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963_T_001
- 028_0572_a_01L존바수밀보살소집론 서문
- 028_0572_a_01L尊婆須蜜菩薩所集論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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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수밀(婆須蜜) 보살대사(菩薩大士)는 다음에 미륵(彌勒)의 뒤를 이어 부처님이 되실 분이고, 이름은 사자여래(師子如來)이시다.
석가문(釋迦文)을 따라 내려와 비제국(鞞提國)에 태어나서 대바라문(大婆羅門) 범마유(梵摩渝)의 아들이 되었으니, 그의 이름은 울다라(欝多羅)였다. - 028_0572_a_02L婆須蜜菩薩大士,次繼彌勒作佛,名師子如來也。從釋迦文降生鞞提國,爲大婆羅門梵摩渝子,厥名鬱多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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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명(命)하여 부처님을 뵙도록 하자 찾아가 네 달 동안 모시면서 부처님의 상표(相表)와 위변(威變)과 용지(容止)를 자세히 보고 돌아와서 뵈었던 바를 말하였다.
아버지가 부처님 곁에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하자마자 출가하여 배우면서 이름을 바수밀이라고 고쳤다. - 028_0572_a_05L父命觀佛,尋侍四月,具睹相表威變容止,還白所見。父得不還已,出家學,改字婆須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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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반열반(般涅槃)하신 뒤에는 주투국(周妬國) 반내원(槃奈園)에 유행(遊行)하면서 교화하였고 뛰어난 재주가 세상을 뒤덮었으며, 분일(奔逸)하면서 번뇌를 끊고 이 경(經)을 찬집(饌集)하였다.
따로 7품(品)을 1건도(揵度)로 삼아, 모두 12건도로 찬집하였으며, 마지막 4품의 1건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게송을 훈석(訓釋)한 것이다. 무릇 11품 14건도이다. - 028_0572_a_08L佛般涅槃後,遊教周妒國槃奈園,高才蓋世,奔逸絕塵。撰集斯經焉,別七品爲一揵度,盡十二揵度;其所集也,後四品一揵度,訓釋佛偈也,凡十一品十四揵度也。
- 갖추어 펼친 것이 깊고도 넓어서 아비담(阿毘曇)과 함께 외국에서도 흥(興)하였으며, 곁들어 대승(大乘)까지도 통하였다. 밝음[明]을 지니고 번뇌[漏]를 다했으며, 열 가지 법[十法]을 널리 섭렵하고 백 가지 행[百行]의 능히 할 일을 마쳤다.
- 028_0572_a_12L該羅深廣,與阿毘曇竝興外國。傍通大乘,持明盡漏,博涉十法,百行之能事畢矣。
- 그것을 찾고자 하면 넓고도 먼 것이 마치 창해(滄海)가 끝이 없는 것과 같았으니 어찌 넓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그를 사귀려고 똑바로 보면 마치 곤악(崑岳)에 산마루가 없는 것과 같으니 어찌 높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028_0572_a_14L尋之漭然,猶滄海之無崖,可不謂之廣乎!陟之瞠爾,猶崑嶽之無頂,可不謂之高乎!
- 보배 섬에서 한껏 보면서도 밤에 비추는 보석을 싫어하고 바위 굴에서 눈썹을 치켜들면서도 천하의 지혜로운 옥을 싫어하게 되니, 아름답고 부유함이 어찌 이 경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외국의 높은 자리에 올라 있는 이들도 미처 땅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 028_0572_a_17L寶渚極目,厭夜光之珍;巖岫擧䀹,厭天智之玉。懿乎富也,何過此經!外國昇高座者,未墜於地也。
- 028_0572_b_02L바수밀보살께서는 이 경을 찬집한 뒤에 3매정(昧定)에 들어 손가락을 튕기는 잠깐 사이에 정신이 도술천(兜術天)에 올라가니, 미투로(彌妬路)와 미투로도리(彌妬路刀利) 그리고 승가라찰(乘伽羅刹)도 그 천궁(天宮)으로 찾아갔다. 이 두세 군자(君子)들은 모두가 다음의 보처(補處)가 되실 분들이니, 미투로도리는 광염여래(光炎如來)이시고 승가라찰은 유인불(柔仁佛)이시다.
- 028_0572_a_19L集斯經已入三昧定,如彈指頃神昇兜術。彌妒路、彌妒路刀利及僧迦羅剎,適彼天宮,斯二三君子,皆次補處人也。彌妒路刀利者,光炎如來也。僧迦羅剎者,柔仁佛也。
- 여기에 네 분 대사[四大士]들은 한 집[一堂]에 모여 중생을 대할 적마다 권지(權智)를 널리 선양하면서도 현성(賢聖)들은 말없이 묵묵히 계시고 양양(洋洋)하여 가득할 따름이었으니 또한 즐겁지 않은가?
- 028_0572_b_03L茲四大士集乎一堂,對揚權智,賢聖默然,洋洋盈耳不亦樂乎。
- 계빈국(罽賓國) 사문 승가발징(僧伽跋澄)이 진(秦)나라 건원(建元) 20년(서기 384)에 이 경 한 부를 가지고 장안(長安)으로 왔다. 무위태수(武衛太守) 조정(趙政)은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는 선비였으므로 이 경을 구하여 출간하게 된 것이다.
- 028_0572_b_05L罽賓沙門僧伽跋澄,以秦建元二十年,持此經一部來詣長安。武威太守趙政文業者,學不厭士也,求令出之。
- 불념(佛念)은 전(傳)을 번역하였고, 발징(跋澄)과 난타(難陀)와 제바(禘婆) 세 사람은 호문(胡文)을 맡았으며, 혜숭(慧嵩)은 필수(筆受)하였다. 3월 5일에 시작하여 7월 13일이 되어서야 끝마쳤으니, 호본(胡本)은 12천 수로(首盧)였다. 나와 법화(法和)가 서로 교정하면서 수식하였고 무위(武衛)는 다소 윤색(潤色)하였다.
- 028_0572_b_08L佛念譯傳,跋澄、難陁、禘婆三人執胡文,慧嵩筆受。以三月五日出,至七月十三日乃訖。胡本十二千首盧也。余與法和對校修飾,武威少多潤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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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은 3승(乘)을 설하여 9품(品)이 되었고, 잘 지니고 수행하여 정관(正觀)으로 다스렸으니 열여섯 가지를 가장 잘 갖추었다.
그리고 늘 윗 사람의 운치를 찾으면서도 의미를 잊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다만 한(恨)스러운 것은 여러 길 되는 문을 엿보다가 너무 늦어 그 종묘(宗廟)의 아름다움과 백관(百官)의 부(富)를 다 알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 - 028_0572_b_12L此經說三乘爲九品,持善修行。以正觀逕,十六最悉。每尋上人之高韻,未嘗不忘意味也。恨闚數仞之門晩,懼不悉其宗廟之美、百官之富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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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바수밀보살소집론(尊婆須蜜菩薩所集論) - 028_0572_b_15L尊婆須蜜菩薩所集論卷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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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바수밀(尊婆須蜜) 지음
승가발징(僧伽跋澄) 등 한역
변각성 번역 -
028_0572_b_16L尊婆須蜜造
符秦罽賓三藏僧伽跋澄等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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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건도(聚揵度) ① - 028_0572_b_18L聚揵度首第一秦言地親也。自品首盡七品,名聚揵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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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력(力)께서 자비로 세상애 나타나
온갖 법을 밝게 깨달아 아셨네.
나는 지금에 그러하신 부처님과
진리와 거룩한 대중에게 예배합니다. -
028_0572_b_19L十力哀出世,
覺知一切法,
我今禮如來,
法及諸聖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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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수승한 좋은 법의 구절을
여러 성현들이 잘 들으시고서
구담(瞿曇) 대중들은
여러 중생들을 잘 도와주시네 -
028_0572_b_21L最勝之善句,
諸賢聖聽聞,
瞿曇大衆中,
有益衆生類。
- 어떤 것을 색상(色相)이라고 하며, 그 색상은 어떤 것인가?
- 028_0572_b_22L云何爲色相?問:色相云何?
- 【답】온갖 법을 그대로 잘 깨달아 아는 것이다.
- 028_0572_b_23L答曰:如覺知諸法。
- 어떤 것을 온갖 법을 잘 깨달아 안다고 하는가?
- 云何覺知諸法?
- 【답】유계(有界)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 028_0572_b_24L答曰:爲有界想。
- 보다 수승한 것이 있게 되는가?
- 爲有勝耶?
- 【답】그에게는 하나의 생각[一想]이 있다.
- 答曰:彼有一想。
- 028_0572_c_02L【문】그 하나의 생각보다 수승한 것이 있는가?
- 028_0572_c_02L問:一想爲有勝耶?
- 【답】하나의 생각 중에는 애욕의 모든 때[垢]에 집착되어 온갖 경계에 묶인 바가 되었으나 끝내 묶이지 않나니, 때문에 온갖 결박이 곧 약해지게 된다
- 028_0572_c_03L答曰:一想之中著欲諸垢諸界所縛,終不縛者是故諸結則衰。
- 【문】그 온갖 결박[結] 중에서도 보다 수승한 것이 있는가?
- 028_0572_c_04L問:如中諸結爲有勝耶?
- 【답】장차 감로(甘露)법에 이르게 되는 그것이 있다.
- 028_0572_c_05L答曰:當有還甘露。
- 【문】그 중에 서로 감로법에 이르게 되는 그것보다 수승한 것이 있는가?
- 問:如中當還甘露爲有勝耶?
- 【답】의생신(依生身)과 의생의(依生意)에서는 온갖 괴로움을 받는 그것이 전혀 일어나지 않나니, 그러므로 몸과 뜻[意]과 온갖 괴로움이 이미 지난 과거가 된다.
- 028_0572_c_06L答曰:依生身意受諸苦惱緣亦不起,是故身意諸苦惱已過去。
- 【문】만일 그 중에 색상이 없다고 하자 설령 색상이 없다면 물질 역시 그 모양이 없는가?
- 028_0572_c_08L問:如中無色相。問:設無色相,色亦無相。
- 【답】만일 색상이 없으면 또한 저 물질도 없으며, 색상에도 또한 그 모양이 없고 또한 색상이 더럽힐 것도 없다.
- 028_0572_c_09L答曰:若無色相,亦無彼色。色相亦無相,亦無淫色相。
- 【문】그대에게 색상에 물질이 없는 것처럼, 그와 같이 나에게도 색상이 없고 또한 그 모양이 없는가? 또한 색상이 있는가?
- 028_0572_c_11L問:猶如汝無色相有色,如是我無色相亦無相,亦有色相耶?
- 어떤 이는 “차츰차츰 색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 028_0572_c_12L或作是說:漸漸興色相。
- 【문】하나의 물질 중에서 혹 일어나기도 하고 혹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그 내용은 어떠한가?
- 028_0572_c_13L問:一色中或興或不興,此義云何?
- 어떤 이가 “만일 물질이 어느 때에 차츰 쌓인다면 거기에는 색상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차츰차츰 색상을 분별하는 것도 역시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색상을 모조리 통괄했다”고 말했다.
- 028_0572_c_14L或作是說:若色一時漸積,彼無色相。或作是說:漸漸分別色相,此亦如本所說。或作是說:攝統色相。
- 【문】과거와 미래의 물질이 가장 다르다는 말씀은 없고 곧 무형[無色]이 있다고 말했다.
- 028_0572_c_17L問:過去未來色最別無教,便有無色。或作是說:攝繫色相。
- 어떤 이는 “색상을 껴잡아 매어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또 “온갖 덮임[蓋]과 색상까지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망가지고 없어진 색상이라고 한 그것도 역시 과거와 미래에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했다. 어떤 이는 “색상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볼 수도 있고 상대도 있는 것[可見有對]과 볼 수 없고 상대만 있는 것[不可見有對]과 볼 수도 없고 상대도 없는 것[不可見無對]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2_c_18L或作是說:及諸蓋色相。或作是說:壞敗色相。此亦過去未來所說。或作是說:色相有三種,可見有對、不可見有對、不可見無對。
- 【문】만일 모든 물질이 볼 수도 없고 상대도 없다면 그것을 가지고 색상이 없도록 한 것인가?
- 028_0572_c_22L問:若諸色不可見無對,欲使彼無色相耶?
- 어떤 이는 “색상이 가고 오고 하는 그것을 색상이라 한다”고 말했다.
- 028_0572_c_23L或作是說:色相往來是謂色相。
- 【문】과거와 미래에 대한 내용이 조금도 다름이 없는가?
- 問:過去未來義不有異?
- 028_0573_a_02L어떤 이는 “색상이 물질이 된다”고 말했으며, 어떤 이는 “4대(大)로 말미암아 물질이 되었다”고 말했다. 세존께서도 역시 “4대로 된 것이니, 저 네 요소로 말미암아 색음(色陰)이 생기고 수음(受陰)이 왕성해진다”고 말씀하셨다.
- 028_0572_c_24L或作是說:色相爲色。或作是說:因四大義爲色。世尊亦說四大,緣彼四大生色陰受盛。
- 【문】그 요점을 들어 말한다면 거기에서는 온갖 물질을 상대로 한 저 온갖 것은 네 요소이고, 네 요소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 028_0573_a_04L問:取要言之,彼則不說緣諸所有色。彼一切是四大、四大所造。
- 【답】그것은 요점을 들어 말한 것이 못 된다. 또 말하기를 “인연이 변경됨으로써 온갖 고통스러운 음(陰)이 생긴다”고 했다. 어떤 이는 “그대는 어떠한 색상을 묻는가? 만일 푸른 것이라고 하면 푸른 그것이 색상이 되고, 누런 것이라고 하면 곧 누런 그것이 색상이 된다”고 말했다.
- 028_0573_a_05L答曰:此非取要。又作是說:緣更生諸痛陰。或作是說:汝問何色相?設靑,靑爲色相;設黃,卽彼色相也。
- 【문】나는 온갖 색상을 묻는다. 만일 저것이 색상이라면 그 모양보다 더 수승한 것은 없는가?
- 028_0573_a_08L問:我問一切色相。設彼是色,相相無勝?
- 【답】빛깔에는 동일한 하나의 모양만이 아니니 그 중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설령 모양과 모양이 같지 않다 하더라도 그 내용만은 곧 그러하지 않으니, 마치 땅은 굳은 모양이 되나 지금에 땅이 다르고 굳음도 다른 것과 같다.
- 028_0573_a_09L答曰:色不同一相,此中有何咎?設相相不同,此義不然。猶若地爲堅相,如今地異、堅異。
- 【문】온갖 물질이 동일한 모양인 것은 마치 무상(無常)한 것과 같다. 제 모양[自相]이 모양 없음을 물을 적에는 땅이 제 모양이 되나니 그러므로 그러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제가 제 모양이 없음’을 물을 적에는 저는 온갖 모양을 묻는다.
- 028_0573_a_11L問:一切色同一相,猶如無常。問:自相無相,地爲自相,是故不應作是說。問:我無自相,我問一切諸相。
- 어떤 이가 “상대가 있는 물질[有對色] 모양은 바로 빛깔이니 색상이 되며, 상대가 있는 모양[有對相] 그것은 마치 화살이나 회초리를 잡는 것과 같나니 그것은 빛깔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3_a_14L或作是說:有對色相,是色爲色相,有對相者,猶如捻箭筈,是謂有色。
- 곡식의 종자를 땅에 심어두고 수시로 적당한 수분을 공급하면 거기에는 곧 및깔이 생겨나게 되는 것과 같나니 무엇을 색상이 아니라 말하는가?
- 028_0573_a_16L如種穀子在地,隨時漑灌彼便有色。云何非色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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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위에서 말한 내용과 정반대이다. 담마다라(曇摩多羅)존자는 “온갖 물건으로서 상대가 없는 것은 빛깔이 아니니 그것을 색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상대가 없는 물건은 그것 또한 나지 않나니 그를 상대가 없다[無對]고 말한다. 마치 상대 없는 것은 그 상대의 자취인 것과 같아서 그는 곧 상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색상이 아니다. 4대(大)로 만들어진 물질에는 어떠한 다름이 있는가?”라고 말하였다.
어떤 이는 “다름이 없나니 온갖 네 요소가 바로 만들어진 물질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3_a_17L答曰:反上所說義。尊曇摩多羅說:諸物無對彼非色,是謂非色相。無對之物彼亦不生,是謂無對。猶如無對是對迹,彼便是無對。如是非色相,四大所造色有何等異?或作是說:無有異也,諸四大卽是造色。
- 【문】세존께서 “온갖 빛깔이 있는 저 온갖 것들은 곧 네 요소이니 네 요소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 경에 어김[違]이 있다.
- 028_0573_a_23L問:如世尊言,諸所有色,彼一切是四大、四大所造耶。於此經有違。
- 028_0573_b_02L【답】만들어진 소리가 다시 딴 감관[根]에서 있는 것이 아니니, 이를테면 여섯 갱락(更樂)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를 탐내고 있으나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참는 수행이 그에서 생긴다. 그 낙이 생긴 이후로부터 그 중간에 이르기까지 여섯 갱락 밖에 다시 일곱 갱락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만든 자도 없다.
- 028_0573_b_02L答曰:非所造聲更有餘根。如說六更樂,愚人所貪忍,苦樂行從此所興,樂以來於其中閒,不出六更樂外更有七更樂也,亦無造者。
- 【문】만일 소리를 만든 것이 없다면 또한 애욕과 형색을 변경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그것이 내 물질인가? 또한 나에게 있는 것인가?
- 028_0573_b_05L問:若無造聲者,亦不變易。欲色是我所色,亦是我有耶?
- 어떤 이는 “굳음ㆍ축축함ㆍ따뜻함ㆍ움직임 그것이 곧 네 요소의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마치 땅의 빛깔은 빛깔로부터 만들어진 물질이 아닌 것과 같다.
- 028_0573_b_07L或作是說:堅濡熱動是四大相,猶如非地色從色造色。
- 【문】네 요소가 이리저리 그 우열이 있고 물질은 언제나 만들어지지 않는데 그것들을 만들어짐이 있는 물질이라 보려고 하는가?
- 028_0573_b_08L問:四大轉轉優劣,色不常作。欲使彼有造色耶?
