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1506_T_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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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_0051_a_01L대방광불화엄경수현분제통지방궤 제4권 상
지엄 지음
박서연 번역
22) 십지품 ③
제7지(地)에서 여섯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무상(無相)의 행을 잘 닦고 공용(功用)이 구경(究竟)에 이르러서 능히 세간 이승(二乘)의 출세간의 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원행지(遠行地)라 이름한다.
둘째, 다스리는 바라는 것은 『지론(地論)』에 의거하면 세상(細相)의 습장(習障)이고, 『섭론(攝論)』에 의거하면 추상(麤相)의 행과 무명이니, 이 경문은 6지에 있다. 또 두 무명이 있다. 첫째는 미세상의 행이 무명을 일으키는 것이니, 곧 세속을 미혹하는 것이다. 둘째는 한결같은 무상의 사유 방편이니, 곧 진(眞)을 미혹하는 것이다. 아울러 2업의 장애는 1보(報)의 장애인 인연의 생사가 있다.
셋째, 나타낸 바라는 것은 갖가지 법이 별다른 뜻이 없는 것이다.
넷째, 성취하는 바라는 것은 방편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다.
다섯째, 얻는 바의 과(果)라는 것은 갖가지 법의 개별성 없는 공덕을 통달하여 일체의 상(相)을 멸함으로써 항상 무상과(無相果)에 머무는 것이다.
여섯째, 경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경문은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 게송은 나중을 낳음을 찬탄한 것이고, 두 번째는 지(地)의 체(體)를 밝힌 것이며, 세 번째는 게송이 앞서의 것을 매듭 지은 것이다. 첫째에 있는 14게송에서 처음의 13게송은 대중이 3업으로 공양하는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해탈월이 청하는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12게송은 청함을 올바로 찬탄하는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공양의 섭수하는 행을 매듭 지어서 상위(上位)에 들어가는 것이다.
처음의 경문을 둘로 나누니, 처음의 세 게송은 모든 천(天)이 3업의 공양을 총체적으로 닦아서 신(身)ㆍ구(口)ㆍ의(意) 세 가지로 청하는 것이며, 다음의 아홉 게송은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것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한 게송은 해당되는 처소에서 천왕이 공양하는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 반은 나머지 천왕이 법의 이익을 듣고자 함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 반은 천녀(天女) 등이 힘을 이어받아서 부처님의 3업의 뛰어난 용(用)을 찬탄함을 밝힌 것인데, 두 게송은 반은 신(身)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구(口)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의(意)이다.
둘째, 지(地)의 체(體)를 변별함 중에서는 크게 다섯 가지로 판별한다. 첫 번째는 작위 없는 행의 대치차별(對治差別)을 즐기는 것이니, 앞의 지(地)를 다스려서 공심(空心)을 즐기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저 장애의 대치차별이니, 이 지의 유상심(有相心)을 다스리는 것이다. 세 번째는 쌍행(雙行)의 차별행이 상(相)을 이루는 것이다. 네 번째는 전상(前上)에서 지승(地勝)의 차별을 교량(校量)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저 과(果)의 차별이 순숙(純熟)한 것이다.
작위 없음을 즐기는 것 중에서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으로 생기하는 것이고, 둘째는 올바른 해석이며, 셋째는 이익을 매듭 짓는 것이다. 제2의 경문에 있는 20구는 섭수하면 10대(對)가 된다. 하나하나의 대에서 모두가 처음은 그 경계의 한량없음을 밝힌 것이며, 나중의 구(句)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덕업(德業)을 밝힌 것이다. 또한 초구(初句)는 공(空) 속의 방편지(方便智)가 되고, 후구(後句)는 유(有) 속의 뛰어난 행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또 논문에서 ‘네 가지 장애가 있는 것은 5지(地)의 설과 같다’고 한 것은 저 괴롭지 않은 생사(生事)와 안락한 생사를 취해서 연민하기 때문에 벗어나 점차적으로 법에 들어가게 한 것이니, 이는 네 가지 화행(化行)을 대해서 네 가지 장애를 설한 것이다. 또 서론(書論) 등의 네 가지 장애는 논(論)과 같다.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다.
저 장애를 대치하는 수행의 뛰어난 경문에 나아가면, 경 속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보살의 관해(觀解) 방편을 밝힌 것인데, 이 방편 중에서는 여섯 가지 질문을 논한다. 첫째는 이익을 받는 중생을 물은 것이며, 둘째는 의거하는 바의 세계를 물은 것이며, 셋째 ‘어떤 슬기인가?’라고 물은 것은 그 법계의 법 속에 있는 양 구(句)를 따로 묻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능히 아는 지혜에 나아가서 물은 것이다. 넷째, ‘어떤 마음으로써’라고 한 것은 근심(根心)을 물은 것이다. 다섯째, ‘어떤 행으로써’라는 것은 행을 일으키는 마음을 물은 것인데 아래의 해석에 이르러서 한꺼번에 변별했으니 두 가지 뜻을 통틀었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타는 바[所乘]를 물은 것이다.
두 번째 ‘보살이 이와 같다’ 이하는 수행을 올바르게 밝힌 것인데, 다섯 구가 있다. 첫째는 표(標)한 바이고, 둘째는 뜻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는 분제를 밝힌 것이며, 넷째는 체(體)를 낸 것이며, 다섯째는 대치의 뜻을 이룬 것이다.
쌍행(雙行)의 경문 속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두 행의 쌍이 무간(無間)인 것이며, 둘째는 믿음의 뛰어남이다. 셋째는 능히 대의(大義)를 짓는 것인데,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건립이고, 두 번째는 따지는 것이고, 세 번째는 간략히 답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자세히 변별하는 것이다. 넷째는 보리분의 차별이다. 이 중에서 경문은 4가(家)의 한 구가 빠져 있으며,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다.
저 전상(前上)의 승(勝)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6지보다 승(勝)한 것이며, 둘째 ‘왜냐하면’ 이하는 승상(勝上)의 3지(地)를 밝힌 것이다. 전자 중에서 먼저는 상(相)을 간략히 변별해서 해탈월의 물음을 성취한 것이며, 다음은 금강장의 답이다. 답 중에서 처음은 먼저 모든 지(地)를 통틀어 대한 것이니, 이를 밝히는 것이 승(勝)이 된다. 다음의 ‘왜냐하면’ 이하는 모든 지를 개별적으로 대한 것이니, 이를 나타내는 것이 승이 된다. 이 개별적인 답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물음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 속에서는 두 가지로 나누니, 첫 번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두 번째는 개별적인 것이다.
둘째의 승상(勝上)을 해석한 것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 지(地)의 뛰어남이 나중을 능가함을 밝힌 것이며, 둘째 ‘해탈월’ 이하는 앞에서 논한 바의 승(乘)을 인해서 모든 지(地)의 오염과 청정의 상(相)을 밝힌 것이다. 처음에서는 두 가지로 나누니, 첫 번째는 따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답이다. 답의 내용은 세 가지로 나누는데, 첫 번째는 법이고, 두 번째는 비유이고, 세 번째는 합(合)이다. 나머지 경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승(二乘)이 오염과 청정을 밝힌 것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이다. 답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통틀어 변별한 것이고, 둘째는 7지를 기준해서 개별적으로 분제를 밝힌 것이다. 처음의 통틀은 것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법과 비유와 합(合)이다. 세 경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의 개별적으로 경문을 변별한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건립과 따지는 것과 답이다.
저 과승(果勝)의 경문에 나아가면, 처음 첫째의 업승(業勝)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인 것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이 경의 매듭 짓는 경문 속에는 한 구가 빠져 있으며, 개별적인 경문에 네 가지가 있음은 논과 같다. 둘째의 삼매승(三昧勝)에서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며, 셋째는 총체적으로 매듭 짓는 것이다. 경에는 총구(總句)가 빠져 있으나 나머지는 논과 같다. 셋째, 지승(地勝)을 지나치는 것에서는 경문을 세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는 행이 선교(善巧)를 닦기 때문에 지나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업을 지음이 광대하기 때문에 지나치는 것이며, 세 번째는 행이 승입(勝入)을 닦기 때문에 지나치는 것이다.
첫 번째 속에서 둘로 나누니, 처음은 앞을 거듭 들어서 나중을 일으키는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으로 해석한 뜻이다. 두 번째의 지나침 중에서 처음은 지나침의 뜻을 올바로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해탈월’ 이하는 분제를 지나침을 나타낸 것인데, 여기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법과 비유와 합(合)이다. 나머지 경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승행(勝行)을 얻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삼매승을 밝힌 것이고, 다음은 발기승(發起勝)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의 경문에는 법과 비유와 합(合)의 세 경문이 있다. 발기승 중에서 처음은 전(前)이 후(後)를 낳음을 매듭 지은 것이고, 다음은 발기승의 행을 올바로 밝힌 것이다.
또 이 논문 가운데 총체적으로 여덟 구가 된다. 처음의 한 구는 자리(自利)의 행이니, 몸을 세간에 나타내는 것은 수승한 행이고, 깊은 마음의 열반은 방편의 지혜이다. 아래의 이타(利他) 중에서 처음의 세 구는 범(凡)을 수순하는 것이고, 다음의 한 구는 소승을 굴리는 것이며, 다음의 두 구는 마(魔)를 따르는 것이며, 나중의 한 구는 범(凡)을 굴리는 것이다. 권속이 둘러싸는 것은 수승한 행이고, 마음이 항상 멀리 여의는 것은 방편의 지혜이니, 모든 구(句)가 거의 다 마찬가지이다.
원(願)이 유(有)를 취하는 것은 상수(上首)의 교화가 반드시 원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가(家)가 단절되지 않는 것은 애착의 물듦이 있는 일을 보이는 것이다. 사(使)를 멀리 여의는 것은 사의 성품을 여의는 것이다. 행에 들어가는 것은 능히 이승을 굴려서 위로 불지(佛智)에 들어가는 것이다. 생(生)을 자량하는 행이란 것은 음식과 수면 등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퇴행(退行)이란 것은 늙음과 병 등을 보이는 것이다. 전행(轉行)이라 말한 것은 모든 범부의 번뇌하는 마음을 전(轉)하는 것이다. 견탐전(見貪轉)이란 것은 그 견혹(見惑)을 전하는 것이다. 장애의 전(轉)이란 것은 무명을 요달하지 못함을 장애라 이름하는데, 지금 전해서 멸하는 것이다. 5명(明)은 지혜로 다스리는 것이다. 탐전(貪轉)이란 것은 탐욕의 결박을 전하는 것이다. 보살이 뛰어난 5욕(欲)의 처소를 받으면서도 집착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은 모든 천(天) 등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소욕(所欲)을 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지과(地果)의 경문 가운데 3과(果)는 위와 같다. 조유과(調柔果) 속의 경문에도 또한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조유의 행상(行相)이며, 둘째는 교지(敎智)의 청정함이며, 셋째는 개별적인 지(地)의 덕이며, 넷째는 지(地)의 상(相)을 매듭 지음이다. 조유의 행 가운데 처음은 법의 설함이고, 다음은 비유이고, 나중은 합(合)이다. 법 중에서 처음은 모든 부처님을 많이 보는 것이고, 다음은 능련(能練)의 행이고, 나중은 소련(所練)의 청정함이다. 나머지 경문은 알 수 있다.
셋째, 게송을 거듭함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설하는 뜻을 밝힌 것이며, 다음은 올바른 게송이다. 게송에는 42게송이 있는데, 경문은 일곱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아홉 게송은 작위 없는 행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저 장애를 대치하는 것이며, 다음의 여섯 게송은 쌍으로 행함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11게송은 전상(前上)의 지승(地勝)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여덟 게송은 쌍행의 과(果)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조유 등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찬탄을 매듭 지은 것이다.
제8지(地)인데 이 이하는 출세간을 벗어난 선법(善法)이라 이름한다. 이로 인(因)해서 상하의 모든 지(地)와 일승ㆍ삼승ㆍ인천(人天)과 기신(起信)ㆍ생해(生解)ㆍ점차(漸次)ㆍ동이(同異)의 법문을 요간(料簡)하는 것이다. 초지(初地) 중에서 10원(願)은 일승과 삼승이 공통으로 행하는 법이며, 신(信) 등의 10법은 삼승의 개별적으로 행하는 법과 인천이 의거하는 바이다. 2지의 계행(戒行)은 삼승과 소승과 인천이 의거하는 바이고, 3지의 선정(禪定)은 삼승과 소승과 인천이 익히는 것이며, 4지의 도품(道品) 등은 삼승과 소승이 얻는 바이고, 5지의 4제(諦)는 일승과 삼승과 소승이 공통으로 행하는 법이며, 6지의 연생(緣生)은 일승과 삼승과 소승이 공통으로 행하는 법이고, 제7지 방편의 쌍행(雙行) 등은 대승이 행하는 법이며, 8지와 9지와 10지는 일승과 대승이 익히는 법이다.
이런 것들이 만약 보고 듣고 닦고 증득함을 조망해서 통틀어 설한 것이라면 곧 동등해서 차별이 없는 것이고, 만약 상(相)을 기준으로 해서 개별적으로 논한 것이라면 이러한 수분(殊分)이 있는 것이다. 또 모든 지(地)의 조유과는 행문(行門)이고, 발취과(發趣果)는 해문(解門)이며, 섭보과(攝報果)는 보문(報門)이고, 원지과(願智果)는 덕용문(德用門)이니, 역시 일승과 삼승이 공통으로 행하는 법이니 이로써 준거하라. 10지(地)는 선교(善巧)와 원만히 통함[圓通]과 광대한 섭수이기 때문에 장(藏)이란 명칭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광(崔光)은 이렇게 말했다.
“『십지경』이란 것은 대체로 신각(神覺)의 현묘한 뜨락이자 신령한 슬기의 오묘한 집이며, 억선(億善)의 기여(基輿)이자 만도(萬度)의 강통(綱統)이다. 이(理)는 뭇 장(藏)의 비밀을 포함하고, 의(義)는 온갖 전(典)의 심오함의 으뜸이다. 이는 점진적인 심행(心行)을 쌓아서 인학(忍學)의 근원을 궁구하고, 광대히 머무는 덕을 존숭해서 도혜(道慧)의 부(府)를 극(極)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지(地)1) 가운데 여섯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보행(報行)이 순수하게 성숙하고 무상(無相)이 사이가 없기 때문에 부동지(不動地)라 이름한다.
둘째, 다스리는 바라는 것은 『지론』의 경문에 의거하면 무상에서 행의 장애가 있는 것이며, 『섭론』의 경문에 의거하면 무상에서 공용(功用)의 마음을 짓는 것이다. 무명 또한 두 가지 무명이 있으니, 첫째는 무상에서 공용을 짓는 것이며, 둘째는 상행(相行)의 자재로움에서 2업의 장애와 1보(報)의 장애가 있으므로 유(有)와 생(生)과 사(死)가 있는 것이다.
셋째, 나타내는 바라는 것은 늘거나 줄지 않는 뜻을 말미암는다.
넷째, 성취하는 바라는 것은 원(願)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다.
다섯째, 얻는 바의 과(果)라는 것은 만약 늘거나 줄지 않는 공덕을 통달한다면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위덕(威德)과 지혜의 업과(業果)를 공유하게 되고, 아울러 법신의 과(果)를 얻는다.
여섯째, 경문을 해석하는 것인데 크게 세 가지로 판별한다. 처음의 게송은 생기하는 것이고, 둘째는 지(地)의 체(體)를 밝힌 것이며, 셋째는 게송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에 15게송이 있으니, 처음의 14게송은 모든 천(天)과 보살이 찬탄하면서 공양을 청하는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해탈월이 청하는 것이다.
처음의 14게송 안에서 처음의 두 게송은 천왕과 모든 천과 보살이 법을 경축하고 꽃비를 내려서 부처님과 대중을 공양하는 것이고, 다음의 12게송은 천녀가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면서 노래하는 것이다.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한 게송은 즐겁게 공양하는 것이고, 다음의 10게송은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공양이 끝나고서 이(理)의 관찰에 들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의 10게송 중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한 게송은 천녀가 부처님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아홉 게송은 불력(佛力)이 보살 등으로 하여금 공양구[供具]로 소리를 내서 부처님의 공덕과 3세간의 자재로움을 찬탄하도록 한 것인데, 처음의 세 게송은 기(器)세간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중생세간이며, 다음의 네 게송은 지정각(智正覺)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다함 없음을 찬탄하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지정각의 경문 중에서 처음의 한 게송은 부처님의 구업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신업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의업이다. 지(地)의 체(體)에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방편으로 집(集)을 짓는 지(地)를 총체적으로 밝힌 분(分)인데, 먼 방편으로서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고하는 것이고, 다음은 해석임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정인행(淨忍行)을 얻는 분(分)인데, 가까운 방편이다. 이 둘은 모두 지(地) 이전의 방편에 취향하는 것이다. 셋째는 뛰어난 행을 얻는 분이니, 처음 지의 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넷째는 불국토를 청정히 하는 분이고, 다섯째는 자재로움을 얻는 분인데, 이 둘은 지의 분에 안주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대승(大勝)이며, 일곱째는 명칭을 해석한 분인데, 이 둘은 지(地) 중의 만족이다. 나머지 경문은 알 수 있다.
둘째의 정인분(淨忍分)에 15구가 있는데 세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10구는 무생(無生)의 인(忍)을 밝힌 것이며, 다음 나중의 네 구는 그 인의 청정함을 밝힌 것이며, 나중의 한 구는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경에 의거하면 부족하니, 자성무생(自性無生)의 구(句)와 변일체법상(遍一切法相)의 구가 빠져 있다.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다.
승행분(勝行分)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승행이고 다음은 발기(發起)의 행이다. 처음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나중은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것 중에서 먼저는 법이고 나중은 비유로써 하는 것이다. 법 중의 일곱 구는 서로 따르면 셋이 된다. 처음의 세 구는 이 지(地) 속의 경분(境分)이 남달리 절륜함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두 구는 광대함을 올바로 행하는 것인데, 경에서는 수행심일(修行深一)의 구가 빠져 있으며, 다음의 두 구는 장애를 여의어서 적멸한 것이다. 비유 중에서 후(後)로부터 전(前)을 향함은 차례를 비유한 것이다.
발기승행(發起勝行)의 내용 속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 본원(本願)을 밝히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권발(勸發)에 머무는 것이니, ‘만약 주시지 않았다면[若不與]’ 이하는 권(勸)의 이익을 밝힌 것이다. 처음은 본원력의 머묾을 밝힌 것이며, 또 ‘모든 부처님’ 이하는 권발에 머묾을 말미암는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모든 부처님의 법수(法水) 가운데 지혜를 일으키는 문을 주심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며, 둘째 ‘착하도다’ 이하는 상(相)과 더불어 권(勸)에 의거해서 능히 성취함을 개별적으로 밝힌 것이다.
둘째의 개별적인 것 중에서, 먼저는 얻은 바의 무생인문(無生忍門)을 찬탄한 것이고, 나중은 얻지 못함을 밝혀서 닦아 익히기를 권유한 것이다. 이 경문에 일곱 가지가 있는데 섭수하면 둘이 된다. 앞에 있는 여섯 가지 권유는 많이 들은 것이 아직 짓지 못해서 그 머무는 마음을 전(轉)함을 든 것이며, 나중의 하나는 그 적은 지음이 능히 성취해서 그 거심(去心)을 증대함을 밝힌 것이다. 다시 앞에 있는 여섯 가지 중에서 나누면 3대(對)가 되는데,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이다. 앞의 초대(初對) 중에서 먼저의 하나는 그 스스로의 덕이 성취되지 않음을 밝힌 것이며, 나중의 하나는 그 소화(所化)가 나오지 못함을 나타낸 것인데, 이 가운데 경에서는 한 구가 빠져 있다. 제2대(對) 중에서 먼저의 하나는 그 화원(化願)이 아직 원만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며, 나중의 하나는 그 스스로의 덕이 아직 뛰어나지 못함을 밝힌 것이다. 제3대(對) 중에서 처음의 하나는 그 화업(化業)이 아직 광대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며, 나중의 하나는 자기가 얻은 법문이 아직 궁진하지 못함을 밝힌 것인데, 이 가운데 경에서는 한 구가 빠져 있다.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다.
둘째, 이익을 권함을 밝힌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법이고 다음은 비유이며, 나중은 합(合)이다.
법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모든 부처님이 지혜를 일으키는 문을 주심을 밝힌 것이고, 둘째 ‘일념에’ 이하는 권함을 말미암기 때문에 행을 일으키는 것이 신속함을 밝힌 것이며, 셋째 ‘왜냐하면’ 이하는 문답으로 해석한 것이니,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다.
국토분(國土分)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기세간의 자재로운 행이고, 둘째는 중생세간이며, 셋째는 지정각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표(標)해서 들은 것이고, 둘째 ‘세계의 생겨남을 안다’ 이하는 개별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법의 분제를 아는 것으로서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앎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 세계의 생겨남을 아는 것은 심욕(心欲)을 수순함을 밝힌 것이며, 둘째 ‘어떤 업으로 하는지를 안다’ 이하는 어떤 욕(欲)을 수순하는지를 밝힌 것이며, 셋째 경에는 시욕(時欲)을 수순함이 빠져 있으며, 넷째 ‘이 보살’ 이하는 넓고 좁은 욕(欲)을 수순함을 밝힌 것이며, 다섯째 ‘이 보살이 이 같음에 들어가서’ 이하는 마음의 얼마만큼의 욕(欲)을 수순하는 것이다.
둘째 ‘잘 분별한다’ 이하는 자재로운 의식(儀式)을 밝힌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법과 비유와 합(合)과 매듭 지음이다.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다.
중생세간을 해석함 중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고, 둘째 ‘만약 사문(沙門)에게’ 이하는 개별적으로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며, 셋째는 나타낸 뜻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말할 수 없는 모든[所有不可說]’ 이하는 자재로움을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또한 두 가지 개별적인 변별과 아울러 뜻 안에서, 첫째는 물(物)과 신(身)을 화동(化同)한 것이고, 둘째 ‘성문으로써’ 이하는 물(物)과 심(心)을 화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정각의 경문에서, 첫째는 제일의지(第一義智)를 밝힌 것이니, 이를 밝힌 까닭은 세간 지혜의 법상(法相)이 소이(所以)를 말미암음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둘째 ‘이 보살이 훌륭히 알아서’ 이하는 세제(世諦)의 지혜이다. 이 중에서 소화(所化)를 수순해서 10신(身)을 섭수함은 이미 있는 10을 통틀은 것이다. 1신(身)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수(數)를 든 것이고, 둘째는 상(相)의 지음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는 체(體)를 나와서 뜻을 해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어찌하여 기세간을 밝혔는가? 그리고 3세간을 변별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답】세 가지 법상이 뒤섞여서 알아채기가 어려우니, 이를 구별하고자 하기 때문에 반드시 밝힌 것이다. 이 중에는 많은 구절이 빠져 있으니, 논(論)과 비교해서 취하라.
대승(大勝)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지대(智大)를 밝힌 것이고, 둘째는 업대(業大)이며, 셋째는 저 2주(住)의 공덕대(功德大)이니,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다. 명칭을 해석함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지(地)를 해석한 명칭이며, 둘째는 지자(智者)를 해석한 명칭이니, 나머지 경문은 알 수 있다. 지자(智者)는 크게 둘로 나누는데, 첫째는 부동(不動)을 올바로 밝힌 것이며, 둘째 ‘전상(轉相)이 아니기 때문에’ 이하는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전자 속에는 합하여 25구가 있는데, 처음의 15구는 한결같은 부동이고, 둘째 ‘이 보살이 들어가서’ 이하의 10구는 일체(一體)의 부동이다. 지과(地果)의 경문 중에서 3과(果)는 앞과 같다.
조유(調柔)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조유의 행이며, 둘째는 교지(敎智)의 청정함이며, 셋째는 개별적인 지(地)의 행이며, 넷째는 지의 상(相)을 매듭짓는 것이다. 전자 중에서 처음은 법이고, 다음은 비유이고, 나중은 합(合)이다. 처음은 부처님을 많이 보아서 행을 일으키는 연(緣)을 밝힌 것이고, 다음은 능련(能練)의 행을 일으킨 것이며, 나중은 소련(所練)의 청정함이다. 교지 중에도 처음은 법이고, 다음은 비유이며, 나중은 합(合)이니,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다.
셋째, 게송 중의 경문은 두 가지로 나눈다. 처음은 게송의 뜻을 설한 것이고, 둘째는 올바른 게송이다. 이 경문에는 44게송이 있는데, 처음의 세 게송은 방편의 집(集)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정인(淨忍)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15게송은 승행(勝行)을 얻은 것이며, 다음의 12게송은 정토(淨土)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자재로움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대승(大勝)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명칭을 해석함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다섯 게송은 조유 등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간략함을 들어 자세함을 나타냄으로써 앞의 뜻을 매듭 지은 것이다.
승행 중에서 처음의 다섯 게송은 승행의 체(體)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은 7권(勸)을 읊은 것으로서 제5와 제6의 권은 읊지 않았으며, 다음의 네 게송은 권함을 들어서 행승(行勝)을 밝힌 것이다. 정토를 이익되게 함 중에서 처음의 네 게송은 기세간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중생세간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지정각이다.
제9지(地) 중에서 여섯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니, 무애력의 설법이 이타행을 성취하기 때문에 선혜지(善慧地)라 이름한다.
둘째, 다스리는 바라는 것은 만약 『지론』에 의거하면 중생을 잘 이롭게 할 수 없는 장애이고, 『섭론』에 의거하면 중생의 이익된 일에서 공용을 말미암지 않는 것이다. 또 두 가지 무명이 있으니, 첫째는 한량없는 올바른 설법과 한량없는 명구(名句)의 맛이 답하기 어려운 것과 교언(巧言)이 자재로운 다라니의 장애인데, 자리(自利)이다. 둘째는 네 가지 무애의 해(解)에 의거해서 의심을 결택하여 해석을 낳는 장애인데, 이타(利他)이다. 2업의 장애와 1보(報)의 장애가 있음은 유(有)의 생사가 있는 것이다.
셋째, 나타낸 바라는 것은 정자재(定自在)의 의지(依止)를 말미암고, 토자재(土自在)의 의지를 말미암으며, 지자재(智自在)의 의지를 말미암는 것이니, 그 뜻은 마땅히 법계를 아는 것이다.
넷째, 성취한 바라는 것은 역(力)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다.
다섯째, 얻은 바의 과(果)라는 것은 만약 토(土)와 지(智) 자재의 의지를 통달해서 응신과(應身果)를 얻는다면, 통틀어 과(果)가 앞의 지(地)와 동일한 것이다.
여섯째, 경문을 해석한 것은 크게 세 가지로 판별한다. 첫째는 게송이 나중을 낳는 것이고, 둘째는 지(地)의 체(體)를 밝히는 것이며, 셋째는 게송으로써 앞을 매듭 짓는 것이다. 처음에 19게송이 있으니, 처음의 두 게송은 이전 지(地)의 이익을 설함을 밝힌 것이며, 다음에 있는 17게송은 4중(衆)이 찬탄해서 청함을 변별한 것인데, 처음의 한 게송은 보살의 공양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범왕(梵王)이 공양을 시설해서 찬탄한 것이며, 다음에 있는 14게송은 천녀가 찬탄하면서 청하는 것이며, 나중의 한 게송은 해탈이 청하는 것이다. 천녀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한 게송 반은 총체적으로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열한 게송 반은 보살 등이 자타(自他)의 덕을 갖춤을 찬탄한 것이다. 이 제2의 경문에 나아가면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세 게송 반은 자인(自因)의 뛰어남을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며, 다음에 있는 여덟 게송은 이타의 과용(果用)을 개별적으로 찬탄한 것이다. 다음의 제3은 난(亂)을 섭수해서 적(寂)을 따르는 것이다. 개별적인 여덟 게송의 내용에 나아가면, 처음의 한 게송은 신업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은 구업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의업이다. 구업에 나아가면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설(說)의 자재로움을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둘째는 근기를 기준으로 해서 상(相)을 변별한 것이다. 다음의 한 게송은 신(身)을 기준으로 해서 나타냄을 비유한 것인데,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성문ㆍ연각ㆍ점(漸)ㆍ돈(頓) 등의 네 가지로 나누며, 또한 일승과 삼승의 넷으로 나눌 수도 있다.
둘째, 지(地)의 체(體) 중에는 네 가지 차별이 있다. 첫째는 법사(法師)의 방편을 성취하는 것이고, 둘째는 지(智)의 성취이며, 셋째는 행에 들어감의 성취이고, 넷째는 설함의 성취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앞을 거듭 들어 나중을 일으키는 것이고, 둘째는 해석을 올바로 변별하는 것이며, 셋째는 지(地)에 들어가는 상(相)을 매듭 지음이다.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다.
둘째인 지(智)의 성취 중에서 처음은 앞을 거듭 들어 나중을 일으킴을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둘째 ‘유루(有漏)’ 이하는 선법(善法)을 편벽되게 자세히 하는 것이다.
셋째의 행에 들어가는 경문 중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11문을 총괄한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변별한 것이며, 셋째는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니,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다. 처음의 총문(總門) 중에서 논주가 공(共)에 의거한다고 말한 것은 심조림(心稠林)이 온갖 법의 공지(共止)이기 때문이니, 공(共)에 의거함이라 이름 붙인 것은 이것에 의거해서 알 뿐이다. 다음에 다시 공이라는 것은 근욕(根欲)의 성품과 깊은 마음 등이니, 4류(類)가 똑같기 때문에 공(共)이라 이름한 것이다. 경문의 사난(使難) 안에서 어느 곳 경문에서는 제4구가 빠져 있고, 생난(生難) 중의 경문에서는 제2구가 빠져 있으며, 습기난(習氣難)의 경문에서는 제9구가 빠져 있으니,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다.
설함의 성취 속에 나아가서는 두 단락의 경문이 있으니, 처음은 설(說)의 성취를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고, 둘째 ‘이 보살이 중생을 교화해서’ 이하는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변별함 속의 뜻은 세 가지이며, 경문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세 가지라는 것은, 첫째는 지(智)의 성취이며, 둘째는 구업(口業)의 성취이고, 셋째는 법사(法師)의 성취이다. 경문의 네 가지라는 것은 논에 의거해서 경문을 나눈 것이다.
또 두 번째의 법사의 깊고 오묘한 뜻의 1단락 경문은 지(智)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한 구업에도 들어가는데 생각하면 알 수 있다. 구업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종지를 세우는 것이고, 둘째 ‘이 보살’ 이하는 사(辭)의 견고함을 밝힌 것이며, 셋째는 명칭을 열거한 것이며, 넷째는 역법(歷法)의 개별적인 해석이다.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법사의 성취는 네 가지 사(事)를 나타내 보인다. 첫째, 지(持)의 성취로서 네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종지를 세우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해석이며, 세 번째는 매듭 지음이고, 네 번째는 자세함으로써 간략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 ‘이 보살이 한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하는 설(說)의 성취인데 여기에는 10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이 보살이 삼천’ 이하는 문답의 성취인데 네 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이 중에서 낳아[於是中生]’ 이하는 수지(受持)의 성취이니, 여기에는 한 구가 있다.
【문】이 수지와 앞의 지(持)는 어떻게 다른가?
【답】전자의 지(持)는 설(說)에 임할 때이며, 후자의 지는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때이다.
둘째, 지과(地果)의 경문 중에서 2과는 위와 같다. 조유(調柔)를 네 가지로 나눔은 앞과 같으니, 첫째는 조유의 행이고, 둘째는 교지(敎智)의 청정함이며, 셋째는 개별적인 지(地)의 덕이며, 넷째는 설상(說相)을 매듭 지음이다. 전자 중에서 처음은 법이고, 다음은 비유이며, 나중은 합(合)이다. 처음 중에서 부처님을 보는 것은 행을 일으키는 연(緣)이고, 둘째는 능련(能練)의 행이며, 셋째는 소련(所練)의 청정함이니, 나머지 경문은 알 수 있다.
셋째, 게송을 거듭하는 것은 첫 번째는 설하는 뜻을 밝힌 것이고, 두 번째는 올바른 게송이다. 게송 중에는 42게송 반이 있는데, 처음의 네 게송은 법사의 방편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지(智)의 성취이며, 다음의 12게송은 행에 들어가는 경문이고, 다음의 14게송 반은 설(說)의 성취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일곱 게송은 3과(果)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이다.
설(說)의 성취 안에서 처음의 한 게송은 지(智)의 성취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구업의 성취이고, 다음의 아홉 게송 반은 법사의 성취이다. 이 안에서 처음의 두 게송은 지(持)의 성취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설(說)의 성취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문답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 반은 수지(受持)의 성취이다.
제10지(地)에서 여섯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 명칭을 해석하는 것이다. 대법신을 얻어서 자재로움을 구족하기 때문에 법운지(法雲地)라 이름한다.
둘째, 다스리는 바라는 것은 『지론』에 의거하면 모든 법 중에서 자재로움을 얻지 못하는 장애이고, 『섭론』에 의거해서 『지론』과 동일하다. 또 두 가지 장애가 있으니, 첫째는 6신통의 혜(慧)이며, 둘째는 미세함의 비밀에 들어가는 것이다. 불법에 2업의 장애와 1보(報)의 장애가 있어서 유(有) 생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과 주심(住心) 중에 있는 것이다. 다시 두 가지 장애가 있으니, 첫째는 일체에 감응하여 아는 경계에서 미세하게 집착하는 것이며, 둘째는 일체에 감응하여 아는 경계에서 미세한 장애이니, 2업의 장애와 1보의 장애가 있어도 유(有) 생사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지(地)의 종심(終心)에 있는 것이다.
셋째, 나타내는 바라는 것은 업자재(業自在)의 의지(依止)를 말미암는 것이니, 다라니문과 삼마제문(三摩提門)이 자재롭게 의지해서 마땅히 법계를 아는 것이다.
넷째, 성취하는 바라는 것은 지(智)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다.
다섯째, 얻은 바의 과(果)라는 것은 업의 의지를 통달해서 화신의 과를 얻는 것이니, 전체적인 과는 앞과 같다.
여섯째, 경문을 해석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판별한다. 처음의 게송은 생기함이고, 둘째는 지(地)의 체(體)를 밝힌 것이며, 셋째는 게송으로써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 25게송의 내용은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수타회천(首陀會天)이 공양을 일으켜서 찬탄한 것이니, 이 지(地)의 행이 원만하기 때문에 색구경(色究竟)의 찬탄이다. 다음의 한 게송은 보살의 찬탄과 공양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모든 천(天)과 천왕이 공통으로 찬탄하고 공양한 것이며, 다음의 18게송은 천녀가 찬탄하고 공양한 것이며, 나중의 두 게송은 해탈월이 청한 것이다.
천녀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두 게송은 악음(樂音)의 공양을 총체적으로 든 것이며, 다음의 다섯 게송은 보불(報佛)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여섯 게송은 화불(化佛)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법신의 체(體)를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행을 권한 것이며, 처음의 한 게송은 체관(體觀)에 들어가기를 권한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이익을 매듭 지어서 근본에 돌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 체(體)의 경문은 크게 여덟 가지로 나누니, 첫째는 방편으로 짓는 만족의 지분(地分)이며, 둘째는 삼매분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수위분(受位分)을 얻는 것이며, 넷째는 대진분(大盡分)에 들어가는 것이며, 다섯째는 지(地)의 명칭을 해석하는 분이며, 여섯째는 신통력의 무상유상분(無上有上分)이며, 일곱째는 지(地)의 영상분(影像分)이며, 여덟째는 지(地)의 이익분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며,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삼매분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앞을 거듭 들어 나중을 낳는 것이고, 둘째는 정의(正義)이며, 셋째는 성취한 바를 매듭 지음이다. 수위(受位) 중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처음은 좌(座)인데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주(主)와 권속과 매듭 지음이다. 신(身)에 두 가지가 있고, 권속에 세 가지가 있으며, 상(相)에 여섯 가지가 있다. 좌(座)의 처음 경문 중에서 10덕(德) 안의 경문에는 제8 공덕의 한 구가 빠져 있고, 아울러 제3의 매듭 짓는 경문이 빠져 있다. 출처(出處) 중에서는 정광(頂光)의 경문에 여덟 단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6수위(受位)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각(覺)을 해석한 것이고, 제2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제3은 매듭 지음이다. 매듭 짓는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알 수 있다. 제2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법과 비유와 합(合)이다. 법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9지 보살의 공양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둘째는 동일한 지위의 가위(加威)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는 부처님의 정수직(正受職)이다. 이 셋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광명을 해석한 것과 두 번째는 나머지 부처님과 동등한 것이며, 세 번째는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광명을 놓는 것이고, 둘째는 귀처(歸處)이니 두 구(句)가 있으며, 셋째는 이익을 변별함이다. 처음의 광명에 8업이 있으니, 알 수 있는 것이다. 광명이 정수리에 들어가는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사(事)를 기준으로 해서 사(事)의 정수리에 들어가는 것이며, 둘째는 행을 기준으로 해서 행의 정수리에 들어가는 것이며, 셋째는 실(實) 당과(當果)의 나타남을 기준으로 해서 행심(行心)에 들어가는 것이다. 준거할 수 있으니, 논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대진분(大盡分) 가운데 논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이 대진(大盡) 이후에 일승ㆍ돈교ㆍ삼승ㆍ소승 등의 불과를 성취하는 분제(分齊)는 뜻에 준거해서 없어지거나 생길 수 있다. 이 중에서 모든 경구(經句)에도 늘거나 줄어듦이 있으니, 논으로써 준거하라.
