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攝大乘論釋卷第七

ABC_IT_K0595_T_007
017_0220_b_01L
섭대승론석 제7권
017_0220_b_01L攝大乘論釋卷第七


무성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김치온 개역
017_0220_b_02L 無性菩薩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5. 피입인과분(彼入因果分)
017_0220_b_04L彼入因果分第五

【論】이와 같이 알아야 할 바의 양상에 들어감[入所知相]을 설하였다. 저것에 들어가는 인과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1) 말하자면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정려(靜慮)ㆍ반야(般若)의 여섯 가지 바라밀다2)에 의해서이다.
어떻게 6바라밀다에 의해서 유식에 들어갈 수 있는가? 또한 6바라밀다는 저것에 들어가는 결과를 어떻게 이루는가? 말하자면 이 보살은 재물에 탐착하지 않고, 계[尸羅]를 범하지 않으며, 고통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고, 수행에 대해서 게으르지 않으며, 이와 같은 산란한 움직임의 원인[因] 가운데에서 현행하지 않을 때 마음을 하나의 경계에 전념[心一境性]3)하고, 곧 능히 이치 그대로 모든 법을 간택하여 유식에 들어갈 수 있다.
보살은 6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유식에 들어가고 나서 여섯 가지 청정한 매우 높은 의요[增上意樂]에 섭수되는 바라밀다를 증득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설사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현전에 일으키는 가행(加行)을 여읠지라도 성스러운 가르침[聖敎]에 대해서 뛰어난 이해[勝解]를 얻기 때문에, 그리고 경애존중(敬愛尊重)과 수희(隨喜)와 흔락(欣樂)의 여러 가지 작의에 의하기 때문에, 항상 끊임없이 상응하여 방편으로써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수습하여 속히 원만하게 된다.
017_0220_b_05L論曰:如是已說,入所知相,彼入因果,云何可見?謂由施`戒`忍`精進`靜慮`般若六種波羅蜜多.云何由六波羅蜜多,得入唯識?復云何六波羅蜜多,成彼入果?謂此菩薩不著財位,不犯尸羅,於苦無動,於修無懈,於如是等散動因中,不現行時,心專一境,便能如理簡擇諸法得入唯識.菩薩依六波羅蜜多,入唯識已,證得六種淸淨增上意樂所攝波羅蜜多.是故於此,設離六種波羅蜜多,現起加行,由於聖教得勝解故,及由愛重隨喜欣樂諸作意故,恒常無閒相應方便修習六種波羅蜜多,速得圓滿.
017_0220_c_01L【釋】‘유식에 들어가는 원인’이란 말하자면 가행할 때 세간의 여섯 가지 바라밀다이다. 지금 나타내겠다.
‘말하자면 이 보살은 재물에 탐착하지 않고’란 탐하고 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탐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탐착은 버림으로써 다스려지는 것으로서 이것은 곧 보시바라밀다에 의해 다스려지는 장애이다. 뒤의 다섯 가지도 이와 같다.
‘계[尸羅]를 범하지 않으며’에서 훼손하여 범한다는 것은 계바라밀다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장애이다.
‘고통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고’란 분하여 흔들리는 것은 인욕바라밀다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장애이다.
‘수행에 대해서 게으르지 않으며’에서 게으름이란 정진바라밀다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장애이다.
017_0220_b_19L釋曰:入唯識因,謂加行時,世閒六種波羅蜜多,今當顯示.謂此菩薩,不著財位者,無所貪求,故名不著貪著,卽是捨所對治,此卽是施波羅蜜多,所對治障,後五亦爾.不犯尸羅者,毀犯是戒波羅蜜多,所對治障.於苦無動者,忿動是忍波羅蜜多,所對治障.於修無懈者,懈是精進波羅蜜多,所對治障.
‘마음을 하나의 경계에 전념하고’란 정려바라밀다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장애를 말하는 것으로, 산란한 움직임의 원인으로부터 멀리 떠나서 전전하지 않고 마음을 지켜서 안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곧 능히 이치 그대로 모든 법을 간택하여’란 곧 반야바라밀다이다. 이 여섯 가지 바라밀에 의해서 유식에 들어갈 수 있다.