- 【답】비록 저 네 요소가 이리저리 그 우열로 네 요소의 모양이 있게 되었으나 네 요소에서 일어난 물질은 네 요소의 모양이 되지 않나니, 그는 거기에서 일어난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온갖 인연은 저 네 요소와 네 요소에서 일어난 물질이다”라고 했다.
- 028_0573_b_10L答曰:雖彼四大轉轉優劣得四大相,四大所興色非得四大相,彼非所興色。或作是說:諸緣彼四大、四大所興色。
- 【문】네 요소가 또한 네 요소를 인연하는데 그것에서 일어난 물질인가?
- 028_0573_b_13L問:四大亦因四大,欲使是興色耶?
- 【답】그것들이 비록 네 요소를 인연하기는 하나 약간의 인연하는 바가 있고 네 요소가 곧 색상을 일으킨 것이다.
- 028_0573_b_14L答曰:彼雖因四大,有若干所因,四大是興色相。
- 【문】물질이 색상에 인연하여 그 물질이 더욱 물질을 내는 것인가?
- 028_0573_b_15L問:色緣色相,色轉生色。
- 【답】물질이 더욱 물질을 내고 다시 네 요소를 인연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아는가? 어떤 이는 “유루(有漏)의 네 요소에서 일어난 물질은 또한 유루이기도 하고 또한 무루(無漏)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028_0573_b_16L答曰:云何得知色轉生色,復不緣四大耶?或作是說:有漏四大所興色,亦有漏亦無漏。
- 【문】온갖 유루의 것에서 만들어진 물질은 저 네 요소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온갖 무루의 것에서 일어난 물질은 어떤 네 요소로 만들어진 것인가?
- 028_0573_b_18L問:諸有漏所造興色、被四大有何差降?諸無漏所興色,何等四大造耶?
- 어떤 이는 “무기(無記)인 네 요소에서 일어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만들어진 물질이란,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어떤 이는 “저 네 요소에 의하여 일어나게 된 물질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3_b_20L或作是說:無記四大所興。復次所造色者,善、不善、無記。此亦如上所說。或作是說:依彼四大得興色。
- 【문】마음과 마음이 생각하는 법도 역시 네 요소에 의해서 그것들이 물질을 일어나게끔 하는 것인가?
- 028_0573_b_23L問:心心念法亦依四大,欲使彼是興色耶?
- 【답】네 요소에 의한 것은 모든 감관[根]인데 모든 감관 역시 마음과 마음이 생각하는 법에 의하나니 그러므로 그것들이 네 요소에 의하지 않는다.
- 028_0573_b_24L答曰:依四大諸根,諸根亦依心心念法,是故彼不依四大。
- 028_0573_c_02L【문】이름과 물질[名色]이란, 이러나 저러나 서로 의지하지 않는가?
- 028_0573_c_02L問:名色者展轉不相依。
- 어떤 이는 “증가하는 네 요소이기에 네 요소가 증가하여 물질을 일으킨다”고 했다.
- 028_0573_c_03L或作是說:增上四大,四大增上興色。
- 【문】그것은 약해서 줄어듦과 증가함을 말하는가? 그것은 증가하고 나지 않음을 말하는가? 마치 온갖 법이 이리저리 증가하여 서로 생기는 것과 같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그것들은 나지 않는다.
- 028_0573_c_04L問:是謂衰耗增上、是謂增上不生?猶如一切法展轉增上相生,是故彼不生。
- 승가다라(僧伽多羅)존자가 “네 요소인 큰 사실이 일어나는 인연에서 물질이 생긴다고 말하였다.
- 028_0573_c_06L尊僧伽多羅說:四大大事興因緣生色。
- 【문】네 요소가 각각 서로 떠나지 않으며 또한 큰 사실이 일어난 것도 아니니 그 내용은 어떠한가?
- 028_0573_c_07L問:四大各各不相離,亦非大事興。此義云何?
- 【답】만일 떠나지 않게 된다면 혹 네 요소는 물질이 아닐 것이니, 바람이 허공에서 떠돌아 다님과 같고 물질에 냄새와 맛이 없는 것과 같다. 네 요소는 물질이 아니면서도 물질에 들어가 만드는 작용을 한다.
- 028_0573_c_08L答曰:若得不離,或四大非色。如風種空流離、色種無香味,四大非色入色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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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수밀(婆須蜜)존자가 “갱락(更樂)은 역시 네 요소에서 일어난 물질이니, 땅의 빛깔ㆍ땅의 냄새ㆍ땅의 맛과 같다”고 말했다.
존자 담마다라존자는 “마치 미묘한 물질을 네 요소가 해산시킬 수 있고 그 밖의 물질까지도 그러하나니 그것을 물질을 일으킴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 028_0573_c_10L尊婆須蜜說:更樂亦是四大所興色也,如地色、地香、地味。尊曇摩多羅說:猶如微妙色四大得解,亦及餘色。是謂興色也。
- 어떠한 내용에서 신식(身識)이 받아들이매 가늘고 윤활하게 받아들이데 혹 네 요소이기도 하고 네 요소가 아니기도 하는가?
- 028_0573_c_14L以何等故身識入細滑入?或是四大或非四大。
- 어떤 이는 “저것은 인연이 없으니, 빛깔을 분명하게 인식함에 혹은 푸른 것, 혹은 푸른 것이 아닌 것이라고 함과 같나니, 그를 신식이 받아들일 때에 가늘고 윤활하게 받아들이는데 혹 네 요소이기도 하고 혹 네 요소가 아니기도 하다”고 말했다.
- 028_0573_c_15L或作是說:彼無因緣。如明識色,或靑或非靑,是謂身識入細滑入,或是四大或非四大。
- 어떤 이는 “사대의 모양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온갖 가늘고 윤활한 것으로만 된 것이 아니니, 네 요소의 모양이 동일하지 않고 축축함과 딴딴한 모양도 또한 같지 않으며, 굵고, 가늘고, 가볍고, 무겁고, 차갑고, 굶주리고, 목마름 따위가 같지 않다. 저 가늘고 윤활한 것이 굵은 땅에서 생긴 것인데, 가벼운 것은 불과 바람으로 만들어졌고, 무거운 것은 땅에서 생긴 것이며, 차가운 것은 물에서 만들어졌고, 굶주림과 목마름은 불과 바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3_c_17L或作是說:謂四大相彼非一切從細滑得,四大相不同,濡堅相亦不同。麤細輕重寒飢渴,於彼細滑麤地所生,輕者火風所造、重者地所生、寒者水所造、飢渴火風所造。
- 028_0574_a_02L【문】땅의 견고한 것보다 더한 것은 있지 않나니 가늘고 윤활하고 굵은 것은 바로 땅의 처소이니, 이것을 증가함이 있다고 말한다. 땅의 평탄하고 바른 것과 같기 때문에 가늘고 윤활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며, 땅의 평탄치 못한 것과 같으면 굳고 굵은 것이라고 말하나니, 그러므로 굵음과 가늘고 윤활한 것이 없다. 설령 굵고 가늘고 윤활한 것을 성취한다고 하더라도 온갖 것이 항상하면 될 수 있는 사실이나 푸른 빛깔을 언제나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그가 성립되지 못한다.
- 028_0573_c_22L問:無有出地堅者。細滑麤是地處所,是謂有增。如地平正故曰細滑,如地不平正故曰堅麤也,是故無麤細滑。設麤細滑當成就者,一切常可得。如靑色不可得,是故不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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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에 혹 가벼울 원인이 있다가도 저것이 다시 무거워질 수 있나니, 그러므로 가벼움과 무거움도 성취될 수 없다. 만일 차가워졌다면 어떻게 푸른 연꽃이 생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저 사대에서 얻어진 것이 아닐 것이니, 그러므로 차가움도 성취될 수 없다.
만일 불이 성하면 굶주리고 바람은 목마름의 근본이 된다. 어떤 이는 “온갖 신식(身識)이 가늘고 윤활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히 사대라고 말해야 하나니, 사대를 떠나지 않고 신식이 있기 때문이다. 사대가 더욱 증가함을 제각기 말한다”고 말한다. - 028_0574_a_03L彼或有輕因、彼復有重,是故輕重不得成就。若成寒者,云何得生靑蓮華?不於彼四大得,是故寒不成就。若火盛則飢、風爲渴本。或作是說:一切身識細滑入,當言四大也。不離四大有身識也。四大轉增各各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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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무명(無明)인가?
어떤 이는 “무지(無智)가 곧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4_a_09L云何無明?或作是說:無智是無明也。
- 【문】어찌하여 무지를 지혜가 아니라고 말하는가? 만일 그것이 지혜가 아니라면 저것은 곧 무명이다. 풀과 나무와 장벽(牆壁)은 모두가 지혜롭지 못하니 그것들을 무명이라고 해야 하는가?
- 028_0574_a_10L問:云何無智言非智耶?設是非智彼是無明,草木牆壁皆不智,欲使彼是無明耶?
- 【답】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은 법과 서로 상응한다.
- 028_0574_a_12L答曰:心念法與心相應。
- 【문】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은 많고 마음 법[心法]의 모양은 무지인데, 어찌하여 미사색(彌沙塞)1)에서는 “아직 무명(無明)을 깨닫지 못하여 무명을 수행하니, 저 밝음이 있지 않을 적에 그것을 무명이라고 이른다. 마치 소금이 있지 않을 적에 그것을 소금이 없다고 말함과 같다”고 했는가?
- 028_0574_a_13L問:心所念法衆,名心法相無智。云何彌沙塞作是說:未辯無明,修行無明。彼不有明時,彼謂無明。如不有鹽,彼謂之無鹽。
- 【문】만일 저 밝음이 있지 않을 적에 그것이 밝음을 일으키면 곧 무명이 있는 것이 마치 저 그릇에 소금이 없으면 저 그릇에는 소금이 없다고 말함과 같다. 만일 밝음이 있지 않으면 저 무명은 공연히 무명만 있을 뿐이다. 만일 밝은 물건이 곧 무명이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행(行)의 인연이 있는가?
- 028_0574_a_16L問:若彼無有明時,彼便起明,則有無明。猶如彼器無鹽,彼器謂之無鹽。若不有明,彼無明空,便有無明。若是明物是無明者,云何行有緣?
- 어떤 이는 “5개(蓋)가 곧 무명이다”고 말했으며, 세존께서도 역시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명에 덮인 바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 028_0574_a_20L或作是說:五蓋是無明。世尊亦說,世閒愚人無明所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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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74_b_02L【문】결(結)은 중요한 자리가 없는가?
어떤 이는 “부정(不淨)을 생각하는 것이 곧 무명이다”고 말했다.
세존께서 또한 “비구가 부정을 생각하면 아직 생기지 아니한 애욕의 번뇌[欲漏]가 곧 생기게 되고, 이미 생긴 애욕의 번뇌는 갑절이나 더 많아지며,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도 역시 그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또 “무명습(無明習)은 곧 유루습(有漏習)이니, 그러므로 부정(不淨)을 생각하는 것은 곧 무명이라 말한다”고 말씀하셨다. - 028_0574_a_22L問:結無有要處。或作是說:思惟不淨是謂無明。世尊亦說,比丘當思惟不淨。未生欲漏便生,已生欲漏倍增廣;有漏、無明漏亦復如是。亦言:無明習卽是有漏習,是故思惟不淨。是謂無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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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정을 생각하지 않는 것도 곧 무명인가?
그것도 부정을 생각한 것에 관련되므로 역시 무명이다. 또 세존께서 “그와 같이 비구가 부정(不淨)을 생각하므로 그 무명(無明)에 관련되어 그 무명이 애(愛)에 관련되나니, 그러므로 그런 부정을 생각함이 없어도 곧 무명이다”고 말씀하셨다. - 028_0574_b_04L問:非思惟不淨是無明耶?彼緣思惟不淨亦是無明。又世尊言,如是比丘思惟不淨。緣是無明,無明緣愛,是故無此思惟不淨,是無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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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일 무명이 무명에 관련되면 그 뜻은 어떠한 어긋남이 있는가? 무명이 어리석음에 관련된다고 말함과 같은가?
어떤 이는 “네 가지 전도(顚倒)가 곧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4_b_08L問:若無明緣無明,意有何違?如所說無明緣癡。或作是說:四顚倒是無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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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괴롭다고 보는 것으로 전도를 끊나니, 그러므로 그가 무명이다. 괴로움을 보고 소견의 결[見結]과 무명의 결[無明結]을 끊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중요한 자리가 있지 않겠는가?
어떤 이는 “온갖 결이 곧 무명이요, 지혜로움은 곧 밝음[明]이다. 온갖 결 때문에 깨달아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온갖 결이 곧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4_b_10L問:苦見斷顚倒是故無明,見苦斷見結、無明結亦如是,無有要處。或作是說:一切結是無明,智者是明。一切結不覺知,是故一切結是無明。
- 【문】사(使)는 중요한 자리가 있지 않은가?
- 028_0574_b_13L問:使無有要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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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만일 열 가지 현색(現色)이 있으면 중요한 자리에 드나니, 그와 같이 사(使)는 중요한 자리가 있다.
어떤 이는 “진실로 무명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삿됨이 무명을 낸다”라고 말했으며, 어떤 이는 “무명이라는 명칭은 무지(無智)와 의혹과 삿됨[邪]을 따르는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4_b_14L答曰:若有十現色入要處,如是有使要處。或作是說:實不生也,邪生無明。或作是說:無明名者,無智、疑、順邪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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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무명에는 여섯 가지 모양이 있으니 어리석음ㆍ순종ㆍ삿됨ㆍ의혹ㆍ희망ㆍ중요함이 없는 것을 얻고자 함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무명이란, 거룩한 진리[聖諦]에 대하여 행하려 들지 않는 무지(無智)이니, 삿됨을 따르는 그것을 곧 무지라 말한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자기의 조작으로 중생이 있나니, 그것은 아소(我所)의 무명이요, 내가 조작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028_0574_b_17L或作是說:無明有六相,癡、順邪、疑、悕望、欲得、無要處。或作是說:無明於聖諦不作無智也。順邪是謂無智。或作是說:自造有衆生,是我所無明,我造非有也。
- 무명의 모양은 어떠한가?
- 無明相云何?
-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다시 말하자면 이 중생의 어리석음이 무명의 모양이다. 어찌하여 무명의 인연이 있는가?
- 028_0574_b_21L如上所說。復作是說:於此衆生愚癡無明相。云何無明有緣?
-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다시 나라는 물건이 있음과 무명이 있음과 무명의 네 가지 전도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 028_0574_b_23L如上所說。復次有我物有無明。無明、四顚倒有何差別?
- 028_0574_c_02L어떤 이는 “소견이 곧 전도이니 무상(無常)한 것을 항상함이 있다고 하며, 괴로운 것을 즐거움이 있다고 하며,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고 하며, 무아(無我)인 것을 내가 있다고 하여 그와 상응하는 것과 그 밖의 결사(結使)와 상응하는 무지(無智)가 있는 그것이 곧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4_c_02L或作是說:見是顚倒,無常有常、苦有樂、不淨有淨、無我有我。有彼相應,及餘結使相應無智,是無明。
- 【문】그것과 상응하는 무지는 무상한 것을 항상함이 있다고 여기며, 괴로움을 즐거움이 있다고 여기며, 나아가서는 무아(無我)인 것을 내가 있다고 하여 한 곳에서 전도된 소견을 갖나니, 그 무지는 곧 전도인지라, 그 내용은 어떠한가?
- 028_0574_c_04L問:彼所相應無智,無常有常、苦有樂,乃至無我有我。一處顚倒見,此無智是顚倒。此義云何?
- 어떤 이는 “진리를 보는[見諦] 데서 끊을 바는 전도이고 진리를 보고 생각하는 데서 끊을 바는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4_c_07L或作是說:見諦所斷顚倒,見諦思惟所斷無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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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약 무명을 진리 보는 데서 끊는다면 저 전도와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차별이 없나니 전도가 곧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4_c_08L問:若無明見所斷,彼顚倒有何差別?或作是說:無有差別,顚倒者是無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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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일 그렇다면, 수다원(須陀洹)도 또한 무명이 있지 않는가?
어떤 이는 “무명이란, 무너지거나 없어짐이 없나니, 무너지거나 없어지는 것은 곧 전도다”라고 말했다. - 028_0574_c_10L問:若當爾者,須陁洹亦無有無明也。或作是說:無明無有壞敗,壞敗者是顚倒也。
- 【문】상응하는 것은 혹 무너짐도 있고 혹 무너짐이 없기도 한다는데, 그 내용은 어떠한가?
- 028_0574_c_12L問:相應者,或有壞敗、或無敗壞。此義云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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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무도(無道)한 것을 무명(無明)이라 이르고, 사도(邪道)인 것을 전도(顚倒)라 이른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중요함이 없는 것을 무명이라 이르고, 중요함을 전도라 이른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온갖 결사(結使)가 곧 무명이요, 무명에서도 아주 작은 것을 전도라 이른다”고 말했다.
다시 온갖 결(結)은 곧 전도이고, 전도 중에서 아주 작은 것은 또한 무명이다. - 028_0574_c_14L或作是說:無道者謂無明,邪道者謂之顚倒。或作是說:無要者謂之無明,要者謂之顚倒。或作是說:一切結使是無明也,無明微者謂之顚倒。復次一切結是顚倒顚倒,微者亦是無明。
- 어떤 것을 내상(內相)이라 하며 어떤 것을 외상(外相)이라 하는가?
- 云何內相?云何外相?
- 【답】모든 법의 제 모양[自相]이 내상이고, 무너지는 것은 외상이다.
- 028_0574_c_19L答曰:諸法自相,壞者外相。
- 내상과 외상이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 內相外相有何差別?
- 어떤 이는 두루하지[普遍] 않는 것은 곧 내상이고, 두루한 것은 곧 외상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4_c_20L或作是說:不普遍是內相,普遍者是外相。
- 【문】만일 두루하다면 허공도 또한 두루하다. 만일 내상이 껴잡아 유지하면 내상이 외상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내상도 있고 외상도 있는가?
- 028_0574_c_22L問:設當普者,虛空亦復普。設內相攝持,非內相還外相,是故有內相有外相。
- 어떤 이는 “무너지지 않는 것은 외상이고, 무너지는 것은 내상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4_c_24L或作是說:不壞外相,壞者內相。
- 【문】두루한 것도 역시 무너지며, 그 밖의 무상함과 괴로움도 역시 무상한가?
