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호은집(好隱集) / 好隱集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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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은집 제3권(好隱集 卷之三)
시문詩文 1
용천사1) 명부전 양간록
달성 고을(達治) 40리 남쪽에 있는 용천사湧泉寺는 당唐 영휘永徽 연간에 신라 의상 조사義湘祖師가 창건한 절이다. 원元 중통中統 연간에 고려의 보각 국사普覺國師가 수리하였다. 이후 우리 조정에 이르기까지 무너지고 다시 일으켜 세우고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이미 지나온 해가 천 년하고도 백 년에 이른다. 성상聖上(영조) 49년 계사년(1773) 봄에 본사 전 주지 수백守白이 명부전冥府殿을 중건하였는데, 이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조금도 받지 않았으니, 처음 권한 것은 원계遠溪와 관혜寬慧이고, 공역을 맡은 이는 전 주지 자선慈善이요, 재물을 관장한 이는 구舊 기실記室 염정念定이다.
이해 여름에 주지 최상最祥이 상량문을 청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육위송六偉頌의 운문으로 부를까요, 직어直語2)의 산문으로 할까요? 육위송은 고문古文이 아니고, 사실만 기록하는 것은 고문입니다. 가만히 보건대 배우기 어려운 육위송은 화려한 듯하나 내실이 없고, 맑은 듯하나 흐립니다. 대우對偶를 쓰고 염법을 쓰나(用儷用簾), 모두 거칠고 난삽하여 맥락이 없습니다. 식자가 보면 속으로 비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문장이 화려하지도 않고, 또 남다른 식견이 있는 사람(隻眼)의 꾸지람을 들을까 두렵습니다. 대신 연대와 공로를 가지고 실제적인 기록으로 삼고자 합니다. 주지 스님께서는 이 글을 들보 사이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 절이 무너지지 않으면 반드시 후대에 관혜ㆍ수백ㆍ자선ㆍ염정 같은 분이 있을 것입니다. 어찌 육위송을 짓겠습니까?” 하자, 주지 스님은 좋다고 하였다.
유가사 대웅전 양간록

009_0719_c_02L好隱集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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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19_c_04L1)詩文(一)

009_0719_c_05L湧泉寺冥府殿樑間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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達治四十里南湧泉寺唐永徽時
009_0719_c_07L羅祖師義湘之所剏元中統時高麗
009_0719_c_08L國師普覺之所葺也至於我朝値廢
009_0719_c_09L而興焉者不一也已過之年垂千有
009_0719_c_10L百也今上四十九年癸巳春本寺前
009_0719_c_11L住持守白重建冥府殿時不借他人
009_0719_c_12L一毫之力而初以勸之者遠溪寬慧
009_0719_c_13L眎其役者前住持慈善也掌其
009_0719_c_14L財者舊記室念定也是歲之夏
009_0719_c_15L持最祥丐余藏樑之文余曰六偉乎
009_0719_c_16L直語乎六偉匪古直語古也竊觀
009_0719_c_17L艱學之六偉似華而虛似澂而混
009_0719_c_18L儷用簾俱醜澁無脉識者目之不勝
009_0719_c_19L腹嗤若余者文不富而復恐有隻眼
009_0719_c_20L之譙要將年代功勞以爲實錄
009_0719_c_21L須住持以此置樑間勿壞則後必有
009_0719_c_22L慧也白也善也定也何用六偉
009_0719_c_23L住持曰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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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19_c_25L瑜伽寺大雄殿樑間錄

009_0719_c_26L「詩文一」三字編者補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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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 현풍면의) 유가사瑜伽寺3)는 처음에는 북쪽 1리 남짓에 있는 원각사圓覺寺에서 터를 옮겼는데, 창건주와 연대는 오래되어 상고할 길이 없다. 우리 숙묘肅廟 임술년(1682)에 이르러 승통僧統 도각道覺이 대중들과 모의하여 지금의 터로 건물을 옮기고 절 이름을 유가瑜伽라 하였다. 성상聖上(영조) 49년 계사년(1773)에 본사 비슷한 연배들(甲人)이 발기하여 대웅전을 중건하였는데, 그 연배가 병진(1736)에서 계해(1743)까지의 출생자였다. 전前 주지 덕혜德慧가 사무를 보았고, 전前 승장僧將 원순元淳이 재물을 관장하였으며, 당시 주지 지선智善은 모든 일을 총괄하였다.
이해 봄에 계암桂嵓과 홍준洪俊이 내가 있는 가야산으로 인사를 와서 말하기를, “법당 상량하는 날짜가 멀지 않았습니다. 법로法老께서 바라건대 저희들을 위해 글을 지어 주십시오.” 하였다. 나는 “준 스님이여, 포량문拋梁文을 짓는 것을 아시는지요? 그 상량문은 원元나라, 명明나라 때 시작되었는데,4) 문체가 비록 아름다우나 잘 짓기는 역시 어렵습니다. 근래에 배움이 짧은 무리들이 효빈效顰하고 있으나 염법簾法에 구애되고 대우對偶에 구속되어 실제의 자취는 전혀 담겨 있지 않고, 다만 헛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 들보에 비장할 수 있겠습니까? 대들보가 비록 말이 없지만 도리어 마음을 돌아보면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무릇 문장을 짓는 법은, 격식이 어긋나면 곧 기이하고, 말이 통하면 곧 청아한 것입니다. 이제 직어直語를 붓으로 써서 양간록樑間錄이라 한다면 스님의 뜻에 맞지 않을 것인데, 혹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준俊 스님은 “좋습니다.” 하며 소매에 넣고 떠나갔다.
지장사 승당 양간록
성상聖上(영조) 43년 정해년(1767)에 나는 달성부(達府) 지장사地藏寺 청련사靑蓮社에 머물고 있었다. 그해 봄 절의 승당을 중수하였는데, 위아래가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운 것이 모두 열두 칸이다. 모든 일이 끝나가려 할 때 방장房長인 쾌정快淨 스님이 나에게 말하였다.
“살고 있던 집이 퇴락하고 비가 새서 부득이하게 개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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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之瑜寺初自北一里强圓覺寺來
009_0720_a_02L剏主若年代古矣無從可攷迨我肅
009_0720_a_03L廟壬戌僧統道覺與大衆謀移建
009_0720_a_04L於今址改額爲瑜伽今上四十九年
009_0720_a_05L癸巳本寺甲人一起重建大雄殿
009_0720_a_06L甲則自丙辰至癸亥焉前住持德慧
009_0720_a_07L務焉前僧將元淳管財焉時住持
009_0720_a_08L智善擧而總之是年春桂嵓洪俊
009_0720_a_09L我伽倻仍言曰法殿上梁之日在
009_0720_a_10L願法老幸爲我等施其文余曰
009_0720_a_11L俊師乎知其拋梁之作乎其文昉於
009_0720_a_12L元明而其體雖媺其才亦難近來
009_0720_a_13L短學之家效其一嚬則拘於簾束於
009_0720_a_14L全沒實蹟徒尙浮說是可藏樑
009_0720_a_15L樑雖無言反顧諸心寧不愧乎
009_0720_a_16L凡作文之法格反則奇辭達則淸
009_0720_a_17L以直語筆之命名樑間錄未委師心
009_0720_a_18L政如何俊公曰哿矣袖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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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20_a_20L地藏寺僧堂樑間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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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上四十三年丁亥余寄達府地藏寺
009_0720_a_22L靑蓮社是春寺之僧堂重修而上下
009_0720_a_23L退屋改建者合十二間事垂訖
009_0720_a_24L長快淨告余曰所居屋旣頹漏矣

009_0720_b_01L공수公輸5)가 열세 명이요, 두 달이 소요되었으며, 비용은 총 3백 냥이었습니다. 재무를 관장한 이는 한성漢性이요, 사무를 관장한 이는 당시 주지 양운良運이요, 재물을 모은 이는 전 주지 풍흡豊洽입니다. 대개 절이 처음 지어진 때는 옛 노인들의 구전에 따르면, 신라 신문왕神文王 때라 하는데, 여러 차례 병화를 입어 상고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상량문을 얻었는데, 곧 강희康熙 병신년(1716)에 화주(化士) 여상呂常이 중수하였고, 주지는 선명善明, 도감都監은 각민覺敏, 별좌別座는 상근尙根이었고, 두목頭目은 곧 민규敏圭ㆍ처응處應ㆍ선유善裕ㆍ묘연妙演ㆍ묘잠妙岑ㆍ광신廣信ㆍ원옥元玉ㆍ천인天印ㆍ회철懷哲 등 아홉 명이라 합니다. 병신년에서 정해년까지 52년 사이에 절은 무너지고 사람은 고인이 되어 남은 이가 없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법로法老께서는 재물은 박하시고 문장은 풍부하시니, 바라옵건대 글로 시주를 하시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나는 말하였다.
“아, 정 스님이여, 제 말을 들어 보세요. 무릇 육아六兒의 노래를 짓는 것은 원元나라, 명明나라 때에 시작되었는데, 근래 범상한 배우는 이들이 너른 안목을 가진 이의 비웃음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억지로 그 문장을 짓는데, 구법句法을 인용하는 것이 군색하고 난삽하여 격조 있는 글의 문채가 전혀 없습니다. 난주亂朱6)가 어찌 진홍眞紅과 빛을 다투겠습니까? 많으나 허점이 있는 것은, 적으나 내실이 있는 것만 못합니다. 내가 어찌 그 비웃을 일을 하겠습니까? 다만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살펴보니 법도가 있고 군더더기 말이 없으니, 스님이 한 말씀으로 기록하고자 하는데, 스님께서는 대들보 사이에 둘 수 있겠습니까?”
정淨 스님이 수긍하기에 이에 쓰노라.
봉서사 권선문
남을 위하고 자기를 위하는 것을 선善이라 하고, 모을 수 있고 흩을 수도 있는 것을 선善이라 한다. 선하다는 것은 천지를 통하고 고금을 꿰뚫는 대도大道이니, 곧 군자가 즐겨 하는 것으로

009_0720_b_01L得已修改則公輸一十三而月消兩
009_0720_b_02L費以三百計掌財者漢性管務
009_0720_b_03L者時住持良運鳩物者前住持豊
009_0720_b_04L盖寺之草剏耆夫舌傳在羅之
009_0720_b_05L神文朝云而累經兵火無可攷處
009_0720_b_06L得樑間字則康熙丙申化士呂常重
009_0720_b_07L而善明住持覺敏都監尙根別
009_0720_b_08L頭目則敏圭處應善裕妙演妙岑廣
009_0720_b_09L信元玉天印懷哲等九人云自丙申至
009_0720_b_10L丁亥五十二年之間屋朽人故存
009_0720_b_11L者亡幾可悲也已惟法老薄於財
009_0720_b_12L而豊於文幸以文施之不亦可乎
009_0720_b_13L淨乎聽余言夫六兒之作
009_0720_b_14L於元明而近來如常之學不顧愽見
009_0720_b_15L之笑强作其文而引用句法多涉
009_0720_b_16L窘澁渾沒䂓彩亂朱曷與眞紅爭光
009_0720_b_17L多虛不如少實余何犯其笑乎第觀
009_0720_b_18L子之所談有典無剩欲以子口爲錄
009_0720_b_19L子可以置樑間否淨也首肯之
009_0720_b_20L以書

009_0720_b_21L

009_0720_b_22L鳳棲寺勸善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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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佗爲己之謂善能聚能散之謂善
009_0720_b_24L通天地貫古今之大道則君子之