이미 들어가고 나서 청정한 매우 높은 의요에 섭수되는 뛰어난 결과[果分]인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증득한다. 그러므로 설사 바라밀다를 현전에 일으키는 가행을 여읠지라도 항상 끊임없이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수습하여 속히 원만하게 될 수 있다. 무엇이 이와 같지 않은가? 만약 시라바라밀다에서 가행을 일으키지 않으면 마땅히 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뜻은 옳지 않으니, 면려(勉勵)가행4)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시라에서 가행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마땅히 이와 같은 과실이 있어야 한다. 면려 가행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과실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성스러운 가르침의 뛰어난 이해 등을 얻는 것에 의해서 자유자재[任運]한 가행을 한 경우이다. 그러므로 과실이 없다.
017_0220_c_06L心專一境者,謂於靜慮波羅蜜多,所對治障,散動因中,遠離不轉,持心令定.便能如理簡擇諸法者,卽是般若波羅蜜多.由此六種波羅蜜多,得入唯識,旣得入已,證得淸淨增上意樂所攝殊勝果分六種波羅蜜多.是故設離波羅蜜多現起加行,恒常無閒修習六種波羅蜜多,速得圓滿,爲不爾耶?若於尸羅波羅蜜多,不起加行,應是犯戒.此義不然,不起勉勵加行故.若於尸羅,不起加行,應有此失,非不發起勉勵加行而有此失.
017_0221_a_01L여기에서 ‘성스러운 가르침에 대해서 뛰어난 이해를 얻기 때문에’란 말하자면 비록 매우 깊고 깊지만 바라밀다와 상응하는 성스러운 가르침에 대해서 능히 믿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경애존중의 작의’란 말하자면 이미 획득한 바라밀다에서 받는 공덕의 맛이다.
‘수희의 작의’란 시방 모든 세계의 타상속(他相續)이나 혹은 각각 다른 자상속(自相續)의 바라밀다에서 깊은 마음으로 기뻐[慶喜]하는 것이다.
‘흔락의 작의’란 말하자면 “미래에 나는 이것과 함께 항상 서로 떨어지지 않고 뛰어나게 전변하게 하소서”라고 하는 것이다.
017_0220_c_17L於聖教,得勝解等,任運加行,是故無失.此中於聖教,得勝解者,謂於波羅蜜多,相應聖教,雖極甚深,而能信解.愛重作意者,謂於已得波羅蜜多受功德味.隨喜作意者,謂於十方一切世界他相續中,或於各別自相續中,波羅蜜多,深心慶喜.欣樂作意者,謂於未來,願我與此恒不相離及轉殊勝.
【論】이에 대한 세 가지 게송이 있다.
017_0221_a_02L論曰:此中有三頌:

이미 청정한 법[白法]5)을 원만히 하고
예리하고 빠른 인(忍)을 얻어서
보살은 자신의 교법[乘]인
깊고 깊으며 크고 넓은 가르침에 대해서
017_0221_a_03L已圓滿白法,
及得利疾忍,
菩薩於自乘,
甚深廣大教.

동등하게 오직 분별6)만이 있다고 깨달아
무분별지를 얻네.
희구(悕求)와 뛰어난 이해[勝解]와 청정이니
그러므로 의요가 청정하네.
017_0221_a_05L等覺唯分別,
得無分別智,
悕求勝解淨,
故意樂淸淨.

앞[前]에서와 이[此] 법의 흐름에서
모두 여러 부처님을 뵐 수 있으며
보리를 가깝게 요지하니
얻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네.
017_0221_a_06L前及此法流,
皆得見諸佛,
了知菩提近,
以無難得故.