명칭을 해석하는 분(分)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능히 부처님의 운우(雲雨) 설법을 받아들여서 법운지(法雲地)라 이름하는 것이고, 둘째 ‘불자야……스스로 원력을 좇아서 자비를 일으켜’ 이하는 능히 법우(法雨)를 주입해서 모든 중생의 번뇌와 진염(塵焰)을 소멸하는 것을 법운지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 경문의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임을 알 수 있다. 셋째 ‘또한 다시 불자야……보살이 법운지에 머물러 도솔천으로부터’ 이하는 능히 동일한 과덕이다. 법우를 크게 주입해서 사물의 선근을 낳는 것이 구름의 상(相)과 흡사한 것을 법운지라 이름한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염력(念力)이 불법을 능히 지님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며, 둘째 ‘능히 일념에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 처소에 이르기까지’ 이하는 수법(受法)을 개별적으로 밝힌 것이다. 개별적인 것 속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 처소에서 많은 법을 들어 받는[聽受] 것이고, 둘째 ‘비유하건대 대해(大海)’ 이하는 많은 부처님 처소에서 정법(正法)을 들어 받는 것이니, 여기에는 비유와 합(合)과 매듭 지음의 세 가지 경문이 있다. 셋째 ‘해탈월의 말과……일념 가운데 능히 몇몇 처소를 감당하여 받아들일 수 있다’ 이하의 문답은 앞의 두 가지 분제를 밝힌 것이다. 전자 중에서 처음은 법이고, 다음은 비유이며, 나중은 합(合)이다. 세 번째 문답의 두 가지 분제 중에서 경문의 상(相)이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 중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뜻을 건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가설(假說)의 문답으로 간략함을 들어서 자세함을 나타낸 것이며, 셋째는 그 실다운 뜻을 나타낸 것이고, 넷째는 매듭 지음임을 알 수 있다.
신통력의 무상유상분 중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내(內)에 의거하는 것이고, 둘째는 외(外)에 의거하는 것이며, 셋째는 스스로의 상(相)이며, 넷째는 주지(住持)를 짓는 것이고, 다섯째는 환희하게 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대승(大勝)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이 여섯 가지에 나아가면, 처음 1문의 뜻은 앞의 네 가지를 관통하는데 이 처소의 경문에는 없다. 다음에 있는 1단락은 아래의 네 가지를 관통하는데 그러한 까닭은 논주가 경문이 포함한 많은 뜻을 잘 알아서 서로 얽어매 법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에 이러한 과(科)를 지은 것이다. 나머지 네 가지 문에 경문의 뜻이 모두 있으며, 나머지 경문은 논과 같다.
넷째의 주지(住持) 가운데 외(外)와 내(內)의 둘로 나누는데 이 둘 안에 각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섯째의 환희하게 하는 경문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염(念)과 청(請)의 둘로 나눈다. 다음은 정사(定事)를 들어서 답한 것이며, 셋째는 정업(定業)의 용(用)을 밝힌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는 업을 섭수해서 근본에 의거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섯째는 문답으로 정분(定分)의 제(齊)를 나타낸 것인데, 이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인(因)이고 나중은 과(果)인데 각기 문답이 있다. 처음의 인 안에서는 처음이 질문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은 명용(名用)이 있는 것이고, 둘째는 문답의 과(果)인데 답 안에 네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승분(大勝分)은 상지(上地)와 같으며, 조유(調柔) 등 3과(果)의 해석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자세히는 논에서 변별한 바와 같다. 지(地)의 영상(影像)은 논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상은 일승의 원통(圓通)한 불법에 의거해서 교(敎)의 분제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 마친다.
이제 다시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그 양위(兩位)를 나타낸 것인데, 경과 같다.
첫째는 이른바 등각위(等覺位)라 이름하며, 둘째는 묘각위(妙覺位)라 이름한다.
등각이란 것은 제10지의 금강무애도(金剛無礙道) 중에서 법계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른바 용복정법광삼매(勇伏定法光三昧)이다. 이 정(定)에 의거하는 가운데 10법을 수행하니, 첫째는 부처님의 부사의한 변통(變通)을 배우는 것이며, 둘째는 보살의 권속을 모으는 것이며, 셋째는 먼저 행한 바의 법문을 거듭 닦는 것이며, 넷째는 일체의 불국(佛國)에 수순해서 일체 부처님을 문신(問訊)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무명(無明)의 부모와 더불어 결별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중현문(重玄門)에 들어가는 것이며, 일곱째는 나타냄이 부처님과 똑같아서 일체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며, 여덟째는 두 종류 법신의 구족이며, 아홉째는 2습(習)이 있지 않은 것이며, 열째는 중도(中道) 제일의제(第一義諦)의 산정(山頂)에 오르는 것이다. 이 지위는 제3선(禪)에서 설하는데, 만약 외적인 상(相)을 기준으로 한다면 보처(補處) 보살에 해당한다. 또한 미세의 8상(相)을 성취함을 보이니 백 겁과 만 겁을 거치는 변화가 부처님과 같고, 보살이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께서 이 보살을 아시는 것이 금강삼매를 얻음을 말미암기 때문에 변현(變現)이 자재로우며 오직 생멸만이 다를 뿐이다. 자세한 것은 『영락경』과 같다.
묘각위(妙覺位)란 경에서 제4선(禪)을 가리켜서 설한 것인데, 뜻의 상(相)이 다분히 동일하기 때문에 요간(料簡)하지 않는다.
【문】이 경에서는 어째서 등각과 묘각의 두 지위를 설하지 않는 것인가?
【답】만약 삼승의 개별적으로 행하는 의문(義門)을 기준으로 한다면 분위(分位)를 기준으로 해서 상(相)을 취함을 올바름으로 삼는 것을 말미암기 때문에 등각과 묘각이 서로 형상을 나누어서 두 개의 상[兩相]을 이루는 것이다. 만약 이 경에 의거한다면, 원통자재(圓通自在)한 것이 형상의 정법(定法)을 올바름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섭수함이 인과의 두 뜻 속에 있는 것이다.
지(地)의 이익 중에서 경문은 다섯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지의 이익을 올바로 나타내는 것이며, 둘째 ‘이 세계 사천하에서처럼’ 이하는 지(地)의 광대한 이익을 밝힌 것이며, 셋째 ‘부처님의 힘으로써 시방의 보살’ 이하는 모든 보살이 운집해서 증명을 짓고 성취를 나타내는 것이 믿을 만함을 밝힌 것이고, 넷째 ‘금강장이 설하자 여래께서 따라 기뻐하셨고[金剛藏說如來隨喜]’ 이하는 그 설한 바를 밝힌 것이니 위로 성심(聖心)을 수순한 것이며, ‘여래께서 수희하시고’ 이하는 온갖 기틀의 마음에 흡족하여 대중이 똑같이 기뻐하는 것이고, ‘부처님이 계시면서’ 이하는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니, 이는 논에 의거해서 변별한 것이다.
경에 의거한 것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둘째 ‘이 품을 설할 때’ 이하는 사(事)를 기준으로 해서 지(地)의 뛰어남을 나타낸 것이며, 셋째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써’ 이하는 보살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제2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문답으로 뛰어난 뜻을 나타낸 것이며, 제3은 뛰어난 뜻을 매듭 지음이다.
둘째의 사(事)를 기준으로 한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대지를 움직이는 것이고, 둘째는 말미암는 바를 나타내는 것이며, 셋째는 꽃 등을 비처럼 내리는 것이고, 넷째는 큰 소리로 지덕(地德)을 찬탄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나머지 방향을 균등히 통틀은 것이다.
셋째의 보살이 증명하여 성취한 경문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보살이 여기에 온 것이고, 둘째는 지덕을 찬탄한 것이며, 셋째는 동일함을 나타내서 증명으로 삼는 것이고, 넷째는 다설(多說)을 들어서 증명으로 삼는 것이며, 다섯째는 증명의 말미암는 바를 추궁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균등하고 동일한 것이다.
논에 의거하면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의 이익이고, 둘째는 사(事)의 이익이다. 법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반대로 나타낸 것이고, 둘째는 수순해서 변별하는 것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수순하는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질문과 대답과 따지는 것과 해석임을 알 수 있다. 경문은 간략해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셋째, 게송을 거듭함 중에서 처음은 게송의 뜻을 밝히고 아울러 게송의 상생(相生)이 나중의 경문을 일으킴을 나타낸 것이며, 둘째는 게송을 올바로 밝힌 것이다. 여기서 전자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법을 관(觀)한 것이고, 둘째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둘째 ‘부사의를 보인다’ 이하는 이(理)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인덕(人德)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보살의 경계를 보인다’ 이하는 자리(自利)의 이익과 함께 하는 것이며, 셋째 ‘중생을 따른다’ 이하는 이타의 지혜로 끊는 작용을 함께 하는 것이다. 둘째의 이(理)를 나타낸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으로 나타내 보인 것이고, 둘째는 상(相)을 보인 것이며, 셋째는 설한 뜻을 변별한 것이다.
둘째 올바른 게송 중에는 90게송이 있으니, 처음의 69게송은 법운 등의 지(地)를 올바로 읊은 것이고, 다음의 ‘부처님의 지혜를 얻게 된다’ 이하의 21게송은 영상분(影像分)을 읊은 것이며, 나머지는 생략하고 읊지 않았다. 처음의 경문 중에서 29게송은 방편집지(方便集地)를 읊은 것이며, 또한 전자의 26게송은 앞의 9지(地)를 통틀어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만족지분(滿足地分)을 읊은 경문이다. 다음의 두 게송은 삼매분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10게송은 수위분(受位分)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일곱 게송은 대진분(大盡分)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여섯 게송은 석명분(釋名分)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13게송은 무상유상(無上有上) 등을 총체적으로 읊은 경문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금강장이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경문들은 10지(地)를 통틀어 읊었다고 할 수도 있으니, 준거해서 생각하라. 과(科)의 해석은 알 수 있다.
방편집지 안에서 처음의 두 게송은 집기(集起)의 공덕과 지혜의 행상과 수행의 불도 등을 읊은 경문이다. 다음의 27게송은 동상(同相)과 별상(別相)을 읊은 경문인데 이 경문에서 처음은 별(別)이고 나중은 동(同)이다. 별 중에서 처음 여섯 게송의 세 구는 초지(初地)의 상(相)을 읊은 것이며, 다음 한 게송의 한 구는 2지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3지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4지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5지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6지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7지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8지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9지를 읊은 것이다. 다음으로 ‘제일 미묘하고[第一妙]’ 이하의 세 게송은 동상을 읊은 것인데, 3도(道) 역시 좋다.
영상(影像) 중에서 처음의 19게송은 영분(影分)을 읊은 것이며, 나중의 두 게송은 지덕(地德)의 다함 없음을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 중에서 11게송은 제2의 뛰어난 공덕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제3의 공덕을 읊은 것이며, 이하의 네 게송은 제4의 공덕을 읊은 것이다. 나머지 경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23) 십명품(十明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변별한 것이다. 10이란 것은 수(數)이며, 명(明)이란 것은 용(用)이니, 두 뜻을 좇아서 명칭을 얻은 것이다.
이 이하의 5품은 지덕(地德)의 뛰어난 작용의 분제를 밝히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음에 온 것이다. 이것이 곧 둘째로 온 뜻을 밝힌 것이다.
셋째는 종지이다. 이것은 5품의 차례와 종지의 체(體)를 통틀어 해석한 것이다. 먼저 밝힌 것은 앞에서 이미 체를 얻었기 때문이며, 다음에는 체에 의거해서 용(用)의 자재로움을 일으킴을 밝히기 때문에 다음에 밝힌 것이며, 용이 스스로 일어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성취를 증명으로 삼는 이유는 이법(理法)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10인(忍)이 곧 이용(理用)임을 변별한 것이니, 대과(大果)의 인행(因行)은 10수(數)의 측량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은 아승기를 밝힘으로써 행법을 센 것이니, 이미 실덕(實德)을 성취해서 소시(小時)가 아니라도 옮겨 움직임[遷動]을 얻기 때문이다. 다음은 수량품(壽量品)을 밝힌 것이니, 이미 덕이 방소가 없어서 연(緣)에 따라 의현(依現)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보살의 주처(住處)를 밝혔을 뿐이다.
처음의 10명(明)이란 것은 덕용(德用)의 상(相)이다. 즉 위에 나온 10자재(自在)의 한 가지 질문에 답한 것이며, 또한 지(地) 중의 답이라 할 수도 있다. 이는 위의 질문에 통틀어 답한 것이다.
다음 10인(忍)이란 것은 곧 위에 나온 10정(定)의 한 가지 질문에 답한 것이다.
10원(願)은 초지(初地)의 답에 있으며, 다음의 10정(頂)과 수희심(隨喜心) 등의 10구는 승기(僧祇) 후의 3품이 총체적으로 답한 것이며, 또한 이전 두 품의 답을 통틀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이 이하의 5품은 앞의 10지에 속한 것인데 어째서 강장(剛藏)의 설이 아닌가?
【답】만약 덕체(德體)를 밝히기 어렵다면 반드시 사람에 의탁하고 사(事)에 기탁해서 설해야 한다. 아래의 5상(相)은 개별적인 뜻에 의탁해서 나타낸 것이다.
인(忍)의 보현설을 밝힌 것은 뛰어난 덕의 대용(大用)이 넓고 높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넷째,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처음 10명(明)의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수(數)를 연 것이며, 다음의 둘째는 질문에 의탁한 것이며, 셋째는 덕용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안주(安住)’ 이하는 찬탄해서 매듭 지음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제3의 경문은 6통(通)으로 나눔으로써 10명(明)이 된다.
【문】명(明)과 통(通)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답】체(體)는 동일하고 뜻은 다르지만, 막힘이 없다. 일(日)이 식근(識根)에 통하는 것은 일(日)의 밝음을 말미암는 것이다. 열 가지 중에서 제1은 타심통(他心通)이고, 제2와 제4는 천안(天眼)이니 곧 현재와 미래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제3은 숙명통(宿命通)이고, 제5와 제7은 천이(天耳)이니 또한 제7 의법진(意法塵)의 섭수라 할 수 있다. 제6과 제8은 신족(神足)이니 곧 신통(身通)이다. 제9와 제10은 보편적인 것으로서 누진지(漏盡智)이니, 이 두 가지가 모두 성품을 요달함을 앎으로 삼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제7의 소리[聲]와 제8의 색(色)은 견불견분(見不見分)이라 할 수 있다. 또 제10은 멸진정이다. 또 6통(通)과 3명(明)이 삼승교이고 10명(明)과 10통(通)이 일승교임을 변별한 것은 서로 섭수할 수가 없으니, 깊고 얕음의 분제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타심통의 내용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이 명칭’ 이하는 명칭을 매듭 지은 것이다. 나머지 아홉도 다 마찬가지이다. 제2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이 계(界)를 앎을 밝힌 것이며, 둘째 ‘이 같은 등’ 이하는 나머지 방향을 통틀어 섭수한 것이다. 처음의 밝히는 것 가운데서 둘로 나누니, 첫째는 곧바로 마음을 알고 법의 차별을 아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성문의 마음’ 이하는 범성(凡聖)의 보류(報類)를 기준으로 해서 지용(智用)의 특수한 능력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행을 따르는 방편이고, 다음의 ‘천심(天心)’ 이하는 유(類)를 따르는 방편의 지혜를 변별한 것이다.
둘째 천안(天眼) 중에서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보(報)의 차별에 따라서 똑같이 알지 않음을 밝힌 것이며, 다음으로 ‘보살이 장애가 없는 밝음으로써’ 이하는 지은 업이 의(儀)의 경계를 성취함을 아는 것이다.
셋째 숙명(宿命)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자타(自他) 아래의 지위 경계를 아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다음의 개별적인 것에서 ‘또 과거를 억념(憶念)한다’ 이하는 부처님의 상위(上位) 경계를 아는 것이다.
넷째 미래지명(未來智明)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선악의 아래 지위의 인법(人法)을 아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둘째 ‘미래의 한량없음을 안다’ 이하는 부처님의 상위의 행법을 아는 것이다.
다섯째 천이(天耳)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건립이고 다음은 해석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제2의 경문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천이가 듣고 지니는 덕을 변별한 것이니 여기에는 네 구가 있으며, 둘째 ‘시방의 멀고 가까움’ 이하는 천이의 용사(用事)를 밝힌 것이다. 이 중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으로 ‘동방에서’ 이하는 개별적인 것이며, 셋째 ‘동방과 같다’ 이하는 9방(方)을 유비(類比)한 것이다. 두 번째인 동방의 개별적인 변별 중에서는 세 가지로 나누니, 처음은 부처님이고, 다음은 법체를 변별한 것이며, 셋째 ‘한량없음을 잘 이해한다’ 이하는 사람을 대해서 법을 설한 것이다. 두 번째의 법체 중에서는 이(理)와 행(行)의 두 가지 가르침을 냈는데, 설한 바 등은 이(理)의 가르침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 ‘다스리는 바’ 이하는 행의 가르침이다.
법에는 간략히 10구가 있으니, 첫째는 교체(敎體)의 상(相)이며, 둘째는 기신(起信)의 상이며, 셋째는 뜻과 종지를 보이는 상이며, 넷째는 해석의 상이며, 다섯째는 제학(制學)의 상이며, 여섯째는 수학(受學)의 상이며, 일곱째는 사(事)를 들어서 나아가기를 권하는 상이며, 여덟째는 문궤(聞軌)이며, 아홉째는 사궤(思軌)이며, 열째는 수궤(修軌)이다.
다음 셋째의 ‘사람을 대함’ 중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이법(理法)의 기틀이고, 둘째 ‘얻은 바의 공덕’ 이하는 행법의 기틀이며, 셋째 ‘자세히 설한다’ 이하는 가르침의 기틀이다. 이 경문의 뜻은 터득하기 어려우나,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천이(天耳)의 밝은 덕을 찬탄한 것이다.
여섯째 신통(身通)의 내용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명칭의 뜻을 건립한 것이고, 다음은 해석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제2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신업(身業)의 체(體)이고, 둘째 ‘만약 시방을 듣는다면’ 이하는 업체(業體)의 용(用)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다 스스로 요달해 안다’ 이하는 업의 분제를 매듭 지은 것이다. 또 이것은 위력(威力)을 통틀어 기준으로 한 것이다. 제8은 나타난 색(色)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일곱째 분별언음지명(分別言音智明)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소리를 아는 것이고, 둘째 ‘보살이 그 등(等)을 따라서’ 이하는 앎의 까닭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중생의 과보를 아는 음성을 변별한 것인데,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며, 셋째는 앎을 매듭 지은 것이다. 다음의 ‘잘 분별해서 안다’ 이하는 2제(諦)의 교법과 근기(根器)를 아는 것이다.
여덟째 출색신장엄지명(出色身莊嚴智明)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색성(色性)을 요달하는 것이고, 둘째 ‘보살이 깊은 법계에 들어가 주지(住持)한다’ 이하는 연(緣)이 모여서 색(色)을 이루는 것이 곧 명(明)의 작용임을 변별한 것이다. 셋째 ‘불자야, 보살이 무색(無色)의 법계에 들어가서’ 이하는 용상(用相)을 통틀어 성취한 까닭을 변별한 것이다. 제2의 색을 나타낸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스스로 행하는 색의 체(體)의 뛰어남을 밝힌 것이고, 둘째 ‘대자색(大慈色)’ 이하는 이타를 밝히기 때문에 정색(淨色)을 나타낸 것이며, 셋째 ‘여래를 출생한다’ 이하는 인과의 색상(色相)과 대용(大用)의 성취를 변별한 것이다. 보현의 색(色)은 총체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으로 110구가 있다. 이 색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으니, 범우(凡愚)의 25색(色)이 곧 공(空)이기 때문이다.
아홉째 진실지명(眞實智明)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아는 바의 이(理)를 기준으로 해서 지명(智明)의 체(體)를 밝힌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같이 안다’ 이하는 지(智)의 교묘한 작용을 변별한 것이니 곧 그 상(相)을 밝힌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무상(無相)의 경계를 잡은 것이고, 둘째 ‘일체법의 차이를 안다’ 이하는 무생(無生)의 경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두 번째 용(用)의 경문은 그 속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앞에서 안 바를 거듭 든 것이고, 둘째 ‘집착하지 않는다’ 이하는 지(智)의 교묘한 작용을 변별한 것이다. 용(用)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용이 자재하여 집착이 없음을 밝힌 것이고, 둘째 ‘일체를 버리지 않는다’ 이하는 적(寂)을 수순해서 용상(用相)을 성취함을 해석한 것이며, 셋째 ‘모든 법을 관찰한다’ 이하는 용의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다.
열째 일체법삼매정수지명(一切法三昧正受智明)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 안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적(寂)에 머무는 명체(名體)를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또한 버리지 않는다’ 이하는 곧 적(寂)의 상용(常用)이며, 셋째 ‘보살은 일체법이 멸진(滅盡)한 정수(正受)에서’라는 경문 이하는 분제를 변별한 것이다. 다음의 매듭 짓는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매듭 지음이고, 다음은 정행(定行)의 덕용(德用)이 깊고 넓음을 찬탄한 것이며, 셋째는 지자(知者)를 우러러 추구한 것이다. 큰 단락의 네 번째는 매듭 지음인데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매듭 지음이고, 다음은 덕의 양(量)을 밝힌 것임을 알 수 있다.
24) 십인품(十忍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10이란 것은 수(數)이고, 인(忍)이란 것은 경계[境]와 신(神)이 만나는 것이니, 정제(情諦)라 할 수 있다. 나머지 둘의 뜻은 앞에서 이미 변별하였다.
넷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인데 이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명칭을 총체적으로 열거한 것이고, 둘째는 해석이며, 셋째는 게송을 거듭 읊은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고(告)한 것이고, 둘째는 인(忍) 인과(因果)의 뛰어난 상(相)을 성취함을 찬탄한 것이니, 인(因)과 과(果)가 곧 둘이 된다. 셋째는 질문이고, 넷째는 명칭을 열거한 것이며, 다섯째 ‘이 명칭’ 이하는 매듭 지음이며, 여섯째는 모든 부처님께서 동일하게 설하심을 인용해서 증명하여 성취한 것이다.
둘째의 경문을 해석함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변별한 것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이 10인(忍)에서 앞의 둘은 가행(加行)의 섭수이고, 다음의 무생인(無生忍)은 정체(正體)의 섭수이며, 나머지 일곱은 후지(後智)의 섭수이다. 지위를 기준으로 하면 음성을 수순하는 것은 3지의 이전이며, 순인(順忍)은 곧 4ㆍ5ㆍ6지이며, 무생인은 곧 7지 이상이며, 나중의 일곱 인(忍)은 9지 이상이다. 만약 시(時)를 통틀면 곧 가지런히 동등한 것이다. 이 인(忍)에서 앞의 셋은 마음과 경계가 명칭을 얻은 것이고, 나중의 일곱은 비유를 좇아서 칭호를 받은 것이다.
초인(初忍)을 개별적으로 해석한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든 것이고, 다음은 해석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둘째, 순인의 세 구는 앞과 같다. 셋째, 무생에 세 가지가 있는 것은 또한 앞과 같다.
둘째의 해석에 나아가면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건립하는 것이고, 다음은 질문이며, 셋째는 답이다. 나중의 일곱 인(忍)이 상생(相生)하는 차례는 논과 같다. 이 뜻은 무엇을 말하는가? 의심하는 자가 “만약 법이 없다면 어째서 경(經)이 환(幻)과 같음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인가?”라 하고, “환법(幻法)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식(識)을 취하는 것이지만 세간의 법은 그렇지 않으니, 어떻게 같다고 말하는가?”라고 의심하니, 이 때문에 경에서는 마치 불꽃이 갈심(渴心)을 낳음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의심하기를 “그 불꽃은 수용(受用)을 얻지 못하지만 세간의 법은 그렇지 않으니, 어떻게 같다고 말하는가?”라고 하니, 답하기를 “꿈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의심하기를 “꿈이라면 깨어 있는 자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세간의 법은 성(聖)과 범(凡)이 공유하니, 이렇다면 어떻게 같다고 말하는가?”라고 하니, 답하기를 “메아리처럼 비록 공유하더라도 실답지가 않은 것이다”라고 한다. 의심하기를 “메아리라면 곧 앞에서는 이익이 없지만 세간의 법은 그렇지 않으니, 이는 어째서인가?”라고 하니, 답하기를 “번갯불이 지은 자가 없으면서도 접촉해서 비추는 작용을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의심하기를 “번갯불이 만약 작용이 있다면 이는 곧 실다운 법이다”라고 하니, 답하기를 “화(化)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실다움이겠는가?”라고 했다. 의심하기를 “만약 일체가 무(無)라면 누가 능히 화(化)를 짓는가?”라고 하니, 답하기를 “공(空)이 모든 색(色)을 이루는 것과 같으니 어찌 유(有)이겠는가?”라고 했다.
넷째 환(幻)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관한 바의 법을 변별한 것인데,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으로 드는 것이고, 둘째 ‘보살 등’ 이하는 관상(觀相)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비유하자면 환화(幻化)와 같으니’ 이하는 환상(幻相)을 자세히 변별한 것인데 여기에는 비유와 합(合)의 두 경문이 있다. 두 번째 ‘보살이 관찰해서’ 이하는 인행(忍行)을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가행(加行)의 인(忍)이고, 둘째 ‘출생하다’ 이하는 후득(後得)의 인(忍)이다.
다섯째 여염인(如焰忍)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는 법과 비유와 합(合)과 관상(觀相)을 변별함이 있는데, 네 경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여섯째, 몽인(夢忍)의 경문은 염인(焰忍)과 동일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곱째 향인(響忍)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 비유가 있는데 각기 법과 비유와 합(合)의 세 경문이 있다. 전자는 자리(自利)이고, 후자는 이타(利他)이다.
여덟째 전인(電忍)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제2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법이고, 다음의 ‘행하지 않는 보살’ 이하는 비유이며, 셋째 ‘이 명칭’ 이하는 매듭 지음이며, 넷째 ‘만약 보살이’ 이하는 이익의 뛰어난 용(用)을 변별한 것이다. 두 번째의 비유에 두 가지 비유가 있으니, 처음은 이(理)의 체(體)를 향한 것이고, 둘째는 사(事)의 용(用)을 향한 것인데 각기 법과 비유와 합(合)의 세 경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홉째 화인(化忍)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하나는 법을 설함이고, 다음은 비유이며, 셋째 ‘이처럼 보살이 세간에 거처하면서[如是菩薩處於]’ 이하는 합(合)이며, 넷째 ‘이것이[是爲]’ 이하는 매듭 지음이고, 다섯째 ‘불자야, 보살이 이 인(忍)을 성취해서’ 이하는 용(用)의 이익을 밝힌 것이다.
처음 법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행체(行體)의 아는 바를 밝힌 것이며, 둘째 ‘불자야, 이것이[佛子是爲]’ 이하는 아는 바의 기용(起用)이 자재로움을 매듭 지은 것이다. 합(合)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합한 것이고, 둘째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하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니, 또한 법의 비유를 기준으로 해서 행의(行儀)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유하면 화(化)와 같이’ 이하는 법의 비유이니 뛰어난 용(用)의 이익을 쌍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열째 허공인(虛空忍)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10구는 인(忍)의 체(體)를 밝힌 것인데, 하나하나의 구(句)는 모두 법의 비유가 있으며, 둘째 ‘불자야, 이 같은 보살’ 이하의 일곱 구는 인행(忍行)을 성취함을 매듭 지은 것이며, 셋째 ‘비유하면 허공과 같으니’ 이하는 다시 비유로써 행의 체(體)를 견준 것이며, 합(合)의 비유로써 앞의 인덕(忍德)을 성취한 것이다. 넷째 ‘이 명칭’ 이하는 매듭 지음이며, 다섯째 ‘만약 보살이 옴이 없는 몸[無來身]을 성취해서’ 이하는 인행의 용(用)의 이익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10구 중에서 한 구는 총체적인 것이고, 아홉 구는 개별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제3의 자세한 비유로 인행을 견준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11구는 행의 성취를 밝힌 것이고, 둘째 ‘왜냐하면’ 이하는 인행을 성취함을 해석한 것이다. 이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이 뜻은 이해하기가 어려우니 생각해 보라. 어째서 그런가? 의심하여 말하기를 “만약 법이 공(空)과 같다면, 여기에는 두 가지 의문이 있다. 첫째는 공의 체(體)가 무(無)인 것이니, 사물의 법도 이와 같을 수 있다. 둘째는 세간 사(事)에서 공을 구별함과 같으니, 사물이 나타난 법에 의거하는 것도 또한 이처럼 따로 별다른 공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니, 답의 상(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제3의 게송을 거듭함의 경문에는 129게송이 있다. 처음의 열 게송은 음성인(音聲忍)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열 게송은 순인(順忍)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열 게송은 무생인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열 게송은 환인(幻忍)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열 게송은 염인(焰忍)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15게송은 몽인(夢忍)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17게송은 향인(響忍)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7언(言) 20행의 게송은 전인(電忍)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열 게송은 화인(化忍)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열 게송은 허공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일곱 게송은 맺어 찬탄한 경문을 총체적으로 읊은 것이니, 인(忍)의 이익을 밝힌 것이다.
25) 아승기품(阿僧祇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승기(僧祇)라는 것은 10수(數)의 시작하는 명칭이다. 이 품은 세 가지 뜻으로부터 명칭을 얻은 것이다. 둘째의 온 뜻과 셋째의 종지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미 변별했다.
넷째,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심왕(心王)이 부처님의 자설(自說)을 질문한 까닭은 이상에서 대과(大果)의 인(因)을 말미암는 것이니, 과인(果人)이 아니면 그 경계[際]를 능히 변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스스로 설하신 것이며, 법이 마음을 의거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심왕이 질문을 일으킨 것이다. 또는 인(因)과 과(果)가 서로 나타냄이 될 뿐이다. 또한 수(數)의 법이 사(事)를 알아서 과(果)에 통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스스로 설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경문에는 “여래는 정각불지(正覺佛智)의 뜻과 동등하다”고 한 것이다.
이 품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나중은 답이다. 질문의 뜻은 보살의 행덕(行德)이 그 수(數)의 극(極)을 다한 것인데 보살의 수법(數法)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성인의 경계가 이미 넓어서 보살이 다 마쳤지만 어떤 수법으로써 그 분량을 궁진하게 됐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물을 수 있으니, 이로써 아래 사람에게 보인 것이다. 답 중에서는 120수(數)를 총체적으로 들어서 답한 것이다.
대수(大數)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아승기이며, 둘째는 아래에서 무량(無量)이라 이름 붙인 것이니 한역하면 불가량(不可量)이며, 셋째는 분제(分齊)가 없는 것이고, 넷째는 주변(周遍)이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아래에서 무수(無數)라 이름 붙인 것이니 한역하면 불가수(不可數)이다. 여섯째는 불가칭(不可稱)이라 말한 것이며, 일곱째는 불가량(不可量)이라 이름 붙인 것인데 여기서는 ‘불가(不可)’란 글자가 빠져 있으며, 여덟째는 불가사의(不可思議)라 이름 붙인 것인데 아래에 있는 제7과 같은 것이며, 아홉째는 불가설(不可說)이라 이름 붙인 것이며, 열째는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이 질문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답 가운데 나아가면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심왕의 질문을 찬탄한 것이고, 둘째는 듣기를 권유한 것이며, 셋째는 인가(忍可)이며, 넷째 ‘부처님께서 고하시기를’ 이하는 질문한 것에 대한 올바른 답이다. 이 경문에 나아가면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나중은 게송이다. 긴 행은 곧 능히 수법(數法)을 세는 것이고, 게송은 곧 소수(所數)를 세는 것이니, 이것은 곧 서로 엇갈려서 수의 뜻과 덕의 용(用)을 나타내는 것이다.
긴 행 속에는 120번수(番數)의 법문이 있으니, 처음의 1백(百)은 승기(僧祇)를 이룬 것이고, 둘째 ‘승기’ 이하는 차례대로 10수(數)를 성취하여 앞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또 120수의 분제라는 것은 처음의 구려구(拘黎句)를 좇아서 인(因)이 되고, 다음의 ‘불변’ 이하의 개별적으로 있는 1백 구는 만수(滿數)가 된다. 다음에 있는 20구는 수(受) 등의 10구를 좇아서 인(因)이 되고, 승기 등의 10구를 좇아서 만수(滿數)의 구가 된다.
제2의 게송 중에서는 오직 위의 제9의 수법(數法)만을 취함으로써 덕행을 교량(校量)한 것이지, 위의 경문을 읊은 것이 아니다. 이 중에는 245게송이 있는데, 이 가운데서 모든 게송의 총장(總長)은 두 종류의 뜻을 기준으로 하였으니,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인 것이다. 총체적인 것은 혹은 사(事)이고, 혹은 이(理)이고, 혹은 행(行)이고, 혹은 경(境)이고, 혹은 인(因)이고, 혹은 과(果)이고, 혹은 문(文)이고, 혹은 의(義) 등과 나아가 현(顯)ㆍ발(發)ㆍ석(釋) 등이니, 경문의 상(相)은 스스로 드러난다. 이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개별적인 것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경계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지정각(智正覺)이고, 두 번째는 중생세간이며, 세 번째는 국토세간이다. 둘째는 마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른바 정조(正助)이다.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14행은 능수(能數)를 밝힌 것인데 그 중에 10중(重)의 적수법(積數法)이 있으니, 곧 10문(文)이 된다. 둘째는 사(事)를 대해서 소수(所數)를 변별한 것인데, 이 사(事)를 대한 소수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제9의 수량법(數量法)을 쓰는 것이며, 둘째 ‘섭수하여 취한 것이 언설로 전(轉)할 수 없으니’ 이하는 제10수(數)의 인(因)을 전(轉)하여 취한 것이니, 양법(量法)으로써 쓰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은 단지 증수(增數)의 법을 밝히고자 한 것일 뿐 이와 같은 것만은 아니다. 셋째, 나중의 한 행은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제10수를 쓰지 않는 까닭을 질문한 것은 제10수가 부처님께 속하기 때문이다. 경문에서 비록 불과법(佛果法)을 밝힐지라도 능히 선근을 회향한 인위법(因位法)을 취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한 까닭은 과(果)가 인(因)에 서로 통하여 두 처소의 나타냄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곧 무수(無數)에서의 수(數)일 뿐이다.
26) 수명품(壽命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명칭을 변별한 것에서 수(壽)라는 것은 명근(命根)이며, 또한 명(命)과 수(壽)가 둘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대승에 의거하면 곧 음(陰)의 상속이고, 소승에 의거하면 따로 불상응의 성품이 있는 것이다. 둘째의 온 뜻과 셋째의 종지는 위에서 이미 분별했다.
넷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이 아래의 두 품에서 심왕이 스스로 설한 것은 명처(命處)가 일정하지 않아서 마음을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오직 인위(因位)만이 갖가지 뜻의 자재로움이 있을 수 있으니, 곧 무수(無壽)에서 수(壽)인 것이다. 이 중에서 어째서 과토(果土)를 드는가? 이는 처소를 들게 됨으로써 능히 수행하는 사람을 취하기 때문에 아래에서는 ‘보현이 그 속에 충만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고하는 것이고, 둘째는 의거하는 바의 땅을 든 것이며, 셋째 ‘보현’ 이하는 능히 인행(因行)을 닦아서 들어감을 변별한 것이다. 제2의 경문에서 처음은 10토(土)를 간략히 하였고, 둘째는 자세히 교량(校量)하였을 뿐이다.
27)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사람의 뜻과 의거한 바의 세 가지 뜻이 명칭을 얻음을 알 수 있다. 둘째의 온 뜻과 셋째의 종지는 위에서 이미 변별하였다.