- 問:普者亦壞,餘者無常,苦亦無常。
- 028_0575_a_02L【답】5음(陰)이 이미 무너지되 하나는 무너지지 않나니, 무상함도 두루하다.
- 028_0575_a_02L答曰:五陰已壞,一不壞,無常普遍。
-
【문】만일 제 모양이 무너지고, 두루하는 모양[普遍相]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와 같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제 모양이요, 무너지는 것은 외상(外相)인가?
어떤 이는 “그것이 서로 같지 않다”고 말했다. - 028_0575_a_03L問:如壞自相,不壞普遍相。如是不壞自相,壞者外相。或作是說:其不相類。
- 【문】푸른 것은 푸른 것과 같고 누런 것은 그와 서로 같지 않은데, 그것을 내상이다, 외상이다 하려는 것인가?
- 028_0575_a_05L問:靑象靑,黃者不相象。欲使彼是內相、是外相?
-
【답】푸른 것과 누런 것이 서로 같지 않은데도 푸른 것은 내상이고 외상이 아니라고 하려 드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나타난 것은 곧 내상이요, 알지 못한 지혜는 곧 외상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a_07L答曰:靑黃不同,欲使靑是內相非外相。或作是說:現者是內相,未知智是外相。
-
【문】그가 혹 알지 못한 지혜가 있으면 그것을 내상이다 외상이다 하려 들며 더 나아가서 알지 못한 지혜는 구경(究竟)에는 제 모양이라고까지 하려는 것인가?
어떤 이는 “의지 그것은 곧 제 모양이고 의지함은 외상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a_09L問:彼或有未知智,欲使彼是內相、是外相?乃至未知智究竟自相。或作是說:依是自相,依者外相。
-
【문】이름[名]과 물질[色]이 각기 서로 의지하는데 그 역시 내상인가? 외상인가? 만일 외상에 의지한다면 제 모양[自相]과 외상은 외상에 의지하고 무상함이 무상함에 의지함은 없는가?
어떤 이는 “공통되지 않는 것은 제 모양이요, 공통된 것은 외상이다”라고 말한다. - 028_0575_a_11L問:名色各各相依,亦是內相、外相耶?若依外相,彼自相。外相依外相,無無常依無常。或作是說:不共自相,共者外相。
- 【문】외상도 역시 공통되지 않음이요, 무상함과 괴로움이 다른가?
- 問:外亦是不共,無常、苦別。
- 【답】5음(陰) 중에 어찌 무상함과 외상이 공통되지 않음이겠는가?
- 028_0575_a_15L答曰:五陰中云何,無常外不共。
- 【문】저 무상함과 같아서 물질이 무상하며, 사실대로 생각해보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인식까지도 무상한가?
- 028_0575_a_16L問:如彼無常色、無常痛想行識,如實思惟乃至識無常。
- 어떤 이는 “자연(自然)과 상응하는 것은 곧 내상이고, 그와 상응하지 않는 것은 외상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a_18L或作是說:與自然相應是內相,不相應是外相。
-
【문】만일 외상이 진실함이 없다면 지금도 역시 없다. 만일 외상이 있다면 거기에는 또한 제 모양이 있겠는가?
어떤 이는 “외상이 있지 않고 모두가 제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a_19L問:若外無實者,今亦無也。若外相有者,彼亦有自相。或作是說:無有外相,一切自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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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일 외상이 없다면 모든 법에도 또한 외상이 없겠는가?
어떤 이는 “이미 제 모양은 분별했으니 외상은 분별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며, 어떤 이는 “깨달음은 곧 제 모양이요, 깨닫지 못한 것은 외상이다”라고 말한다. - 028_0575_a_21L問:若無外相者,諸法亦無外。或作是說:已辯自相,不辯外相。或作是說:覺是自相,不覺者外相。
-
두루 무너지지 않는 모양 있는데
지혜가 의지한 바를 알지 못하네.
공통됨도 저절로 있음도 아니요
말도 지어냄 아님 있지 않네. -
028_0575_a_24L遍有不壞象,
未知智所依,
不共不自有,
無有不辯造偈也。
- 028_0575_b_02L이것이 있는 것처럼, 3유(有)는 유위상(有爲相)이요, 그 밖의 것도 역시 유위상이다.
- 028_0575_b_02L猶如有此三有爲有爲相,餘者亦有爲。
- 마하승기(摩訶僧耆)는 “이 무상한 다른 모양을 말할 적에 무위상(無爲相)과 다르며, 지금 또한 유위상(有爲相)에 대하여 그러한 말을 할 적에 한량없이 유위법문(有爲法門)에 미치고 낱낱 모든 모양이 세 상(相)과 더불어 상응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b_03L摩訶僧耆說:當說此無常的異,相異無爲相,今亦當有爲相。作是說:當說無量逮有爲法,問:一一諸相與三相相應。
- 【문】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 問:有何等異?
- 【답】이리저리 서로 생기는데 생기는 것은 이미 없어지고, 또한 다시 머무르지도 않는다.
- 028_0575_b_07L答曰:展轉相生,生者已滅亦復不住。
-
【문】나에게 두 가지로 일어나는 것 등이 생기고 이리저리 서로 생기는 것이 있으니, 그러므로 그 중에 다르지 않는가?
어떤 이는 “말하고 나서 마땅히 다시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 028_0575_b_08L問:我有二起,等生、展轉相生,是故於中不異。或作是說:說已當復說。
- 【문】유위상과 무위상이 하염이 있는 것인가?
- 028_0575_b_10L問:有爲相、無爲相,當有爲耶?
- 어떤 이는 “이도 아니고 그도 아니며 유위법(有爲法)일 뿐이니, 또한 마땅히 그 밖에 그를 유위법 모양으로 보지 아니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생기고 멸함과 항상 머무름은 변역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말하지 않는다. 그가 항상함이 있다고 말하면 무상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마땅히 항상함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 028_0575_b_11L或作是說:非此非彼逮有爲法,亦當說餘此非相視有爲法,此生此滅常住不變易,是故不說。彼當說有常、當說無常?或作是說:當說有常。
- 【문】항상함이 있는 모양은 유위(有爲)가 되는가?
- 028_0575_b_14L問:有常相者是爲有爲。
- 어떤 이는 “무상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유위법에 속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것도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이는 “항상함이 있다고 말하고, 항상 함이 없다고 말하며 일어나 항상 머무름과 그것에 대해서도 무상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 028_0575_b_15L或作是說:當說無常逮有爲法。此亦如上所說。或作是說:當說有常、當說無常。起常住及彼,當言無常。
- 【문】무위상이 있더라도 지금 유위라고 해야 하는가?
- 問:有無爲相,今當有爲?
- 어떤 이는 “항상함이 있다. 항상함이 없다고 말하지 말 것이니, 무슨 이유인가? 모든 법의 행(行)이 성립되기 때문에 그가 무상함이고, 저 법의 행(行)이 성립되니, 그러므로 무상한 축에 들지 않으며, 모든 법에 묶이고 집착하니 그러므로 항상함이 있는 것도 아니요, 항상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b_18L或作是說:不得說有常無常。以何等故?諸法行成,故彼無常。彼法行成,是故非無常數。諸法縛著,是故非有常非無常。
- 첫 게품(偈品)을 마친다.
- 028_0575_b_22L初偈品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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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건도 ② - 028_0575_b_23L尊婆須蜜菩薩所集偈品首聚揵度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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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입의 행위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 028_0575_b_24L口、口行有何等異?
- 028_0575_c_02L어떤 이는 “그 다름이 없으니 입이 곧 입의 행위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c_02L或作是說:無有異,口者卽口行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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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일에 입이 곧 입의 행위라고 한다면 몸도 몸의 행위가 아니겠는가? 만일 입과 입의 행위가 다름이 없다면 몸과 몸의 행위도 또한 다름이 없을 것이니, 그 내용이 어떠한가? 조금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은 혹시 몸의 행위인가 싶다.
어떤 이는 “문자(文字)로 설명한 것이거나 문자에 실린 것은 곧 입의 행위[口行]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c_03L問:設口是口行者,身非身行耶?問:若口與口行無異者,身與身行亦無有異。此義云何?少不屬身,或是身行。或作是說:文字說、文字所載是口行。
- 【문】만일 낱낱 글자가 입의 행위가 아니라면 입의 행위와 더불어 서로 상응한 것이 아닌가?
- 028_0575_c_07L問:若一一字非口行者,非與口行相應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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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낱낱 모든 글자가 입의 행위가 아니면 상응함이 아니니, 낱낱 글자에는 뜻과 음향이 서로 상응하는 것이 있다.
어떤 이는 “말하는 바가 있는 것은 곧 입으로 행동한 것이니, 입의 행위 중에 입으로부터 행동이 된 것은 곧 입의 언어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c_08L答曰:一一諸字非口行、非相應,如一一字有諸義音響相應。或作是說:有所言是口所作。如口行中從口行者,是口語言。
- 어떤 이에게 기쁨이 있거나 즐거움이 있거나 근심과 걱정이 있다면, 그를 입의 행위라고 말해야 하는가?
- 028_0575_c_11L他有喜、有樂、有愁憂,當言是口行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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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입의 말이 그로 하여금 기쁨이 있거나 즐거움이 있게 한 것이 아니다. 다시 다른 뜻으로 본다면 뜻은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곧 기쁜 모양이 생기는 것이다.
어떤 이는 “입으로 말한 바가 있거나, 입에서 생각하는 행위가 입에서부터 나온 것은 모두가 다 입의 행위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c_12L答曰:非口語使彼有喜有樂。復次但作餘義,義有所思惟,則生喜相。或作是說:口有所說、口思惟行、出口者皆是口行。
- 【문】만일 생각함이 곧 몸의 행위라면 생각함이 곧 입의 행위이고 생각함이 곧 뜻의 행위이니, 그러므로 세 행위[三行]는 일정한 자리가 없는가?
- 028_0575_c_15L問:若思惟是身行者,思惟是口行,思惟是意行,是故三行無有定處。
- 【답】내 몸의 행위가 다르고 마음의 행위가 다르고 입의 행위가 다르고 뜻의 행위가 다르다.
- 028_0575_c_17L答曰:我身行異、心行異、口行異、意行異。
- 【문】작위하는 것의 행위는 일정한 자리가 아니다. 다시 소리는 곧 입의 행위이고 글자 수도 역시 입의 행위인데, 입과 글자 수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 028_0575_c_18L問:所作行不定處者,復次聲是口行、字數亦是口行也。口、字數有何等異?
- 어떤 이는 “입은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이고 글자 수는 무기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c_20L或作是說:口是善、不善、無記,字數者無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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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입의 무기(無記)인 말은 저 글자 수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어떤 이는 “글자 수는 결코 입이요, 글자 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c_22L問:若口無記語者、彼字數,有何等異?或作是說:字數斷是口,非是字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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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76_a_02L【문】어찌하여 벙어리가 된 사람은 축생과 더불어 어떠한 다름이 있는지 그들에게는 입의 행위가 없다고 보려 하는가?
어떤 이는 “말은 입에 관한 것이고 글자 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028_0575_c_23L問:云何瘖瘂人與畜生有何等異,欲使彼無口行耶?或作是說:言是口義,非字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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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 글자 수는 또한 뜻이 되는 것과 같이 자연(自然)인 물건과 바람이 불어서 방울이 울리는 것도 입의 행위가 아닌가? 본시 3매(昧)에 들었는가?
어떤 이는 “입으로 온갖 행위를 한 것이요, 글자 수가 또한 행위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담마다라존자는 “두 소리가 차별이 있지 않으나 두 사실은 서로 행함이 다르다. 생각으로 선(善)인 글자 수를 아는 것은 단연코 입이요, 깊은 내용을 부연하는 것도 역시 입이요, 또한 입의 행위이며, 두 소리가 함께 다르지 않다”고 말하였다[존 담마다라가 삼매에 들어 그 내용을 알았다]. - 028_0576_a_03L問:如彼字數亦是義。猶如自然物,如風吹鈴鳴,非口行耶?本入三昧。或作是說:口造衆行,非字數亦造行。尊作是說:二聲無有差別,二事相行別,念知善字數斷是口,敷演深義亦是口亦是口行,二聲俱不異尊曇摩多羅入三昧乃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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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에서 입은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이고, 글자 수는 무기뿐인가?
어떤 이는 “입으로 발동하는 것은 마음으로 말미암으나 글자 수는 그러하지 않다”고 말했다. - 028_0576_a_09L以何等故,口善、不善、無記,字數者唯無記?或作是說:口發由心,然非字數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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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글자 수가 발동함도 또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되고 마음을 쓰지 않고서 된 것이 아닌 것인가?
어떤 이는 “미묘함과 미묘함이 없는 그것을 입으로는 지으나 글자 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 028_0576_a_11L問:字數發亦由心,非不用心。或作是說:妙無妙口所造,然非字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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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글자 수가 미묘함과 미묘함이 아닌 것을 만드는 것은 마치 꿈에서 깨어남과 삼매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가?
어떤 이는 “입으로는 지시해 주거나 가르치거나 경계를 하기도 하나 글자 수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 028_0576_a_12L問:字數妙非妙所造,猶如夢中覺及從三昧起。或作是說:口指授教戒,然非字數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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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기(無記)인 입의 말로는 지시해 주거나 가르치거나 경계를 해 주지 못하고 내가 그런 것을 하나니 그러므로 저것은 선ㆍ불선ㆍ무기이나 글자 수는 아닌 것인가?
어떤 이는 “입과 몸의 행위는 쌓이나 글자 수는 그러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 028_0576_a_15L問:如無記口言,非指授教戒,我爲所造。是故彼善、不善、無記,然非字數也。或作是說:口身行集,然非字數。
- 【문】글자 수도 역시 몸의 행위를 쌓는다고 하겠다. 존자께서는 “이 두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하나니, 그를 보지 않고 제 모양을 보지 않고 또한 그 공을 드린 보람이나 효과를 보지 아니해야 한다. 입과 뜻이 함께 일어나매 미묘한 지시를 함이 없으나 그 과보를 받는 것은 둘 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말씀하셨다.
- 028_0576_a_18L問:字數者亦集身行。尊作是說:當量此二事,不見彼不自相、亦不見其功。口意等起,生妙無指授,受報兩相須偈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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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想]과 인식[識]에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차별이 있지 않으니 그 둘이 함께 발동하여 나오는 것이 마음을 말미암는다”고 말했다. - 028_0576_a_21L想與識有何差別?或作是說:無有差別,此二俱發出由心。
- 【문】만일 발동하여 나오는 것이 마음을 말미암는다면, 반드시 그 일정한 자리가 있겠으며 만일 차별이 없다면 음(陰)도 또한 일정한 자리가 있겠는가?
- 028_0576_a_22L問:設發出由心者,必有定處。若無差別者,陰亦定處。
- 028_0576_b_02L【답】만일 당신에게 세 가지 마음이 있을 적에는 곧 음의 자리가 있다. 어떤 이는 “이것이 곧 차별이니 생각이 곧 인식이라 이른다”고 말했다.
- 028_0576_a_24L答曰:若如汝有三心意時則有陰處。或作是說:此是差別,是謂想、是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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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정한 자리가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제 모양을 말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생각은 생각함이 되고 인식은 아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 028_0576_b_03L問:名有定處,當說自相。或作是說:想爲想、識爲識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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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 어떤 내용이 짓는 바가 되는가?
어떤 이는 “생각은 생각이 되고 인식은 인식이 된다”고 말했다. - 028_0576_b_04L問:此何義爲所作?或作是說:想爲想、識爲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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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것 역시 나의 의심되는 바이니, 생각은 스스로 생각을 알고 인식은 스스로 인식을 아는 그것이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어떤 이는 “마음이 곧 생각이요, 마음이 또한 인식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6_b_05L問:此亦是我疑。想自知想、識自知識,有何等異?或作是說:心卽是想、心亦是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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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일 마음이 그러하다면 곧 생각과 느낌의 다름이 있지 않을 것이니, 마음에 어떤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생각과 기억이 작위하는 바를 인식이 스스로 인식한다”고 말한다. - 028_0576_b_07L問:設心當爾者,則無有異,想痛心有何差別。或作是說:想憶所作識能自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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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 생각은 어떤 것을 기억하게 되는가? 만일 그전 것을 기억한다면 그러기에 생각이 스스로 기억하여 생각할 것이요, 만일 그 외의 것을 기억한다면 거기에는 곧 하나의 인연이 있는가?
어떤 이는 “기억이라고 한 것은 곧 생각이요, 그 제 모양은 곧 인식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6_b_09L問:彼想爲憶何等?若憶何者是故想自憶想?若憶餘者,彼則有一緣。或作是說:名憶是想,自相是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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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한 법이 두 명자(名字)와 제 모양[自相]을 갖추었는가? 만일 한 법이 두 명자를 갖추고 있다면 저 명자도 역시 다르고 제 모양도 역시 다를 것이요, 만일 명자가 서로 같지 않다면 생각은 또한 스스로 제 모양이 있고 인식은 명자를 기억할 것인가?
어떤 이는 “밖의 기억이 생각이 되고 제 모먕이 인식이 된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본래 이미 말한 것과 같다. 존자께서는 “분별을 제 생각이라고 말하나니, 제 생각으로 기억하고 인식하는 것은 그가 지은 것만이 아니다. 뜻[意]을 바깥이라 말한다”고 말하였다.
나아가서는 눈으로 느끼는 것과 생각과 마음과 인식이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 028_0576_b_12L問:一法俱有二名字及自相。問:設一法俱有二名字者,彼名亦異、自想亦異。設名不與相同者,是故想亦自亦有相,識者憶名。或作是說:外憶爲想,自相是識。如此本已說。尊作是說:分別名自想,自想憶識。不惟此所作意名是外,乃至眼更痛及想及心及識有何等差別?