009_0720_c_01L선善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지금 강양江陽 북쪽에 봉서사鳳棲寺가 있는데, 옛날 신라 대에 세워진 오래된 절이다. 원앙 기와는 반쯤 빠져 있고, 무지개(螮蝀) 들보는 꺾이려 하며, 승요僧繇7)가 채색한 자취8) 또한 흐릿해졌다. 이로 말미암아 추鯫 스님이 개창하려는 뜻이 간절했으나 일은 바다요 힘은 모기라. 힘들게 몇 행의 발원문을 지어 낙선樂善하는 집을 두루 돌아다니며 곡식이나 비단을 모으니, 대중들이 앞을 다투어 시주하여 이 절을 처음 모습으로 복구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장차 준공을 기다려 향을 사르며 장수를 축원하리이다.
범음각 권선문
자기 것을 쪼개어 남에게 주는 것을 시施라 하고, 인색함을 깨뜨리고 돌아보지 않는 것을 선善이라 한다. 이것이 비록 사람의 정情으로서는 가까이하기 어려운 것이긴 하나, 공功을 이루고 오묘한 경지에 들면 어디를 간들 옳지 않겠는가. 나라에 충성하고 집안에서 효도하는 것이 모두 선에서 나오며, 군자가 되고 소인이 되는 것 또한 선善과 불선不善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 용연사龍淵寺는 신라 때의 고찰인데 불행히 기사년(1749)에 화재를 겪은 후 겨우 옛 모습을 복구했으나 유일하게 범음각梵音閣 하나만 아직 중건을 하지 못하여 오매불망 이 생각에 편안히 쉴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변변치 않은 납자들(螻髠)이 그 전각을 조성하려 하나 일은 거창한데 힘은 적어 감히 권선 시주의 글로 산야에 널리 알리노니, 엎드려 빌건대 여러 군자들이여, 가난하고 넉넉한 정도에 따라 이 권선문 축에 방명芳名을 적기를 바랍니다.
화적이 상서를 보인 것에 대한 글
옛사람이 말하기를, 일에는 좋은 일과 좋지 못한 일이 있는데, 좋지 못한 일은 숨기지 않을 수 없고, 좋은 일은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선善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로다. 지금 가야산伽倻山 중에

009_0720_c_01L所樂無右於善也今江陽北有鳳
009_0720_c_02L棲寺徃者羅代所建老屋鴛鴦瓦半
009_0720_c_03L螮蝀梁欲摧而僧繇後素之跡
009_0720_c_04L甚漫漶由是鯫衲志切改剏而事海
009_0720_c_05L力蚊强作數行語徧聞于樂善之家
009_0720_c_06L或粟或帛爭先捨施能令此寺
009_0720_c_07L之如初則將俟竣功燌黁祝長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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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20_c_09L梵音閣勸善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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割己與人曰施破慳亡顧曰善此雖
009_0720_c_11L人情之不近而功成妙入則無徃不
009_0720_c_12L國之忠家之孝皆由於善而爲君
009_0720_c_13L子爲小人亦在於善不善之間則人
009_0720_c_14L之不可須臾離者是也龍淵寺
009_0720_c_15L時古刹不幸己巳火後僅得復古
009_0720_c_16L獨有梵音一閣尙未及建寤寐念玆
009_0720_c_17L不安息作是以螻髠欲造厥閣
009_0720_c_18L事巨力緜敢將善施之說布告山野
009_0720_c_19L伏乞僉君子各隨貧富俯書芳名于
009_0720_c_20L斯軸

009_0720_c_21L

009_0720_c_22L和寂出瑞文

009_0720_c_23L
昔人云事有好醜醜不可不隱好不
009_0720_c_24L可不揚此好善之談也今伽倻山中

009_0721_a_01L좋아할 만한 한 가지 일이 있어 글을 갖추어 여러 산문山門에 받들어 고양하고자 한다. 올해 먼 곳에서 온 한 노숙老宿께서 중봉암中峯庵에서 단정히 앉은 채 선탈(蟬蛻)하여 절의 대중들이 곡을 하고 절차를 갖추어 장례를 치렀다. 갓 정오가 되었을 때 연기와 불꽃이 명멸하는 가운데 한 조각 정골頂骨이 갑자기 수십 보 밖 기암奇岩 위로 날아갔다. 그것은 연한 자색紫色의 투명한 빛을 띠었으며, 지름은 한 치 정도이니, 이는 평생에 도를 닦은 힘인 것이다.
노숙의 속성은 한韓이요, 법명은 두일斗日이며, 호는 화적和寂인데, 강릉江陵 사람이다. 임오년(1702) 중동仲冬 11일에 태어나 을미(1775) 중추仲秋 초삼일에 생을 마치니, 세수 74세이다. 어린 나이에 본부本府의 보현사普賢寺에 들어가 신원信元 화상에 의지하여 낙발하였고, 서산西山 존자의 제6세인 봉암 국평鳳岩菊萍 도인道人을 찾아뵙고 묘결妙訣을 들었다. 이후로 명산에 구름처럼 노닐면서 항상 염불에 힘썼다. 입을 것과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은 마음속에 두지 않았고, 매번 머물러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시주를 두려워하여 오래 머물지 않았다. 어떤 해에 혹 흉년이 들면 대중을 불러 인도하기를, “녹수와 푸른 솔도 마시고 먹을 수 있고, 한 벌의 가사로도 추위와 더위를 견딜 수 있습니다. 하물며 굶주림과 배부름, 추위와 따뜻함은 모두 죽음(死)이라는 한 글자와 연결되어 있는데, 사생死生이라는 것은 천지의 공도公道요, 주야의 상리常理입니다. 응당 순순히 받아야 할 것이니, 어찌 두려워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으니, 노숙의 조심스러움이 이와 같았다. 노숙은 7척의 훤칠한(軒昻) 몸으로, 두상은 둥글고 코는 우뚝하였으며, 눈썹은 두텁고 눈은 감색이었다. 입은 반듯하고 귀는 길고 목소리는 남보다 청아하였다. 우연히 그를 본 사람들은 선심善心이 절로 생겨 한 사람이 칭찬하면 여러 사람이 듣게 되어 선을 좋아하는 이들이 원근에서 호응하였다. 입고 있는 옷이 방포方袍여서 비록 유관儒冠과 다르지만, 귀하게 여기는 것은 덕德에 있었다. 노숙의 의범儀範이 이와 같은데

009_0721_a_01L有一事可好故備書奉揚于諸山
009_0721_a_02L歲自遠來一老宿端坐蟬蛻于中峯庵
009_0721_a_03L於是寺衆哭而具葬節以葬焉日才
009_0721_a_04L烟焰明滅中一片頂骨歘超於
009_0721_a_05L數十步外奇岩上其色淡紫淡白
009_0721_a_06L寸餘此平生修道之力也老宿俗氏
009_0721_a_07L法名斗日號和寂江陵人也
009_0721_a_08L於壬午仲冬十一日終于乙未仲秋初
009_0721_a_09L三日爲壽七十有四蚤歲入本府普
009_0721_a_10L賢寺依信元和尙落䰂謁西山尊者
009_0721_a_11L弟六世鳳岩菊萍道人聽妙訣自後
009_0721_a_12L雲遊名山恒以念佛爲務至於衣食
009_0721_a_13L之慮不掛心頭每於所止之處
009_0721_a_14L人之施而無久滯年或失稔則招
009_0721_a_15L衆而諭之曰綠水蒼松可嚼可掬
009_0721_a_16L領布衲可仍寒暑況饑飽凍煗
009_0721_a_17L帶死之一字死生者天地之公道
009_0721_a_18L晝之常理應然順受何足畏也
009_0721_a_19L宿之操心其如此軒昂七尺身
009_0721_a_20L圓鼻直眉庬目紺口方耳長而聲
009_0721_a_21L音淸越人幸而見之者善心自生
009_0721_a_22L夫稱之衆人聞之好善者遐邇應
009_0721_a_23L所著方袍雖與儒冠不同所貴
009_0721_a_24L在乎德也老宿之儀範其如此

009_0721_b_01L그 나머지 이행異行과 기이한 빛도 많이 있으나, 이는 아마도 본래 마음의 맑은 거울에 비친 그림자가 아닌가 하니, 꼭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 근래의 승려에 대하여 사람들이 보면서도 홀대를 하니 그 천하기로 말하면 땅강아지, 개미보다 더 심하나, 모든 승려가 노숙과 같다면 곧 어찌 천대가 있을 것인가? 위에 있는 이들은 명예와 이익에 탐닉하고, 아래에 있는 이들은 구복口腹에 집착하니, 이는 스스로 저들의 천시를 불러온 것이다. 노숙은 곧 때마침 와서는 번뇌를 벗어났고, 때마침 떠날 때는 상서로움을 드러냈으니, 오늘날 다시 구한다 하더라도 노숙 같은 분은 만분의 일도 구하기 어려울 것이니,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삼가 바라노니 각 사찰의 석덕碩德들은 이 글이 도착하면 그날로 읽고 미루지 말고, 전하고 또 전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선심을 일으키게 한다면 다행이겠다.
소옥행기묘년(1759) 가을(小屋行己卯秋)
昨自毘瑟到伽倻   어제서야 비슬산 떠나 가야산에 당도하니
小屋如斗僅容膝    작은 절집 한 말(斗) 같아 겨우 무릎을 펼 만하네.
窓外引水聲聒耳   창밖에 물을 당겨 놓으니 그 소리 귓전 울리고
竈邊附簷烟觸目   처마 밑 아궁이에선 연기가 눈에 맵네.
客來全廢鋪筵席   손님이 와도 자리를 펴는 일 전혀 없으니
雨霽獨看山雲歇   비 개이자 홀로 구름 걷힌 앞산만 바라볼 뿐.
閱經素乏明几牖   경문 읽을 때 본디 환히 비춰 줄 서창 없고
拜佛未設香與燭   예불할 때 향도 없고 촛불도 없다네.
鉢裡只有水精鹽   발우 안에 있는 것은 다만 수정 같은 소금이니
助味安得一匙杓   맛을 더한 조미료 어찌 한 숟가락인들 얻으랴.
前在毘瑟諸事足   전에 있던 비슬산에선 모든 일이 풍족하여
心廣神怡無適莫9)    마음 넉넉하고 정신 편안하여 안 되는 일 없었다네.
却將前日比今日   문득 옛날을 오늘날에 견주어 보니
如棄醇味覔殘   순미醇味를 버리고 잔반殘飯을 찾는 꼴이라.
然憶古人勤行事   허나 고인古人이 근행勤行한 일 생각거니
不以豊華爲取足    풍족하고 화려한 것으로 만족하려 하지 않았네.
雪山少林坐不動   설산雪山과 소림少林에서 꼼짝 않고 좌정할 때
所食不過一麻麥   먹는 것은 한 끼의 보리밥에 지나지 않았어라.
而我一錫任東西   나는 지팡이 하나로 동으로 서로 다니면서
不憂夕飯與朝粥   저녁 끼니 아침 죽을 근심하지 않았도다.
且宜幸當年六旬   게다가 다행히도 육순을 맞이하니
火急改徃修來轍   지난 잘못 고치고 다가올 길 닦는 일 화급하여라.
飽煗自有妨道情   배부르고 따뜻함은 본디 도정道情에 방해되니
飢寒何害做功業   배고프고 추움이 어찌 공업功業 짓기 방해하랴.

