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함홍당집(涵弘堂集) / 雲寰師詩藳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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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홍당집涵弘堂集
운환사 시고 서(雲寰師詩藁序)
석씨釋氏는 한결같이 공적空寂만 탐닉하는 것을 흑산黑山 아래 귀신 집 살림살이1)로 여기고, 백 천 개의 해와 달이 시방세계를 비추듯 한 생각에 밝게 깨달아 실오라기 하나, 터럭 끝만큼의 다른 생각도 없어야 구경究竟과 상응할 만하다고 여기니, 이는 공적한 것이 아니라 큰 근본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수천 년이나 세상에 전래되며 우리 도(儒敎)와 나란히 존립할 수 있었던 이유이니, 너무도 확실하게 없어져 버린 저 노장老莊이나 양묵楊墨2)과는 같지 않다. 근세에 석씨 가문에서 또 그것을 시문詩文이나 잡저雜著로 발현하고 있으니, 곧 이런 일들이 더욱 유가에 가까운 것이며, 마음을 관하는 법은 은밀한 가르침인데, 그 은밀함을 문장으로 드러내는 것은 불씨佛氏의 행운이로다.
나와 운산雲山 대가람大伽藍의 운환雲寰3) 스님은 70년이나 좋은 사이로 지냈으니, 주희朱熹4)와 도겸道謙,5) 한유韓愈6)와 문창文暢7)에 견줄 만하다. 선사는 풍모가 순박하고 기개는 돈후하였으며, 의지가 전일하고 마음은 아름다웠다. 어려서 스승을 따라 유가의 서적을 탐독하였고, 자취를 총림에 의탁하고 나서는 비로자나(毘盧)의 도8)를 배웠다. 그러고 나서 또 구름처럼 사방을 떠돌며 오도悟道의 시나 문장을 썼는데, 그 대부분이 모두 유가를 계승한 것이니, 어찌 도겸과 문창의 부류가 아니겠는가.
그의 법좌法佐 명원明遠이 이를 판각하려 하면서 나에게 한마디를 구하니, 내 비록 불타(浮屠)9) 를 위해서는 말을 하지 않겠으나 예전의 좋은 관계에서 느낀 감회가 있고, 또 그의 시문이 유가에 가까운 것을 사랑하기에 사양하지 않고 그를 위해 서문을 쓴다. 명원 또한 담론과 게송에 능하며, 사문들 가운데 연장자라 하겠다.
신사년(白蛇)(1881)10) 오동이 꽃피는 계절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전행前行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 겸 경연참찬관經筵叅賛官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 이돈우李敦禹11)가 서문을 쓰다.

010_0968_a_01L[涵弘堂集]

010_0968_a_02L1)雲寰師詩藳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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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氏以一向耽空寂爲黑山下鬼家活
010_0968_a_05L以百千日月十方世界一念明了
010_0968_a_06L無一絲毫頭異想爲可與究竟相應
010_0968_a_07L非空寂而能覰得大本影象此所以能
010_0968_a_08L傳世數千年與吾道并立不如老莊楊
010_0968_a_09L墨之的然而亡者也近世釋家又發之
010_0968_a_10L以詩文雜著則其事又近儒而觀心之
010_0968_a_11L法隱敎隱而文見佛氏之幸歟余與雲
010_0968_a_12L山大伽藍雲寰師善七十年盖朱之謙
010_0968_a_13L而韓之文暢也師貌淳而氣厚志專而
010_0968_a_14L意美少從師讀儒家書旣已托跡叢
010_0968_a_15L學道毘盧則又雲遊四方因書悟
010_0968_a_16L道詩若文大率皆傳襲於儒豈非謙與
010_0968_a_17L文暢者流耶其法佐明遠將鋟諸梓
010_0968_a_18L求一言於余余雖不爲浮屠語然感夙
010_0968_a_19L昔之好又愛其詩文之近於儒不辭而
010_0968_a_20L爲之說遠又善談說偈長於沙門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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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蛇桐華節通政大夫前行承政院
010_0968_a_22L同副承旨兼經筵叅賛官春秋館修撰
010_0968_a_23L李敦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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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흑산黑山 아래~집 살림살이 : 『俱舍論』 권11에서 “남섬부주南贍部洲의 북쪽 삼처지방三處地方에 세 겹의 흑산이 있는데, 그곳은 어둡고 귀신들이 서식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선문禪門에서는 정식情識에 집착하여 분별을 그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여 “흑산의 암혈暗穴에 빠졌다.”라고 표현한다. 『碧巖錄』 제41칙에서 “은처럼 하얀 산에 쇳덩어리 같은 절벽을 마주한 것이니, 짐작하거나 의론하면 해골바가지 앞에서 귀신을 볼 것이요, 더듬어 생각하면 흑산 아래에 주저앉게 될 것이다.(銀山鐵壁。 擬議則髑髏前見鬼。 尋思則黑山下打坐。)”라고 하였다.
  2. 2)양묵楊墨 :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말한다.
  3. 3)운환雲寰 : 함홍당涵弘堂 치능 대사致能大師(1805~1878)의 자字이다.
  4. 4)주희朱熹(1130~1200) : 중국 남송南宋 때의 유학자로 후대에 주자朱子로 칭송되었다. 자는 원회元晦, 또는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회옹晦翁·운곡노인雲谷老人·둔옹遯翁 등이다. 불교와 도교의 철학에 대항하여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제창하여 유학의 학문적·사상적 우월성을 주장하였으나, 그 사상적 기반에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이 짙게 깔려 있다.
  5. 5)도겸道謙 : 대혜 종고大慧宗杲(1089~1163)의 제자로서 선사들의 일화에 대한 대혜의 교시를 모아 『大慧宗門武庫』를 편찬하였다. 『居士分燈錄』 권하(X86, 609a)에 주희가 도겸의 법사法嗣로 거론되고, 주희가 18세에 『大慧語錄』을 탐독하고 도겸에게 참문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6. 6)한유韓愈 : 당唐의 남양南陽 사람이며, 자는 퇴지退之, 봉호는 창려昌黎, 세칭 한문공韓文公이라 한다. 경사經史와 백가百家에 두루 통하여 일가의 문장을 이루었다. 덕종德宗 때에 진사에 올라 감찰어사監察御史를 거쳐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이르렀다. 노자와 불교를 배격하였으며, 『韓昌黎全集』이 전한다.
  7. 7)문창文暢 : 한유韓愈와 같은 시대의 승려이다. 한유의 「送浮屠文暢師序」에서 “문창은 문장文章을 좋아하여 천하를 주유周遊할 적에 어디를 가나 반드시 유학자에게 시를 지어 주기를 청했었는데, 시가 수백 편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古文眞寶』 후집後集.
  8. 8)비로자나(毘盧)의 도 : 비로자나는 부처님의 진신眞身에 대한 존칭으로서 삼신三身 가운데 법신法身을 말한다. 여기서는 불교를 지칭하는 말로 썼다.
  9. 9)불타(浮屠) : 부도浮屠는 불타佛陀(buddha)가 와전된 말이다. 불교를 부도교浮屠敎라 칭하기도 하였다.
  10. 10)신사년(白蛇) : 십간十干에서 경庚과 신申은 오행五行의 서西, 오색의 백白에 해당한다. 따라서 신사년辛巳年을 백사白蛇라 한다.
  11. 11)이돈우李敦禹(1807~1884) :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자는 시능始能, 호는 긍암肯庵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안동安東 출신이다. 이상정李象靖의 현손玄孫이자 이수응李秀應의 아들이며,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이다. 문집으로 『肯庵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