넷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상(相)을 기준으로 하면 아래 지위와 동일하기 때문에 처소를 변별한 것이다. 이는 곧 머묾 없음[無住]에서 머무는[住] 것이다. 또 비록 동일한 사람이라도 남이 없음[無生]을 남[生]으로 삼고 무주를 주(住)로 삼는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유(有)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시방의 청정한 8주처(住處)를 밝힌 것이며, 둘째는 유위를 다하지 않음을 변별하기 때문에 사해(四海)의 15염처(染處)에 위탁한 것이다.
28) 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
이 이하는 제2회상 중의 32가지 질문에 대해 답한 것이며, 나중의 열세 가지 과덕(果德)은 질문이다. 그러나 문답으로 뜻을 변별한 것은 원종(圓宗)의 비밀스런 가르침을 밝히기 위한 것이니, 때에 따라 듣고 닦는 상(相)의 방편을 나타낸 것이 심목(心目)의 치사(致使)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법을 설해서 이익을 입은 자는 종취(宗趣)를 은폐함이 없으며, 발심하여 존숭하는 자는 익혀서 구함을 덮어 가리지 않으니, 이 때문에 경에서는 “정설(正說) 가운데 말을 따르는 뜻을 두고, 정의(正義) 가운데 뜻을 따르는 말을 둔다. 말을 따르는 뜻은 그 뜻이 별체(別體)의 뜻이 아니고, 뜻을 따르는 말은 그 말이 별전(別詮)의 말이 아니니, 이것이 바로 말하는 자의 올바름이라면 집착할 수 없는 것이라서 명전(名詮)으로써 법체를 정한다. 따라서 이 경의 올바른 종지 중에서 인과가 서로 따르고 문답이 연이어 비춤으로써 하나의 뜻도 은폐되거나 상실되지 않으니 이것이 곧 대성(大聖)의 교묘함이다”라고 하였다.
방편으로 닦아 성취하는 인과(因果) 중에서 이상은 인행(因行)을 답해 마친 것이며, 다음 아래의 3품은 과(果)에 답한 것이다. 처음의 부사의(不思議)는 곧 법신의 덕이며, 다음의 상해(相海)는 곧 보신의 덕이며, 다음의 소상(小相)은 곧 화신의 덕이니, 이는 삼승에 의거한 것이다. 만약 일승에 의거한 때라면 처음의 품(品)은 체(體)이고, 다음의 품은 상(相)이며, 세 번째의 품은 용(用)이다.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 명칭을 변별한 것이다. 부처님의 부사의법이란 것은 이것이 과(果)를 말미암기 때문에 부처님을 표방해서 초과(初果)로 삼은 것이니, 아래 지(地)의 측량할 바가 아니다. 법이란 것은 인인(因人)이 궤칙할 바이며, 또한 자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세 가지 뜻에 나아가서 명칭을 얻은 것이다.
둘째, 어찌하여 이 품이 왔는가? 인행(因行)이 다 원만해짐을 말미암아 다음의 행이 성취되어서 과(果)를 얻은 뿐이다.
셋째, 종지이다. 이 품의 3신(身) 안에서는 법신을 종지로 삼는다. 만약 체(體)ㆍ상(相)ㆍ용(用)으로써 나눈다면 곧 과덕 자체가 종지가 된다. 또한 처음은 체이고 다음은 상이며 나중은 용이라 할 수 있으니, 3신을 기준으로 해서 이 세 가지를 통틀었을 뿐이다.
넷째,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청련화(靑蓮花)로써 설한 까닭은 과(果)가 스스로 드러나지 못하고, 진실로 인(因)을 말미암아서 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청련화는 뛰어남이다. 연화장(蓮花藏)에게 고한 것은 정장(淨藏)을 인(因)한 것이 아니요, 뛰어난 과(果)를 섭수(攝受)함을 말미암지 않는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서(序)이고, 둘째 ‘이 때 청련화가 부처님의 신력을 이어받아서[爾時靑蓮華承佛]’ 이하는 올바로 설함을 밝힌 것이다.
서(序)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모인 대중이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인데,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으로 염(念)을 낳는 것이고, 둘은 의심되는 법을 내는 것이다. 두 번째 ‘이 때 세존께서’ 이하는 위의를 가(加)하여 힘을 주는 것이며, 세 번째 ‘이 때 청련화가 즉입(卽入)해서’ 이하는 정심법(定審法)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다. 또한 정(定)에 들어가지 않는 까닭이란 것은 이 과법이 이미 스스로의 깊고 미묘함을 말미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정(定)에 들어감을 나타냄은 신해(信解)에서 물러서기 때문이니, 법의 깊음으로써 하기 때문에 단지 법계를 살필 뿐이다. 아래의 두 품은 이를 따랐을 뿐이다.
【문】이를 인해서 상하를 요간(料簡)한 경문 중에서 법계란 것은 어떤 관(觀)의 경계인가?
【답】이 경문과 『지론』에 의거하면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만약 『지론』에 의거해서 판석(判釋)하면 곧 제일의제인 이관(理觀)의 경계인데, 이것은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판별한 것이다. 둘째, 만약 경의 상하 경문에 의거하면 곧 이(理)와 사(事)의 두 관(觀)의 경계를 통틀은 것인데 그 법은 크게 통한 것으로서 국한된 것이 아니며, 그 지위도 무위(無爲)에 있을 뿐이다.
처음의 질문에서 간략히 10법을 염(念)하는 것은 과법이 되는 것이지 사량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 10구의 뜻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한 구는 의과(依果)를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두 구는 인행(因行)을 질문한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정보(正報)의 과덕을 질문한 것이며, 다음의 세 구는 부처님의 법신과 음성과 지혜의 3업의 덕상(德相)을 질문한 것이며, 이하의 세 구는 신력(神力)의 자재로움을 질문한 것이다.
제3의 심법(審法) 중에 있는 10구의 내용에서 처음의 다섯 구는 자리(自利)이고, 이하의 다섯 구는 이타(利他)이다. 둘째 ‘이 때 청련화’ 이하는 올바로 설한 것이다. 이 품에서 위의 10구를 멀리서 답한 것은 법신의 덕이며, 다음의 상해(相海)는 부동(不動)의 한 구에 답한 것으로서 보신의 덕이며, 소상(小相)은 위에 나온 부처님의 6근(根)과 부처님 지혜의 두 구에 답한 것으로서 화신의 과(果)이다. 이것을 청련화장(靑蓮花藏)에게 고한 것은 깊고 오묘한 승기(勝器)이기 때문이다.
답의 경문은 두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10구는 총체적인 것이고, 또한 이것은 개별적인 것이니, 이 구(句) 아래부터이다. 개별적인 것 속에는 320종류의 공덕 법문을 간략히 들어서 보였는데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50구는 위에 나온 찰토(刹土)의 한 가지 질문에 답한 것이며, 둘째 ‘10가지의 출생하여 주지(住持)하는’ 이하의 50구는 위에 나온 정원(淨願)과 종성(種性)의 두 가지 질문에 답한 것이며. 셋째 ‘10가지의 불사(佛事)가 있다’ 이하의 60구는 위에 나온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시는 한 가지 질문에 답한 것이며, 넷째 ‘일체의 모든 부처님에게는 걸림 없이 머무름[無礙住]이 있다’ 이하의 90구는 부처님의 세 가지 업상(業相)과 세 가지 질문에 답한 것이며, 다섯째 ‘10가지의 가장 뛰어난 힘’ 이하의 70구는 위에 나온 신력(神力)의 작용에 대한 세 가지 질문에 답한 것이다.
처음의 50구 중에서 처음의 10구는 행덕(行德)이 의거하는 묘주(妙住)를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10구는 실다운 성품이 연(緣)에 따름으로써 10가지의 행덕을 성취하는 것이며, 다음의 10구는 법에 칭합해 행을 일으킴으로써 10방편지(方便智)를 성취하는 것이며, 다음의 10구는 교묘한 작용이 연(緣)에 따름으로써 자타의 덕이 갖춰져서 때[時]를 잃지 않는 것이며, 다음의 10구는 경계를 생각지 않음으로써 경계의 교묘한 작용이 기틀에 감응하는 데 잘못이 없기 때문에 과를 초월해 홀로 빼어남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10구 중에서 처음의 두 구는 자분(自分)의 상응하는 행덕을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일곱 구는 이타의 섭화행(攝化行)이며, 다음의 한 구는 자타가 실(實)에 계합하여 평등해서 둘이 아닌 것이다. 둘째의 10구 중에서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일곱 구는 법신의 공덕과 6근의 작용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두 구는 의정(依正)의 두 법과 신통의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불인(佛因)의 원만 평등과 모든 부처님의 증득한 바를 밝힌 것이다. 셋째의 10구는 알 수 있다. 넷째의 10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두 구는 자리(自利)이고, 나중의 여덟 구는 이타(利他)이다. 다섯째의 10구는 알 수 있다.
둘째의 50구 중에서 처음의 30구는 위에 나온 정원(淨願)에 답한 것이며, 나중의 ‘악을 여의다[離惡]’ 이하의 20구는 종성(種性)에 답한 것이다. 처음의 10구는 올바른 지혜로부터 나온 것이며, 나중은 주지원지(住持願智)의 용(用)을 얻은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세 구는 자리이고 나중의 일곱 구는 이타이다. 제2의 10구는 외용(外用)이 내성(內成)에 의거한 것이니, 곧 내덕법(內德法)이다. 그 중에서 처음의 세 구는 3업의 덕을 갖춘 것이고, 다음의 일곱 구는 3업의 섭화(攝化) 공능이다. 제3의 10구는 앞의 내덕(內德)의 성취를 말미암아서 실제적인 용(用)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홀로 뛰어나 덧붙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처음의 두 구는 자리의 행이고, 다음의 두 구는 이타의 방편이며, 다음의 한 구는 자리의 덕이 원만한 것이고, 다음의 여섯 구는 이타의 덕을 갖춘 것이다. 제4의 10구는 덕이 드러나기 때문에 청정한 것인데 처음의 여섯 구는 스스로의 행이 무염(無染)인 것이고, 다음의 네 구는 이타의 처소에 집착이 없는 것이다. 제5의 10구는 청정한 결정이기 때문에 구경(究竟)인 것인데, 처음의 여섯 구는 인행(因行)이 원만하고 청정한 것이며, 다음의 네 구는 3신(身)의 과(果)가 원만하고 청정한 것이다. 네 구 중에서 처음의 한 구는 화(化)이고, 한 구는 법이며, 두 구는 보(報)이다.
셋째의 60구에서 처음의 10구는 화덕(化德)을 밝힌 것이고, 나중의 50구는 보신의 덕이 모두 이 법신의 덕인 것이다. 불사(佛事)라는 것은 능히 대용(大用)을 흥기하는 것으로서 화신이 이익을 섭수하는 상(相)이다. 처음의 다섯 구는 이타의 방편이고, 다음의 다섯 구는 이타의 올바른 이익이다. 나중의 50구 중에서 처음의 11구는 다함 없는 지혜의 작용이 바다와 같은 것인데, 처음의 한 구는 의거하는 바의 법신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10구는 능히 의거하는 덕용(德用)인데 처음의 네 구는 자리의 행이고 나중의 여섯 구는 이타행의 체(體)이다. 제3의 10구는 상법(常法)인데 처음의 네 구는 자각행의 원만이며, 다음의 여섯 구는 각타행(覺他行)의 갖춤이다. 제4의 10구는 한량없이 부처님 법을 설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제5의 10구는 항상 불사를 짓는 것인데 처음의 네 구는 정토의 3업이 교화를 베풀어 이익을 섭수함에 대해 밝힌 것이며, 다음의 세 구는 색(色) 등의 주지(住持)를 나타내는 것이며, 다음의 두 구는 실(實) 등의 장엄을 나타낸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정(定)에 들어가 모든 보살을 이익되게 하는 것인데, 또한 단지 침묵일 뿐 정(定)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제6의 10구는 견고(堅固)인데 처음의 다섯 구는 자분(自分)의 덕이 원만한 것이고, 다음의 두 구는 승진행(勝進行)의 회향이며, 다음의 세 구는 닦아서 성취하고 교화하여 이롭게 하는 것이다.
넷째의 90구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30구는 위에 나온 법신의 한 가지 질문에 답한 것이며, 다음의 30구는 위에 나온 음성 등의 구업에 답한 것이며, 아래에 있는 30구는 불지(佛智)의 의업에 답한 것이다.
처음의 10구는 무애주(無礙住)인데, 처음의 세 구는 자행(自行)의 무애이고, 다음의 일곱 구는 이타의 무애이다. 제2의 10구는 최승장엄(最勝莊嚴)인데, 처음의 세 구는 3업의 체(體)의 장엄이고, 다음의 여섯 구는 3업의 용(用)이며, 다음의 한 구는 이타의 덕행(德行)이 원만한 것이다. 제3의 10구는 자재(自在)의 정법임을 알 수 있다. ‘모든 부처님의 정법을 먼저 깨닫고 또한 학지(學地)에 머물지 않고 정각을 성취한다’고 말한 것에서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경문 중의 뜻을 가려낸 것이니, 이 중에서 부처님이라는 것은 소승의 부처님과는 동일하지 않은데 공교인(共敎因)의 대불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현의 뜻을 가지고 이생(異生)의 신별문(信別門)을 가려내는 것이다. 그 부처님께서 가령 전후(前後)로 현성(現成)하시더라도 모두 선각(先覺)과 동일하고, 모두 똑같이 구경(究竟)에 있으면서 그 학지(學地)와 불각(不覺)을 여의는 것이니, 보현의 법이 삼세를 섭수해서 자재롭기 때문이다. 이 뜻을 생각해 보라. 제4의 11구는 부사의가 정각을 성취하는 것인데, 처음의 네 구는 인(因)의 원만함이고, 다음의 세 구는 이타행의 성취이며, 다음의 네 구는 3신(身)이 덕을 갖추어 성불을 원만히 하는 것이다. 10의 교묘한 방편에서 처음의 네 구는 자행(自行)이고, 나중의 여섯 구는 이타이다. 10불사(佛事)는 알 수 있는 것이다. 10법왕에서 처음의 일곱 구는 자리의 덕이고, 다음의 두 구는 이타의 행이며, 다음의 두 구는 자타(自他)의 2과(果)이니 서로 섭수해서 다름이 없다. 10주법(住法)에서 처음의 네 구는 이타의 덕이고, 다음의 여섯2) 구는 비(悲) 등의 용(用)을 일으킴이 다함 없는 것이다. ‘10가지의 다 남음이 없다[十悉無有餘]’에서 처음의 세 구는 법계 등을 알아 남음이 없는 것이며, 다음의 두 구는 염기(染器)의 세간을 아는 것이며, 다음의 여섯 구는 출세간의 인법(因法) 등을 아는 것이다.
다섯째의 경문에 70구가 있는데, 처음의 10구는 위에 나온 신력(神力)의 한 가지 질문에 답한 것이고, 다음의 50구는 위에 나온 무애주(無礙住)에 답한 것이며, 다음의 10구는 위의 해탈에 답한 것이다.
처음의 10구는 뛰어난 힘인데 처음은 열거한 것이고, 다음은 해석이다. 처음의 네 구는 자행(自行)의 성취이고, 다음의 여섯 구는 타행(他行)을 갖춤이다. 열 번째 가운데 네 가지 주(住)의 뜻이 있다. 부처님의 머무는 바는 곧 최승아(最勝我)이니 바로 불주(佛住)이고, 다음은 무애가 곧 진공(眞空)의 정(定)이니 바로 성주(聖住)이며, 다음은 무애심이니 곧 천주(天住)이고, 다음은 대비이니 곧 범주(梵住)이다. 10정(定)은 알 수 있다. 10법(法)에서 처음의 다섯 구는 세간의 선만(善滿)을 얻는 것이고, 다음의 다섯 구는 출세간의 행이 성취되는 것이다. 10청정법에서 처음의 여섯 구는 인행(因行)에 들어가는 것이고, 나중의 네 구는 부처님의 3신(身)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10일체지주(一切智住)는 장애를 여의어도 서로 응해서 부동(不動)한다’는 것에서 처음의 두 구는 기(器)의 성품을 아는 것이고, 다음의 한 구는 총체적인 것이고, 셋째 ‘윤화(輪化)’ 이하의 일곱 구는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것 중에서 처음의 세 구는 신통의 윤(輪)이고, 다음의 한 구는 올바른 가르침의 윤(輪)이며, 다음의 세 구는 기심(記心)의 윤화이다. 10불가사의삼매에서 처음의 두 구는 이타의 방편이며, 다음의 세 구는 자리의 방편이며, 다음의 한 구는 이타의 순숙(純熟)이며, 다음의 한 구는 자리행의 성숙이며, 다음의 세 구는 적용(寂用)의 해탈이 구경(究竟)에 자재한 것이다. 10무애해탈에서 처음의 다섯 구는 하나의 티끌 속에서 모든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려 교화하심을 나타낸 것이고, 다음의 다섯 구는 현재에서 삼세의 부처님을 섭수해 1문(門) 가운데서 나타낸 것이다.
또 『대승동성경(大乘同性經)』 중에서는 부처님에게 열 가지 지(地)가 있으며, 선장부(善丈夫)의 불지(佛地)에도 열 가지가 있으니, 일체의 보살과 성문ㆍ벽지불 등이 능히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심심난지광명지덕지(甚深難知廣明智德地)라 이름하며, 둘째는 청정신분위엄부사의명덕지(淸淨身分威嚴不思議明德地)라 이름하며, 셋째는 선명월당보상해장지(善明月幢寶相海藏地)라 이름하며, 넷째는 정묘금광공덕신통복덕지(精妙金光功德神通福德地)라 이름하며, 다섯째는 윤위장명덕지(輪威藏明德地)라 이름하며, 여섯째는 허공내청정무구염광개상지(虛空內淸淨無垢焰光開相地)라 이름하며, 일곱째는 광승법계장명계지(廣勝法界藏明界地)라 이름하며, 여덟째는 최정선각지장능정무구무변무애지통지(最淨善覺智藏能淨無垢無邊無礙智通地)라 이름하며, 아홉째는 무변억장엄회향능조명지(無邊億莊嚴廻向能照明地)라 이름하며, 열째는 비로자나지해장지(毘盧遮那智海藏地)라 이름한다. 선장부는 바로 여래 10지의 명호이니,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갖추어서 설할 수 없는 것이다.
선장부불(善丈夫佛)의 초지(初地)라는 것은 일체의 미세한 습기(習氣)를 없애기 때문이며, 다시 일체법에서 자재로움을 얻기 때문이다. 제2지라는 것은 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며, 깊은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제3지라는 것은 모든 성문의 법식(法式)을 설하기 때문이며, 또다시 삼승을 설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제4지라는 것은 8만 4천 법문을 설하기 때문이며, 또다시 네 종류의 마(魔)를 항복시키기 때문이다. 제5지라는 것은 법답게 모든 외도를 항복시키기 때문이며, 또다시 오만과 중수(衆數)를 항복시키기 때문이다. 제6지라는 것은 한량없는 중생의 6통(通)을 가르쳐 보이기 때문이며, 또다시 여섯 가지 대신통을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가없는 청정한 불찰(佛刹)의 공덕 장엄을 나타내는 것이며, 가없는 보살 대중의 위요(圍繞)를 나타내는 것이며, 가없는 광대한 불찰을 현현하는 것이며, 가없는 불찰의 자체(自體)를 현현하는 것이며, 가없는 모든 부처님의 찰(刹) 중에서 도솔천으로부터 내려와 태(胎)에 의탁하고 나아가 법의 멸(滅)을 현현하는 것이며, 가없는 갖가지 신통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제7지라는 것은 모든 보살을 위해서 실답게 7보리분(菩提分)을 설하여 소유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다시 집착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제8지라는 것은 일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네 종류 수기를 받기 때문이다. 제9지라는 것은 모든 보살을 위한 훌륭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제10지라는 것은 모든 보살을 위해 일체 모든 법이 소유하는 바가 없음을 설하기 때문이며, 다시 고하여서 일체 모든 법이 본래 적멸이고 대열반임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삼승에 응한 것이다.
29) 여래상해품(如來相海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부처님의 상(相)은 무궁하기 때문에 바다와 같은데 지금은 사람과 동일함에 의탁해서 32를 설했을 뿐이며, 모든 천(天)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80호(好)를 설한 것이니, 또한 신(神)에 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해석한 것이다. 지금 이 경문은 일승의 상(相)이기 때문에 바다와 같은 것이다. 보현이 설한 까닭은 덕의 가없음에 의탁하기 때문이다.
【문】위의 「부사의법품」은 한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고한 것인데, 지금은 어째서 그렇지가 않은 것인가?
【답】위의 법은 체(體)가 뛰어남을 나타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고한 것이다.
둘째는 온 뜻이니, 전자는 체(體)이고 후자는 상(相)이기 때문에 온 것이다.
셋째, 종지란 것은 삼승에 의거해서 32등(等)의 모든 대상(大相)으로써 종지를 삼은 것이며, 또한 늘어나고 넓혀져서 32상과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곧 경문에서 변별한 것처럼 상덕(相德)이 체가 될 뿐이다.
넷째, 경문을 해석한 것인데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듣기를 훈계하고 설하기를 허락한 것이며, 둘째는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93가지 대인(大人)의 상(相)을 간략히 변별한 것이고, 다음으로 아래에서 10연화장세계의 대인의 상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전자의 경문에서 처음의 7은 정상(頂上)의 상이고, 다음의 ‘원만이라 이름한다’ 이하의 22는 엄정상(嚴頂相)이며, 다음의 3은 미간상(眉間相)이며, 눈과 코가 각기 1상(相)이며, 혀에 4상이 있으며, 잇몸[齗齶]이 1상이며, 큰 어금니에 4상이 있으며, 치아에 1상이 있으며, 어깨에 5상이 있으며, 흉부에 1상이 있으며, 겨드랑이에 1상이 있으며, 복부에 7상이 있으며, 하분[下分]에 2상이 있으며, 손에 12상이 있으며, 마장(馬藏)에 3상이 있으며, 넓적다리에 2상이 있으며, 발꿈치에 2상이 있으며, 털끝에 1상이 있으며, 발에 13상이 있다. 하나하나 상(相)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명칭을 열거한 것이고, 둘째는 출체(出體)이며, 셋째는 광명이며, 넷째는 광명의 비춤으로 이익을 받는 것인데 연(緣)의 분제(分齊)이다.
대방광불화엄경수현분제통지방궤 제4권 하
지엄 지음
박서연 번역
30) 불소상광명공덕품(佛小相光明功德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차례 등은 이미 위에서 서술했다. 소상(小相)이란 것은 상형(相形)의 개별적인 덕이다. 부처님께서 스스로 설하신 까닭은 화신의 용(用)은 오직 부처님께서만이 궁진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화신이 사물을 따라 낮춤으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믿게 할 수 있으니, 이처럼 실다운 덕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스스로 설하신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형상이 좋아[形好] 이익을 받음을 총체적으로 든 것이고, 다음의 ‘여래의 발 아래 천 폭(輻)이 있다’ 이하는 공(功)에 따라서 이익을 섭수함을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명칭을 열거한 것이고, 둘째는 용상(用相)을 밝힌 것이며, 셋째는 권속을 변별한 것이고, 넷째는 지나간 인(因)을 들어서 용(用)의 이익을 변별한 것이니, 여래의 영성(影成)과 소상(小相)의 덕용(德用)은 다하기가 어렵다. 여기에 있는 네 가지 경문은 생각해 보라.
둘째의 자세함 중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처음은 형상이 좋아서 이익을 섭수함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너희들은 마땅히’ 이하는 과거의 은혜를 갚는 일과 인과를 인식함을 가르치는 것이며, 셋째 ‘모든 천자(天子)들이 이 음성을 듣는다’ 이하는 공양의 행을 흥기하는 것이고, 넷째 ‘그러므로 모든 천자’ 이하는 발심하여 과오를 뉘우치기를 가르치는 것이고, 다섯째 ‘이 법을 설할 때’ 이하는 획득한 이익을 전(轉)해서 다시 회향함을 변별한 것이고, 여섯째 ‘이 때 모든 천자’ 이하는 이익을 얻기 때문에 전통(傳通)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상륜(相輪)의 광명이 비추어서 이익을 섭수함을 변별한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알 수 있다. 둘째 ‘천상에 태어나다’ 이하는 뛰어난 행을 성취하기를 권유하는 것이다. 권유함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올바로 들다[正擧]’ 이하는 견주어 권유한 것이고, 두 번째 ‘모든 천자들이여, 노사나’ 이하는 뛰어난 이익을 들어서 제시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올바로 권유하는 것이고, 둘째는 천자가 찬미하는 것이며, 셋째는 거듭 제시하는 것이다.
거듭 제시함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덕의 권유를 총체적으로 드는 것이고, 둘째 ‘마치 내가[如我]’ 이하는 비유를 인용해서 제시한 것이다. 여섯 가지 비유 중에 있는 각각의 두 가지 경문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첫 번째는 법의 성품이 무아(無我)라는 비유이고, 두 번째는 온 자가 있지 않다는 비유이며, 세 번째는 방소가 없는 주처(住處)의 비유이고, 네 번째는 작위를 여의어서 선(善)을 성취하는 비유이며, 다섯 번째는 법에 방면(方面)이 없는 비유이고, 여섯 번째는 법에 모든 허물이 없는 비유이다.
둘째의 지난 일을 가르치는 중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이익을 들어서 가르치고 권유하는 것이며, 둘째 ‘모든 천자들이여, 그 [諸天子其有]’ 이하는 손해를 들어서 권유를 제시한 것이며, 셋째 ‘그대가 예전에’ 이하는 은혜를 들어서 제시한 것이며, 넷째 ‘모든 천자’ 이하는 법을 제시해서 권유한 것이다.
셋째의 공양을 흥기하는 경문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양구[供具]를 흥기하는 것이며, 둘째는 나아감[往]이며, 셋째는 보지 못하는 것이며, 넷째는 천(天)이 거듭 제시한 것이며, 다섯째는 거듭 공경의 염(念)을 생기하는 것이며, 여섯째 ‘이 때 하늘의 미묘한 음성[爾時天妙音]’ 이하는 거듭 공경한 것이다. 그 안팎으로 각기 5백의 번뇌가 있다는 것은 10사(使)와 10악(惡)이 스스로 상승(相乘)한 것이 곧 1백을 이루고, 안의 5진(塵)에서 5백을 미혹해 낳고 밖의 5진에서 5백을 미혹해 낳는 것이다. 2만 1천 등이란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의 발심을 가르침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발심과 과오를 뉘우침을 가르치는 것인데, 천자가 이익을 얻는 것에 간략히 세 구가 있다. 둘째 ‘그 때 모든 천자’ 이하는 거듭된 질문인데 두 구가 있다. 셋째 ‘이 때 하늘 음성[爾時天聲]’ 이하는 답이다. 답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참회의 의식(儀式)을 제시한 것인데 다섯 구가 있으며, 둘째 ‘비유하자면 밝고 청정함과 같다’ 이하는 비유하고 견준 것인데 세 구가 있으며, 셋째 ‘비유하자면 요술쟁이[幻師]와 같다’ 이하는 잠복된 의심을 해석한 것이며, 넷째 ‘만약 이처럼’ 이하는 뉘우치기를 가르치는 뜻을 매듭 지은 것이다.
다섯째의 이익을 획득하는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이익을 얻음을 밝힌 것인데 두 구가 있으며, 둘째 ‘오히려 아직 보지 못하였다’ 이하는 이익의 분제를 매듭 지은 것이다.
여섯째 ‘이 때 천자’ 이하는 전전(展轉)으로 수행하고 가르침의 궤칙이 끊이지 않는 것이니,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향화(香花) 등으로써 공양의 행을 닦는 것이고, 둘째 ‘이 때 저 향운(香雲)’ 이하는 스스로의 행이 다 성숙하고 나서 다시 나머지 사람을 섭수하도록 가르치는 것인데 네 구가 있다. 셋째 ‘마하살이 이같이 안주해서’ 이하는 행의 이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시 더욱더 이익인 것이다. 넷째 ‘왼손에 지닌다’ 이하는 비유를 들어서 관(觀)의 경계를 성취함을 견준 것이다.
경문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비유의 광대함을 든 것인데, 법을 밝힘에 믿기가 어려운 것에 세 구가 있다. 둘째 ‘부처님께서 보수(寶手)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처럼’ 이하는 법합(法合)이 그 덕용(德用)의 깊고 넓음을 성취한 것이다. 셋째 ‘부처님께서 보수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천억(千億)’ 이하는 비유하여 견줌을 넓게 증장한 것이다. 넷째 ‘부처님께서 보수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정광(定光)’ 이하는 비유의 분제를 들어서 법의 깊고 넓음을 매듭 지은 것이다. 이 경문은 어려우니,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석가모니불께서 보살이셨을 때에 1상(相)의 이익이 있었는데, 한 생(生)에서 한 중생을 이롭게 하고, 그 한 중생이 전전(展轉)해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함으로써 나란히 한 생에 이구(離垢)삼매에 도달한다. 이처럼 일체 중생이 다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니, 이처럼 후제(後際)를 궁진해서 밑으로 방(傍)에까지 두루 이른다. 여의주를 화작(化作)하는 것도 역시 그 이익이 후제를 궁진한다. 보살의 1상(相)도 이미 이렇게 작용하거늘, 불상(佛相)의 덕용이야말로 불가설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1소상(小相)의 덕이 이미 이와 같으니, 부처님의 대상(大相)의 바다는 준거해서 알아낼 수 있다. 경문의 뜻이 이와 같으니, 나머지 상(相)은 알 수 있다.
31) 보현보살행품(普賢菩薩行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행이 법계에 두루한 것을 보(普)라 말하고, 체(體)가 순응해서 선(善)과 조화하는 것을 현(賢)이라 칭하며, 보살은 사람이다. 행이란 인(因)을 밝힌 것인데 행의 체(體)는 두 뜻으로부터 명칭을 얻은 것이다.
둘째는 온 뜻인데 어째서 온 것인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이전의 인과는 무엇을 체로 삼고 무엇에 의거해서 이루어졌는가?’라는 의심이 있는데, 이런 의심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곧 제2 자체의 인과인데 이 품은 인(因)이고 성기(性起)는 과(果)이다. 이 인과와 위에서 닦아 성취한 것을 어떻게 취하여 구별하는가? 만약 연(緣)의 분제를 기준으로 해서 취한다면 곧 위[上]에 속하고, 성품을 여의어서 시종(始終)을 소멸하는 것은 곧 여기에 속한다.
【문】위의 지(地)에서는 성품을 여의는 것을 자세히 밝혔는데 여기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답】앞에서는 별행(別行)을 섭수하여 체(體)의 방편에 취향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밝힌 바는 바로 이(理)에 수순하는 행의 성품이니, 따라서 두 체가 없고 뜻이 상시(相是)가 아닐 뿐이다. 그리하여 연(緣)으로써 연을 다하고, 성품으로써 곧 성품과 함께 하는 것이다.
【문】성기(性起)는 말을 끊고 상(相)을 여의었는데 어째서 인과가 있다고 말하는가?
【답】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경(經) 안의 인(因) 가운데 성기를 변별한 과(果) 중에서 성기를 밝히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둘이다. 둘째는 성품이 머물지 않음[不住]을 말미암기 때문에 기(起)이고, 기(起)할 때는 상(相)을 여의어서 법을 수순하기 때문에 인과가 있는 것이다.
【문】기(起)할 때 여의는 것과 연(緣)의 닦음과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답】연의 닦음이 연을 여의는 것이라면 성취하지를 못하고, 성기가 연(緣)이 없는 것은 곧 손해가 아니기 때문에 구별된다.
【문】그 보현행도 역시 성기와 같은 것이라서 수생(修生)을 나누어 수순하는데 어째서 아래 경문에서는 “많은 법을 성취하여 세간에 출현한다”고 말한 것인가?
【답】이것은 해지(解知)를 조망한 것이지, 성품의 체(體)를 기준으로 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아래에서는 ‘만약 이렇게 안다면’이라고 자주 말한 것이다.
【문】만약 알지 못한다면 무엇을 기(起)를 변별함이라 하는가?
【답】나머지 관(觀)은 견(見)을 달리하기 때문에 연(緣)의 닦음이 곧 그렇지가 못하다. 두 번째로 또한 해석하면 앞의 별행을 섭수하여 그 보편적인 덕을 성취함으로써 성기를 발생하기 때문에 온 것이다. 만약 이런 해석을 짓는다면 수생(修生)에 속함을 말미암는 것이니, 성기 이하의 경문은 본유(本有)에 들어가는 것이다.
【문】보현행은 어느 지위에서 이루어지는가?
【답】실로 지위에 의거하지 않는다. 저 해위(解位) 이후에 나아가서 성취한 것은 위의 경문이 해(解) 이상에 있으면서 설했기 때문이니, 나머지는 준거해서 생각하여 섭수하라.
셋째, 종지라는 것은 두 가지 문으로 분별하는데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과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인체(人體)의 덕용(德用)과 수생(修生)이 시(始)를 여읨은 광대하기가 앞과 다르다. 둘째의 법은 보현행의 법이니, 역시 체(體)ㆍ상(相)ㆍ용(用)이 있어서 이(理)의 가르침과 행의 과(果) 등을 갖추고 있는데 다만 뜻이 다를 뿐이다.
【문】이 두 품은 정(定)과 아울러 가집중(加集衆)이 없는데 어째서 체상(體相)이 있다고 말하는가?
【답】이 두 품은 체(體)가 현(玄)에 존재함을 나타낸 것이니, 법체가 극히 깊고 넓음을 밝히기 때문이다. 가집중(加集衆) 등은 「지품(地品)」의 처음 해석과 같으니, 법이 사람을 의탁해서 나타내기 때문에 이 사람이 설한 것이다.
넷째는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이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서(序)이고, 둘째는 정설(正說)이며, 셋째는 회상을 매듭 지어서 증명하여 성취한 것이고, 넷째는 게송이다.
서(序)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간략함을 들어 자세함을 나타냄으로써 설(說)의 분제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왜냐하면’ 이하는 따지는 것이며, 셋째는 답이다. 답의 경문의 뜻은 먼저 연(緣)을 대하기 때문에 국한됨이 적다. 이 체(體)는 연(緣)과 비연(非緣)을 통틀기 때문에 관대한 것이고, 또한 앞의 연을 닦음[緣修]이 체(體)를 들어서 상(相)을 좇기 때문에 국한된 것이다. 이 기(起)는 상(相)에 의거해서 체에 들어가기 때문에 관대한 것이다.
또 이 품은 본유수생(本有修生)과 수생본유를 섭수함이 있으며, 또 앞에서 1품과 2품의 기틀을 대하는 이것이 곧 보(普)이다. 이것은 총체적으로 다섯 가지 뜻을 기준으로 한다. 첫째는 지위이고, 둘째는 근(根)이고, 셋째는 사(事)이고, 넷째는 병(病)이고, 다섯째는 행(行) 등이다. 경문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위에서 설한 소(少)의 뜻을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둘째 ‘어리석은 중생’ 이하는 설함에 따른 뜻을 개별적으로 변별한 것이며, 셋째 ‘이같기 때문이다’ 이하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 ‘불자야, 만약 보살이’ 이하는 미혹의 허물과 잘못을 간략히 내는 것이다.
이 자세한 경문의 뜻은 앞의 가르침이 이미 큰데, 어째서 1기(機)에 국한되는 것인가?
【답】번뇌의 공력이 크기 때문이니, 작음이 큰 손해를 이루는 것이다. 위가 비록 작지 않아도, 다스리는 바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보현의 법계를 조망한다면 자세함이라 이름 붙이지 못하니, 이것은 진혹(嗔惑)의 공능을 기준으로 해서 잘못을 변별한 것이다. 만약 일체 미혹의 체(體)를 기준으로 한 때라면 오직 피육심(皮肉心)의 3혹(惑)일 뿐이다. 이 중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으로 잘못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는 따지는 것이며, 셋째는 간략히 답한 것이고, 넷째는 자세히 해석한 것이며, 다섯째는 매듭 지음이고, 여섯째는 거듭 자세히 한 것인데 자세함을 나타낸 것에 세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다.