009_0721_b_01L餘異行怪光多有之恐本心明鏡中
009_0721_b_02L不必書之近來之僧也
009_0721_b_03L見而忽之其賤也甚於螻蟻而僧
009_0721_b_04L若皆如老宿則何賤之有高者溺於
009_0721_b_05L名利下者膠於口腹自貽伊賤也
009_0721_b_06L宿則適來也脫於累適去也出其瑞
009_0721_b_07L今而更求如老宿者萬中難得一
009_0721_b_08L不貴㦲伏願各刹碩德此文到日
009_0721_b_09L讀了勿稽傳之又傳之令無限人
009_0721_b_10L善心則幸矣

009_0721_b_11L

009_0721_b_12L小屋行己卯

009_0721_b_13L
昨自毘瑟到伽倻小屋如斗僅容膝

009_0721_b_14L窓外引水聲聒耳竈邊附簷烟觸目

009_0721_b_15L客來全廢鋪筵席雨霧獨看山雲歇

009_0721_b_16L閱經素乏明几牖拜佛未設香與燭

009_0721_b_17L鉢裡只有水精鹽助味安得一匙杓

009_0721_b_18L前在毘瑟諸事足心廣神怡無適莫

009_0721_b_19L却將前日比今日如棄醇味覔殘

009_0721_b_20L然憶古人勤行事不以豊華爲取足

009_0721_b_21L雪山少林坐不動所食不過一麻麥

009_0721_b_22L而我一錫任東西不憂夕飯與朝粥

009_0721_b_23L且宜幸當年六旬火急改徃修來轍

009_0721_b_24L飽煗自有妨道情飢寒何害做功業

009_0721_c_01L樹下塚間堪坐臥   나무 아래 무덤 사이에도 앉고 눕고 할 수 있고
荷葉松花可衣食    연잎과 송화松花로도 입고 먹고 할 수 있네.
盛也衰也宜隨緣   성하고 쇠한 거야 마땅히 인연에 따르는 것이니
況此伽倻勝毘瑟    하물며 이곳 가야산은 비슬산보다 뛰어남에랴.
溪山秀麗別乾坤   시내와 산은 수려하니 별천지이고
千經萬論藏高閣   천경千經 만론萬論은 높은 전각에 갈무리 되었어라.
但責日夜道不高   단지 밤낮으로 도가 높지 않음을 자책할 뿐이니
何恨身世窮且薄    어찌 이내 신세 궁박한 것 탓하리오.
傍人不識此情境   곁의 사람 이러한 정경情境을 모르는 채
笑我無能又淺福    무능하고 복도 없다 나를 비웃는구나.
無端吟成小屋行   무단히도 읊어서 소옥행小屋行 지었나니
呼取沙彌書雲幅   사미나 불러서 구름 폭에 쓰게 하리라.
서산가西山歌
殷亡周興四海安   은殷 망하고 주周 흥하자 사해가 평안해졌는데
夷齊何事入深山    백이와 숙제는 어인 일로 깊은 산 들어갔나?
忠臣元不事二君   충신은 원래 불사이군不事二君 한다 하니
宜令骸骨置林間   마땅히 해골을 숲 속에 두어야 할 것이라.
采薇短歌再三唱   고사리 꺾으며 지은 단가短歌 두세 곡 부를 적에
澘然淸涙雙髩斑   주르륵 맑은 눈물 양 볼에 얼룩지네.
恥更稱臣獨守餓   두 나라 신하 부끄러워 홀로 굶주림 지키나니
周粟於我良不關   주나라 곡식은 진실로 나완 관련 없네.
一登西山絕顧戀   서산西山10)에 한 번 들어가 옛 연정 끊었나니
夢魂安有周京還   꿈속에서도 어찌 주周나라 서울 돌아가리?
命之將終天地暗   장차 목숨 마치려 할 때 천지가 어두워지고
谷鳥林禽咽   골짝 새 숲 속 새도 목메어 울어대네.
父之前愆子不證   아버지 지은 허물 아들은 입증하지 않고
君之舊惡臣何念   임금의 옛 잘못을 신하가 어찌 괘념하리.
叩馬諫時雖欲兵   말고삐 잡고 간할 적에 죽이고자 하였으나
太公義而不用劒    태공망은 죽이지 아니했네.
義之所在不以力   의리 있는 곳에 무력을 쓰지 않으니
武王左右皆屈伏   무왕武王의 좌우 신하 모두 다 굴복했네.
君臣父子實一體   군신 부자는 실로 한 체제이니
父之遺命遵不失   아비의 남긴 명령 따라 잃지 않았네.
於隱於顯摠不欺   숨기거나 드러나거나11) 모두 다 속임 아니니
此人心路如弦直   이 사람의 마음 길은 시위처럼 곧구나.
首陽寒月夜夜生   수양산 차가운 달은 밤마다 떠오를 적에
應照此人貞肝膈   마땅히 이 사람 곧은 흉중 비추리라.
聖之淸者孰敢先   성인 중의 청렴한 자 그 누가 감히 앞서리오.
萬古此人爲特獨   만고 지나도록 이 사람만 특별히 우뚝하구나.
擧世混濁淸可見   온 세상 다 흐리거든 청렴함 볼 수 있거늘12)
歲寒然後知松栢   겨울이 된 연후에 송백이 푸름을 알리라.13)
向使二子不立節   만약 두 사람이 절개 세우지 않았던들
亂臣賊子踵相接   난신亂臣과 적자賊子가 연이어 나타났으리.
야용가夜舂歌
黃梅山中至人在   황매산 중에 지인至人이 있었으니14)
盧公特去勤夜舂    노 공盧公15)이 일부러 가서 밤새워 방아 찧었다네.

009_0721_c_01L樹下塚間堪坐臥荷葉松花可衣食

009_0721_c_02L盛也衰也宜隨緣況此伽倻勝毘瑟

009_0721_c_03L溪山秀麗別乾坤千經萬論藏高閣

009_0721_c_04L但責日夜道不高何恨身世窮且薄

009_0721_c_05L傍人不識此情境笑我無能又淺福

009_0721_c_06L無端吟成小屋行呼取沙彌書雲幅

009_0721_c_07L西山歌

009_0721_c_08L
殷亡周興四海安夷齊何事入深山

009_0721_c_09L忠臣元不事二君宜令骸骨置林間

009_0721_c_10L采薇短歌再三唱潜然淸涙雙髩斑

009_0721_c_11L恥更稱臣獨守餓周粟於我良不關

009_0721_c_12L一登西山絕顧戀夢魂安有周京還

009_0721_c_13L命之將終天地暗谷鳥林禽咽

009_0721_c_14L父之前愆子不證君之舊惡臣何念

009_0721_c_15L叩馬諫時雖欲兵太公義而不用劒

009_0721_c_16L義之所在不以力武王左右皆屈伏

009_0721_c_17L君臣父子實一體父之遺命遵不失

009_0721_c_18L於隱於顯摠不欺此人心路如弦直

009_0721_c_19L首陽寒月夜夜生應照此人貞肝膈

009_0721_c_20L聖之淸者孰敢先萬古此人爲特獨

009_0721_c_21L擧世混濁淸可見歲寒然後知松栢

009_0721_c_22L向使二子不立節亂臣賊子踵相接

009_0721_c_23L夜舂歌

009_0721_c_24L
黃梅山中至人在盧公特去勤夜舂

009_0722_a_01L求法安足憚辛苦   법을 구함에 어찌 신고辛苦함을 꺼리리오.
隻字片言如瑞琮   한 글자 한마디 말을 영롱한 옥처럼 여겼네.
夜夜杵聲動天地   밤마다 소 절구 돌리는 소리 천지를 진동하는데
月湧寒波風生松   달은 차가운 파도 솟구쳐 오르고 솔에는 바람 이네.
如龍若虎七百衆   용 같고 범 같은 칠백의 대중들은
端然受供經夏冬   단정히 앉아 공양 받으며 여름 겨울 지냈었네.
大乘行事實難測   대승大乘의 행사는 진실로 헤아리기 어려워라.
誰識簸糠爲正宗   쭉정이와 쌀겨가 정종正宗이 되리라 그 누가 알았으리.
忍老觀渠道已熟   홍인弘忍 장로는 그의 도가 이미 무르익었다 생각하여
三更呼入傳衣鉢   삼경 늦은 밤에 그를 불러 의발衣鉢을 전하였네.
恐有愚軰爭法信   우매한 무리들 법의 신표信標 가지고 다툴까 근심하여
乘夜行到九江驛   밤을 틈타 걸어서 구강九江의 역驛에 도착했네.
師渡我渡分迷悟   스승이 건네주나 내가 건너나에 미오迷悟가 갈리니
登舟自舞棹告別   배에 올라 스스로 춤을 추며 노를 저어 작별했네.
翩翩隻影向南去   바람에 나부끼는 외로운 그림자 남쪽을 향해 떠나가니
曹溪頓門天下立   조계의 돈문을 천하에 세웠네.
我生千載忝繼後   이 몸은 천년 후에 태어나서 욕되이도 그 뒤를 잇고자
一卷壇經閑中閱   한 권의 단경壇經16)을 한가하게 보고 있네.
追思先師苦求法   선사들이 고생하여 법을 구한 일 미루어 생각하니
慚愧後生安坐着   후생으로 편히 앉아 있음이 부끄럽네.
無物無塵本性鏡   한 물건도 없고 먼지도 없어 본성이 거울 같다 하니17)
朝凡暮聖從此得   아침의 범부가 저녁 때 성인됨은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五派禪流徧天下   다섯 분파의 선류禪流18)가 천하에 두루 퍼지니
一味淸凉誠無價   한맛의 청량함은 진실로 값을 매기기 어려워라.
火宅羣生何苦熱   화택의 중생들이여 어찌 고열苦熱에 시달리는가?
心月恒照無明夜    마음의 달이 무명無明의 밤을 항상 비추는 것을.
向使曹溪不出世   만약 조계曹溪에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蠢蠢愚人無變化   꿈틀거리는 어리석은 사람들 아무 변화 없었으리.
남악 장로의 운을 따라6수첫째 수는 변체. 마지막 수는 압운을 바꾸었다.(和南崿長老韻六首初首變體。 末首倒押。)
[1]
秋月被雲顯又微   가을 달은 구름에 가렸다가 보였다가
因思時態感心機   요즘 세태 떠올리니 심기心機를 뒤흔드네.
鍛凡大冶無人入   범부를 단련하는 대야大冶19) 밑으로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고
識字菲才鬪手揮   글자나 조금 아는 천학비재들은 손짓하며 다투는구나.
輕師覔過如梟猛   스승을 가볍게 여기고 허물 찾으니 사나운 매와 같고
竊法謀身假虎威   법을 훔쳐 일신을 도모하며 호가호위狐假虎威 하는구나.
崿老幸然臨近界   악崿 장로께서 마침 이 근방에 오셨는데
飽聞聲德喜忘饑   성가聲價높은 덕망 실컷 듣고 기뻐 배고픔 잊었노라.

[2]
早歲入山探道微   어린 나이로 입산하여 미묘한 불도 탐구하더니
蜉蝣夢幻見其機   하루살이 같고 몽환夢幻 같은 그 기미 알아챘네.
室中修定五更盡   방 안에서 선정 닦노라 오경이 다 지나고
門外迎人雙袖揮   문밖에서 벗을 맞느라 두 소매 휘적이네.
龍蟄深潭雲氣重   용이 깊은 못에 숨어드니 구름 기운 무겁고
虎潜遠藪眼光威   호랑이 먼 수풀에 숨어도 눈빛이 위엄 있다.

009_0722_a_01L求法安足憚辛苦隻字片言如瑞琮

009_0722_a_02L夜夜杵聲動天地月湧寒波風生松

009_0722_a_03L如龍若虎七百衆端然受供經夏冬

009_0722_a_04L大乘行事實難測誰識簸糠爲正宗

009_0722_a_05L忍老觀渠道已熟三更呼入傳衣鉢

009_0722_a_06L恐有愚軰爭法信乘夜行到九江驛

009_0722_a_07L師渡我渡分迷悟登舟自舞棹告別

009_0722_a_08L翩翩隻影向南去曹溪頓門天下立

009_0722_a_09L我生千載忝繼後一卷壇經閑中閱

009_0722_a_10L追思先師苦求法慚愧後生安坐着

009_0722_a_11L無物無塵本性鏡朝凡暮聖從此得

009_0722_a_12L五派禪流徧天下一味淸凉誠無價

009_0722_a_13L火宅羣生何苦熱心月恒照無明夜

009_0722_a_14L向使曹溪不出世蠢蠢愚人無變化

009_0722_a_15L

009_0722_a_16L和南㠋長老韻六首初首變體
末首倒押

009_0722_a_17L
秋月被雲顯又微因思時態感心機

009_0722_a_18L鍛凡大冶無人入識字菲才鬪手揮

009_0722_a_19L輕師覔過如梟猛竊法謀身假虎威

009_0722_a_20L崿老幸然臨近界飽聞聲德喜忘饑(一)

009_0722_a_21L早歲入山探道微蜉蝣夢幻見其機

009_0722_a_22L室中修定五更盡門外迎人雙袖揮

009_0722_a_23L龍蟄深潭雲氣重虎潜遠藪眼光威

009_0722_b_01L法燈明滅何須問   법등法燈이 빛나고 희미해짐을 어찌 꼭 물으리오.
他飽不能免我饑   남의 배부름은 내 배고픔 해결하지 못하거니.

