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함홍당집(涵弘堂集) / 跋

ABC_BJ_H0257_T_008

010_0993_c_10L
발문(跋)
내가 조용히 관하건대, 신령한 땅과 기이한 구역으로 나라에서 이름난 곳은 대부분 부도씨浮屠氏가 점거하고 있고, 기이한 자질을 지니고서 격식을 벗어나 느긋하게 살아가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또한 왕왕 그곳에서 출현하니,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릇 천지의 정영精英과 맑고 선명한 기운이 깃들어 기이한 산천이 되고 빼어난 인물이 된 것이지, 이것이 어찌 천축의 가르침을 계승한 결과이겠는가. 특별히 신령한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는 대부분 아득하고 먼 궁벽한 고을에 있으니, 이것은 산이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덤불을 헤치고 세워진 범천의 궁궐과 부처의 당우가 없다면 아름다운 산수도 그 기이함을 의탁할 곳이 없었을 것이다. 뛰어나고 우수한 인물은 조정에 출세하지 못하면 산림에 처할 뿐인데, 산림의 즐거움으로 기원祇園과 총령葱嶺11)보다 온전한 것은 없다. 이것이 법도를 벗어나 몸뚱이 하나로 방랑하고, 세상사를 우습게 여기며 속세를 끊는 것으로 자신의 소원을 삼았던 이유였다.
예로부터 이름난 승려 시인들이 불교 서적과 염송拈頌에 늘 마음을 두었던 까닭이 어찌 한계가 있어서였겠는가마는 그 학문에 한번 들어가고 나서도 시서예악詩書禮樂의 가르침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 보지를 못했다. 그러나 운수암의 운환 상인만큼은 식견이 뛰어나고 의기가 당당하여 이미 명교名敎에 국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선율禪律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으셨으며, 청백한 가르침을 보고 현묘한 가르침을 설하는 것 외에도 능히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말씀을 이야기할 줄 알아 나와 더불어 윗사람 아랫사람이 되었다.

010_0993_c_10L

010_0993_c_11L
余窃觀夫靈皋異區諸有名於域中者
010_0993_c_12L皆爲浮屠氏所占據負奇𧿧弛不常之人
010_0993_c_13L又𨓹𨓹出於其間是何也夫天地精英淑
010_0993_c_14L淸之氣鍾之爲山川之異人物之秀
010_0993_c_15L豈竺敎之所襲而有㦲特以靈嶠邃壑
010_0993_c_16L在於幽遐僻絕之鄕此山之不遇者也
010_0993_c_17L有梵宮佛宇辟榛莾而發泉石無以著其
010_0993_c_18L異也魁偉俊茂之人不得於朝則山林
010_0993_c_19L而已而山林之樂莫全於祇園葱嶺
010_0993_c_20L所以脫畧矩度放浪形骸以夸世絕俗
010_0993_c_21L而發其願也從古以來名緇韻釋其所
010_0993_c_22L以心心於竺墳拈頌者何限而一入其學
010_0993_c_23L未聞有詩書禮樂之敎而惟雲水庵雲寰
010_0993_c_24L上人見識超詣氣意軒昻旣不局於名
010_0993_c_25L敎之內又不肯以禪律自縛看白說玄之
010_0993_c_26L能道周公孔子之言以與我上下

010_0994_a_01L내 삼승三乘과 이종二宗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해 운환을 위해 변론할 수야 없지만 어찌 이른바 성품을 보고 마음을 관한 자가 아니겠는가?
그 옛날 문창文暢은 문장을 좋아하였고, 비연祕演은 의기를 받들었으니, 위대함이 한유韓愈와 구양수歐陽脩 두 분에게서 칭찬을 받아12) 지금까지도 사람들로 하여금 사모의 정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고관대작들 틈에서 두루 노닐며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만취한 가운데 노래를 불렀으니, 곧 그 질탕함에 있어서는 이미 과오를 저지른 것이다. 이는 운환 역시 결백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운환으로 하여금 한유와 구양수를 만나게 했다면 그 고하와 차례가 또 어떠했을지 모를 일이니, 어찌 선가에서 뒷사람들에게 전할 만한 자가 아니겠는가.
스님에게 시문 약간 편이 있기에 그 제자인 눌암과 야산이 이를 판각하여 사라지지 않게 하고자 하면서 나에게 이에 관한 글을 부탁하였다. 아, 스님의 사실에 따른 행적이 돌에 새겨지고, 스님의 문장이 나무에 판각되어 후세에 그 빛을 끝없이 드리우게 되었는데, 내가 꼭 군더더기를 줄줄이 붙일 필요가 있겠는가. 다만 남종南宗이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정성을 다하는 그 뜻이 가상하고, 또 살펴보니 글 가운데에 우리 집안의 선세 어른과 주고받은 글들도 많아 열람하고 나서는 옛일에 대한 감회를 이길 수 없어 이렇게나마 글을 써서 돌려보낸다.
기묘년 가을에 대은거사大隱居士 한산韓山 이수영李秀瑩 짓다.

010_0994_a_01L不解三乘二宗之說不能爲雲寰辨然豈
010_0994_a_02L非所謂見性而觀心者耶昔文暢喜文章
010_0994_a_03L祕演尙氣義大爲韓歐二子所穪說至今
010_0994_a_04L使人想慕然若其周遊於縉紳先生之間
010_0994_a_05L歌呼於劇飮大醉之中則已過於跌宕矣
010_0994_a_06L亦雲寰之所不屑焉使雲寰而遇韓歐者
010_0994_a_07L未知其高下品第又何如也豈非禪家之
010_0994_a_08L可傳於來後者與師有詩文若干篇而其
010_0994_a_09L聽徒訥庵野山將付剞劂以圖不朽
010_0994_a_10L要余以識之師之實蹟勒之于石
010_0994_a_11L之文詞鋟之于梓以耀後世而垂無竆
010_0994_a_12L吾何必贅爲第惟南宗報佛之誠其意可
010_0994_a_13L且見編中多有與吾家先世相往復
010_0994_a_14L披閱之餘不勝感舊之懷聊書此以
010_0994_a_15L歸之

010_0994_a_16L
己卯秋大隱居士韓山李秀瑩識

010_0994_b_01L

010_0994_c_01L
  1. 11)기원祇園과 총령葱嶺 : 기원은 곧 기원정사祇園精舍로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거주하신 곳이며, 총령은 서역으로 돌아가던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최후로 목격된 장소이다. 곧 불법佛法과 선법禪法을 은유한 말이다.
  2. 12)한유韓愈와 구양수歐陽脩~칭찬을 받아 : 한유韓愈는 「送浮屠文暢師序」에 “문창은 문장文章을 좋아하여 천하를 주유周遊할 적에 어디를 가나 반드시 유학자에게 시를 지어 주기를 청했었는데, 시가 수백 편이나 되었다.”고 칭찬하였고, 구양수歐陽脩는 비연의 시집에 서문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