- 마땅히 이 일곱 방편으로써 설명해야겠다. 존자께서는 “눈으로 빛깔을 반연하여 눈의 인식과 제 모양으로 느끼는 인식을 내는데, 인식이 이 모든 법에 흘러 달리면서 재차 그러한 차등을 일으킨다. 뜻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인식과 다른 것, 인식과 공통되는 것, 그와 함께 얻는 고락(苦樂) 그것이다. 온갖 생각을 조작하고 본래 짓는 바를 따르는데, 그도 역시 생각과 마음에서 행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028_0576_b_20L當以此七方便說之。尊作是說:眼緣色生眼識,自相受識。識流馳此諸法,還更以此差降。意有三法,識別與識共,俱彼所得苦樂,造諸想追本所作,亦是想心所行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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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76_c_02L이 마음, 이 법을 하나인 모양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마땅히 약간의 모양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마땅히 한 모양이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인식이 푸른 것을 반연할 적에는 뜻도 역시 그러한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하나의 인연이 하나의 인연과 상응하는 법이 있는가? - 028_0576_b_24L是心此法,當言一相、當言若干想?或作是說:當言一相,若識緣靑,意亦當爾。若不爾者,正有一緣一緣相應法。
- 【답】하나의 모양이요, 제 모양이 있지 않다.
- 028_0576_c_04L答曰:一相無有自相。
- 【문】아픔을 참는 인식과 생각과 분별하는 마음이 능히 생각하며 생각 또한 서로 아는가? 온갖 것이 다르며 푸른 것은 실로 그 푸른 것인데, 생각이 또한 서로 알며, 마음이 또한 마음으로 알며, 인식이 또한 인식으로 안다면 그 내용은 어떠한가?
- 028_0576_c_05L問:忍痛識想分別心能思惟想亦相知。問:一切別,靑實其靑,想亦相知、心亦心知、識亦識知。此義云何?
- 어떤 이는 “이 한량없는 모양은 미묘함과 미묘함 아닌 느낌인데 그를 생각으로 지은 바라고 말하며, 제 인식[自識]이 지은 바며 제 인식의 제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6_c_07L或作是說:此無量相。妙非妙痛,名爲想所作,自識所作自識自相。
- 【문】하나의 인연도 있지 않다. 존자께서는 “마땅히 한량없는 모양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하나의 모양이라면 법이 곧 무너짐이 있을 것이요, 법이 어지러워짐이 있을 것이니, 여기에 일정한 자리가 있지 않다. 이와 같은 모든 법에 제 모양 있는 것이 마치 이 유위법(有爲法)을 무위법(無爲法)이라고 할 수 없고, 무위법을 또한 유위법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만일 그렇다면 세존께서 세상에 나오신 것은 무엇을 하시려고 한 것인가?
- 028_0576_c_09L問:無有一緣。尊作是說:當言無量相。設一相者,法則有壞、法則有亂。此無有定處。如此諸法而有自相,猶如此有爲法不可得作無爲法,無爲法亦不可得作有爲法。若爾者,世尊出世爲何所爲?
- 【답】그런 내용 때문에 부처님 세존께서 나오신 것이 아니다. 혹 유위법을 무위법으로 만들고 무위법을 유위법으로 만든다고 말하더라도 비유컨대 보배를 보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보배 아닌 것을 보배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다만 분별하는 이가 안다.
- 028_0576_c_14L答曰:不以此義佛世尊出,言我使有爲作無爲、無爲作有爲。譬如珍寶不可言非珍寶、非珍寶不可言是珍寶,但分別者知。
- 비유컨대 도사(導師)가 도 아닌 것을 도(道)라고 말할 수 없으며 도를 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다만 도사만이 잘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비유컨대 등불을 밝히는 이가 낮은 데를 높다고 말할 수 없으며 높은 데를 낮다고 말할 수 없고 다만 그 높고 낮음을 비출 뿐인 것과 같다. 비유컨대 의사가 단 것을 쓰다고 말할 수 없으며 쓴 것을 달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달고 쓴 것이 각기 다르기 때문인 것과 같아서, 위에 말함도 역시 그와 같다.
- 028_0576_c_18L譬如導方師,非道不可言道、道不可言非道,但導者能知。譬如然燈,下不可言高、高不可言下,但照明其高下。譬如醫師,藥不可言苦、苦不可言藥,苦、藥各異。上亦復如是。
- 다시 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시기 때문에 이 법의 뜻[義]을 말씀하신 것이니 마치 이 유위법이 3세(世)에서 각각 제 모양이 있어서 외상(外相)을 알도록 하게 함과 같다.
- 028_0576_c_22L復次世尊爲衆生故說此法義,猶如此有爲法於三世各有自相得知外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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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77_a_02L무슨 이유 때문에 혹 일어나기도 하고 혹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는가?
어떤 이는 “모양에는 약간의 것이 있다”고 말했다. - 028_0577_a_02L以何等故?或起或不起。此之謂也。或作是說:相有若干。
- 【문】저 모양은 본래 머무름이 없나니, 그러므로 저 서로 생김이 있는가?
- 028_0577_a_03L問:彼相本無住,是故彼有相生。
- 【답】본래 있는 그 모양은 생기지 않았다.
- 答曰:本有此相未生。
- 【문】만일 본래 모양이 있더라도 모양에는 약간의 것이 없는가?
- 028_0577_a_04L問:設本有相,相無若干。
- 【답】저 심지 않고도 저절로 생기는 모양과 같아서 곧 더러운 모양에 각각 다름이 생겨서 같은 모양[同相]과 더불어 각각 생기지 아니하지 않나니 그를 약간의 모양이라고 말했다.
- 028_0577_a_05L答曰:如彼不種自生相者,則穢相各各異生,不與同相各未生,是謂相若干。
- 【문】만일 저 모양이 이미 생기거나 만일 생기지 못했다면 그러기에 저것이 각각 증감이 있나니, 그러므로 저것이 본래 없으면서 생김이 있는 것이다.
- 028_0577_a_07L問:設彼相已生、若未生者,是故彼各有增減,是故彼本無有而有生。
- 【답】여래께서 말씀하신 “모양에는 약간의 것이 없다”고 함과 같나니, 거기에는 곧 더러운 모양이 생기어 다름이 있고 혹 생기지 않더라도 이 생기는 것 때문에 다름이 있다. 비유컨대, 푸른 것이 다르고 무상함과 괴로움이 달라 각각 동일함이 없는 것과 같아서 이도 역시 그와 같다. 어떤 이는 “사실에 약간의 것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도 역시 본래 말한 바와 같다. 어떤 이는 “인연이 혹 생기기도 하고 혹 생기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 028_0577_a_09L答曰:如如來言,相無若干,彼則穢相生有異、或不生以此生有異。譬如靑異、無常苦異,各無勝如,此亦如是。或作是說:事有若干。此亦如本所說。或作是說:因緣或生或不生也。
- 【문】혹 인연이 있지 않기도 하는가?
- 問:或無有緣?
- 【답】별로 인연이 있지 않으니 그 둘은 같지 않으면서 같이 생긴다.
- 028_0577_a_14L答曰:別無有緣,此二不等等生。
- 【문】처음에는 같다는 말이 없었다.
- 問:初無等語耶?
- 【답】그런 말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가 “삼세의 곳에 혹 생기기도 하고 혹 생기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를 말한 것이다. 미래의 곳은 미래를 말한 것이요, 과거의 세상은 그 과거를 말한 것이요, 현재의 세상은 그 현재를 말한 것이다.
- 028_0577_a_15L答曰:非不有語。或作是說:三世處或生或不生,此之謂也。未來處是謂未來,過去世是謂過去,現在世是謂現在。
- 【문】세(世)가 행(行)과 다름이 있는가? 만일 세가 다르고 행이 다르다면 세가 항상 머무를 것이요, 만일 세가 곧 행이라면 저 행은 혹 모이기도 하고 혹 옮기기도 할 것이다.
- 028_0577_a_19L問:世與行有異耶?設當世別、行別者,世常住。若世卽是行者,是故彼行或聚或移。
- 【답】어떤 이는 “낱낱의 사실이 동일하지 아니하여 혹 생기기도 하고 혹 생기지 않기도 한다. 과거의 행(行)은 과거의 행을 알며, 미래의 행은 미래의 행을 알며, 현재의 행은 현재의 행을 아나니, 그를 현재라 말한다”고 말했다.
- 028_0577_a_21L或作是說:一一事不同,或生或不生。過去行者知過去行,未來行知未來行,是謂未來。現在行知現在行,是謂現在。
- 028_0577_b_02L【문】저 미래가 현재가 아니라면 현재는 항상 머물지 않는다. 만일 현재라면 그러기에 저 미래는 현재가 있을 것을 알아 곧 현재가 있다. 만일 저 미래가 현재를 안다면 곧 현재가 없을 것이지만 현재란 곧 현재임을 알아 현재가 있음을 안다.
- 028_0577_a_24L問:如彼未來非現在,設非現在常住也。若現在,是故彼未來知有現在則有現在,若彼未來知現在者則無現在。現在者便知現在知有現在。
- 만일 저 현재가 옮기면 곧 과거가 있을 것이며, 만일 과거가 없으면 곧 항상 있는 과거가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당신이 현재에 과거를 아나니, 곧 과거가 있다. 만일 현재에 과거를 알고 과거 있지 않음을 아는 것과 같이, 당신이 과거에 과거가 있다고 아는 것이 없으면 곧 과거가 없을 것이다.
- 028_0577_b_05L如彼現在移者則有過去。設無過去者則有常。有過去,是故汝現在知過去則有過去。設當如現在知過去無有過去也,汝過去知有過去則無則無過去。
- 어떤 이가 “그 어찌하여 그러한 말을 하며 그 무슨 짓을 하여 제 모양과 상응하겠는가?”라고 말하였다.
- 028_0577_b_09L或作是說:此爲何作是說?此爲何作自相相應?
- 【답】그것은 머무름이 항상하여 이미 제 모양이 된 것을 말함이니, 만일 항상함이 제 모양과 상응하지 않는다면 곧 세(世)를 내는 일이 없을 것이다.
- 028_0577_b_10L答曰:是謂住常已作自相。若常不與自相相應者,則無有世自相生世。
- 【문】만일 제 모양이 세를 낸다면 곧 저 모양이 과거를 낼 것이니, 그러므로 세는 항상한 자리가 없는가?
- 028_0577_b_12L問:若自相生世者,卽彼相生過去,是故世無有常處。
- 【답】나[我]라는 모양이 아직 생기지 아니해서는 미래 세상도 생기지 아니하여 현재 세상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생김과 생김 없는 것으로써 다르다고 하지 말 것이니, 그러므로 세(世)는 항상한 자리가 있다.
- 028_0577_b_14L答曰:我相未生、未來世未生,不壞現在世。不以生無生爲異,是故世有常處也。
- 【문】만일 저 모양이 생기지 않는다면 또한 생기더라도 지금 있는 것이 아니잖겠는가?
- 028_0577_b_16L問:若彼相不生,亦生非今有。
- 【답】만일 지금 생기지 않는다면 또한 생기지 않고 함이 없는 것이다. 다시 항상함인 제 모양이 상응하는 그것은 또한 당연히 없고, 혹 생기기도 하며 혹 생기지 않기도 하나니, 그를 “만일 무상하다면 저것 또한 생기지 않고 지금에 또한 상응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 028_0577_b_17L答曰:若今不生,亦不生無爲。復次常自相相應,此亦當無,或生或不生,是謂若無常者彼亦不生今亦無相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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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만들어짐이 약간의 종류인데
인연과 세(世)도 그와 같네.
낱낱이 함께 서로 생기는데
본래 모양이 그 소작이 되네. -
028_0577_b_19L相作若干種,
因緣世如是,
一一共相生,
本相爲所作。
- 마치 이 유위법(有爲法)이 없지 않음이 아니고 있지 않음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이 무위법(無爲法)도 없지 않음이 아니고 있지 않음이 되지 않는다. 무슨 이유에서 유위법을 항상함이 없다고 말하며, 무위법을 항상함이 있다고 말하는가?
- 028_0577_b_21L猶如此有爲法非不無非爲不有,無爲法非不無非爲不有。以何等故,有爲法謂之無常,無爲謂之有常?
- 028_0577_c_02L어떤 이는 “유위법의 모양은 약간의 것이 있지만 무위법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유위법은 약간의 종류를 만들지만 무위법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유위법은 인연이 있지만 무위법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유위법은 세(世)의 처소가 있지만 무위법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유위법은 가지가지로 다르지만 무위법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존자께서는 “유위법의 짓는 모양은 인연이나, 곧 인연이 서로 생긴다”고 말했다.
- 028_0577_b_24L或作是說:有爲法相有若干,不有無爲法。或作是說:有爲法作若干種,不有無爲法。或作是說:有爲法有因緣,不有無爲法。或作是說:有爲法有世處所:不有無爲法。或作是說:有爲法種種別異,不有無爲法。尊作是說:有爲法所作相因緣,則因緣相生。
- 인(因)과 연(緣)에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 028_0577_c_08L因與緣有何差別?
- 어떤 이는 “차별이 있지 아니하고 합함과 모임에서 있는 바다. 합함과 모임이 없으면 곧 없나니, 곧 그 인과 연이다. 말한 인이 곧 연이라고 한 그것은 낳음ㆍ늙음ㆍ병듦ㆍ죽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7_c_09L或作是說:無有差別。合會所有,無合會則無,卽是因與緣。如所說因卽是緣者,是謂生老病死。
- 【문】만일 합함과 모임에서 있다면 그는 곧 연(緣)이니 눈으로 인하여 눈의 인식[眼識]이 있는 것이다. 그를 “인이고 연이 아니다”라고 하려 하는가?
- 028_0577_c_11L問:設合會有者,彼卽是緣。因眼有眼識,欲使彼是因非緣耶?
- 【답】눈의 합함과 모임에서 눈의 인식이 생기는 것 아니고 상대가 있으면 곧 눈의 인식이 있나니, 그러므로 합함과 모임이 또한 인이고 또한 연이다. 어떤 이는 “합함과 모임은 인이고, 짓는 바는 연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7_c_13L答曰:非眼合會生眼識,有對則有眼識,是故合會亦是因亦是緣。或作是說:合會是因,所作是緣。
- 【문】만일 합함과 모임이 합함과 모임을 짓는다면 인도의 연이 아닌가?
- 問:若合會,作合會者因非緣乎?
- 【답】낱낱 짓는 바는 연(緣)이고 합함과 모임에는 인이 있다.
- 028_0577_c_16L答曰:一一所作緣,合會有因。
- 【문】만일 낱낱 짓는 바가 인이 아니면 합함과 모임에도 또한 인이 아닌가?
- 028_0577_c_17L問:若一一所作非因者,合會亦非因耶?
- 【답】낱낱 짓는 바가 인이 아니고 합함과 모임으로 있나니 낱낱 짓는 바가 합함과 모임이 아닌 것과 같아서 합함과 모임에 합함과 모임이 있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 어떤 이는 “자연(自然)은 인(因)이고 자연 아닌 것은 연(緣)이다”라고 말한다.
- 028_0577_c_18L答曰:一一所作非因,合會有。如一一所作非合會,合會有。合會亦復如是。或作是說:自然是因,非自然是緣。
- 【문】보리에서 생긴 싹이 그 보리와 서로 같은가? 만일 그 싹이 보리와 같다면 4대(大)로 하여금 인(因)의 업(業)과 같다고 하겠는가?
- 028_0577_c_21L問:麥所生牙,牙與麥相類耶。設與麥相類者,欲使四大同因業耶?
- 어떤 이는 “차례[次第]는 인이고, 먼 데에 있는 것은 연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7_c_23L或作是說:次第是因,在遠者是緣。
- 028_0578_a_02L【문】인연(因緣)과 차제연(次第緣)이 있는데, 그 인연과 차제연은 차별이 있지 않은가? 만일 선(善)인 차제연이 불선(不善)인 마음을 일으켰다면 그는 인이고 연이 아닌가?
- 028_0577_c_24L問:因緣及次第緣。因緣及次第緣無有差別。若善次第起不善心,是因非緣耶?
- 어떤 이는 “공통되지 않음[不共]은 인이고 공통됨[共]은 연이다”라고 말한다.
- 028_0578_a_03L或作是說:不共是因,共是緣。
- 【문】눈이 함께하지 않고 눈의 인식을 내는데, 그것을 “인이요 연이 아니다”라고 하려는가? 보리가 뿌리와 싹과 더불어 함께 줄기를 내는데, 그것이 연이고 인이 아닌가?
- 028_0578_a_04L問:眼不共,生眼識。欲使此是因非緣?麥與根牙共生莖,此是緣非因。
- 어떤 이는 “생기는 것은 인이고 다시 생기는 것은 연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8_a_06L或作是說:生者是因,更生是緣。
- 【문】지금 생기는 것은 연이 없고 보리가 다시 생기는 것은 인이 없는가?
- 問:今生無緣,麥更生無因。
- 어떤 이는 “제가 자라는 것은 인이고 딴 것을 자라게 함은 연이다”라고 말한다.
- 028_0578_a_07L或作是說:自長養是因,養他是緣。
- 【문】만일 “제 마음에서 착한 일을 내는 것이 곧 자신을 기르는 것이라면, 그것이 인이고 연이 아니다”라고 하려는가?
- 028_0578_a_08L問:若自心生善卽爲自養,欲使此是因非緣耶?
- 존자께서는 “회전(廻轉)에 대하여 회전은 인이고, 회전 아닌 것은 연이다”라고 말하였다.
- 028_0578_a_09L尊作是說:迴轉是說,迴轉是因、不迴轉是緣。
-
합함과 모임에 있지 아니하고
자연(自然)과 차제(次第)에 있다.
온갖 공동으로 생기는 바이며
자신이 회전하는 그것들이네. -
028_0578_a_11L無有合會,
自然次第,
諸共所生,
自身迴轉。
- 어떤 것이 차제연인가?
- 028_0578_a_13L云何次第緣耶?
- 어떤 이는 “과거의 마음에서 생각하는 법이 차제연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8_a_14L或作是說:過去心所念法,次第緣也。
- 【문】미래의 마음과 마음 법 그 중간에 차제연이 생기는가?
- 028_0578_a_15L問:未來心心法中閒生次第緣?
- 어떤 이는 “과거와 현재의 마음과 마음 법이 차제연이라”고 말했다.
- 028_0578_a_16L或作是說:過去現在心心法次第緣。
- 【문】미래의 마음과 마음 법이 만일 오랜 뒤에 생기면 그 중간에 저 차제연이 생기는가?
- 028_0578_a_17L問:未來心心法若久生,中閒彼次第緣生?
- 어떤 이는 “온갖 마음과 마음 법을 차제연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 028_0578_a_18L或作是說:一切心心法謂之次第緣。
- 【문】지금 아라한(阿羅漢)의 최후 마음에 차례로 다시 딴 마음이 생기는가?