[3]
入道多年採妙微   불도에 든 지 여러 해 미묘한 경지 캐었으니
已於世路免危機   이미 세상길에서 위기를 벗어났네.
汪洋敎海慈航泛   넘실거리는 교해敎海에 자비의 배 띄워 놓고
欝密禪林慧劒揮   울창한 선림禪林에서 지혜검을 휘두르네.
法界爲鄕豈拘處   법계를 본향으로 삼으니 어찌 얽매이는 곳 있으며
大悲作本不施威   대비大悲를 근본으로 삼으며 위세 부리지 않는다네.
八垓衲子皆歸學   팔방(八垓)의 납자들이 모두 배움에 귀의하니
至樂在心亦絕饑   지극한 낙이 마음에 듬뿍하고 배고픔도 사라지리.

[4]
操心程節極玄微   마음을 조종하는 과정 절차 지극히 현미하니
如履薄氷發弩機   엷은 얼음장 밟는 듯하고, 쇠뇌(弩機) 시위 놓는 듯해.
六日浣衣虱災滅   육 일 만에 옷을 빠니 이(虱)의 재난 사라지고
三更起陣睡魔揮   삼경에 진陣을 일으켜 졸음 귀신 쫓아낸다.
降龍鉢水無求滿   항룡발우(降龍鉢)20) 물 마실 때 배부름 구하지 않고
解虎杖風不怒威   해호장解虎杖21) 풍모로 성내거나 위엄 부리지 않네.
到處雲山涯計在   이르는 곳 구름 낀 산에 삶의 계책 있으니
長靑松栢足消饑   늘 푸른 솔과 잣나무는 배고픔 없애기 족하다네.

[5]
一片靈臺太細微   한 조각 영대靈臺(마음)는 너무도 작고 미묘해서
收來放去察乎機   거두어들이고 놓아 보낼 제 기미를 살피노라.
逢人說善宣叮囑   사람들 만나면 선업 행하라고 입이 닳도록 당부하고
對事揀非作指揮   일을 대해서는 시비를 분간하여 지휘를 해야 하리.
春茵秋茴資口味   봄풀과 가을의 회향茴香 풀은 입맛을 돋게 하고
牙籖錦篋護身威   아첨牙籖과 금협錦篋22)은 몸의 위엄 보호하네.
無邊法界隨緣住   가없는 법계에 인연 따라 머무르니
不計腹中飽與饑   뱃속의 주림과 배부름은 따지지 않네.

[6]
渡漢以來連歲饑   한수를 넘어온 이래 연이어 흉년이라.
噉松飮水足成威   송화 먹고 물 마셔도 위엄 잃지 않으리라.
禪家五派能分析   선가禪家의 다섯 종파를 능히 다 분석하고
敎苑十玄特發揮   교원敎苑의 십현十玄23)을 특별히 발휘하리.
花落花開察地氣   꽃 지고 꽃이 피는 지기地氣 살필 수 있고
月圓月缺觀天機   달 둥글고 이지러지매 천기를 관찰하네.
平生勤苦做何道   평생을 애써서 무슨 길 만들려는가?
中立不頗超離微24)   중립으로 기울어짐 없이 법성의 체용을 넘네.
환운 도남의 운을 따라(次幻雲圖南韻)
娑婆幻世伴雲遊   사바세계 허깨비 세상 구름 따라 흘러가는데
六月圖南叶所求   유월에 도남圖南 스님 화운和韻하기 구하시네.
匣裏邪將斬魍蠥   상자 속의 보검25)으로 도깨비 근심 베려 하는데
髩邊霜雪老春秋   귀밑가의 서리와 눈은 봄가을로 늙어 가네.
詩壇巨筆退三舍   시단詩壇의 거필巨筆께서 삼사三舍를 물러나오니
講席古錐讓一頭   강석講席의 고추古錐26)가 한 걸음 양보하네.
同鼐良緣何晩得   한솥밥 먹은 좋은 인연 어찌 이리 늦었는가?
麻兄蓬弟問而酬   삼대 같은 형(麻兄)과 쑥대 같은 아우(蓬弟)27)가 묻고 답하네.
한가로이 읊다4수(漫吟四首)
[1]
歲殘臘破動人情   한 해 저물고 새해가 돌아오니(臘破28) ) 마음이 싱숭생숭
棄舊就新互送迎   묵은해 보내고 새해를 맞이해 작별하고 영접하네.

009_0722_b_01L法燈明滅何須問他飽不能免我饑(二)

009_0722_b_02L入道多年採妙微已於世路免危機

009_0722_b_03L汪洋敎海慈航泛欝密禪林慧劒揮

009_0722_b_04L法界爲鄕豈拘處大悲作本不施威

009_0722_b_05L八垓衲子皆歸學至樂在心亦絕饑(三)

009_0722_b_06L操心程節極玄微如履薄氷發弩機

009_0722_b_07L六日浣衣虱災滅三更起陣睡魔揮

009_0722_b_08L降龍鉢水無求滿解虎杖風不怒威

009_0722_b_09L到處雲山涯計在長靑松栢足消饑(四)

009_0722_b_10L一片靈臺太細微收來放去察乎機

009_0722_b_11L逢人說善宣叮囑對事揀非作指揮

009_0722_b_12L春茵秋茴資口味牙籖錦篋護身威

009_0722_b_13L無邊法界隨緣住不計腹中飽與饑(五)

009_0722_b_14L渡漢以來連歲饑噉松飮水足成威

009_0722_b_15L禪家五派能分析敎苑十玄特發揮

009_0722_b_16L花落花開察地氣月圓月缺觀天機

009_0722_b_17L平生勤苦做何道中立不頗超離微(六)

009_0722_b_18L次幻雲圖南韻

009_0722_b_19L
娑婆幻世伴雲遊六月圖南叶所求

009_0722_b_20L匣裏邪將斬魍蠥髩邊霜雪老春秋

009_0722_b_21L詩壇巨筆退三舍講席古錐讓一頭

009_0722_b_22L同鼐良緣何晩得麻兄蓬弟問而酬

009_0722_b_23L漫吟四首

009_0722_b_24L
歲殘臘破動人情棄舊就新互送迎

009_0722_c_01L負笈尋師南北客   책 꾸러미 지고 스승 찾아온 남쪽 북쪽 선객들
踰山越海短長程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멀거나 가까운 여정
二時粥飯支身計   두 끼의 죽반 공양은 몸을 부지할 계책이고
五夜香燈祝國誠   오야의 향등 공양은 나라 축원하는 정성이라.
錫鉢隨緣無繫着   석장과 의발은 인연에 따를 뿐 얽매이는 곳 없고
講經說論度平生   경문을 강하고 논서를 풀이하며 평생을 지내리라.

[2]
自憐多蹇未成安   고집 많아 평안하지 못했음 홀로 안타까워하노니
到處無端幾受訕   가는 곳마다 무단히도 헐뜯는 이 많았어라.
飽閱人情頭已白   사람의 정 두루 겪노라니 머리는 이미 백발이고
薄嘗世味齒猶酸   세상의 맛 맛본 것 적은데 이는 외려 시리구나.
一鉢不宜留閙地   발우 하나로 시끄러운 땅에 머무름 마땅찮고
三衣可合入深山   세 벌 옷29)으로 깊은 산 들어감이 합당하지.
觀時進退榮身策   때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남이 이 몸 보신하는 대책이니
何事躊躇費暑寒   무슨 일로 주저하느라 더위와 추위를 허비하나?

[3]
捲却蒲團蹔出林   포단蒲團을 말아 챙기고 잠시 산림을 벗어나니
數行金偈引聲吟   몇 행의 금게金偈를 길게 늘여 읊노라.
森森松栢依山壁   빽빽이 들어찬 솔과 잣나무는 산 절벽에 의연하고
黭黭烟霞徧野心   어둑어둑한 연하煙霞는 들 한복판까지 펼쳐 있네.
洛法將衰誰繼跡   낙암洛岩의 법이 장차 쇠하려는데 누가 자취 이으며
泉文已去亦無音   청천靑泉의 문장 사라지니 또한 알아주는 이 없네.
臨溪照影尤怊悵   시냇가에 그림자 비출 때 마음 더욱 아려오나니
髩欲成霜黑半尋   귀밑머리에 서리 내려 검은 터럭 반밖에 못 찾겠구나.
청천과 낙암은 도를 교류한 바 있는데 모두 돌아가셨다. 靑泉洛岩有交道。 皆已逝。

[4]
一自悲懽榮辱分   슬픔과 기쁨, 영광과 욕됨이 한 번 갈라진 이후로
昆明幾變劫灰紛   곤명昆明이 몇 번이나 겁회劫灰로 흩어졌던가?30)
夜長默記傳更皷   긴긴 밤 묵언하며 외니 시간 알리는 북소리 들리고
日暮靜觀歸峀雲    날 저물 무렵 고요히 관하니 구름은 산굴로 돌아오네.
案上說經擾虎屬   법상 위 경전 강설하여 호랑이 무리 흔들어 놓고
鉢中除食施烏羣   발우 음식 조금 덜어 까마귀 무리에게 보시한다.
是非聲到風過耳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리면 바람결에 보낼 뿐
閒把淸香獸口焚   한가로이 맑은 향 집어 수구獸口 향로에 사르노라.
유거幽居
幽居自得春眠足   그윽이 머무는 중 봄잠을 푹 자다가
忽爾覺來興滿腔   홀연 깨어 보니 미친 흥이 창자 가득.
山上捲舒雲片片   산 위 뭉쳤다 흩어지는 구름은 조각조각
林間出沒鳥雙雙   숲 사이 들락날락하는 새는 쌍쌍이라.
金文遮眼31)心無襍   금문金文으로 눈을 가리니 마음 번잡하지 않고
勝友隨身語不哤   좋은 벗(勝友)32) 주변에 따르니 말들도 속되지 않네.
負笈選師行已畢   책 짐 지고 스승 찾는 행각을 다 마치고
晩風小雨臥松牎   저녁 바람 소슬비에 송창에 누웠노라.
졸직拙直
拙直踈慵但得閒   못나고 게으른 이 몸 다만 한가한 신세로세.
曉牕殘月睡恒闌   새벽 창가 지는 달은 새벽잠을 항상 막네.
春南秋北年年客   봄엔 남에서, 가을엔 북에서 해마다 손님이고
葉脫花開處處山   낙엽 지고 꽃이 피어 곳곳이 다 산이네.

