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초의시고(艸依詩藁) / 艸衣詩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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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시고艸衣詩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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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시집 서문(艸衣詩藁序)
한퇴지韓退之(한유韓愈)는 평생토록 불교(浮屠)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혜元惠와 문창文暢 두 스님의 시에 대해서는 모두 문재文才가 있다고 극구 칭찬하였다. 자양부자紫陽夫子(주희朱熹)는 유학儒學을 보위保衛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그러나 일찍이 지남志南 상인上人의 문집에 발문跋文을 쓰면서, “살구꽃 비를 맞으니 옷이 젖으려 하고, 버들 바람은 살갗에 닿아도 춥지 않네.(沾衣欲濕杏花雨, 吹面不寒楊柳風.)”라는 그의 시구를 깊이 칭찬하였다.
석씨釋氏의 학문은 일체의 유有를 공空으로 여기니, 원래 문사文詞를 일삼을 여지가 없다. 따라서 그들이 문사에 종사하는 것은 모두 오도吾道에 뜻을 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위의 두 분 공이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 것도 대개는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문사文詞가 자칫하면 외적으로 화려하게 꾸미는 쪽으로만 흘러갈 위험성도 있다. 예컨대 혜휴惠休나 보월寶月 같은 경우는 몸에 납의衲衣를 걸쳤지만 입은 절제하지를 못하였으니, 이는 불가의 적賊이 될 뿐만 아니라, 오도吾道에 있어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호남湖南의 승려 초의草衣는 학사學士 대부大夫를 따라 노닐기를 좋아하였다. 그리고 특히 시를 짓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그 표현이 맑고 간결하고 잘 단련이 된 점에서 당송唐宋을 넘나들며, 뜻을 부친 것이 맑고 원대하여 치장하여 윤택하게 함을 끊어 버렸다. 그의 시권詩卷 중에는 창려昌黎(한유)의 운韻을 쓴 것도 몇 편 있으며, 또 때로 인仁을 받들고 의義를 안고 마음은 명경지수明鏡止水 같다는 시어詩語는 주자朱子의 책에서 터득한 것 같다. 아, 이것이 어찌 참으로 오도吾道에 뜻을 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러한 까닭으로 즐거이 이 글을 쓰노라.초의의 시를 보면 경책警策하는 말들이 매우 많이 나온다. 그의 고체시古體詩에 “발길은 시내 밑의 구름과 뒤섞이고, 창문은 솔 위의 달을 머금었다.(履雜㵎底雲, 窓含松上月.)”라는 말이 나오는데, 위에서 말한 행화杏花 양류楊柳의 시구와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한지 덜한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우선 이 시구를 들어서 지금의 시를 아는 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바이다.

010_0830_c_02L1)艸衣詩集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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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退之平生不喜浮屠其與元惠文暢
010_0830_c_05L靈師詩皆極稱其才調紫陽夫子
010_0830_c_06L衛道爲己任嘗跋志南上人行卷㴱賞
010_0830_c_07L其沾衣欲濕杏花雨吹面不寒楊柳風
010_0830_c_08L之句釋氏之學空諸所有固無所用
010_0830_c_09L文詞爲彼從事於文詞皆有意於吾道
010_0830_c_10L者也二公之樂與其進盖以是歟
010_0830_c_11L文詞之流往往爲淫靡蕩冶如惠休寶
010_0830_c_12L月之類身緇衲而口粲濮是又浮屠氏
010_0830_c_13L之賊吾道之所不容也湖南僧草衣
010_0830_c_14L喜從學士大夫遊尤好爲有韻語灑削
010_0830_c_15L陶煉出入唐宋而寄意淸遠絕去粉
010_0830_c_16L其卷中有用昌黎韻數篇又時有戴
010_0830_c_17L仁抱義靈臺止水語若有得于朱子書
010_0830_c_18L嗟乎是豈眞有意於吾道者歟
010_0830_c_19L是以樂爲之書草衣詩警語甚多其古
010_0830_c_20L體有曰履雜㵎底雲窓含松上月者
010_0830_c_21L與杏花楊柳之句未知其孰爲甲乙也
010_0830_c_22L姑擧是以質于當世之知詩者

010_0830_c_23L{底}旃蒙大淵獻(高宗十二年乙亥)申獻求跋文
010_0830_c_24L本(東國大學校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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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1831, 순조31) 1월에 연천거사淵泉居士 홍석주洪奭周는 초의의 시권詩卷 첫머리에 쓰다.

