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攝大乘論釋論卷第四

ABC_IT_K0593_T_004
017_0021_c_01L
섭대승론석론 제4권
017_0021_c_01L攝大乘論釋論卷第四


세친 지음
수 천축삼장 급다ㆍ행구 등 한역
김묘주 번역
017_0021_c_02L世親菩薩造
隋天竺三藏笈多共行矩等譯


2. 응지승상승어(應知勝相勝語) ①
017_0021_c_04L應知勝相勝語第二之一

1) 상장(相章)
017_0021_c_05L相章第一
【論】이상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의 의지처[應知依止]를 말하였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의 양상[應知相]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1) 이에 간략히 세 종류가 있으니, 의타상ㆍ분별상ㆍ성취상이다.
여기서 무엇이 의타상인가? 아리야식을 종자로 하는 허망분별에 포섭되는 모든 식이다. 무엇이 이러한 식인가?2) 이른바 신식(身識)3)ㆍ신자식(身者識)4)ㆍ수자식(受者識)5)ㆍ응수식(應受識)6)ㆍ정수식(正受識)7)ㆍ세식(世識)8)ㆍ수식(數識)9)ㆍ처식(處識)10)ㆍ언설식(言說識)11)ㆍ자타차별식(自他差別識)12)ㆍ선악양도생사식(善惡兩道生死識)13)이다.
017_0021_c_06L論曰:已說應知依止,應知相云何可見?此略說有三種,謂依他相`分別相`成就相.此中何者是依他相?阿梨耶識,爲種子虛妄分別所攝諸識.何者是諸識?謂身識`身者識`受者識`應受識`正受識`世識`數識`處識`言說識`自他差別識`善惡兩道生死識.
이 중에서 신식ㆍ신자식ㆍ수자식ㆍ응수식ㆍ정수식ㆍ세식ㆍ수식ㆍ처식ㆍ언설식은 언설훈습의 종자로부터 생겨난다. 자타차별식은 아견훈습의 종자에서 생겨나고, 선악양도생사식은 유분훈습의 종자로부터 생겨난다.
이들 여러 식은 모든 윤회세계와 번뇌 등의 의타상의 허망분별에 포섭됨으로써 현현할 수 있다. 이들 여러 식은 허망분별에 포섭되며, 오직 식의 인식방법이다. 이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진실이 아닌 대상[義]14)이 현현하는 의지처이다. 이것이 의타상15)이다.
017_0021_c_13L此中身識`身者識`受者識`應受識`正受識`世識`數識`處識`言說識,此等從言說熏習種子生.自他差別識,從我見熏習種子生.善惡兩道生死識,從有分熏習種子生.此等諸識,攝一切界趣,及煩惱等,依他相虛妄分別故,得顯現.此等諸識,虛妄分別所攝,唯是識量,無所有`不實義,顯現依止,此是依他相.
017_0022_a_01L【釋】이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의 양상을 해석함에 있어서 의타상을 간략히 말한다는 것은 요점을 종합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허망분별에 포섭된다’는 것은 허망분별의 체성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신식은 안계 등 5계(界)를 말하고, 신자식은 염오의를 말하며, 수자식은 의계(意界)를 말한다. 응수식은 색계 등 여섯 가지 외계를 말하고, 정수식은 6식계를 말한다. 세식은 생사가 상속해서 단절되지 않음을 말하고, 수식은 숫자를 계산함을 말하며, 처식은 자연계를 말하고, 언설식은 보고 듣고 감각하고 아는 것의 네 가지 언설을 말한다. 이들 아홉 가지 식은 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의 의지처이다. 보고 듣는 것 등은 명언훈습의 차별을 원인으로 삼는다.
자타차별식은 의지신의 차별을 말하며, 아견훈습을 원인으로 삼는다. 선악양도생사식은 생사 윤회세계의 수많은 종류이며, 유분훈습의 종자로부터 생겨난다.
017_0021_c_22L釋曰:今釋應知相中,依他相.略說者,謂摠要而說故.虛妄分別所攝者,虛妄分別體性故.此中身識者,謂眼等五界.身者識者,謂染污意.受者識者,謂意界.應受識者,謂色等六外界.正受識者,謂六識界.世識者,謂生死相續不斷.數識者,謂筭計.處識者,謂器世界言說.識者,謂見聞覺知四種言說.此等九識皆是應知依止,見聞等名言熏習差別爲因.自他差別識者,謂依止身差別,以我見熏習爲因.善惡兩道生死識者,謂生死趣無量種,從有分熏習種子生.
‘이들 여러 식’은 바로 앞에서 말한 여러 식이다. ‘모든 윤회세계와 번뇌를 포섭한다’는 것은, 삼계와 다섯 가지 윤회세계와 번뇌를 포섭함이 그 식의 체성이기 때문이다.
의타상은 의타를 자체로 삼기 때문이다. 여기서 허망분별에 포섭되는 것이 그것의 체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진실되지 않은 대상이 현현하는 의지처’란, 이것이 존재하지 않고 진실되지 않은 대상이 현현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자아처럼 외부대상은 진실된 의미가 없다. 비존재에 대하여 집착해서 마치 자아처럼 존재하지 않으면서 자아의 모습이 현현한다. 이 의지처를 현현함의 의지처라고 부른다. 의지처는 원인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곧 이것은 의타상이다.
017_0022_a_12L此等諸識者,次前所說諸識.攝一切界趣煩惱者,謂三界五趣及煩惱等.攝者,彼識體性故.依他相者,依他爲體故.此中虛妄分別所攝者,是彼體性故.無所有不實義,顯現依止者,是無所有`不實義顯現因故.此中無所有者,無實體故.如我塵無有實義`於無所有中執取譬如我`卽是無所有,而有我相顯現.此所依止`名顯現依止.依止者因義,故卽是依他相.
【論】이 중에서 무엇이 분별상16)인가? 오직 식의 인식방법이며, 대상이 없는 것 중에서 대상이 현현함이 있기 때문이다.
017_0022_a_22L論曰:此中何者,是分別相?於唯是識量無有義中,有義顯現故.
017_0022_b_01L【釋】분별상 중에서 대상이 없는 것은 마치 실제로 자아가 없음과 같다. 이 ‘오직 식의 인식방법’이란 대상이 없는 것 중에서 현현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아처럼 오직 비슷한 모습이 현현하기 때문이다. ‘대상이 현현한다’는 것은 인식대상의 모습이 현현함이, 마치 무아인데도 자아의 모습이 현현함과 같기 때문이다.
017_0022_b_01L釋曰:分別相中,言無有義者,譬如實無有我.此唯有識量者,於無有義中,而顯現故,譬如我唯相似顯現故.爲義顯現者,爲所取相顯現,譬如無我而我相顯現故.
【論】이 중에서 무엇이 성취상17)인가? 이 의타상 가운데 그 대상의 모습이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017_0022_b_06L論曰:此中何者,是成就相?卽此依他相中,彼義相畢竟無所有故.
【釋】‘성취상’은 이 존재하지 않고 진실이 아닌 대상이 현현하는 원인 중에서 그 진실이 아닌 대상이 현현함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자아와 비슷한 모습은 실제로 없지만 무아는 있음과 같다.
017_0022_b_08L釋曰:成就相者,此無所有不實義顯現因中,彼不實義顯現無所有故,如我相似相實無所有,然無我是有.
017_0022_c_01L【論】마땅히 알지니, 이 중에서 신식ㆍ신자식ㆍ수자식은 안계 등 여섯 가지 세계이다.
마땅히 알지니, 응수식은 색계 등 여섯 가지 세계이다. 마땅히 알지니, 정수식은 안식계 등 여섯 가지 세계이다. 마땅히 알지니, 그 나머지 식은 이 모든 식의 차별이다. 또한 이 모든 식은 오직 식의 인식방법만 있을 뿐이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무엇으로써 비유로 삼는가? 마땅히 알지니, 꿈 등의 비유로써 나타낸다. 마치 꿈속에서는 대상이 없고 오직 식만이 존재함과 같다. 비록 갖가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집ㆍ숲ㆍ땅ㆍ산 등 대상과 비슷한 모습이 현현하지만, 이 중에서 실제로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비유에 의해서 어느 곳에서나 오직 식이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
마땅히 알지니, 이것을 비롯해서 다시 요술ㆍ사슴의 목마름18)ㆍ흐리고 어두움 등의 비유가 있다. 마치 꿈 등과 같이 깨어 있을 때에도 어느 곳에서나 오직 식만이 존재한다. 꿈과 같이 오직 식이라면 깨어 있을 때는 어째서 이처럼 전전하지 않는가? 진실한 지혜의 깨달음도 역시 이렇게 전전한다. 마치 바로 꿈을 꿀 때는 이 깨침이 생겨나지 않고, 꿈에서 깨면 이 지혜가 생겨남과 같다. 이와 같이 아직 진실한 지혜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이 지혜가 생겨나지 않고, 만약 진실한 지혜의 깨달음을 얻으면 이 지혜가 생겨난다.
017_0022_b_11L論曰:此中身識`身者識`受者識,應知是眼等六內界.應受識者,應知是色等六外界.正受識者,應知是眼等六識界.其餘識,卽是此等諸識差別應知.如是等識,唯是識量,以無義故.此中以何爲譬?以夢等譬喩顯示應知.譬如夢中,離義獨唯有識,種種色聲香味觸舍林地山等義相似相顯現,此中實無有義.以如此譬.應知一切處,唯有識,以此爲首.復有幻鹿渴翳等譬喩應知.猶如夢等,覺時一切處唯有識.如夢唯是識者,覺時何故,不如是轉?實智覺者,亦如是轉,如正夢時,此覺不生,若夢覺已,此智卽生.