009_0722_c_01L負笈尋師南北客踰山越海短長程

009_0722_c_02L二時粥飯支身計五夜香燈祝國誠

009_0722_c_03L錫鉢隨緣無繫着講經說論度平生(一)

009_0722_c_04L自憐多蹇未成安到處無端幾受訕

009_0722_c_05L飽閱人情頭已白薄嘗世味齒猶酸

009_0722_c_06L一鉢不宜留閙地三衣可合入深山

009_0722_c_07L觀時進退榮身策何事躊躇費暑寒(二)

009_0722_c_08L捲却蒲團蹔出林數行金偈引聲吟

009_0722_c_09L森森松栢依山壁黭黭烟霞徧野心

009_0722_c_10L洛法將衰誰繼跡泉文已去亦無音

009_0722_c_11L臨溪照影尤怊悵髩欲成霜黑半尋


009_0722_c_12L洛岩有交
道皆已逝
(三)

009_0722_c_13L一自悲懽榮辱分昆明幾變劫灰紛

009_0722_c_14L夜長默記傳更皷日暮靜觀歸峀雲

009_0722_c_15L案上說經擾虎屬鉢中除食施烏羣

009_0722_c_16L是非聲到風過耳閒把淸香獸口焚(四)

009_0722_c_17L幽居

009_0722_c_18L
幽居自得春眠足忽爾覺來興滿腔

009_0722_c_19L山上捲舒雲片片林間出沒鳥雙雙

009_0722_c_20L金文遮眼心無襍勝友隨身語不哤

009_0722_c_21L負笈選師行已畢晩風小雨臥松牎

009_0722_c_22L拙直

009_0722_c_23L
拙直踈慵但得閒曉牕殘月睡恒闌

009_0722_c_24L春南秋北年年客葉脫花開處處山

009_0723_a_01L古徑雲深潭影黑   옛길엔 구름 자욱하니 못 그림자 어둑하고
空堦苔濕露痕斑   텅 빈 섬돌엔 이끼 눅눅하니 얼룩 흔적 드러나네.
旣無與世交通信   이미 세상 사람들과 사귀고 소식 전함 끊었으니
豈有垂憐問暑寒   어찌 애달픈 마음 써서 시절 안부 물어보랴.
운명運命
運命由來係在天   사람의 운명은 원래 하늘에 매인 것이니
多年養拙白雲巓   오랜 세월 졸박한 성품 기른 곳 백운봉(白雲巓)이라.
門無俗客瓶無粟   문지방엔 속객 발길 닿지 않고 병에는 쌀 없으니
飢有松花困有眠   배고프면 송홧가루요 피곤하면 잠을 잘 뿐.
熱逼不曾停惡木   더위에 숨 막혀도 악목惡木33) 그늘에 쉬지 않았으니
渴來寧許歃貪泉   갈증이 옥조인다고 어찌 탐천貪泉34)의 물 마셨으리.
傍人莫笑吾淸素   사람들아, 나의 청빈하고 소박한 삶 비웃지 마라.
鳬短鶴長誰使然   오리다리 짧고 학 다리 긴 것을 그 누가 시킨 것이냐?
등고登高
一錫登高屬暮秋   석장 짚고 산에 오르니 늦은 가을 풍경일세.
仰觀俯察景難收   우러러보고 굽어 살펴도 눈에 다 담기 어려워라.
長風落葉萎苔壑   긴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은 이끼 낀 골짜기에 스러지고
細雨殘雲鎻石樓   가랑비에 흩어진 구름은 돌 누각을 가리는구나.
地盡東南臨碧海   땅은 동남으로 가없이 펼쳐져 푸른 바다에 임하였고
天連西北壓丹丘   하늘은 서북으로 이어져 단구丹丘35)를 누르누나.
廻程欲作詩留蹟   돌아오는 길에 시를 지어 자취를 남기려 하니
日短鴉啼情更幽   해는 짧고 갈까마귀 우짖으니 마음 더욱 그윽해지네.
연지회蓮池會
人多昧却本來人   세상 사람 대부분 본래의 참 사람(本來人) 망각하여
浪死虛生結業因   허망한 죽음 헛된 삶으로 업의 씨앗(業因)을 맺는구나.
頭上幾經公道雪   머리에는 진리의 눈서리 몇 번이나 내렸는가.
口中頻喫衆生身   입으로는 중생의 육신을 자주자주 씹어대네.
迷心數墨36)元非實   미욱한 마음으로 글자만 세니 본래 실상 아니요
守默和眠也不眞   묵언 지킨다고 잠에 취함 또한 참된 것 아니로다.
一宿蓮池成一夢   연지蓮池에서 하룻밤 자며 꿈 하나 꾸었나니
七重行樹四時春   칠중항수七重行樹 늘어선 그곳 사계절이 봄이로세.
회당비탑영晦堂碑塔影
晦公碑塔屹仙岑   회 공晦公의 비탑碑塔이 선잠仙岑에 우뚝 솟아 있는데
四面種松已過尋   동서남북 심은 솔이 벌써 한 길(尋)이 넘는구나.
瑞靄祥烟凝谷口   상서로운 아지랑이 연기는 골짜기 초입에 엉기고
潔霜淸露降天心   청결한 서리 이슬 하늘 한복판에서 내리누나.
深藏靈骨經多劫   깊숙이 비장한 영골靈骨은 다겁의 세월 지내왔고
厚刻神文閱衆吟   깊이 새긴 신문神文은 여러 대중이 읽고 읊네.
當日靑猿何處去   그날의 푸른 잔나비 어느 곳으로 떠나갔는가?
影前香火到于今   그림자 앞 향불만이 지금까지 전해지네.
벽허실 화엄대회에 참가하다갑인년(1734) 하안거(叅碧虛室華嚴大會甲寅夏安居)
華嚴法界一留心   화엄 법계에 이 한마음 머무르니
世上情緣忘不記   세상의 정과 인연은 잊고서 기억치 않네.

009_0723_a_01L古徑雲深潭影黑空堦苔濕露痕斑

009_0723_a_02L旣無與世交通信豈有垂憐問暑寒

009_0723_a_03L運命

009_0723_a_04L
運命由來係在天多年養拙白雲巓

009_0723_a_05L門無俗客瓶無粟飢有松花困有眠

009_0723_a_06L熱逼不曾停惡木渴來寧許歃貪泉

009_0723_a_07L傍人莫笑吾淸素鳬短鶴長誰使然

009_0723_a_08L登高

009_0723_a_09L
一錫登高屬暮秋仰觀俯察景難收
009_0723_a_10L長風落葉萎苔壑細雨殘雲鎻石樓

009_0723_a_11L地盡東南臨碧海天連西北壓丹丘

009_0723_a_12L廻程欲作詩留蹟日短鴉啼情更幽

009_0723_a_13L蓮池會

009_0723_a_14L
人多昧却本來人浪死虛生結業因

009_0723_a_15L頭上幾經公道雪口中頻喫衆生身

009_0723_a_16L迷心數墨元非實守默和眠也不眞

009_0723_a_17L一宿蓮池成一夢七重行樹四時春

009_0723_a_18L晦堂碑塔影

009_0723_a_19L
晦公碑塔屹仙岑四面種松已過尋

009_0723_a_20L瑞靄祥烟凝谷口潔霜淸露降天心

009_0723_a_21L深藏靈骨經多劫厚刻神文閱衆吟

009_0723_a_22L當日靑猿何處去影前香火到于今

009_0723_a_23L叅碧虛室華嚴大會甲寅夏
安居

009_0723_a_24L
華嚴法界一留心世上情緣忘不記

009_0723_b_01L想應八部呵禁中   생각거니 팔부八部 신중神衆이 꾸짖고 금하는 소리에
敢有波旬來作戱   어찌 감히 파순波旬이 들어와 장난치리오.
회포를 적다(寫懷)
半世行裝錫又瓶   반평생의 행장에 지팡이와 물병이요
脚頭到處是岩扄   발길 닿는 곳은 바위 문이로다.
山中幸有山人友   산속에 다행히 산사람의 벗 있나니
雪裡孤松不變靑   눈발 속의 외로운 소나무 푸르름 변치 않네.
늦봄에 느낌 있어(晩春有感)
春風三月雨初晴   삼월의 봄바람에 비 갓 개이자
山被靑衣水放聲   온 산이 푸른 옷이요 시냇물 소리 졸졸졸
物却少兮人自老   만물은 젊어지는데 사람은 절로 늙어 가니
傳來鈯斧遇誰呈   전해 온 무딘 도끼를 누구에게 드릴꼬.
빗속에서 대화하다(雨中會話)
隱隱雷聲和雨鳴   은은한 천둥소리는 비와 어울려 울리고
游雲明滅濕踈楹   두둥실 구름은 밀려왔다 사라졌다 성긴 마루 적시네.
名儒韻釋開談笑   이름난 선비와 시 짓는 스님네들 담소를 풀어 놓으니
半是新情半舊情   반은 새 정이요 반은 옛정이네.
현 법려에게(與賢法侶)
天地由來一旅亭   천지는 원래 하나의 나그네 머무는 여관37)이라.
幾人於此蹔留形   몇 사람이나 이곳에서 잠시 형체를 머물렀는가?
百年光景駒過隙38)   백 년의 광경은 문틈으로 지나가는 망아지라.
殺却睡魔好讀經   수마睡魔를 물리치고 독경讀經을 좋아할지니.
무진 중구일에 대견사 옛 절터에 올라(戊辰重九登大見寺古址)
[1]
登登步步日將西   한 걸음 또 한 걸음 오르는 길,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十里秋山細路迷   십 리 풍광 가을 산에 오솔길은 아스라해.
羅代靈基停一錫   신라 옛 절 영험한 절터에 잠시 지팡이 머무르니
風淸雲散石高低   맑은 바람에 구름 흩어지고 돌길은 울퉁불퉁.

[2]
斜陽玩了照華峰   석양에 화봉華峰 비추는 햇살 구경하고
歸路猶憐石上松   돌아오는 길가 반석 위의 저 소나무 외려 어여뻐.
寄語山靈須念我   산신령님께 부탁드리나니 모름지기 절 생각하여
明年此日更乘風   일 년 후 오늘 다시 바람 타고 올랐으면.

[3]
掬溪漱口神猶爽   시냇물 한 움큼 떠 이 닦으니 정신 외려 맑아지고
摘栢療飢氣亦便   잣을 따 고픈 배 채우니 기운 다시 편안타.
世上無如知足好   이 세상에 자족함을 알고 즐기는 것 제일이니
豈將名利度餘年   어찌 명예 이익으로 남은 생애 보내리오.

[4]
四五結朋作一遊   네댓 명 친구 삼아 한번 유람하고 나니
秋山風景句中收   가을 산 멋진 풍경 시구 안에 담겨 있네.
雲盈袖裡苔盈襪   구름은 소매 속 가득하고 이끼는 버선에 가득한데
廻到方知脚不休   돌아와서 비로소 다리 쉬지 않은 것 알아챘네.
우연히 읊다(偶吟)
[1]
終日看經不雜心   온종일 간경看經하여 마음 산란하지 않으니
心如明鏡絕昏沉   그 마음 맑은 거울 같아 혼침昏沉을 끊었다네.

009_0723_b_01L想應八部呵禁中敢有波旬來作戱

009_0723_b_02L寫懷

009_0723_b_03L
半世行裝錫又瓶脚頭到處是岩扄

009_0723_b_04L山中幸有山人友雪裡孤松不變靑

009_0723_b_05L晩春有感

009_0723_b_06L
春風三月雨初晴山被靑衣水放聲

009_0723_b_07L物却少兮人自老傳來鈯斧遇誰呈

009_0723_b_08L雨中會話

009_0723_b_09L
隱隱雷聲和雨鳴游雲明滅濕踈楹

009_0723_b_10L名儒韻釋開談笑半是新情半舊情

009_0723_b_11L與賢法侶

009_0723_b_12L
天地由來一旅亭幾人於此蹔留形

009_0723_b_13L百年光景駒過隙殺却睡魔好讀經

009_0723_b_14L戊辰重九登大見寺古址

009_0723_b_15L
登登步步日將西十里秋山細路迷

009_0723_b_16L羅代靈基停一錫風淸雲散石高低(一)

009_0723_b_17L斜陽玩了照華峰歸路猶憐石上松

009_0723_b_18L寄語山靈須念我明年此日更乘風(二)

009_0723_b_19L掬溪漱口神猶爽摘栢療飢氣亦便

009_0723_b_20L世上無如知足好豈將名利度餘年(三)

009_0723_b_21L四五結朋作一遊秋山風景句中收

009_0723_b_22L雲盈袖裡苔盈襪廻到方知脚不休(四)

009_0723_b_23L偶吟

009_0723_b_24L
終日看經不雜心心如明鏡絕昏沉

009_0723_c_01L笑他役役營營者   우스워라. 이일 저일 허덕이는 다른 사람들
未達其空髩雪深   그 사업 공空함을 깨닫지 못하고 귀밑털만 눈처럼 깊어지네.

[2]
葉盡秋山人未還   낙엽 다 진 가을 산,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夜深小屋石床寒   깊은 밤 작은 절집엔 석상石床만 차갑구나.
何當解唱無生曲   어찌하여 무생곡無生曲을 노래 부를 일 있겠소?
一與同心樂且閑   한 가지로 이심전심, 즐겁고도 한가로운데.

