 그들의 법을 보면 적멸寂滅로 종지宗旨를 삼고 있다. 그리하여 지혜를 끊고 세상일을 버린 채,2) 전적으로 내면을 지키고 외물外物의 구속에서 빠져나오려 하고 있다. 따라서 기호嗜好나 욕락欲樂이 가슴속에 걸리는 것이 없을 테니, 어찌 구름이나 달을 비평하면서 구구하게 성률聲律을 일삼으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 사람들 중에는 하늘에서 온전하게 자질을 품부 받고 그것을 주밀하게 응용하는 가운데, 초월하여 깨달으려고 정진하는 여가에 남은 힘을 미루어 사문斯文(儒學)의 세계에 유희遊戱하면서 더러 예봉(機鋒)을 드러내는 자가 있다. 이는 쓸데없는 두엄 풀 정도로 여기고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단련하는 줄이나 채찍 같은 도구로 여겨서 그러는 것인가. 어쩌면 또 감촉되는 바가 있어서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기에 그런 것인가.
아, 세교世敎가 쇠한 지 오래되어 성인의 가르침은 일어나지 않고 이단의 학설만 흥행하고 있다. 그래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준걸스러운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거창한 학설에 탐닉한 나머지 그 무리들의 세계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그 바른 성정性情만큼은 실로 숨길 수 없는 점이 있으니, 가령 그 사람들이 선왕先王의 도道에 목욕을 하고 삼백 편三百篇(詩經의 이칭)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면 그들이 수립한 것 중에 어찌 탁월하게 우수한 것이 없겠는가. 내가 이 때문에 그 사람들이 불행한 것을 그윽이 슬퍼하는 것이요, 그 사람들이 불행한 것을 슬퍼할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이 불행한 것을 더불어 슬퍼하는 것이다.
지금 산인山人 경운慶雲이 자신의 돌아가신 스승인 법견法堅 선사가 지은 시문詩文 약간 편을 가지고 나를 찾아와서 감정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시를 보건대 충아冲雅(담박하고 깨끗함)하고 원호圓好(매끄러움)하여 소순蔬荀의 기미氣味가 적었으며,3) 게偈의 형식으로 문답한 것을 보더라도 대부분 의리義理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문장 또한 순방淳厖(순박·호방)하고 장후長厚(유장하고 두터움)하였으며 제자諸子와 사책史冊의 내용을 두루 통하였으니, 얼마나 널리 섭렵하였는지를 더욱 알 수 있었다. 비록 그 체재가 들쭉날쭉하여 명가名家를 독점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가령 그중에 우수한 작품을 간추려 뽑아서

008_0157_a_01L[奇巖集]

008_0157_a_02L1)奇巖集 [1]

008_0157_a_03L
008_0157_a_04L
2)自江左以來桑門之用詩道自名者
008_0157_a_05L代不乏人是何彬彬也彼其法以寂滅
008_0157_a_06L爲宗絶智云 [1] 專內守解外膠耆欲樂
008_0157_a_07L無所攖於中烏肎以評雲批月拘拘
008_0157_a_08L於聲律爲事哉然其人也受於天者全
008_0157_a_09L應乎用者周精進超悟之暇推餘力
008_0157_a_10L戱斯文時或露其機焉土苴耶 [2]
008_0157_a_11L [2] 亦有所感觸而不能3)自已者耶
008_0157_a_12L嗟乎 [3] 敎之衰久矣聖人不作異端
008_0157_a_13L4)興行雖有 [4] 長材弘畯閎傑之民耽溺
008_0157_a_14L於勝 5)大之說 [5] 不能自拔於衆趨而乃
008_0157_a_15L其性情之正實有不可掩者如使其
008_0157_a_16L沐浴先王之道與聞乎三百篇之媺
008_0157_a_17L其所立豈無卓然殊尤者哉余於是竊
008_0157_a_18L悲其人之不幸也不唯悲其人之不幸
008_0157_a_19L抑且悼斯世之不幸也今者山人慶雲
008_0157_a_20L携其亡師法堅禪師所爲詩文若干篇
008_0157_a_21L請余証㝎其詩冲雅圓好少蔬荀 [3] 氣味
008_0157_a_22L設偈答問率不越乎義理文又淳厖長
008_0157_a_23L旁詠 [4] 子史家言益見其所涉之博也
008_0157_a_24L雖其軆裁出入不專名家假採其翹秀

008_0157_b_01L사공巳公4)과 관휴貫休5)의 대열에 끼워 놓는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많이 양보할 것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법견 스님은 서산西山의 적통嫡統인데, 서산은 실로 동방東方 총림叢林의 대각사大覺士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일찍이 문도門徒에게 말하기를 “이 집안은 응당 우리 사문의 유·하游夏6)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종풍宗風과 가법家法을 이어받은 것이 이와 같고 보면 그의 운어韻語 삼매三昧 또한 필시 근본한 바가 있어서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이름이라는 것은 실제實際의 객客일 따름이다. 시문이 전해지든 전해지지 않든 법견 스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슨 손익이 있겠는가. 다만 경운이 평소에 자신을 극진히 보살펴 준 스승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 유묵遺墨이 없어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한 나머지 분주히 경영하면서 오래도록 전하려고 애쓰고 있으니, 이는 또한 스승이 죽고 나면 끝내 등을 돌리고 마는 자들과는 다르다고 하겠다. 아, 가상한 일이다.