백 가지 장애가 지위를 기준으로 한 것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10신(信)의 장애이며, 둘째 ‘부처님 법을 즐기지 않는다’ 이하는 10주(住)의 장애이고, 셋째 ‘보살행을 여의고’ 이하는 10행의 장애이며, 넷째 ‘부처님 법을 비방한다’ 이하는 10회향을 장애한 것이고, 다섯째 ‘보살이 함께 주(主)함을 즐기지 않는다’ 이하는 초지(初地) 이상의 장애이며, 여섯째 삼세의 부처님을 수순하지 않는 것이 곧 불지(佛地)의 장애이다. 이것은 10지의 끝에 있으며, 이(理)는 모두에 통하는 것이다. 둘째, 올바로 설함 중에 세 가지가 있음은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의 경문에 60구가 있으니, 처음의 50구는 인행(因行)이고, 다음의 10구는 인(因) 속의 과(果)이다. 전자 중에서 처음의 10구는 10신이고, 둘째의 10구는 10해(解) 이상이고, 셋째의 10구는 초지 이상이고, 다음의 20구는 9지와 10지이니, 이(理)가 곧 통할 뿐이다. 처음의 10구 중에서 전자의 일곱 구는 자리(自利)의 법 중에서 믿음을 닦는 것이고, 다음의 세 구는 이타 속에서 믿음을 닦는 것이다. 둘째의 10구 중에서 처음의 여섯 구는 자행(自行)이고, 다음의 세 구는 이타행의 청정이며, 다음의 제10 구는 인위(因位)의 청정함이다. 셋째의 10구는 지(智)의 차례를 10지에 배당한 것이다. 넷째의 10구는 교묘한 수순임을 알 수 있다. 다섯째의 10구는 직심(直心)이다. 앞의 일곱 구는 9지의 상(相)인데, 그 중에서 처음의 두 구는 근(根)을 아는 것이고, 다음의 두 구는 약(藥)을 아는 것이며, 다음의 두 구는 올바로 증명하는 방편을 수순함을 아는 것이고, 다음의 한 구는 장애를 없애는 것이며, 나중의 세 구는 10지의 상(相)임을 알 수 있다. 여섯째의 10구는 교묘한 방편인데, 처음의 네 구는 법신의 과(果)이며, 다음의 네 구는 보신의 과이며, 다음의 두 구는 화신의 과이다. 다음의 ‘그러므로’ 이하는 수행을 권함을 매듭 지은 것인데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증명하여 성취한 것에 네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처음은 대지가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것인데 여기에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둘째는 나머지 방향에 동등하게 통하는 것이며, 셋째는 시방이 동일하게 증명하는 것이며, 넷째는 다시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넷째1)의 게송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긴 행은 설하는 뜻을 들어서 생기(生起)하는 것이고, 둘째는 올바른 게송이다. 게송의 경문에 122행이 있는데, 처음의 둘은 인행(因行)이 설한 바의 분제를 총체적으로 읊은 것이고, 다음은 보현행의 덕을 자세히 찬탄한 것이지 앞의 경문을 외운 것이 아니다. 또한 한 행과 한 구가 곧 1덕(德)이라서 과(科)를 다시 할 필요는 없으니, 이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경문에서 ‘모든 여래와 동등하다’라고 말한 것은 인과가 둘 다 상(相)이 없고, 인연의 작(作)과 무작(無作)이 모두 과(果)를 발하는 능력이 대등하기 때문이다. 과거가 곧 미래라서 2세(世)가 동등하다는 것은 이것을 인(因)해서 다름[異]2)을 모으는 뜻이니, 다만 삼세가 하나의 상(相)이기 때문에 10신(信)이 곧 모든 지위인 것이다. 이처럼 일체가 단지 세간 상(相)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하나하나의 세간법이 현세에 들어가는 것이니, 지위를 증명하지 않고서 비(比)를 이룬 것이다. 이것은 삼승의 별행의 성취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또한 9세의 자재로운 섭수는 모두 증명이다. 이는 보현의 자재로움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인과(因果) 등의 법도 모두 마찬가지이니 준거하라. 만약 때에 임해서 변화하여 상입(相入)하는 등이라면 이 한계에 있지 않은 것이니 마땅히 생각할 수 있다.
32) 보왕여래성기품(寶王如來性起品)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변별할 것이다. 보왕이란 덕의 자재로움을 섭수하여 왕이 되는 것이니, 고귀한 것을 보(寶)라 이름한다. 여래라는 것은 실다운 도가 와서 정각을 성취하는 것이며, 성(性)이란 체(體)이고, 기(起)란 현재의 심지(心地)이다. 이것은 곧 그 기상(起相)을 회통해서 실(實)에 들어가는 것이다.
둘째는 온 뜻이다. 앞은 보현이 능기(能起)의 연(緣)을 밝힌 것이고, 다음은 소기(所起)를 변별한 것이다.
셋째는 종지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다. 두 가지로 분별하는데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과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사람은 단지 본유(本有)로서 앞과 다르며, 법이란 것은 경문과 같을 뿐이다.
【문】성기(性起)의 분제는 무엇을 말하는가?
【답】이것에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시(始)와 종(終)이 서로 대(對)하는 것이고, 둘째는 넓음과 좁음이 서로 대해서 분제를 밝힌 것이다. 처음은 발심에서 시작하여 불성을 일으킴에 이르러 끝내는 대보리와 대열반의 사리를 유통함에 이르는 것이다. 넓고 좁음의 돈오와 삼승의 시종에서는 세간을 벗어남이 성문과 연각에 이르는 것이며, 세간 이하는 지옥 등의 모든 지위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起)는 대해(大解)와 대행(大行)과 대견문(大見聞)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 경문의 뜻은 모두 아래에서 변별하였으니 나아가 지석(指釋)에 해당한다.
【문】만약 성문 등에 성기(性起)가 있는 것이라면 어째서 경문에서는 ‘2처(處)에서는 근(根)을 생기하지 못한다’고 하였는가?
【답】생기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보리심의 성품이 싹을 생기하지 못한 것이지 과(果)의 잎이 없음을 말한 것은 아니다. 만약 없다면 미진(微塵) 가운데 마땅히 경권(經卷)이 있지 않아야 하니, 비유를 준거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세밀히 분별한다면 지옥은 과(果)의 잎이 없으면서 체(體)가 있고, 성문은 체와 과의 잎이 있는 것이다.
넷째,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성기로써 보현의 설(說)에 질문한 것은 기(器)의 훌륭하고 뛰어난 법이 탁 트이고 두루 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서(序)이고, 둘째 ‘이 때 보현보살이 답하기를’ 이하는 올바로 설한 것이며, 셋째 ‘이 때 시방’ 이하는 설(說)을 맺어 증명하여 성취한 것이다.
서(序)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미간에서 광명을 놓아서 발기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며, 둘째 ‘이 때 일체의 대중’ 이하는 의념(疑念)이 생기하는 것이며, 셋째 ‘이 때 여래성기’ 이하는 부처님을 대해서 청하고자 함을 밝힌 것이고, 넷째 ‘그 때 여래의 입 속에서’ 이하는 입안에서 광명을 내서 설자(說者)에게 보인 것이니 역시 통틀어 가(加)했을 뿐이며, 다섯째 ‘이 때 여래의 성기가 묻기를’ 이하는 발기(發起)를 올바로 질문한 것이다.
처음의 광명을 놓음 가운데 8업이 있으니, 첫째는 청업(請業)이고, 둘째는 인업(因業)이며, 셋째는 경업(敬業)이며, 넷째는 각업(覺業)이며, 다섯째는 지업(止業)이며, 여섯째는 항복업(降伏業)이며, 일곱째는 시현업(示現業)이며, 여덟째는 권서업(卷舒業)이니, 일류(一流)의 성신(星身)이 있는 것이다.
셋째의 청하고자 함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긴 행은 청하는 의식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고, 둘째는 게송으로 자기의 뜻을 진술하는 것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다. 게송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여섯 게송은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 것이고, 둘째 ‘잘 배워[善學]’ 이하는 자기의 일컬을 바를 진술한 것이며, 셋째 ‘대중이 모두 청정하다’ 이하는 근기의 뛰어나고 오묘함을 찬탄한 것이며, 넷째는 설한 바의 법을 찬탄한 것이며, 다섯째 ‘정각(正覺)’ 이하는 바라는 바의 뜻을 성취한 것이다.
넷째의 광명을 보인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광명을 변별한 것으로서 앞과 같으며, 둘째는 돌아갈 바를 밝힌 것이며, 셋째 ‘이 때 보현’ 이하는 이익의 상(相)을 밝힌 것이다.
둘째의 올바로 설한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명칭을 제시해서 총체적으로 답한 것이니 곧 본분이며, 둘째 ‘이 때 여래성기가 묻기를’ 이하는 거듭 청함이니 곧 청분(請分)이며, 셋째 ‘이 때 보현보살이 고하기를’ 이하는 곧 설분(說分)이다. 처음의 본분 중에서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이전의 일[先事]을 드는 것이고, 둘째는 설함을 매듭 지은 것이며, 셋째는 이익을 변별한 것이다. 둘째의 청분 중에서 처음은 긴 행이고, 둘째는 게송으로 청하는 것이다. 긴 행 중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청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대중의 기(器)가 성숙함을 찬탄한 것이고, 세 번째 ‘인자(仁者)’ 이하는 설하는 자의 감능(堪能)을 찬탄한 것이며, 네 번째 ‘착하도다[善哉]’ 이하는 청함을 매듭 지은 것이다. 기(器)의 성숙을 찬탄한 것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대중의 모임을 든 것이고, 두 번째는 덕을 찬탄한 것이며, 세 번째는 매듭 지음이다. 집덕(集德) 중에서 처음은 자리의 덕이고, 두 번째 ‘대비(大悲)’ 이하는 이타의 덕이며, 세 번째 설하는 자가 감능(堪能)한 덕 중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자리이고, 다음의 ‘모든 부처님 법에서’ 이하는 이타의 덕이다.
둘째의 게송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긴 행은 생기(生起)이고, 둘째는 올바른 게송이다. 게송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두 게송은 설하고 듣는 자의 덕을 총체적으로 찬탄함으로써 청하는 것이고, 둘째의 13게송 반은 올바로 개별적으로 청하는 것이며, 셋째 ‘시방’ 이하의 네 게송은 중회(衆會)가 희유(希有)함을 찬탄해서 청하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청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10게송 반은 과(果)를 질문한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인(因)을 질문한 것이다. 과(果) 중에서 처음의 일곱 게송 반은 사(事)를 진술한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덕을 찬탄한 것이다.
셋째의 설분(說分)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둘째 ‘소이(所以)’ 이하는 따지는 것이며, 셋째 ‘적은 인연이 아니다’ 이하는 자세히 답한 것이다. 답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많은 인(因)을 말미암아서 성취하기 때문에 부사의(不思議)의 총체적인 찬탄이며, 둘째 ‘열 가지 한량없음으로써’ 이하는 상(相)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인(因)의 질문에 응수한 것이고, 두 번째 ‘불자야, 여래의 몸을 알아보는 것이 무엇인가?’ 이하는 위에 나온 과(果)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이것의 처음은 곧 위에 나온 인의 질문에 답한 것인데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10문(門)을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처음을 네 가지로 분별함은 알 수 있는 것이며, 둘째의 개별적인 해석의 경문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위에 나온 10문을 해석한 것이며, 두 번째는 위의 10【문】중에서 1문에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긴 행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인(因)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 ‘불자야, 보살은 또한 다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하는 성기의 덕용(德用)을 변별한 것이다. 이것은 혹은 사람이나 법을 아는 데 있는 것이다. 처음의 체(體)를 변별한 것 중에 10번(番)이 있다. 처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해석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비유이고 나중은 합(合)이다. 나머지는 다 이와 동일하다. 처음은 온갖 연(緣)이 함께 일어나는 비유를 밝힌 것이고, 둘째는 대기(大機)가 감당하여 받아들이는 비유이며, 셋째는 연(緣)으로 이루어져 작위를 여의는 비유이고, 넷째는 뛰어난 지혜가 훌륭히 통달하는 비유이며, 다섯째는 대용(大用)이 현전하는 비유이고, 여섯째는 기틀의 감응이 수현(隨現)하는 비유이며, 일곱째에는 두 가지 비유가 있는데, 처음은 뛰어난 연(緣)을 먼저 제도하는 비유라 이름하고, 다음은 욕구에 따라 성취되는 비유라 하니, 이것은 의심을 해석한 것이다. 여덟째는 스스로의 대사(大事)를 성취하는 비유이고, 아홉째는 체(體)와 용(用)이 서로 의거하는 비유이며, 열째는 이익을 성취함이 헛되지 않은 비유이다. 이 열 가지 중에서 전자의 둘과 네 번째는 연(緣)에 의거해서 연을 변별한 것이고, 나머지 일곱은 자체를 기준으로 해서 연을 변별한 것이다.
둘째의 게송 중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긴 행은 나중을 낳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은 아홉 가지로 나누는데 처음의 두 게송은 성기의 위없음[無上]을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여덟 게송은 교량(校量)의 성품 공덕을 개별적으로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10게송은 법을 들어서 견준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체용의 자재로움을 맺어 이룬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교지자(敎知者)를 제시한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듣기를 권유해서 설함의 분제를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사(事)를 들어서 설함을 허락한 것이고, 다음의 35게송은 올바로 설한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가르쳐서 권유한 것이다.
올바로 설함 중에서 처음의 다섯 게송은 처음의 비유를 읊어서 매듭 지은 것이고, 둘째의 네 게송은 제2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네 게송은 제3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제4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제5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제6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제7 속의 제2 비유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제7 속의 제1 비유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제8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제9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제10을 읊은 것이다.
제2는 몸을 변별한 것인데 이것의 차례는 위에 나온 과(果)의 질문에 답한 것으로서,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기(起)에 의탁해서 발한 것이고, 둘째 ‘이 보살이 한량없음을 알아보고서’ 이하는 답이다. 답 중에서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긴 행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인 답이고, 둘째는 따지는 것이며, 셋째는 간략히 답한 것이고, 넷째 ‘비유하면’ 이하는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간략함 중에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함 안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법체를 변별한 것이며, 둘째 ‘보살이 구족하고 성취해서’ 이하는 덕용(德用)을 변별한 것이니, 이 용(用)은 혹은 지인(知人)에 속하기도 하고, 혹은 섭수함이 법에 있는 것이다.
나머지 열 가지 경문의 상(相)은 앞과 동일하다. 첫째는 밀신(密身)이 보편적으로 섭수하는 비유이고, 둘째는 연(緣)에서 머묾을 여의는 비유이며, 셋째는 사(事)를 변별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비유이다. 넷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뛰어난 연(緣)을 먼저 제도하는 비유이고, 둘은 기틀의 감응이 수현하는 비유이다. 다섯째는 잠재적인 용(用)이 자량하여 성취하는 비유이다. 합(合) 중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앞의 비유와 올바로 합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광명을 이끌어서 증명하여 성취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광명의 이익을 변별한 것이다. 여섯째는 근기에 따라서 특별히 나타나는 비유이고, 일곱째는 하나의 몸이 많이 감응하는 비유이며, 여덟째는 생각 없이 사(事)를 성취하는 비유이고, 아홉째는 대보(大寶)가 덕을 섭수하는 비유이며, 열째는 다스림을 섭수해서 원(願)을 따르는 비유이다.
두 번째의 게송에서 처음은 생기하는 것이고, 다음은 올바른 게송이다. 게송에는 42게송이 있는데 처음의 네 게송은 제1의 비유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제2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네 게송은 제3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제4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네 게송은 제5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제6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네 게송은 제7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제8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네 게송은 제9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제10을 읊은 것이다.
【문】이상에서 변별한 바가 다분히 처음과 동일한 뜻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답】능(能)을 말미암아서 덕이 나타남은 곧 초인(初因)에 속한 것인데 지금 여기서는 능(能)을 들어서 의지할 바[所依止]를 취하는 것이다.
셋째, 음성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에 의탁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답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것 속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긴 행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법체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음성의 열 가지 한량없음을 알아보고서’ 이하는 덕용(德用)을 밝힌 것이니, 또한 이 둘은 능소(能所)를 통틀어 일컬은 것이다.
법체에는 열 가지가 있으며, 처음의 경문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처음은 법이고, 다음의 ‘메아리와 같다[如呼響]’ 이하는 비유이며, 셋째 ‘지견(知見)’ 이하는 합(合)이고, 넷째 ‘비유하건대 세계’ 이하는 거듭 비유해서 제시한 것이며, 다섯째 ‘여래의 묘음(妙音)도 역시 그러하다’ 이하는 합이다. 전자는 성품 없음[無性]을 비유한 것이기 때문에 이(理)를 수순하는 것이고, 후자는 성품 없음을 비유한 것이기 때문에 덕을 갖춘 것이다. 셋째의 합(合) 안에서 처음은 지견(知見)의 뛰어남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은 법을 대하여 이해를 성취함으로써 위의 비유에 합한 것이다.
이를 ‘소리에 본성이 없는 비유’라고 이름하며, 둘째는 소리에 스스로의 질(質)이 없는 비유이고, 셋째는 용(用)이 있어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비유이며, 넷째는 근기에 따라서 이해를 여는 비유이고, 다섯째는 기틀에 따라서 감응하여 보는 비유이며, 여섯째는 연(緣)에 의거해서 다르게 나타나는 비유이고, 일곱째는 용(用)이 의거하는 바가 없는 비유이니, 또한 대용이 두루 자량하는 비유라 할 수 있으며, 여덟째는 근기를 살펴서 약(藥)을 주는 비유이고, 아홉째는 대음(大音)이 덕을 갖춘 비유이며, 열째는 이익에 따라서 헛되지 않은 비유이다.
둘째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생기하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40게송이 있는데, 네 행이 하나의 비유를 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넷째의 보리성기심(菩提性起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에 의탁한 것이고, 둘째는 답이다. 답 안에서 처음은 법이고, 다음은 비유이다.
【문】심의식(心意識)이 즉불(卽佛)이 아닌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둘을 통틀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문에서는 “지혜가 한량없기 때문에 마음 또한 한량없다”고 말한 것이니, 일반적으로는 곧 알 수 있는 것이다.
비유는 둘로 나누는데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긴 행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처음은 열 가지 심법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 ‘보살이 이처럼’ 이하는 지(知)의 이익을 매듭 지은 것이다.
【문】이것의 처음의 비유를 이름하여 ‘지(智)가 의거하는 바가 없는 비유’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어째서 지(智)를 기준으로 해서 변별한 것인가?
【답】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일심의 체(體)가 오염과 청정을 통틀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 이제 성기(性起)를 논하면 지혜가 곧 마음이니 청정을 기준으로 해서 변별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문에서는 “지혜는 의지(依止)함이 없다”고 말하였으니, 첫째는 지혜가 의거하는 바가 없는 비유이고, 둘째는 성품이 늘거나 줄어듦이 없는 비유이며, 셋째는 용(用)을 일으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비유이고, 넷째는 지혜의 보배가 덕을 섭수하는 비유이며, 다섯째는 지혜의 용(用)이 비(非)를 끊는 비유이고, 여섯째는 지혜로 감당하여 포함하고 수용하는 비유이다.
【문】그 경문의 상(相)을 자세히 하면 흡사 부처님께서만이 성기임을 말한 듯한데, 왜 그런가?
【답】반드시 대의(大意)를 알아야 한다. 다만 보살이 타(他)를 좇아서 가르침을 받는 것은 곧 그 과불(果佛)과 보살이 능히 타(他)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어서 있는 바 행덕(行德)은 곧 그 싹에 속하는 것이니, 이를 생각해서 준거하라.
일곱째는 견고함이 이익을 수반하는 것이다.
【문】나무가 싹을 틔울 때 모든 나무가 싹을 틔우는데 비유한 바의 뜻은 무엇을 말함인가?
【답】이것은 다르지 않다. 왜 그런가? 다만 일심 속에 있는 것이라서 본래 신생(新生)의 차이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문】만약 그렇다면 앞의 중생과 더불어 요달하지 않아도 성기(性起)가 있는 것은 뜻이 달라서 서로 어긋나는 것이다.
【답】이것은 각기 개별적인 문이다. 그러함을 아는 까닭은 앞의 뜻 가운데 성문의 범부가 본성을 알지 못하는 것도 역시 성기이니, 지금 여기서는 알지 못함이 곧 성기가 아니라서 개별이 다른 문[異門]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성기의 싹을 기준으로 해서 설한 것이기 때문에 앞과 다를 뿐이다.
【문】두 처소의 서로 어긋남은 무엇으로 인해서 모순을 이루지 못한 것인가?
【답】일체의 선근은 사(邪)도 있고 정(正)도 있다. 다만 보리를 수순하는 것은 인천(人天)의 선근 등을 묻지 않고 모두 성기인 것이며, 보리를 수순하지 않는 것은 곧 성기가 아니다. 이것은 과(果)의 처소를 기준으로 해서 추(麤)와 세(細)를 나눈 것이니, 이 때문에 어긋나지 않을 뿐이다.
여덟째는 지혜의 용(用)이 두루 자량하는 비유이며, 아홉째는 교(巧)가 유(有)를 다하지 않는 비유인데, 또한 교(巧)의 방편이 미혹에 머무는 비유라 할 수 있다. 열째는 성품이 통하여 평등한 비유이다.
이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법이고 다음은 비유이며 나중은 합(合)이다. 나머지 경문은 알 수 있다.
둘째의 게송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긴 행은 나중을 낳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으로 37게송이 있는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하나는 불심(佛心)을 인식함을 총체적으로 제시한 것이고, 나머지는 열 가지 비유를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세 게송은 제1을 매듭 지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제2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네 게송은 제3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제4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제5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제6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다섯 게송은 제7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제8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네 게송은 제9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제10을 읊은 것이다.
다섯째, 경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에 의탁한 것이고, 둘째는 답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경계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중생을 요익케 한다’ 이하는 이익의 용(用)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법이고 다음은 비유이며 나중은 합(合)이다.
처음의 법을 설함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부처님의 경계를 총체적으로 든 것이고, 둘째 ‘경계 아닌[非境界]’ 이하는 부처님 경계의 분제를 변별한 것이며, 셋째 ‘불자야, 모든 중생이 한량없으므로’ 이하는 경계의 깊고 넓음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불자야, 보살은 마음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알고[佛子菩薩知心]’ 이하는 법의 정체(定體)를 기준으로 해서 깊은 뜻을 밝힌 것이다.
둘째의 비유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부처님 경계의 분제를 비유한 것이고, 제2는 경계가 인연을 일으키는 비유이고, 제3은 경계가 깊고 넓은 비유이다. 경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소연(所緣)의 경계이고, 둘은 분제의 경계이니, 이것은 둘을 통틀은 것이다.
둘째의 게송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생기하는 것이고, 다음은 올바른 게송이다. 게송에는 열 게송이 있는데 네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앞의 법을 설함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은 처음의 비유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제2의 비유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제3의 비유를 읊은 것이다.
여섯째, 불행(佛行)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에 의탁한 것이고, 둘째는 답이다. 답 중에서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긴 행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법을 설함이고, 다음의 ‘비유하면 법계’ 이하는 비유의 정황이며, 셋째 ‘불자야, 보살이 이처럼 등’ 이하는 덕의 업용(業用)을 매듭 지은 것이다. 비유 중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각기 비유의 합(合)이 있다. 처음의 하나는 3제(際)를 지극히 끊는 비유이고, 둘째는 업의 성품이 걸림 없는 비유이며, 셋째는 용(用)이 법계를 궁진하는 비유이고, 넷째는 업을 일으켜서 중생을 제도하는 비유이며, 다섯째는 공(功) 없이 사(事)를 성취하는 비유이다.
둘째의 게송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생기하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열 게송이 있는데 다섯 가지로 나눈다. 두 게송이 하나의 비유를 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일곱째, 보리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에 의탁하는 것이고, 둘째는 답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긴 행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법이고, 두 번째는 비유이며, 세 번째 ‘불자야, 보살이 이와 같음으로써’ 이하는 그 업용(業用)을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법을 설함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처소를 안다 등’ 이하는 용(用)을 변별한 것이며, 또한 처음은 자리이고 다음은 이타라고 할 수 있다.
둘째의 비유 중에 나아가면 두 가지가 있는데 각기 비유의 합(合)이 있다. 처음은 기틀을 나타내서 기(器)를 정한다고 이름하는 비유이고, 둘째는 적멸에 이르러 성품을 여의는 비유이다.
처음의 합유(合喩)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위의 비유를 올바로 합한 것이고, 둘째 ‘불자야, 일체의 부처님께서’ 이하는 보리(菩提)가 말을 여읨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불자야, 보리를 성취할 때’ 이하는 말을 여의는 상(相)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불자야, 여래의 몸 가운데서’ 이하는 말을 여의고 사(事)를 씀을 해석한 것이다. 셋째의 상(相)을 변별한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상(相)을 해석한 것이고, 둘째 ‘불자야, 여래를 따라서’ 이하는 유(類)로써 법을 성취한 것이며, 셋째 ‘여래께서 구족하셔서’ 이하는 맺어 이룬 것이다. 넷째의 사(事)를 씀 중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사(事)를 씀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 ‘모두 다 하나의 성품이다’ 이하는 소이(所以)를 해석한 것이며, 셋째 ‘이와 같다’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둘째의 합유(合喩)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법을 변별하는 것이고, 둘째 ‘다시 또 불자야, 하나의 털구멍에서[復次佛子於一毛道]’ 이하는 법에 의거해서 이해를 성취함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법체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불자야, 여래께서 정각을 성취하시고 나서’ 이하는 신업(身業)의 용(用)을 성취한 것이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변별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법체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변별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위의 비유를 올바로 합한 것이다. 둘째 ‘불자야, 설사 있더라도[佛子設有]’ 이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문답으로 유(類)의 성취를 임시로 시설한 것이고, 두 번째의 이해를 성취한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만상(萬像)의 통체(通體)를 달통한3) 것이고, 다음의 ‘다시 또 불자야’ 이하는 자타(自他)의 허물 없음을 해석한 것인데 셋이 있음을 알 수 있다.4)
둘째의 게송의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긴 행은 나중을 낳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12게송이 있는데 여섯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두 게송은 법을 설함을 매듭 지은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처음의 비유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제2의 비유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유(類)의 성취를 임시로 시설한 경문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몸의 용[身用]을 성취함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덕용(德用)을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다.
여덟째, 법륜을 굴리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에 의탁하는 것이고, 둘째는 답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긴 행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해석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체(體)를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둘째 ‘비유하면’ 이하는 비유의 정황을 자세히 변별한 것이며, 셋째 ‘불자야, 만약 이처럼’ 이하는 정(定)의 손해와 이익을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총체적으로 변별함 중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는 분제를 변별한 것이며, 셋째는 여의는 바를 밝힌 것이며, 넷째는 비유의 정황이며, 다섯째는 해석해 이룬 것이며, 여섯째는 유(類)의 해석이다.
자세히 변별함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체(體)를 기준으로 해서 변별한 것이고, 둘째 ‘다시 불자야’ 이하는 용(用)을 기준으로 해서 성취를 변별한 것이다. 처음에 있는 두 비유에는 각기 비유의 합(合)이 있다. 처음은 대음(大音)이 다함 없는 비유이고, 둘째는 대향(大響)이 두루 하는 비유이다. 제2의 합(合)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건립이고, 둘째는 따지는 것이며, 셋째는 답임을 알 수 있다. 둘째의 용(用)을 기준으로 해서 성취를 변별한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게송의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나중을 낳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10게송이 있는데, 다섯으로 나눈다. 처음의 한 게송은 총체적으로 변별하는 경문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한 게송은 제1의 비유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 반은 제2의 비유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게송 반은 용(用)을 기준으로 해서 성취를 변별한 경문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다.
아홉째, 열반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에 의탁한 것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긴 행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법체를 변별한 것이고, 둘째 ‘다시 또 보살이 이처럼 열반을 안다’ 이하는 업용(業用)을 앎을 매듭 지은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법은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비유는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총체적으로 맺은 것이니 법을 기준으로 해서 알기를 권유한 것이고, 둘째 열반의 체(體)를 내는 것에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셋째 ‘불자야, 여래께서’ 이하는 사(事) 열반의 체(體)를 설하지 않고 다만 성기를 변별함을 밝힌 것인데,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넷째 ‘불자야, 다만 여래께서’ 이하는 사상(事相)의 열반을 설함을 밝힌 것인데 경문에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의 자세히 변별함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비유를 기준으로 해서 변별한 것이고, 둘째 ‘여래께서 열반을 나타내 보이실 때’ 이하는 사(事)의 용(用)이 연(緣)을 따르는 분제의 상(相)을 나타낸 것인데,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해석과 매듭 지음임을 알 수 있다.
앞의 비유에 세 가지가 있으니, 각기 비유와 합(合)과 매듭 지음의 세 경문이 있다. 첫째는 현현함은 국한되나 체(體)는 통하는 비유이고, 둘째는 화(化)가 궁극적으로 다하여 소멸하는 비유이며, 셋째는 용(用)에 나아가 기틀을 따르는 비유이다.
둘째 게송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나중을 낳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12게송이 있는데 다섯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제1의 비유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제2의 비유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제3의 비유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용(用)이 연(緣)을 따르는 경문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총체적으로 찬탄한 것이다.
열째, 견문(見聞)으로 이익을 얻은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질문에 의탁한 것이고, 둘째는 답이다. 답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긴 행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현재와 미래의 견문과 유통의 이익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이 때 모든 보살’ 이하는 경이 얻은 명칭을 질문해서 경문의 뜻이 지니는 이익과 의식(儀式)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의 ‘불자야, 이것이’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전자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법을 설함이고, 다음은 비유의 정황을 자세히 설한 것이며, 셋째 ‘여래에게서’ 이하는 견문의 공행(功行)이 광대해서 설하기 어려움을 변별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건립이고, 두 번째는 따지는 것이며, 세 번째는 답이다.
처음의 법을 설함 중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이익을 성취함이 헛되지 않음을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인데 두 구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둘째는 유(有) 중의 뛰어난 행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는 공(空) 가운데 방편 지혜를 성취한 것이며, 넷째는 그 과위(果位)를 궁진해서 뛰어난 덕을 구족함을 밝힌 것이다.
비유의 정황을 자세히 한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현재의 체(體)의 이익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 ‘만약 경(經)을 얻음이 있다면’ 이하는 미래의 주지(住持)하는 용(用)인데 이것에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의 현재 이익의 경문에 세 가지 비유가 있으니, 처음의 두 비유는 얻은 바 복과 슬기의 견고한 행덕(行德)을 비유한 것이고, 나중의 한 가지 비유는 성덕(性德)의 뛰어난 용(用)을 비유한 것이다. 전자의 두 비유에서 처음은 행의 궁구함이 견고하고 실다워서 무너뜨리기 어려운 비유이고, 둘째는 작은 지혜가 능히 큰 미혹을 태우는 비유라 이름하는데 이런 것들은 각기 비유의 합(合)이 있다. 셋째는 성기의 선교(善巧)가 자량하여 성취하는 비유이다.
둘째, 경의 명의(名義)와 의식(儀式) 등을 질문한 것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이고 다음은 답이다. 답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경의 명칭이 모두 경의 뜻과 용(用)임을 보인 것이고, 둘째 ‘이 같은 경전’ 이하는 소위(所爲)의 분제를 밝힌 것이며, 셋째 ‘그러므로 보살’ 이하는 이익을 들어서 지니기를 권유한 것이고, 넷째 ‘불자야, 보살이 비록 무량억(無量億)’ 이하는 경의 요체와 뛰어남을 나타낸 것인데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손해를 변별한 것이고, 다음은 이익을 밝힌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섯째 ‘불자야, 보살이 이 경을 듣고서’ 이하는 수익(修益)의 방의(方儀)를 가르침을 밝힌 것이다.
둘째의 소위(所爲)의 분제 중에서 처음은 법이고, 다음은 비유이며, 나중은 합(合)이다. 게송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생기하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에는 여덟 게송이 있는데 네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두 게송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제1의 비유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제2의 비유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제3의 비유를 읊은 것이다.
셋째의 ‘이 때 시방’ 이하는 설함을 매듭 지어서 증명하여 성취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긴 행이고 다음은 게송이며, 또한 이 게송은 자세히 설함 가운데 두 번째인 ‘게송을 거듭함’이라 할 수 있다. 처음의 경문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대지가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것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변별이고 다음은 통틀어 매듭 지은 것이다. 둘째는 부처님께서 몸을 나타내시는 것인데 역시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는 행의 이익을 성취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는 힘을 얻는 까닭을 밝힌 것이며, 다섯째는 보살의 운집(雲集)이 증명이 되는 것인데, 역시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의 게송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긴 행은 설하는 뜻을 밝힌 것이고, 둘째는 올바른 게송이다. 게송의 경문에는 일곱 게송이 있는데 세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두 게송은 법이 심오해서 비유로써 나타내기가 어려움을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법을 들은 이익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의 두 게송은 이익을 들어서 지니기를 권유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33) 이세간품(離世間品)
해행(解行)의 법상(法相)과 동정(動靜)의 걸림 없음은 이 회상에서 이루어진다. 네 가지 문은 위와 같다.
첫째는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이(離)라는 것은 행의 체(體)가 청정하다는 뜻이다. 세간이란 것은 여의는 바의 법이다. 세(世)라는 것은 시(時)이며, 간(間)이란 것은 중(中)인데, 다만 시중(時中)에 존재하는 것은 세간이라 이름한다.
둘째, 온 뜻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르침의 흥기와 회상이 온 연유를 변별한 것이니, 이 아래의 제3은 연(緣)에 의거해 행을 닦아서 덕을 성취하는 분(分)이다. 온 까닭이란 것은 위에서는 이미 법을 얻었고, 다음으로는 반드시 법을 의거해 연(緣)에 나아감으로써 행의 덕을 닦아서 성취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래의 2품의 경문에는 모두 권사(勸辭)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2품의 옴[來]을 아는 것은 앞에서 성성(聖性)이 현전하여 범부와 더불어 공유하지 않는 분제를 밝히고자 하기 때문에 다음에 온 것이다.
셋째는 종지이니, 두 가지로 분별한다. 첫째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사람에는 정(正)과 조(助)가 있는데 두 사람이 각기 체(體)ㆍ상(相)ㆍ용(用)이 있는 것이다.
【문】이 사람과 아래의 지식인(知識人)은 어떻게 다른가?
【답】여기서는 능히 가르침을 선양하는 사람이고, 아래의 지식은 가르침으로 설명한 바의 법인(法人)이니, 준거해서 취하라.
둘째는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법은 이른바 행법이니, 곧 일승의 도품(道品)이다. 삼승과 소승의 명수(名數)는 비록 동일한 삼십칠이라도 뜻이 다르니, 자세한 것은 모든 경과 같다. 일승의 행은 배움에도 또한 시(始)가 있다. 만약 정학(定學)에 의거해서 시(始)의 분제를 밝힌 것이라면 다음과 같으니, 만약 회심인(廻心人)을 기준으로 하면, 곧 비지(非至)의 정(定)과 초선(初禪)의 정(定) 등을 배움의 시초로 삼는다. 만약 직진인(直進人)에 의거한다면, 곧 광명이 뜻과 말을 얻는 정(定)을 초학의 시초로 삼는다. 만약 일승의 공유하지 않는 가르침을 기준으로 한다면 행에 의거함 그대로 적정승삼매(寂靜勝三昧)인 것을 초학의 시초로 삼는다. 만약 행해(行解)를 기준으로 한다면, 곧 화엄의 정(定)을 초학의 시초로 삼는다. 만약 행위(行位)를 기준으로 한다면, 곧 10행위의 정(定)을 초학의 시초로 삼는다. 만약 인지식(人知識)의 궤칙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자분신정(師子奮迅定)을 초학의 시초로 삼는다. 만약 해(解)와 신(信) 등을 기준으로 한다면, 곧 정장정(淨藏定) 등으로써 초학의 시초로 삼는다. 만약 정해(正解)를 기준으로 한다면 성기의 법문으로써 초학의 시초로 삼는다. 만약 해위(解位)를 기준으로 한다면 곧 10해위(解位)의 정(定)을 초학의 시초로 삼는다. 이런 것들은 본실(本實)로 귀향함을 기준으로 하면 말이 되고, 단박에 깨달은 사람의 뜻과 말의 분별없는 정(定)이 시초가 된다. 나머지는 준거해서 알 수 있다.
넷째,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이 아래로는 두 가지로 나눈다. 처음의 품(品)은 법에 의탁해서 닦아 나가는 분(分)을 밝힌 것이며, 둘째 「입법계」 이하는 사람에 의거해서 증득에 들어가는 분을 밝힌 것이다.
【문】어째서 법을 대해서 증득에 들어감을 밝히지 않고, 아래에서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비로소 증득에 들어가는 것인가?
【답】법은 의거하는 바이고, 선교(善巧)는 지혜를 말미암는 것이다. 만약 기틀의 의식을 잘 요달하는 뛰어난 사람에 의거하지 않는다면 비록 스스로 법이 있더라도 증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지식(知識)은 전부 범행(梵行)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문】이상의 법과 여기서 행을 성취한 것에는 모두 성문(聲聞)이 없는데, 아래에서 법계의 지식이 곧 성문을 통틀어 변별함이란 무엇인가?