일지암一枝庵은 호남의 승려 의순意恂의 서재 이름이다. 의순은 시를 잘 지어 세상에서는 그를 초의草衣 스님이라고 부르는데, 그 명성이 널리 퍼졌다. 내가 그의 시를 보건대, 담담하고 잔잔하며 고요히 가라앉은 데다 또 능히 견고하고 인내하는 기풍이 있어서 고인古人의 경지에 차츰 진입하고 있었으니, 대개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님 중에 시를 잘하는 자로는 탕휴湯休를 으뜸으로 꼽는다. 그리고 시대마다 작자作者가 나오다가, 송대宋代에 이르러 도잠道潛과 총수聰殊의 무리가 동파東坡(소식蘇軾) 노인과 노닐면서 마침내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소순蔬筍1)의 기미를 완전히 벗어 버린 사람은 대개 드물었으니, 시를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동방의 명승名僧 중에도 시로 이름이 난 자가 많이 있었는데, 근래에는 자못 적막하였다. 그러다가 의순의 시를 보게 되었고, 또 그와 함께 어울려 노닐게 되었으니, 내가 저절로 기쁜 것이 동파 노인에게 많이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그의 시가 소순의 기미를 떨쳐 버렸으니 또한 도잠이나 총수의 무리와 비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불전佛典에서는 시를 구업口業이라고 하면서 왕왕 시를 경계하곤 한다. 그러나 계율戒律에 얽매여 고공苦空에 떨어지는 자가 꼭 모두 정각正覺을 얻는다고 할 수는 없으니, 의순은 힘쓸지어다. 나태함이 없이 정진精進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면, 시를 가지고 불사佛事를 행해도 무방할 것이니, 어찌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신묘년(1831, 순조31) 4월에 자하 신위는 북선원北禪院 다반향초실茶半香初室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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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卯孟春淵泉居士洪奭周書于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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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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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枝庵湖南僧意恂齋號也意恂工詩
010_0831_a_07L世號艸衣師其名藉甚余見其詩
010_0831_a_08L泞沈靜又能有堅忍性駸駸入古人室
010_0831_a_09L盖不可易得也釋氏之能詩者以湯休
010_0831_a_10L爲首代有作者而至宋道潛聰殊輩
010_0831_a_11L與坡老遊遂以名世然盡脫蔬筍氣者
010_0831_a_12L盖亦鮮矣詩豈可易言哉我東名釋
010_0831_a_13L以詩聞者亦多有之而近頗寥寥
010_0831_a_14L得意恂詩又與之遊處余自喜不多
010_0831_a_15L讓於坡老況其詩擺落蔬筍又非道潛
010_0831_a_16L聰殊輩比者耶竺典以綺語爲口業
010_0831_a_17L往有以詩爲戒然彼其縛戒律而墮苦
010_0831_a_18L空者未必皆得正覺也意恂其勉之哉
010_0831_a_19L精進不懈以至於悟徹則又不害爲詩
010_0831_a_20L作佛事也可不勉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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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卯猶淸和節紫霞申緯題於北禪
010_0831_a_22L院茶半香初之室
  1. 1)소순蔬筍 : 채소와 죽순이라는 뜻으로, 승려처럼 채식이나 하는 방외인方外人을 가리킨다.
  1. 1){底}旃蒙大淵獻(高宗十二年乙亥)申獻求跋文本(東國大學校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