아직 진실한 지혜의 깨달음이 없으면 유식에 대해서 어떻게 미루어 알 수 있는가? 아함과 도리에 의거한다.19)
아함이란 가령 『십지경』에서 세존께서 “삼계는 오직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해절경(解節經)』에서 세존께서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때 미륵보살이 세존께 여쭈었다. ‘모든 삼매 경지의 영상은 선정의 마음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르다고 말할 수 없습니까?’
세존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르지 않소. 무슨 까닭인가? 선정의 마음의 인식대상은 오직 식이 현현한 것이오. 나는 그것을 식이라고 말하오.’
‘세존이시여, 만약 삼매 경지의 영상이 선정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면, 어떻게 그 마음이 다시 그 마음을 봅니까?’
‘미륵이여, 이 안에는 도대체 능히 다른 법을 취하는 한 가지 법도 없소. 그러나 그 마음이 이와 같이 생기하면 곧 이와 같이 현현하오. 비유하면 거울면을 인하여 영상을 보는 것을 ≺내가 영상을 본다≻고 말하며, 보이는 영상이 거울면과 다르다고 말하오. 그 마음도 역시 그러해서 이와 같이 생기할 때, 그 마음에 대해서 별도의 사물을 본다고 말하오.’”
이 아함과 도리에 의거해서 현현할 수 있다.
017_0022_c_02L是未得眞實智覺此智不生,若得眞實智覺此智卽生.若未有眞實智覺,云何於唯識得起比知?由阿含及道理.阿含者,如『十地經』中世尊說:三界唯心故.又『解節經』中世尊說,時彌勒菩薩問世尊言:所有三昧境像云何?與定心爲可說異`爲不可說異?世尊言:彌勒!不異.何以故?定心所緣唯識所顯,我說爲識.世尊!若三昧境像,不異定心,云何彼心還取彼心?彌勒!無有一法,能取餘法,然彼心卽如是生,亦如是顯現.譬如因面見影,言我見影,謂所見影異於自面.彼心亦爾,如是生起,卽於彼心,謂有別物可見.由此阿含及道理故,得顯現.
017_0023_a_01L【釋】이 ‘오직 식만이 존재한다’는 것은 『십지경』과 『해절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기 때문이다. ‘이 반연은 오직 식이 나타난 바이기 때문에 나는 오직 식이라고 말하오’는 다음과 같다. 이것이 반연한 바는 오직 식이 나타난 바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오직 식이 존재하고 대상이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식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나는 식이라고 말한다’고 하신 것은 그 삼매 경계가 식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생기한다’는 것은 그 양상의 부류로서 생기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취함을 별도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 가운데’는 삼매의 경계를 말한다. ‘취함을 별도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 식의 영상에 대해서 별도의 사물이 있어서 인식대상의 자체로 삼기 때문이다.
017_0022_c_17L釋曰:此唯有識者,如『十地經』及『解節經』所說故,此攀緣唯識所顯故.我說唯識者,此所攀緣,唯識所顯,此有何義?爲顯唯識離義故,由是識所攝故,佛言:我說爲識顯彼三昧境界是識故.然如是生起者,爲彼相類而生故.於中取爲別義者,於中謂於三昧境界中.取爲別義者,於彼識影,謂有別物爲所取體故.
【論】이와 같이 선정의 고요한 마음 가운데 만일 시체의 푸르딩딩한 모습[靑瘀]20) 등 인식대상의 영상을 보면,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이며 별도로 시체의 푸르딩딩한 모습 등의 대상이 없는 것이다. 이 도리에 의거해서 보살은 모든 식에 대해서 마땅히 모름지기 오직 식의 인식방법임을 미루어 알아야 한다. 또한 이 시체의 푸르딩딩한 모습 등은 억지식(憶持識)이 아니다. 보이는 경계가 현전에 머물기 때문이다. 듣고 사유한 것 가운데 있는 억지식은 과거를 반연한다. 다만 그것의 영상이기 때문에 유식을 이룬다.
이 비량(比量)으로써 비록 아직 진여의 지혜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더라도 유식에 대해서는 미루어 알 수 있다.
017_0023_a_03L論曰:如是於靜心中,若見靑等爾焰影像,卽見自心,無別靑等義.由此道理,菩薩於一切識中,應須比知唯是識量.又此靑等非憶持識,以所見境界,現前住故.於聞思中,所有憶持識,攀緣過去,但是彼影,故成唯識.以此比量,雖未得眞如智覺,於唯識中,則得比知.
【釋】이 삼매 경계에서의 시체의 푸르딩딩한 모습 등의 영상은 역시 억지식이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예전에 본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곧 그 장소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서 알기 때문이고 현전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억지식은 어둡지만, 이 현전에 머무는 것은 보이는 것이 분명하고 깨끗하다. 만약 “듣고 사유한 것 가운데 자주 익히기 때문에 그것이 비록 과거라도 나중에 생각할 때 예전처럼 생기한다. 이것도 그러하다”고 말하면, 그 듣고 사유한 것은 이미 과거이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비존재 중에서 다시 생겨난다면, 이것은 식이 그것으로 사현한 것이다. 과거는 이미 멸하여 듣고 사유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의미가 유식의 이치를 성취하고 대상의 비존재가 성립된다.
017_0023_a_11L釋曰:此三昧境界,靑等影像,亦非憶持識.何以故?以非如昔所見,卽於彼方處,如是念知故,以現前故.彼所有憶持識暗昧,此現前住者,所見明淨.若言於聞思中數習故,彼雖過去,後思念時,如昔而生,此亦如是者,彼聞思已過去,今則無有.於無有中若更生,此卽是識似彼而生,非過去已滅聞思.是故此義,於成唯識塵無所有卽得成就.
017_0023_b_01L【論】앞에서 말했듯이, 갖가지 식은 비유하면 꿈 등과 같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 중에서 안식 등 식의 자체는 유식을 성취한다. 안근 등 식의 자체가 물질인데 유식인 도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것들은 아함과 도리에 의거해서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것들이 만약 식의 자체라면 무슨 까닭에 물질과 비슷하게 현현하는가? 한 부류로서 견고하게 머물며 상속하여 전전하고, 전도 등의 번뇌가 머물러 지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대상이 아닌 것에 대해서 대상을 일으키는 전도는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번뇌장과 지장 등의 잡염도 성립되지 않는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이 청정법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안식 등 모든 식은 이렇게 생기함이 성립된다.
여기에 게송이 있다.
017_0023_a_21L論曰:如前所說種種識,譬如夢等者,此中眼識等識體,唯識得成.眼根等識體是色,唯識道理,復云何可見?此等,由阿含及道理,已如前說.此等若是識體,何故似色顯現?一類堅住相續轉也,顚倒等煩惱住持故.若異此,於無義中,義顚倒則不成.若無此,煩惱障`智障等染則不成.此若無,此淸淨亦不成.是故眼等,如是生起得成.此中有偈:

산란의 원인과 산란의 자체는
이른바 색식(色識)21)의 자체와
비색식(非色識)의 자체이네.
앞의 것도 없고 뒤의 것22)도 역시 없네.
017_0023_b_08L亂因及亂體
所謂色識體
及非色識體
前無後亦無.

【釋】안식 등의 식의 자체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유식이 성취된다. 안근 등의 식의 자체가 물질이라면 어떻게 유식이 성립되는가? 이것들은 앞에서 아함과 도리로 이미 갖추어 나타낸 바와 같다.
‘한 부류로서 견고하게 머물며 상속하여 전전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한 부류’란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이고, ‘견고하게 머문다’는 것은 오랫동안 머물기 때문이다. 번뇌장ㆍ지장ㆍ전도ㆍ번뇌를 원인으로 삼기 때문이다. ‘머물러 지닌다’는 것은 곧 원인이다. 만약 이와 같은 생기를 여의면, 대상이 아닌 것을 대상으로 삼는 전도된 마음이 없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번뇌장의 잡염과 지장의 잡염이 없다.
이런 의미를 게송으로 나타낸다. 산란의 원인과 산란의 자체는 색식의 자체와 비색식의 자체를 말한다. 그 차례대로 이 중에서 색식의 자체는 산란의 원인이 되고, 비색식은 산란의 자체가 된다. 만일 이 원인의 자체인 색식이 없으면 그 결과의 자체인 비색식도 역시 없게 된다.
017_0023_b_10L釋曰:眼識等識體非色,故唯識得成.眼根等識體是色,云何成唯識也?此等如前阿含及道理中,已具顯示.一類堅住相續轉者,一類者,相似故.堅住者,多時住故.由煩惱障`智障,顚倒煩惱爲因故.住持者,卽是因也.若離如是等生起.則無非義爲義顚倒心.若無此,煩惱障染`智障染則不有.此義以偈顯示.亂因及亂體者,謂色識體及非色識體.如其次第,此中色識體爲亂因,非色識爲亂體.此因體色識若不有,彼果體非色識亦無.

2) 차별장(差別章)
017_0023_b_22L差別章第二
017_0023_c_01L【論】무슨 까닭에 신식ㆍ신자식ㆍ수자식ㆍ응수식ㆍ정수식은 모든 신체에서 함께 있고 화합하여 생기하는가? 생겨남의 수용이 원만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째서 세식(世識) 등 모든 식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갖가지 식이 생기하는가? 아득한 옛적부터 생사 유전하여 단절됨이 없기 때문이고, 중생의 세계가 한량없기 때문이며, 세계가 한량없기 때문이고, 지어지는 일들이 서로 언설함이 한량없기 때문이며, 섭취하여 수용하는 차별이 한량없기 때문이고, 사랑스럽고 사랑스럽지 않은 업이 과보를 수용하는 차별이 한량없기 때문이며, 받는 바 태어나고 늙으며 죽음의 차별이 한량없기 때문이다.
