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월성집(月城集) / 月城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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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집月城集
월성집月城集 서문
제자류諸子類와 문집이 잘못된 지 오래되었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송나라와 명나라 이래로 수식이 날로 심해져서 공경대부公卿大夫와 선비들이 조금 글을 지을 줄 알게 되면 쉽게 ‘시’니 ‘문’이니 하여, 판각하는 이에게 맡긴다. 요컨대 사후에 이름을 남기려는 것이다. 아래로 시골에 이르면 서당 훈장도 그러하다. 오늘날 우리의 풍속은 더욱 심해졌다. 나무가 겪는 재앙은 일단 놔두고라도 문단의 수치됨을 어찌할 것인가? 나는 일찍이 안타까워하였다.
어느 날 호남 관음사觀音寺1)의 승려 홍준鴻俊과 쾌경快鏡 등이 그 스승 월성 대사月城大師의 시문詩文을 가지고 판각하려고 천 리 길에 편지를 보내 내 말을 얻기를 원하였다. 나는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스승의 뜻은 아니로다. 무릇 승려는 천지만물을 허무적멸로 돌린다. 육신이 본디 환영이요, 하물며 시문은 환영 중의 환영임에랴. (실체가) 있다고 하면 허망하고, 없다고 해야 진실되다. 스승이 그 없음을 소유하고자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나 또한 어찌 진실을 버리고 허망을 취하겠는가?”라고 하고, 이윽고 시문을 펼쳐 보았다. 율시와 절구의 문체가 갖추어져 있으나 스승의 여사餘事일 따름이다. 문장에서 보이는 것은 공경으로 안을 곧게 함(敬以直內)과 의리로 밖을 바르게 함(義以方外)으로써 마음을 다스리고 사물에 응하는 요체로 삼은 것이니, 편지에서 반복하여 깨우쳐 주고 있다.
무릇 유자가 불교를 배척한 것은 마음으로 마음을 보는 데에 공력을 쏟기 때문이요, 안팎을 곧고 바르게 함이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을 보자면, 유자라는 이름은 한갓 입과 귀에 있을 따름이요, 곧고 바르게 한다는 말에 있어 참으로 얻음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였다.

010_0389_c_01L[月城集]

010_0389_c_02L1)月城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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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集之爲弊久矣古無是自宋明以來
010_0389_c_05L彌文日甚公卿大夫士稍能解操觚
010_0389_c_06L以曰詩曰文付剞劂手要以爲身後名
010_0389_c_07L下以至村學究亦然至今日而東俗
010_0389_c_08L之效尤劇矣木之灾姑舍是其爲文
010_0389_c_09L苑羞何如余甞病之湖南觀音寺浮
010_0389_c_10L屠僧鏡鴻俊 [1] 以其師月城大師詩文
010_0389_c_11L圖所以入梓千里飛書願得余一言
010_0389_c_12L余辴然咲曰非師之意也夫浮屠氏
010_0389_c_13L以天地萬物都歸之虛無寂滅身固幻
010_0389_c_14L況詩若文爲幻中之幻乎有之則妄
010_0389_c_15L無之則眞師之不欲有其無也決矣
010_0389_c_16L余亦何可捨眞而就妄乎已而閱其編
010_0389_c_17L律絕之能備體餘事耳其見於文者
010_0389_c_18L以敬以直內義以方外爲治心應事之
010_0389_c_19L反復開示於書牘之中夫儒之斥佛
010_0389_c_20L以其用工於以心觀心不知有直內方
010_0389_c_21L外也窃觀今之世以儒名者徒口耳
010_0389_c_22L而止未聞於直方二字有眞見得
010_0389_c_23L{底}嘉慶三年觀音寺大隱菴影閣本(國立圖書
010_0389_c_24L館所藏)

010_0390_a_01L이제 불자를 세우고 주먹을 드는 것(竪拂擎拳)2)에서 이렇게 번거롭지 않은 긴요한 말을 보노라면, 우리 유자가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을 승려들은 능히 한다고 누군들 생각하지 않겠는가? 스승이 이로써 사람들을 권면하였으니, 스스로 힘씀을 알 수 있다. 그러한즉 유교와 불교는 하나로 통한다. 어찌 이단이라고 근심하리오? 그 교설이 날로 새롭고 달로 성대해짐을 어찌 걱정하리오? 나는 이에 기뻐하며 서문을 쓴다.
성상聖上(정조) 19년 을묘(1795) 등석燈夕3)에 번암樊巖 채 상국蔡相國4)이 충간의담헌忠肝義膽軒에서 쓰다.

010_0390_a_01L乃於竪拂擎拳之地看此要言不煩
010_0390_a_02L謂吾儒之所未易能者以浮屠氏而能
010_0390_a_03L之乎師旣以是勉人其自勉可知
010_0390_a_04L然則儒與佛道通于一何憂乎異端
010_0390_a_05L何患乎其說之日新月盛乎余於是喜
010_0390_a_06L而書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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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上十九年乙卯燈夕樊巖蔡相國
010_0390_a_08L書于忠肝義膽軒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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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관음사觀音寺 :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선세 마을 성덕산聖德山에 있다. 백제 때 세워진 고찰이다.
  2. 2)불자를 세우고 주먹을 드는 것(竪拂擎拳) : 『竹川先生文集』의 「上退溪先生問目」을 보면, “선가에서는 언어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혹 주먹을 들어 보여 주거나 혹 불자를 들어 보여 주며 도를 깨닫게 하였다. 불자는 먼지떨이의 일종이다.(禪家不用言語文字。 或擎其手拳以示之。 或豎其拂子。 以示之。 而令人悟道。 拂子。 麈尾之類。)”라고 하였다.
  3. 3)등석燈夕 : 사월 초파일.
  4. 4)채 상국蔡相國 : 상국相國(정승) 채제공蔡濟恭(1720~1799). 본관 평강平康, 자 백규伯規, 호 번암樊巖·번옹樊翁, 시호 문숙文肅. 1788년 정조의 특명에 의해 우의정이 되었으며, 2년 후 좌의정으로 승진하면서 3년간 혼자 정승을 맡아 국정을 운영하였다. 1793년에 한때 영의정에 임명되었었다.
  1. 1){底}嘉慶三年觀音寺大隱菴影閣本(國立圖書館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