- 028_0578_a_19L問:如今阿羅漢後心,次第更生餘心?
- 어떤 이는 “아라한의 최후 마음을 제외하고는 그 밖의 마음과 마음 법은 차제연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 028_0578_a_20L或作是說:除阿羅漢後心,餘心心法謂之次第緣。
- 【문】멸진삼매(滅盡三昧)의 최후 마음에서도 다시 딴 마음이 생기는가?
- 028_0578_a_21L問:滅盡三昧後心,復生餘心?
- 【답】마음을 일으키는 중간이 차제연이다. 존자께서는 “만일 마음이 차례로 마음을 낸다면 곧 차제연이니, 왜냐 하면 물질이 아닌 마음과 마음 법에 차제연이 있기 때문이다.
- 028_0578_a_22L答曰:起心中閒次第緣也。尊作是說:若心次第生心者,卽次第緣也。何以故?非色、心、心法有次第緣也。
- 028_0578_b_02L어떤 법으로부터 나오는가? 그 차례가 적은 것은 많은 것을 내고, 많은 것은 적은 것을 낸다”고 말했다.
- 028_0578_b_02L從何法出?何以故?次第少者生多、多者生少。
- 차제연의 모양은 어떠한가?
- 次第緣相云何?
-
어떤 이는 “보시 행하기를 기피하는 바가 곧 차제연의 모양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그 마음을 비추는 것이 차제연의 모양이다”라고 말했고 어떤 이는 “차례로 심성(心性)이 회전하는 것이 차제연의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차제인 심성이 대개 차제연의 모양이니, 차제연은 당연히 일정한 것이라 말하고, 당연히 일정함 아닌 것이라 말하며, 당연히 항상 정해진 것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당연히 항상 정해진 것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당연히 항상 정해진 것이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 028_0578_b_03L或作是說:行施所避是次第緣相。或作是說:照其心是次第緣相。或作是說:次第心性迴轉是次第緣相。或作是說:次第心性益次第緣相。次第緣當言定、當言非定、當言常定?或作是說:當言常定。
- 【문】아라한이 지금 최후 마음에서 차례로 다시 딴 마음을 내는가?
- 028_0578_b_09L問:如阿羅漢於今後心,次第更生餘心?
- 【답】아라한은 최후 마음과 차제연이 있지 않다. 어떤 이는 “당연히 항상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 028_0578_b_10L答曰:阿羅漢非有後心次第緣。或作是說:當言非常定。
- 【문】곧 차제연이 없는가?
- 028_0578_b_11L問:則無次第緣。
- 【답】마치 인연이 항상 일정함이 있지 않음과 같아서 반드시 인연이 있음도 역시 그와 같다. 존자께서는 “현재의 차제연을 관찰함으로 인하여 그는 마땅히 항상 일정하다고 말할 것이며, 현재 모양에 차제연이 스스로 항상함이 있는 것을 관찰해서는 당연히 이과(已果)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 028_0578_b_12L答曰:猶如因緣無有常定,必有因緣亦復如是。尊作是說:以觀現在次第緣,彼當言常定。觀現在相次第緣自有常,當言已果。
-
그러한 가르침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되는가?
어떤 이는 “날 적부터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물질이 있으나 볼 수도 없고, 상대가 없다”고 말했다. - 028_0578_b_15L云何得知?有無教?或作是說:從所生知。亦作是說:有色不可見無對。
- 【문】이렇게 “이 현재가 아니다”라고 날 적부터 알았다고 하는가? 만일 물질을 볼 수도 없고 상대가 없는 것이라면 물질이 없고 또한 볼 수도 없고 상대가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당신의 몸은 물질이 없고 차별이 있지 않다.
- 028_0578_b_17L問:云何審從所生知?此非現在。若色不可見無對,無色亦不可見無對,是故汝色無色無有差別。
- 어떤 이는 “상주(常住) 밖에서 교계(敎戒)가 있고 없는 것을 보게 되고 저 지을 공양을 성취했다. 나는 그 교계가 있고 없는 것을 관찰하여 저 하는 짓의 모양을 관찰했다”고 말했다.
- 028_0578_b_20L或作是說:常住餘得知見,有無教戒成就,彼所作供養。我觀有無教戒,觀彼所作相。
- 【문】그는 하는 짓이 가르침 없는 것을 관찰함이 아니요, 그는 하는 짓이 슬기로운 가르침인 것을 관찰한 것이다. 만일 가르침이 ‘있다’, ‘없다’고 한다면 온갖 가르침이 있고 없는 것에 그가 모두 하는 짓을 관찰할 것이니, 저 가르침 있는 것이 가장 미묘한 행인가?
- 028_0578_b_22L問:彼非觀所作無教,彼觀所作智教。若作有無教者,諸所有無教,彼一切當觀所作,彼所有教最是妙行。
- 028_0578_c_02L어떤 이는 “일일이 모양을 다 관찰하여 비추고 계율과 계율 아닌 것이 모두 사라져서 계율에는 계율이 사라짐을 보지 않음이 있고, 견해에는 계율과 계율아닌 것 사라짐이 있다”고 말했다.
- 028_0578_c_02L或作是說:事事相觀照,戒律不戒律滅盡,戒有不見戒律滅,見有戒律不戒律滅盡。
- 【문】계율 아닌 것이 사라져 없어진 도리도 또한 계율이 사라져 없어진 것은 아닌 것인가?
- 028_0578_c_04L問:非戒律滅盡,道亦非戒律滅盡?
- 어떤 이는 “타죄(墮罪)로 말미암아 금계(禁戒)를 설명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타락과 타락 아닌 것이 한량없는 죄에 범함이 있는 것을 알아 저가 이 가르침 없는 곳에 범죄자가 있음을 관찰한다”고 말했다.
- 028_0578_c_05L或作是說:由墮罪知說禁戒時。知有墮不墮者犯無量罪,觀彼有此無教諸犯罪者。
- 【문】그가 가르침이 없지 않아 본래 범한 바를 기억한다. 만일 교화가 없다면 나아가서는 가르침과 저 온갖 범죄가 없겠는가?
- 028_0578_c_07L問:彼非無教,憶本所犯。設無教犯相者,乃至無教,彼一切犯罪。
- 어떤 이는 “수승함과 수승하지 못함이 있는 것을 아는 이가 교(敎)를 관찰하지 아니하면 곧 가르침 없음이 있게 되고, 만일 유위(有爲)를 관찰하면 곧 무위(無爲)가 있게 된다. 비록 그의 가르침이 있더라도 나는 그를 가르침이 없는 것으로 관찰한다”고 말했다.
- 028_0578_c_09L或作是說:知有勝不勝者,不觀教則有無教。如觀有爲則有無爲,雖有此教我觀彼無教。
- 【문】그는 수승함이 있음과 수승함이 없음을 다하지 못한다. 만일 전부가 수승함이 없다고 관찰한다면 그로 하여금 수승함이 있게 하겠는가? 설령 있더라도 곧 수승함이 있지 않을 것이요, 만일 전부가 미묘하게 수승함이 있더라도 그는 곧 없을 것이다.
- 028_0578_c_12L問:彼不盡有勝無勝。若觀一切無勝者,欲使彼有勝耶?設有者,則無有勝;若一切妙有勝者,彼則無也。
- 어떤 이는 “천상에 태어난 후에야 능히 알아 익히고 행하며 범하지 아니한 후에야 천상에 태어난다”고 말했다.
- 028_0578_c_14L或作是說:生天上然後能知,習行不犯然後生天上。
- 【문】어떻게 익히고 행하여 범하지 아니하며 자주자주 범하지 아니하며 능히 마음을 알아 범하지 아니하는가? 그리고 그로부터 마음을 수행하여 그런 후에 천상에 태어나는가?
- 028_0578_c_16L問:云何習行不犯?爲數數不犯,能知心不犯,從彼修行心,然後得生天上?
-
어떤 이는 “알지 못한다. 왜냐 하면 그는 슬기로운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에 교의(敎義)가 있나니 그에 머물러 함께 상응해야 하거늘, 하물며 교의가 없는 것이겠는가? 저 경에 의하여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저 슬기로운 법과 같다”고 말했다.
가르침 없는 몸과 몸의 느낌이 어떤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가르침 없음은 몸의 묶임이요, 몸의 느낌은 마음의 묶임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8_c_18L或作是說:不知。何以故?彼非智章。彼有教義住與共相應,況無教者,彼依經生天。如彼智章無教,身身痛有何差別。或作是說:無教身縛身痛心縛。
- 【문】그는 신근(身根)에 묶인 바가 되는가?
- 問:彼爲身根所縛。
- 어떤 이는 “교계(敎戒)가 없는 것은 색음(色陰)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또 몸의 느낌은 곧 의법(意法)이니 느낌 쌓임[痛陰受陰]에 해당한다. 어떤 이는 “둘 다 함께 상대가 없으니 그 증감을 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028_0578_c_22L或作是說:無教戒數色陰所攝。又身痛者是意法,痛陰所攝。或作是說:二俱無對,增減難說。
- 028_0579_a_02L가르침 없는 마음과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은 어떤 종류의 다름이 있는가?
- 028_0579_a_02L無教心、心不相應行有何種別?
- 어떤 이는 “가르침 없음은 곧 물질이요, 심불상응행은 물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가르침 없음은 지혜로 관찰함 아닌 물질이 각각 이루어진 것이요, 심불상응행은 자연법 아닌 것으로 만들어진 바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9_a_03L或作是說:無教是色,心不相應行非色。或作是說:無教者是物,心不相應行非物。或作是說:無教非智觀物各各成,心不相應行不自然法所造。
- 제2 게품을 마친다.
- 028_0579_a_06L第二偈品竟胡本題在此,理應題於偈後也
-
입과 인식에 세 가지 있으며
마치 세 유위(有爲)와 같다.
인연에 네 가지가 있으며
가르침 없음에 3업(業)이 있다. -
028_0579_a_07L口識有三種,
猶如三有爲,
因緣有四種,
無教有三業。
-
1. 취건도 ③ - 028_0579_a_09L尊婆須蜜菩薩所集偈品首聚揵度之三
-
괴로움의 원인은 뜻에서 얻어지고
무지(無智)도 또한 다섯이 있네.
색근(色根)이 모두 갖추어져서
각각 일곱 가지 고(苦)가 있다. -
028_0579_a_10L苦由因意得,
無智亦有五,
色根悉具足,
各各有七苦。
- 마음과 마음 법의 인연이 생각하지 않는 인연[不思惟緣]이 될 수가 있는가? 마음과 마음 법의 인연 제 모양[自相]이 인연을 만드는가?
- 028_0579_a_12L得,心心法因緣,不思惟緣。心心法緣,自相欲使作緣。
- 어떤 이는 “없다. 왜냐 하면 인연은 마음과 마음 법에 소속된 바이기 때문이니 청국(靑國)외국의 견문을 모두 국(國)이라고 말한다으로 하여금 인연을 알게끔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9_a_14L或作是說:無也。何以故?因緣心心法之所攝持,不可使靑國覺緣也外國見聞皆曰國
- 【문】만일 알게 한다면 청국이 인연이 있을 것이요, 만일 그가 청국을 알면 곧 앎이 있을 것이며, 만일 청(靑)에 국(國)의 인연될 만한 것이 있다면 인연과 제 모양에 곧 두 앎이 있을 것이다. 만일 앎과 그 밖의 알음이 청국에 인연하게 된다면 그 밖의 청국을 포섭할 것이요 만일 앎이 청국을 인연하게 된다면 그 또한 감히 청국이 앎을 포섭하여 인연이 되게 하지를 못할 것인가?
- 028_0579_a_16L問:設當覺者,靑國有緣。如彼覺靑國,則有覺。若靑有國作緣因緣,自相則有二覺,若覺、若餘覺。緣靑國攝餘靑國。若覺緣靑國,彼亦不敢靑國攝覺作緣。
- 어떤 이는 “그 말한 바와 같거니와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모른다. 누가 그를 공포스러운 마음이 나게 했는가? 제 모양이 인연을 만든 것이나 인연 또한 스스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 028_0579_a_20L或作是說:得如所說。如恐怖人,不知爲誰所恐,心自相作緣,緣亦不自知。
- 【문】저 제 모양이 인연을 만든 것이 아닌가? 만일 인연을 만든 것이면 스스로 인연이 있음을 알 것이며, 제 모양 성질도 스스로 그러할 것이다.
- 028_0579_a_22L問:彼非自相作緣耶?設作緣者自知有緣,自相性自爾。
- 어떤 이는 “이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 028_0579_a_24L或作是說:得如所說,有是想、有是心。
- 028_0579_b_02L【답】이 누구의 생각이며 이 누구의 마음인가? 만일 그러한 말을 한다면 그가 곧 이 인연이요, 만일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생각이 되고, 이는 마음이 될 것이니, 그와 같은 마음은 합당하지 않고 상응하지 않는다.
- 028_0579_b_02L答曰:是誰想、是誰心?若作是說:彼卽是緣。若不作是說,是爲想、是爲心,如是心不合不相應。
- 어떤 이는 “만일 미래의 마음과 마음의 법이 인연을 만드는 인연이라면, 그것은 곧 인연이니 마땅히 잘 생각해 보라. 그 마음과 마음 법의 제 모양이 인연을 만들더라도 그는 인연이 있는 줄을 모른다. 왜냐 하면 미래의 인연이 인연 있는 것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79_b_04L或作是說:得若未來心心法作緣緣,彼卽是緣。當熟思惟,彼心心法自相作緣,彼不知有緣。何以故?不以未來緣造有緣。
-
【답】그는 제 모양이 인연을 만들지 않는다. 만일 제 모양이 인연을 만든다면 인연에 또한 슬기가 있어서 제 모양과 제 인식을 낼 것이다.
어떤 이는 “머리와 배와 가슴에 통증이 있으면 그 통증은 스스로 인연하는 모양으로 인연을 만드나 인연은 스스로 모른다”고 말했다. - 028_0579_b_07L答曰:彼不自相作緣。若作自相緣者,緣亦有智生自相自識。或作是說:得如頭腹脅有痛,痛自緣相而造緣,緣不自知。
- 【문】그는 통증의 제 모양이고 인연을 만드는 것이 그 인연을 만든 것이 아니다. 통증은 아무런 처소도 없는데 통증의 제 모양이 생겨서 그 실지의 머리와 배에 통증이 있는 것을 나타낸 것인가?
- 028_0579_b_11L問:彼痛自相而造緣不作緣。痛無處所,痛自相生,現其實頭腹有痛。
-
어떤 이는 “얻음이 만일 얻지 못함에 해당한다고 하면 곧 둘이 있는 셈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며 마음과 마음이 각각 인연을 짓고서 마음이 스스로 인연을 짓나니, 그러므로 자연히 그것이 미묘함 아님을 모르나니 그러기에 이미 얻어진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얻음이 만일 얻지 못함에 해당한다고 하면 마음이 마음에 반연함이 끝날 수 없고 곧 인연이 있나니, 그는 미묘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미 얻어진다”고 말했다. - 028_0579_b_12L或作是說:得設當不得者,則有二。知他人心,心心各各作緣已,心自作緣,是故自然不知。此非是妙,是故已得。或作是說:得設當不得者,心緣心無有究竟,則有因緣。此非是妙,是故已得。
- 존자께서는 ‘아픈 모양을 얻는 것과 그 마음의 무슨 차별이 있으랴. 이는 의식(意識)의 경지이고 그 가운데로부터 인식이 얻어진 것이 아니다. 만일 인식으로 느끼는 제 모양을 얻지 못하면 그를 구경(究竟)이라 말했다. 그 중에 딴 의식이 들어감이 있으면 그는 곧 무너짐이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 028_0579_b_18L尊作是說:得痛相心有何差別?此意識境界不從中得得識。若不得識受自相,此謂究竟。於中有餘意識入,則有壞敗。
-
못 미쳐 마음에 공포를 내는데
미래의 생각도 역시 그러하네.
통증과 그리고 타인의 마음이며
마음이 아픈 이것 저것에 반연하네. -
028_0579_b_21L不還心恐怖,
未來想亦爾,
痛及他人心,
心緣痛此彼。
-
마음과 마음 법에 돌아서는 것과 마음과 마음 인연을 마련하는 그 둘은 함께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하여 스스로 모양을 짓는다.
어떤 이는 “청국(靑國)을 아는 것과 같게 되어 일시에 인연을 짓는다”고 말했다. - 028_0579_b_23L還心心法,設心心緣,此二俱前後而自作相。或作是說:得如覺靑國一時作緣。
- 028_0579_c_02L【문】그것은 비유가 되지 않나니, 만일 인연을 짓게 된다고 하면 곧 둘의 스스로 앎이 있게 되는가?
- 028_0579_c_03L問:此非譬喩。設當作緣者,則有二自覺。
-
어떤 이는 “될 수 없나니 만일 인연을 짓는다면 청(靑)이 앎[覺]과 더불어 평등하여 다름이 없을 것이며 앎도 역시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이 옳겠는가? 그러므로 되지 않고 그것이 같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될 수가 없나니, 왜냐 하면 이것이 전환함으로써 모든 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 전환함이 아니고 두 번 전환함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가 된다고 말하나니, 그러므로 될 수가 있다”고 말했다. - 028_0579_c_04L或作是說:不可得也。設作緣者,靑與覺等無有異也,覺亦復無異,是故是等是耶?是故不得此非如。或作是說:不可得。何以故?非以此轉而受諸法。非一轉非再轉故曰爲一,是故可得。
- 무슨 이유로 눈의 인식[眼識]이 눈 감관[眼根]을 알지 못하는가?
- 以何等故眼識不知眼根?
- 어떤 이는 “볼 수 있는 인연은 눈의 인식이고 볼 수 없는 인연은 눈 감관이다”고 말했다.
- 028_0579_c_09L或作是說:可見緣眼識,不可見緣眼根。
- 【문】귀 인식[耳識]은 지금의 귀 감관[耳根]을 아나니, 그것은 볼 수 없는 것을 인연한 것인가?
- 028_0579_c_10L問:耳識今知耳根,彼緣不可見。
- 어떤 이는 “대상[境界]을 껴잡는 것은 눈이고, 가까운 것은 눈 감관이니, 그러므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 028_0579_c_11L或作是說:攝境界是眼,近者是眼根,是故不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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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코 인식[鼻識]은 지금의 코 감관[鼻根]을 아는데 그는 대상에 돌아가는가?