【답】위에서는 법이 바로 돈(頓)이고, 여기서는 행이 또한 돈이니, 이 때문에 성문이 없는 것이다. 아래의 법계 중에서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사람에게 뛰어난 교묘함[勝巧]이 있어서 소(小)를 이끌어 대(大)를 성취한 것은 사람의 덕을 밝히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소를 설한 것이다. 둘째는 법계의 발심이 비로소 2회향에 통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문】이 두 품을 어째서 두 가지 처소로 나누어 설했는가?
【답】기환중각(祗桓重閣)은 섭화(攝化)의 시작이고, 보광당(普光堂)은 행을 일으키는 시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상은 보살의 행을 일으킴이 보광에서 발함을 밝힌 것이고, 아래는 문수의 교화가 중각에서 일어남을 밝힌 것이다. 그러함을 아는 까닭은 이 중회(重會)의 별본(別本)에서 “이런 뜻의 질문을 능히 거듭해서 열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이 경문에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서(序)이고, 다음은 정(定)에 들어가는 것이며, 셋째는 기(起)이고, 넷째는 청(請)이며, 다섯째 ‘이 때 보현이 말하기를’ 이하는 올바로 설한 것이며, 여섯째는 품이 아직 증명을 성취하지 못한 것이며, 일곱째는 게송이다.
처음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시(時)이고, 둘째는 부처님이며, 셋째는 처소이고, 넷째는 똑같이 들은 대중이다. 처소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처소를 변별한 것이고, 두 번째는 처소에 의거해서 부처님의 덕을 성취한 것이다. 어째서 여기서 덕을 찬탄한 것인가? 인과의 순숙한 공(功)으로써 화주(化主)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며, 또 행상(行相)은 귀히 여길5) 만하기 때문이다. 덕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둘째는 자분(自分)의 행이며, 셋째 ‘능히 일체와 더불어서’ 이하는 이타행이다. 넷째는 동일하게 듣는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으로 수(數)를 열거해서 덕을 찬탄한 것인데, 이 처음의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고, 둘째는 간략히 덕을 찬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시작[始]을 익혀서 마지막[終]을 달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새 것[新]을 익혀서 옛 것[舊]을 달리하는 것이다. 셋째 ‘구족해서 성취한다’ 이하는 개별적으로 덕을 찬탄한 것이며, 넷째 ‘이같이 구족한다’ 이하는 매듭 지음이다. 셋째의 개별적으로 덕을 찬탄함 속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자분의 덕이고, 두 번째 ‘일념 중에서’ 이하는 타분(他分)의 덕이다. 자분 중에서 처음은 자리(自利)이고, 두 번째 ‘훌륭히 중생을 섭수한다’ 이하는 이타(利他)이다.
둘째의 명칭을 열거해 덕을 찬탄함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명칭을 열거한 것인데 여기서는 간략히 열거하였다. 이 경문의 보살 명칭이 똑같이 보(普)인 까닭은 행의 체(體)가 이(理)를 수순해서 이상(異相)이 없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덕을 찬탄함이니, 덕을 찬탄함 가운데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둘째 ‘모든 세간을 따라서’ 이하는 법을 섭수함이 으뜸의 행이 되는 것이며, 셋째 ‘다 능히 받아 지닌다’ 이하는 정법의 행을 호지(護持)하는 것이며, 넷째 ‘모두 따라서[隨諸]’ 이하는 대사(大事)를 이루는 행을 보인 것이다.
둘째, 정(定)에 들어감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정(定)에 들어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명칭을 열거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정(定)의 힘을 밝히는 것이다. 이 명칭이 화엄정(花嚴定)인 까닭은 행이 과(果)를 장엄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셋째는 정(定)에서 일어남을 밝힌 것인데 앞과 동일하니 알 수 있다. 넷째, 청문(請問) 중에서 홀로 보혜(普慧)만이 법을 먼저 물은 까닭은 지금은 다만 혜(慧)로써 행을 인도함을 밝힌 것이며, 다시 기틀의 광대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만 혜가 체(體)에서 발하기 때문에 보혜가 간략히 2백 구를 질문한 것이며, 교묘한 행[巧行]이 연(緣)을 따르기 때문에 보현이 2천 구를 자세히 답한 것이다.
‘이 가운데’ 이하에는 열 가지 뜻이 있으니, 이 때문에 행의 가르침이 흥기하는 것이다. 첫째는 뛰어난 사람과 더불어 행을 같이함을 말미암기 때문이며, 둘째는 부처님께서 호념(護念)하시기 때문이며, 셋째는 불가사의한 모든 선근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보살의 근(根)을 구족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부처님 집안에 태어나기 때문이며, 여섯째는 선지식의 힘을 얻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일체 모든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지니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노사나불의 본원력(本願力) 때문이며, 아홉째는 선근이 성숙하기 때문이며, 열째는 보현보살의 행을 감당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경문은 바로 선지식에게 있는 것인데 뜻이 이 품에 통할 뿐이다. 이는 생각해서 준거할 수 있다.
질문 중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체적으로 고하는 것이고, 둘째는 올바로 질문하는 것이며, 셋째 ‘착하도다’ 이하는 청함을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보현으로써 답한 까닭은 행의 넓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경문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곧 6위(位)이다. 처음의 20구는 10신(信)의 지위이고, 다음의 ‘어떤 것을 보현의 마음을 내는 것이라 하는가?’ 이하의 20구는 10주(住)의 지위이며, 셋째 ‘어떤 것을 지님이라 하는가?’ 이하의 30구는 10행(行)의 지위이며, 넷째 ‘어떤 것이 보배 머무름[寶住]인가?’ 이하의 29구는 10회향의 지위이고, 다섯째 ‘어떤 것을 신업(身業)이라 하는가?’ 이하의 50구는 10지의 지위이며, 여섯째 ‘어떤 것을 관찰이라 하는가?’ 이하의 51구는 과위(果位)의 차별을 질문한 것이다. 그러므로 별본(別本)에서는 “원(願)은 보살행을 해설한 것으로서 시작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의심이 없게 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니, ‘이 때 보현이 말하기를’ 이하의 제5 설분(說分)으로 위의 6위(位)를 자세히 답한 것에 나아간 것이다.
처음 10신위(信位)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90구는 자분(自分)의 행이 원만한 것이고, 둘째 ‘열 가지 들어감[十種入]’ 이하의 80구는 승분(勝分)의 행이며, 셋째 ‘열 가지 무너뜨릴 수 없는 지혜’ 이하의 30구는 이타행이다. 처음의 90구 중에서 처음의 50구는 자리(自利)의 행이고, 둘째 ‘올바른 희망[正希望]’ 이하의 20구는 이타행이며, 셋째 ‘열 가지 계(戒)’ 이하의 20구는 해당되는 지위의 인(因)이 과(果)의 원만을 성취한 것이다.
처음의 의과(依果)라는 것에는 일반적으로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국토 등의 의과이고, 둘째는 습기(習氣)가 이전의 과(果)에 의거해서 생기는 것이며, 셋째는 습인(習因)과 습과(習果)이고, 넷째는 동체(同體)6)가 서로 의거하는 인과이다. 이 중에서 전자의 둘은 설하지 않았다. 또한 설함이 제1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사유해서 준거할 수 있다. 이 경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여덟 게송은 자분(自分)이고, 나중의 두 게송은 승진(勝進)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등의 경문 중에서 십십(十十)은 모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數)를 든 것이고, 둘째는 명칭을 열거해서 해석한 것이며, 셋째는 매듭 지음이고, 넷째는 이익을 들어서 배우기를 권유한 것인데, 오직 불지(佛地)와 공법(共法)의 행만을 뺀 것이다. 다시 과(果) 등의 법과 달리하는 배움이 없기 때문에 인과가 이미 수립되어서 능히 비승(非勝)을 해석한 것이며, 지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10가지 기특상(奇特想)을 밝힌 것이다. 이 중에서 처음의 여덟 게송은 자분(自分)이고, 다음의 두 게송은 타분(他分)이다. 이미 대해(大解)가 있으면 반드시 대행(大行)을 일으킨다.
다음은 10행을 밝힌 것인데 수행의 성취가 반드시 선우(善友)에 의거하기 때문에 10지식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한 게송은 안락하고 견고한 보리심이며, 다음의 세 게송은 도심(道心)에 의거해서 자리의 행을 성취한 것이며, 다음의 네 게송은 마음에 의거해서 이타행을 성취한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마음에 의거해서 보현행을 성취한 것이며, 다음의 한 게송은 대행에 의거해서 법계에 들어간 것인데, 만약 부지런히 채찍질하지 못한다면 도에 나아감을 말미암음이 없다.
다음은 10정진(精進)을 밝힌 것이니, 정진이 이(理)와 합함을 밝히고자 하여 열 가지 희망을 밝힌 것이다. 전자의 여덟은 자분(自分)이고, 나중의 둘은 승진인데, 치우침을 여의어서 ‘올바름[正]’이라 이름 붙였을 뿐이다. 올바른 희망[正悕]의 유력(有力)에 의거하기 때문에 열 가지 중생을 성취시킴을 변별한 것이니, 처음의 하나는 보시의 섭수이며, 다음의 둘은 애어(愛語)이며, 다음의 둘은 동사(同事)이며, 다음의 다섯은 이행(利行)이다. 중생을 이롭게 함을 말미암기 때문에 악(惡)을 여의지 않음이 없는 것이며, 선(善)을 쌓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10계(戒)를 밝힌 것이며, 이미 이전에 덕을 성취했기 때문에 10수기(授記)를 밝힌 것이다.
둘째에 있는 80게송은 승분행(勝分行)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20게송은 자행(自行)이고, 다음의 40게송은 이타행에 들어가는 것이며, 다음의 20게송은 이타의 인과(因果)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미 자행이 성취되어서 다음으로 뛰어난 경계에 들어간 것이며, 행이 뛰어나기 때문에 10가지 여래의 경계에 들어간 것이다. 처음의 하나는 보리를 성취함을 보인 것이고, 다음의 여덟은 3업으로 사물을 이롭게 한 것이며, 다음의 하나는 열반에 들어간 것이다. 여덟 가지 중에서 처음의 넷은 구(口)이고, 다음의 둘은 신(身)이고, 다음의 둘은 의(意)이다.
용(用)이 이미 뛰어난 용에 들어가서 반드시 기(器)의 성품을 인식하기 때문에 열 가지 중생심의 행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며, 이미 근(根)을 인식한 다음에 안락한 바의 처소를 밝히기 때문에 열 가지 세계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며, 이미 의거하는 처소를 얻고 나서 반드시 시(時)의 길고 짧음을 인식하기 때문에 열 가지 겁에 들어감을 변별한 것이며, 비록 시(時)가 자재롭더라도 설하여 보인 것이 이(理)를 밝히지 않아서 또한 알 수 있다고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열 가지 삼세를 설함을 변별한 것이며, 이미 시(時)을 인식한 다음에 시중법(時中法)을 밝혔기 때문에 다음으로 3세간을 변별한 것이다.
경문에서 세간에 들어감이라 말한 것은 첫째는 3법이 시중(時中)을 나타냄을 알기 때문이며, 둘째는 어법(語法)이 뜻에 통하는 힘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또 시설하여 정(情)에 통하는 것을 도(道)라 말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어의(語義)의 체성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넷째는 어의의 방(方)에 따라 시설함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어의를 알아서 인식하는 상(想)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어언(語言)의 인(因)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언어의 분제를 알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말의 뜻이 서로 전(轉)하면서 다함 없음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시중(時中)이 염(染)을 여읨을 알고 말의 뜻도 이와 같기 때문이며, 열째는 시중(時中)의 성품이 청정함을 알기 때문이며, 말의 뜻도 이와 같아서 이미 시중법을 요달해서 법을 이해한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의 열 가지는 걱정과 번뇌를 버리고 여의어서 마음에 싫어함과 후회가 없는 것인데 처음의 넷은 자리행(自利行)이고, 다음의 다섯은 이타행이며, 다음의 하나는 자타를 함께 행하는 것이다. 세 번째의 이타 안에서 처음은 이미 지은 일[作事]에 후회가 없어서 그 마음이 견고한 것이다. 다음은 열 가지 이타의 지혜가 무너뜨릴 수 없음을 밝힌 것인데 처음의 둘은 이타이고 다음의 여덟은 자리이니, 이미 지혜가 있기 때문에 능히 법을 지니는 것이다. 다음은 열 가지 다라니인데, 앞의 아홉은 인법(因法)을 지니고, 다음의 하나는 과법을 지닌 것이니, 지녀서 성취하여 과법을 분해(分解)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제3은 열 가지 불화(佛化)가 타자에게 미침을 변별하여 설한 것인데 처음의 셋은 보불(報佛)이고, 다음의 셋은 화불(化佛)이며, 다음의 넷은 법불(法佛)이다. 이것은 다만 일상(一相)의 해석일 뿐이니, 만약 이 경에 의거한다면 곧 모두가 통틀어 섭수된다.
둘째의 ‘보현의 마음’ 이하는 10해위(解位)의 질문에 답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50구는 해(解)의 방편을 밝힌 것이고, 둘째 ‘열 가지 청정’ 이하의 70구는 해위에서 대치행(對治行)을 올바로 닦는 것이며, 셋째 ‘열 가지 설법’ 이하의 80구는 이타행이다.
처음 중에서는 대심(大心)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보현의 마음을 발한 것인데, 처음의 셋은 중생심을 수호하는 것이고, 다음의 셋은 과지심(果智心)에 취향하는 것이며, 다음의 넷은 유위심을 염리(厭離)하는 것이니, 이미 대심을 성취하고서 다음에 대행을 성취하는 것이다. 둘째의 열 가지 보현행에서 처음의 아홉은 자분(自分)의 행법이고, 다음의 하나는 승진의 행법이니, 대행이 이미 갖춰지고 나서 다음에 비(悲)로 사물을 제도함을 변별한 것이다. 셋째의 열 가지 대비(大悲)에서는 비심(悲心)이 이미 갖춰진 다음에 비(悲)에 의거해서 발심의 갖춤을 밝힌 것이다. 넷째의 열 가지 보리심을 발한 인연은 이미 대심을 이루고 난 다음에 반드시 선우(善友)에 의지해서 증장시킨 것이다. 다섯째의 선지식을 가까이함에서 전자의 여덟은 인행(因行)을 일으킨 것이고, 다음의 둘은 과행(果行)을 일으킨 것이다.
해위(解位)의 두 번째에는 70구가 있는데, 세 가지가 된다. 처음의 20구는 방편의 닦음을 밝힌 것이며, 둘째 ‘각(覺)을 수순한다’ 이하의 30구는 해(解)의 성취를 밝힌 것이며, 셋째의 10구는 아는 법문의 차별을 밝힌 것이니, 선우를 가까이하기 때문에 능히 모든 미혹을 멀리하는 것이다.
제1의 열 가지 청정은 이미 장애를 여의었기 때문에 높이 피안(彼岸)에 오르는 것이며, 제2의 열 가지 바라밀은 이미 행의 체(體)가 이루어져 아는 바 중에서 수순하여 깨달아 도달하는 것이며, 제3의 열 가지 각지(覺知)를 수순함은 이미 앎을 수순하고 난 뒤에 지(智)의 정립(精立)을 이룬 것이며, 제4의 열 가지 결정지(決定知)는 이미 결정하여 다분히 감능(堪能)이 있는 것이며, 제5의 열 가지 힘은 이미 지력(智力)이 감능하는 것이며, 제6의 열 가지 평등을 변별함은 이미 이관(理觀)을 얻어서 반드시 지용(智用)을 일으키는 것이며, 제7의 열 가지 방편을 변별함은 불법(佛法)의 구(句)이다.
셋째의 이타(利他)의 80구에 나아가면 다시 세 가지가 된다. 처음의 40구는 올바로 연(緣)을 대하여 법을 설함으로써 변재의 덕이 갖춰짐을 나타낸 것이며, 다음의 ‘열 가지 집착 없음’ 이하의 30구는 집착 없는 지혜의 성취를 변별한 것이며, 다음의 10구는 화덕(化德)이 갖춰짐을 변별한 것이니, 처음에 이미 이해하고 난 다음에 반드시 언설을 일으킨 것이다.
제1의 열 가지 설법을 변별함은 이미 법을 설한 다음에 반드시 받아 지니기 때문이며, 제2의 열 가지 받아 지니는 방법에서 전자의 일곱은 인행(因行)을 지니는 것이고, 다음의 셋은 과법(果法)을 지니는 것이니, 이미 받아 지니고 나서 게송을 읊은 것이다. 제3의 열 가지 변재7)는 재(才)의 걸림 없음을 말미암아서 덕상(德相)이 남달리 출중한 것이며, 제4의 열 가지 뛰어난 법을 변별함에서 전자의 여덟은 방편의 닦음이 뛰어난 것이고, 다음의 둘은 자재의 용(用)이 뛰어난 것이니, 바로 덕이 뛰어난 능(能)을 일으킴으로써 경계의 연(緣)에 집착이 없는 것이다. 제5의 열 가지 집착 없음을 변별함은 집착이 없기 때문에 평등의 증(證)을 이루는 것이다. 제6의 열 가지 평등의 마음을 변별함에서 전자의 여덟은 자분행 속의 평등이고 다음의 둘은 승분행 속의 평등이니, 마음이 이미 평등을 얻어서 증(證)에 의거해 후득지(後得智)를 일으키는 것이다. 제7의 열 가지 출생지(出生智)를 변별함은 후지(後智)를 따라서 용(用)을 일으키는 것이며, 제8은 열 가지 변화를 변별한 것이다.
제3의 ‘열 가지 지님[十持]’ 이하의 3백 구는 위의 10행의 질문에 답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60구는 부처님 경계에 훌륭히 들어감으로써 장애가 다하여 청정한 것이며, 둘째 ‘열 가지 부사의(不思議)’ 이하의 90구는 대치(對治)의 도가 이루어지고 행의 덕이 청정함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열 가지 원림(園林)’ 이하의 150구는 해당되는 지위를 닦아 성취함이 만족한 것이다.
처음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10구는 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20구는 부처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며, 아래의 30구는 행이 이루어져서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다. 처음의 지님[持]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인 인(因)이 과(果)를 지님이니 가령 종성지(種性持) 같은 것이며, 둘째는 과가 인을 지님이니 가령 지지(地持)나 가지(加持) 등이며, 셋째는 주지력(住持力)의 이익이며, 넷째는 마음과 경계가 서로 지님이니 논과 같이 이 중에서 통틀은 것이다. 이미 종성지가 이루어졌다면 법을 희망하면서 싫어하지 않는다.
제2의 열 가지 올바른 희망을 변별함은 올바로 희구하는 법의 지혜를 성취함으로써 마음이 사무쳐 걸림이 없는 것이다.
제3의 불법(佛法)에 깊이 들어감을 변별하는 것에서 처음의 넷은 기(器)세간을 기준으로 하여 불법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둘은 중생세간이며, 다음의 셋은 지정각(智正覺)이며, 다음의 하나는 총법계가 불법이 되는 것이니, 이미 불법에 들어가서 연(緣)이 실답지 않음이 없는 것이 모두 행을 일으켜서 의거하는 바이다.
제4의 열 가지 의지(依止)를 변별함은 이미 기대는 바가 있는 것이니, 연(緣)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제5의 열 가지 무외심(無畏心)을 변별함은 올바로 안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스스로 결정(決定)을 얻음을 알기 때문이다.
제6의 열 가지 무의심(無疑心)을 변별하는 것에서 처음의 셋은 자행(自行)이고, 다음의 넷은 이타이며, 다음의 셋은 자타를 함께 이루는 것이다.
두 번째 자단(子段)의 90구에서 행을 다스리는 성취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30구는 방편의 대치행이고, 다음의 ‘열 가지 정수삼매(正受三昧)’ 이하의 30구는 행의 체(體)가 평등하여 걸림 없는 것이며, 다음의 ‘열 가지 신통(神通)’ 이하의 30구는 행이 작용을 성취한 것이다.
올바로 의심이 없음으로써 심오한 법에 대해 지혜가 능히 이해하고 요달하기 때문에 열 가지 부사의를 변별한 것이며, 또는 의심이 없음으로 심오한 법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부사의인 것이니, 이미 심오한 지혜를 얻어서 해교(解巧)가 중생을 수순하기 때문이다. 제2에서는 열 가지 교묘한 방편이 능히 부처님의 미묘하고 비밀한 말을 설할 수 있음을 변별한 것이니, 이미 비밀한 말을 얻어서 다시 들어가는 바를 교묘하게 알기 때문이다. 제3에서는 열 가지 교묘한 방편의 분별지를 변별한 것이니, 처음의 둘은 기세간을 기준으로 해서 지(智)를 밝힌 것이고, 다음의 여섯은 중생세간이며, 다음의 둘은 지정각이니, 곧 항상 적정(寂靜)하기 때문이다. 제4는 열 가지 정수(正受)삼매를 변별한 것이니, 정(定)으로부터 통혜(通慧)를 일으켜서 요달하지 못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제5는 열 가지 일체 처소를 변별한 것이니, 바로 처소가 존재하지 않음이 없음으로써 체(體)가 두루 하여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제6은 열 가지 법문을 변별한 것이니, 기용(起用)이 자재롭기 때문이다. 제7은 열 가지 신통을 변별한 것이니, 바로 신통의 자재로움으로써 연(緣)을 요달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제8은 열 가지 명(明)을 변별한 것이니, 지혜의 일어남을 밝힘으로써 무명의 속박이 다하기 때문이다. 제9는 열 가지 해탈이다.
원림(園林) 이하는 제3의 행덕이 구족한 것인데 150구(句)로서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40구는 보상(報相)의 구족을 밝힌 것이며, 둘째 ‘열 가지 부동심(不動心)’ 이하의 40구는 실해(實解)가 행의 근본이 됨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열 가지 무구(無垢)’ 이하의 70구는 대용(大用)의 성취가 원만한 것이다.
처음은 행용(行用)의 의거한 바로서 지혜가 경계에 노닐기 때문에 열 가지 원림(園林)을 변별한 것이니, 전자의 일곱은 방편행이고 다음의 셋은 과덕(果德)인데, 이미 밖으로 노닐고 나서 다시 안으로 안락하기 때문이다. 제2는 열 가지 궁전(宮殿)을 변별한 것인데, 승묘(勝妙)가 능히 도의 이익을 출생함으로써 사물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삼기 때문이다. 제3은 열 가지 즐거움을 변별한 것인데, 즐거운 마음을 성취하고 나서 덕이 법신을 장엄하기 때문이다. 제4는 열 가지 장엄을 변별한 것인데, 전자의 여덟은 방편행의 장엄이고 다음의 둘은 순숙행(淳孰行)의 장엄이다.
둘째의 40구 중에서 덕이 몸을 장엄하고 나서는 행의 덕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제1은 부동심을 밝힌 것이니, 승리(勝理) 가운데에서 행의 체(體)가 견고함으로써 마음이 능히 궁진하고 요달하기 때문이다. 제2는 열 가지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을 변별한 것이니, 이미 파괴하기 어려운 데에 깊이 이르러서 능히 이(理)를 잘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은 지혜로 관찰함을 밝힌 것이니, 이미 무유(無遺)를 요달해서 법에 대해 능히 잘 간별(揀別)하기 때문이다. 제4는 열 가지 분별법을 변별한 것이다.
셋째의 70구 중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30행은 장애를 여읜 청정을 밝힌 것이며, 다음의 40행은 덕(德)을 성취한 것이다. 처음은 열 가지 무구지(無垢智)를 변별했기 때문에 지행(智行)이 정(定)을 닦는 것이니, 이 때문에 제2에서 열 가지 지인(智印)을 변별한 것이다.
【문】경문에서 “여래의 법이 문자지인(文字智印)임을 안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을 기준으로 해서 설한 것인가?
【답】보살과 부처님께서는 각기 법의 가없음을 아신다. 만약 두 성(聖)을 써서 상대할 때라면 보살은 곧 부처님에게 미치지 못하고, 부처님께서는 곧 보살을 능가하신다. 왜냐하면 법성체(法性體) 위에서 두 문은 법의 그러함을 구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승을 기준으로 해서 해석한 것이니, 이미 행한 것이 파괴되지 않고 비춤의 작용이 걸림 없기 때문이다. 제3은 열 가지 지혜 광명을 변별한 것이니, 지혜 광명은 걸림이 없어서 지취(旨趣)가 계합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제4는 열 가지 불가칭량주(不可稱量住)를 변별한 것이니, 행의 체(體)가 난승(難勝)이고 용맹이 무간(無間)이기 때문이다. 제5는 열 가지 게으름[懈怠]이 없는 마음을 발함을 밝힌 것이니, 대심(大心)의 성취를 책려함으로써 올바른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제6은 열 가지 수미산왕의 마음의 정직한 마음을 변별한 것이니, 올바른 마음을 안에서 결정하여 세간에서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이타의 과(果)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제7은 열 가지 대해(大海)에 깊이 들어가서 지혜로 3보리를 성취함을 변별한 것인데, 전자의 여덟은 자행이고 나중의 둘은 이타이다.
넷째의 ‘열 가지 보주(寶住)’ 이하의 2백 90구는 위의 10회향에 답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110구는 10회향의 행체(行體)가 성취되어서 장애를 여읨을 밝힌 것이고, 둘째 ‘열 가지 자재로움’ 이하의 120구는 행상(行相)이 자재롭고 걸림 없음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열 가지 신통에 노닌다’ 이하의 70구는 행용(行用)의 구경(究竟)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40구는 행의 성취가 높아서 피안에 깃드는 것이며, 둘째 ‘10신(信)’ 이하의 70구는 대치의 도가 이루어져서 장애를 여의어 청정한 것이다.
처음에 행은 이(理)를 칭합해서 이루어지고, 무주(無住)를 보주(寶住)라 이름하는데, 이미 행과 이(理)가 합해서 덕위(德位)가 견고하기 때문이다. 둘째, 열 가지 금강심을 발함을 변별한 것은 대승이 밝게 드러나면서 과위(果位)가 원만히 갖춰지기 때문이다. 셋째, 열 가지 대사(大事)를 발함을 변별한 것에서 처음의 셋은 자리(自利)이고, 다음의 셋은 이타(利他)이며, 다음의 넷은 보리과(菩提果)의 원만이니, 불사(佛事)가 만족함으로써 온갖 행이 원만히 갖춰지기 때문이다. 넷째는 열 가지 구경(究竟)의 대사(大事)를 변별한 것인데, 다만 전자는 행을 발함을 밝힌 것이고, 후자는 구경을 변별한다는 차이가 있다. 전자의 여덟은 자분의 행이 성취된 것이고, 다음의 둘은 타분(他分)의 행이 성숙한 것이다.
둘째의 70구 중에서 처음의 30구는 회향의 행체(行體)를 밝힌 것이고, 다음의 40구는 능히 출세간의 행을 내는 것이다. 처음의 열 가지 불괴신(不壞信)에서 처음의 셋은 3보(寶)의 처소에서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고, 다음의 둘은 행을 같이하는 사람의 처소이며, 다음의 하나는 중생의 처소이고, 다음의 넷은 법에 대해 불괴를 성취하는 것이니, 믿음의 성취로써 부처님 집안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둘째, 열 가지 수기(授記)를 변별함은 이미 도의 종자를 성취한 것이 과(果)를 향해 반드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셋째, 열 가지 선근을 변별함에서 처음의 넷은 보리로 회향하는 것이고, 다음의 넷은 모든 보살이 동등하게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며, 다음의 둘은 보리로 회향하는 것이니, 회향의 지위가 이루어져서 지용(智用)이 자재롭기 때문이다. 넷째, 열 가지 지혜를 변별함에서 처음의 넷은 자분의 행이 자재로운 것이고, 다음의 여섯은 타분의 행이 자재로운 것이니, 지용이 밝게 비추어서 법계를 두루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열 가지 한량없는 광심(廣心)을 변별함에서 전자의 일곱은 자분의 인행(因行)이고, 다음의 셋은 승분행이니, 지혜 작용이 보편적으로 두루 하여 체(體)가 무외(無外)를 감싸고 덕이 바다 깊숙이 궁진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열 가지 장(藏)을 변별함에서 전자의 일곱은 자분의 행이고, 나중의 셋은 승분행이니, 이미 덕을 쌓음이 원만히 갖춰지고 강굉이 여기서 다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열 가지 조순(調順)을 변별함에서 처음의 넷은 승분 경계 속의 조(調)이고, 다음의 여섯은 자분행 속의 순(順)이다.
둘째의 ‘열 가지 자재로움’ 이하의 120구는 행상(行相)의 자재로움을 변별한 것인데 그 중에서 처음의 10구는 자재로움을 총체적으로 변별한 것이고, 둘째에 있는 110구는 자재로움을 개별적으로 변별한 것이다. 처음 중에서 처음의 다섯은 자분행이고, 나중의 다섯은 승진행(勝進行)이다. 이 자재로움은 6위(位) 전체에 있으나, 다만 믿음을 낳는 것의 우열을 기준으로 해서 차이로 삼았을 뿐이다. 아래의 110구 중에서 처음은 10장문(章門)을 개별적으로 세운 것이고, 둘째는 장(章)에 의거해 해석한 것이다.
문(門)의 처음 가운데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둘은 의(依)와 정(正)에 나아감으로써 자재로움을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둘은 사람과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다음의 둘은 경계와 지혜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제4는 지혜의 작용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제5는 역용(力用)에 상대해서 나타낸 것이다. 둘째, 개별적으로 변별한 해석 중에서 처음은 해석이고 다음은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하나는 중생이고, 둘째는 찰(刹)이고, 셋째는 법이고, 넷째는 신(身)이고, 다섯째는 원(願)이고, 여섯째는 경계이고, 일곱째는 지(智)이고, 여덟째는 통(通)이고, 아홉째는 신력(神力)이니, 이상은 오직 색(色)을 기준으로 했을 뿐이며, 열째는 역자재(力自在)이다.
셋째의 70구 중에서 처음의 20구는 행이 두루한 것이며, ‘수승(殊勝)’ 이하의 무외(無畏)나 불공(不共) 등의 50구는 행덕(行德)의 구경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열 가지 유희신통(遊戱神通)은 행이 매우 공교로워서 전변함에 걸림 없음을 밝힌 것이다. 지혜 작용의 유화(遊化)가 곧 체(體)의 특수하고 오묘함이기 때문에 제2는 열 가지 뛰어난 행을 변별한 것이다. 그 덕이 뛰어나고 지력(智力)이 여유가 있기 때문에 제3은 열 가지 힘[十力]을 변별한 것인데, 전자의 일곱은 인행(因行)이고 나중의 셋은 과(果)의 원만이다. 지력(智力)의 공(功)이 강해서 밖으로 두려운 바가 없기 때문에 넷째는 열 가지 무외를 변별한 것이다. 지단(智斷)을 구족해서 이승과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제5는 열 가지 불공법(不共法)을 변별한 것이다. 이소(異小)를 공유하지 않고 능히 정토와 함께 함을 인(因)으로 삼기 때문에 제6은 열 가지 업을 변별한 것이다. 덕행의 견고함을 말미암는 것이라서 제7은 열 가지 몸을 변별하는 것이다.
제5의 열 가지 신업(身業) 이하의 5백 구는 위의 10지(地)의 인위(因位)에서 질문한 바의 상(相)에 답한 것인데,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120구는 올바른 수행의 체(體)를 변별한 것으로서 초지에 의탁해 있으며, 둘째 ‘열 가지 방편’ 이하의 90구는 수행을 이루어서 장애를 여읨을 변별한 것으로서 2지 이상이며, 셋째 ‘열 가지 이생(離生)’ 이하의 90구는 수행의 순숙한 덕을 변별한 것으로서 4지 이상이며, 넷째 ‘열 가지 족(足)’ 이하의 2백 구는 보상(報相)의 구족함을 변별한 것으로서 8지 이상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는데, 처음의 20구는 신업을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40구는 구업을 변별한 것이며, 아래의 60구는 의업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 신업의 20구 중에서 처음의 10구는 체(體)이고 다음의 10구는 용상(用相)을 구별한 것이다. 둘째의 구업 중에서 처음의 10구는 체를 변별한 것이고, 다음의 10구는 구업의 인행(因行)을 변별한 것인데 처음의 넷은 자리이고 다음의 여섯은 이타이다. 구업이 선(善)하기 때문에 모든 신(神)의 가호를 얻는 것이다. 다음의 열 가지 수호는 호(護)를 말미암아서 내덕(內德)을 성취하여 능히 외화(外化)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열 가지 대사(大事)를 변별한 것이다.
셋째의 의업 60구 중에서 처음의 10구는 의업의 체(體)이고, 아래의 50구는 의업의 작용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체 중에서 처음의 세 구는 이타이고, 다음의 일곱 구는 자리행이다. 이미 체를 얻고 나서는 모름지기 이(理)에 수순해서 닦음을 이루기 때문에 제2는 열 가지 발심을 변별한 것이다. 발심행의 성취가 법계에서 종결되기 때문에 제3은 열 가지 만심(滿心)을 변별한 것이다. 올바른 지혜로 말미암아 능히 나중에 얻는 신(信) 등의 근(根)을 낳기 때문에 제4는 열 가지 근을 변별한 것이다. 이미 행의 체가 건립되어서 해심(解心)이 이(理)에 해당하기 때문에 제5는 열 가지 직심(直心)을 변별한 것이다. 이미 이관(理觀)이 밝음을 열어서 궁극의 실제에 계합하는 것이므로 제6은 열 가지 깊은 마음을 변별한 것인데, 전자의 아홉은 자행이고 다음의 하나는 이타이다.
둘째의 90구 중에서 처음의 30구는 자행을 밝힌 것이고, 둘째 ‘열 가지 입중생(入衆生)’ 이하의 30구는 이타이며, 나중의 ‘열 가지 취(趣)’ 이하의 30구는 자타행의 성취를 변별한 것이다. 처음은 인행(因行)을 교수(巧修)하기 때문에 열 가지 방편을 밝힌 것이다. 선교(善巧)의 방편으로써 능히 모든 행을 기쁘게 구하기 때문에 제2는 열 가지 낙수(樂修)를 변별한 것이다. 즐겁게 수행함을 말미암아서 장애와 허물이 없어지고 도의 맛이 점차 나타나기 때문에 제3은 열 가지 해탈을 변별한 것이다. 해탈을 말미암아서 사물의 성품을 깊이 알기 때문에 제4는 열 가지 성품에 들어감[入性]을 변별한 것이다. 성품에 깊이 들어감을 말미암아서 도의 맛이 점차 세밀해지기 때문에 제5는 열 가지 습기(習氣)를 변별한 것이다. 도의 맛이 점차 증가해서 그 대용(大用)을 성취하기 때문에 제6은 열 가지 치연(熾然)을 변별한 것이니, 곧 치성하게 닦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승진하여 이르지 않는 바가 없어서 모두 성인의 지취에 합하기 때문에 제7은 열 가지 취(趣)를 변별한 것이다. 이미 정취(正趣)에 의거해서 덕행이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제8은 열 가지 사(事)가 불법(佛法)을 구족함을 변별한 것이다. 이미 불법을 얻어서 반드시 물러섬의 허물을 인식하기 때문에 제9는 열 가지 불법을 퇴실(退失)함을 변별한 것인데, 처음의 넷은 이타행이 성취되지 않은 것이고, 다음의 여섯은 자리행이 성취되지 못한 것이다.
