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풍계집(楓溪集) / 楓溪大師文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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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집楓溪集
풍계대사문집楓溪大師文集 서문
내가 어렸을 때에 서울(京師)에 살고 있었다. 그때 “남쪽 지방에 풍계楓溪 법사가 있는데 시문詩文에 능통하여 자못 벼슬이 높은 선비들 사이에 교유交遊가 깊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한번 보고 싶어 했으나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신묘년辛卯年(1711) 여름에 내가 영남嶺南의 하산夏山(지금의 창녕)에 귀양가 있었는데, 마침 가야산伽倻山 승려인 문일聞佾이 손수 1권의 책자冊子를 가지고 직접 내가 있는 집에 찾아와서 간청하며 말하였다.
“이 책은 우리 선사先師이신 풍계당楓溪堂께서 직접 쓰신 원고입니다. 평생 동안 명산名山과 대해大海를 빠짐없이 유람하시면서 깊숙하고 동떨어져 먼 곳에 이르기까지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경치를 다 돌아보았고, 또한 새·짐승·풀·나무·절벽·계곡·안개·노을·바람·이슬·눈·달 따위의 자태에 대하여 눈을 붙여 관람하고 귀로 들어 감상하신 것을 음영吟咏한 가운데 펼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범궁梵宮·석우釋宇(사찰)·누각樓閣·정자亭子·대사臺榭의 아름답고 기이한 광경光景과 특별하게 뛰어난 절경絶景은 모두 우리 스승님이 손수 시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그분이 지은 시문이 매우 많습니다. 빈도貧道는 그것이 사라져서 이 세상에 전해지지 못하게 될까 매우 두렵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시문 몇 편을 겨우 수습하여 3권으로 나누어서 1질帙로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목재를 사들이고 기술공을 고용하여 여러 판목에 새겨 간행하여 오래도록 전하기 위하여 이미 준비를 다해 마쳤습니다.
무릇 우리 스승의 종법宗法이나 도를 전수받은 차례, 도를 닦고 교화를 선양宣揚함의 깊고 얕음을 말하는 일은 우리 무리 가운데 반드시 잘 말할 수 있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 스승의 글에 서문을 써서 후세에 영원토록 전하는 일은 그대가 아니면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 감히 청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대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네. 법사께서 일찍이 동국東國을 유람하시면서 여러 대인大人 선생의 문을 두루 찾아가 뵌 일만도 매우 많을 것이네. 그 사이에 반드시 법사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는 이가 있었을 터이고, 법사의 문장에 능통한 이가 있을 것인데, 내가 어떻게 경중輕重을 논하겠는가?”
문일 스님은 그 뒤로도 여러 번이나 반복해 찾아와서 매우 간청하였다. 그래서 내가 비로소 그 문집을 펼쳐서 읽어 보았더니,

009_0122_a_01L[楓溪集]

009_0122_a_02L1)楓溪大師文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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幼少時在京師聞南方有楓溪法師
009_0122_a_05L善詩文頗能交遊於縉紳間欲一見
009_0122_a_06L其文而無由焉歲辛卯夏方謫居于
009_0122_a_07L嶺南之夏山適有伽倻僧聞佾手持一
009_0122_a_08L卷册子踵門而請曰此吾先師楓溪堂
009_0122_a_09L手稿也平生之所遊歷名山大海極幽
009_0122_a_10L遐詭瓌之觀而禽鳥草木崖谷烟霞風
009_0122_a_11L露雪月之態凡目寓而耳得者無不
009_0122_a_12L發之於吟咏之間而梵宮釋宇樓亭臺
009_0122_a_13L榭之瑰偉絕特者皆經吾師之手所品
009_0122_a_14L題故其所爲詩文極多貧道恐其湮
009_0122_a_15L沒而無傳也堇收拾若干篇分爲三卷
009_0122_a_16L裒爲一帙買材傭工鋟諸板而壽其傳
009_0122_a_17L役旣訖言其凡吾師之宗法傳授之次
009_0122_a_18L修道宣化之淺深吾徒必有能言者
009_0122_a_19L顧其序吾師之文而傳不朽於後
009_0122_a_20L非子宜無可者焉敢請余曰唯唯
009_0122_a_21L否否法師甞遊覽東國遍謁於諸大人
009_0122_a_22L先生之門者多矣其間必有能深知法
009_0122_a_23L而能通法師之文章者矣何輕重
009_0122_a_24L佾徃返數回請之甚懇始開卷

009_0122_b_01L그 문장이 정밀하고도 순수하였으며 그 시는 담박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 특히 그의 잡저雜著는 기이하면서도 법法다웠으니, 진실로 승려들 중에서는 쉽게 얻지 못할 기이한 재주를 지닌 분이었다. 그의 문장을 살펴보고 그의 인격을 상상해 보니, 틀림없이 그 천품天稟이 우뚝 드높은 분이었으리라.
아! 애석한 일이로다. 그런 인재가 우리 도道(유교) 안에서 진실한 쓰임새가 되지 못하고 허환虛幻하고 적멸寂滅한 가운데에서 좌절하였구나.1)
내가 그 재주를 아깝게 여기고 깊은 감동이 있었다. 대사의 속성俗姓은 박朴씨이고, 불가의 법명은 명찰明察이며, 자字는 취월醉月이고 풍계楓溪는 호號이다. 스님의 가계家系는 밀성密城(지금의 밀양) 출신으로 문형文衡을 담당했던 밀산군密山君 박충원朴忠元의 현손玄孫이고, 상서尙書 계현啓賢의 증손曾孫이다. 대사가 비록 하늘에서 받은 자품資品이 남들보다 뛰어남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예文藝의 성품은 진실로 또한 물려받은 곳이 있는 것이다. 대사의 문인으로는 오직 문일만이 홀로 의발衣鉢을 전해 받았는데, 곧 스승을 위하여 온 힘을 내어 노고를 다하였다. 밥을 비는 여력을 미루어 조그마한 자산2)을 모아 마침내 판각하는 일을 이루어 냈으니, 그 의지 또한 가상하다. 이에 기록한다.
숭정崇禎 기원紀元 후 신묘년(1711) 늦여름(음력 6월) 기망旣望(16일)에 농암聾庵 거사는 서문을 쓴다.

009_0122_b_01L而讀之其文精而醇其詩淡而古
009_0122_b_02L雜著奇而法誠緇髠中未易得之奇才
009_0122_b_03L觀其文想其人必其天禀有卓然者
009_0122_b_04L惜乎其不爲吾道中眞實之用
009_0122_b_05L撫斯沉沒於虛幻寂滅之2) [1] [1]

009_0122_b_06L{底}刊年未詳嶺南大學校所藏本此下疑有
009_0122_b_07L缺落{編}
  1. 1)저본底本에는 여기까지만 있으나, 문맥으로 보아 결락된 듯하여 다른 곳에 있는 같은 문집 서지사항을 살펴보니,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도서관과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楓溪集』에는 “崇禎紀元後辛卯季夏之旣望。 聾庵居士序。”라는 서문을 쓴 연대(1711)와 쓴 사람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도서관의 박장승 부장에게 요청하여 결락된 자료를 추가로 번역하여 붙였다.
  2. 2)조그마한 자산(圭撮之資) : 여기서 규촬圭撮이란 아주 작은 용량의 단위로, 전의轉意하여 아주 작은 양을 비유하는 데 쓰는 말이다. 1규圭는 기장 알 64개의 분량이고, 4규가 1촬撮이 된다.
  1. 1){底}刊年未詳。嶺南大學校所藏本。
  2. 2)此下疑有缺落{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