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호은집(好隱集) / [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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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호은집好隱集』은 해봉 상인海峯上人의 저술이다. 우리 동방 선림에서 걸출한 이로는 반드시 서산西山을 일컫는데, 4대23)를 전하여 낙암洛巖이 있고, 낙암은 해봉에게 법을 전하였으니, 그 연원은 유래가 있는 것이다. 해봉은 아홉 살에 속리산에서 독서를 하였고, 15세에 머리를 깎았고, 31세에 불자拂子를 잡고 법좌法座를 맡았다. 여러 경전에 널리 통하였으나 화엄에 더욱 정밀하였다. 가야산에 들어가 15년 동안 문을 나서지 않았는데, 문밖에 학인들의 왕래가 가득하였다. 일찍이 송운松雲 대사의 영정 감실을 개수하여

009_0728_a_18L[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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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隱集者海峯上人之所著也我東
009_0728_a_20L禪林之傑然者必稱西山四傳而有洛
009_0728_a_21L洛巖傳之海峯其淵源有自來矣
009_0728_a_22L海峯九歲讀書于俗離十五落紺
009_0728_a_23L十一秉拂當座博通群經而尤精於
009_0728_a_24L華嚴入伽倻十五年不出戶戶外滿
009_0728_a_25L學人之屨甞改搆松雲影幀之龕

009_0728_b_01L송운사松雲祠로 만들었고, 송운 대사 선인先人의 봉분을 증축하였다. 선문禪門에 공이 있는 것들이 이와 같았다. 평생 남의 과실을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남의 선행을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헐뜯고 치켜세움에 따라 기뻐하거나 근심하여 그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마음속에 보존된 것은 웅숭깊고 활달하고, 질박하고 정직하기 때문에 글로 드러나면 음조音調가 화창하여 능히 필묵가의 여여如如한 삼매를 얻을 수 있었다. 우 선자愚禪子24)가 쓴 〈서산가西山歌〉25) 등의 서문을 보면, 대사의 식견이 이미 깊이가 있고 의취가 범용하지 않으니, 진실로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유덕한 이라 할 수 있다. 그 문인인 정학定學 등이 바야흐로 책으로 간행하여 오래도록 전하고자 나에게 그 말미에 글을 쓰도록 부탁하였다. 내가 『호은집』을 읽어 보니 후세에 전해질 만한 책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구양 공歐陽公26)이 『유엄27)집惟儼集』에 서문을 쓸 때 유엄을 크게 칭찬했는데, 지금 그 책을 보니, 엄은 경사京師에 노닐기를 좋아하여 학사 대부들과 함께 위아래로 문묵文墨 간에 치달렸을 뿐, 수도修道와 계행戒行에 내실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으니, 곧 그 사람을 알 만한 것이다. 이 책을 보면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한지 후세 학인들은 반드시 분별하는 자가 있을 것이로다.
을사년(1785) 6월 상순에 칠암七巖 김몽화金夢華 적다.

009_0728_b_01L爲松雲祠任增築松雲先人之封
009_0728_b_02L功於禪門者類此平生恥言人過失
009_0728_b_03L而好揚人之善不以忻慽毁譽而易
009_0728_b_04L其心其存諸中者旣冲曠而質直故
009_0728_b_05L發之爲文辭而音調和暢能得觚墨
009_0728_b_06L家三昧如如愚禪子序西山歌等篇
009_0728_b_07L見旣精意趣不凡誠儒家所謂有德之
009_0728_b_08L言也其門人定學等方謀繡梓
009_0728_b_09L壽其傳而屬余識其尾余得好隱集
009_0728_b_10L可傳於後世也無疑矣昔歐陽公序惟
009_0728_b_11L儼集而盛稱其人然自今觀之
009_0728_b_12L好游京師與學士大夫上下馳騁
009_0728_b_13L於文墨間而未聞爲修道戒行之實
009_0728_b_14L其人可知視是集孰優而孰劣也
009_0728_b_15L必有辨之者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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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巳季夏上澣七巖金夢華識

009_0728_b_17L此影讃底本在卷首編者移置於此
  1. 23)4대 : 청허 휴정淸虛休靜(1520~1604)-편양 언기鞭羊彦機(1581~1644)-풍담 의심楓潭義諶(1592~1655)-상봉 정원霜峰淨源(1627~1709)-낙암 의눌洛巖義訥(1666~ 1737)로 법맥이 이어진다.
  2. 24)우 선자愚禪子 : 바로 위에 「好隱愚夫自傳」이 있는 것에 비추어 우 선자는 호은 유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3. 25)〈서산가西山歌〉 : 이 책의 3권에 〈서산가〉가 있으나 관련 서문은 수록되지 않았다.
  4. 26)구양 공歐陽公 : 구양수歐陽脩(1007~1072). 송나라의 문인.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육일 거사六一居士이다. 당나라 때의 화려한 시풍을 반대하여 새로운 시풍을 열고, 시문詩文 양 방면에 걸쳐 송나라 때 문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시문에 뛰어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꼽힌다.
  5. 27)유엄惟儼 : 약산 유엄藥山惟儼(745~828). 중국 산서성 강주 사람. 17세에 출가하여 형산 회조에게 배웠다. 후에 석두 희천石頭希遷(700~790)에게 갔다가 다시 마조 도일馬祖道一(709~788)에게 참학하고 깨달았다. 3년을 머물고 석두에게 돌아가 마침내 법을 이었다. 후에 호남성 예주 약산에 있으면서 설법, 교화하고, 태화太和 8년에 84세로 입적하였다. 시호는 홍도弘道 대사이다.
  1. 1)此影讃。底本在卷首。編者移置於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