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함홍당집(涵弘堂集) / 涵弘堂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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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홍당집 서(涵弘堂集序)
『함홍집』 두 편은 운환 상인上人이 지은 것으로 그의 뛰어난 제자(高足) 야산野山이 진찰塵刹12)에 알릴 생각으로 판각하면서 나에게 머리말로 쓸 한마디 말을 청하였다. 돌아보건대 나는 유자儒者로서 사문의 학문을 어떻게 알겠느냐마는 감히 그분을 위해 말해 보겠다.
재차 생각해 보건대 상인께서는 이른 나이에 산문에 올랐으나 유가儒家의 학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삭발함에 이르러 처음 선종禪宗에서 계를 받고는 경첨瓊籖,13) 옥급玉笈14)의 비서秘書와 패엽貝葉,15) 라집羅什16)의 문장을 단박에 깨치지 못하는 일이 없었으며, 육경六經17)과 사자四子18)는 물론 백가百家의 서적까지도 역시 모두 두루 통달하였다. 그의 계행戒行은 고결했고 깊은 가르침은 크고 원대하였으며, 종풍을 드날리며 수많은 송誦들을 연마하였기에 남종南宗의 불법을 배우는 이들이 모두 그를 귀의처로 삼았고, 명성도 따라서 더욱 자자했으니 진실로 논사들 가운데 사자獅子요, 법문의 용상龍象이었다고 하겠다. 또한 그 문장으로 표현한 것들은 모두가 청고淸苦19)하고 충담冲澹20)하지만, 소순蔬筍의 기미氣味21)라고는 조금도 없어 스스로 한 가문의 궤범을 이루었으니, 진실로 당나라 때의 태전太顚22)과 송나라 때의 비연祕演23)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하겠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 한스럽게도 그를 기리고 찬양할 창려昌黎24)와 구양歐陽25)이 없어 스님께서 산중에서 70년 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수련한 자취가 연기처럼 사라지려 하니, 아, 슬프구나!
스님께서 발우를 전하고 그의 설법을 들은 무리가 매우 많은데, 눌암訥庵과 야산野山이라는 자가 그 시문을 수습하여 오래도록 전하고자 도모하니, 이로써 스님의 자취가 사라지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나도 결사를 맺고 산문에서 몸을 잊은 채 그분을 좇은 적이 있었다. 이제 그 자취가 먼지처럼 사라진 뒤에 그분의 권질卷帙을 쓰다듬자니 옛 감회가 없지 않아 이렇게 한두 마디나마 써서 『함홍집』의 서문으로 삼는다.
용집龍集26) 기묘년己卯年(1879) 음력 7월(流火月)에 기서거사沂墅居士 김기선金驥善27)이 서문을 쓰다.


010_0968_b_02L涵弘堂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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涵弘集二編即雲寰上人所著也其高
010_0968_b_05L足野山圖報塵刹將付剞劂請余一
010_0968_b_06L言以弁之顧余儒者人也何以知沙門
010_0968_b_07L之學而强爲之說哉第惟上人早歲
010_0968_b_08L登山門能從事儒業及剃髮始受戒
010_0968_b_09L於禪宗瓊籖玉笈之祕貝葉羅什之文
010_0968_b_10L靡不頓悟而六經四子百家之書亦皆
010_0968_b_11L旁通是其戒行高潔玄敎弘長闡揚
010_0968_b_12L宗風修鍊羣誦南宗之學佛者咸以
010_0968_b_13L爲依歸名聲遂藉甚眞可謂論中獅子
010_0968_b_14L法門龍象也其發於文辭者又皆淸苦
010_0968_b_15L冲澹少無蔬筍氣味而自成一家軌範
010_0968_b_16L固不讓於唐之太顚宋之祕演而今世
010_0968_b_17L恨無昌黎歐陽以褒揚之則師之山中
010_0968_b_18L七十年棲心修鍊之跡其將湮沒而已
010_0968_b_19L嗚呼師之傳鉢聽徒甚衆而訥庵
010_0968_b_20L野山者收拾其詩文圖壽其傳可以
010_0968_b_21L不朽師也余維結社山門忘形追逐
010_0968_b_22L今爲塵迹而摩挲卷帙不無感舊之懷
010_0968_b_23L遂書一二如右爲涵弘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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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集己卯流火月沂墅居士金驥善序
  1. 12)진찰塵刹 : 먼지처럼 수없이 많은 세계, 즉 온 우주를 지칭한다.
