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괄허집(括虛集) / 括虛和尙遺稿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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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허 화상 유고 서문
선나禪那15) 심인心印16)의 학문은 가섭迦葉에게 발원하고 달마達磨17)에게서 물줄기가 나뉘어 중국(東震)으로 흘러들어 갔다.문장을 그릇으로 삼아 법을 실어 나르며, 대대로 계승하여 마음에서 마음으로 서로 전해졌다.말법 시대에 이르러 성인으로부터 멀어지자 문장이 점점 쇠해지니 법도 따라 해이해져 정법안장正法眼藏18)이 거의 땅에 떨어졌다.다행히 선사先師 괄허括虛 대화상은 홀로 능히 부허하고 거짓된 세속을 등지고 바르고 참된 종지를 탐구하였다.처음에는 경전을 참구하여 이치를 터득하고 마침내는 선정에 의지하여 지혜를 피워 내어, 침체된 선풍禪風을 떨치고 어두워진 조사祖師의 달을 밝게 하였으니, 실로 음광飮光19)의 종파宗派요 언우齴齲20)의 정맥正脈이라 하겠다.진실로 우뚝하고 거룩하지 아니한가? 선사는 선정禪定에서 나온 여가에 시문詩文과 잡저雜著를 지었는데, 이 또한 자못 진귀한 금과 옥21)의 아름다움을 이루었다.그리고 부처님이 남기신 경經에서 교법敎法을 본받고 연원을 불조佛祖에게로 소급하였다.진실로 글이라는 것은 도를 관통하는 그릇이요,22) 글이 전하는 곳에 도 역시 있는 것이니, 그릇에 담아 세상에 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일전에 5세 법손인 두암杜庵공이 화상의 유고가 오랫동안 상자23)에 담겨 있음을 개탄하며 판에 새겨24) 길이 전하고자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스스로 돌아보매 천학(蔑學)으로서 어찌 감히 정법正法의 문장에 붓을 놀려 옥에 티를 묻혔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생각해 보니 나와 관계된 일이 여러 가지로 있기에 감히 끝까지 사양치 못하고 마침내 이와 같이 쓴다.
지관止觀25)의 심법心法이란,

010_0303_a_05L括虛和尙遺稿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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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那心印之學源於迦葉派於達摩
010_0303_a_08L流於東震而文以器之法以輸之
010_0303_a_09L葉相承心心互傳曁乎季未 [1] 去聖遠
010_0303_a_10L而文侵 [2] 以衰則法隨以弛眼藏正法
010_0303_a_11L幾乎墜地幸賴先師括虛大和尙獨能
010_0303_a_12L背浮僞之俗 [3] 正眞之宗始於尋詮而
010_0303_a_13L詣理終於依定而發慧旣使禪風寢 [4]
010_0303_a_14L祖月晦者明眞可謂飮光之宗派
010_0303_a_15L齴齲之正脈 [5] 豈不誠卓乎韙哉先師出
010_0303_a_16L定之暇詩文雜著亦頗成貞金良玉之
010_0303_a_17L而倣敎法於遺經溯淵源於佛祖
010_0303_a_18L信乎文者貫道之器而文之所傳
010_0303_a_19L亦存焉宜載之器而傳於世者也日者
010_0303_a_20L五世法孫杜庵公慨夫和尙遺藁 [6] 久爲
010_0303_a_21L巾笥之藏圖所以鋟諸梓而壽其傳
010_0303_a_22L余弁于卷自顧蔑學何敢弄毫於正法
010_0303_a_23L文章以犯玷玉之誚也旋念事係之重
010_0303_a_24L不敢終辤 [7] 遂書之如此若夫止觀

010_0303_b_01L양은 시방十方을 포괄하고 본성은 삼제三際에 텅 비어 있도다.진실로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것은 본디 이 책 밖에 있으니, 읽는 이들은 마땅히 이를 알아야 할 것이다.
숭정崇禎 기원후 251년 무인(1878) 3월 하순에 후학 함홍 치능涵弘致能26)은 손을 씻고 삼가 서문을 쓰다.
무자년(1888) 7월 일 김룡사金龍寺 양진암養眞庵에서 간행하다.