017_0023_b_23L論曰:何故身識`身者識`受者識`應受識`正受識於一切有身分共有和合生?顯生分受用滿足故.何故世識等諸識,如前所說種種識生?無始時生死流轉不斷故`無量衆生界故`無量世界故`無量所作事更互言說故`無量攝取受用差別故`無量愛非愛業受用果報差別故`受無量生老死差別故.
어떻게 이러한 모든 식이 성립해서 유식을 이루게 하는가? 간략히 세 가지 양상을 말한다. 첫째는 오직 식의 인식방법[唯量]23)이니,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오직 두 가지이니, 이른바 유상식(有相識)24)과 유견식(有見識)25)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오직 여러 가지이니, 여러 가지 양상이 생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식은 대상이 없기 때문에 오직 인식방법[唯量]이라고 이름한다. 상분과 견분이 있으니, 안식 등 모든 식은 색식(色識) 등으로써 상분을 삼고, 그러한 식으로써 견분을 삼으며, 나아가 신식으로써 견분을 삼기 때문이다. 의식26)은 안식 등 모든 식의 자체와 나아가 법식(法識)을 상분으로 삼고, 의식의 식으로써 견분을 삼는다. 의식은 능히 분별하기 때문이고, 또한 모든 식에 비슷하게 생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게송이 있다.
017_0023_c_09L云何成立此等諸識,令成唯識?略說有三相:唯量,義無所有故唯二,謂有相及見識故唯種種,謂種種相生起故.此等諸識無有義故,故名唯量.有相及見眼等諸識,以色等爲相`以彼等識爲見,乃至身識爲見故識者,以眼等一切識體,乃至法識爲相,以意識識爲見,意識能分別故,又似一切識生起故.此中有偈:

오직 인식방법[唯量]과 두 가지와 여러 가지에
관행을 닦는 사람은 능히 들어가네.
유심에 깨달아 들어갈 때
이 마음도 역시 여의네.
017_0023_c_17L唯量二種種
觀行人能入
得入唯心時
此心亦滅離.
017_0024_a_01L
【釋】어째서 신체의 수용을 구족한다고 이름하는가? 마땅히 알라. 이 신식ㆍ신자식ㆍ수자식 등 다섯 가지 식은 모든 신체라는 것에 동시에 있기 때문이다. ‘함께 있다’는 것은 동시에 생기하기 때문이다. ‘나타난 것’이란 원인의 자체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유식의 의미를 성립한다.
앞의 산문과 이 게송이 나타내는 것과 같다. 산문에서 ‘오직 인식방법[唯量]’이라고 말함은 오직 식의 인식방법[唯識量]이기 때문이다. 일체의 모든 식이 다 오직 식의 인식방법이다. 왜냐하면 인식되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두 가지’라는 것은 유상식과 유견식을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식의 한 부분은 상분을 이루고, 다른 하나는 견분을 이룬다. 이것은 안식 등 모든 식의 두 부분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를 성립한다’는 것은, 다시 이 하나의 식이 일으켜진 바에 따라서 한 부분은 갖가지 모습으로 생겨나고, 다른 한 부분은 인식주체[能取]로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의식이라면 그 모든 안식 등과 나아가 법식(法識)을 상분으로 삼고, 이 의식이 견분이 되기 때문이다.
017_0023_c_19L釋曰:云何名具足身分受用?此身識`身者識`受者識等五識,應知一切有身者,一時有故,共有者,一時生故.所顯者因體故,成立三種唯識義,如前長行及此偈顯示.於長行中言,唯量者,唯是識量故.一切所有諸識,皆唯識量.何以故?由所識義,無所有故.唯二者,成立有相及見故.卽此一識一分成相,第二分成見,此是眼等識二分故.成立種種者,還卽此一識,隨所起一分種種相生,第二分爲能取故.若意識所取,彼一切眼等識乃至法識爲相,卽此意識爲見故.
‘여러 가지’란 오직 의식이 그 성품이 된다. 인식대상의 경계가 결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머지 모든 식은 결정적인 경계가 있고 또한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27) 따라서 만일 능히 분별하면 견분이라고 이름한다. 이러한 도리로써 유식을 이룰 수 있다.
게송에서 ‘오직 인식방법[唯量]인 것에 들어간다’는 것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두 가지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분의 식과 견분의 식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에 들어간다’는 것은 식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생기하기 때문이다. ‘관행을 닦는 사람이 능히 들어간다’는 것은 수행인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유심에 깨달아 들어갈 때 이 마음도 역시 여의는가? 유심에 바르게 들어갈 때 대상이 존재하지 않고 식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취해진 인식대상이 없다면 어떻게 능히 취하는 마음이 있는가? ‘오직 두 가지’와 ‘여러 가지’란 다만 오직 인식방법[唯量]의 인연에 깨달아 들어감을 말한다. 다른 의미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7_0024_a_09L種種者,唯意識爲彼事,以不定故.其餘諸識,有定境界,又不分別故,是故若能分別,則名爲見.以如是道理,得成唯識.偈言:入唯量者,無有義故.入唯二者,有相及見識故.入種種者,由識種種相貌生故.觀行人能入者,謂修行人相應故.何故?得入唯心時,此心亦滅離也.由正入唯心時,則義無所有,識亦不有.若無所取義,云何得有能取心也?唯二及種種者,但是說入唯量因緣.餘義如前所說.
017_0024_b_01L【論】한 부류의 논사들이 “이 의식과 그것들의 의지처가 생기하여 그것들의 명칭을 얻는다. 마치 의사업(意思業)을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으로 이름함과 같다”고 말한다. 이 의식은 모든 의지처에 대해서 여러 가지 모습을 일으켜서 두 가지로 사현한다. 오직 대상으로 사현하기 때문이고 분별로 사현하기 때문이다. 모든 곳에서 역시 접촉으로 사현한다. 색계 중의 의식은 신체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감각기관이 신체에 의지함과 같기 때문이다.
017_0024_a_20L論曰:一種諸師說,卽此意識,彼彼依止生,得彼彼名,如意思得身口業名.此意識,於一切依止處,生種種相貌,似二而生,唯似義故,似分別故.一切處亦似觸而生,色界中識依止身故,如餘色根依止身故.
【釋】한 부류의 보살은 “오직 하나의 의식이 있어서 차례로 생기한다”고 말한다. 이제 마땅히 나타내야 한다. ‘비유하면 의사업을 신업과 구업으로 이름함과 같다’는 것은, 가령 의사(意思)가 신체에서 생기하면 신업이라 이름하고, 입에서 생기하면 구업이라고 한다. 의업도 역시 그러하다. 하나의 의식이지만 만일 눈에 의지해서 생기하면 안식이라 이름하고, 이처럼 나아가 신체에 의지해서 생기하면 신식이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의식을 떠나서 별도로 다른 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아리야식은 제외한다.
만약 그대가 “안근 등 감각기관은 분별이 없다. 만일 의식이 그것에 의지해서 생기하면 역시 마땅히 분별이 없어야 한다. 마치 염오의가 잡염에 의지하기 때문에 역시 잡염을 일으킴과 같다. 이것도 역시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면, 다음과 같이 답한다. 논서에서 “모든 의지처에 대해서 갖가지 모습을 일으켜서 두 가지로 사현한다. 오직 대상으로 사현하기 때문이고 분별로 사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기 때문에 과실이 없다.
017_0024_b_03L釋曰:有諸菩薩,欲令唯有一意識,次第生起,今當顯示.譬如意思,得身口業名者,如意思於身門中生,名身業,於口門中生,名口業,意業亦爾.如是一意識,若依止眼生,則得眼識名,如是乃至依止身生,得身識名.此中離意識外,更無餘識,唯除阿梨耶識.若汝言眼等根無分別,若意識依止彼生,亦應無分別,如染污意,依止染污故,生起亦染污,此亦應爾者,如論說於一切依止處,生種種相貌,似二而生,唯似義故`似分別故,是故無妨.
017_0024_c_01L이 중에서 ‘모든 의지처’란 안근 등 포섭처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모습이 두 가지로 사현한다’는 것은, 오직 대상으로 사현하기 때문이고 분별로 사현하기 때문이다. 이 두 문구로 인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두 문구에서 말한 바는 곧 하나의 식의 한 부분이 오직 대상으로 사현하고, 다른 한 부분은 그 사현된 대상에 대해서 분별로 사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것에 과실이 없다.
또한 ‘모든 곳에서 역시 접촉으로 사현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유색계에서 마음이 선정에 있고 5식이 작용하지 않으면 신체에서 내면에 받아들여서 생기한다. ‘나머지 감각기관이 신체에 의지함과 같다’는 것은, 안근 등 감각기관이 신체에 의지함과 같음을 말한다.
이 모든 감각기관은 신체에 의지함으로써 자신에 대해서 능히 손감과 증익을 짓는다. 의식도 역시 그러하다. 신체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지니, 신체로 하여금 손감과 증익을 짓게 한다.
또한 별도의 의미가 있다. 신근이 신체에 의지하는 것처럼 만약 외부의 조건이 와서 접촉하면, 곧 신근에 접촉으로 사현한다. 이것이 접촉으로 사현할 때 자신의 의지처인 신체에 대해서 손감도 되고 증익도 된다. 의식도 역시 그러하다. 신체에 의지하기 때문에 접촉으로 사현할 때 역시 신체에 대해서 손감도 되고 증익도 된다.