셋째의 90구 중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30구는 인행(因行)의 체(體)를 밝힌 것이고, 다음의 ‘열 가지 명호’ 이하의 20구는 행용(行用)의 차별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열 가지 한량없는 도(道)’ 이하의 40구는 인덕(因德)의 성취이다. 처음의 열 가지 이생(離生)이란 방편 생사의 장애가 다한 것이다. 무생(無生)을 수순함으로써 행의 성취가 견고하기 때문에 제2는 열 가지 결정법을 변별한 것인데, 처음의 다섯은 자분이고 다음의 다섯은 승분행이다. 자체로써 견고하기 때문에 제3은 열 가지 불법을 출생함을 변별한 것이다. 그리하여 행을 성취함으로써 덕이 시(時)에 드러나기 때문에 제4는 열 가지 명호를 변별한 것이다. 원만한 덕이 밝게 드러남으로써 막히고 걸린 것이 소진하고 자체가 허통(虛通)하기 때문에 제5는 열 가지 도(道)를 변별한 것이다. 이것은 곧 증수(增數)를 기준으로 해서 도의 체(體)를 밝힌 것이다. 앞에서 도의 자체가 도 경계의 한량없음을 변별하였기 때문에 제6은 열 가지 무량도(無量道)를 변별한 것이니, 곧 분제를 밝힌 것이다. 바로 관하는 바 도의 경계가 한량없기 때문에 능관(能觀)의 도법 역시 한량없고, 다시 별법(別法)이 없으니 또한 도의 수(數)라 할 수 있다. 도법이 이미 성취된 다음에 능히 성취하는 인(因)을 밝힌 것이 곧 제7이다. 제8의 열 가지 수도(修道)라는 것은 ‘하나의 원만한 수[一圓數]’이기 때문이니, 곧 닦음을 책려하는 방편을 변별한 것이다. 제9의 열 가지 장엄도(莊嚴道)라는 것은 앞에서 닦음을 책려한 것으로 말미암아 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한량없는 도구(道具)라고 말한 것은 도를 일으키는 인연이며, 또 섭수함이 자기에게 있어서 능히 도를 자량하기 때문에 구(具)라 이름 붙이는 것이다. 한량없는 수도(修道)라는 것은 법을 섭수함이 자기에게 있어서 능히 나아가 요달함을 감당하기 때문에 수도라 이름한 것이다. 한량없는 장엄도라는 것은 온갖 행이 서로 장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여(眞如)의 흐르는 바로서 연기가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 곳을 들어서 차례대로 밝힌 것이다. 이런 것들이 만약 소견(所見)을 따른다면 도법의 도이고, 만약 섭수함이 자기에게 있다면 곧 도행(道行)의 도이기 때문이다.
‘열 가지 족(足)’ 이하 제4의 2백 구 중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20구는 8지 이상을 변별한 것이니, 근행(根行)이 순숙해서 방편의 용(用)을 벗어난 것이다. 둘째 ‘열 가지 복(腹)’ 이하의 60구는 보체(報體)의 차별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열 가지 안(眼)’ 이하의 60구는 보상(報相)의 차별을 변별한 것이며, 넷째 ‘열 가지 행’ 이하의 60구는 보용(報用)의 차별을 변별한 것이니, 8지 이상은 부처님의 신업 등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처음의 ‘열 가지 족(足)’이란 것은 운보(運報)의 근본이고 진발(進發)의 시초이니, 용(用)의 방편을 이루어서 자타를 수수(授受)하기 때문이다. 제2는 열 가지 수(手)를 변별한 것이다.
둘째의 보체(報體) 60구 중에서 처음의 열 가지 복(腹)이란 것은 총체적으로 능히 용납하고 섭수하기 때문이다. 다시 능히 온적(蘊積)하기 때문에 제2는 열 가지 장(藏)을 변별한 것이다. 행용(行用)의 연기가 여기서 본실(本實)을 따라서 건립하기 때문에 제3은 열 가지 심(心)을 변별한 것이다. 덕업을 성취하여 서로 엄식(嚴飾)함으로써 법신을 영발(營發)하기 때문에 제4는 열 가지 장엄을 변별한 것이다. 행덕(行德)이 스스로 장엄하여 모든 허물을 막아 소진하기 때문에 제5는 열 가지 기장(器仗)을 변별해서 모든 마(魔) 등을 항복시키는 것이다. 온갖 행이 집기(集起)해서 덕의 성취가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제6은 열 가지 두(頭)를 변별한 것이다.
다음으로 셋째의 ‘열 가지 안(眼)’ 이하 60구는 보상의 차별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은 행덕이 뛰어나고 청정해서 연기를 비추어 요달하기 때문에 10안(眼)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처음의 다섯은 곧 5안(眼)이고, 나중의 다섯은 작용으로 명칭을 얻은 것이다. 『대론(大論)』에서는 “무상(無常)한 육안은 풍대(風大)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타방(他方)을 보지 못한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항상 육안이 자재로워서 타방의 빛깔을 본다. 둘째는 천안(天眼)이 2세(世)의 법을 보는 것이며, 셋째 혜안(慧眼)은 신(信) 등의 근(根)을 보는 것이며, 넷째 법안(法眼)은 일체법의 진실상(眞實相)을 보는 것이며, 다섯째 불안(佛眼)은 10력(力)을 보는 것이니, 이런 것들은 모든 경에서도 정해지지 않았다. 다음의 다섯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비춤의 작용이 있어서 다시 모든 성교(聲敎)를 능히 섭수하기 때문에 제2는 10이(耳)를 변별한 것이다. 열 가지 덕이 갖춰져서 행이 계향(戒香)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제3은 10비(鼻)를 변별한 것이다. 온갖 덕이 성취되어서 능히 궤칙을 선시(宣示)하기 때문에 제4는 10설(舌)을 변별한 것이다. 행의 견고함이 자재로워서 형상이 나타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제5는 10신(身)을 변별한 것이다. 이미 색상(色相)이 밖으로 드러나고 명심(明心)이 안에서 발하기 때문에 제6은 10의(意)를 변별한 것인데, 전자의 아홉은 인생(因行)이고 다음의 하나는 과행(果行)이다.
넷째의 보용(報用)의 60구 중에서 법신이 성립하고 덕용(德用)이 특히 능하며 위의가 구족하기 때문에 네 가지 위의(威儀)의 행을 밝힌 것이다. 수행의 방편을 이루어서 반드시 진발(進發)하여 머물지 않기 때문에 제1은 10행법을 변별한 것이다. 방편으로 나아가 닦는다면 자분(自分)의 성립이 있기 때문에 제2는 10주행(住行)을 변별한 것이다. 이미 안락하고 견고함을 성립해서 부동이기 때문에 제3은 10좌(座)를 변별한 것인데, 처음의 넷은 자행의 덕이고 다음의 여섯은 이타의 덕이다. 진행(進行)이 평등해서 온갖 상(相)이 영원히 평탄하기 때문에 제4는 10와(臥)를 변별한 것이다. 온갖 행이 이미 갖춰져서 반드시 상응의 경계가 있기 때문에 제5는 10주(住)를 변별한 것인데, 앞에서는 능주(能住)를 밝혔고 여기서는 소주(所住)의 법을 밝힌 것이다. 의거하는 바의 법이 있어서 그 행에 불가능이 없기 때문에 제6은 10행법을 변별한 것이다. 앞의 행을 처음으로 닦기 때문에 문(聞) 등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여기서는 종(終)의 성취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염(念) 등을 기준으로 해서 행을 삼은 것이며, 또한 행이라 이름 붙이는 것이다.
다음으로 여섯 번째의 ‘관찰’ 이하 510구는 위의 제6문(門)에서 질문한 인과의 원만함과 행덕을 원만히 갖춘 뜻에 답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320구는 인행(因行)의 구경에는 장애가 다하여서 청정함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열 가지 도솔천에 머묾[十住兜率天]’ 이하의 190구는 과덕(果德)의 구경을 변별한 것인데, 이 중에서 등각과 묘각을 합쳐서 밝혔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140구는 인행(因行)의 성취를 밝힌 것이고, 둘째 ‘10의(義)’ 이하의 80구는 방편의 닦음이 승진(勝進)을 수순하는 뜻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10마(魔)’ 이하의 1백 구는 인행(因行)의 성취로 장애가 다하여 청정함을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140구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40구는 행의 방편을 변별한 것이고, 둘째의 60구는 6도(度)의 자리행의 체(體)이며, 다음의 ‘10자(慈)’ 이하의 40구는 4등(等)의 이타행의 체를 변별한 것이다. 처음의 열 가지 관찰이란 일반적으로 행상(行相)을 변별한 것이니, 반드시 통하고 막힘을 잘 요달하기 때문이다. 처음의 넷은 자분행이고, 다음의 여섯은 타분행(他分行)의 법이다. 일왕(一往) 다하지 않기 때문에 제2는 열 가지 두루 관찰함을 변별한 것이다. 관하는 바가 두루해서 행을 건립하지 않음이 없고 위의를 지킴이 용맹하고 강건하기 때문에 제3은 열 가지 분신(奮迅)을 변별한 것이다. 용맹하고 강건하여 두려움이 없어 능히 결정해서 설하기 때문에 제4는 열 가지 사자후를 변별한 것이니, 이미 능히 선설(宣說)했으므로 만약 스스로 덕이 없다면 사물을 이롭게 함을 말미암음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 ‘10시(施)를 변별한다’ 이하의 6도(度)는 자신의 행체(行體)의 차례가 『섭론(攝論)』과 같으니, 첫째는 시(施)이고, 둘째는 계(戒)이며, 셋째는 인(忍)이고, 넷째는 정진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의 넷은 부지런하고 용맹한 것이며, 제5는 가행(加行)이고, 아래의 ‘5불(不)’ 이하는 무너뜨리기 어려운 무족(無足)의 정진이다. 다섯째는 정(定)이며, 여섯째는 혜(慧)이다.
다음의 ‘10자(慈)’ 이하의 40구는 이타행의 체(體)이다. 처음의 열은 자(慈)와 즐거움의 뜻이 앞서기 때문인데 처음의 둘은 평등하여 보편적으로 섭수하는 것이며, 다음의 셋은 장애를 여의게 하는 것이며, 나중의 다섯은 행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 제2의 열은 비(悲)이며, 제3의 열은 희(喜)이고, 제4의 열은 사(捨)이다.
다음의 ‘10의(義)’ 이하에서 제2의 80구는 방편의 승진을 변별한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40구는 자분행의 성취이며, 다음의 40구는 승진의 닦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처음의 10구는 뜻으로써 행을 성취한 것인데, 전자의 일곱 구는 자분이고 다음의 세 구는 승진이다. 여래의 뜻이란 것은 여(如)를 수순해서 온 것이다. 제2의 10법은 법으로써 행을 성취한 것이다. 제3의 열 가지 공덕을 갖추었다는 것은 행의 인연을 변별한 것이다. 나중에 지혜를 성취하는 인연을 밝혔기 때문에 제4의 10구는 지혜의 갖춤을 변별한 것이다.
다음의 40구에서 처음의 10구는 충분하게 이해하는 마음이 모든 법문에 노닐면서 천리(踐履)함을 밝힌 것이다. 이미 진취(進趣)의 방편이 있어서 반드시 삼승 등의 법에 대해 싫증이 없기 때문에 제2는 열 가지 법을 구하는 행을 변별한 것이다. 법을 얻음이 자기에게 있어서 잘 이해하여 분명히 요달하기 때문에 제3은 열 가지 명료(明了)를 변별한 것이다. 선법(善法)의 행이 이루어져서 위없는 도에 취향하기 때문에 제4는 열 가지 회향의 법을 변별한 것이다.
제3은 행을 인(因)해서 장애가 다함을 변별한 것인데, 경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50구는 부처님을 보는 행이 이루어져서 부처님 경계에 들어감을 변별한 것이며, 둘째 ‘10만(慢)’ 이하의 50구는 부처님 경계에 들어감을 부처님의 가호(加護)로 삼는 것이다. 처음의 50구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20구는 도의 장애가 현전함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10구는 대치해서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며, 다음의 20구는 장애가 다하여 부처님을 보는 것이다.
처음의 10마(魔)라는 것은 도에 장애가 있기 때문이며, 다음의 제2는 10마의 업이다. 전자는 체(體)이고, 지금 여기서는 역용(力用)인데 11구가 있다. 전자의 일곱 구는 자행이 성취되지 않은 것이고, 다음의 세 구는 이타가 건립되지 않은 것이며, 다음의 한 구는 과덕이 원만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도의 장애가 서로 다투어서 없애지 않아도 스스로 소멸하기 때문에 제3은 열 가지 마업을 버리어 여읨[捨離]을 변별한 것인데, 전자의 일곱 구는 자분행의 성취이고 후자의 세 구는 승진행의 건립이다. 체(體)의 장애가 이미 다하여서 행이 부처님 경계에 들어가기 때문에 제4는 열 가지 부처님을 봄을 변별한 것이다. 앞은 신(信)의 시초라서 다만 이해하는 것이고, 지금은 행을 성취하기 때문에 보는 것이다. 이미 체의 상응함을 얻어서 대용이 방소[方]가 없기 때문에 제5는 열 가지 불업(佛業)을 변별한 것이다.
나중의 50구의 부처님의 가피(加被) 중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20구는 승분(勝分)의 장애를 대치해서 방편행이 성취되는 것이고, 다음의 20구8)는 나중의 장애가 다시 일어나서 행을 섭수함이 장애에 있는 것이며, 셋째의 20구는 과덕의 가함[加]으로 부처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처음의 만업(慢業)이란 도의 상(相)을 집착해서 승분(勝分)에서 미혹하기 때문에 처음에 있는 것이다. 장애를 인식해서 일으키지 않고 이(理)를 공경해서 법을 중시하기 때문에 제2는 10지(智)의 업을 변별한 것이다. 만약 도의 상(相)을 인식하지 않으면 곧 유위를 수순하여 속박을 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3은 마(魔)의 섭수하여 지니는[攝持] 바를 변별한 것이다. 도의 상(相)을 올바로 요달함으로써 곧 정각이 개명(開明)하기 때문에 제4는 10불(佛)의 섭지하는 바를 변별한 것이다. 실다움에 계합함으로써 곧 법이 자기에게 입혀지기 때문에 제5는 10법(法)의 섭지를 변별한 것이다.
다음 제2의 ‘부처님께서 도솔천에 머무신다’ 등의 190구는 과덕의 만족을 변별한 것인데, 이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의 40구는 인행(因行)의 승진이 반야의 법문과 더불어 상응함을 변별하는 것이며, 둘째 ‘열 가지 생(生)’ 이하의 50구는 뛰어난 행의 자엄(自嚴)과 건립의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며, 셋째 ‘열 가지 출가(出家)’ 이하의 60구는 뛰어난 다스림의 행이 성취되고 장애가 다해서 청정한 것이며, 넷째 ‘열 가지 여래의 힘을 깨달음[覺如來力]’ 이하의 40구는 과덕의 만족함과 불사(佛事)의 구경(究竟)을 밝힌 것이다.
처음에 도솔천에 머무는 열 가지 사업(事業)이란 자타가 함께 이로운 뒤에 변행(邊行)이 원만한 것이니, 자타의 행이 원만해지고 나서 장차 연(緣)에 처해 섭수하여 교화[攝化]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생사가 있지 않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대과(大果)를 요달하게 됨을 말미암지 못하기 때문에 제2는 목숨을 마칠 때에 임해서 열 가지 사(事)를 나타내 보임을 변별한 것이다. 나타내 보이고 나서 다음으로 ‘열 가지 사(事)’ 이하는 신(神)이 모태(母胎)에 내리는 것인데, 그 중에서 처음의 다섯 구는 이타이고 나중의 다섯 구는 인과의 상승을 섭수한 것이다. 나타낸 바가 측량하기 어렵고 뜻[旨趣]이 정밀하고 깊기 때문에 제4에서는 열 가지 미세취(微細趣)를 변별한 것이며, 무생(無生)을 생(生)으로 삼기 때문에 제5에서는 열 가지 생(生)을 변별한 것이다.
이 이하로부터 50구는 제2의 모(母)로부터 출생해서 세간에 나타난 것이다. 처음의 열 가지 생(生) 가운데 나아가면 처음의 여섯은 자분(自分)이고 다음의 넷은 승진이다. 덕의 상(相)이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제2에서는 열 가지 장엄을 변별한 것이다. 온갖 덕이 갖추어져 모여서 도가 세간의 언표를 초월하고, 그 행이 널리 두루해서 공(功)이 건립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제3에서는 열 가지 일곱 걸음을 두루 걸음[遊行七步]을 변별한 것이다. 그 도가 처음으로 건립되고 청정해서 물듦이 없기 때문에 제4에서는 열 가지 동자(童子)를 나타냄을 변별한 것이다. 몸이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듦이 어찌 능히 나타나겠는가? 그 청정함이 높기 때문에 제5에서는 열 가지 궁중[中宮]에 있음을 나타냄을 변별한 것이다. 세간에 처해도 집착하지 않고 연(緣)에 장애받지 않는 바이기 때문에 제6에서는 열 가지 출가를 변별한 것이다.
이 이하의 60구는 대치(對治)의 행상(行相)을 밝힌 것이다. 성품이 상(相)을 여읨으로써 연(緣)을 어그러뜨려도 장애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단련함이 게으르지 않고 치열하기 때문에 제2에서는 열 가지 고행을 변별한 것이다. 두 변(邊)을 버려서 여의고 중도를 수순하기 때문에 제3에서는 열 가지 도량에 나아감을 변별한 것이다. 중도를 수순해서 섭수한 과(果)가 상승하기 때문에 제4에서는 열 가지 도량에 앉음을 변별한 것이다. 과(果)를 섭수함이 자기에게 있어서 초월해 오름[超昇]이 홀로 빼어나기 때문에 제5에서는 열 가지 기특(奇特)을 변별한 것이다. 선각삼매(善覺三昧) 등은 나중의 여래의 힘 중에서 지금9) 이를 가지고 온갖 미혹을 초월해서 지용(智用)의 원만하고 밝은 힘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기 때문에 제6에서는 열 가지 항마(降魔)를 변별한 것이다. 유위의 생멸이 끊지 않아도 저절로 쉬고, 대지혜의 참다운 작용은 떨치지 않아도 저절로 밝기 때문에 제4단락에서는 열 가지 여래의 힘을 변별한 것이다.
이하의 40구는 이를 밝힌 것이니, 곧 해탈도 중에서 단박에 10력(力)을 얻은 것이다. 이 선각삼매는 곧 기특(奇特) 가운데 아홉째이다. 진상(眞相)이 안에서 드러나고 다음으로는 바른 궤칙이 시(時)를 밝히기 때문에 제2는 열 가지 법륜을 굴림을 밝힌 것이다. 가르침을 기틀에 입힘으로써 연(緣)마다 이익 아님이 없기 때문에 제3에서는 열 가지 백법(白法)이 중생의 마음에 들어감을 변별한 것이다. 동화(同化)가 이미 끝나 그림자를 쉬고 진(眞)에 돌아가기 때문에 제4에서는 열 가지 열반을 변별한 것이니, 곧 처음의 열 가지 경문이다. 또한 열반은 상(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연(緣)에 의거해서 소멸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다음에 밝힌 것이니, 곧 나중의 10구이다.
‘불자야, 이를 대묘(大妙) 법문이라 한다’ 이하의 제6은 증명을 매듭 지음을 서술해서 이룬 것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총체적인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수행을 권유함을 매듭 지은 것이며, 둘째 ‘불자야, 이 경은 출생(出生)한다’ 이하는 경의 명칭을 변별해서 경의 덕용(德用)을 찬탄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의 명칭에는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 번째는 행(行)이고, 두 번째는 해(解)이며, 세 번째는 여의는 바이며, 네 번째는 이타이니, 경문과 같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셋째 ‘설하기를, 이 경은 출생한다[說此出生]’ 이하는 꽃비 등을 증명하여 성취함을 밝힌 것이다. 처음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법을 매듭 지어서 덕을 찬탄한 것이며, 두 번째 ‘불자야, 만약 중생이’ 이하는 수행의 이익을 변별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세 번째 ‘불자야, 이 때문에’ 이하는 수행을 권유함을 밝힌 것이다. 셋째의 ‘설하기를, 이 경은 일체를 출생한다’ 이하는 증명하여 성취함인데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경의 명칭을 거듭 든 것이며, 두 번째는 대지의 진동이고, 세 번째는 시방의 부처님께서 똑같이 찬탄하신 것인데 세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일한 명칭의 불(佛)로서 보현을 상대해 보인 것은 대행(大行)의 헛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제7의 게송을 거듭함 중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긴 행은 나중을 낳는 것이고, 다음은 게송이다. 게송의 경문에는 231게(偈)가 있는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둘은 총체적으로 들어서 듣기를 훈계한 것이며, 둘째로 아래에서는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자세함의 경문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149게송 반은 보현의 2천 가지 답의 뜻을 총체적으로 읊은 것이고, 둘째 ‘항상 여래의 지혜에 의지하지만’ 이하의 43게송은 2천 가지 답을 올바로 읊은 것이며, 셋째 ‘보살이 모든 행을 닦아서’ 이하의 38게송 반은 찬탄해서 매듭 지은 경문이다.
처음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에 있는 14게송은 덕의 깊고 넓음은 말로 다할 수 없음을 찬탄한 것이고, 두 번째 ‘중생을 지닌다’ 이하의 67게송은 보살의 덕이 깊기 때문에 사(事)의 정황을 자세히 들은 것이며, 세 번째 ‘한 몸이 끝간 데 없어[一身無邊際]’ 이하의 66게송 반은 인과의 행상(行相)과 덕용(德用)의 자재로움을 올바로 찬탄한 것이다. 두 번째의 사(事)의 정황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56게송 반은 30가지 정도의 사(事)를 들어서 인행(因行)의 차별을 비유한 것이고, 둘째 ‘보살은 여래같이[菩薩等如來]’ 이하의 여섯 게송은 정황을 마친 것으로서 총체적으로 행상을 밝힌 것이며, 셋째 ‘보살이 다 성취한다’ 이하의 네 게송 반은 덕을 매듭 지어서 듣기를 권유한 것이다.
‘한 몸이 끝간 데 없어’ 이하의 제3의 60게송 반은 두 가지가 되니, 처음의 36게송 반은 인행(因行)의 섭수하는 이익을 찬탄한 것이며, 둘째 ‘보살이 일념(一念) 중에’ 이하의 30게송은 과덕이 섭수하는 이익의 자재로움을 찬탄한 것이다. 전자는 인행을 찬탄한 것으로서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11게송 반은 자분(自分)의 인행이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감을 찬탄한 것이며, 둘째 ‘갖가지를 나타내 보인다’ 이하의 25게송은 인행의 이용(利用)을 변별한 것이다.
25게송 중에 나아가면 처음의 18게송은 타행의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며, ‘이 같은 중생’ 이하의 일곱 게송은 기틀에 감응해서 법을 수여함을 밝힌 것이다. ‘보살의 일념’ 이하의 과(果)가 섭수하는 이익인 30게송의 경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14게송은 자타의 과덕이 섭화(攝化)하는 것이고, 둘째 ‘물질은 마치 물거품과 같다고 관한다[觀色如聚沫]’ 이하의 11게송은 보살도의 착하고 참된 성품10)을 변별한 것이며, 셋째 ‘널리 들어간다’ 이하의 다섯 게송은 공행(功行)의 이익을 매듭 지어 이룬 것이다. 그 지취의 깊고 오묘함을 어찌 다 펼 수 있으리오. 오로지 한 티끌의 설(說)로써 현묘한 지취를 견줄 뿐이다.
다음의 반(半)인 ‘항상 여래에 의거해서’ 이하의 제2에는 43게송이 있어서 위의 2천 가지 답을 읊었는데, 여섯 가지가 있다. 처음의 네 게송은 위의 10신위(信位)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은 위의 10주(住)를 읊은 것이며, 다음의 여섯 게송은 위의 10행(行)을 읊은 것이고, 다음의 여섯 게송은 위의 10회향(廻向)을 읊은 것이며, 다음의 ‘청정한 몸과 몸의 업[淸淨身身]’ 이하의 열 게송은 위의 10지(地)의 인위(因位)를 읊은 것이고, 다음의 ‘관찰(觀察)’ 이하의 13게송은 위의 인과가 원만한 불사(佛事)의 구경(究竟)을 읊은 것이다.