어떤 이는 “4대(大)는 눈이고 네 요소의 대상이 아니니 그러므로 모른다”고 말했다. - 028_0579_c_13L問:鼻識今知鼻根,彼還境界,或作是說:四大是眼,非四大境界,是故不知。
- 【문】몸 인식[身識]은 지금의 몸 감관[身根]을 아는데 그는 네 요소의 대상인가?
- 問:身識今知身根,彼是四大境界。
- 어떤 이는 “눈과 눈의 인식에 의할 것이요, 마음과 마음 법이 스스로 의지함이 아니니, 그러므로 모른다”고 말했다.
- 028_0579_c_15L或作是說:依眼根識非心心法,自依是故不知。
-
【문】의식(意識)은 지금의 의근(意根)을 모르나니, 그는 곧 의지[依]인가?
물음에 알 수가 없나니 온갖 법의 대상이 없다. - 028_0579_c_17L問:意識今不知意根,彼卽是依。問:不可知無有一切諸法境界。
- 어떤 이는 “만일 눈이 없어지면 눈의 인식뿐이다. 눈은 눈을 가리우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그것은 모른다”고 말했다.
- 028_0579_c_18L或作是說:若眼壞敗是眼識,眼不掩眼,是故彼不知。
- 【문】그것 또한 나의 의심되는 일이다. 어찌하여 눈은 눈을 가리우지 못하는가?
- 028_0579_c_20L問:此亦是我疑。何故眼不掩眼?
- 【답】이 중에 물질이 없으면 자연인데 자연이 무너진 것이다. 어떤 이는 “알 수 없다. 설령 알게 된다면 온갖 받아들임[入]이 곧 무너지게 된다. 6식(識)이 무너지지 않을 때를 어떤 이는 ”그것은 이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028_0579_c_21L答曰:此中無物自然自然所壞。或作是說:不可知。設當知者,諸入則有壞敗六識未壞時。或作是說:彼非此境界。
- 【문】그것 또한 나의 의심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 028_0579_c_24L問:此亦是我疑。何以故?彼非境界。
- 028_0580_a_02L어떤 이는 “물질의 제 모양이 모든 눈의 인식을 받아들인 것이요, 물질인 자연이 아니며 눈의 감관이 아니니, 그러므로 그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 028_0580_a_02L或作是說:色自相攝受諸眼識,非色自然非眼根,是故彼不知。
-
볼 수 있음은 가까이 앉은 때문이니
나는 저 네 요소에 의지했다.
눈을 가리면 무너짐 있나니
대상은 모두가 물질의 모습[色相]이라네. -
028_0580_a_03L可見以近坐,
我依彼四大,
掩眼而有壞,
境界是色相。
- 귀의 감관을 볼 수 있는 것도 역시 그와 같고, 코의 감관을 볼 수 있음은 가까이 앉은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혀의 감관과 몸의 감관은 볼 수가 있다. 그것이 네 요소인데 내가 만든 것이다. 마땅히 “그와 같은 5근(根)의 물질인 온갖 것을 네 요소가 만든 것이다”라는 이러한 말을 해야 할 것이다.
- 028_0580_a_05L耳根可見亦復如是。鼻根可見當言非近坐,舌根身根可見,彼是四大我所造,當作是說。如此五根色,一切四大所造。
- 무슨 이유로 약간의 모양[相]에 약간의 모습[貌]이 있는가?
- 以何等故若干相有若干貌?
-
어떤 이는 “모양이나 모습이 없음이 마치 눈의 인식과 같다. 그리고 온갖 물질은 모든 네 요소로 만들어진 것인데 약간의 모양과 약간의 모습이 있다.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또한 다시 그와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처소가 수승함이 있기 때문이며, 그 밖의 처소인 눈의 감관과 더 나아가 몸의 감관[身髮]까지도 그렇다 그러므로 가지가지 감관의 처소가 가지가지 모양으로 나타났으며 그러기에 가지가지 모습이 있다”고 말했다. - 028_0580_a_09L或作是說:無有相貌。猶如眼識,諸所有色一切四大之所造,有若干相有若干貌。無所有故,亦復如是。或作是說:處有勝故。及餘處眼根乃至身髮,是故種種根所。以種種相故,是故種種貌。
-
【문】딴 곳에는 하나의 모습이 있기도 하고 혹은 다시 둘이 있기도 하는데 저 눈의 감관으로 하여금 약간의 모양이 있고 약간의 모습이 있게 하며, 모든 처소는 다 몸 감관[身根]인데 몸 감관으로 하여금 약간의 모양과 약간의 모습이 있게 하는가?
어떤 이는 “네 요소로 만든 물질인 환희하는 감관[歡喜根]과 그 밖의 네 요소가 환희하는 눈 감관과 그 밖의 몸 감관까지가 그 중에 갖가지 모양이 있다”고 말했다. - 028_0580_a_15L問:餘處有一貌、或復有二。欲使彼眼根有若干相有若干貌?一切處盡是身根,欲使身根作若干相若干貌?或作是說:四大所造色歡喜根,及餘四大歡喜眼根,餘乃至身根,於中種種相。
-
【문】그 밖의 네 요소에는 환희하는 하나의 눈, 혹은 그 밖의 두 눈이 있기도 하는데, 눈이 보는 처소로 하여금 갖가지 모양이 있게 하는가?
어떤 이는 “내가 네 요소인 눈과 그 밖의 네 요소인 눈을 만들었으며, 나아가 그 밖의 몸의 감관까지를 그 중에서 갖가지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세한 것은 위에서와 같다. - 028_0580_a_20L問:餘四大歡喜一眼,或有餘二眼。欲使眼所視處有種種相耶?或作是說:我作四大眼根及餘四大眼,餘乃至身根,於中種種相,廣說如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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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80_b_02L【문】그 밖의 네 요소인 하나의 눈에 혹 그 외 둘이 있기도 하는데, 눈의 감관으로 하여금 가지가지 모습이 있게 하는가?
어떤 이는 “지어감[行]의 때[垢]로 만든 감관이며, 인연이 지어감의 때로 눈의 감관을 얻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몸의 감관까지도 그러하여 그 중에는 가지가지 모양과 가지가지 모습이 있다‘고 말했다. 자세한 것은 위에서와 같다. - 028_0580_a_23L問:餘四大一眼或餘有二,欲使眼根有種種貌?或作是說:行垢所造根,因緣行垢得眼根,餘乃至身根,於中種種相種種貌,廣說如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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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그 밖에 지어감의 때로 인하여 한 눈의 감관을 이루고 혹은 다시 두 눈의 감관을 이루는데, 눈의 감관으로 하여금 가지가지 모양을 만들려 하는가?
어떤 이는 “4대(大) 안에 상응행(相應行)으로서 가지가지 모양이 있게 된 것은 그가 가지가지 모습을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0_b_04L答曰:餘因行垢而成一眼根、或復成二根,欲使眼根作種種相耶?或作是說:四大之中相應行,所以有種種相者,以其作種種貌。
- 【문】혹은 하나의 4대이기도 하고 혹은 둘, 혹은 넷이기도 하는가?
- 問:或一四大、或二或四?
- 【답】모든 것에 조금은 4대가 두루 있는데, 적음과 많음이 함께 합해졌다. 어떤 이는 “4대의 경계에는 증감이 있다. 그러므로 미묘한 요소로 만들어진 물질은 역시 미묘하다”고 말했다.
- 028_0580_b_08L答曰:一切少通有四大,少多共合。或作是說,四大境界有增減,是故妙四大所造色亦妙。
- 【문】혹시 땅에 굳은 모양이 있기도 하고 굳은 모양이 없기도 하는가?
- 問:頗或時地有堅相無堅相?
- 【답】모든 굳은 모양에는 다만 굳은 모양뿐이나 다만 굳은 모양에 증감이 있다. 비유컨대 쇠와 납과 백철이 아래로 금의 위에 이르는 것과 같다.
- 028_0580_b_11L答曰:一切堅相但堅相,但堅相有增減。譬如鐵鈆錫下至金首。
- 존자께서는 “처음 여러 물건이 생길 적에 가지가지 모양이 있나니 그 가지가지 모양이 있게 된 까닭은 그 가지가지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0_b_13L尊作是說:始生百物有種種相。所以種種相者,以其有種種貌。
-
색처의 모든 수승한 것은
환희와 나에게서 만들어지며
빠른 행(行)과 상응(相應)한 것은
병듦ㆍ태어남ㆍ늙음이 일어남이네. -
028_0580_b_15L色處諸勝者,
歡喜及我造,
速疾行相應,
自興病生老。
-
눈 감관 모양이 그 따위를 만든 것은 어떤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눈으로 빛깔을 보는데, 이미 보고 장차 볼 그것을 눈으로 보는 것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 028_0580_b_17L眼根相作此等者,有何差別?或作是說:以眼見色,見已見當見,是謂眼見。
- 【문】그것 역시 나의 의심이니, 어찌 눈으로써 빛깔을 보는데 이미 보고 장차 보되 마침내 법안(法眼)을 일으키지 않는가? 빛깔을 보지 않으며 이미 보지 않고 장차 보지 않으면 그것을 눈이라고 하겠는가?
- 028_0580_b_19L問:此亦是我疑。云何以眼見色,見已見當見,終不起法眼,不見色不已見不當見,欲使彼是眼耶?
- 【답】내가 이미 그에 대한 것을 설명했으니, 만일 그와 같은 현상이라면 역시 자연이다.
- 028_0580_b_22L答曰:我已說是,設如此像亦是自然。
- 【문】어찌하여 보지 않는 것이 자연을 보는 것이라 하는가?
- 028_0580_b_23L問:云何不見是見自然耶?
- 【답】눈은 그 모습[貌]이니 어떤 이는 “검은 동자는 눈이 비추는 것이며, 작용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 028_0580_b_24L答曰:眼是其貌。或作是說:黑瞳子是眼所照者作者。
- 028_0580_c_02L【문】어떻게 검은 동자가 곧 눈이라고 아는가?
- 028_0580_c_02L問:云何得知黑瞳子是眼?
- 【답】검은 동자가 그 근본이다.
- 028_0580_c_03L答曰:黑瞳子是本。
- 【문】검은 동자는 그 근본이 아닌가?
- 問:黑瞳子非其本。
-
【답】그 외의 사실에는 해당되는 바가 없으므로 그것을 눈이라고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은 그렇지 않고, 저것 또한 다르나니, 그러므로 저 사실에는 해당되는 바가 없다.
저것을 눈이 아니라고 하는가?
어떤 이는 “네 요소로 만들어진 물질인 눈 감관은 환희이니, 그로 인하여 눈의 인식 대상이 있다. 그것을 지도와 교계(敎戒)라고 이르나니, 그것을 저것이 만들었다 말한다”고 했다. - 028_0580_c_04L答曰:及餘事無所攝。欲使彼是眼,是故此事不然,彼亦當異。是故彼事無所攝,欲使彼非眼耶?或作是說:四大所造色眼根歡喜,因有眼識境界,是謂指授教戒,是謂彼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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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모든 5근(根)으로 만든 물질이 환희이니, 그러므로 저것은 눈 감관의 제 모양이 아닌 것인가?
어떤 이는 “눈의 인식에 의하여 눈 감관이 있고 눈 감관이 눈의 인식에 의하나니, 그를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 028_0580_c_09L問:一切五根所造色歡喜,是故彼非眼根自相。或作是說:依眼識,根有。眼根依眼識,是謂其事。
-
【문】모든 일어나지 않는 법은 이 눈의 인식과 다르고 평등하지 않게 저 눈의 인식에 의하나니 저것을 눈이 아니라고 하는가?
어떤 이는 “네 요소에는 눈 감관과 눈의 인식이 서로 의지하나니, 그를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 028_0580_c_11L問:諸不起法,是眼識異,不等依彼眼識。欲使彼非眼耶?或作是說:四大是眼根、眼識相依,是謂其事。
-
【문】네 요소의 모양이 스스로 무너지매 그를 네 요소의 모양이 스스로 무너짐이라고 이르며, 눈 감관 모양이 무너지지 않고 하나의 모양이 눈의 인식에 의하여 온갖 일을 만든다. 묻노니, 만일 네 요소의 제 모양이 한 모양인 눈 감관을 무너뜨리더라도 그와 같은 아상(我相)과 눈 감관은 무너지지 않고 한 모양인 눈의 인식이 서로 의지하여 이루는가?
어떤 이는 “빛깔ㆍ냄새ㆍ맛ㆍ섬세하고 매끄러움[細滑:觸] 그것에 관련되어 눈 감관과 눈 인식이 증가하게 되면서 온갖 사실을 만든다”고 말했다. - 028_0580_c_14L問:四大相自壞,是謂四大相自壞,眼根相不壞一相,依眼識造衆事。問:如四大自相壞,一相眼根。如是我相眼根不壞,一相眼識相依而成。或作是說:色香味細滑所纏,眼根眼識增益作衆事。
-
【문】지금에 5식신(識身)이 각각 눈 감관을 아는가?
어떤 이는 “이는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 028_0580_c_19L問:今五識身各知眼根。或作是說:此非境界。
-
【문】이것 역시 나의 의심이니, 왜 그러한가?
어떤 이는 “저것은 대상이 아니니 눈 감관은 제 모양이 없고 그 수효도 없다. 그런 후에 눈 감관을 이룬다”고 말했다. - 028_0580_c_20L問:此亦是我疑。何以故?或作是說:彼非境界。眼根無自相無有數,然後成眼根。
- 【문】만일 눈 감관이 제 모양이 없다면 눈은 감각이 없겠다.
- 問:若眼根無自相者,眼無有覺。
-
028_0581_a_02L【답】눈으로 헤아릴 줄 아는 물질 이것을 느껴 아는 것이라고 하나니, 눈이 몸을 헤아리는 물질인 것과 같아서 만족함이라고 말했다. 몸의 만족함이란, 네 요소인 몸에 하나의 제 모양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만들어진 물질은 자연인데, 눈의 인식이 증가함에 따라 증감이 있는 것을 나타내나니, 이를 그 사실이라고 이른다. 저것을 계산할 적에 차츰차츰 그 성질이 자연임을 알게 된다. 그 중에 모든 받아들임[入]도 역시 그러하다”고 말했다. - 028_0580_c_23L答曰:知眼數之物是謂覺知。眼如身數之物,謂之厭足。身厭足者,非四大身,有一自相。或作是說:所造色自然,眼識增上現有增減,是謂其事。算數彼時漸漸知性自然爾,於中諸入亦復當爾。
-
눈의 검은 동자를 관찰함과
환희와 각각 서로 의지함이다.
네 요소가 모두 모였는데
만듦도 없고 의심할 것도 없네. -
028_0581_a_06L觀眼黑瞳子,
歡喜各相依,
四大皆集聚,
無造無狐疑。
- 5근(根)도 역시 그와 같고 의근(意根)도 역시 그와 같고 의근의 제 모양이 의지함에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 028_0581_a_08L五根亦復如是。意根自相依有何差別?
-
어떤 이는 “뜻[意]으로 모든 법을 아는데 이미 알고 장차 알 것을 안다. 눈 감관도 역시 그와 같고 의식(意識)이 만들어 증가하는 그것을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의식이 서로 의지하는 모양은 의근이 의식에 의지함이니 이를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혹 나오기도 하고 혹 들어가기도 하여 다섯 식신(識身)과 의근(意根)이 식(識)에 의지하나니, 이를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 028_0581_a_10L或作是說:意知諸法,知已知當知。眼根亦復如是,意識造增上,是謂其事。或作是說:意識相依相,意根依意識,是謂其事。或作是說:或出或沒,五識身意根依識,是謂其事。
- 【문】무색계(無色界)에는 의식이 생기지 않나니 거기에는 다섯 식신이 없는가?
- 028_0581_a_14L問:無色界不生意識,於彼無五識身?
- 【답】어떤 이는 “여섯 식신과 의식신(意識身)이 증가하나니, 그 증가함으로부터 생기는 식(識)이기에 이를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 028_0581_a_15L或作是說:六識身意識身增上,從增上諸所生識,是謂其事。
-
【문】이름과 물질이 이리저리 서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다시 저 식의 제 모양과 의근(意根)이 증가하는 작용을 하나니, 이를 그 사실이라고 말했다. 저것을 계산해 볼 적에 나아가 마지막인 저 성질은 자연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 중의 의식만은 무너짐이 있다. 어떤 것이 뜻[意]이 되고, 어떤 것이 의식이 되는가? 앞에서 네 가지 사실을 말했듯이 6식신(識身)과 상응하는 것은 뜻이고 증가하는 식(識)에서 생긴 슬기와 마음이 그를 반연하는 것은 의식(意識)이다. - 028_0581_a_17L問:名色展轉不相依。復次,彼識自相意根作增上,是謂其事。算數彼時,乃至究竟彼性自然,於中意識則有壞。云何爲意?云何爲意識?前說四事。六識身相應意,增上識所生智,心緣彼是意識也。
- 제3 게품을 마친다.
- 028_0581_a_22L第三偈品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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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건도 ④ - 028_0581_a_23L尊婆須蜜菩薩所集偈品首聚揵度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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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81_b_02L
현재의 통증을 자신이 대신하지 못하나 과거와 미래의 통증은 또한 즐겁지 않고 또한 괴롭지 않다. 어떻게 내가 괴롭고 내가 즐거움을 알게 되는가? 거룩한 마하승기는 “저 통증은 자연히 자신이 대신하고 자연히 안다”고 말했다. - 028_0581_a_24L如現在痛自身不更,過去未來痛亦不樂亦不苦。云何得知我苦我樂?尊摩訶僧耆作是說:彼痛自然自身更、自然識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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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것은 비유가 되지 않나니, 어떤 물건이 자연으로 회전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어떤 끊어지는 물건이 능히 제가 저절로 끊어지지 않으며, 창이 스스로 찌르지 못하며, 손가락과 머리가 스스로 부딪치지 못함과 같이 이도 역시 그와 같은가?