010_0303_b_01L心法量括十方性虛三際眞不朽者
010_0303_b_02L固在於是卷之外覽者宜知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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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禎紀元後二百五十一年戊寅三月
010_0303_b_04L下澣後學涵弘致能盥手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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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子七月日金龍寺養眞庵開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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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5)‌선나禪那 : ⓢ dhyāna의 음사. 선禪으로 약칭하고, 정定·정려靜慮·사유수思惟修라 의역한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상태.
  2. 16)‌심인心印 : 깨달음을 의미한다. 선종에서는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견성하도록 하는 것을 심인을 전한다고 한다. 『碧巖錄』 「三敎老人序」에 “달마가 동쪽에 와서 심인만을 전했으니 문자를 세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齴齲來東單傳心印。 不立文字固也。)”라고 하였다. 『景德傳燈錄』 권3 「菩提達磨」.
  3. 17)‌달마達磨 : 중국 남북조시대의 선승으로 중국 선종의 시조이다.
  4. 18)‌정법안장正法眼藏 : 선문禪門의 용어로 올바른 세계의 견해, 깨달음의 진실을 말한다. 청정안장淸淨眼藏이라고도 한다. 영산회靈山會에서 부처께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나 인천人天 백만이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가섭迦葉이 얼굴을 펴 미소 지었다. 세존이 이르시되,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는데 가섭에게 분부한다.”라고 하였다.
  5. 19)음광飮光 : 가섭迦葉 존자. ⓢ Kāśyapa의 번역이다.
  6. 20)언우齴齲 : 언齴은 뻐드렁니, 우齵는 충치인데 달마達磨를 가리키는 말이다.
  7. 21)‌진귀한 금과 옥(貞金良玉) : 정금貞金은 정제된 금, 양옥良玉은 좋은 옥이라는 뜻으로, 고결하고 아름다운 인품 혹은 시문이 매우 깨끗하고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이다.
  8. 22)‌글이라는 것은~관통하는 그릇이요 : 동아시아의 전통 시대 문학관으로 재도론載道論과 관도론貫道論이 있다. 북송의 도학자 주돈이周敦頤는 “문학이란 도를 싣는 것이다.(文所以載道也。)”라 하였다. 이한李漢은 당나라 한유韓愈의 사위로서 「昌黎文集序」를 지었는데, 여기에서 “문장이란 도를 관통하는 그릇이다.(文者貫道之器也。)”라 하였다. 관도론은 문장을 통해 도가 드러난다는 관점이고, 재도론은 도를 위해 문장을 쓴다는 관점이다. 관도론에서의 ‘도’는 유교적 이념보다는 일상생활의 구체적 덕목을 가리키는 일이 많다. 한편 재도론의 ‘도’는 유교적 덕목에 제한된다. 그래서 불가佛家의 시문에 대해서는 ‘관도지문貫道之文’이라고는 평하여도 ‘재도지문載道之文’이라고는 평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유가의 문에 대해서는 ‘관도’와 ‘재도’의 명칭이 혼용되기도 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재도론’ 참조)
  9. 23)‌상자(巾笥) : 건사巾笥는 책을 넣어 두는 상자. 건사 외에 건상巾箱·건연巾衍 등의 표현이 있다.
  10. 24)‌판에 새겨(鋟梓) : 침재鋟梓는 기궐剞劂과 같은 말로, 책을 찍어 내기 위해 판각板刻하는 것을 말한다.
  11. 25)‌지관止觀 : 사전적 의미는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을 멈추고 평온하게 된 상태(止, ⓢ śamatha)에서 바른 지혜를 일으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자세히 주시하는 것(觀, ⓢ vipaśyanā)이다. 즉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혜로써 모든 현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수행을 말한다. 지止는 정定, 관觀은 혜慧에 해당한다.
  12. 26)‌함홍 치능涵弘致能(1805~1878) : 19세기 후반 경북 의성의 고운사孤雲寺를 대표하는 강백이자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다. 외전에도 밝아 당시 사대부들과 시문을 나누며 교류하였다. 함홍당은 환성喚醒 스님의 9세손으로 바로 위로는 송암 의탄松庵義坦의 법을 이었으며, 저술로는 『涵弘堂集』 2권이 전한다. 『涵弘堂集』은 입적 후 제자 야산 명원野山明遠 등이 1879년(고종 16)에 간행하였다. 문집의 서문은 이돈우李敦禹·김기선金驥善·허훈許薰이 썼고, 발문은 이수영李秀瑩이 썼다. 야산 명원이 쓴 행장과 허훈이 쓴 비명碑銘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