[3]
世道日衰人漸慵   세도世道는 나날이 쇠미해지고 사람은 점점 게을러지니
可宜不出一枝笻   지팡이 하나로 산문을 나서지 않음이 옳으리.
多情政是前溪月   다정한 것은 아마도 앞 시내에 비친 둥근 달
最愛寧非後嶺松   제일 아끼는 것은 바로 뒷동산의 소나무.
경신년(1740) 병중에2수(庚申年病中二首)
[1]
病卧一年頭亦白   병치레로 누워 지내기 일 년이라. 머리는 백발인데
自羞於學未專工   스스로 부끄럽기는 배움에 전념하지 못한 거라.
徃時萬卷筌蹄業   지난날 읽은 만 권의 책은 전제筌蹄39) 같은 업業일 뿐
入海籌沙不見終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세듯 끝을 보지 못하리라.

[2]
平生學力今安在   평생 노력 배운 실력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一病支離尙未除   일신의 병 지리한데 오히려 벗어나지 못하였네.
願獲觀音甘露水   아, 관음보살의 감로수 얻어서
令斯辛苦頓消除   일신의 괴로움을 몰록 없애 버렸으면.
을미년(1775) 가을 유람2수(乙未秋遊二首)
[1]
久蟄庵中苦念纒   암자에 오래 파묻혀 지내니 괴로운 상념에 얽매여
秋風出坐小溪邊   가을바람에 박차고 나와 작은 시냇가 앉았어라.
明霞數片和松喫   밝은 이내 몇 조각을 솔과 함께 마시다가
始覺仙程在我前   비로소 신선 길이 내 앞에 펼쳐진 걸 알아 버렸네.

[2]
衰老已深百病纒   어느덧 늙고 쇠약해져 온갖 병 얽어매니
時時念徃遠遊邊   가끔씩 옛적에 멀리 유람 갔던 곳 그리워져
强携道伴登秋嶽   억지로 도반들 손 이끌어 가을 산 오르니
無限白雲繞膝前   가없이 펼쳐진 흰 구름이 무릎 아래 감싸 두르는구나.
만음장두체(漫吟藏頭)
言思都寂坐禪床   언어와 사량을 다 잠재우고 선상禪床에 앉으니
木葉春回萬卉香   여린 나뭇잎에 봄이 돌아와 온갖 향초 자욱하다.
日食寒松看一句   매일같이 찬 송홧가루 먹으며 일구一句를 간看하면서
口無黑白外無謗   입으로는 검다 희다 분별하지 않고 바깥 일 헐뜯지 않네.
대나무를 읊다회문체(咏竹回文)
靑靑翠竹冷空心   푸르디푸른 저 대나무여 차가운 기운으로 마음 비우니
色一恒來亘節深   색깔은 한결같이 푸르고 항상 절개 깊구나.
星月改添霜上雪   달과 별이 바뀌어 비추고 눈에 서리 내리는데
庭前滿影密陰森   뜨락 앞 가득한 그림자는 울창한 나무숲 그늘이네.
상 법려에게 주다양관40)(與祥法侶陽關)
瑟山楓葉錦爭光   비슬산 단풍잎은 금수 비단과 빛을 다투는데
梵宇寥寥水滿塘   범우는 텅 비어 쓸쓸하고 못에는 물만 가득
送君一出石橋畔   그대 보내려 한 번 돌다리 가로 나서는데
無語深情猶倍傷   말없는 가운데 깊은 정이 외려 슬픔 깊게 하네.

009_0723_c_01L笑他役役營營者未達其空髩雪深(一)

009_0723_c_02L葉盡秋山人未還夜深小屋石床寒

009_0723_c_03L何當解唱無生曲一與同心樂且閑(二)

009_0723_c_04L世道日衰人漸慵可宜不出一枝笻

009_0723_c_05L多情政是前溪月最愛寧非後嶺松(三)

009_0723_c_06L庚申年病中二首

009_0723_c_07L
病卧一年頭亦白自羞於學未專工

009_0723_c_08L徃時萬卷筌蹁業入海籌沙不見終(一)

009_0723_c_09L平生學力今安在一病支離尙未除
009_0723_c_10L願獲觀音甘露水令斯辛苦頓消除(二)

009_0723_c_11L乙未秋遊二首

009_0723_c_12L
久蟄庵中苦念纒秋風出坐小溪邊

009_0723_c_13L明霞數片和松喫始覺仙程在我前(一)

009_0723_c_14L衰老已深百病纒時時念徃遠遊邊

009_0723_c_15L强携道伴登秋嶽無限白雲繞膝前(二)

009_0723_c_16L漫吟藏頭

009_0723_c_17L
言思都寂坐禪床木葉春回萬卉香

009_0723_c_18L日食寒松看一句口無黑白外無謗

009_0723_c_19L咏竹回文

009_0723_c_20L
靑靑翠竹冷空心色一恒來亘節深

009_0723_c_21L星月改添霜上雪庭前滿影密陰森

009_0723_c_22L與祥法侶陽關

009_0723_c_23L
瑟山楓葉錦爭光梵宇寥寥水滿塘

009_0723_c_24L送君一出石橋畔無語深情猶倍傷

009_0724_a_01L
일 법려에게 주다옛 시의 가락(賽日法侶古調)
秋風凉木葉黃    가을바람 서늘타. 나뭇잎은 노랗다.
雲片片天蒼蒼    구름은 조각구름. 하늘은 푸르기만.
我獨坐思君面    홀로 앉아서 그대 얼굴 떠올릴 때에
君忽來求我詩    그대 홀연 내방하여 내 시를 구하누나.
因閒成懶放鈆槧   한가롭다 게을러져 글짓기에(鉛槧) 손 놓았으니
願莫恠秋山裏    부디 가을 산 백운 중에
白雲中乏新辭    참신한 구절 없다 흉보지 마소.
원곡 법려에게(與源谷法侶)
水有源       물에는 샘이 있고
山有谷       산에는 골이 있네.
人蹋山水間     사람들 산수 간에 발걸음 옮기는데
誰唱仁智曲     그 누가 인지곡仁智曲41)을 부를 것인가?
君須聽我亡味語   그대는 모름지기 나의 맛없는 말 새겨들어
一心動靜恒如玉   한마음은 동정動靜 간에 항상 옥과 같았으면.
회포를 적다(述懷)
棲靑嶂       푸른 산에 머물고
臥白雲       흰 구름에 눕는다.
架有經千卷     서가에는 경이 천 권인데,
肩無衲七斤     어깨에는 일곱 근 가사42) 없네.
旁人莫恠斯淡薄   사람들아, 이러한 삶 담박하다 웃지 마라.
物外生涯本不羣   물외物外의 생애가 본래 비교할 바 없나니.
이상 두 수는 3언ㆍ5언ㆍ7언이다. 右二首三五七言。
지나는 길손의 시에 화답하다(和過客韻)
鴻濛才判立陰陽   홍몽鴻濛43)이 나뉘자마자 음양이 구분되었고
鳬鶴元來禀短長   오리와 학은 원래부터 길고 짧음 타고났다.
儒釋雖云分二道   유학과 불교가 비록 서로 다른 도로 나뉜다 하나
性情初出一明堂   성정性情은 애초에 하나의 마음(明堂)에서 나온 거라오.
상춘賞春
翠栢靑松裡     푸른 잣나무 소나무 우거진 숲 속
䳌花笑面新     두견화 웃으니 그 얼굴 새로운데
峰頭如未上     산꼭대기 오르지 못한다면
虛負一年春     한 해의 봄을 허망하게 보냈다 하리.
탄국嘆菊
藂菊庭前發     국화꽃이 떨기 지어 앞마당에 피었는데
香醇氣亦閒     향기 농밀하고 기상 또한 한적하더니
可憐秋氣暮     안타깝다. 가을의 저녁 기운에
艶質已衰顏     어여쁜 자질이 어느덧 쇠한 얼굴 되었다네.
화양 수석華陽水石

009_0724_a_01L賽日法侶古調

009_0724_a_02L
秋風凉木葉黃雲片片天蒼蒼

009_0724_a_03L我獨坐思君面君忽來求我詩

009_0724_a_04L因閒成懶放鈆槧願莫恠秋山裏

009_0724_a_05L白雲中乏新辭

009_0724_a_06L與源谷法侶

009_0724_a_07L
水有源山有谷

009_0724_a_08L人蹋山水間誰唱仁智曲

009_0724_a_09L君須聽我亡味語一心動靜恒如玉

009_0724_a_10L述懷

009_0724_a_11L
棲靑嶂臥白雲

009_0724_a_12L架有經千卷肩無衲七斤

009_0724_a_13L旁人莫恠斯淡薄物外生涯本不羣

009_0724_a_14L首三五
七言

009_0724_a_15L和過客韻

009_0724_a_16L
鴻濛才判立陰陽鳬鶴元來禀短長

009_0724_a_17L儒釋雖云分二道性情初出一明堂

009_0724_a_18L賞春

009_0724_a_19L
翠栢靑松裡䳌花笑面新

009_0724_a_20L峰頭如未上虛負一年春

009_0724_a_21L嘆菊

009_0724_a_22L
藂菊庭前發香醇氣亦閒

009_0724_a_23L可憐秋氣暮艶質已衰顏

009_0724_a_24L華陽水石

009_0724_b_01L
華陽泉石好     화양 계곡 시내 바위 좋단 말 듣고
南客北來遊     남쪽 손님 북에 와서 노닐었다오.
磎水洗人意     시냇물은 사람 마음 씻어 내리고
却慚晩路遊     늦게야 유람하니 부끄럽다오.
가야산 고운의 물음에 답하다(答伽倻山孤雲問)
偶逢遊士語     우연히 만난 유람하던 선비
詩句唾成珠     뱉어낸 시 구절 구슬이 되었네.
莫問孤雲在     고운 선생 어디 있나 묻지는 마소.
雲深去路無     구름 깊어 떠난 길 찾기 어렵소.
기미년(1739) 봄 하遐ㆍ식湜 두 벗과 화개동에서 노닐다(己未春與遐湜兩友玩花開洞)
一淸溪水岸     한 줄기 흐르는 맑은 시내 언덕에서
三白衲衣飄     백납白衲 입은 세 스님네 옷깃을 나부끼다.
共話無生理     도란도란 무생無生의 이치 나누다가
却忘道路遼     아이쿠나, 갈 길 먼 것도 잊어버렸네.
옛 성에서 묵으며(宿古城)
白日依西嶺     한낮에 서쪽 고개에 기대어 보니
靑烟滿古城     푸른 안개가 옛 성에 자욱하구나.
忽逢讀書客     이때 마침 글 읽는 나그네 있어
呼我問僧名     날 불러 법명法名을 물어보는군.
마을을 나서며(出洞)
春風一出洞     봄바람에 마을을 나서서 보니
花似有懽情     꽃들도 반기는 정 있는 듯하이.
引友臨溪上     벗을 불러 시냇가에 다다랐는데
水淸談亦淸     시냇물 맑은데 담소 또한 맑았어라.
영대사靈臺社
途中爲雨急     길 가던 중 갑자기 비를 맞아서
憇錫此松門     지팡이를 이 송문松門에 멈추게 했네.
雲去山呈色     구름 떠나자 산은 제 색깔 드러내고
風來葉放言     바람 불자 잎들이 우수수 말을 쏟아내누나.
耽閑身已懶     한가로움 즐기다 보니 몸은 이미 게으른데
守默道彌尊     묵언을 지키니 도는 더욱 높아지네.
隱隱鍾聲裡     종소리 은은하게 들리는 가운데
澗琴亦爽魂     시냇물은 거문고 소리 정신을 맑게 하네.
만음漫吟
積歲奔南北     오랜 세월 남북으로 분주하여서
隨緣數徃還     인연 따라 가고 오기 자주하였네.
春堦花似錦     봄 섬돌에 피는 꽃은 비단결 같고
秋廡月如彎     가을 절집 뜬 달은 당긴 활 같네.
風景無今古     풍경은 예나 지금 다름없는데
人根有黠頑     사람의 근기는 영리하고 무딘 차이 있네.
明霞嫌冷吸     밝은 노을에 차가운 공기 마심이 싫고
翠栢怯高攀     푸른 잣 따러 높이 오르는 것 겁을 내네.