담마굴(曇摩崛)존자는 “마음과 상응하는 지혜로 알 수가 있다”고 말하였다. - 028_0581_b_05L問:此非。譬喩不見有物自然所迴轉。如有斷絕之物,能不自相斷。戟不自割、指頭自不相觸,此亦如是。尊曇摩崛作是說:心相應智慧而得知。
-
【문】만일 그렇다면 자연으로 자연을 아는 한 인연인 상응법(相應法)이겠는가?
미사색(彌沙塞)존자는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지혜로 안다”고 말하였다. - 028_0581_b_09L問:設當爾者,自然知自然,一緣相應法。尊彌沙塞作是說:以心不相應智知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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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일 그렇다면 곧 두 가지 지혜가 있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들[一部僧名]은 “사람이 물어볼 줄 알고 또한 지혜를 쓸 줄 안다. 설령 지혜를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가 그 다음에야 아는 수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제일의(第一義)에는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아는 것이 있지 않다. 중생을 안다고 말한 것은 역시 사만(邪慢)으로서 괴로움이 있다, 즐거움이 있다 말한다”고 했다. - 028_0581_b_11L問:若當爾者,則有二智。言有人者一部僧名作是說:人知問人,亦用智知。設不用智知者,初不知盡當有所知。或作是說:第一義無有知若苦若樂。言知衆生者,亦是邪慢,言有苦有樂。
-
【문】아라한으로서 혹은 알지 못하는 그것도 사만이 있는 것인가?
어떤 이는 “느낌은 뜻이 전환하는 중간이 되나니, 그 중간에 내가 스스로 인식을 내어 그 대상 중에서 알게 된다”고 말했다. - 028_0581_b_16L問:阿羅漢如今不知者,彼有邪慢耶?或作是說:痛爲意轉中閒,中閒我自生識,彼境界於中得知。
-
【문】만일 의식(意識)의 성질이라면 그것은 뜻의 대상이 아니며, 의식 그것과 의식으로 인식하는 대상 그것은 느낌 성질이 아닐 것이니, 어떻게 알게 되는가?
어떤 이는 “즐거움을 보거나 괴로움을 본 연후에야 알게 된다”고 말했다. - 028_0581_b_18L問:如意識性,彼非意境界。意識者及意識、識境界,彼非痛性,云何得知?或作是說:見樂見苦,然後得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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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리석은 사람도 지금에 또한 아는데, 다시 그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지 않는가?
어떤 이는 “몸의 괴로움과 즐거움에 의한 연후에야 알게 된다”고 말했다. - 028_0581_b_21L問:愚人今亦知。復不有是是苦是樂。或作是說:依身苦樂然後得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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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81_c_02L【문】만일 저 느낌에 의한 것이 이미 사라지면 어떻게 이는 낙에 의한 느낌이고 이는 괴로움에 의한 느낌이라 말하는 것을 알게 되는가? 마치 저 통증을 몸이 스스로 대신하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어떻게 뜻[意]을 껴잡는가?
어떤 이는 “마음이 이미 생길 적에는 현재의 느낌만 반연한다”고 말했다. - 028_0581_b_23L問:如彼依痛已滅,云何得知?是謂依樂痛、是謂依苦痛,猶如彼痛身不自更,云何攝意?或作是說:心已生時緣現在痛。
-
【문】마음이 생기려고 할 적에 미래는 그것이 반연하지 아니한 미래이니, 그러므로 곧 그 대상인가?
어떤 이는 “현재의 마음이 차례로 사라져서 그 느낌에 반연한다”고 말했다. - 028_0581_c_03L問:心欲生時,未來彼非緣未來,是故彼是境界。或作是說:現在心次第以沒緣彼痛。
-
【문】차제연(次第緣)이 사라지고 또한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또한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알게 되겠는가?
어떤 이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의지하고 다시 그 밖의 괴로움이 있거나 즐거움이 있지 않다. 그는 뜻을 내는 중간 대상에서 의식의 대상을 내는데, 그가 인식 자리인 제 성품[自性]에 편승하여 인식 모양을 만들어 괴로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거든, 하물며 다시 중생들이 느낌에 따라 뜻이 어지러워짐이겠는가?”라고 말했다. - 028_0581_c_05L問:次第痛沒,亦不知苦亦不知樂。云何得知?或作是說:苦樂相憑,無復有餘有苦有樂。彼生意中閒,境界生意識境界,彼乘識處自性作識相,有苦有樂,況復衆生隨痛志亂。
-
자연인 지혜를 가진 그 사람을
가장 제일의(第一義)라고 말하리.
뜻으로 만든 느낌 그 자체가
고락행(苦樂行)을 벌써 내나니. -
028_0581_c_10L自然智慧者,
人最第一義, 志所造痛身,
已生苦樂行。
-
마치 이 마음과 마음 법이 안에 의지하고 밖으로는 모든 받아들임[入]을 내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으로 안에 의지하여 생기고 밖에 의지하지 않는가?
어떤 이는 “안에 의지하여 생긴다”고 말했다. - 028_0581_c_12L猶如此心,心法內依、外生諸入,以何等故依內生不依外?或作是說:依內生。
- 【문】평등하게 걸림 없는 그 중에 그에 의하여 안에서 생기고 밖에는 의지하지 않는다. 그 내용은 어떠한가?
- 028_0581_c_15L問:等無㝵中依彼生內,然不依外。此義云何?
- 【답】마치 평등하게 걸림이 없는데, 이를 안이라 말하고, 이를 바깥이라 말한 것과 같다.
- 028_0581_c_16L答曰:猶如等無㝵,是謂內、是謂外。
-
【문】어찌 이것이 뒤바뀐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평등하게 걸림이 없는데 이를 안이라 말하고 이를 바깥이라 말한다면, 그와 같은 평등하게 걸림이 없는 것은 이미 안에서 생기는 것이고 바깥은 아닌 것인가?
어떤 이는 “안에는 미묘한 사실이 있고 밖에는 없다. 이것 역시 나의 의심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안의 제 성품이 성취된 것이요, 바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028_0581_c_17L問:云何此非顚倒耶?如等無㝵是謂內、是謂外,如是等無㝵已生內非外。或作是說:內有妙事,外無也。此亦是我疑。或作是說:內自性成就,然非外。
-
【문】바깥 성품도 역시 스스로 성취하나니 자신의 빛깔ㆍ냄새ㆍ맛과 같은가?
어떤 이는 “안이 친근하고 바깥은 친근하지 않다”고 말했다. - 028_0581_c_21L問:外性亦自成就,如自身色香味。或作是說:內親近,非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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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82_a_02L【문】처소가 없으면 가까움과 먼 것이 없고 이미 돌아간 대상도 둘 다 함께 서로 가깝고 둘 다 함께 서로 의지하여 생기는가?
어떤 이는 “안에서 생기고 바깥에서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1_c_22L問:無處所則無近遠,已還境界二俱相近、二俱相依生。或作是說:內生,然非外。問:外亦復生,如自身中色香味。或作是說:內造苦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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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바깥도 역시 생기는 것이 제 몸 안에 빛깔ㆍ냄새ㆍ맛과 같은가?
어떤 이는 “안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만든다”고 말했다. - 028_0582_a_03L問:外亦造苦樂,如自身中色香味細滑。或作是說:內有上中下,上中下者從心心法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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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바깥도 역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만드는 것이 제 몸 안에 빛깔ㆍ냄새ㆍ맛ㆍ닿임과 같은가?
어떤 이는 “안에는 상ㆍ중ㆍ하가 있나니, 상ㆍ중ㆍ하란 마음과 마음 법으로부터 생긴다”고 말했다. - 028_0582_a_05L問:外亦有上中下,上中下者從心心法生。復有異蠅聲興起耳識,復有異大力鼓聲。或作是說:內不牢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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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바깥에도 또한 상ㆍ중ㆍ하가 있나니, 상ㆍ중ㆍ하란 마음과 마음 법으로부터 생긴다. 다시 파리 소리가 일으키는 귀의 인식[耳識]과 다시 힘껏 치는 북소리와 다른 것이 있는가?
어떤 이는 “안이 견고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 028_0582_a_08L問:次第因緣亦不牢固,欲使彼相依生?或作是說:內是增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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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제인연(次第因緣)도 또한 견고하지 못한데 그로 하여금 서로 의지하여 생기게 하는가?
어떤 이는 “안이 곧 증가한다”고 말했다.
【문】바깥도 역시 증가함이니, 평등하게 걸림이 없는 중에는 안이 증가하고 바깥이 증가함이 아니다. 이 내용은 어떠한가? 온갖 모든 유위법(有爲法)이 각각 증가함이 있는가?
어떤 이는 “안이기 때문에 괴로움을 조작하고 바깥이 아니니 눈썹을 그리고 눈을 점안하여 빛깔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햇다. - 028_0582_a_10L問:外亦是增上。等無㝵中內增上非是外增上,此義云何?一切諸有爲法各各有增上。或作是說:以內故造苦,然非外,如畫眉點眼而見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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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말한 바대로 갑절이나 그리어 확대하여 보도록 하고 높은 소리로 나에게 말하되, “잘 들어라”고 하라.
어떤 이는 “안에 의지한 모든 받아들임이니 이 스님의 뜻은 ‘짓는 바가 마음과 더불어 함께 있고 식(識)은 네 요소에 의지하여 저것이 각각 수승한 모든 감관으로 충족함이 있다’고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2_a_13L問:如所說倍畫使大而視之,高聲語我當諦聽。或作是說:依內諸入。此師意,所造與心俱有識依四大,彼各各有勝諸根充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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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성품의 의지가 미묘함이며
멀고 가까움, 취함과 버림이요,
아래에는 견고한 증가함이 없고
스님 뜻에는 식이 뒤에 있다. -
028_0582_a_17L自性依微妙,
遠近及取捨,
下無牢增上,
師意識在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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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마음과 마음 법이 안의 의지[依]와 바깥 연(緣)으로 인연에 들어 생기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으로 안에는 무너짐이 있고 밖에는 그러하지 않는가?
어떤 이는 “이는 현재의 사실이니 마치 저 해 그림자를 보매 눈이 곧 무너짐이 있어도 해에는 아무런 허물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 028_0582_a_19L猶如此心心法,內依外緣入因緣生。以何等故,內有壞敗,然非外?或作是說:此現在事,猶如觀彼日影,眼則有敗,然日無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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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것 역시 나의 의심이니, 무슨 이유로 눈이 무너짐이 있어도 해의 허물이 아니라고 하는가?
어떤 이는 “안의 모든 감관이 속박된 것이요, 바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028_0582_a_23L問:此亦是我疑。以何等故,眼有敗壞,非日之咎?或作是說:內諸根縛,然非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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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82_b_02L【문】바깥도 역시 모든 감관이 속박되는 것이 자기 몸 안에 빛깔ㆍ냄새ㆍ맛과 같은가?
어떤 이는 “안에 나라고 여기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 028_0582_b_02L問:外亦諸根縛,如自身中色香味。或作是說:內有吾我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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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바깥에도 역시 나라고 여기는 생각이 있다. 아라한은 나라고 여기는 생각이 없는데, 그로 하여금 무너지지 않게 하려 하는가?
어떤 이는 “안에 의하여 모든 받아들임[入]이 생기고 바깥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는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가? 어떤 이는 “안에 친근함이 있게 되고 바깥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 028_0582_b_04L問:外亦有吾我想。阿羅漢無有吾我想,欲使彼不壞敗耶?或作是說:依內生諸入,然非外也,如上所說。或作是說:內得親近,然非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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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여기에 받아들임의 처소가 없어서 받아들이는 곳이 있지 않는데, 어찌 가까움과 먼 것이 있는가? 이미 돌아간 대상은 둘 다 함께 친근하는데 그 둘에 의하여 생기게끔 하려는가?
어떤 이는 “안에서 이미 생기고 바깥은 그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028_0582_b_07L問:此無入處,不有入處,安有近遠?已還境界二俱親近,欲使依二生耶?或作是說:內已生,然非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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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바깥도 또한 다시 생기는 것이 자기 몸에 빛깔ㆍ냄새ㆍ맛과 같은가?
어떤 이는 “제 성품이 머무는 것이요, 바깥은 그러하지 않다”고 말했다. - 028_0582_b_10L問:外亦復生,如自身中色香味。或作是說:自性住者,然非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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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바깥도 역시 제 성품의 머무는 것이 자기 몸에 빛깔ㆍ냄새ㆍ맛과 같은가?
존자께서는 “만일 스스로 의지한 물건이 마음과 마음 법을 전환시켜 거기에 있어서 머무른다면, 바깥과 안의 모든 받아들임인 저 모든 법이 이리저리 모든 감관의 무너짐을 내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028_0582_b_11L問:外亦自性住,如自身中色香味。尊作是說:若自依物轉心心法,居彼住者外內諸入,彼諸法展轉生諸根壞敗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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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모든 감관이 속박되고
조작에 의해 나라고 여김이 있다.
친근과 온갖 조작되는 바와
제 성품이 나로부터 있었네. -
028_0582_b_15L現在縛諸根,
依造有吾我,
親近諸所造,
自性是我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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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舍利弗)존자는 “저 여러분의 좋은 눈이 안으로 받아들여도 무너짐이 없다. 그 빛깔이나 광명을 보더라도 자세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또한 눈의 인식이 없나니, 깊이 생각하는 이여, 어느 것이 옳은가?”라고 말하였다.
어떤 이는 “차제연(次第緣)이 그 생각함이다”라고 말하였다. - 028_0582_b_17L如尊者舍利弗說:彼諸賢眼內入無有壞敗。見其色光不諦思惟,亦無眼識深思惟者。何者是?或作是說:次第緣是其思惟。
- 【문】치우쳐 차제연이 없기도 하는가?
- 問:頗次第緣無耶?
- 【답】있지 않을 때가 없다. 일체 식신(識身)이 현재에 있나니 만일 현재에 있으면 저것이 곧 생긴다. 어떤 이는 “자연인(自然因) 저것은 곧 생각함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2_b_21L答曰:無有不有時,一切識身有現在也。設有,現在彼則生。或作是說:自然因彼是思惟。
- 【문】치우치게 자연인이 없을 때도 있는가?
- 問曰:頗有時無自然因耶?
- 【답】없지 않을 때가 없고 항상 평등함이 있지 않다.
- 028_0582_b_24L答曰:無不無時,不常有等。
- 【문】치우치게 평등하지 않음이 있는가?
- 問曰:頗有不等耶?
- 028_0582_c_02L【답】평등함이 있지 않을 때가 없다. 이는 “대의(大義)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028_0582_c_02L答曰:非不有等。或作是說:大義思惟。
- 【문】만일 대의가 없으면 어찌 식(識)이 나지 않겠는가?
- 028_0582_c_03L問:設無大義者,云何不生識耶?
- 【답】나지 않는다.
- 028_0582_c_04L答曰:不生。
- 【문】만일 채찍이나 막대로 구타하여도 그가 식을 일으키지 않는가?
- 問:若鞭杖捶打,彼不起識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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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대상의 힘 때문에 저 식이 곧 일어난다. 혹 일어나지 않을 적이 있나니, 무상삼매(無想三昧)나 멸진삼매(滅盡三昧)나 그 밖의 선정에 든 따위는 이 역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이는 “마음을 일으킨 자를 앞서 이미 말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마음에 기억한 바를 식(識)이 곧 그를 생각한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나의 의심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말과 생각이 그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2_c_05L答曰:以境界力,彼識則起,或有不起,如入無想三昧、滅盡三昧,及餘定心者。此亦如上所說。或作是說:發起心者。先已說竟。或作是說:心所憶識則其思惟。此亦是我疑。或作是說:語思惟是其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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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뜻과 생각함이 차별이 없는가?
어떤 이는 “마음과 마음 법이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 생각함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2_c_11L問:志思惟無有差別?或作是說:心心法與心相應,是其思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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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모든 상응하는 법이 그 생각함이어서 모든 식(識)을 내나 식은 생각함이 아니니, 이 내용은 어떠한가?
어떤 이는 “생각함에서 중생의 인연이 생기고 식의 성질이 모든 속박을 일으킨다 함이 그것을 이르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2_c_12L問:諸相應法是其思惟,生諸識,然識非思惟。此義云何?或作是說:思惟衆生緣,生識性起諸縛,此之謂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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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제에서 저 인연이 있게 되고
대의(大義)로 인해 비춰 밝힌다.
희망이 중생을 만들기도 했으며
상응함과 모든 슬기를 만들었네. -
028_0582_c_15L次第有彼緣,
因大義照明,
悕望作衆生,
相應及諸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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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내어 사유(思惟)함 있는 것이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차제연으로 저 사유가 생기는 것이 내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 028_0582_c_17L生彼,有思惟,有何差別?或作是說:次第緣是彼思惟,生者爲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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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그는 사유를 내지 않는다. 만일 낸다면 차별이 있지 않을 것이요, 만일 내지 않는다면 말한 바가 그 사유가 아니다. 저 눈의 인식이 생기게 됨이 아니니, 이는 곧 상위(相違)이다. 5사(事)도 또한 다시 그와 같은가?
어떤 이는 “저 사유에서 마음 법과 심상응행(心相應行)이 생기는데, 저 사유가 생기는 것은 심상응행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존자께서는 “저 마음을 내어 마음이 일어나는 법이 저 사유다”라고 말했다. - 028_0582_c_19L問:彼不生思惟?設當生者,無有差別;若不生者,所說非是,思惟非彼眼識得生,此則相違。五事亦復如是。或作是說:彼思惟心法心相應行生。彼思惟生,非心相應行。尊作是說:彼生心心轉法,彼思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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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83_a_02L다시 다음으로 생기는 것이란 자연으로 만들어진 법이니, 마치 불꽃과 광명이 앞뒤가 서로 인해 생기는 것과 같다. 어떻게 불꽃이 광명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는가?
어떤 이는 “불꽃이 있으면 곧 광명이 있게 되고, 광명이 없으면 불꽃이 없나니, 그 중에서 불꽃이 광명으로 인해 있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 028_0583_a_02L復次生者自然造法,譬如炎光前後相因生。云何得知炎因光?或作是說:有炎便有光,無光則無炎,於中得知炎因有光。
- 【문】만일 둘이 함께 일어난다면 어떻게 불꽃에서 광명이 있고 광명이 없으면 불꽃이 없음을 알게 되는가?
- 028_0583_a_05L問:若二俱起者:云何得知炎因有光、無光則無炎?
- 【답】불꽃에서 생긴 모습은 타는 것이고, 광명이 아니다.
