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BJ_H0249_T_005
-
010_0870_b_03L초의시고 발문(艸衣詩藁跋)신해년(1851, 철종2) 엄동설한에 내가 병에 걸려 시름하고 있을 적에, 초의草衣 노사老師가 방문했다고 농리瀧吏가 보고하기에, 얼른 나가 맞이하고서 안으로 영접하니, 노사가 삼화三花처럼 초췌한 나를 걱정하였다. 그러고는 광장설廣長舌로 문장의 유파流派와 어려운 시운詩韻을 유창하게 논하더니, 소매 속에서 시권詩卷을 꺼내어 나에게 보여 주었다.그동안 사일思一이 크게 칭찬하는 말을 실컷 들은 터라서, 마침내 촛불을 켜고 그 시를 감상하였더니, 경오警悟하는 말이 많고 분식粉飾하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뜻을 위주로 표현하여 구슬이 소반에 굴러다니는 듯 종횡으로 치달렸으니, 이는 참으로 징률徵栗이나 제고題糕와 같은 일로서, 초화苕花의 아름다움을 독점하고 있었다.연천淵泉(홍석주洪奭周) 상공相公이 서문을 지으면서, 자양부자紫陽夫子(주희朱熹)의 발문에 나오는 지남志南 상인上人의 행화杏花 양류楊柳의 시구와 우열을 가리려고 하였으니, 얼마나 변재辨才가 대단한지 징험할 수가 있다. 그리고 “영대가 원래 견고한 바탕이요, 지수가 본래 맑은 근원이라.(靈臺元固基, 智水本澄源.)”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를 보면 일찍이 학사學士 대부大夫와 종유從遊하면서 오도吾道에 뜻을 둔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가령 노사가 창려昌黎(한유韓愈)의 세상에 있었다면, 원혜元惠와 문창文暢 스님과 비교해서 누가 더 나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빈 숲엔 하늘 끝 달이 비쳐 들어오고, 들 물엔 눈 온 뒤 산빛이 밝게 잠겼네.(空林照入天涯月, 野水明涵雪後山.)”라는 구절로 말하면, 실제로 당송唐宋에 출입할 만하니, 자하紫霞(신위申緯)가 소순蔬筍의 기미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평한 것도 진정 과장된 말은 아니다.또 『동다송東茶頌』 한 편은 상저서桑苧書90)와 서로 위아래를 다툰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침정沈靜 담저澹泞하여 오도洿塗를 피하고 유류悠謬를 벗어나 피안彼岸에 이를 수가 있으니, 어찌 혜휴惠休와 보월寶月의 무리가 감히 견줄 수 있겠는가.돌아보건대 나는 선화蟬花와 같이 박루樸陋해서 남을 평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우리가 함께 노닌 감회가 있기에 시권詩卷의 말미에 한마디하게 되었다.석오石梧 윤치영尹致英은 쓰다.
예로부터 총림叢林에서 세상에 이름이 난 스님들은 대부분 청운의 인사에게 붙은 뒤에야 비로소 이름이 드러났다. 예를 들면 문창文暢이 퇴지退之(한유韓愈)에게 붙고, 비연秘演이 영숙永叔(구양수歐陽修)에게 붙고, 도잠道潛과 총수聰殊가 자첨子瞻(소식蘇軾)에게 붙은 것이 그것이다.그러나 석씨釋氏는 적멸寂滅을 도道로 삼고 은둔을 즐기며 색상色相을 공空으로 여긴다. 그러니 시로 이름을 얻으려고 하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유자儒者의 시는 석씨의 게偈라고 할 것인데, 게를 잘 지으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적이 없다. -
010_0870_b_03L艸衣詩藁跋
010_0870_b_04L歲金豕積寒。余屬疾。端憂瀧吏報。涉艸
010_0870_b_05L衣老師刹扉。乃躧履捉坐。憂余蕉萃如三
010_0870_b_06L花。以廣長舌。論流別竸。病就傾海。袖攏
010_0870_b_07L行卷以示余。嘗飫聞思一侈。頰牙遂燃燭。
010_0870_b_08L吟賞其詩。多警悟絕粉臙。崇意布格。如
010_0870_b_09L盤走丸。橫斜超縱。眞徵栗題糕。苕花獨
010_0870_b_10L美。淵泉相公。弁其首。以紫陽夫子所跋
010_0870_b_11L志。南上人杏花楊柳句爲甲乙。足驗其大
010_0870_b_12L辨才。且有靈臺元固基。智水本澄源之句。
010_0870_b_13L嘗從學士大夫遊。其有意於吾道審矣。使。
010_0870_b_14L在昌黎之世。未知元惠文暢。孰爲紫標黃
010_0870_b_15L標。如空林照入天涯月。野水明涵雪後山
010_0870_b_16L之句。果出入唐宋。紫霞所謂盡脫蔬筍氣
010_0870_b_17L者。信非讕語。又東茶頌一篇。與桑苧書
010_0870_b_18L相上下。况其沈靜澹泞。避洿塗。謝悠謬。
010_0870_b_19L能到彼岸者。豈惠寶軰所敢肩哉。顧余蟬。
010_0870_b_20L花樸陋。不足爲月朝語。而以從余遊處爲
010_0870_b_21L感。用托卷尾云。石梧尹致英書。
010_0870_b_22L
010_0870_b_23L自古叢林之聞於世者。多附靑雲之士名
010_0870_b_24L始著。如文暢之於退之。秘演之於永叔。
010_0870_b_25L道潛聰殊之於子瞻。是爾。然釋氏以寂滅。
010_0870_b_26L爲道。樂隱瀹而空色相。况以詩名乎。然
010_0870_b_27L儒之詩。釋之偈也。偈之善者。未始不聞
