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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87_b_01L허정집虛靜集허정대사시집 서虛靜大師詩集序나는 등산하고 청담을 나눌 때면1) 왕왕 납자들의 문이나 승당을 찾곤 한다. 그러다 우연히 선상에서 총림의 새로운 원고 하나를 보게 되었으니, 곧 (허정) 대사의 진실한 게송과 남기신 필묵이었다. 책을 손에 들고서 며칠 동안 잠시도 놓지 못했던 것은 그가 월저月渚2)의 법을 본받고 설암雪庵3)의 종지를 이은 점을 훌륭히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삼승 문호의 개사開士4) 중에 또한 시인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기 집안의 그윽한 취향을 모두 천석泉石 가운데 쏟아냄에 있어서는 저 월저와 풍담楓潭5)의 시가 유독 한층 높은 경지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스님의 시는 체법이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태도가 평상하고 담담하다. 오온이 모두 공하고, 모든 번뇌가 이미 사라졌으며, 자비의 구름이 뭉게뭉게 아롱지고, 지혜의 태양이 산뜻하고 밝으니, 이것이 어찌 시의 근본 성정이 아니겠는가. 이 문집의 어떤 작품도 맑고 원만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진실로 창해의 승보라 하겠다. 또한 그가 국애國哀(국상)를 당했을 때 지은 몇 편의 절구를 보면 일념이 오로지 임금과 백성에게 있었으니, 이것이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울러 〈사실四室을 애도하다〉라는 한 편의 시에서는 그 마음이 더욱 간절하고 지극하니, 조종祖宗을 존경하지 않은 자라 할 수 있겠는가? 스승과 벗을 애도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모함에 있어서도 걸핏하면 시를 써 추모하는 슬픔을 그치지 않았으니, 저 속세를 여의고 법의 문중에 귀의하기로 마음먹은 자에게도 이와 같이 사람으로서 행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단 말인가? 더욱이 청명에 쓴 시6)의 쇄洒ㆍ맥麥ㆍ반飯 세 글자에서는 상로출척霜露怵惕7)의 심정까지 볼 수 있으니, 곧 스님께서 한식을 맞아 선영의 묘소를 그리워했던 마음이다. 그러한즉 스님의 훌륭한 깨달음과 현량하고 아름다운 덕을 붓을 휘두르고 먹을 희롱한 곳에서 하나하나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으니, 내가 스님의 시를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바로 이것일 뿐이다. 다음으로, 스님께서 선문의 법을 전한 사실은 우리 해동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니, -
009_0487_b_01L[虛靜集]
009_0487_b_02L1)虛靜大師詩集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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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87_b_04L余繄以蠟屐談麈。徃徃敲推於衲門緇
009_0487_b_05L堂間矣。偶從禪案上。得一叢林新稿
009_0487_b_06L即大師眞偈餘墨也。因手卷數日。亹
009_0487_b_07L亹不釋者。善爲其法月渚宗雪庵故也。
009_0487_b_08L於伊時乘門開士。亦不能無詩。而自
009_0487_b_09L家幽趣。都是泉石中做出來。則其月
009_0487_b_10L什風韻。只見一倍高處耳。若師之詩
009_0487_b_11L軆法柔艶。態度平淡。五緼皆空。諸
009_0487_b_12L漏已盡。慈雲靄和。慧日鮮朗。斯豈
009_0487_b_13L非詩本性情者耶。集中諸作。无不淸
009_0487_b_14L圓。亶可謂滄海僧寶也。且觀其國哀
009_0487_b_15L時數絕。則一念猶在君民。非憂愛而
009_0487_b_16L何。曁夫悼四室一什。意頗切至。得不
009_0487_b_17L爲尊祖敬宗者歟。至若悼師友慕父母。
009_0487_b_18L動輙有詩。追哀不已。豈意離塵境歸
009_0487_b_19L法門者。有如是在人難行者乎。且如
009_0487_b_20L淸明詩。洒麥飯三字上。尤可見霜露怵
009_0487_b_21L惕之心。則師得其寒食。思先墓之意
009_0487_b_22L也。然則師之善覺賢懿。一一證嚮於
009_0487_b_23L揮毫弄墨處。余所以貴師詩者是耳。第