017_0024_b_15L中一切依止處者, 依止眼等處故.種種相貌似二而生者, 似義故`似分別故.由此二句故,可得了知,此二句所說,卽是一識一分似唯義而生,第二分於彼似義中,似分別而生,是故前說無過.又一切處,亦似觸而生,謂於有色處,心在定中,五識不行,於色身中,有內受生.如餘色根依止於身者,如眼等根依止於身,此諸根由依止身故,卽於自身,能作損益.意識亦爾,依止身故,令身損益應知.復有別義,如身根依止於身,若有外緣來觸,卽於身根中,似觸而生.此似觸生時,卽於自依止身中,爲損爲益.意識亦爾,依止身故,似觸生時,亦卽於身爲損爲益.
【論】여기에 게송이 있다.
017_0024_c_08L論曰:此中有偈:

멀리 가거나 홀로 작용하고
신체가 없는 것으로서 동굴에서 머무네.
조복하기 어려운 마음을 능히 조복함을
나는 청정한 행[梵行]이라고 말하노라.
017_0024_c_09L遠去及獨行
無身住空窟
能伏難伏心
我說爲梵行.

【釋】그 여러 보살은 말한 바28)를 성취하기 위해서 여러 아함의 게송을 인용한다. ‘멀리 가거나’라는 것은 모든 경계를 반연하기 때문이다. ‘홀로 작용하고’라는 것은 다른 식[第二]이 없기 때문이다.29) ‘신체가 없는 것으로서’라는 것은 신체를 여의기 때문이다. ‘동굴에서 머무네’라는 것은 신체의 빈 동굴에서 숨어서 머물기 때문이다.30) ‘능히 조복함을’이라는 것은 작용함이 자재하기 때문이다. ‘조복하기 어려운’이라는 것은 비루하고 악하기 때문이다.
017_0024_c_11L釋曰:彼諸菩薩,成就所說,故引諸阿含偈.言遠去者,攀緣一切境界故.獨行者,更無第二故.無身者,離色身故.住空窟者,隱在色身空窟中故.能伏者,自在作用故.難調伏者,鄙惡故.
【論】또한 경전에서 말씀하셨듯이, 이러한 5근이 행해지는 경계를 모두 의식이 능히 수용한다. 그것들도 역시 의식에 의지한다.
017_0024_c_16L論曰:又如經說,此五根等,所行境界,皆意能受用,彼等亦依止於意.
【釋】다시 아함의 말씀이 있다. ‘이러한 5근이 행해지는 경계를 의식이 능히 수용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감각기관이 행해지는 곳을 경계로 이름한다. 이 의식이 일체법을 능히 분별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경계를 각각 수용하기 때문에 능히 수용한다고 말한다. ‘그것들도 역시 의식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러한 감각기관이 생기할 때 이것을 원인의 자체로 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일 의식에 다른 인식대상이 있으면 곧 안식 등이 생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017_0024_c_18L釋曰:復有阿含說,此等五根所行境界意能受用者,若根所行處,名爲境界,此意能分別一切法故.一一境界,各各受用,故名能受用.彼等亦依止於意者,爲彼等諸根生時,此爲因體故.何以故?若意有別緣,則眼等不生.
017_0025_a_01L【論】또한 경전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12입설(入說) 중에서 여섯 가지 식을 의근의 포섭처[意入]로 삼는다.
017_0025_a_01L論曰:又如經說,十二入中說六識身爲意入.
【釋】또한 아함(阿含)이 있다. 여섯 가지 식을 모두 의(意)라고 이름하고 다른 식의 명칭은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여섯 가지 식을 의근의 포섭처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오직 의식만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017_0025_a_03L釋曰:復有阿含說,六識身說名爲意.無別餘識名故,佛說六識身,名爲意入,是故得知唯獨有意.
【論】만일 아리야식의 식의 자체를 안립하여 대상의 식의 자체로 삼으면, 나머지 모든 식의 자체를 안립하여 상분의 식의 자체로 삼는다. 의식의 식의 자체와 의지처는 견분을 성립한다. 마땅히 알라. 그것들은 상분의 식의 자체가 되고, 그 견분이 생기하는 원인이 된다. 대상으로 사현하는 것이 그 견분이 생기하는 의지처가 된다.
017_0025_a_06L論曰:若有安立阿梨耶識識體,爲義識體,處彼中成立所餘一切識體,爲相識體,意識識體及所依止成立爲見,應知彼等爲相貌識體,爲彼見生因似義顯現,爲彼見生依止事.
【釋】역시 아리야식을 성립하여 상분과 견분의 두 가지 식을 삼는다. 의식과 의지처는 아리야식의 견분이고, 안식 등의 식의 자체와 일체법은 상분이다. 이것들은 아리야식의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상분의 식의 자체가 된다’는 것은 눈 등이 식이 생기하는 원인의 자체가 됨을 말한다. 그 반연의 대상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 견분이 생기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그 중에서 견분을 일으키는 것을 그 견분이라고 이름한다. 그 보이는 대상이 현현하기 때문이고, 능히 의식의 견분이 상속하여 머물러서 단절되지 않는 원인이기 때문에 능히 견분이 생기하는 의지처가 된다고 말한다.
017_0025_a_11L釋曰:亦成立阿梨耶識,爲相`見二識.意識及依止,是阿梨耶識見分,眼等識體及一切法,是相分,此等卽是阿梨耶識體故.彼等爲相貌識體者,謂眼等爲識生因體,成彼所攀緣故.爲彼見生因者,於彼中起見名彼見,爲彼所見義顯現故.能爲意識見`相續住不斷因故,名爲能作見生依止事.
017_0025_b_01L【論】이와 같은 식의 자체가 이미 성립하여 유식이 된다.
모든 대상이 이미 눈앞에서 볼 수 있는데 어떻게 비존재임을 알 수 있는가? 세존께서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일체가 식의 자체로서 대상이 존재하지 않음에 수순해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바와 같다.31)
첫째는 다른 자의 식의 양상을 아는 것32)이다. 아귀ㆍ축생ㆍ하늘 세계 사람이 하나의 사물에 대해서 식의 자체에 차이가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둘째는 경계가 없는 식이 생기함을 아는 것33)이다. 과거ㆍ미래ㆍ꿈의 영상 등을 반연함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고도 마땅히 전도됨이 없음을 아는 것34)이다. 참존재의 대상에 대해서 대상을 반연함과 같다. 식이 마땅히 전도됨이 없이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도 진실한 지혜를 얻는다. 넷째는 세 가지 지혜에 수순함을 아는 것35)이다. 모든 보살과 선정을 얻은 이가 마음의 자재를 얻음으로써 그 즐거워하는 바를 따라서 그 대상이 현현함과 같다.36) 사마타를 얻어서 관행을 하는 자가 법의 관찰을 수행할 때 오직 생각으로써 대상이 곧 현현함과 같다.37) 또한 무분별지혜를 얻은 자가 무분별지혜에 안주할 때 모든 대상이 현현하지 않음과 같다.
모든 대상은 세 가지 지혜와 앞에서 말한 인연에 수순함으로써 대상의 비존재가 성취된다. 이런 의미 가운데 마땅히 여섯 가지 게송을 말해야 하는데, 나중에 매우 뛰어난 지혜의 수학[增上慧學] 부분에서 말하기로 한다. 이른바 아귀ㆍ축생ㆍ사람 등이다.
017_0025_a_19L論曰:如是等識體,已成立爲唯識,諸義旣現前可見,云何得知非有?如世尊說:菩薩具足四法,得隨順入一切識體無義.一知相違識相,如餓鬼`畜生`人`天同於一切識體,見有差別知無境界,識生如攀緣過去`未來及夢影等三知離功用應得無顚倒,如於實有義中,攀緣義識則應不成顚倒,由不藉功用得眞實智四知隨順三慧故,如諸菩薩及得定者,得心自在故,隨其樂欲,彼義顯現.如有得奢摩他觀行者,修法觀時,唯以意念義卽顯現.又得無分別智者,住無分別時,一切義不顯現.諸義由隨順三慧及前因緣故,義無所有卽得成就.此義中,應說六偈,後於增上慧學勝相中說,謂餓鬼`畜生`人等.
【釋】첫 번째인 ‘다른 자의 식의 양상을 아는 것’은 다음과 같다. 다른 자의 식의 인식대상을 양상이라 이름하고, 그에 대해서 알기 때문이다. ‘경계가 없는 식이 생기함을 아는 것’이란 반연되는 대상이 없이도 식이 생기할 수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과거 등과 같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고도 마땅히 전도됨이 없음을 아는 것’이란, 만일 현현한 바와 같은 대상이 이렇게 실재라면 반드시 다스림을 일으키지 않고도 전도가 없음이 성취된다. 이와 같이 알기 때문이다.
‘세 가지 지혜를 수순한다’는 것은 이 지혜가 모든 대상이 다 세 가지 지혜를 수순함을 알기 때문이다. ‘선정을 얻은 이’는 성문ㆍ벽지불 등이다. ‘마음의 자재를 얻는다’는 것은 이미 마음이 짓는 바에 따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즐거워하는 바를 따라서 그 대상이 현현한다’는 것은 만일 땅을 물로 이루고자 하면 생각한 대로 곧 성취되고, 불 등도 역시 이와 같기 때문이다.
017_0025_b_13L釋曰:一知相違識相者,諸相違者,識所緣義名爲相,於中知故.知無境界識生者,謂見無所攀緣,而識得生,如過去等.知離功用,應得無倒者,若如所顯現義,卽如是有者,則不須起對治,無倒得成.如此解知故,隨順三智者,此智知諸義,皆隨順三智故.及得定者,謂聲聞`辟支佛等.得心自在者,謂已得隨心所作故.隨心樂欲,彼義顯現者,若欲令地界,成水如念卽成,火等亦如是故.