009_0724_b_01L
華陽泉石好南客北來遊

009_0724_b_02L磎水洗人意却慚晩路遊

009_0724_b_03L答伽倻山孤雲問

009_0724_b_04L
偶逢遊士語詩句唾成珠

009_0724_b_05L莫問孤雲在雲深去路無

009_0724_b_06L己未春與遐湜兩友玩花開洞

009_0724_b_07L
一淸溪水岸三白衲衣飄

009_0724_b_08L共話無生理却忘道路遼

009_0724_b_09L宿古城

009_0724_b_10L
白日依西嶺靑烟滿古城

009_0724_b_11L忽逢讀書客呼我問僧名

009_0724_b_12L出洞

009_0724_b_13L
春風一出洞花似有懽情

009_0724_b_14L引友臨溪上水淸談亦淸

009_0724_b_15L靈臺社

009_0724_b_16L
途中爲雨急憇錫此松門

009_0724_b_17L雲去山呈色風來葉放言

009_0724_b_18L耽閑身已懶守默道彌尊

009_0724_b_19L隱隱鍾聲裡澗琴亦爽魂

009_0724_b_20L漫吟

009_0724_b_21L
積歲奔南北隨緣數徃還

009_0724_b_22L春堦花似錦秋廡月如彎

009_0724_b_23L風景無今古人根有黠頑

009_0724_b_24L明霞嫌冷吸翠栢怯高攀

009_0724_c_01L氷膾徒新狀     얼음 횟감은 다만 새로운 모습인데
鉛刀但好顏     무른 칼44)은 다만 색깔만 좋아라.
昕勤晡却怠     아침에는 근면하고 저녁에는 다시 게을러지니
前敬後猶姦     앞에서는 공경하고 뒤에서는 오히려 간사하네.
竊法謀身劇     법을 훔쳐 일신을 도모함이 극심하고
知恩報德慳     은혜를 알고 은덕을 갚음엔 인색하도다.
況吾乏善巧     하물며 우리네 좋은 계교 부족하니
寧欲坐深山     차라리 깊은 산에 머무르고파.
使鵲巢肩上     내 어깨 위에 까치 집 짓게 하고
引蛛網膝間     무릎 사이에 거미 줄 당기게 하리.
可憐空老大     안타까워라. 하릴없이 노대老大하여서
雙髩二毛斑     양 볼에 귀밑털만 얼룩졌구려.
또 한 수(又)
不遇知音客     마음 알아주는 이 만나지 못해
臨絃涙自澘     거문고 줄 앞에 놓고 절로 눈물만 주르륵.
春山雲氣重     춘산春山에 구름 기운 무겁고
秋水月光寒     추수秋水에 달빛이 차가워라.
千里雖然在     천 리는 비록 그렇게 있는데
九方尙未還     구방九方은 아직 돌아보지 못했네.
平生無限意     평생 가진 무한한 뜻을
今日吐心肝     오늘에야 마음속 깊이 토로하네.
또 한 수(又)
又作移棲人     또 한번 옮겨 사는 나그네 되어
依然過一春     의연히 이 한 봄 지내왔다네.
心恒在黃卷     마음은 항상 황권黃卷에 두고 살며
夢不到紅塵     꿈에서도 홍진紅塵 세상에 나아가지 않았네.
順命齊榮悴     천명에 순응하여 영화와 쇠락을 같게 여기고
隨緣等旨辛     인연에 따르며 달콤함과 매운맛 같이 여기네.
髩邊雪盈尺     귀밑털은 흰 눈이 한 자 넘게 쌓였는데
修道恐迷津     도를 닦음에 어지러운 나루터 머물까 두려워라.
칠성전七星殿
露濕鴛鴦瓦     이슬 젖어 촉촉한 원앙 기와
月斜螮蝀樑     달이 비껴 비치는 무지개 들보.
七君嚴列像     칠성군이 엄숙히 자리 잡은 형상이여
一室凛生光     한 방 가득 늠름한 생기 있는 빛이여.
瞻禮空無物     우러러 예경할 때 빈손으로 예물 없이
誠心但爇香     정성스런 마음으로 다만 향불 사르네.
願回天上蔭     바라건대 천상의 음우陰佑 돌리시어
使國壽而康     나라님 만수무강하게 하소서.
혜 법려에게(與慧法侶)
黯黯山中有遠溪   어둑어둑한 산중에 먼 시내(遠溪)가 있어
霱雲明滅瑞禽啼   상서로운 구름 왔다 가고 상서로운 새들 노래하네.
漁舟不到輿韁斷   고기잡이배가 이르지 않고 수레와 고삐 단절된 곳
道者幽居捨此奚   은거하는 수도자들 여기 두고 어디 가리.

009_0724_c_01L氷膾徒新狀鉛刀但好顏

009_0724_c_02L昕勤晡却怠前敬後猶姦

009_0724_c_03L竊法謀身劇知恩報德慳

009_0724_c_04L況吾乏善巧寧欲坐深山

009_0724_c_05L使鵲巢肩上引蛛網膝間

009_0724_c_06L可憐空老大雙髩二毛斑

009_0724_c_07L

009_0724_c_08L
不遇知音客臨絃涙自潜

009_0724_c_09L春山雲氣重秋水月光寒

009_0724_c_10L千里雖然在九方尙未還

009_0724_c_11L平生無限意今日吐心肝

009_0724_c_12L

009_0724_c_13L
又作移棲人依然過一春

009_0724_c_14L心恒在黃卷夢不到紅塵

009_0724_c_15L順命齊榮悴隨緣等旨辛

009_0724_c_16L髩邊雪盈尺修道恐迷津

009_0724_c_17L七星殿

009_0724_c_18L
露濕鴛鴦瓦月斜螮蝀樑

009_0724_c_19L七君嚴列像一室凛生光

009_0724_c_20L瞻禮空無物誠心但爇香

009_0724_c_21L願回天上蔭使國壽而康

009_0724_c_22L與慧法侶

009_0724_c_23L
黯黯山中有遠溪霱雲明滅瑞禽啼

009_0724_c_24L漁舟不到輿韁斷道者幽居捨此奚

009_0725_a_01L정해년(1767) 가을 법려法侶인 혜 공慧公이 조각 기와로 지붕을 덮었다. 나는 ‘원계遠谿’ 두 자로 호를 삼아 주면서 은연중 권면하는 뜻을 담았다. 丁亥秋法侶慧公。 片瓦盖頭。 余以遠谿二字爲號。 隱然有勸勉之意爾。
설간 초사에게(贈雪磵初師)
多年相從      여러 해 서로 따르며 지내니
情意日篤      정의情意는 날마다 돈독해졌소.
吾今已老      나는 지금 이미 늙어서
實爲孤寂      진실로 외롭고 적막하오.
異日願師須立身   다른 날 그대는 반드시 입신하여
爲我須起無縫塔   나를 위해 반드시 무봉탑을 세워 주오.
나는 매우 가난하고 물려줄 재물도 없다. 이 멋없는 장단구를 구름에 써서 훗날의 자취로 삼고자 한다. 吾甚貧物無贈。 以此無味長短語。 書以一雲爲後跡。 [1]