다음으로 ‘보살이 모든 행을 닦는다’ 이하의 제3에는 38게송 반이 있어서 위의 매듭 짓는 경문을 읊었는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32게송 반은 인과의 덕이 자재로움을 매듭 지은 것이며, 아래의 여섯 게송은 들어서 수행을 권유한 것이다. 처음의 경문 중에서 처음의 여섯 게송 반은 간략히 행용(行用)의 자재로움을 찬탄하여 매듭 지은 것이며, 아래의 26게송은 행용의 자재로움을 자세히 변별한 것이다. 26게송 중에서 처음의 16게송은 인행(因行)의 자재로움을 찬탄한 것이며, 둘째 ‘청정한 몸이 허공과 동등하다’ 이하의 10게송은 과행(果行)의 자재로움을 찬탄한 것이다. 인행 중에서 처음의 두 게송은 의업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네 게송 반은 구업을 찬탄한 것이며, 아래의 10게송은 신업을 찬탄한 것이다. 과행 중에서 처음의 두 게송은 과덕의 3업을 성취함을 올바로 찬탄한 것이고, 다음의 여덟 게송은 과(果)의 자재로움을 비유한 것이다. 제2의 수행을 권유함 중에서 처음의 두 게송은 인과의 행덕을 총체적으로 든 것이고, 다음은 정황이 다하기 어려움을 비유한 것이며, 아래의 두 게송은 동일한 회상이지 둘이 아님을 닦기를 권유한 것이다. - 047_0051_a_01L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四之上終南山至相寺沙門 智儼 述第七地者,六門同上。一釋名者,善修無相行,功用究竟,能過世閒二乘出世閒道故,名遠行地。二所治者,依地論文,細相習障,若依攝論,麤相行無明。此文在六地。又有兩無明。一微細相行起無明,卽迷俗也。二一向無相思惟方便,卽迷眞也。及二業障有一報障因緣生死。三所顯者,種種法無別義。四所成者,成方便波羅蜜。五所得果者,達種種法無別功德,得一切相滅,恒住無相果。六釋文者,經文有三。初偈讚生後,二明地體,三偈頌結前。初有十四偈。初十三大衆三業供養。次一解脫請,初文有二。初十二正讚請,次一結供養攝行,入上位。初文分二。初三偈諸天摠修三業供養,身口意三請也。次九偈是別。別中有三。初一當處天王供養,次有一半,明餘天王欲聞法益。次六偈半明天女等承力,歎、佛三業勝用,二偈半身也。次一口,次三意也。二辨地體中,大判爲五。一樂無作行對治差別,治前地,樂空心。二彼障對治差別,治此地有相心。三雙行差別行成相也。四前上地勝差別校量也。五彼果差別純熟也。樂無作中,經有三。初摠生起,二正釋,三結利益。第二文有二十句,攝爲十對。一一對中,皆初明其境界無量,後句明佛無量德業,亦可初句爲空中方便智,後句爲有中殊勝行也。又論文云:有四障,如五地說者。取彼不惱生事安樂生事,憐愍故,出漸令入法,對四化行,說四障也。又書論等四障如論耳。餘文如論。就彼障對治修行勝文,經中有二。一明菩薩觀解方便。此方便中,論有六問。初問所益生,二問所依世界,三問何慧者。其法界法中兩句難可別問故,就能知智慧,以問。四以何心者?問根心也。五以何行者?問起行心也。至下解中,合擧辨之有通二義故耳。六問所乘也。二菩薩如是下,正明修行也。有五句,初所標,二辨意,三明分齊,四出體,五成對治義也。雙行文中有四。一、二行雙無閒,二信勝,三能作大義。此文有四。初立,二責,三略荅,四廣辨,四菩提分差別。此中經文脫四家一句,餘文如論。彼前上勝文有二。一勝前六地,二何以故?下,明勝上勝上,三地。前中先略辨相成解脫月問,二金剛藏荅。荅中初先通對諸地,彰此爲勝。二何以故?下,別對諸地,顯此爲勝。此別荅有二。初問次荅,荅中分二。一摠次別,二釋勝上,中有二。一明此地勝過於後。二解脫月下,因前所論乘,明諸地染淨之相。初中分二。初責次荅。荅內分三。初法、次喩、後合。餘文可知。二乘明染淨中有二初問次荅荅中有二。一通辨,二約七地,別明分齊初通中有三。謂法、喩、合。三文可知。二別辨文有三。立責荅也。就彼果勝文中,初一業勝文有三。初摠次別三結。此經結文中,脫一句,別文有四如論。二三昧勝中,初摠次別三摠結之。經脫摠句,餘如論也。三過地勝中,分文有三。一行修善巧故過,二作業廣大故過,三行修勝入故過。初中分二。初牒前起後。二別解義,第二過中,初正辨過義。二解脫月下,顯過分齊。此有二。初問次荅。荅有三。法、喩、合也。餘文可知。得勝行文有二。初明三昧勝,次發起勝。初文有二。初問次荅。荅文有法、喩、合三文。發起勝中,初結前生後。次正明發起勝行。又此論文中,摠爲八句。初一自利行,現身世閒,是殊勝行。深心涅槃,是方便智。下利他中,初三順凡,次一轉小。次二隨魔,後一轉凡。眷屬圍遶,是殊勝行。心常遠離,是方便智。諸句例然,願取有者,爲首之化必由願也。家不斷者,示有愛染之事也。遠離使者,離使性也。入行者,能轉二乘,上入佛智。資生行者,示有飮食、睡眠等也。退行者,示老病等也。言轉行者,轉諸凡夫煩惱心也。見貪轉者,轉其見惑也。障㝵轉者,無明不了名障㝵,今轉滅也。五明智治之耳。貪轉者,轉貪結也。菩薩現受勝五欲處,而不著。令諸天等,捨自所欲故也。地果文中,三果如上。調柔果中,文還有四。一調柔行相,二教智淨,三別地德,四結地相。調柔行中,還初法說次喩後合,法中初多見諸佛,次能練行,後所練淨,餘文可知。三重頌有二。初明說意,次正偈頌偈,有四十二。分文有七。初九頌無作行,次三彼障對治,次六頌雙行,次十一頌前上地勝,次八雙行果,次四頌調柔等,次一結歎也。第八地者,此下名出出世善法。因此料簡上下諸地,一乘、三乘人、天起信生解,漸次同異法門。初地中十願。是一乘、三乘共行法。信等十法,是三乘別行法及人、天所依。二地戒行,是三乘、小乘、人、天所依。三地禪定,是三乘、小乘人、天所習。四地道品等,是三乘、小乘所得。五地四諦,是一乘、三乘、小乘共行法。六地緣生,是一乘、三乘、小乘共行法。第七地方便雙行等,是大乘所行法。八地、九地、十地,是一乘、大乘所習法。此等若望見聞修證通說,卽等無別。若約相別論,則有此殊分。又諸地調柔果是行門,發趣果是解門,攝報果是報門。願智果是德用門,亦是一乘、三乘共行法。以此準之。十地善巧圓通廣攝故,得藏名故,崔光云:‘十地經者,蓋是神覺之玄苑,靈慧之妙宅,億善之基輿,萬度之綱統,理包群藏之秘,義冠衆典之奧,積漸心行,窮忍學之源,崇廣住德,極道慧之府故也。’今此地中,六門同上。初釋名者,報行純熟,無相無閒故,名不動地。二所治者,依地論文,於無相,有行障。依攝論文,於無相作,功用心。無明又有二無明。一於無相,作功用。二於相行,自在有二業障,及一報障有有生死。三所顯者,由不增減義。四所成者,成願波羅蜜。五所得果者。若通達不增減功德,得共諸佛平等威德智慧業果及得法身果。六釋文者,大判有三。初偈頌生起,二明地體,三以偈結。初有十五偈。初十四諸天菩薩讚請供養,次一解脫請。初十四內,初二天王、諸天、菩薩慶法雨花,供佛大衆。次十二天女歌歎佛德,此文有三。初一樂供養,次十偈頌讚佛德,次一供已入理觀察。第二十偈中有二。初一天女讚佛,次九佛力令菩薩等,供具出聲,讚佛功德,及三世閒自在。初三偈器世閒,次一偈衆生世閒,次四偈智正覺。次一偈結歎無盡智,正覺文中,初一歎佛口業,次二身業,次一意業,地體有七。一摠明方便,作集地分,爲遠方便有二。初摠告次釋可知。二得淨忍行分,近方便,此二俱爲趣地前方便。三得勝行分,初入地行,四淨佛國土分,五得自在分,此二安住地分,六大勝,七釋名分。此二地中滿足。餘文可知。第二淨忍分有十五句,有三。初有十句,明無生忍。次後四句,明其忍淨,後一摠結。依經不足,脫自性無生句及遍一切法相句也。餘文如論。勝行分中有二。初勝行,次發起行,初有二。初摠後別,別中先法,後以喩。法中七句,相從爲三。初三明此地中境分殊絕。次二正行廣大,經中脫修行深一句。次二離障寂滅,喩中從後向前次第喩之。發起勝行內,於中有二。一明此本願故,住諸佛勸發,若不與下。明勸利益。初明本願力住。又諸佛下,由住勸發。此文有二。一摠明諸佛法水中與起智門。二善哉,下別明與相依勸能成。第二別中,先歎所得無生忍門,後彰未得,勸之修習。此文有七。攝以爲二。前有六勸,擧多未作轉其住心。後一明其少作能成增其去心。復前六中分爲三對,自利利他,前初對之中,前一明其自德未成。後一顯其所化未出,此中經脫一句,第二對中,前一明其化願未滿。後一彰其自德未勝。第三對中,初一明其化業未廣,後一彰其自己所得法門未窮。此中經脫一句,餘文如論。二明勸利益文有三。初法次喩後合。法中有三。一明諸佛與起智門,二於一念下,明由勸故,起行速疾,三所以者下,問荅解釋。餘文如論。國土分中有三。一器世閒自在行,二衆生世閒,三智正覺。初文有二。初摠標擧,二知世界生下,別顯之。此文有二。初知法分齊有二。初知次結初。文有五。初知世界生者,明隨心欲。二知以何業?下明隨何欲,三經脫隨時欲,四是菩薩下,明隨闊狹欲,五是菩薩入如是下,隨心幾許欲,二善分別下,明自在儀式,此文有四。法喩合結也。餘文如論。釋衆生世閒中有四。一摠明自在,二若於沙門,下別明自在,三辨現意,四所有不可說下,摠結自在,亦可二別辨中及意內。初化同物身。二以聲聞下,化同物心,智正覺文,初明第一義智。所以明此者,爲成世智法相由所以也。二是菩薩善知下,是世諦智,此中隨所化,攝有十身。通已有十一身有三。初擧數,二辨相作,三出體釋義可知。問:‘何故明器世閒,乃辨三世閒者何也?’荅:‘爲三法相參難識,欲別故須明也。’此中多漏諸句,比論取之。大勝中有三。初明智大,二業大,三彼二住功德大。餘文如論釋名中有二。一地釋名,二智者釋名,餘文可知。智者大分有二。初正明不動,二以不轉相故下,摠以結之。前中合有二十五句,初十五。一向不動,二是菩薩入下,十句一體不動,地果文中三果如前。調柔有四。一調柔行,二教智淨,三別地行,四結地相。前中初法次喩後合。初明多見佛起行緣,次起能練行,後所練淨。教智中亦初法次喩後合。餘文如論。三偈頌中,文分有二。初說偈意,二正偈頌。此文有四十四偈。初三頌方便集,次三頌淨忍,次十五頌得勝行,次十二頌淨土,次一頌自在,次二頌大勝,次二頌釋名,次五頌調柔等,次一擧略,顯廣以結前義,勝行中。初五頌勝行體,次六頌七勸,不頌第五、第六勸,次四頌擧勸,彰行勝,利益淨土中。初四頌器世閒,次五衆生世閒,次三智正覺也。第九地中,六門同上。一釋名者,無㝵力說法,成就利他行故,名善慧地。二所治者,若依地論,不能善利益衆生障。依攝論,於衆生利益事,不由功用。又有二無明。一無量正說法,無量名句味難荅。巧言自在陁羅尼障。自利。二依四無㝵解,決疑生解障。利他。有二業障幷一報障,有有生死。三所顯者,由定自在依止,由土自在依止。由智自在依止。義應知法界。四所成者,成力波羅蜜。五所得果者,若通達土及智自在依止得應身果。通果同前地。六釋文者,大判有三。一偈頌生後,二明地體。三以偈結前,初有十九偈,初二明說前地利益也。次有十七,辨四衆讚請,初一菩薩供養,次一梵王設供讚歎。次有十四天女讚請,後一解脫請。天女中三。初一半偈摠歎佛德。次十一半歎菩薩等,具白他德,就此第二文有二。初三半摠歎自因殊勝。次有八偈,別歎利他果用。次第三攝亂從寂,就別八偈內,初一身業。次六口業,次一意業。就口業中有二。初摠歎說自在,二約根辨相,次一約身喩顯。此文有四。聲聞、緣覺、漸、頓等分四。亦可一乘、三乘分四也。第二地體中,有四差別。一法師方便成就,二智成就,三入行成就,四說成就。初文有三。初牒前起後。二正辨釋。三結入地相。餘文如論。第二智成就中,初牒前起後摠辨。二有漏下,偏廣善法。第三入行文中有三。初摠十一門,二別辨,三摠結之。餘文如論。初摠門中,論主云:依共者,心稠林,是衆法共止故也。名共依者,依此而知耳。次復共者,根欲性深心等,四類同故,名共也。經文使難內,何處文脫第四句?生難中經脫第二句,習氣難經脫第九句,餘相可知。就說成中,有二段,經初摠明說成。二是菩薩化衆生下,別別辨中義三。經文有四義。三者一智成就,二口業成就,三法師成就。經文四者,依論分文。又第二法師深妙義一段。經文亦入智,亦入口業,思之可知。口業文有四。初立宗,二是菩薩下,明辭堅固,三列名,四歷法別釋。餘文如論應知耳。法師成就有四事示現。一持成就有四。一立宗,二釋三結,四以廣顯略。二是菩薩於一佛所下,說成就。此有十句可知。三是菩薩三千下,問荅成就。有四句可知。四於是中,生下受持成就。此有一句也。問:‘此受持與前持,何別?’荅:‘前持是臨說時,後持是初受時耳。’二地果文中,二果如上。調柔分四同前。一調柔行,二教智淨,三別地德,四結說相。前中初法次喩後合。初中見佛,卽起行緣,二能練行,三所練淨,餘文可知。三重頌者,初明說意。二正偈頌。頌中四十二半,初四頌法師方便。次四智成就,次十二入行文,次十四半頌說成就,次七三果,次一結歎說成就內。初一智成就,次四口業成就,次九半法師成就。此內初二持成就,次一說成就,次一問荅,次五半受持成就也、第十地者,六門同上。一釋名者,得大法身,具足自在故名法雲地。二所治者,依地論於諸法中,不得自在障。依攝論同地論,又有二障。一六神通慧,二入微細秘密。佛法有二業障,及一報障,有有生死。此在初及住心中,復有二障。一於一切應知境,微細著。二於一切應知境,微細礙有二業障及一報障,無有生死,此在地終心,三所顯者,由業自在依止陁羅尼門、三摩提門自在依止應知。法界。四所成者,成智波羅蜜,五所得果者,通達業依止,得化身果。通果同前。六釋文者,大判有三。初偈頌生起,二明地體,三以偈結。初二十五,偈內有五。初二首陁會天興供讚歎,爲此地行滿故,色究竟歎也。次一菩薩歎及供養。次二諸天天王共歎及供養。次十八天女歎及供養。後二解脫請,天女有五。初二摠擧樂音供養,次五歎報佛,次六歎化佛,次三歎法身體,次二勸行。初一勸入體觀,次一結益歸本。二體文中大分有八。一方便作滿足地分,二得三昧分,三得受位分,四入大盡分,五地釋名分,六神通力無上有上分,七地影像分,八地利益分。初文有三。初摠次別三結。三昧分有三。初牒前起後,二正義,三結所成。受位中有六。初座有三,謂主眷屬及結。身有二。眷屬有三,相有六。座初文中,十德內經脫第八功德一句。及脫第三結文,出處中,頂光文有八段可知。六受位文有三。初釋覺,第二辨相,第三結。結文有三可知。第二文有三。謂法、喩、合也。法中有三。一九地菩薩供養,有二可知。二同位加威,有二可知。三佛正受職。此文有三。謂釋光,第二等餘佛,三結。初文有三。第一放光,二歸處有二句,三辦益。初光有八業可知。光入頂有三。一約事入事頂。二約行入行頂。三約實當果現入行心也。可準之如論應知。大盡分中,如論應知。又此大盡已後,一乘頓教、三乘、小乘等,成佛果分齊,可準義消息之。於中諸經句,亦有增減,以論準之。釋名分中,大分有三。一能受佛雲雨說法,名法雲地。二佛子乃至自從願力,起慈悲下,能注法雨,滅諸衆生煩惱塵焰,名法雲地。此文初釋、次結可知。三復次,佛子,乃至菩薩住法雲地,從兜率下,能同果德,大注法雨生物善根,與雲相似,名法雲地。初文有二。一摠明念力能持佛法。二能於一念,至十方無量佛所下,別明受法,別中有三。一於佛所,聽受多法。二譬如大海下,於多佛所,聽受正法。此有喩、合、結三文。三解脫月言:乃至於一念中,能堪受幾所?下問荅明前二種分齊,前中初法次喩後合。第三問荅二種分齊中,文相有二。初問次荅。荅中有四。初立義,二假設問荅,擧略顯廣。第三顯其實義,四結可知。神通力無上有上分中有六。一依內,二者依外,三者自相,四作住持,五令歡喜,六名大勝。就此六中,初之一門義貫前四。此處文無。次有一段貫通下,四。所以爾者,論主善知文含多義,欲交絡顯法故,作此科也,餘之四門文義俱有,餘文如論。第四住持中,外內分二。此二內,各有二可知耳。第五令喜文有六。初問,此有二。謂念請分二也。次擧定事荅。三明定業用,有二可知。四攝業依本,五結讚有二可知。六問荅顯定分齊。此文有二。初因後果,各有問荅。初因內,初問次,結有二可知。初有名用,二問荅果,荅內有四可知。大勝分如上地,調柔等三果釋可知,廣如論辨。地影像中,如論應知。上來依一乘圓通佛法,約教分齊訖。今更約三乘,顯其兩位。如經。一名等覺位,二名妙覺位。等覺者,於第十地金剛無㝵道中,入法界心,謂勇伏定法光三昧。依此定中,修行十法。一學佛不思議變通,二集菩薩眷屬,三重修先所行法門,四順一切佛國,問訊一切佛,五與無明父母別,六入重玄門,七現同如佛,現一切形相,八二種法身具足,九無有二習,十蹬中道第一義諦山頂。此位在第三禪說。若約外相當補處菩薩,亦示成微細八相,經百劫萬劫,變化如佛。菩薩見佛,佛知是菩薩,由得金剛三昧故,變現自在。唯生滅爲異。廣如瓔珞經,妙覺位者,經指第四禪說。義相多同故,不料簡。問:‘此經何故,不說等覺、妙覺二位者?’荅:‘若約三乘別行義門,由約分位,取相爲正故,等覺、妙覺相形分成兩相。若據此經,圓通自在,不以相形定法,爲正故,攝在因果二義之中。’地利益中,文分有五。一正顯地益,二如此世界,四天已下,彰地廣益。三以佛力,十方菩薩下,明諸菩薩雲集,作證顯成可信。四金剛藏說如來喜下,明其所說,上順聖心,如來隨喜下,愜下四頌第四功德也餘文可知十明品第二十三四門同上一辨名者。十者數明。者用從,二義得名。耳此下五品,爲明地德勝,用分齊故次來也。此卽第,二明來意,三宗者此,通釋五品次第及宗,體所以。先明者前旣得體次明。依體起用自,在故次明,也明用不自,起何以成爲證理,法故次辨十忍,卽理用也大。果因行非十數。測量故,次明阿僧。祇以數。行法也,旣實德已成。非小時而。得遷動故次明壽。量品旣德無方隨緣依現故,次明菩薩,住處耳初十明,者德用。相也卽荅。上十自在。一問亦,可地中。荅也此通。荅上問耳,次十忍者卽荅上十定一。問十願在。初地荅次,十頂及隨喜,心等十句僧祇後三品,摠荅之亦可通前。二品荅也問。此下五品,屬前十,地何以不。剛藏說荅,若德體難。明須託人寄事以說下五,相寄別義顯也所以明忍普賢說爲。表勝德大。用廣高也四釋文者初十明文,有四初摠開數次第二寄問,三辨德用四安住已下。摠明結歎第三,文分六通以爲,十明問明與通,何別體一義異,無壅日通識根。由日明也十中,第一他心通第二,第四。天眼卽現未等分之第三宿命通第。五第七天,耳亦可第七意法塵攝,也第六第八坤足卽。身通第九第十竝是漏盡智。所以知爲此二竝。達性故知。也第七聲與第,八色可見不見分也,又第十是滅,盡定又辨六,通三明是三,乘教十明十,通是一乘教。不可相攝深,淺分齊不同,故初他心內有三初問次辨,相三是名下,結名餘九皆爾,耳第二文。有二初,明知此界二,如是等下攝,通餘方,初明中分群機大衆同欣五佛在下摠以結之此依論辨依經有三初摠歎第二說是品時下約事顯地勝第三以佛神力下。菩薩爲證,初文有三初摠,歎第二有二問。荅顯勝義第三結勝義第二事文,中有五。初動地二顯所由。三雨花,等四大音讚地德五等通,餘方第三菩,薩證成文。有六初菩薩來此二歎,地德三。顯同爲證第,四擧多說爲?證第五。推證所由第六等同。也依論初文有二初法益。二事益法文,有三初反顯。二順辨三結,順文有,四謂問荅責。釋可知經文,略而不具第三重頌中。初明頌意及現頌。相生起後,文二正彰。偈頌此前有二初觀,法二顯意此文。有二初爲利生。二示不思,議下爲欲顯理初,文有三初歎人。德次示菩薩下與自利益,三隨衆生下與利他。智斷用二顯理文有。三:‘一摠顯示二示相三,辨說意二正頌?’中:‘有九十偈初,六十九正頌法雲。等地次爲得佛智下。二十一偈頌影像,分餘略不頌初中文有。’二十九頌,方便集地亦可。前二十六。通頌前九地,次三頌滿,足地分文也,次二頌三。昧分次十頌受,位分次七。頌大盡分次六?頌釋名分次十,三偈摠頌,無上有上。等文次二金剛藏,㧾結亦可此等,文通頌十地準。思科釋可知,方便、集地內初,二頌集起功德智慧行。相修、行佛道等文次二,十七、頌同相及別相文,此文初別後同也別中初六三。句頌初地相次一偈一句頌二地。次一頌三地次二。頌四地次、二頌,五地次二。頌六、地次,二頌七地,次三頌八,地次三頌九地次。第一妙下三頌。同相,三道亦,好影像中初十。九頌影分後。二結地德無。盡初中十一,頌第二勝功,德次四頌,第三功德,二。初直知心知法差別,有二可知。二聲聞心下,約凡聖報類,辨智用殊能。此文有二。初隨行方便,次天心下,辨隨類方便智二,天眼中初釋,次結。初文有二。初明隨報別不同知,次菩薩以無障㝵明下,知造業成儀境界,三宿命有二。初釋,次結。初文有二。初知自他下位,境有二。初摠,次別,次別。又憶過去下知佛上位境也。四未來智明有二。初釋,次結。初文有二。初知善惡下位。人法有二。初摠,次別。二知未來無量下,知佛上位行法五。天耳有三。初立,次釋,三結第二。文中有二。初辨天耳。聞持德,此有四句二十方遠近下,明天耳用事。此中有三。初摠,次於東方下,別三如東方下,類九方也。第二東方別辨中分三。初佛,次辨法體,三善解無量下,對人說法。第二法體中,出理行二教所說等,辨理教二,所制下行教也。法略有十句。一教體相,二起信相,三示義宗相,四解釋相,五制學相,六受學相,七擧事勸進相八聞軌,九思軌,十修軌耳。次第三對人中有三。初理法機,次所得功德下,行法機三廣說下,教機此文意難得,思之可解。此竝歎天耳,明德也。六身通內有三。初立名義,次釋,三結。第二文有三。初身業體,二若聞十方下,辨業體用有二。可知三悉自了,知下結業,分齊耳。又此通約威力,第八約現色也。七分別言音智,明有二。初釋,次結。初有二。初知聲,二菩薩隨其等下辨知。所以初文有二。初辨知衆生報音聲。初摠,次別,三結知。次善分別知下,知二諦教法及根器也。八出色身莊嚴智明有二。初釋,次結。初文有三。初達、色性二菩薩入深法界住持下,辨緣集成色,卽明用也。三佛子菩薩入無色法界下,辨通成用相,所以耳。第二現色文有三。初明自行色體勝二大慈色下,明利他故,現淨色,三出生如來下,辨因果色相大用成就,普賢色。摠別有一百一十句。此色有體用凡愚二十五色,卽空故也。九眞實智明中有二。初釋,次結。初文有二。初約所知理,顯智明體,二菩薩知如是下,辨智巧用,卽明其相,前文有二。初約無相境,二知一切法別異下,約無生境也。二用文於中有二。初牒前所知,二不著下,辨智巧用也。用中有三。初明用自在無著,二不捨一切下,釋順寂成用相。三觀察諸法下,明用自在。十一切法三昧正受智明中有二。初釋次結,初文內有三。初辨住寂名體,有二可知。二亦不捨下,卽寂常用。三菩薩於一切法滅盡正受文下,辨分齊。第二結文有三。初結,次歎定行德用深廣,三仰推知者,大段第四。結文有二。初結,次明德量可知也。十忍品二十四四門同上,十者數,忍者境與神會,情諦可也。餘二意前已辨。四釋文,此文有三。初摠列名,二釋,三偈重頌。初文有六。初摠告,二歎成忍因果勝相,因果卽爲二也。三問,四列名,五是名下結。六引諸佛同說證成。第二釋文有二。初辨,次結。此十忍前二加行攝,次無生忍,正體攝。後七後智攝,約位卽順音聲三地已還順忍卽四、五、六地。無生忍卽七地已上。後七忍九地已上。若通時卽齊等也。此忍前三心境得名,後七從喩受稱,別釋初忍有三。初擧次釋三結也。二順忍,三句同前。三無生有三,亦同前。就第二釋中有三。初立次問三荅也。後七忍相生次第如論。此義云何?疑者云:若法無,云何現經如幻也?疑云:‘幻法不生取識,世法不爾。云何同也。故經如焰亦生渴心。’疑云:‘其焰不得受用。世法不爾。云何同?荅如夢。’疑云:‘夢則覺者不聞彼聲。世法聖凡共得。此云何同?’荅:‘如響雖共而非實也。’疑云:‘響卽前得無益。世法不爾。此何也?’荅:‘如電光無有作者,而觸照有用。’疑云:‘電若有用,卽是實法。’荅:‘如化益生,豈是實也?’疑云:‘若一切是無,誰能作化?’荅:‘如空成諸色,豈是有也?’四幻文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二。初辨所觀法,此文有三。初摠擧,二菩薩等下,辨觀相。三譬如幻化下,廣辨幻相。此有譬、合二文。第二菩薩觀察下,辨忍行。此文有二。初加行忍,二出生下,後得忍也。五如焰忍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法、喩、合及辨觀相。四文可知。六夢忍文同焰忍可知。七響忍有三。初問,次荅,三結。荅文有二喩,各有法。喩、合三文。前是自利後,是利他也。八電忍有三。初問次荅三結。第二文有四。初法,次不行菩薩下喩,三是名下結,四若菩薩下,辨益勝用。第二喩有二喩。初向理體。第二向事用,各有法、喩、合三文可知。九化忍有二。初問次荅。荅有五。初一法說,次喩,三如是菩薩處於下,合。四是爲下結,五佛子,菩薩成就,此忍下,明用利益耳。初法文有二。初明行體所知。二佛子,是爲下,結所知起用自在。合中有三。初摠合,二不著世閒下,辨相,亦可約法譬,顯行儀耳。譬如化下法、喩、雙結勝用益也。十虛空忍中有二。初問次荅。荅文有五。初十句明忍體,一、一句皆有法、喩。二佛子,如是菩薩下,七句結成忍行。三譬如虛空下,復以喩況行體,以合、喩,成前忍德也。四是名下結。五若菩薩成就無來身下,辨忍行用利益,初十句中,一摠九別可知。第三廣喩況忍行文有二。初十一句明行成。二何以故?下釋成忍行也。此荅文有二。此意難解思之。何者疑云若法如空者,此有二疑。一空體是無、物法亦可如是。二如世事空別物,依現法,亦如是別有異空也。荅相可知。第三重頌文有一百二十九偈。初十頌音聲忍,次十頌順忍,次十頌無生忍,次十頌幻忍,次十頌焰忍,次十五頌夢忍,次十七頌響忍,次七言二十行頌電忍,次十頌化忍,次十頌虛空,次七摠頌結歎文,彰忍利益也。阿僧祇品第二十五四門同上。僧祇者,十數之始名也。此品從三義得名。二來意,三宗上已辨,四釋文者,所以心王問佛自說者,上來由是大果之因,非果人,莫能辨其際故,佛自說。法依心成故,心王起問也。又爲因果互顯耳。亦可數法,是智事通果故,佛自說耳。故文云如來等,正覺佛智之義也。此品有二。初問後荅。問意菩薩行德,盡其數極,未知菩薩數法云何?亦可問云,聖境旣寬菩薩盡了,未知以何數法,得窮其分量?以示下人也。荅中摠擧一百二十數以荅。大數有十一阿僧祇,二下,名無量。此云不可量,三無分齊,四無周遍,五下名無數。此云不可數,六云不可稱,七名不可量。此脫不可字,八名不可思議。如下在第七,九名不可說,十名不可說,不可說。此問文有三可知。就佛荅中有四。初歎心王問,二勸聽,三忍可,四佛告下,正荅所問,就此文,有二。初長行,後偈頌。長行卽能數、數法。偈頌卽數、所數也。此卽交絡顯數義德用耳。長行中,有百二十番數法門。初一百成僧祇,二僧祇下,次第成十數,以荅前問。又一百二十數分齊者,從初拘黎句爲因。次不變已下,別有一百句,爲滿數。次有二十句者,從受等十句爲因。從僧祇等十句爲滿數句也。第二偈中,唯取上第九數法,以校量德行,不頌上文。此中有二百四十五偈,此中諸偈摠長,約有二種意。一摠,二別。摠者,或事或理,或行或境,或因或果,或文或義等,乃至顯發釋等文相自彰也。此可思之。二別者有二,一約境有三。一智正覺,二衆生世閒,三國土世閒,二約心,謂正助也。此文有三。初十四行明能數,於中有十重積數法,卽爲十文。二對事辨所數,此對事所數中有二。初用第九數量法,二攝取不可言說轉已下,轉取第十數因,用以量法。所以爾者,但欲明增數之法,非只如此。三後一行㧾結,問所以不用第十數者,第十數屬佛故,文中雖明佛果法,欲取能迴善根,因位法也。所以爾者,爲果相,通因二處顯故,此可思之。此卽數於無數耳。壽命品第二十六四門同上。辨名者,壽者命根,亦可命壽無二。依大乘,卽陰相續。依小乘,別有不相應性。二來意,三宗上已辨,四辨文者。此下二品。心王自說者,爲命處不定隨心成故也。亦可唯因位,有種種義自在也。卽壽於無壽也。此中何故,擧果土?此爲擧處,取能修行人故,下云:普賢充滿其中也。此文有三。初摠告,二擧所依土,三普賢下,辨能修入因行也。第二文中,初略十土,二廣校量耳。菩薩住處品第二十七四門同上。一釋名者,人義及所依三義得名可知。二來意,三宗上已辨,四釋文者,約相同下位故,辨處也。此卽住於無住耳。又雖同人,而無生爲生,無住爲住。此文有二。初不住有故,明十方淸淨八住處。二辨不盡有爲故,寄四海十五染處也。佛不思議法品第二十八此下荅第二會中,三十二問,後十三果德問耳。然問荅辨義者,爲明圓宗秘教,顯於時聽修相方便,彰在於心目致使。說法被益者,無隱宗趣。發心崇遠者,不翳習求。是故經言:於正說中,置隨語義,於正義中,置隨義語。隨語之義,義非別體之義,隨義之語,語非別詮之語。此是語者之正,則不可執。名詮以定法體,是以此經正宗中,因果相從,問荅連照,不隱失一意。此卽大聖巧也。方便修成因果中,上來荅因行訖。次下三品荅果,初不思議,卽法身德。次相海卽報身德。次小相卽化身德,此依三乘。若依一乘時,初品是體。次品是相,第三品是用也。四門同上。一辨名者,佛不思議法者,此由果故,標佛爲初果,非下地測量也。法者,因人所軌也。亦可自體也。就三義得名,二何故品來?由因行滿已。次行成得果耳。三宗,此品三身內,以法身爲宗。若體、相、用以分,卽果德自體爲宗。亦可初體次相後用,約三身,通此三耳。四釋文者,所以靑蓮花說者,果不自彰,寔由因花顯也。靑蓮花勝也。所以告蓮花藏者,非因淨藏,無由攝受勝果也。此文有二。初序,二爾時,靑蓮華承佛下,明正說。序文有三。初會衆疑念,此文有二。初摠生念,二出所疑法,二爾時,世尊下,加威與力,三爾時,靑蓮華,卽入下,明入定審法。亦可不入定所以者,由是果法已自深微,更入定顯。退信解故,爲以法深故,但審法界下,二品從此耳。因此料簡上下文中,法界者,是何觀境?荅:依此經文及地論,有二義。一若依地論判,卽是第一義諦理觀境。此約三乘判。二若依經上下文,卽通理、事二觀境,其法大通非局,仍位在無爲耳。初問中,略念十法,爲是果法。非思量境故,皆不思也。此十句義有五。初一辨依果,次二問因行,次一問正報果德,次三問佛法身音聲智慧三業德相,下三句問神力自在。第三審法中,十句內,初五自利,下五利他也。二爾時,靑蓮華下,正說。此品遠荅上十句法身德,次相海荅不動一句,報身德。小相荅上佛六根佛智二句,化身果。此告靑蓮花藏者,深奧之勝器也,荅文中分二。初十句摠,亦則是別。從此句下別,別中略擧三百二十種功德法門,以示也。有五。初五十句荅上剎土一問。二十種出生住持下,五十句荅。上淨願及種性二問。三有十種佛事下,六十句荅上佛出世一問。四一切諸佛,有無礙住下,九十句荅佛三業相三問。五十種最勝力下,七十句荅上神力作用三問。初五十句中,初十辨行德所依妙住,次十實性隨緣,以成十種行德。次十以稱法,起行成十方便智。次十巧用隨緣自他德備不失時,次十不思境明境界巧用應機,無失故,超果獨絕。初十句中,初二辨自分相應行德。次七利他攝化行,次一自他契實平等無二。第二十句中,有三。初七明法身功德六根作用,次二明依,正二法,神通自在。次一明佛因圓等諸佛所證也。第三十句可知。第四十句有二。初二自利,後八利他。第五十句可知。第二五十句中,初三十荅上淨願,後離惡下,二十句荅種性。初十從正智,出。後得住持願智之用,此有二。初三自利,後七利他。第二十以外用依內成,卽內德法也。於中初三、三業德備,次七、三業攝化功能。第三十由前內德成,實用外彰,獨勝莫加故也。於中初二自利行,次二利他方便。次一自利德滿,次六利他德備。第四十德彰故淨也。初六自行無染。次四利他處無著,第五十淨決定故,究竟也。初六因行滿淨。次四、三身果滿淨,四中初一化,一法、二報。第三六十句,初十明化德。後五十報身德,皆此法身德也。佛事者,能興大用,化身攝益相也。初五利他方便,次五利他正益。後五十中,初十一無盡智用如海,初一明所依法身。次十能依德用,初四自利行,後六利他行體。第三十常法,初四自覺行滿,次六覺他行備。第四十無量說佛法可知。第五十常作佛事,初四明於淨土,三業施化攝益。次三現色等住持。次二現寶等莊嚴,次一入定益諸菩薩,亦可但嘿非定也。第六十堅固,初五自分德圓。次二勝進行迴向,次三修成化益。第四文九十句有三。初三十荅上法身一問。次三十荅上音聲等口業,下有三十荅佛智意業。初十無㝵住,初三自行無㝵。次七利他無㝵,第二十最勝莊嚴。初三、三業體嚴。次六、三業用。次一利他德行滿,第三十自在正法可知。言非不先覺諸佛正法,亦不住學地,而成正覺者,此有二意。一簡文中義,此中佛者非同小乘佛,爲是共教因大佛也。二者將普賢義,簡異生信別門,其佛假使前後,現成竝同先覺,竝同在究竟,離其學地及以不覺,爲普賢法攝三世,自在故也。此意思之。第四十一不思議成正覺。初四因圓,次三利他行成,次四三身具德滿成佛也。十巧妙方便,初四自行,後六利他,十佛事可知。十法王,初七自利德,次二利他行。次二自他,二果相攝無別耳。十住法,初四利他德,次六起悲等用無盡。十悉無有餘。初三知法界等無餘,次二知染器世閒,次六知出世因法等也。第五文有七十句。初十荅上神力一問,次五十荅上無㝵住,次十荅上解脫。初十勝力,初列次釋,初四自行成,次六他行備。第十中四住義,佛所住卽最勝我,是佛住。次無㝵,卽眞空定,卽聖住。次無㝵心,卽天住,次大悲,卽梵住也。十定可知。十法,初五得世閒善滿,次五出世行成。十淸淨法,初六入因行,後四入佛。三身境界,十一切智住,離障相應不動也。初二知器性,次一摠,三輪化下,七別別中,初三神通輪。次一正教輪,次三記心輪化。十不可思議三昧。初二利他方便,次三自利方便,次一利他純熟,次一自利行熟,次三寂用解脫自在究竟。十無㝵解脫,初五於一塵中,現諸佛轉法輪教化,次五於現在,攝三世佛,於一門中現也。又大乘同性經中,佛有十種地。善丈夫佛地有十。一切菩薩及聲聞、辟支佛等所不能行。何者爲十?一名甚深難知,廣明智德地,二名淸淨身分威嚴,不思議明德地,三名善明月幢寶相海藏地,四名精妙金光功德神通福德地,五名輪威藏明德地,六名虛空內淸淨無垢焰光開相地,七名廣勝法界藏明界地,八名最淨善覺智藏能淨無垢無邊無㝵智通地,九名無邊億莊嚴迴向能照明地,十名毘盧遮那智海藏地。善丈夫,此是如來十地名號。諸佛智慧不可具說。善丈夫佛初地者,一切微細習氣除故,復一切法得自在故,第二地者轉法輪故,說深法故,第三地者說諸聲聞法式故。又復顯說三乘故,第四地者說八萬四千法門故。又復降伏四種魔故,第五地者,如法降伏諸外道故。又復降伏敖慢及衆數故,第六地者,教示無量衆生六通中故,又復顯現六種大神通故,謂現無邊淸淨佛剎功德莊嚴,顯無邊菩薩大衆圍遶,顯現無邊廣大佛剎,顯現無邊佛剎自體,顯現無邊諸佛剎中,從兜率天下,託胎乃至法滅。示現無邊種種神通。第七地者,爲諸菩薩如實說七菩提分,無所有故,復無所著故。第八地者,受一切菩薩阿耨多羅三藐三菩提四種記故,第九地者,爲諸菩薩,善方便故,第十地者,爲諸菩薩說一切諸法無所有故,復告令知一切諸法本來寂滅大涅槃故,此應三乘耳。如來相海品第二十九四門同上。一釋名者,佛相無窮故,如海也。今寄同人,說三十二耳。勝諸天故,說八十好也。亦可應神耳。此約三乘解,今此文,是一乘相故,如海也。所以普賢說,寄德無邊故也。問:‘上不思議法品,別告一人,今何故不也?’荅:‘上法是體顯勝故,別告耳。’二來意者,前體後相故來也。三宗者,依三乘,用三十二等諸大相爲宗,亦可增廣不同三十二相也。卽如文辨相德爲體耳,四釋文者,此文有二。初誡聽許說,二廣辨。此文有二。初略辨九十三種大人相,次下摠明十蓮花藏世界大人相也。前文初七頂上相,次名圓滿下,二十二嚴頂相,次三眉閒相,眼、鼻各一相,舌有四相,齗齶一相,大牙有四相,齒有一相,肩有五相,胸有一,脅有一,腹有七,下分有二。手有十二,馬藏有三,䏶有二,腨有二,毛端有一,足有十三,一、一相文有四。初列名,二出體,三光,四光照被益,於緣分齊也。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四之上 乙巳歲分司大藏都監開板大方廣佛花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四之下終南山至相寺沙門 智儼 述佛小相光明功德品第三十四門同上次第等上已說。小相者,相形別德也。所以佛自說者,化身之用唯佛方窮故。亦可化身隨物,劣令生信。有實德故,佛自說也。此文有二。初摠擧形好被益。次如來足下,有千輻,下廣辨隨功攝益。初文有四。一列名,二明用相,三辨眷屬,四擧往因,辨用益影成如來小相德用難盡。此有四文思之。二廣中有六。初辨形好攝益。二汝等應當下,教往報恩,及識因果。三諸天子聞是音聲下,興供養行。四是故,諸天子下,教發心悔過。五說是法時下,辨獲益轉,更迴向。六爾時,諸天子下,得益故,傳通不絕也。初文有二。初辨相輪光照攝益。此有二可知。二生天上已下,勸成勝行。勸中有二。初正擧下,況勸。二諸天子盧舍那下,擧勝利以示。初文有三。初正勸,二天子讚美,三重示重示。有二。初摠擧德勸,二如我下,引喩以示。有六喩中,各二文可知。第一法性無我喩,二無有來者喩,三無方住處喩,四離作成善喩,五法無方面喩,六法無諸過喩。第二教往中有四。初擧益以教勸。二諸天子其有下,擧損示勸。三汝昔下,擧恩以示。四諸天子下,示法以勸也。第三興供養,文有六。一興供具,二往,三不見,四天重示,五重生敬念,六爾時天妙音下,重敬也。於其內外,各有五百煩惱者。十使十惡自相乘,卽成一百,於內五塵,迷生五百。於外五塵,迷生五百也。二萬一千等者可解也。第四教發心,中有三。初教發心及悔過。天子略得益有三句。二時諸天子下,重問有二句。三爾時,天聲下荅,荅文有四。初示悔儀,有五句。二譬如明淨下,喩況有三句。三譬如幻師下,釋伏疑。四若如是下,結教悔義。第五獲益文有二。初明得益有二句。二猶未能見下,結益分齊。六爾時,天子下,展轉修行教,軌不絕有四。初以香花等,修供養行。二爾時,彼香雲下,自行熟已。復教攝餘人,有四句。三摩訶薩安住如是下,行益成故,復更轉益。四左手持下,擧喩以況成觀境界也。文中有四。初擧喩,廣大。彰法難信有三句。二佛告寶手菩薩如是下,法、合成其德用深廣。三佛告寶手菩薩譬如千億下,廣增喩況。四佛告寶手菩薩譬如定光下,擧喩分齊,結法深廣。此文難,須思之。且釋迦佛爲菩薩時,有一相益,於一生,益一衆生。其一衆生展轉利益,一切衆生竝一生至離垢三昧。如是一切衆生復利一切衆生。如是盡窮後際下,至徧傍。化作如意珠,亦利益盡窮後際。菩薩一相旣如是用。當知佛相德用不可說。佛一小相德旣如是。佛大相海準之可識。文意如此,餘相可知。普賢菩薩行品第三十一四門同上。一釋名者,行周法界云普。體順調善稱賢,菩薩是人。行者明因,行體從二義得名。二來意者,何故來?有二。一疑者云:‘向前因果,以何爲體,依何以成?爲決此疑也。’此卽第二自體因果。此品是因,性起是果。此因果與上修成,云何取別?若約緣分齊取,卽屬上。離性泯始終,卽屬此。問:‘上地中廣明離性,此云何也?’荅:‘前欲攝別行,爲趣體方便故也。此中所明正,是順理之行性也。而無二體,義不相是耳。以緣盡緣,以性卽竝性也。’問:‘性起絕言離相,云何有因果?’荅:‘有二意。一爲經內,因中辨性起,果中明性起故二也。二性由不住故起。起時離相順法故,有因果也。’問:‘起時離與緣修何別?’荅:‘緣修離緣,則不成。性起無緣,卽不損故別也。’其普賢行,亦如性起,分順修生也。何故?下,文云多法成出現於世也。荅:‘此望解知,非約性體也。’故下數云若如是知也。問:‘若不知,云何辨起?’荅:‘餘觀異見故,緣修卽不爾也。’第二又解。攝前別行,成其普德。以發生性起故來也。若作此解由屬修生,性起已下,文入本有也。問:‘普賢行何位成?’荅:‘實卽不依位。就彼解位已去,成爲上經文在解已上說故。’餘準思攝。三宗者,二門分別,約人約法。人體德用,修生離始。廣大異前耳。二法是普賢行法,亦有體相用。具有理教行果等也,但義異耳。問:‘此二品無定及加集衆,云何有體相?’荅:‘此二品體表在玄,爲彰法體極深廣故。’加集衆等如地品初釋也。法寄人顯故,此人說也。四釋文者,此文有四。初序,次正說,三結會證成。四偈頌,序文有三。初擧略,顯廣辨說分齊。二何以故下,嘖。三荅。荅文意前對緣故,局少也。