017_0025_c_01L‘사마타를 얻은 이’는 이미 삼마제를 얻었기 때문이고, ‘법의 관찰을 수행하는 이’는 모든 계경 등에 대해서 관찰하여 수행하기 때문이다. ‘오직 생각으로써 대상이 현현한다’는 것은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갖가지 작의에 따라서 곧 갖가지 모습이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미 무분별지혜를 얻은 자’는 다음과 같다. 만약 현현한 바와 같은 대상이 존재한다면 곧 무분별지혜를 얻지 않아야 한다. 마땅히 알라. 이 지혜는 참존재이기 때문에 그 대상은 반드시 비존재이다.
017_0025_c_01L得奢摩他者,謂已得三摩提故.修行法觀者,於諸修多羅等中,觀察修行故.唯以意念義,則顯現者,於一義中,隨種種作意,則種種相顯現故.已得無分別智者,若如所顯現義是有,則不得有無分別智智實有故,應知彼義決定非有.

3) 분별장(分別章) ①
017_0025_c_07L分別章第三之初
【論】만약 오직 식이 있고 대상으로 현현하는 의지처를 의타성(依他性)이라고 이름한다면, 어떻게 의타성을 이루고 무슨 인연으로 의타성이라고 이름하는가? 자신의 훈습된 종자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므로 의타성은 다른 것에 의지함을 조건으로 삼는다. 생겨난 이후에는 작용의 힘이 없고, 한 찰나를 지나서 스스로 머물기 때문에 의타성이라고 부른다.
017_0025_c_08L論曰:若唯有識,義顯現所依止,名依他性者,云何依他?何因緣說名依他?從自熏習種子生,是故依他.依他爲緣,生已無功能過一剎那自住故,說名依他.
【釋】‘만약 오직 식이 있고 대상으로 현현하는 의지처’라는 것은 대상을 떠나서 오직 식의 자체가 있고 대상이 현현하는 원인이 됨을 말한다. 이 식의 자체가 의타성이다. 만약 스스로 섭수된다면 어떻게 의타성을 이루고 무슨 인연으로 의타성이라고 이름하는가? 자신의 원인으로부터 생겨나고, 생겨나서는 세력이 없이 머물기 때문이다. 이 스스로 섭수함을 다른 것[他]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에 의타성이라고 부른다.
017_0025_c_13L釋曰:若唯有識義,顯現所依止者,謂離義,唯有識體,爲義顯現,因卽此識體是依他.若自所攝,云何依他?何因緣名依他?爲自因所生,生已無力住故,卽此自攝,說名爲他,故名依他.
【論】만일 분별성이 의타성에 의지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대상으로 현현한다면, 어떻게 분별성을 이루고 어째서 분별성이라고 이름하는가? 한량없는 양상은 의식이 분별하고 전도되어 생겨나는 원인이기 때문에 분별성을 이룬다. 자상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분별만 보기 때문에 분별성이라고 이름한다.
017_0025_c_18L論曰:若分別性,依止於他,實無所有,而義顯現者,云何成分別?何故說分別?無量相貌意識分別,顚倒生因,故成分別.無有自相,唯見分別,故名分別.
017_0026_a_01L【釋】‘의타성에 의지한다’는 것은 의타성의 유식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대상으로 현현한다’는 것은 대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인연으로 분별성이라고 이름하는가’는 나중에 차례로 말한 것과 같다.
이 중에서 ‘한량없는 양상’이란 모든 경계의 양상을 말하기 때문이다. ‘의식이 분별한다’는 것은 곧 의식이 분별이기 때문이다. ‘전도되어 생겨나는 원인’이란 의식이 허망되게 전도되어 생기할 때 반연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자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분별을 본다’는 것은 오직 산란된 식을 보기 때문이다.
017_0025_c_22L釋曰:依止於他者,謂依止依他,性唯識故.無所有者,無自體故.爲義顯現者,有義可見故.何因緣說,名分別者,如後次第說.於中無量相者,謂一切境界相故.意識分別者,卽意識是分別故.顚倒生因者,意識妄倒,生時攀緣因故.無有自相者,無體故.唯見分別者,唯見亂識故.
【論】만약 성취성은 분별성이 영원히 없음을 양상으로 삼는다면, 어떻게 성취성을 이루고 무슨 인연으로 성취성이라 이름하는가? 자체에 변이가 없기 때문에 성취성을 이룬다. 청정한 경계이기 때문이고, 모든 선법 중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가장 뛰어난 의미 때문에 성취성이라고 이름한다.
017_0026_a_07L論曰:若成就性`分別性,畢竟無所有爲相,云何成成就?何因緣說名成就?體無變異故,得成就,淸淨境界故`一切善法中,最勝等故,由是最勝義故,說名成就.
【釋】‘그것이 영원히 없음을 양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분별성의 비존재로써 본성을 삼기 때문이다. ‘어떻게’와 ‘무슨 인연으로’ 등은 앞의 의타성 부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자체가 변이가 없다’는 것은 허망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성실한 신하와 같다.38)
‘청정한 경계이기 때문이고 모든 선법 중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란 이 청정한 경계의 자체가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성취성이라고 이름한다. 마치 이미 성취된 옷과 같다.
017_0026_a_12L釋曰:彼畢竟,無所有爲相者,以分別性無所有爲性故.云何及何因緣等者,如前依他性說.體不變異者,不虛誑故,如誠實臣.由是淸淨境界故,一切善法中最勝,卽此淸淨境界體最勝,故名成就,如已成就衣.
017_0026_b_01L【論】또한 능분별(能分別)이 있고 소분별(所分別)이 있어서 분별성이 있게 된다. 여기서 무엇이 능분별39)이고, 무엇이 소분별40)이며, 무엇이 분별성41)인가? 의식이 능분별이다. 이것은 분별하는 것이므로 이 의식은 자신의 명언훈습을 종자로 삼고, 모든 식의 명언훈습을 종자로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많은 종류의 분별이 생겨나고, 모든 곳에서 분별한다. 능히 분별하기 때문에 능분별이라고 한다. 또한 의타성이 소분별이다. 또한 이 인연 때문에 의타성으로 하여금 소분별을 이루게 한다. 이것이 분별성이다. 이 인연 때문에 의타성으로 하여금 대상으로 사현하게 해서 대상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어떻게 분별이 능히 분별하는가? 어떤 경계를 반연하고, 어떤 모습을 취하는가? 어떻게 집착하고, 어떻게 말을 일으키며, 어떻게 유포하고, 어떻게 증익하는가?
명칭을 반연하기 때문이고, 의타성을 취해서 양상으로 삼기 때문이며, 견해에 집착하기 때문이고, 대략적 인식과 세밀한 인식으로 말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보는 것 등 네 가지 유포를 유포로 삼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상이 없는 것에 대해서 대상의 증익이 있다. 이와 같이 분별한다.
017_0026_a_18L論曰:復次有能分別`有所分別`有分別性,於中何者能分別?何者所分別?何者分別性?意識爲能分別,以是分別者故,此意識自名言熏習種子故,一切識體名言熏習種子故,是故有無量種分別生,一切處分別故.以是能分別,故說名能分別.復次依他性是所分別.復次由此因緣故,令依他性,成所分別.此是分別性,由此因緣故.令依他性似義顯現者,如義故.復次云何分別能分別?何所攀緣?取何相貌?云何執著?云何起言?云何流布?云何增益?攀緣於名故取,依他性爲相故,執著於見故,因覺觀起言故,見等四種流布爲流布故,實無義中,有義增益,如此分別.
【釋】‘어떻게 분별이 분별을 짓는가’는 다음과 같다. 의식을 분별이라고 이름하고 의타성이 소분별이다. 이 인연에 의해서 분별을 이루게 한다. 이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논서에서 ‘명칭을 반연하고 이와 같이 의타성을 취함을 양상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의타성 가운에 눈 등의 명칭을 취함을 양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모습을 취하고 나서 분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견해가 집착이 된다’는 것은 그 취해진 대상의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략적 인식과 세밀한 인식으로 말을 일으킨다’는 것은, 집착한 바 그대로 살펴서 관찰함을 원인으로 삼아서 언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보는 것 등 네 가지 언설로 말해진 것이란, 말해진 바와 같이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 등 네 가지 유포로 함께 서로 유포함이다. 실제로는 비존재인 대상을 대상이 존재함으로 삼는 것이 증익이다. 유포된 바와 같이 실제로 비존재인 대상을 집착해서 대상이 존재함으로 삼기 때문이다.
017_0026_b_11L釋曰:云何分別,作分別者?意識名分別,依他性是所分別,由此因緣令成分別.爲顯示此故,論云攀緣於名如是等取.依他性爲相者,卽是取依他性中,眼等名字爲相故.何以故?取彼相已,而起分別故.見爲執著者,謂於彼所取相,決定如是故.覺觀起言者,如所執著,以覺觀爲因出言語故.見等四種言說,所言說者,如所言說,見聞覺知等,四種流布.共相流布,實無有義,以爲有義,是增益者,如所流布,實無有義取爲有義故.