  2. 13)경첨瓊籖 : 옥에 새긴 미래에 대한 예언, 즉 비기秘記를 말한다. 도교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3. 14)옥급玉笈 : 도교의 비서秘書를 감춘 상자이다.
  4. 15)패엽貝葉 : 인도에서 종이 대신에 사용한 패다라 나뭇잎을 말하는데, 전하여 불경佛經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5. 16)라집羅什 : 구마라집鳩摩羅什(Kumārajīva, 344~413)의 준말이며, 의역하여 동수童壽라고 한다. 구자국龜玆國 사람으로 401년 후진後秦의 왕 요흥姚興의 국사로 장안長安에 들어와 13년 동안 『大品般若經』·『妙法蓮華經』·『中論』·『大智度論』 등 74부 380여 권을 번역하여 중국 불교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6. 17)육경六經 : 여섯 경서經書, 즉 『詩經』·『書經』·『易經』·『春秋』·『禮記』·『樂記』를 말한다.
  7. 18)사자四子 : 『論語』·『大學』·『中庸』·『孟子』를 말한다.
  8. 19)청고淸苦 : 청렴하게 곤궁함을 견디는 것을 말한다.
  9. 20)충담冲澹 : 맑고 깨끗해 욕심이 없는 것을 말한다.
  10. 21)소순蔬筍의 기미氣味 : 야채와 죽순을 먹고 고기는 섭취하지 않는 승려들의 시문이나 언사에 나타나는 특유의 말투와 분위기를 말한다. 소식蘇軾이 도잠陶潛의 시를 평하여 “한 점 소순의 기미도 없다.”고 하였다. 『宋人軼事彙編』.
  11. 22)태전太顚(732~824) : 당나라 때의 승려로 대전大顚이라고도 한다. 청원靑原 문하 석두 희천石頭希遷(700~790)의 법을 이어받았으며, 법명은 보통寶通이다. 조주潮州 영산靈山에 오래 주석하였으며, 원화元和 14년(819)에 「論佛骨表」를 헌종憲宗에게 올렸다. 대표적 배불론자인 한유韓愈와 깊이 교류한 것으로 유명하다.
  12. 23)비연祕演 : 송나라의 승려로 석연년石延年과 시우詩友가 되어 격식을 차리지 않고 술과 노래를 즐겼다고 한다.
  13. 24)창려昌黎 : 한유韓愈의 봉호이다. 한유韓愈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을 때, 형산衡山 조계曹溪의 태전太顚을 희롱하기 위해 기생 홍련紅蓮을 보내 유혹하게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태전이 홍련의 치마에 써서 보낸 시를 읽고는 감복하고 그를 존중하였으며, 깊이 교류하다가 작별할 때 자신의 의복을 남겨 주었다는 이야기가 「與孟尙書書」에 수록되어 있다.
  14. 25)구양歐陽 : 송나라의 대표적 문학가인 구양수歐陽脩를 말한다.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이다. 「釋秘演詩集序」를 썼다.
  15. 26)용집龍集 : 태세太歲의 이명異名으로 기년紀年할 때 쓰는 말로서 연차年次, 세차歲次를 뜻한다. 용龍이라는 이름의 별은 1년에 한 번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하며, 집集은 별이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16. 27)김기선金驥善(1806∼1883) : 조선 말기의 학자로, 자는 유용幼用, 호는 기서沂墅, 본관은 안동이다. 1835년(헌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연마하다가 큰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사림으로 활동하였다. 『沂墅文集』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