009_0487_b_24L師之禪門傳法。已著吾東。何必復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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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87_c_01L굳이 글 중에 찬양을 재차 보탤 필요가 있겠는가.아! 스님의 시가 선림의 한 뿌리로 삼기에 충분한데도 권미에 오히려 우리 당파8)의 한마디 말이 결여되어 있으니, 나는 이것이 너무도 애석하다. 또한 윗대의 지도림支道林9)으로부터 아래로 철 상인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노래, 청아한 글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임금과 부모와 스승과 벗에게 정성을 다한 자는 본 적이 없는데 스님께서는 이를 겸하셨으니, 스님은 진실로 방외의 선인이라 하겠다. 옛날 한문공韓文公10)은 여러 사대부들이 문창文暢11)에게 우리의 도(유교)로써 일러 주지 않는 것을 항상 근심하면서도 서문을 써서 주었는데, 이제 내가 어찌 유독 무심할 수 있으리오.그리하여 오늘 문소聞韶12)의 김정대金鼎大가 서문을 짓고 쓴다. -
009_0487_c_01L賛揚於文字間㦲。噫。師之詩。足可
009_0487_c_02L爲禪林一根柢。而卷尾尙欠吾黨中一
009_0487_c_03L語。余甚惜之。抑又上自支道林。下至
009_0487_c_04L澈上人。佳吟淸製。不知其幾許。而未
009_0487_c_05L甞見慻慻於君親師友間者。師則兼之。
009_0487_c_06L師實方外善人也。昔韓文公。常患諸
009_0487_c_07L搢紳不以吾道告。文暢作序而贈之。今
009_0487_c_08L余烏獨無心然㦲。是日聞韶金鼎大序
009_0487_c_09L而書。
009_0487_c_10L{底}雍正十年香山普賢寺開刊本 (서울大學校
009_0487_c_11L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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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등산하고 청담을 나눌 때면(蠟屐談麈) : 납극蠟屐은 시를 지으며 산천을 유람한다는 뜻이다. 남조南朝 송宋의 사영운謝靈運이 밀랍을 발라 반질반질한 나막신을 신고 등산을 하며 시를 지었던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담주談麈는 고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옛날에 청담淸談을 하던 사람들이 고라니 꼬리털로 만든 먼지떨이를 들고 다녔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 2)월저月渚(1638~1715) : 조선 후기 승려로 법명은 도안道安이다. 9세에 출가하여 천신天信의 제자가 되었고, 금강산에 들어가 풍담 의심楓潭意諶(1592∼1665) 문하에서 휴정休靜의 밀전密傳을 참구하였으며, 화엄학華嚴學과 삼교三敎에 두루 통하였다. 1664년(현종 5) 묘향산에서 『화엄경』을 강의하자 화엄종주華嚴宗主라 찬양하며 수많은 청중이 모였다. 『조선불교통사』 상편 2 p.408에 따르면 허정 법종虛靜法宗은 스무 살 무렵에 묘향산으로 월저 대사께 참례하고 대장경을 섭렵하였다고 한다.
- 3)설암雪庵(1651∼1706) : 조선 후기 승려로 법명은 추붕秋鵬이며, 대흥사大興寺 13대종사大宗師 중 제5 대종사다. 10세에 출가하여 종안宗安의 제자가 되었고, 구이 선사九二禪師에게서 경론經論을 배웠다. 이후 월저 도안을 찾아가 의기투합하여 여러 날을 담론한 뒤, 도안의 의발을 전수하였다. 대흥사 백설당白雪堂에 주석하며 화엄학을 강의하였다. 『조선불교통사』 상편 2 p.408에서 “(허정 법종은) 월저 대사의 상수제자인 설암으로부터 현묘한 지의旨意를 듣고 인가를 받았다.”라고 하였다.
- 4)개사開士 : ⓢ bodhisattva의 의역이다. 정도正道를 열어 중생을 인도하는 사부士夫란 뜻이다. 고승이나 훌륭한 재가자의 호칭으로도 쓰인다.
- 5)풍담楓潭(1592~1665) : 조선 후기 승려로 법명은 의심義諶이다. 편양鞭羊에게 입실하여 청허의 법맥을 이었다.
- 6)청명에 쓴 시 : 〈한식寒食〉이란 제목의 시가 2편 수록되어 있다.
- 7)상로출척霜露怵惕 : 가을에 서리가 내려 초목의 잎이 모두 떨어지면 이것을 보고 돌아가신 부모나 선조를 서글피 사모함을 말한다. 『예기禮記』 「제의祭義」에서 “가을에 서리가 내려 군자가 이것을 밟으면 반드시 서글퍼지는 마음이 있으니, 이는 추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 8)우리 당파(吾黨) : 유가儒家를 뜻한다.
- 9)지도림支道林(314~366) : 도림道林은 자이고, 법명은 지둔支遁이다. 중국 동진東晋 스님으로 당시의 명사들과 두루 교류한 것으로 유명하다. 동진 애제哀帝가 즉위하자 동안사로 가서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을 강하고, 태화 1년에 오산塢山에서 53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 10)한문공韓文公 : 당唐나라의 문장가인 한유韓愈를 말한다. 문공文公은 시호다. 당시 대표적인 배불론자였다.
- 11)문창文暢 : 한유와 같은 시대 승려이다. 한유가 문창에게 써 준 서문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가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後集에 수록되어 있다.
- 12)문소聞韶 : 의성義城의 옛 이름이다.
- 1){底}雍正十年香山普賢寺開刊本 (서울大學校所藏)。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성재헌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