- 028_0583_a_06L答曰:炎所生貌,然非光。
- 【문】어떻게 불꽃이 광명을 내고 타는 것은 광명이 아님을 알게 됩니까?
- 028_0583_a_07L問:云何得知炎生光,然非光?
- 【답】불꽃이 얽힌 바가 되었기 때문이다.
- 答曰:炎所纏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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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불꽃에 얽힌 바는 무엇인가?
어떤 이는 “만일 불꽃이 있을 적에는 광명이 때를 따라 상응하나니, 이것 역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라고 말했고, 어떤 이는 “불꽃이 없어지면 광명도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불꽃이 광명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 028_0583_a_08L問:炎所纏縛?或作是語:若有炎時光隨時應。此亦如上所說。或作是說:炎壞則光壞,是故得知炎因光。
- 【문】둘 다 함께 없어진다고 할 때, 불꽃이 없어지면 광명은 없어지거나 광명은 없어져도 불꽃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 028_0583_a_11L問:二俱壞者,云何得知,炎壞則光壞,光壞炎不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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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불꽃이 치성하면 광명이 있다는 것 역시 나의 의심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합해 모여 있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나의 의심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불꽃이 크면 광명도 크고 불꽃이 짧으면 광명도 짧다”고 말했는데 이것 역시 앞에서 이미 말했다.
어떤 이는 “불꽃이 깨끗하지 못할 적에는 광명도 곧 깨끗하지 못하고 불꽃이 깨끗하면 광명이 또한 깨끗하다고 하는 그것 역시 나의 의심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광명을 보는 것은 불꽃이 그 근본이 되나니, 그로 말미암아 불꽃이 광명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 028_0583_a_12L或作是說:炎熾盛則有光。此亦是我疑。或作是說:合會而有。此亦是我疑。或作是說:炎大光大、炎短光短炎。此亦前已說。或作是說:炎不淨時光則不淨,淨則光淨。此亦是我疑。或作是說:以見光,炎是其本,由是得知炎因光。
- 【문】광명 때문에 기름 심지를 찾게 된다면 기름 심지가 광명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는가?
- 028_0583_a_18L問:是光義故,求索油炷。欲使油炷因光耶?
- 【답】광명 때문에 기름 심지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광명 때문에 불꽃을 찾게 되는 것이요, 불꽃 때문에 기름 심지를 찾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불꽃 때문에 그 광명이 있는것이 아니고 상응하여 광명이 있는 것이니, 불꽃과 광명이 가장 미묘한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3_a_19L答曰:不以光故求索油炷,但以光故求索炎也。以炎故求索油炷?或作是說:非,炎故有其光也。相應有光,炎與光最是妙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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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일 둘이 함께 생기면 미묘하다 말하니, 미묘하지 않다 말하는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어떤 이는 “본래 불꽃이 일어나서 광명이 생긴 것이니, 그로 말미암아 불꽃이 광명으로 인한 것임을 안다”고 말했다. - 028_0583_a_23L問:設二俱生,是謂妙、是謂非妙。此義云何?或作是說:本興炎生光,由是知之,炎因光也。
- 028_0583_b_02L【문】그것은 비유가 되지 않나니 불꽃에 광명이 없는 것을 보지 못했다.
- 028_0583_b_02L問:此非譬喩,不見炎無光者。
- 【답】그것 역시 비유가 되지 않나니, 저 불꽃이라고 느끼어 번갈아 서로 반연할 때에는 광명이 없다. 그 광명은 그 불꽃이 회전한 것이 아닌 것처럼, 희망하는 감각이 또한 서로 생기지 않을 때에는 곧 교만한 뜻이 있다.
- 028_0583_b_03L答曰:此亦非譬喩,如覺彼炎,更相緣時,時無有光。如其光非其炎,迴轉悕望,覺亦不相生,則有慢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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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기 무너지는 모양이며
희망과 상응하는 행(行)이다.
청정한 이치를 통달한 그것과
합해 모임은 앞에서 말함과 같다. -
028_0583_b_05L各各壞敗相,
悕望相應行,
達淸淨義者,
合會如前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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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6식신(識身)이 반드시 과거의 자연인(自然因)에 의지함과 같다. 뜻이 어긋나지 않고 달리 반연하지 않으매 또한 그릇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한사람이 전도 아니고 후도 아니지만 6식신은 둘이 함께 일어난다.
어떤 이는 “하나의 차제연(次第緣)에 하나의 식(識)이 머무른다”고 말했다. - 028_0583_b_07L猶如六識身,必依過去自然因,志不錯異、緣亦不誤。以何等故,一人非前非後,六識身二俱起?或作是說:一次第緣一識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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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나의 식과 상응함에 낱낱이 식이 서로 의지함인가?
어떤 이는 “하나는 저 생각함이니, 하나의 식이 곧 상응하여 머무른다”고 말했다. - 028_0583_b_11L問:一者識相應一一識相依。或作是說:一者彼思惟一識則相應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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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일 하나의 식이 상응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의 식인가?
어떤 이는 “하나의 감관이 하나의 식에 의해 상응하여 머무른다는 것은 하나의 식이 상응하매 낱낱 식이 머무름이다”라고 말했다.
일체 중생들이 반드시 받을 과보를 제가 지어서 받게 되는 것처럼, 거기에는 미래와 현재에 지은 바가 있다. - 028_0583_b_13L問:設一識相應,此是一識。或作是說:一相依一識相應住者,一識相應一一識住。如一切衆生,必有所趣受報,自作當受。彼有未來現在所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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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까닭으로 한 사람이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아 다섯 갈래[五有]는 전환되지 않는가?
어떤 이는 “한 갈래[趣]의 결사(結使)가 치성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한 갈래에서 온갖 과보를 받는다”고 말했다.
존자께서는 “식(識)과 함께 상응한 연후에 낱낱 식을 일으키나니, 일으켜서 지은 과보 행위가 모두 식 종자에 응한다. 이러하므로 그것을 아나니, 만일 중생이 없으면 일찍이 있지 않은데 생겨 있는 것이 곧 열반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 028_0583_b_17L以何等故,一人不前不後,五有不轉?或作是說:一趣結使熾盛。或作是說:一趣受諸報。尊作是說:識共相應,然後轉一一識,諸轉所造報行皆應識種。以是知之,如無有衆生未曾有而生、有便般泥洹。
- 무슨 까닭으로 중생이 줄어짐이 없는가?
- 028_0583_b_22L以何等故衆生無有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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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83_c_02L어떤 이는 “그대가 그 수효를 계산하겠는가? 그러한 중생에 대해서 줄어듦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일 계산할 수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그 줄어듦을 알지 못하는가?”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중생이 무궁하다. 그러므로 그 줄어듦을 알지 못한다. 비유컨대 큰 바닷물이 한량없으므로 천 개의 병을 가지고 가서 퍼내더라도 또한 줄어듦이 없는 것처럼, 그도 역시 그와 같다”고 말했다. - 028_0583_b_23L或作是說:汝莫計爾所數耶,有爾所衆生不知減。若不能計者,何以故不知減?或作是說:衆生無有窮,是故不知減。譬如大海水無限量,千甁往取亦無減;此亦如是。
- 【문】큰 바다에는 강물과 그 밖의 샘물이 모두 거기에 가 모이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본래 없는데 지금은 있는가?
- 028_0583_c_06L問:大海江河及餘泉源皆往趣,欲使衆生本無今有耶?
- 【답】딴 세계의 중생들이 이쪽에 온 것이다. 존자께서는 “저 세계에 중생은 줄어듦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 028_0583_c_07L答曰:於異方剎土衆生來到此閒。尊作是說:於彼剎衆生無有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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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용이 어떠한가?
중생이 딴 세계에 노닐면서 성현의 도를 가지고 세계를 벗어나서 세계에 도달한 것이다. - 028_0583_c_09L此義云何?有衆生遊異方界,執賢聖道出界到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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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뜻이나 성품은 어떠하며 어떠한 희망이 있는가?
마땅히 이렇게 관찰을 해야 할 것이니 이 3취(聚) 중생은 줄어듦만 있고 더함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 028_0583_c_10L志性云何?有何等悕望?當作是觀。猶如此三聚衆生有損無益。以何等故,三聚衆生不知有減?
- 어떤 이는 “그대가 그러한 수효를 계산하겠는가? 그러한 중생은 줄어듦이 없다. 만일 세지 못한다면 누가 그 줄어듦을 아는가?”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한량없이 지은 바 중생이다”라고 말하는데 그것 역시 위에서 말한 바와같다. 존자께서는 “어디에나 줄어듦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 028_0583_c_13L或作是說:汝爲計算爾所數耶?爾所衆生無有減。若不數者,誰知有減?或作是說:無量所造衆生。此亦如上所說。尊作是說:在處在處無有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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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이 어떠한가?
아비담(阿毘曇)에서 말한 “반드시 세(世)가 있는 것이 틀림없고 사취(邪聚)가 있는 것은 사라진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만일 그렇다면 그 내용은 옳지 못하니 지금에 있고 여기는 없어짐과 같다.
이와 같은 3세(世)에서 1세 안에 미래는 줄어듦만 있고 더함이 없으며, 1세 안에 과거는 더함만 있고 줄어듦이 없다. - 028_0583_c_17L此事云何?如阿毘曇說:必有世不疑,有邪聚當言滅盡。設爾者,此義不然,如今有此盡。如此三世,一世中未來有損無益,一世中過去有增無損。
- 무슨 까닭으로 미래 세상은 줄어듦이 없고 과거는 가득 참이 있는가?
- 028_0583_c_21L以何等故未來世無減、過去有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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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84_a_02L어떤 이는 “그대가 그러한 수효를 계산하는가? 과거와 미래에 그러한 수효가 있는가? 줄어듦이 있는 것을 알고 만일 계산하지 못한다면 누가 그 줄어듦이 있는 것을 아는가?”고 말했다.
어떤 이는 “과거는 이미 없어지고 미래는 생기지 아니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과거와 미래는 처소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과거와 미래는 한량이 없다”고 말했다. - 028_0583_c_22L或作是說:汝計爾所數耶?過去未來有爾所數耶?知有減。若不算計者,誰知有減?或作是說:過去已壞、未來未生。或作是說:過去未來無有處所。或作是說:過去未來無有限量。
- 세존께서는 “두 법을 비추어 밝혀야 한다. 왜냐 하면 세(世)는 처소가 없고 사실과 상응하는 인연으로 생기나니, 이미 생김과 곧 무너짐이 그 사실이다중생이 늘아나고 줄어드는 것에 대해 성인은 그대로 두고 논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어느 누구도 계산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본래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고 만약 이런 말을 하는 이가 있다면 또한 허물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억제했을 뿐이다. 부처님께서 범지(梵志)를 억제한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성인의 가르침은 깨달음에 나아가는 것인데 중생들은 형상을 버리지 못하고 사물을 숭상한다. 만일 적정삼매(寂靜三昧)에 들면 한량없고 가없는 복이 되나 그는 다 깨끗함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 028_0584_a_04L世尊作是說:若二法照明。何以故?世無處所,事相應緣生,已生當壞。是其事衆生增減,乃是聖人存而不論者也。故曰:誰計豆而不說也。本無今有,若有斯言,則亦有咎。故皆抑之耳。佛止梵志,亦其事也。聖人之教,進覺號也,衆生無棄形而上事也。如入寂靜三昧,無量無邊福,彼非盡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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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삼매는 무엇을 반연하는가?
어떤 이는 “한량없고 가없는 복이 그 반연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4_a_09L彼三昧爲緣何等?或作是說:無量邊福是其緣。
- 【문】지금에 다 깨끗하지 않은가?
- 問:今不盡淨。
- 【답】그것은 스스로 알지 못한다.
- 028_0584_a_10L答曰:彼不自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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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일 스스로 안다면 그것은 무엇을 반연하는가? 만일 깨끗함이 한량없으면 그것은 삿된 슬기가 아닌가?
어떤 이는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고 여김은 마음을 그 내용이라 풀이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4_a_11L問:設自知者,彼緣何等?若淨無量,彼非邪智耶?或作是說:不淨謂之,淨訓心是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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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일 깨끗한 것을 깨끗하다 말한다면, 마음을 “항상함이 아니요 항상함이 없다”고 풀이함이니, 마음을 그 내용이라 풀이함을 해설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일체 고요함이란 그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니, 저것도 역시 그와 같다. - 028_0584_a_13L問:若淨言淨者訓心,不常無常解說訓心是義。或作是說:一切寂靜,此之謂也;彼亦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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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금에 제2선(禪)에 들면 그 때에는 눈으로 누런 것을 다 볼 것이니, 그러면 한동안 제 모양[自相]이 무너지는가?
어떤 이는 “깨끗함이 저 인연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4_a_15L問:如今入第二禪,是時眼盡見黃,是故一時自相壞敗?或作是說:淨是彼緣。
- 【문】누가 그런 삼매가 없는가?
- 問:誰無此三昧?
- 【답】생각함에 빈틈이 없을 때에 그러한 삼매가 있다.
- 028_0584_a_18L答曰:思惟無空缺處有是三昧。
- 【문】일체 삼매도 또한 빈틈이 없는데, 일체 삼매를 적정삼매로 보려고 하는가?
- 028_0584_a_19L問:一切三昧亦無空缺處處,欲使一切三昧作寂靜三昧耶?
- 【답】일체 제 모양으로 서로 느낌이 아니요, 일체 한량없는 모양을 만듦도 아니다.만일 제 모양으로 한량없는 모양을 느낀다면 그것은 수행인의 삼매[行人三昧]라고 한다.
- 028_0584_a_20L答曰:非一切自相相受,非一切造無量相。若自相受無量相者,彼是行人三昧。
- 028_0584_b_02L존자께서는 “깨끗함이 그 인연이니 그가 이것과 상응하는 것이 불타는 섶으로 인연하여 연기가 일어남과 같다. 모든 인연은 각기 서로 의지하여 깨끗함이 생기나니, 그와 같이 모든 상응함과 모든 인연이 일어나게 된다. 마땅히 이러한 관찰을 해야 할 것이다. 저 삼매를 불순하다 말해야 하고 순하다 말해야 하는데 위의 5사(事)와 같아서 다름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또 존자께서는 “마땅히 불순함이 아니고 차츰차츰 순함이 가까워진다”고 말씀하셨다. 먹는 것을 사람이라고 관찰해야 한다지만 그러나 먹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 028_0584_a_23L尊作是說:淨是其緣。彼以此相應,如緣然薪起煙。及諸因緣各相依而生淨,如是起諸相應及諸因緣。當作是觀。彼三昧當言不順、當言順?如上五事無異。尊作是說:當言非不順,漸漸近順。食謂觀人,然食非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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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리석게 관찰하는 이는 무엇을 반연하는가?
어떤 이는 “먹는 것이 그 인연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4_b_06L彼愚觀者爲緣何等?或作是說:食是其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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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것은 어리석은 관찰이 아니고 생각으로 먹는 것도 아니다. 만일 그 밖의 생각으로 먹는다면 다시 딴 인연이 있을 것이니, 고요한 것으로 고요한 인연이 없다고 하겠는가?
어떤 이는 “사람이 그 인연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4_b_07L問:彼非愚觀、非思惟食。設餘思惟食者,復有餘緣。欲使寂靜無寂靜緣耶?或作是說:人是其緣。
- 【문】먹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닌가?
- 問:食非是人。
- 【답】그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 028_0584_b_10L答曰:如彼不自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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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일 스스로 안다면 나라는 것이 그 인연인가? 다시 저 어리석게 관찰하는 이는 이곳에서 먹고 그를 바라고 찾아 구하나니, 저 어리석게 관찰함을 마땅히 “순함이다”라고 말해야 되는지, 마땅히 불순하다고 말해야 되는지, 위에서 두 사실[二事]을 설명한 것과 같다.
존자께서는 “마땅히 ‘맛에 순응하여 애착하는 것이 그 상대다’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골쇄(骨鎖)에 의하여 약간의 생각을 일으켰다면 내 몸도 골쇄로 된 것이 역시 그와 같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 028_0584_b_11L問:設自知者,吾我是緣耶?復次彼愚觀者,食此處所,悕望求索。彼愚觀當言順、當言不順?如上二事說。尊作是說:當言順,味愛是對。若依骨瑣起若干想,自知我身骨瑣,亦復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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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생각은 무엇을 반연하는가?
어떤 이는 “골쇄가 곧 그 반연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4_b_15L彼想爲緣何等?或作是說:骨瑣卽是其緣。
- 【문】몸은 골쇄가 아니다.
- 問:身非骨瑣。
- 【답】그것 역시 골쇄로서 피부와 살이 얽힌 것이다. 어떤 이는 “자신이 그 반연이니 그는 골쇄로서 피부와 살이 얽힌 것이다”라고 말했다.
- 028_0584_b_17L答曰:此亦骨瑣,皮肉所纏。或作是說:自身是緣,此骨瑣皮肉所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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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 생각은 몸이 아니다. 만일 골쇄라는 생각으로 관찰한다면 자신에 반연함이거늘, 푸른 것으로 하여금 누런 빛깔에 반연하게 하겠는가? 다시 그 내용인 생각은 저 자신에 반연했는가? 분별과 희망인 저 모양을 마땅히 순함이라 말하고 마땅히 불순함이라고 말함은 위에서 두 사실[二事]을 설명한 것과 같다.
존자께서는 “마땅히 순함이라고 말함은 그 상대가 있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028_0584_b_19L問:彼想非身,若觀骨瑣想,則緣自身,欲使靑緣黃色耶?復次義想緣彼自身,分別悕望彼相,當言順、當言不順?如上二事說。尊作是說:當言順,欲使有對。
- 제4 게품을 마친다.
- 028_0584_b_23L第四偈品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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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0584_c_02L느낌과 두 마음과
불꽃ㆍ그림자ㆍ광명ㆍ줄어듦이며
일찍이 없었던 취(聚)들과
푸름ㆍ먹음ㆍ골쇄 따위이다. -
028_0584_b_24L痛及二心,
炎影光減,
未曾有聚,
靑食骨瑣。
尊婆須蜜論卷第一
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 1)소승 12부의 하나인 미사색부(彌沙塞部)를 가리킴. 상좌부(上座部)의 말파(末派)로서 화지부(化地部)와 정지부(正地部)라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