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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660_a_01L월파집月波集 ✽월파집月波集 서序옛날 우리 선군先君이 살아 계실 적에 내가 서울에서 돌아왔더니, 선군께서 “저번에 늙은 선승禪僧 한 사람이 태백산太白山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그 사람됨을 보니 선풍도골仙風道骨이었다. 내가 그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라고 하셨다.이듬해 선군이 돌아가셨을 때에 예전에 사귀던 사람들 모두가 소원疏遠해져서 문항門巷이 적막하였는데, 홀연히 늙은 선승 한 사람이 조문하러 왔으니, 그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가 조문을 한 뒤에 하룻밤을 묵고 나서 시축詩軸 하나를 꺼내어 보여 주었는데, 그 이름을 ‘월파집月波集’이라고 하였다.그 사람됨을 살펴보니 맑기가 월파月波 같았고, 그 말을 들어 보니 맑기가 월파 같았으며, 그 시를 음미해 보니 또 맑기가 월파 같았다. 그러고 보면 그 시집을 ‘월파’라고 이름 붙인 것도 참으로 허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시집을 장차 간행하여 세상에 전하려고 하면서 나에게 서문을 요청하였는데, 내가 거상居喪 중이기 때문에 사양하고 돌려보내었다. 그런데 지난겨울에 글을 보내고 올봄에 또 글을 보내어 기필코 한 글자의 서문을 얻으려 하였다. 돌아보건대 내가 재주가 없어서 실로 부끄러우면서도, 오히려 느껴지는 점이 있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전당錢塘의 혜근 상인惠勤上人이 구 공歐公(歐陽脩)을 따라 노닌 것이 30여 년이었는데, 공이 죽은 뒤에 공에게 말이 미치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그래서 동파자東坡子(蘇軾)가 그 사람됨을 어질게 여겨 그 시에 서문을 짓기를 “혜근은 본디 세상에 구하는 것이 없고, 공도 혜근에게 은덕을 입힌 것이 있지 않으니, 그가 눈물을 흘리며 잊지 못하는 것이 어찌 이익 때문이겠는가. 그가 사대부 사이에 줄을 서서 공명功名에 종사했다면 공을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라고 하였고, 또 “시가 글을 기다려서 전해질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됨의 대략과 같은 것은 이 글이 아니면 전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1) -
009_0660_a_01L[月波集]
009_0660_a_02L1)月波集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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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660_a_04L昔我先君之在世。余自洛而還。先君曰。
009_0660_a_05L昨有一老禪。從太白山來訪我。其人
009_0660_a_06L也。仙風而道骨。余以不見爲恨矣。越
009_0660_a_07L明年。先君之喪也。故交皆踈。門巷
009_0660_a_08L寂寞。忽有一老禪來吊。乃其人也。旣
009_0660_a_09L吊而仍宿。出示一詩軸。其名曰月波
009_0660_a_10L集也。觀其人。淸如月波。聽其語。淸
009_0660_a_11L如月波。玩其詩。又淸如月波。則月
009_0660_a_12L波之名其集者。信不虛也。將欲鋟於
009_0660_a_13L梓。傳於世。而要余以序。余以居憂。辭
009_0660_a_14L之而送之矣。去冬有書。今春又有書。
009_0660_a_15L必欲得一字之文。顧余不才。實有所
009_0660_a_16L愧。而反有所感者。何也。錢塘勤上
009_0660_a_17L人。從歐公遊者。三十有餘年。而公
009_0660_a_18L薨之後。語及於公。未甞不流涕。故東
009_0660_a_19L坡子。賢其人而序其詩曰。勤固無求
009_0660_a_20L於世。而公非有德於勤。則其所以流
009_0660_a_21L涕不忘。豈爲利哉。使其得列於士大
009_0660_a_22L夫之間。而從事於功名。其不負公也
009_0660_a_23L審矣。又曰。詩非待文而傳者也。若其
009_0660_a_24L爲人之大略。則非斯文。莫之傳也。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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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660_b_01L지금 월파와 나의 선군은 얼굴을 한 번 본 연분이 있을 뿐이다. 일면一面의 그 연분이 삼십 년 동안 종유從遊한 것보다 꼭 후하지는 않겠지만, 백 리 길을 달려와 조문하고 양 세兩世를 위로해 준 것은 혜근 상인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린 것보다 더한 점이 있다. 그러고 보면 월파가 혜근 상인보다 훨씬 어진 점이 있다고도 하겠다.동파東坡는 구 공歐公의 후생인데도 뭔가 느껴지는 점이 있어서 글을 지어 세상에 전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선군을 생각할 때에 어찌 느껴지는 점이 없어서 끝내 한 글자의 서문을 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세 번째 신묘년(1771, 영조 47) 3월 하순에 월성후인月城後人 동곽우객東郭寓客 이공李龔은 쓰다.『월파집』 권지합일. -
009_0660_b_01L月波與我先君。有一面者也。一面之
009_0660_b_02L分。未必厚於三十年之逝。而百里之
009_0660_b_03L吊。兩世之慰。有以過於聞語流涕。則
009_0660_b_04L月波之賢於勤上人者。盖亦遠矣。東
009_0660_b_05L坡以歐公之後生。猶有所感。而爲之
009_0660_b_06L文。以傳於世。則余以先君之思。其
009_0660_b_07L可無所感。而終不爲一字之序耶。
009_0660_b_08L崇禎紀元後三辛卯季春下澣。月城
009_0660_b_09L後人東郭寓客李龔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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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660_b_11L月波集卷之合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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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동파자東坡子(소식蘇軾)가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 『古文眞寶』 후집에 소식의 「錢塘勤上人詩集序」가 실려 있다.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이상현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