017_0026_c_01L【論】또한 이러한 세 가지 자성은 다른 자체가 있는가, 다르지 않은가? 마땅히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 의타성은 별도의 도리 때문에 의타성을 이루고, 별도의 도리 때문에 이것은 분별성을 이루며, 별도의 도리 때문에 이것은 성취성을 이룬다.42)
무엇이 별도의 도리인가? 이것이 의타성을 이루는 것은, 다른 것의 훈습의 종자에 의지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의타성을 이룬다. 어떤 별도의 도리로써 이것이 분별성을 이루는가? 분별과 더불어 인연의 양상이 되기 때문이고, 곧 이것은 분별이기 때문이다. 어떤 별도의 도리로써 이것이 성취성을 이루는가? 가령 분별된 것은 궁극적으로 이렇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별도의 도리로써 하나의 식의 자체에서 갖가지 모든 식의 자체의 인식작용이 되는가? 마땅히 알지니, 아리야식의 식의 자체가 그 나머지 생기식(生起識)의 갖가지 인식작용이 된다. 그 반연의 양상이 생기하기 때문이다.
017_0026_b_23L論曰:復次云何此等三性?爲有異體`爲不異?應言非異非不異.此依他性,別道理故成依他,別道理故卽此成分別,別道理故,卽此成成就.何等別道理,此成依他?依他熏習種子生故,成依他.何別道理,卽此成分別?與分別,爲因緣相故,卽此是分別故.何別道理,卽此成成就?如所分別,畢竟不如是有故.何別道理?於一識體,爲一切種種識體相貌也.阿梨耶識識體,爲彼餘生起識種種相貌,應知爲彼緣相生起故.
【釋】‘분별과 더불어 인연의 양상이 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의식을 능분별이라고 이름한다. 이것이 인식대상의 경계의 자체를 능히 분별하여 생기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분별이기 때문’이란 이 의식이 그 모습을 분별하여 취해서 소분별의 경계의 자체로 삼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 때문에 의타성이 분별성을 이룬다. ‘분별성과 같이’는 의식이 바로 분별함이다. 소분별의 시기에는 이 분별이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 때문에 의타성이 성취성을 이룬다.
017_0026_c_12L釋曰:與分別爲因緣相者,意識名能分別,爲此能分別所取境界體而生故.卽此是分別故者,卽此意識分別彼相,取爲所分別境界體,以此義故,依他性成分別性.如分別意識正分別所分別時,此分別畢竟無所有,由此義故,依他性成成就性.
017_0027_a_01L【論】의타성에 몇 종류가 있는가? 간략히 두 종류가 있다. 다른 것이 훈습하는 종자에 의지하기 때문이고, 다른 잡염과 청정의 성품이 성립되지 않음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의타로 인하여 의타성이라 이름한다.
분별성에도 역시 두 가지가 있다. 자성43)의 분별이기 때문이고, 차별44)의 분별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분별이라고 부른다. 성취성에도 역시 두 가지가 있다. 본성의 성취이기 때문이고, 청정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성취성이라고 이름한다.
017_0026_c_19L論曰:依他性幾種?略說有二種:依他熏習種子故`依他染淨性不成就故.由此二種依他,故名依他.分別性亦二種:自性分別故`差別分別故,是名分別.成就性亦二種:本性成就故`淸淨成就故,是名成就性.
【釋】‘잡염과 청정의 자체가 성취되지 않기 때문에 의타라고 이름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 의타성이 분별의 부분이 되면 잡염을 이루고, 무분별의 부분이면 청정을 이룬다. 이 두 가지 부분 가운데 하나의 부분이 성취되지 않기 때문이다.45) ‘자성의 분별’이란 가령 눈 등에 눈의 자성이 있어서 이런 분별을 짓기 때문이다. ‘차별의 분별’이란 가령 그 눈 등의 자성에 무상 등의 차별이 있어서 이런 분별을 짓기 때문이다. ‘자성의 성취’는 번뇌가 있는 진여[有垢眞如]를 말하고, ‘청정의 성취’는 번뇌가 없는 진여[無垢眞如]이다.
017_0027_a_02L釋曰:染淨體不成就故,名依他者,由此依他性,爲分別分成染,爲無分別分成淨,於此二分中,一分不成就故.自性分別者,如眼等有眼自性,作此分別故.差別分別者,如彼眼等,自性有無常等差別,作此分別故.自性成就者,謂有垢眞如.淸淨成就者,謂無垢眞如.
【論】또한 네 가지 분별이 있다. 자성의 분별ㆍ차별의 분별ㆍ유각(有覺)의 분별ㆍ무각(無覺)의 분별이다. 유각은 언설을 잘 아는 중생이고, 무각은 언설을 잘 알지 못하는 중생을 말한다.
017_0027_a_10L論曰:復有四種分別:謂自性分別`差別分別`有覺分別`無覺分別.有覺者,謂善知言說衆生.無覺者,謂不善知言說衆生.
【釋】‘언설을 잘 안다’는 것은 언설의 지혜가 있음이다. ‘언설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마치 소ㆍ양 등처럼 비록 분별이 있지만 문자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017_0027_a_14L釋曰:善知言說者,謂有言說智.不善知言說者,如牛羊等,雖有分別,然於名字無能故.
【論】또한 다시 다섯 가지 분별이 있다. 첫째는 명칭에 의지해서 대상의 자성을 분별함이니, 이러한 명칭에 이러한 대상이 있음과 같다. 둘째는 대상에 의지해서 명칭의 자성을 분별함이니, 이러한 대상에 이러한 명칭이 있음과 같다. 셋째는 명칭에 의지해서 명칭의 자성을 분별함이니, 알지 못하는 대상의 명칭을 분별함과 같기 때문이다. 넷째는 대상에 의지해서 대상의 자성을 분별함이니, 알지 못하는 명칭의 대상을 분별함과 같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명칭과 대상에 의지해서 명칭과 대상을 분별함이니, 이 대상은 이러한 자체와 이러한 명칭이라고 함과 같다.
017_0027_a_17L論曰:復更有五種分別:一依名分別義自性,如此名有此義二依義分別名自性,如此義有此名三依名分別名自性,如不識義之名,於中分別故四依義分別義自性,如不識名之義,於中分別故五依名義分別名義,如此義如是體如是名.
017_0027_b_01L또한 모든 분별을 총섭하면 열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근본분별이니, 이른바 아리야식이다. 둘째는 인식대상의 모습의 분별이니, 색식(色識) 등의 자체와 같다. 셋째는 사현하는 모습의 분별이니, 안식 등 함께 의지하는 식의 자체이다. 넷째는 모습이 변이함의 분별이니, 늙음 등, 즐거움의 감수작용 등, 탐욕 등, 핍박과 시절의 변이 등, 지옥 등 모든 윤회세계 등, 욕계 등 이 모든 것들의 변이를 말한다. 다섯째는 사현의 모습이 변이함의 분별이니, 곧 앞에서 말한 변이 가운데 변이를 말한다. 여섯째는 남이 주는 분별이니, 정법이 아닌 인연을 듣거나 정법의 인연을 듣고 분별함이다. 일곱째는 올바르지 않은 분별이니, 불법 외부의 사람이 정법이 아닌 인연을 듣는 것이다. 여덟째는 올바른 분별이니, 불법 내부의 사람이 정법의 인연을 듣는 것이다. 아홉째는 집착의 분별이니, 올바르지 않은 사유의 인연으로서 신견을 근본으로 삼고 62가지 국집된 견해46)와 상응하는 분별이다. 열째는 산란의 분별이니, 모든 보살의 열 가지 분별이다.
017_0027_b_01L復次摠攝一切分別有十種:一根本分別,所謂阿梨耶識二所緣相分別,如色等識體似相分別,所謂共依止眼識等識體四相變異分別,謂老等`樂受等`貪等`抂橫及時節變異等`地獄趣等`欲界等此諸變異五似相變異分別,謂卽前所說變異此中變異六他授分別,謂聞非正法因緣`聞正法因緣分別七不正分別,謂佛法外人聞非正法因緣八正分別,謂佛法內人聞正法因緣九執著分別,謂不正思惟因緣,身見爲根本,與六十二見處相應分十散亂分別,謂諸菩薩十種分別.
【釋】모든 분별을 총섭하면 열 가지 분별이 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이 중에서 ‘근본분별’은 모든 분별의 근본으로서 자체도 역시 분별이다. 이것은 곧 아리야식이기 때문이다. ‘인식대상의 모습의 분별’은 모습으로써 양상으로 삼는다. 분별은 색식 등의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현하는 모습의 분별’이란, 그 모습의 종류에 대해서 분별이 생기하면 분별의 대상에 대해서 능히 분별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곧 안식 등의 식의 자체와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017_0027_b_14L釋曰:摠攝一切分別,有十種分別,爲說此故.於中根本分別者,爲諸分別根本自體,亦分別卽是阿梨耶識故.相分別者,以相貌爲相,分別卽是色等識體故.似相分別者,於彼相種類中,若分別生於所分別中,能分別故得此名,卽是眼識等識體及依止故.
017_0027_c_01L‘모습이 변이함의 분별’이란, 그 반연의 모습이 변이하면 이 모습의 변이의 자체를 분별로 이름한다. ‘늙음 등’은 신체가 쇠락해서 4대가 변이함이다. 이에 대해서 분별하기 때문에 모습이 변이함의 분별이라고 이름한다. ‘등(等)’은 병과 죽음 등을 포함한다. ‘즐거움의 감수작용 등’이란 신체에 변이가 있는 것을 양상으로 삼음도 역시 그러하다. ‘등’은 괴로움의 감수작용ㆍ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감수작용 등이다. ‘탐욕 등’도 역시 그러하다. ‘등’은 성냄과 어리석음 등이다. ‘핍박ㆍ시절의 변이 등’이란 이와 같은 신체의 변이의 모습에 대해서 반연하여 분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핍박’은 살해ㆍ결박 등을 말하고, ‘시절(時節)의 변이’는 추위ㆍ더위 등 시절의 변이를 양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지옥 등’에서 ‘등’이란 말은 축생ㆍ아귀 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욕계 등’에서 ‘등’은 색계와 무색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017_0027_b_21L相變異分別者,謂彼緣相若變異,卽此相變異體,名爲分別.老等者,謂身衰朽四大變異,於中分別故,名相變異分別.等者,攝病及死等.樂受等,謂身有變異,爲相亦爾.等者,攝苦及不苦不樂等.貪等亦如是.等者,攝瞋癡等.枉橫及時節變異等者,謂於如是身變異相中,若攀緣生分別故.抂橫者,謂殺縛等.時變者,謂寒熱等,時節改變爲相故.地獄等者,等言謂攝畜生`餓鬼等故.欲界等者,等言卽是攝色無色界等故.