此體通緣非緣故寬也。亦可前緣修擧體,從相故局。此起依相入體故寬也。又有此品攝本有修生,修生本有。又前對一品、二品機,此卽普也。此摠約五義。一位,二根,三事,四病,五行等也。文有四。初摠辨上說少意,二愚癡衆生下,別辨隨說意,三爲如是下結,四佛子若菩薩下,略出迷惑過失。此廣文意者,前教旣大。‘云何局爲一機?’荅:‘爲煩惱功力其大。小成大損,上雖非小所治不輕故,’若望普賢法界,不名爲廣也。此約嗔惑功能辨失。若約一切惑體時,唯是皮肉心,三惑也。此中有六。一摠辨失,二嘖,三略荅四廣釋五結六重廣顯廣有三可知百障約位有六。初十信,障二不樂佛法下,十住障,三離菩薩行下,十行障,四誹謗佛法下,障十迴向,五不樂菩薩共住下,初地已上障,六不順三世佛卽佛地。障此在十地終也。理竝通耳。二正說中有三可知。第二文有六十句。初五十因行,次十因中果,前中初十十信,二十解已上,三十初地已上。次二十九地十地也。理卽通耳。初十中前七,自利法中,修信。次三利他中,修信也。第二十初六自行,次三利他行淨。次第十因位淨,第三十智次第,配十地也。第四十巧隨順可知。第五十直心前七、九地相,於中初二知根,次二知藥,次二知順正證方便,次一除障。後三十地相可知。第六十巧便初四法身果,次四報身果,次二化身果,次是故下,結勸修行。有三可知。三證成可知有四,初動地雨花此有二可知。二等通餘方,三十方同證,四復摠結也。第四頌中有二。初長行擧說意,以生起。第二正偈頌。偈文有一百二十二行。初二摠頌因行所說分齊。次廣歎普賢行德。非頌前文。又亦一行一句,卽是一德不須更科也。此可思之。文云與諸如來等者,因果俱無相。因緣作及無作二發果力等故也。過去卽未來二世等者,因此集異義,但三世一相故,十信卽諸位也。如是一切但世相入者,卽一、一世法入現世,不證位成比也。此約三乘別行成。又亦九世自在攝受皆證也。此約普賢自在故爾。因果等法竝然,準之。若臨時變化相入等,不在此限,宜可思之。寶王如來性起品第三十二四門同上。一辨名。寶王者,攝德自在爲王。可貴名寶。如來者,如實道來成正覺。性者體,起者現在心地耳。此卽會其起相,入實也。二來意者,前普賢明能起之緣,次辨所起也。三辨宗體者,分別有二。約人約法,人但本有異前。法者如文耳。問:‘性起分齊云何?’荅:‘此有二義。一始終相對,二闊狹相對,明分齊。初始發心至佛性起,終至大菩提、大涅槃流通舍利也。’闊狹頓悟及三乘始終,出世至聲聞緣覺,世閒下,至地獄等諸位也。仍起在大解、大行、大見聞心中,文義俱在下辨,至當指釋。問:‘若聲聞等有性起者,何故文云於二處,不生根?’荅:‘言不生者,不生菩提心性起芽,不言無果葉。若無者,微塵中不應有經卷,準喩可知。’若細分別地獄無果,葉有體,聲聞有體及果葉也。四釋文者,所以性起問普賢說者,顯器善勝法曠周也。此文有三。初序,二爾時,普賢菩薩荅下正說,三爾時,十方下,結說證成。序文有五。初眉閒放光發起有二可知。二爾時,一切大衆下,疑念生起。三爾時,如來性起下,明對佛欲請。四時如來口中下,口中出光,以示說者,亦通加耳。五爾時,如來性起問下,正問發起。初放光中有八業。一請業,二因業,三敬業,四覺業,五止業,六降伏業,七示現業,八卷舒業。有一流星身也。第三欲請中有三。初長行示現請儀,二偈陳己意,三結偈有五。初六偈歎佛德,三善學下,陳己所謂,三大衆皆淨下,歎根勝妙,四歎所說法,五正覺下,成所欲意。第四光示文有三。初辨光同前,二明所歸,三爾時,普賢下,明益相也。第二正說文有三。初示名摠荅,卽本分也。二爾時,如來性起問下,重請,卽請分耳。三爾時,普賢菩薩告下,卽說分也。初本分中有三。初擧先事,二結說,三辨益,二請中初長行。次偈請,長行中有四。初摠請,二歎衆器熟,三仁者,下歎說者堪能,四善哉下,結請,歎器熟中有三。初擧衆集,二歎德,三結,集德中,初自利德,二大悲下利他德,三說者堪能德中有二。初自利,二於諸佛法下,利他德,二偈文有二。初長行生起,二正偈頌偈文有三,初二摠歎說聽者德以請,二有十三半,正別請,三十方下,四歎衆會希有請。別請中有二。初十半問果,次三問因,果中初七半陳事。次三歎德耳,三說分有三。初摠歎,二所以下嘖,三非少因緣下,廣荅。荅中有二。初由多因成故,不思議摠歎。二以十種無量下,辨相有二。初酬因問,二佛子,云何知見如來身?下荅上果問。此初卽荅上因問。此文有二。初摠明十門,二別解,初文有四可知。二別解文有二意。一釋上十門,二上十門中一門卽有二。初長行,次偈頌長行有二。初辨因體,二佛子,菩薩又復應知下,辨性起德用,此或在知人或法也。初辨體中有十番,初有二。初釋次結。釋有二。初喩、後合。餘皆同此。初明衆緣共起喩,二大機堪受喩,三緣成離作喩,四勝智善達喩,五大用現前喩,六機感隨現喩,七有二喩。初名勝緣先濟喩,二隨欲所成喩,此釋疑耳。八成自大事喩,九體用相依喩,十成益非虛喩。此十中前二,第四依緣辨緣,餘七約自體辨緣,第二重頌中有二。初長行生後,次偈頌,偈中分九。初二摠歎性起無上,次八別歎挍量性功德,次十擧法以況也。次二結成體用自在,次二示教知者,次二勸聽辨說分齊,次二擧事許說,次三十五正說,次二教勸也。正說中,初五結頌初喩,二四頌第二,次四頌第三,次三頌第四,次三頌第五,次三頌第六,次二頌第七中第二喩,次四頌第七中第一喩,次二頌第八,次二頌第九,次三誦第十耳。第二辨身,此次第荅上果問有二。初寄起發,二此菩薩知見無量下荅。荅中初長行,次偈頌。長行有四。一摠荅,二嘖,三略荅,四譬如下廣釋。略中二可知。廣內有二。初辨法體,二菩薩具足成就下,辨德用。此用或屬知人,或攝在法也。餘十文相同前。一密身普攝喩,二在緣離住喩,三辦事利生喩,四中有二。一勝緣先濟喩,二機感隨現喩,五潛用資成喩,合中有三。一正合前喩,二引光證成,三辨光利益,六隨根殊現喩,七一身多感喩,八無思成事喩,九大寶攝德喩,十攝治從願喩。第二偈頌。初生起,次正頌偈有四十二。初四頌第一喩,次四頌第二,次四頌第三,次五頌第四,次四頌第五,次四頌第六,次四頌第七,次五頌第八,次四頌第九,次四頌第十。問:‘上來所辨,多與初同義,云何也?’荅:‘由能德顯,卽屬初因。今此擧能取所依止也。’三音聲有二。初寄問,二荅荅。文有二。初摠,次別。別中有二。初長行,次偈頌,長行有二。初辨法體,二菩薩知見音聲十種無量下,明德用。亦二通謂能所也。法體有十。初文有五。初法,次如呼響下喩,三知見下合,四譬如世界下,重喩示,五如來妙音亦爾合。前喩無性故順理,後喩無性故具德。第三合內初歎知見勝,次對法成解,以合上喩耳。此名聲無本性喩,二聲無自質喩,三有用益生喩,四隨根開解喩,五隨機感見喩,六依緣異現喩,七用無所依喩,亦可大用遍資喩,八審根授藥喩,九大音具德喩,十隨益非虛喩。第二偈頌有二。初生起,次頌頌有四十偈,四行頌一喩可知。四菩提性起心有二。初寄問,二荅,荅內初法次喩。問:‘心意識非卽佛者何也?’此通二故,故文云:‘智無量故,心亦無量凡卽可知。’喩中分二。初長行,次偈頌。長行中分二。初辨十心法,二菩薩如是下,結知利益。此初喩名智無所依喩。此何故約智辨?荅有二意。一爲一心體通染淨故,不約之。二今論性起,智卽是心約淨辨故也。故文云:智無依止也。一智無所依喩,二性無增減喩,三興用益生喩,四智寶攝德喩,五智用殄非喩,六智堪含受喩。問:‘詳其文相,似言獨佛是性起何也?’荅:‘須知大意,但菩薩從他受教,卽是其果佛及菩薩能授他教,所有行德,卽屬其芽也。此思準之。七堅固隨益喩。’問:‘樹生芽時,諸樹生芽,所況義云何?’荅:此不異。何者但在一心中,本有新生異耳。若爾與前衆生,不了而有性起,異義相違。’荅:‘此各別門,所以知爲前義中,聲聞、凡夫不知本性,亦是性起。今此不知,卽非性起,得知別是異門。此約性起,芽說故異前耳。’又問:‘二處相違,因何不成矛盾?’荅:‘一切善根有邪有正,但順菩提者,無問人天善根等。竝是性起,不順菩提者,卽非性起,此約果處,分麤細,是以不違耳。’八智用遍資喩。九巧不盡有喩,亦可巧便留惑喩,十性通平等喩,此文有三。初法次喩後合。餘文可知。第二偈中有二。初長行生後,次頌偈有三十七有二。初一摠示識佛心,餘結十喩。初三結第一,次三頌第二,次四頌第三,次四頌第四,次三頌第五,次三頌第六,次五頌第七,次三頌第八,次四頌第九,次四頌第十,五境界有二。初寄問,二荅。荅文有二。初長行,次偈頌。初文有二。初辨境體,二饒益衆生下,辨利益用。初文有三。初法次喩後合。初法說有四。初摠擧佛境,二非境界下,辨佛境分齊,三佛子,一切衆生無量下,辨境深廣,四佛子,菩薩知心下,約法定體以明深義,二喩有三。初佛境分齊喩,第二境起因緣喩,第三境界深廣喩也境界有二一所緣境二分齊境此通二也第二偈文有二。初生起,次正頌。偈有十分四。初二頌前法說,次三頌初喩,次一頌第二喩,次四頌第三喩也。六佛行有二。初寄問,二荅。荅中初長行,次偈頌。長行有三。初法說,次譬如法界下,譬況,三佛子,菩薩如是等下,結德業用,喩中有五。各有譬合,初一至絕三際喩,二業性無㝵喩,三用窮法界喩,四起業濟生喩,五無功成事喩,第二頌中有二。初生起,次偈頌。偈有十分五。二偈頌一喩可知。七菩提文有二。初寄問,二荅。荅文有二。初長行,次偈頌。長行有三。初法,次喩,後佛子,菩薩以如是下,結其業用。初法說有二。初辨體,二知處等下,辨用。亦可初自利,次利他,二就喩中有二。各有喩合。初名現機定器喩,二至寂離性喩。初合喩文有四。一正合上喩,二佛子,一切佛下,辨菩提離言。三佛子,成菩提時下,辨離言相。四佛子,如來身中下,釋離言用事。三辨相文有三。初釋相,二佛子,隨如來下,類以成法。三如來具足下,結成。四用事中有三。一辨用事,二皆悉一性下,釋所以耳。三如是下結,第二合喩有二。初法辨,二復次,佛子,於一毛道下,辨依法成解。初文有二。初辨法體,二佛子,如來成正覺已下,成身業用。此文有二。初辨,次,結。初法體文有二。初辨,次結。初文有二。初正合上喩,二佛子,設有下,有二。問荅假設類成,二成解文有二。初達萬像通體,二復次,佛子下,解自他無咎,有三可知。二頌文有二。初長行生後,次偈頌。偈有十二分六。初二結法說,次二頌初喩,次二頌第二喩,次二頌假設類成文,次二頌成身用,次二摠歎德用也。八轉法輪有二。初寄問,二荅。荅文有二。初長行,次偈頌。長行有二。初釋次結。釋文有三。初摠辨體,二譬如下,譬況廣辨。三佛子,若如是下,結定損益。初摠辨中有六。初辨體,二辨分齊,三明所離,四譬況,五釋成,六類釋。廣辨中有二。初約體辨,二復佛子下,約用辨成。初有二譬;各有譬合。初大音無盡喩,二大響遍周喩,第二合文有三。初立,二嘖,三荅可知。二約用辨成有五可知。二頌文有二。初生後,次頌。偈有十分五。初一頌摠辨文,次一頌第一喩,次二半頌第二喩,次三半頌約用辨成文,次二摠歎也。九涅槃有二。初寄問,二荅。荅文有二。初長行,次偈。長行有二。初辨法體,二復次,菩薩如是知涅槃下,結知業用。初文有二。初法㧾辨,次喩廣釋。初文有四。初摠結約法勸知。二出涅槃體,有三可知。三佛子,如來下,明不說事涅槃體,但辨性起,文有五可知。四佛子但如來下,明說事相涅槃。文有三可知。二廣辨中有二。初約喩以辨,二如來示現涅槃時,下,顯事用隨緣分齊相也。文有二。釋結可知。前喩有三。各有譬、合、結三文。初現局體通喩,二化窮盡滅喩,三赴用隨機喩。第二偈文有二。初生後,次偈頌。偈有十二分五。初二頌第一喩,次二頌第二喩,次二頌第三喩,次四頌用隨緣文,次二摠歎耳。十見聞得益文有二。初寄問,二荅。荅文有二。初長行,次偈頌。長行有二。初辨現未見聞流通益,二爾時,諸菩薩下,問經得名,辨經文義持利儀式。初文有二。初釋,次佛子,是爲下結。前文有三。初摠法說,次譬況廣說,三於如來下,辨見聞功行廣大難說。此有三。初立,次責,三荅。初法說中有四。初㧾辨成益不虛,有二句可知。二辨有中殊勝行,三成空中方便智,四明窮其果位,具足勝德。譬況廣文有二。初辨現在體益,二若有得經下,未來住持用也。此有二可知。初現在益文有三喩,初二喩譬所得福慧堅固行德,後一喩性德勝用。前二喩者,初喩行窮堅實難壞喩,二名小智能焚大惑喩。此等各有譬合也。三者性起善巧資成喩,二問經名義及儀式等中有二。初問,次荅。荅文有五。初示經名幷經義用。二如是經典下,明所爲分齊。三是故,菩薩下,擧益勸持。四佛子,菩薩雖無量億下,顯經要勝。此文有二。初辨損,次明益可知。五佛子,菩薩聞此經已下,明教修益方儀。二所爲分齊中,初法次喩後合。頌中有二。初生起,次頌偈有八分四,初二摠,次二頌第一喩,次二頌第二喩,次二頌第三喩。第三爾時,十方下,結說證成有二。初長行,次偈頌,亦可此偈,是廣說中,第二重頌耳。初文有五。初動地幷雨花有二。初辨次結通,二佛現身亦二可知。三成行益,有二可知。四明得力所以,五菩薩雲集爲證,亦二可知。二偈頌有二。初長行明說意,二正頌。頌文有七分三。初二摠辨法深難,以喩顯,次三歎聞法利益,次二擧益勸持有三可知也。離世閒品第三十三解行法相,動靜無㝵,此會成也。四門同上。一釋名者,離者行體淨義也。世閒者,所離之法,世者時,聞者中,但在時中者,名世閒也。二來意者有二。一辨教興會來由,此下第三依緣修行成德分。所以來者,上旣得法,次須依法,就緣使修成行德故也。故下二品文中,皆有勸辭故,知二品來者。前聖性現前,欲明不與凡共分齊故次來也。三宗者分別有二。一約人,人有正助,二人各有體相用。問:‘此人與下知識人何異?’荅:‘此是能宣教人下,知識是教所詮法人也,準取之。’二約法,法謂行法,卽一乘道品也。三乘及小乘名數雖同三十七,而意異也。廣如諸經。一乘之行學,亦有始。若依定學,明始分齊者,若約迴心人,卽用非至定及初禪定等,爲學始。若據直進,人卽用光得意言定,爲初學始。若約一乘不共教,據行卽寂靜勝三昧,爲初學始。若約行解,卽花嚴定爲初學始。若約行位,卽十行位定,爲初學始。若約人知識軌,則用師子奮迅定,爲初學始。若約解信等,卽用淨藏定等,爲初學始。若約正解,用性起法門,爲初學始。若約解位,卽十解位定爲學始,此等約歸向本實爲言。頓悟人意言無分別定爲初也。餘可準知耳。四釋文者,此下有二分。初品明託法進修分,二入法界下,明依人入證分。問:‘何故對法不明入證,下約人方始入證?’荅:‘法是所依,善巧由智。若不依善達機儀勝人,雖自有法未可得證也。’故經云知識全梵行也。問:‘上來法及此成行竝無聲聞,下法界知識卽通辨聲聞何也?’荅:‘上法是頓,此行亦頓,爲此無聲聞下法界中,有二意。’一爲人有勝巧,引小成大,爲明人德故,說小也。二顯法界發心,始通二迴故。‘此二品何故分二處說?’荅:‘祇桓重閣攝化之始,普光堂起行之初故也。故上來明菩薩起行發於普光,下明文殊教化,起於重閣也。’所以知,此重會別本云乃能重啓斯義問故知也。此文有七。初序,次入定,三起,四請,五爾時,普賢告下,正說。六品末證成。七偈頌。初文有四。初時,二佛,三處,四同聞衆。處中有二。初辨處,二依處成佛德。何故於此歎德,以因果淳熟功歸化主故也?又行相可貴故。德文有三。初摠辨,二自分行,三能與一切下利他行。四同聞有二。初摠列數歎德。此初文有四。初與俱,二略歎德有二,初揀始異終,二揀新異舊,三具足成就下別歎德,四具足如是下結,三別歎德中有二。初自分德,二於一念中,下他分德。自分中,初自利,二善攝衆生下利他,第二列名,歎德中有二。初列名,此略列,所以此文菩薩名同普者,爲行體順理成無異相故也。次歎德歎德中有四。初摠,二隨諸世下攝,法爲首行。三悉能受持下護持正法行。四隨諸下示成大事行,二入定中有三。初入定,二列名,三明定力。所以此名花嚴定,表行嚴果故。三明起定,同前可知。四請問中,所以獨普慧爲法先問,彰今但以慧導行也。復顯機廣大故,但慧發於體,故普慧略問二百句,巧行隨緣故,普賢廣荅二千句也。此中已下,有十意故,行教興。一由爲與勝人同行故,二佛護念故,三成就不可思議諸善根故,四具足菩薩根故,五生佛家故,六得善知識力故,七一切諸佛神力持故,八盧舍那佛本願力故,九善根熟故,十堪受普賢菩薩行故也。此文正在善知識,義通此品耳。此可思準之。問中有三。初摠告,二正問,三善哉,下摠結請也。所以普賢荅,表行廣故。此文有六。卽六位也。初二十句十信位,次何等發普賢心下二十句十住位,三何等爲持下三十句十行位,四何等寶住下二十九句十迴向位,五何等身業下五十句十地位,六何等觀察下五十一句問果位差別。故別本云:‘願解說菩薩行,從始至終,令無疑也。’就爾時,普賢告下第五說分,廣荅上六位也。初十信位中有三。初九十句自分行滿,二十種入下八十句勝分行,三十不可壞智下三十句利他行,初九十中,初五十自利行,二正希望下二十利他行,三十戒下二十當位因成果滿。初依果者,汎有四種。一國土等依果,二習氣依前果生,三習因習果。四同體相依因果,此中不說前二也。亦可說同第一,此可思準。此文有二。初八自分,後二勝進可知。此等文十十皆有四。一擧數,二列名釋,三結,四擧利勸學,唯除佛地及共法行。更無異果等,法學故。因果旣立,能解非勝,智不成故明十奇特想。此中初八自分,次二他分也。旣有大解須,起大行。次明十行,修行之來,必須依善友故,明十知識。初一安固菩提心。次三依道心,成自利行。次四依心成利他行。次一依心,成普賢行,次一依大行,入法界,若不策懃無由進道。次明十精進,欲明精進,合理明十悕望。前八自分,後二勝進,離偏名正耳。依正悕有力故,辨十種成就衆生。初一布施攝,次二愛語,次二同事,次五利行。由利生故,惡無不離。善無不積故,明十戒,旣前德成故,明十授記。二有八十。勝分行有三,初二十自行,次四十入利他行,次二十入利他因果中,旣自行成次,入勝境也。行勝故,入十如來境也。初一示成菩提,次八三業利物,次一入涅槃。八中初四口。次二身,次二意,用旣入勝用,須識器性故,明十入衆生心行。旣識根,次明所安處故,明十入世界,旣得依處,須識時脩短故,辨十入劫。雖時自在,說示不明理亦難可知故,辨十說三世。旣識時,次明時中法故,次辨三世閒。言入世閒者,一知三法現時中故。二入語法通義力故。又有施設通情曰道故。三入語義體性故。四入語。義隨方施設故。五入知識語義想故。六入語言因故。七知語言分齊故。八入言義互轉無盡故。九知時中離染,言義亦如是故。十知時中,性淨故。言義亦如是。旣達時中法,得法解益故。第八十捨離憂惱,心無厭悔。初四自利行,次五利他行,次一自他俱行。第三利他內,初旣作事無悔,其心堅固。次明十利他智不可壞,初二利他,次八自利,旣有智故,能持法。次十陁羅尼,前九持因法,次一持果法,以持成就分解果法故。次第三辨說十佛化被於他,初三報佛。次三化佛次四法佛。此但一相解耳。若依此經,卽竝通攝也。第二普賢心下荅十解位問有三。初五十句明解方便,二十淸淨下七十句解位正修對治行。三十說法下八十句利他行,初中大心爲本故,發普賢心。初三護衆生心,次三趣果智心,次四厭離有爲心,旣大心成,次成大行。第二十普賢行。初九自分行法,次一勝進行法,大行旣備,次辨悲濟物。第三十大悲,悲心旣具,次依悲明發心之具。第四十發菩提心因緣,旣大心成已,次須依善友令增。第五近善知識,前八起因行,次二起果行。解位第二有七十句有三。初二十明方便修,二隨順覺下三十明解成就。三十明所知法門差別,以近善友故,能遠諸惑。第一十淸淨,旣離障故,高昇彼岸。第二十波羅蜜,旣行體成,於所知中,隨順覺達。第三十隨順覺知,旣隨知已,成智精立。第四十決定知,旣決定多有堪能。第五十力,旣智力堪能,第六辨十平等,旣得理觀,須起智用。第七辨十方便佛法句,就第三利他八十句,復爲三。初四十正對緣說法,顯辯才德備,次十無著下三十辨無著智成,次十句辨化德備足,初旣解已,須起言說。第一辨十說法,旣說法已,次須受持故。第二十受持方法,前七持因行。次三持果法,旣受持已諷誦,須第三十辯才,由才無滯德相殊出。第四辨十勝法,前八方便修勝。次二自在用勝,正以德起勝能,於境緣無執,第五辨十無著,以無著故,成平等證。第六辨十平等心,前八自分行中平等。次二勝分行中平等,心旣得平等。依證起後得智。第七辨十出生智,從後智起用,第八辨十變化。第三十持下三百句,荅上十行問有三。初六十句勝進入佛境障盡淸淨。二十不思議下九十句辨對治道成行德淸淨。三十園林下一百五十句當位修成滿足也。初中有三。初十辨行體。次二十入佛境界,下三十行成除障。初持有四,一因持果,如種性持。二果持因,如地持加持等。三住持力益,四心境相持如論。此中通也。旣種性持成於法悕望不厭。第二辨十正悕望,正以悕法智成,心徹無㝵。第三辨深入佛法,初四約器世閒,明佛法。次二衆生世閒,次三智正覺,次一摠法界爲佛法。旣入佛法。緣無不實。皆是起行所依。第四辨十依止,旣有所憑,於緣無懼故。第五辨十無畏心,正以於緣無懼,自知得決定故。第六辨十無疑心。初三自行,次四利他,次三自他俱成。第二子段九十句,治行成中有三。初三十方便對治行,次十正受三昧下三十行體平等無㝵。次十神通下三十行成作用。正以無疑,於深法中,智能解達。故辨十不思議。又亦可無疑入深法故,不思議也。旣得深智,解巧隨生故、第二辨十巧方便,能說佛微密,語旣得密語復巧知所入。故第三辨十巧方便分別智。初二約器世閒明智,次六衆生世閒,次二智正覺,卽常寂靜故。第四辨十正受三昧,從定起通慧無處不達故。第五辨十一切處,正以處無不在,體通無㝵故。第六辨十法門,起用自在故。第七辨十神通,正以神通自在,緣無不達故。第八辨十明,以明智起無明縛盡故。第九十解脫,園林下第三行德具足。一百五十句有三。初四十明報相具足,二十不動心下四十辨實解爲行本。三十無垢下七十句大用成滿,初行用所依,智遊境界故,辨十園林。前七方便行,次三果德。旣外遊已,復須內安故。第二辨十宮殿,以勝妙能出生道利,爲物忻樂故。第三辨十樂,樂心成已,德嚴法身故。第四辨十莊嚴,前八方便行嚴。次二淳孰行嚴。第二四十句中,德嚴身已,行德堅固故。第一明不動心,以行體堅,於勝理中,心能窮達故。第二辨十不捨深心,旣深至難壞,善能得理故。第三明智慧觀察,旣達無遺。於法善能揀別故。第四辨十分別法,第三七十中有二。初三十明離障淨,次四十行德成就。初辨十無垢智故,智行揩定。故第二辨十智印。問:‘文云知如來法是文字智印者,約何義說?’荅:‘菩薩及佛各知法無邊,若用二聖,相對時,菩薩卽不及佛。佛卽過菩薩所以者,爲法性體上二門具足法爾故。’此約一乘解也。旣行不壞,照用無㝵故,第三辨十智光明,智光無㝵旨無不契。故第四辨十不可稱量住,以行體難勝勇猛無閒故。第五明十發無懈怠心,以策成大心,決定正向故。第六辨十須彌山王心正直心,以正心於內決定不動,於世閒中,利他果成。故第七辨十深入大海智慧成三菩提,前八自行,後二利他。第四十寶住下二百九十句荅上十迴向,有三。初一百一十明十迴向行體,成就離障。二十自在下一百二十辨行相自在無㝵,三十遊神通下七十辨行用究竟,初有二。初四十句行成高棲彼岸。二十信下七十對治道成,離障淸淨初行稱理成,無住名寶住。旣行與理,合德位堅固。故第二辨十發金剛心。大乘顯彰果位圓備故,第三辨十發大事。初三自利,次三利他,次四菩提果滿。正以佛事滿足衆行圓備故。第四辨十究竟大事,但前明發行,後辨究竟,有此異也。前八自分行成,次二他分行熟耳。第二七十句中,初三十明迴向行體。次四十能生出世閒行,初十不壞信初三三寶所不壞信。次二同行人所,次一衆生所,次四於法成不壞,以信成就生在佛家故。第二辨十授記,旣道種成就,向果必然。故第三辨十善根。初四迴向菩提,次四等諸菩薩迴向衆生,次二迴向菩提,迴向位成智用自在。故第四辨十智慧。初四自分行自在,次六他分行自在耳。以智用照明曠周法界。故第五辨十無量廣心。前七自分因行,次三勝分行。智用普周體包無外,德窮海奧。故第六辨十藏,前七自分行,後三勝分行。旣積德備滿,剛𪍿斯盡。故第七辨十調順。初四勝分境中調,次六自分行中順。第二十自在下一百二十句辨行相自在,於中初十㧾辨自在。二有一百一十句,別辨自在,初中初五自分行,後五勝進行。此自在六位通有,但約生信勝劣,爲異耳。下一百一十中初別立十章門。二依章釋,門初中有五。初二就依正,以辨自在,次二約人法。次二約境智。第四約智用,第五對力用以顯。二別辨釋中,初釋次結。初一衆生,二剎,三法,四身,五願,六境界,七智,八通,九神力。此唯約色耳。十力自在第三七十句中,初二十行周殊勝下無畏不共等,五十明行德究竟。初十遊戲神通,明行善巧轉變無㝵,以智用遊化,卽體殊妙故,第二辨十勝行,其德殊勝智力有餘。故第三辨十力,前七因行,後三果滿,智力功强外,無所懼。故第四辨十無畏,智斷具足二乘不同。故第五辨十不共法,不共異小能與淨土爲因。故第六辨十業,由德行堅固。第七辨十身,第五十身業下五百句荅上十地因位所問相有四。初一百二十句辨正修行體,寄初地,二十方便下九十句辨造修離障。二地已上,三十離生下九十句辨修淳熟德。四地已上,四十足下二百句,辨報相具足。八地已上,初文有三。初二十句辨身業。次四十句辨口業,下六十句辨意業。初身二十句中,初十體,次十別用相。第二口業中,初十辨體,次十辨口業因行。初四自利,次六利他。口業善故,得諸神加護。次十守護由護,成內德,能外化故。第四辨十大事,第三意業六十句中,初十意業體下五十辨意業作用,初體中初三利他,次七自利行。旣得體已,須順理造修故,第二辨十發心,發心行成終於法界,故第三辨十滿心,由正智能生後得信等根。故第四辨十根,旣行體立解心當理,故第五辨十直心,旣理觀開明,契窮實際。第六辨十深心,前九自行,次一利他。第二九十句中,初三十句明自行,二十入衆生三二十利他。後十趣下三十辨自他行成,初因行巧修,故明十方便,以善巧方便,而能忻求諸行。故第二辨十樂修,由樂修故,障累斯亡。道味漸現故,第三辨十解脫。由解脫故,深知物性。故第四辨十入性,由深入性,道味漸細故,第五辨十習氣。道味漸增,成其大用。故第六辨十熾然,卽熾盛修也。不動勝進,無所不至,皆合聖趣故,第七辨十趣,旣依正趣,德行外彰。故第八辨十事具足佛法,旣得佛法,須識退過。故第九辨十退失佛法。初四利他行不成,次六自利行不成。第三九十句中有三。初三十句明因行體,次十名號下二十句辨行用差別。三十無量道下四十句因德成就。初十離生者方便,生死障盡也。以順無生,行成堅固故。第二辨十決定法。初五自分,後五勝分行,以自體堅固故。第三辨十出生佛法,以行成故,德彰於時。故第四辨十號,以圓德顯彰壅滯,斯盡自體虛通故,第五辨十道,此卽約增數,以明道體。前道自體辨道境無量。故第六辨十無量道,卽明分齊,正以所觀道境界無量故,能觀道法,亦無量更無別法。亦可道之數也。道法旣成,次明能成之因,卽第七也。第八十修道者,一圓數故也。卽辨策修方便。第九十莊嚴道者,由前策修顯德故也。又言無量道具者,起道因緣。又攝在己,能資於道,故名具也。無量修道者,攝法在己,堪能進達故,名修道。無量莊嚴道者,衆行互相莊嚴故也。此等始末眞如,所流緣起共成。故一處擧,次第明之。此等若從所見,則道法之道。若攝在己,卽道行之道故也。十足下第四二百句中有四。初二十辨八地已上,根行淳熟外,方便用。二十腹下六十句辨報體差別,三十眼下六十句辨報相差別。四十行已下六十句辨報用差別。八地已上,同佛身業等故也。初十足者,運報根本,進發之初,造用方便授受自他故。第二辨十手,第二報體六十中,初十腹者,摠能容攝故,復能薀積。故第二辨十藏,行用緣起,斯從本實而立。故第三辨十心,以德業成就互相嚴飾,營發法身故。第四辨十莊嚴,行德自嚴,防殄諸過。故第五辨十器仗,降諸魔等也。衆行集起,德成最勝。故第六辨十頭,次十眼下六十句辨報相差別。初行德淨勝照了緣起。故名十眼也。初五卽五眼,後五作用得名。大論云:‘無常肉眼,畏風大故,不見他方。此常肉眼自在,見他方色也。’二天眼見二世法,三慧眼見信等根,四法眼見一切法眞實相,五佛眼見十力。此等諸經,亦不定。次五可知。旣有照用,復能攝諸聲。教第二辨十耳。十德備故,行受戒香。故第三辨十鼻,衆德聚成,能宣示軌。故第四辨十舌。行堅自在,形無不現。故第五辨十身。旣色相外彰,明心內發。故第六辨十意,前九因行。次一果行,第四報用六十句中,以法身成立德用殊能威儀具足故,明四威儀行也。造修方便,須進發不住故,第一辨十行法。方便進修,則有自分成立。故第二辨十住行,旣成立安固不動。故第三辨十座。初四自行德,次六利他德。進行平等衆相永夷,故第四辨十臥,衆行旣備,必有相應之境。故第五辨十住,前明能住此,明所住法。有所依法,其行無不。故第六辨十行法,前行始修。故約聞等,此約終成故,約念等爲行也。又名行也。次第六觀察下五百一十句荅上第六門問因圓果,滿行德圓備義有二。初三百二十句辨因行究竟障盡淸淨。二十住兜率天下,有一百九十句,辨果德究竟。此中等覺及妙覺合明也。初文有三。初一百四十明因行成就。二十義下八十句辨方便修順勝進義。三十魔下一百句辨因行成障盡淸淨。初一百四十句有三。初四十辨行方便,二六十句六度自利行體。次十慈下四十句辨四等利他行體,初十觀察者,凡辨行相,必須善達通塞故也。初四自分行,次六他分行法。一往不盡,故第二辨十周遍觀察,所觀周悉行無不建。威宿勇健故,第三辨十奮,迅勇健無畏,能決定說。故第四辨十師子吼,旣能宣說。若自無德,無由利物故。次辨十施,下六度自行體次第如攝論。一施,二戒,三忍四精進有三。初四是懃勇。第五是加行,下五不下難壞無足精進、五定、六慧。次十慈下四十句利他行體,初十慈與樂意先故。初二平等普攝,次三令離障,後五令行成。次第二十悲,第三十喜,第四十捨,次十義下第二八十句辨方便勝進有二初四十自分行成次四十句勝進修成。初十以義成行也。前七自分、次三勝進。如來義者,順如而來也。第二十法,以法成行也。第三十功德具者,辨行因緣,後明成智慧因緣故。第四十辨智慧具,次四十句者,初十明足解心遊履諸法門,旣有進趣方便,必於三乘等法無厭。故第二辨十求法行,得法在己,善解明達。故第三辨十明了,善法行成趣無上道。故第四辨十迴向法,第三辨因行障盡,文有二。初五十句辨見佛行成入佛境也。二十慢下五十句入佛境界,爲佛加護。初五十中有三。初二十明道障現前,次十對治除障,次二十障盡見佛。初十魔者,於道有障故也。次第二十魔業,前是體。今此是力用有十一句。前七自行不成,次三利他不立,次一果德不滿。然道障交競,不除而自滅。故第三辨十捨離魔業,前七自分行成,後三勝進行立。體㝵旣盡,行入佛境。故第四辨十見佛,前信始但解。今行成故見也。旣得體相應,大用無方。故第五辨十佛業,後五十句佛加被中有三。初二十句對治勝分障,方便行成。次二十後障。復起攝行在障。三有二十句,果德加入佛境界。初慢業者,軌道相,迷於勝分。故在初也。識障不起,敬理重法。故第二辨十智業,若不識道相,卽隨有爲。不免羈縛故。第三辨魔所攝持,以正達道相,卽正覺開明故。第四辨十佛所攝持,以契如實,卽法被於己故。第五辨十法攝持,次第二佛住兜率天等一百九十句,辨果德滿足中有四。初四十辨因行勝進,與般若法門相應。二十生下五十句明勝行自嚴建立自在。三十出家下六十句勝治行成障盡淸淨。四十覺如來力下四十句明果德滿足佛事究竟。初住兜率十事業者,自他俱利,後邊行滿耳。自他行滿已,將欲處緣攝化。若不捨無有生死,大果無由得達。故第二臨命終時有十示現事,示現已,次十事下降神母胎。就中初五句利他,後五句攝因果相應。所現難測,旨趣精深。故第四辨十微細趣,無生爲生。故第五辨十生,自下五十句第二從母出生在現世閒。就初十種生中,初六自分,次四勝進,德相外彰。故第二辨十莊嚴,衆德備集道超世表。其行曠周功無不建。故第三辨十遊行七步。其道始立淸淨無染。故第四辨十現童子,身若不在染,何能顯其淸高?故第五辨十現中宮處世不著,緣所非㝵。故第六辨十出家,此下六十句明對治行相。以性離相違緣不㝵,洮練身心,熾然不懈。故第二辨十苦行,捨離二邊,隨順中道。故第三辨十往詣道場,隨順中道,攝果相應。故第四辨十坐道場,攝果在己,超昇獨絕。故第五辨十奇特,善覺三昧等。是後如來力中,今將此,欲超群惑,顯智用圓明力。故第六辨十降魔,有爲生滅不斷而自息。大智眞用不拂而自明。故第四段辨十如來力,下四十句明之。此卽解脫道中,頓得十力也。此善覺三昧,卽奇特中九也。眞相內,顯次正軌彰時故。第二明十轉法輪,以教被機無緣不益故。第三辨十白法,入衆生心,同化旣畢,息影歸眞。故第四辨十涅槃,卽初十文耳。亦可涅槃是常,依緣現沒,故次明也。卽後十句耳。佛子是爲大妙法門下第六結證述成有二。初摠,次別。別文有三。初結勸修行,二佛子此經出生下辨經名,歎經德用。有三可知也。經名有四義。一行,二解,三所離,四利他。如文應知耳。三說此出生下明雨花等證成。初文有三。初結法歎德。二佛子,若衆生下辨修行益。有三可知。三佛子是故,下明勸修。三說此出一切下證成有三。初牒經名,二動地,三十方佛同歎。有三可知。同名佛對示普賢者,明大行不虛也。第七重頌中有二。初長行生後,次偈頌頌。文有二百三十一偈有二。初二摠擧誡聽。第二下廣辨廣文有三。初一百四十九半摠頌普賢二千荅意。二常依如來智下四十三正頌二千荅。三菩薩修諸行下三十八半頌結歎文。初有三。初有十四。歎德深廣非言可盡。二持衆生下六十七菩薩德深。故廣擧事況。三一身無邊際下六十六偈半正歎因果行相德用自在。二事況中有三。初五十六半擧三十餘事,喩因行差別。二菩薩等如來下六偈況訖。摠明行相,三菩薩悉成就下四半結德勸聽。一身無邊際下第三六十半有二。初三十六偈半歎因行攝益。二菩薩一念中下三十歎果德攝益,自在。前歎因行有二。初十一半歎自分因行入佛境界。二示現種種下二十五辨因行,利用,就二十五偈中,初十八明他行自在。如是衆生下七明應機授法。菩薩一念下果攝益三十文有三。初十四自他果德攝化。二觀色如聚沫下十一辨菩薩道善眞性。三廣入下五結成功行利益。其旨深奧寧可悉宣?聊以一塵之說,以況玄趣耳。次半常依如來下第二有四十三,頌上二千荅有六。初四頌上十信位,次四頌上十住,次六頌上十行,次六頌上十迴向,次淸淨身身下十頌上十地因位。次觀察下十三頌上因圓果滿佛事究竟,次菩薩修諸行下第三有三十八半,頌上結文有二。初三十二半結因果德自在,下六偈擧以勸修。初文中,初六半略結歎行用自在。下二十六廣辨行用自在,二十六中初十六歎因行自在,二淨身等虛空下十歎果行自在,因行中初二歎意業,次四半歎口業,下十歎身業,果行中初二正歎果德三業成就,次八喩果自在,第二勸修中,初二摠擧因果行德,次喩況難盡。下二勸修同會莫二也。大方廣佛花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卷第四之下
- 1)제9지를 말한다.
- 2)다섯 구라야 구의 수가 맞으나 고려대장경에 여섯으로 되어 있다.
- 1)경문을 해석한 것에 네 가지가 있는데, 그 네 번째이다.
- 2)신수대장경에는 ‘과(果)’로 되어 있다.
- 3)고려대장경에는 ‘달(達)’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건(建)’으로 되어 있다.
- 4)고려대장경에는 “해자타무구유삼가지(解自他無咎有三可知)”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해자타무구유삼결가지(解自他無咎有三結可知)”로 되어 있다.
- 5)고려대장경에는 ‘귀(貴)’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책(責)’으로 되어 있다.
- 6)신수대장경에는 ‘인체(因體)’로 되어 있다.
- 7)신수대장경에는 ‘십재(十才)’로 되어 있다.
- 8)신수대장경에는 ‘삼십(三十)’으로 되어 있다.
- 9)신수대장경에는 ‘영(令)’으로 되어 있다.
- 10)고려대장경에는 ‘보살도선진성(菩薩道善眞性)’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보살도선달진성(菩薩道善達眞性)’이라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