이와 같은 세 개의 게송에 의해서 청정하고 매우 높은 의요를 종합적으로 드러낸다. 여덟 가지 양상이 있으니, 말하자면 자량(資糧)에 말미암고, 감인(堪忍)에 말미암고, 인식대상[所緣]에 말미암으며, 작의(作意)에 말미암고, 다스림[對治]에 말미암고, 자체(自體)에 말미암고, 상서로운 모습[瑞相]에 말미암고, 뛰어난 이익[勝利]에 말미암아서, 그 순서대로 여러 구절의 가타는 현시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7_0221_a_07L由此三頌,摠顯淸淨增上意樂,有八種相,謂資糧故`堪忍故`所緣故`作意故`對治故`自體故`瑞相故`勝利故.如其次第,諸句伽他,應知顯示.
【釋】여기에서는 청정하고 매우 높은 의요가 지니고 있는 자량ㆍ감인ㆍ인식대상ㆍ작의ㆍ다스림ㆍ자체ㆍ상서로운 모습ㆍ뛰어난 이익을 드러내어 설한다.
‘이미 청정한 법을 원만히 하고’란 말하자면 먼저 저 승해행지(勝解行地)에서 잘 자량을 갖추면 청정한 법이 원만하게 되는데 이는 자량을 말한다.
‘예리하고 빠른 인(忍)을 얻어서’란 말하자면 연(軟)과 중(中)을 가려내고 법인(法忍)을 잘 성찰[諦察]하는 상품(上品)만을 취한다는 것이다. 7) 이 인(忍)이 전변할 때, 즉 감인이 된다.
‘보살은 자신의 교법인, 깊고 깊으며 크고 넓은 가르침에 대해서’란 대승의 깊고 넓고 성스러운 가르침을 반연한다는 것이다. 그 뜻이 미세한 것을 ‘깊고 깊으며’라고 하는 것이며, 즉 법무아의 뛰어남이다. 위덕(威德)과 상응하는 것을 ‘크고 넓으며’라고 하는 것이며, 즉 허공장 등 여러 가지 삼마지이다. 즉 이러한 것들은 인식대상(所緣)을 말한다.
017_0221_a_11L釋曰:此中顯說,淸淨增上意樂,所有資糧`堪忍`所緣`作意`對治,自體`瑞相`勝利.已圓滿白法者,謂先於彼勝解行地,善備資糧,白法圓滿,是謂資糧.及得利疾忍者,謂簡軟中,唯取上品,諦察法忍,此忍轉時,卽是堪忍.菩薩於自乘甚深廣大教者,謂緣大乘深廣聖教,其義微細,名爲甚深,卽法無我殊勝.威德相應,名爲廣大,卽是虛空藏等,諸三摩地.是謂所緣.
017_0221_b_01L‘동등하게 오직 분별만이 있다고 깨달아’란 일체의 법은 오직 분별만이 있다고 깨닫는 것이니, 이는 작의를 말한다.
‘무분별지를 얻네’란 즉 다스림[對治]을 말한다.
‘희구와 뛰어난 이해와 청정이니 그러므로 의요가 청정하네’라고 하는 것은 곧 이것은 자체를 말하는 것이니, 이 의요는 믿음과 하고자 함[欲]으로써 자체를 삼기 때문이다.
‘앞에서와 이 법의 흐름에서 모두 여러 부처님을 뵐 수 있으며’라고 하는 것은 상서로운 모습을 말한다. ‘앞[前]’이라고 하는 것은 의요가 청정한 위(位)의 앞을 말한다. ‘이[此]’란 이와 같은 삼마지에서라는 뜻이다.
‘법의 흐름’이란 즉 삼마지에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정에 있을 때에 모든 부처님을 보기 때문이다.
‘보리를 가깝게 요지하니 얻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네’란 말하자면 부처님을 뵙는 것으로 인하여 보리를 가깝게 안다고 하는 것이고, 이러한 의미를 해석하여 ‘얻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네’라고 말하는 것이며, 곧 이것은 뛰어난 이익을 말한다. 이 지위에서 보리를 가깝게 알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능히 얻을 수 있는 뛰어난 방편을 얻기 때문이다. 얻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은 자량을 수습한 세력이 성숙하여 감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세 게송은 청정하고 매우 높은 의요의 여덟 가지 양상의 차별을 종합하여 해석한 것이다.