‘사현의 모습이 변이함의 분별’은 그 인식대상으로 사현한 모습인 안식 등 모든 변이이다. 이 사현의 모습이 변이함의 자체에 대해서 분별을 일으킨다. 앞에서 말한 늙음 등의 변이와 같다. 왜냐하면 그 늙음 등에 머물 때 안식 등도 역시 변이하여 생기하기 때문이다.
‘남이 주는 분별’은 다음과 같다. 남이 말한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정법이 아닌 인연을 듣는 것과 정법의 인연을 듣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든 법을 분별한다. 법을 들음으로써 선이나 불선을 일으킨다. 정법이 아닌 인연을 듣는 것도 역시 이렇게 해석한다.
017_0027_c_10L似相變異分別者,似彼緣相眼識等,所有變異,於此似相變異體起分別,卽是如前所說老等中變異.何以故?以住彼老等時,眼識等亦變異生故.他授分別者,於他所說有二種,謂聞非正法因緣`聞正法因緣.此二種分別諸法,由聞法生善`不善.亦如是解釋.
‘올바르지 않은 분별’은 정법이 아닌 것을 들음을 원인으로 삼는다. ‘이 법의 외부의 사람’이란 모든 출가 외도를 말한다. ‘올바른 분별’은 정법을 듣는 것을 원인으로 삼는다. ‘이 법의 내부의 사람’이란 불법 내부의 사람을 말한다.
‘집착의 분별’은 올바르지 않은 사유를 원인으로 삼기 때문이다. 아견을 의지처로 하는 62가지 견해 등이다. 계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이 국집된 견해와 상응하는 분별이기 때문이다. ‘산란된 움직임의 분별’은 모든 보살의 열 가지 분별을 말한다.
017_0027_c_17L不正分別者,卽是聞非正法爲因.此法外者,謂諸出家外道.正分別者,卽是聞正法爲因.此法內者,謂佛法內人.執著分別者,不正思惟爲因故.我見爲依止六十二見等,如修多羅說,與此見處相應分別故.散動分別者,謂諸菩薩十種分別.
017_0028_a_01L【論】첫째는 비존재의 양상의 산란된 움직임이고, 둘째는 존재의 양상의 산란된 움직임이며, 셋째는 증익의 산란된 움직임이고, 넷째는 손감의 산란된 움직임이다. 다섯째는 하나라고 집착하는 산란된 움직임이고, 여섯째는 다르다고 집착하는 산란된 움직임이며, 일곱째는 자성의 산란된 움직임이고, 여덟째는 차별의 산란된 움직임이다. 아홉째는 명칭 그대로 대상을 취하는 산란된 움직임이고, 열째는 대상 그대로 명칭을 취하는 산란된 움직임이다. 이 열 가지 산란된 움직임을 다스리기 위해서 모든 반야바라밀 중에 무분별지혜를 말한다. 마땅히 알지니, 이러한 장애와 다스림은 반야바라밀의 의미 중에 구족된다.
017_0028_a_01L論曰:一無有相散動`二有相散動`三增益散動`四損減散動`五一執散動`六異執散動`七自性散動`八差別散動`九如名取義散動`十如義取名散動.爲對治此十種散動,一切般若波羅蜜中說無分別智.此等障㝵及對治,般若波羅蜜義中,具足應知.
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보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는가? 사리불이여, 이 보살은 곧 보살에 대해서 보살을 보지 않고, 보살의 명칭을 보지 않으며,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고, 수행을 보지 않으며, 물질의 요소를 보지 않고, 감수작용ㆍ표상작용ㆍ형성 결합작용ㆍ식별작용의 요소를 보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물질의 자성은 공ㆍ공이 아닌 것이기 때문에 공이니라. 만일 물질이 공이면 물질이 아닌 것은 역시 공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물질이 있느니라. 물질이 곧 공이고 공이 곧 물질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이여, 오직 명칭이 있을 뿐이니라. 이른바 물질의 자성은 생겨남도 없고 소멸함도 없으며, 잡염도 없고 청정도 없느니라. 객관의 명칭을 가립하여 모든 법을 분별하느니라. 이 객관의 명칭이 다시 서로 유포됨으로써 유포된 곳에 따라서 집착을 일으키느니라. 보살은 이 명칭ㆍ글자에 대해서 일체를 보지 않느니라. 보지 않기 때문에 집착이 없느니라. 물질과 마찬가지로 나아가 식별작용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마땅히 알라. 이 반야바라밀의 문구로써 이러한 열 가지 분별의 의미를 통달할 수 있다.
017_0028_a_08L經云:菩薩云何行般若波羅蜜?舍利弗!此菩薩卽於菩薩,不見菩薩,不見菩薩名,不見般若波羅蜜,不見修行,不見色`不見受`想`行`識.何以故?色自性空,非空故空.若色空卽非色,亦非異空故有色.色卽是空,空卽是色.何以故?舍利弗?唯有名.所謂色自性,不生不滅`無染無淨,假立客名分別諸法.以此客名,更相流布,隨所流布,隨起執著.菩薩於此名字一切不見,以不見故,則無執著.如色乃至識亦爾,應知以此般若波羅蜜文句故,得通達此等十種分別義.
017_0028_b_01L【釋】이 중에서 ‘비존재의 양상의 산란된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이 비존재를 반연하여 양상을 삼기 때문에 산란된 움직임이라고 부른다. 이 산란된 움직임을 다스리기 위해서 『반야바라밀경』에서는 “실제로 보살이 있다”고 말씀한다. 실제로 있다고 말하는 것은 보살에게는 실제로 공의 자체가 있음을 나타낸다. 곧 공이 자체이기 때문에 공의 자체라고 이름한다.
‘존재의 양상의 산란된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유위법의 양상을 반연함을 산란된 움직임이라고 부른다. 이 산란된 움직임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 경전에서 “보살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보지 않는다는 것은 분별성과 의타성을 자체로 삼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 때문이다.
017_0028_a_21L釋曰:於中無有相散動者,卽緣此無有爲相,名爲散動.爲對治此散動故,般若波羅蜜經中,說實有菩薩.言實有者,顯示菩薩實有空體.卽空是體,故名空體.有相散動者,緣有爲相名爲散動.爲對治此散動故,彼經中說不見有菩薩,謂不見以分別依他爲體,由此意故.
‘증익의 산란된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이것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 경전에서 “물질의 자성은 공이다”라고 말씀한다. 분별성인 물질이 공이기 때문이다. ‘손감의 산란된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이것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 경전에서 “공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 물질의 법성은 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017_0028_b_06L增益散動者,爲對治此故,彼經中說色自性空,爲顯分別性色空故.損減散動者,爲對治此故,彼經中說不空,謂色法如不空故.
‘하나라고 집착하는 산란된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이것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 경전에서 “이 물질은 공으로서 물질이 아니다”라고 말씀한다. 왜냐하면 만일 의타성과 성취성이 하나라면, 의타성도 역시 마땅히 성취성과 같이 청정한 경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017_0028_b_09L一執散動者,爲對治此,故經言此色空非色.何以故?若依他性與成就性是一者,依他性亦應如成就性,爲淸淨境界.
‘다르다고 집착하는 산란된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이것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 경전에서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다”고 말씀한다. 왜냐하면 만일 이 두 가지가 다르다면 법과 법성도 역시 마땅히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마치 무상의 법과 무상이 차이가 있을 수 없음과 같다. 분별성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물질이 곧 공이고, 공이 곧 물질이다”라고 말씀한다. 분별성인 물질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이고, 이 공은 곧 물질의 비존재이다. 의타성과 성취성과는 다르다.
017_0028_b_13L異執散動者,爲對治此故,經言非色異空.何以故?若此二有異,卽法與法性,亦應有異.此異不成,如無常法與無常不可有異.約分別性,故言色卽是空`空卽是色.以分別性,色無所有卽是空,此空卽是色無所有,非如依他與成就性.
017_0028_c_01L‘자성의 산란된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이것을 다스리기 위해서 경전에서 “사리불이여, 오직 명칭만 있을 뿐이고 그것을 물질이라고 말한다”고 말씀한다. 물질의 자성은 비존재이기 때문이다. ‘차별의 산란된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이것을 다스리기 위해서 경전에서 “자성에는 생겨남도 없고 소멸함도 없으며, 잡염도 없고 청정도 없다. 이 중에서 생겨나면 곧 잡염이 있고, 소멸하면 곧 청정함이 있다. 생겨남도 없고 소멸도 없기 때문에 잡염도 없고 청정도 없다”고 말씀한다. 이러한 여러 문구는 그 의미가 이와 같다.
‘명칭 그대로 대상을 취하는 산란된 움직임’이란, 명칭에 따라 대상을 취함이니, 곧 산란된 움직임이다. 이것을 다스리기 위해서 경전에서 “갖가지 명칭ㆍ글자를 가립하여 모든 법을 분별한다”고 말씀한다.