009_0725_a_01L
丁亥秋法侶慧公片瓦盖頭
009_0725_a_02L以遠谿二字爲號隱然有勸勉之
009_0725_a_03L意爾

009_0725_a_04L贈雪磵初師

009_0725_a_05L
多年相從情意日篤

009_0725_a_06L吾今已老實爲孤寂

009_0725_a_07L異日願師須立身爲我須起無縫塔

009_0725_a_08L吾甚貧物無贈以此無味長短語

009_0725_a_09L書以一雲爲後跡

009_0725_a_10L
好隱集卷之三

009_0725_b_01L
  1. 1)용천사湧泉寺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에 있는 절. 비슬산 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용천사의 연혁에 관해서는 『淸道郡角北面湧泉寺事蹟』(1927)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의상 대사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670년(문무왕 10)에 전국에 화엄십찰華嚴十刹을 창건하였는데, 용천사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으며, 당시의 이름은 옥천사玉泉寺였다고 한다. 창건 당시 의상 대사가 『화엄경』을 새긴 상아象牙, 곧 「象簡」 8매로 불법을 전하였는데, 나중에 그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려 목판으로 보충하였다고 한다. 또한 삼국시대에 관기觀機ㆍ도성道成ㆍ반사搬師ㆍ창사瘡師ㆍ도의道義ㆍ자양子陽ㆍ성범成梵ㆍ여백女白ㆍ우사牛師 등 이른바 구성九聖이 이곳에 머물렀었다고 한다. 고려에서는 원종元宗 대(1260~1263)에 보각 국사 일연이 중수하면서 용천사라고 하였다가 다시 불일사佛日寺로 바꾸었다. 용천사는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당우가 소실되고 여러 성보를 약탈 당하는 등 사세가 몹시 기울었다가 1631년(인조 9) 조영祖英 스님 등이 중건하여 다시금 본래의 면목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2. 2)직어直語 : 화려한 수식이 없는 말. 진晉 갈홍葛洪의 『抱朴子』 「黃白」에서, “또 이 내편은 모두 직어일 따름이고 화려한 수식이 없다.(且此內篇。 皆直語耳。 無藻飾也。)”라고 하였고, 남조南朝 양梁 유협劉勰의 『文心雕龍』 「書記」에서, “상말(諺)은 직어이다. 조상弔喪하는 말 역시 문文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조문 역시 언諺이라 한다.(諺者。 直語也。 喪言亦不及文。 故弔亦稱諺。)” 하였다.
  3. 3)유가사瑜伽寺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양리 비슬산에 소재한 절. 달성 현풍 지역의 대표 사찰인 비슬산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신라 혜공왕 때인 765년~780년경에 창건되었다는 설과 신라 흥덕왕 때인 827년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다. 전성기에는 속한 암자가 99개, 3천여 명의 스님들이 수도한 도량이었을 만큼 사세가 매우 컸다고 한다.
  4. 4)우리나라에서 한문 문체의 하나로 상량문의 역사가 어느 때 시작되었는지 자세히 알려진 사실이 없는 가운데, 작자의 설명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 자료로 보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상량문 양식은 고려 말 조선 초에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고려 말 원과의 교류가 밀접할 당시에 중국 남방의 민요 율격을 모방한 상량문이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다.
  5. 5)공수公輸 :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나무를 잘 다루는 명장名匠으로, 이름은 반班이다. 『맹자』 「離婁」 상에, “공수자의 정교한 솜씨로도 규구를 쓰지 않으면 네모와 원을 완벽하게 그릴 수 없다.”라고 하였다.
  6. 6)『맹자』 「盡心章句」 하에서 맹자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가운데, 공자가 사이비似而非를 미워한다면서, “자주색을 미워함은 붉은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다.”라고 하였다.
  7. 7)승요僧繇 :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화공畫工 장승요張僧繇를 가리킨다. 양 무제梁武帝가 절을 꾸미려고 그에게 단청을 하게 하였는데, 네 마리 용 가운데 눈동자에 점을 찍은 두 마리는 곧바로 날아가 버렸고, 눈동자를 찍지 않은 두 마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화룡점정畫龍點睛의 고사가 전한다.
  8. 8)채색한 자취 :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한 뒤에 한다는 뜻으로, 공자가 좋은 바탕이 있어야 비로소 문식文飾을 가할 수 있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논어』 「八佾」.
  9. 9)적막適莫 : 인정의 친하고 멂, 후한 것과 박한 것을 가리킨다. 『論語』 「里仁」에서 공자는, “군자는 천하의 일에 있어서 오로지 주장함도 없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없어서 의를 따를 뿐이다.(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라 하였다.
  10. 10)서산西山 : 수양산首陽山의 별칭이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은殷나라 고죽군孤竹君의 아들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할 때에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서 만류했으나 듣지 않자, 주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서산, 즉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숨어 살다가 굶어 죽었다. 『史記』 권61 「伯夷列傳」.
  11. 11)숨기거나 드러나거나(於隱於顯) : 아버지와 임금에 대한 자식과 신하의 자세에는 차이가 있다. 아버지에게는 숨김이 있고 범하는 것이 없으며(有隱無犯), 임금에게는 숨기는 것이 없고 범하는 것이 있다(無隱有犯).
  12. 12)온 세상~수 있거늘 :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은, 처음에는 회왕懷王에게 신임을 받았으나 뒤에 동료의 시기와 참소로 인해 소외되자 「離騷經」을 지어 임금에게 충간忠諫하였으나 용납되지 않으므로 「漁父辭」 등 여러 편의 글을 지어 자신의 뜻을 밝히고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했다. 「어부사」에서, “온 세상이 다 흐리거늘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거늘 나 홀로 깨었는지라, 이 때문에 쫓겨나게 되었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라고 하였다.
  13. 13)겨울이 된~푸름을 알리라 : 『논어』 「子罕」에서, “추운 계절이 돌아온 뒤에야 송백松柏이 끝까지 푸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라고 하였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절조를 지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14. 14)지인至人이 있었으니 : 중국 선종의 오조 홍인弘忍(602~675)을 말한다. 대사는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 사람으로, 사조 도신道神을 만나 그 심인心印을 받았다. 671년에 육조 혜능慧能에게 법을 전하였고, 당唐 상원上元 2년에 74세로 입적하였다. 대종이 대만 선사大滿禪師라 시호하였고, 황매산 동산에 탑을 세웠다. 황매黃梅는 오조 홍인의 별호이고, 황매산은 호북성 기주에 있는 산 이름이다.
  15. 15)노 공盧公 : 중국 선종의 육조 혜능慧能(638~713). 속성이 노씨盧氏이다. 대사는 남해南海 신흥新興 사람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땔나무를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다가 어느 날 장터에서 『금강경』 읽는 것을 듣고 출가할 발심을 하였다.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당唐 함형咸亨 때(670~674) 소양韶陽으로 갔다가 무진장無盡藏 비구니가 『열반경』을 독송하는 것을 듣고 그 뜻을 요해하였으며, 뒤에 오조 홍인弘忍에게 찾아가서 선의 깊은 뜻을 전해 받았다. 676년 남방으로 가서 교화를 펴다가 조계산曹溪山에 들어가 대법大法을 선양하였다. 당 선천先天 2년 8월에 76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夜舂歌〉는 혜능이 오조 홍인을 찾아가서 법을 전수받고 남방으로 가서 교화를 펴다가 조계산에 들어가 대법을 선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6. 16)단경壇經 : 『六祖壇經』. 육조 혜능의 어록.
  17. 17)한 물건도~같다 하니 : 오조 홍인 선사弘忍禪師의 상좌 신수神秀가 “몸은 바로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떨고 닦아서 먼지가 일지 않게 해야 한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拂拭勤。 勿使惹塵埃。)”라고 게偈를 짓자, 혜능은 “보리는 본디 나무가 아니요, 명경은 또한 대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먼지가 어디에서 일어난단 말인가?(菩提本非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게를 지어 읊은 고사가 『육조단경』에 나온다.
  18. 18)다섯 분파의 선류禪流 : 선종의 오가五家. 즉 위앙종潙仰宗ㆍ임제종臨濟宗ㆍ조동종曹洞宗ㆍ운문종雲門宗ㆍ법안종法眼宗.
  19. 19)대야大冶 : 원래는 기술이 정묘하여 금속을 잘 제련하는 야금사冶金師를 가리킨다. 비유적으로 조물주, 큰 성인, 부처님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20. 20)항룡발우(降龍鉢) : 우루빈라가섭이 부처님을 질투해 독룡이 있는 사당에 묵게 하였는데, 그날 밤 독룡을 항복받은 부처님이 그 용을 발우에 담아 다음날 우루빈라가섭에게 보여 주었던 고사가 있다. 부처님의 밥그릇을 항룡발降龍鉢이라고 한다.
  21. 21)해호장解虎杖 : 북제北齊의 승조僧稠 선사는 석장으로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우는 것을 해결하고 갈라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續高僧傳』 권16 「僧稠傳」의 기록에 의하면, 승조가 회주懷州 서쪽 왕옥산王屋山에서 선정을 닦고 있을 때에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포효하는 소리가 바위를 진동하였다는데, 석장으로 그 중간을 갈랐더니 각각 흩어져 가 버렸다고 한다.
  22. 22)아첨牙籖과 금협錦篋 : 아첨은 상아로 만든 책의 표제를 적은 꼬리표, 상아로 만든 산가지. 수를 세거나 계산하는 것으로 주로 도박에 쓴다. 금협은 비단 상자이다.
  23. 23)십현十玄 : 십현연기十玄緣起, 또는 현문玄門이라고 한다. 십현연기 무애법문無礙法門이라고도 하며, 화엄종에서 세운 것이다. 현문은 현묘한 법문이란 뜻으로 불교를 뜻한다.
  24. 24)이미離微 : 법성의 본체가 모든 상을 떠나 적멸함이 리離이고, 법성의 용이 미묘 불가사의함이 미微이다.
  25. 25)보검(邪將) : 막야莫邪와 간장干將. 춘추 때 오왕吳王 합려闔閭가 주철장 간장을 시켜 칼을 주조하게 하였는데, 쇳물이 내리지 않자 아내 막야가 용광로에 투신하니 쇳물이 내려 칼 두 자루를 만들었다고 한다. 웅검雄劍을 간장, 자검雌劍을 막야라 하였다.
  26. 26)고추古錐 : 뛰어난 대덕 스님에 대한 존칭.
  27. 27)쑥대 같은 아우(蓬弟) : 『荀子』 「勸學」에, “쑥대가 삼밭에 나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蓬生麻中。 不扶而直。)” 하였다. 주변 환경이나 만나는 사람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작자가 자신을 낮추어 배우는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28. 28)납파臘破 : 묵은해가 다하고 봄이 돌아오는 것. 두보杜甫의 〈白帝樓〉에서, “臘破思端綺。 春歸待一金。”이라 하였다.
  29. 29)세 벌 옷(三衣) : 세 벌의 가사로, 소박한 절집 생활을 의미한다. 원래의 의미로는 다음 세 가지의 옷을 가리킨다. ① 승가리僧伽梨 : 마을이나 궁중에 들어갈 때 입는다. ② 울다라승鬱多羅僧 : 예불ㆍ독경ㆍ청강ㆍ포살布薩 등을 할 때에 입는다. ③ 안타회安陀會 : 절 안에서 작업할 때 또는 상床에 누울 때 입는다.
  30. 30)곤명昆明이 몇 번이나 겁회劫灰로 흩어졌던가 : 한 무제漢武帝가 곤명지昆明池를 파다가 땅 밑에서 겁회劫灰(黑恢)를 발견하였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동방삭東方朔이 청하여 서역에 사람을 보내 알아 보니, 천지가 다 타고 남은 재라고 답했다 한다. 『御定騈字類編』 권138 「黑灰」.
  31. 31)차안遮眼 : 책으로 눈을 덮어 가린다는 말이다. 곧 한번 눈으로 볼 뿐 그 책에 얽매이지 않으며 수행을 한다는 뜻이다.
  32. 32)좋은 벗(勝友) : 선우善友ㆍ선지식善知識ㆍ선친우善親友ㆍ친우親友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정도를 가르쳐 보여 좋은 이익을 얻게 하는 스승이나 친구로서, 나와 마음을 같이하여 선행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33. 33)악목惡木 : 쓸모없는 나무. 『文選』 陸機의 〈猛虎行〉에서, “목이 타도 도천의 물을 마시지 않고, 더워도 악목의 그늘에 쉬지 아니했네.(渴不飲盜泉水, 熱不息惡木陰)”라 하였다. 이선李善의 주注에, “『관자』에서 말하기를, ‘무릇 선비는 경개한 마음을 가져 악목의 가지 그늘에 머물지 않는다. 악목 아래 쉬는 것도 오히려 부끄러워하는데, 하물며 악인과 함께 머무는 것이랴’라고 하였다.(管子曰。 夫士懷耿介之心。 不蔭惡木之枝。 惡木尙能恥之。 況與惡人同處。)”라 하였다.
  34. 34)탐천貪泉 : 탐욕의 샘. 원래는 샘의 이름으로 광동성廣東省 남해현南海縣에 있다. 진晉의 오은지吳隱之는 청렴한 생활을 잘 지켰는데, 광주 자사廣州刺史가 되어 부임할 때 주州에서 20리 쯤 되는 곳에 있는 석문石門에 탐천貪泉이 있었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이 물을 마시면 곧 청렴한 선비도 탐욕스럽게 변한다는 말이 있었다. 오은지는 물을 마시고 시를 짓기를, “고인이 말하기를, 이 물은 한 번 마시면 천금을 품는다 하네. 설령 백이숙제 마시게 한다 한들 끝내 그 마음 변함이 없으리라고 하였다.(古人云此水。 一歃懷千金。 試使夷齊飲。 終當不易心。)”라 하였다. 주州에 다다라서는 청렴하고 지조를 지키는 것을 더욱 엄격히 하였다고 한다. 『晉書』 「良吏傳」 〈吳隱之〉.
  35. 35)단구丹丘 : 밤이나 낮이나 항상 밝은 땅으로, 선인仙人이 산다는 전설 속의 지명이다.
  36. 36)수묵數墨 : 책에 있는 글자 수를 계산하는 것. 독서가 깊은 의리를 추구하는 데 이르지 못하고 문자만 따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심항수묵尋行數墨이라는 성어로도 활용된다. 이 역시 문자만을 따지고 문자 뒤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은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37. 37)천지는 원래~머무는 여관 : 이백의 「春夜宴桃李園序」에서, “천지는 만물이 머무는 여관이요, 광음은 백대의 길손이라.(天地萬物之逆旅。 光陰百代之過客。)” 하였다.
  38. 38)구과극駒過隙 : 백구지과극白駒之過隙의 준말로 자세한 것은 제2권의 주 14 참조.
  39. 39)전제筌蹄 : 물고기를 잡는 통발과 토끼를 잡는 올가미로,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를 비유한다.
  40. 40)양관陽關 : 곡조의 이름. 당唐 왕유王維의 시에서, “위성의 아침 비는 가벼운 먼지 적시고, 객사의 버들은 푸르러 정취를 더하는구나. 권하노니 그대여 한잔 더 드시게나.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아는 친구 없으리.(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盡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라고 하였는데, 이 시를 악부樂府에 넣어 송별곡으로 삼았다. 양관구陽關句에 이르면 반복하여 노래하기 때문에 양관삼첩이라 하고, 또는 위성곡渭城曲이라고도 한다.
  41. 41)인지곡仁智曲 : 『논어』 「雍也」에서,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니, 지자는 동적動的이고 인자는 정적靜的이며, 지자는 낙천적이고 인자는 장수한다.” 하였다.
  42. 42)일곱 근 가사(衲七斤) : 칠근포삼七斤布衫. 일곱 근 되는 장삼.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778~897)에게 묻기를,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 겁니까?(萬法歸一。 一歸何處。)”라고 하였다. 조주가 “내가 청주에 있을 적에 베 장삼 한 벌을 만들었더니,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다.(我在靑州。 作一領布衫。 重七斤。)”라고 한 고사가 있다.
  43. 43)홍몽鴻濛 : 우주가 형성되기 이전의 혼돈 상태를 뜻한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나 하늘을 뜻하기도 한다.
  44. 44)무른 칼(鉛刀) : 납으로 만든 칼은 물러서 쓸 데가 없으므로 쓸모없는 사람이나 물건에 비유한다.
  1. 1)「詩文一」三字。編者補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