017_0221_a_21L等覺唯分別者,覺一切法唯有分別,是謂作意.得無分別智者,卽是對治.悕求勝解淨故,意樂淸淨者,卽是自體,由此意樂,以信及欲,爲自體故.前及此法流,皆得見諸佛者,卽是瑞相.前謂意樂淸淨位前,此謂於此三摩地中,法流卽說,在三摩地處於定中.見諸佛故,了知菩提近以無難得故者,謂因見佛,知菩提近,釋此義言,無難得故,卽是勝利.於此位中,見菩提近,得此能得勝方便故,得不爲難,修集資糧勢力成熟,有堪能故.如是三頌,摠釋淸淨增上意樂八相差別.
【論】무슨 까닭에 바라밀다에는 오직 여섯 가지만이 있는가?8)
다스려야 할 장애[所治障]를 다스리는 것이 성립하기 때문에, 모든 불법의 의지처[所依處]를 증득하기 때문에, 수순하여 모든 유정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발심하여 나아가지[發趣] 않는 원인을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에, 보시와 지계의 바라밀다를 세운다. 발심하여 나아가지 않는 원인이란 재물에 탐착함과 가정에 집착함이다.
비록 발심하여 나아가더라도 다시 물러나는 원인을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에 인욕과 정진의 바라밀다를 세우는 것이다. 다시 물러나는 원인이란 생사에 처해서 유정이 잘못을 범해서 생기게 되는 여러 가지 고통과 오랜 시간 동안 선품(善品)의 가행으로 생기게 되는 피곤함과 나태해짐[疲怠]을 말한다.
비록 발심하여 나아가고 다시 물러나지 않더라도 잃고 무너뜨리는[失壞] 원인을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에 선정과 지혜의 바라밀다를 세운다.
017_0221_b_11L論曰:何因緣故,波羅蜜多,唯有六數?成立對治所治障故`證諸佛法所依處故`隨順成熟諸有情故`爲欲對治不發趣因故,立施`戒波羅蜜多.不發趣因,謂著財位及著室家.爲欲對治,雖已發趣,復退還因故,立忍`進波羅蜜多.退還因者,謂處生死有情,違犯所生衆苦,及於長時,善品加行所生疲怠.爲欲對治,雖已發趣,不復退還而失壞因故,立定`慧波羅蜜多.
017_0221_c_01L잃고 무너뜨림의 원인이란 모든 산란한 움직임[散動]과 사악한 지혜[慧]를 말한다. 이와 같은 다스려야 할 장애를 다스리는 것이 성립하기 때문에 오직 여섯 가지를 세우는 것이다.
또한 앞에 있는 네 가지 바라밀다는 산란되게 움직이지 않음의 원인이 되고, 다음에 있는 한 가지 바라밀다는 산란하게 움직이지 않음을 성취한다. 이러한 산란되게 움직이지 않음을 의지로 삼기 때문에 여실하고 평등하게 제법의 진실한 의미를 깨닫고 곧 능히 모든 불법을 증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불법의 의지처를 증득하기 때문에 단지 여섯 가지를 세울 뿐이다.
보시바라밀다를 말미암기 때문에 모든 유정에 대해서 능히 바르게 섭수한다. 지계바라밀다를 말미암기 때문에 모든 유정에 대해서 능히 해치지 않는다. 인욕바라밀다를 말미암기 때문에 해침을 당하더라도 능히 참고 받아들인다.
017_0221_b_21L失壞因者,謂諸散動,及邪惡慧.如是成立對治`所治障故,唯立六數.又前四波羅蜜多,是不散動因,次一波羅蜜多,不散動成就,此不散動,爲依止故,如實等覺諸法眞義,便能證得一切佛法.如是證諸佛法所依處故,唯立六數.由施波羅蜜多故,於諸有情,能正攝受.由戒波羅蜜多故,於諸有情,能不毀害.由忍波羅蜜多故,雖遭毀害,而能忍受.