‘갖가지’란 대상 그대로 명칭을 취하는 것은 곧 산란된 움직임이다. 이것을 다스리기 위해서 경전에서 “객관의 명칭을 가립하여 다시 서로 유포하느니라”고 말씀한다. 대상이 아닌 자성에 이러한 명칭이 있음을 말한다.
이 열 가지 산란된 움직임을 다스리기 위해서 『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한다. 이 말씀을 원인으로 삼음으로써 무분별지혜가 생겨난다.
017_0028_b_19L自性散動者,爲對治此故,經言:舍利弗!惟有名.所謂色,以色自性,卽是無所有故.差別散動者,爲對治此故,經言:自性不生不滅`無染無淨.於中若生卽有染,若滅卽有淨.由不生不滅故,卽無染無淨.此等諸句其義如是.如名取義散動者,謂隨名取義.卽是散動,爲對治此故,經言假立種種名字.分別諸法種種者,謂隨義取名卽是散動.爲對治此故,經言:假立客名更相流布,謂非義自性有如是名.爲對治此十種散動故,說般若波羅蜜經.由此說爲因故,無分別智生.
【論】만약 별도의 도리에 의거하면 의타성에 세 가지 자성을 이룬다. 이 세 가지 자성은 어째서 하나를 이루지 않는가? 별도의 도리에 의거해서 의타성을 이루면, 이로 인하여 분별성과 성취성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별도의 도리에 의거해서 분별성을 이루면, 이로 인하여 의타성과 성취성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별도의 도리에 의거해서 성취성을 이루면, 이로 인하여 의타성과 분별성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017_0028_c_09L論曰:若由別道理,依他性得成三性,此三性云何得不成一也?由別道理故,成依他性,不由此成分別及成就.由別道理故成分別,不由此成依他及成就.由別道理故成成就,不由此成依他及分別.
攝大乘論釋論卷第四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이하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의 양상[應知相], 즉 현상계와 본체계의 전개 양상을 의타상ㆍ분별상ㆍ성취상의 세 가지[三自性]로 분류해서 설명한다.
  2. 2)이하 유정의 식이 일체법에 두루함을 밝혀서 11가지 식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3. 3)눈[眼根] 등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다.
  4. 4)번뇌에 오염된 식을 말한다.
  5. 5)의근(意根)이다.
  6. 6)현장의 역본은 소수식(所受識)이라 하였다. 색식(色識) 등의 6식(識)을 말한다.
  7. 7)현장의 역본은 능수식(能受識)이라 하였다. 안식 등의 6식이다.
  8. 8)생사가 단절하고 상속하는 식을 말한다.
  9. 9)하나, 내지 아승기수(阿僧祇數)의 식이다.
  10. 10)자연계[器世間]를 말한다.
  11. 11)감각ㆍ지각 작용(見聞覺知)의 모든 언설에 의한 것이다.
  12. 12)자신과 타신(他身)이 의지하는 차별식을 말한다.
  13. 13)생사의 여러 종류의 차별이다. 현장의 역본은 선취악취생사식(善趣惡趣生死識)이라 하였다.
  14. 14)의(義)는 artha의 번역어로서 의미ㆍ도리ㆍ의의(意義)ㆍ사물ㆍ대상 등의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대상, 즉 명칭에 상응하는 실체적 대상을 가리킨다.
  15. 15)다른 것에 의지해서 생겨나는[依他] 속성을 지니는 법의 양상으로서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이다. 의타상은 분별상처럼 체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인연소생법이므로 상주실유(常住實有)가 아니고 세속제(世俗諦)에서 그 존재성이 인정된다. 의타상은 인연소생법이므로 5위100법(五位百法) 가운데 심왕법ㆍ심소법ㆍ색법ㆍ불상응행법의 4위(位) 94가지 법이 포섭되지만, 식일원론의 입장인 유식학에서 의타상은 결국 아리야식을 기반으로 하는 8식을 가리킨다.
  16. 16)명칭에 의해 가정적으로 안립된 자성차별이다. 그것은 허망분별에 의해 실체[實我實法]로 착각되고 집착된 것이다.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인연화합으로 생겨난 임시적인 존재[假法]이며 상주불변하는 실체는 없는데도, 범부들은 미혹하여 허망된 견해를 내어서 마음 밖에 실법(實法)이 존재하는 것으로 허망되게 집착한다. 분별상은 범부들의 허망된 견해에 의해 인연소생의 가아가법(假我假法) 위에 오인된 실아실법에 대한 미혹된 집착이다. 공허한 환상과 같은 것이어서 체성(體性)이 전혀 없다.
  17. 17)현상계의 모든 법의 본체인 진여를 말한다. 진여는 모든 법에 두루하고, 체성이 상주불변하여 항상 변함 없이 성취되어 있으며, 모든 법의 진실한 체성이어서 허망되지 않다.
  18. 18)목마른 사슴이 물을 구해서 아지랑이를 쫓아가는 것을 말한다.
  19. 19)아함(阿含)은 교증(敎證)이고, 도리는 이증(理證)이다
  20. 20)육체에 대한 집착을 없애기 위해 특히 사람의 시체의 아홉 가지 모습을 관찰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청어상(靑瘀想)은 시체가 바람과 비 등으로 피가 엉키고 피부가 푸르퉁퉁한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21. 21)안근 등 다섯 감각기관의 작용을 말한다.
  22. 22)여기서 앞의 것은 색식을, 뒤의 것은 비색식을 가리킨다.
  23. 23)유식(唯識)의 의미이다.
  24. 24)구체적인 인식상황 속에서 식은 주관적인 식과 객관적인 식으로 이분됨으로써 인식작용이 이루어진다. 유상식은 객관적인 인식대상[所緣]으로 현현한 식, 즉 상분(相分)이다.
  25. 25)주관적인 식[能緣識], 즉 견분(見分)을 말한다.
  26. 26)세 번째인 여러 가지에 의거함을 해석한다.
  27. 27)안식ㆍ이식 등 5식은 그 인식대상이 빛깔ㆍ소리 등으로서 결정적이고, 5식 자체에는 분별작용이 없는 현량(現量)이다.
  28. 28)앞에서 말한 바 오직 하나의 의식만 있고 별도로 5식이 없다는 주장을 가리킨다.
  29. 29)하나의 의식 이외에 다른 식이 없음을 말한다.
  30. 30)식이 신체 안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31. 31)이하 네 가지 지혜를 성취한 보살은 유식무경(唯識無境)의 도리를 깨달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들 네 가지 내용은 외적인 사물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론적으로 증명한다.
  32. 32)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다르면 그 사물은 다른 모습으로 인식됨을 아는 지혜이다. 예를 들면 같은 물에 대해서도 아귀는 고름이나 피가 가득한 강으로 보고, 고기는 살아가는 장소나 통로로 본다. 하늘세계 사람들은 보석으로 장식한 땅으로 보고, 인간은 깨끗한 물 또는 파도로 보는 등 제각기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만약 외적인 사물이 실재한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33. 33)실재하지 않는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이 현실적으로 있음을 아는 지혜이다. 예를 들면 과거나 미래의 일, 꿈속의 대상, 물이나 거울에 비친 영상 등은 어느 것도 실재하지 않는데 그것을 대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34. 34)의식적인 노력[功用], 즉 수행하지 않고서 오류가 없는 무전도(無顚倒)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임을 아는 지혜이다. 만일 인식대상이 인식되는 것처럼 실재한다면 범부도 진실을 인식하게 되고, 노력 정진하지 않고도 자연히 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35. 35)다음 세 가지 지혜를 따라 인식대상이 갖가지 존재로 바뀌는 것을 아는 지혜이다.
  36. 36)자재자(自在者)의 지혜를 따라 바뀌는 것이다. 즉 마음이 자재함을 얻은 보살은 하고자 하는 대로, 예를 들면 땅을 물로 변화시킬 수 있다.
  37. 37)관찰자의 지혜를 따라 바뀐다. 지관(止觀)을 닦는 유가사(瑜伽師)가 부처님의 교법을 관찰해서 사색할 때, 어떤 대상이 사색하는 대로 갖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
  38. 38)이 문장은 현장 역본에는 “허망되지 않은 성품과 같다”로 되어 있고, 진제 역본에는 “세간에서 말하는 진실된 벗과 같다”로 되어 있다.
  39. 39)‘능분별이 어떤 식인가’에 대해서 이 논서에서는 의식만을 들지만, 후대의 『성유식론』 제8권에서는 의식과 제7 말나식을 든다. 말나식이 아리야식을 대상으로 실아(實我)로 착각하고, 의식이 5온을 대상으로 또한 실아로 착각한다.
  40. 40)능분별의 분별작용에 의해 실재하는 것으로 집착되는 대상, 즉 사현된 자아[似我]와 사현된 법[似法]이다. 의타성의 법, 즉 5온ㆍ12처ㆍ18계 등의 인연소생법을 말한다.
  41. 41)분별성은 소분별이 능분별의 식 위의 상분으로 떠올라 있을 때, 그것이 마음 밖에 실재한다고 집착하여 그 허망된 생각 앞에 나타나는 실아실법(實我實法)의 허망된 모습이다.
  42. 42)분별성은 의타성의 잡염분이고, 성취성은 의타성의 청정분이다.
  43. 43)여기서는 자체의 의미이다.
  44. 44)여기서는 앞의 자체[自性]에 대하여 속성의 의미이다.
  45. 45)두 부분 중에서 어느 한 부분만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46. 46)62가지 잘못된 견해로서 자신과 세계에 관하여 불교의 정도(正道)에서 빗나간 견해의 총칭이다. 석가모니부처님 당시에 주장된 이교도의 사상들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