정해년(1647, 인조 25) 중추中秋 모일某日에 동주 거사東州居士 이민구李敏求는 쓰다

008_0157_b_01L寘諸己 [5] 公貫休之列詎至多讓焉盖堅
008_0157_b_02L師爲西山嫡統而西山實東方叢林大
008_0157_b_03L覺士甞謂其徒曰是家當爲吾門游夏
008_0157_b_04L其宗風家法紹承如此而韻語三昧
008_0157_b_05L亦必有所本而然也雖然名者實之棄 [6]
008_0157_b_06L詩文傳不傳在堅師奚損益焉
008_0157_b_07L雲也感其師平昔捉 [7] 拔之勤不忍於遺
008_0157_b_08L墨之泯沒奔走經營將以壽其傳
008_0157_b_09L異於師死而遂背之者矣吁可尙已

008_0157_b_10L
丁亥中秋日東州居士李敏求書

008_0157_b_11L順治五年龍腹寺刊本(東國大學校所藏又同
008_0157_b_12L零本在서울大學校圖書館)題名編者補入
008_0157_b_13L
「自江…耶豈」百五字底本缺落依서울大本
008_0157_b_14L補入{編}
「自已者耶嗟乎世」底本缺落
008_0157_b_15L서울大本補入{編}
「興行雖有」底本缺落
008_0157_b_16L서울大本補入{編}
「大之說」底本缺落依서
008_0157_b_17L울大本補入{編}
  1. 1)상문桑門 : ⓢśramaṇa, ⓟsamaṇa의 음역어. 보통 사문沙門이라고 하며, 상문喪門·사문婆門·사문나沙門那·사라마나舍囉摩拏·실라마나室羅末拏라고도 한다. 식심息心·공로功勞·근식勤息이라 번역한다. 부지런히 모든 선업을 닦고 악업을 일으키지 않는 이란 뜻이며, 외도·불교도를 불문하고 처자 권속을 버리고 수도 생활을 하는 이를 총칭한다. 후세에는 오로지 불문에서 출가한 이를 말하며, 비구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2. 2)지혜를~버린 채 : 『한불전』에는 이 대목의 원문이 ‘絶智云務’로 되어 있으나, 이민구李敏求의 문집인 『동주집東州集』 문집 권2 「기암당법견선사시문집서奇巖堂法堅禪師詩文集序」에 의거, ‘絶智去務’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이하의 원문도 『동주집』과 비교 검토하여 교감하였다.
  3. 3)소순蔬筍의 기미氣味가 적었으며 : 승려의 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순은 채소와 죽순이라는 뜻으로, 승려처럼 채식을 하는 방외인方外人을 가리킨다.
  4. 4)사공巳公 : 당나라의 시승詩僧 제사齊巳를 가리킨다. 형악 사문衡岳沙門이라고 자호自號하였으며, 『백련집白蓮集』 10권이 전한다. 두보杜甫의 ≺사상인모재巳上人茅齋≻라는 시가 있는데, 그중에 “사공의 초가집 아래에서는 새로운 시를 지을 수 있다.(巳公茅屋下 可以賦新詩)”라는 구절과 “내가 공연히 속인인 허순의 무리에 끼어, 승려인 지둔의 시에 응수하기 어려워 진땀을 빼네.(空忝許詢輩 難酬支遁詞)”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두보와 동시대의 사람으로 여겨진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1.
  5. 5)관휴貫休 : 오대五代 전촉前蜀의 승려로 시詩·서書·화畫에 능했다. 그는 속성이 강씨姜氏라서 그의 필체를 세상에서 강체姜體라고 불렀다. 선월 대사禪月大師와 득득 화상得得和尙이라는 별호가 있으며, 『서악집西嶽集』과 『선월집禪月集』이 전한다.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前集 7권에 ≺고의古意≻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6. 6)유·하游夏 : 공자의 제자로 문학에 능했던 자유子游와 자하子夏의 병칭이다.
  1. 1)順治五年龍腹寺刊本(東國大學校所藏。又同零本。在서울大學校圖書館)。題名。編者補入。
  2. 2)「自江…耶豈」百五字。底本缺落。依서울大本補入{編}。
  3. 3)「自已者耶。嗟乎。世」底本缺落。依서울大本補入{編}。
  4. 4)「興行。雖有」底本缺落。依서울大本補入{編}。
  5. 5)「大之說」底本缺落。依서울大本補入{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