정진바라밀다를 말미암기 때문에 저것에 상응하여 지어야 할 바를 도와 경영하니, 즉 이와 같은 이로움을 거두는 인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는 일에 대해서 감임(堪任)하게 된다.
이 이후에 마음이 아직 선정에 들지 않은 자에게는 그로 하여금 선정[定]을 얻게 하고, 마음이 이미 선정에 든 자에게는 해탈을 얻게 하며, 깨달음을 열 때에는 저들에게 성숙을 얻게 한다. 이와 같이 수순하면 모든 유정이 성숙된다. 단지 여섯 가지를 세우는 것은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017_0221_c_08L由精進波羅蜜多故,能助經營彼所應作.卽由如是攝利因緣,令諸有情,於成熟事,有所堪任.從此已後,心未定者,令其得定心已定者,令得解脫,於開悟時,彼得成熟.如是隨順成熟一切有情,唯立六數,應如是知.
【釋】다음 맨 마지막 게송에서 수의 모습[數相] 등의 의미를 마땅히 나타내야 한다. 먼저 수를 세우는 것에 의지하여 이와 같은 말, 즉 ‘다스려야 할 장애를 다스리는 것을 성립하기 때문에’ 등이 라고 설하는 것이다.
세 가지 이유로써 바라밀다의 수가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오직 여섯 가지만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장애를 다스리는 것을 성립하기 때문에’라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즉 ‘발심하여 나아가지 않는 원인을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에 보시와 지계의 바라밀다를 세운다……잃고 무너뜨림의 원인을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에 선정과 지혜의 바라밀다를 세운다’라고 하는 것이다.
017_0221_c_14L釋曰:次當開示最後頌中數相等義,先依立數,說如是言.成立對治`所治障等,謂三因緣,波羅蜜多數唯有六,不多不少.先當開示成立對治`所治障故.爲欲對治不發趣因故,立施戒波羅蜜多,乃至爲欲對治而失壞因故,立定慧波羅蜜多.
017_0222_a_01L‘잃고 무너뜨림의 원인이란 모든 산란한 움직임과 사악한 지혜를 말한다’에서 ‘사악한 지혜’는 전도하고 집착하여 모든 비루한 악[鄙惡]의 지혜를 말한다. 모든 외도와 같은 것은 잃고 무너뜨림의 원인이 된다. 나머지 구절은 문구대로 분명히 알기 쉽다.
‘모든 불법의 의지처를 증득하기 때문에’란 여섯 가지를 건립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모든 불법의 원인이기 때문에 바라밀다는 오직 늘지도 줄지도 않는 여섯 가지이다. 그 의미는 어떠한가? 말하자면 앞의 네 가지 바라밀다는 산란되게 움직이지 않는 원인이니, 왜냐하면 다스리는 것으로 하여금 능히 산란하게 움직이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정려바라밀다도 산란하게 움직이지 않음을 성취하니, 왜냐하면 산란되게 움직이지 않도록 하여 원만함을 얻기 때문이다. 이 정려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여실하고 평등한 모든 법의 진의(眞義)를 깨닫는다. 왜냐하면 인식대상에 대해서 능히 바르게 두루 알기[遍知] 때문이다. ‘모든 불법’이란 10력(力) 등을 말한다.
017_0221_c_21L失壞因者,謂諸散動,及邪惡慧,顚倒執取.諸鄙惡智,名邪惡慧,如諸外道,是失壞因.餘句如文,分明易了.證諸佛法所依處者,第二建立六數因緣.以是一切佛法因故,波羅蜜多,唯有六數,不增不減.其義云何?謂前四波羅蜜多,是不散動因,能令所治散動無故.靜慮波羅蜜多,不散動成就,令不散動得圓滿故.依此靜慮波羅蜜多,如實等覺諸法眞義,能於所緣正遍知故.諸佛法者,謂十力等.
‘증득한다’란 분명하게 성취하는 것[成辦]을 말한다.