-
010_0870_c_01L초의草衣 장로長老 의순意恂은 바로 근세에 게를 잘 지은 사람이다. 그가 지은 일지암一枝庵의 두 편의 시를 내가 보았더니, 모두 청원淸遠하고 유담幽澹하였으며, 찌꺼기는 도태하고 정수만 걸러 낸 것이었다. 연천淵泉(홍석주洪奭周)이 분식粉飾을 완전히 없앴다고 평하고, 자하紫霞(신위申緯)가 소순蔬筍의 기미를 떨어 버렸다고 평한 것은 실로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이름이 사람들 사이에 크게 알려지자, 또 모두 함께 어울려 창수唱酬하였으니, 이는 하나의 한韓, 하나의 구歐, 하나의 소蘇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세상에 이름이 나려 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이는 또 장로 자신이 그들에게 붙으려 해서가 아니고, 한․구․소가 창暢․연演․잠潛․수殊를 만난 것을 즐거워하며 스스로 그 이름을 조장한 것이니, 장로에게야 무슨 관계가 있다고 하겠는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려 중에는 계율戒律에 구애를 받은 나머지 더러 비난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번 시험 삼아 읽어 보면 장로가 언제 기려綺麗하고 음야淫冶한 시를 지어서 혜휴惠休나 보월寶月의 무리처럼 재자才子에게 영합하려고 한 적이 있기나 하였던가.장로는 오로지 진제眞諦와 정각正覺을 근본하고 제가諸家의 시를 섭렵한 뒤에 게偈를 지은 것이니, 그의 이름에 흠을 낼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내가 그의 시를 알고 그의 사람됨을 안 뒤에, 부도자浮屠子가 그의 자취를 문제 삼는 것에 대해 분개한 나머지, 서문序文 중의 장구章句를 대략 주워 모으고 나의 군더더기 말을 보태어서 간행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을해년 모월 모일에 백파거사白坡居士 영천靈川 신헌구申獻求는 초의草衣 고제高弟 월여月如의 선실禪室에서 쓰다.
대개 시는 천취天趣에 근본해서 언사言詞로 발로되는 것이다. 일지암一枝庵 화상和尙은 평생 불경佛經을 강론하고 선기禪機를 펼치는 여가에 더러 유석儒釋과 어울려 이따금 창수唱酬하였는데 그 기운이 속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엮어서 시로 지으면 문조文藻가 빛나고 음운音韻이 맑아서 애연藹然히 성률聲律에 들어맞았으니, 당송唐宋의 격조格調에 출입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명성이 당세에 떠들썩하였으니, 이는 또한 깨달음을 통해서 정情으로 발산된 것이라고 하겠다.빛나는 이 명성을 차마 숨길 수가 없기에, 법손法孫인 상운祥雲과 응혜應惠가 법제法弟인 쌍수雙修․일한一閒과 더불어 특별히 아회雅懷를 발하여 공인工人에게 인행印行하게 하였는데, 나도 이 역사役事에 끼어 도우면서 장하고 기쁘게 여겨지기에, 승연勝緣의 자취를 이렇게 기록해서 보여 주게 되었다.병오년 4월 하순 어느 날에 원응圓應 계정戒定은 삼가 쓰다. -
010_0870_c_01L於世。草衣長老意恂。即近世之善偈者。
010_0870_c_02L余觀其所爲一枝盦二𢎥詩。皆淸遠幽澹
010_0870_c_03L淘涬煉精。淵泉之絕去粉澤。紫霞之擺落
010_0870_c_04L蔬筍。良非過詡。名碩聞人。又皆從與唱
010_0870_c_05L酬。不惟一韓一歐一蘇而止。雖欲無聞
010_0870_c_06L於世得乎。盖亦非長老之所自附爲韓敺
010_0870_c_07L蘇者。樂得暢演潛殊。自助其名於長老
010_0870_c_08L何有哉。而緇衲局束於戒律。猶或非之。
010_0870_c_09L亦試讀之。曷嘗爲綺麗淫冶。以求合於才。
010_0870_c_10L子。如惠休寶月之倫乎。職由眞諦正覺
010_0870_c_11L歷涉諸家之詩。以爲之偈。宜其名聞之不
010_0870_c_12L瑕。余旣覺其詩。知其人。又憤浮屠子之
010_0870_c_13L議。其跡略掇。弁序中章句。贅說而足之
010_0870_c_14L以竢剞劂氏。
010_0870_c_15L歲旃蒙大淵獻之霷。白坡居士。靈川申
010_0870_c_16L獻求。書于艸衣高弟月如禪室。
010_0870_c_17L
010_0870_c_18L盖詩本於天趣。而發於言詞也。一枝盦和
010_0870_c_19L尙。生平演經竪拂之餘。或與儒釋。有時
010_0870_c_20L唱酧。含吐不俗。聯而爲詩。文藻彬鬱。音
010_0870_c_21L韻淸揚。藹然自合於聲律。可謂出入唐宋
010_0870_c_22L之調格。名噪當世。則亦由悟天而發於情
010_0870_c_23L者也。盛名之下。不忍弢光。故法孫祥雲
010_0870_c_24L應惠。與法弟雙修一閒。特發雅懷。倩工
010_0870_c_25L印緝。定亦叅助役。壯而悅之。記示勝緣
010_0870_c_26L之迹如是。
010_0870_c_27L丙午四月下浣之一日。圓應戒定謹書。
- 90)상저서桑苧書 : 당唐나라 육우陸羽가 지은 다경茶經을 가리킨다. 상저는 육우의 별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