‘수순하여 모든 유정을 성숙시킨다’란 여섯 가지를 성립하는 세 번째 이유이다. 보시바라밀다에 의해서 모든 유정에 대해 능히 바르게 섭수하며, 지계바라밀다에 의해서 모든 유정에 대해 능히 해치지 않으니 괴롭힘을 생기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욕바라밀에 의해서 비록 해침을 당하더라도 능히 참고 받아들인다. 능히 참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요익하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돌이켜 보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진바라밀다에 의해서 저들이 짓는 것을 도우며, 정려바라밀다에 의해서 마음이 아직 선정에 들지 않은 자에게는 그 마음으로 하여금 선정을 얻게끔 하며, 지혜바라밀다에 의해서 마음이 이미 선정에 든 사람에게는 해탈을 얻게끔 한다.
017_0222_a_09L證謂成辦.隨順成熟諸有情者,第三成立六數因緣.由施波羅蜜多,於諸有情,能正攝受.由戒波羅蜜多,於諸有情,能不毀害,不生惱故.由忍波羅蜜多,雖遭毀害,而能忍受,能忍受故,能饒益他,不反報故.由精進波羅蜜多,助彼所作.由靜慮波羅蜜多,心未定者,令其得定.由慧波羅蜜多,心已定者,令得解脫.
‘깨달음을 열 때’란 저들을 교수(敎授)하여 경계에 깨달아 들어갈 수 있게끔 하는 때이다.
‘저들에게 성숙을 얻게 한다’란 저들이 경계에서 이미 성숙을 얻었다는 것이다.
‘성숙’이라 하는 것은 마치 종기가 곪아 터진 것처럼 다스려야 할 장애가 없어지고 흩어진 것을 말한다. 또한 능히 다스리는 음식이 이미 익어 버린 것과 같이 원만히 성취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017_0222_a_17L開悟時者,謂教授彼,令於境界,得悟入時.彼得成熟者,彼於境界,已得成熟.言成熟者,謂所治障消融潰散,如癰已熟,或能對治,成滿可用,如食已熟.
017_0222_b_01L【論】이 여섯 가지 양상[相]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9) 여섯 가지 가장 뛰어남[最勝]에 의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의지처[所依]의 가장 뛰어남에 의하니, 말하자면 보리심을 의지처로 삼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업[事]의 가장 뛰어남에 의하니, 말하자면 구족하여 현행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처소[處]의 가장 뛰어남에 의하니, 말하자면 모든 유정을 이익하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사업[事]을 의지처로 삼기 때문이다. 넷째는 훌륭한 방편[方便善巧]의 가장 뛰어남에 의하니, 말하자면 무분별지에 섭수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회향(廻向)의 가장 뛰어남에 의하니, 말하자면 무상정등보리에 회향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청정(淸淨)의 가장 뛰어남에 의하니, 말하자면 번뇌장과 소지장의 두 가지 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보시일 경우에 바라밀다인가, 바라밀다일 경우에 보시인가? 어떤 것은 보시이면서 바라밀다가 아닌 경우 등 마땅히 네 구를 지어야 한다. 이 보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나머지 바라밀다 또한 네 구를 지어야 하니, 그 상응하는 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7_0222_a_21L論曰:此六種相,云何可見?由六種最勝故.一由所依最勝,謂菩提心爲所依故二由事最勝,謂具足現行故由處最勝,謂一切有情,利益安樂事,爲依處故四由方便善巧最勝,謂無分別智,所攝受故五由迴向最勝,謂迴向無上正等菩提故六由淸淨最勝,謂煩惱`所知二障,無障所集起故.若施是波羅蜜多耶?設波羅蜜多是施耶?有施非波羅蜜多,應作四句.如於其施,如是於餘波羅蜜多,亦作四句,如應當知.
【釋】세운 바 양상에 의지하여 이와 같은 말, 즉 ‘여섯 가지 가장 뛰어남에 의하기 때문이다’ 등이라고 설하는 것이다. 여섯 가지 가장 뛰어남이라 하는 그 말은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특별히 해석할 필요가 없다.
‘구족하여 현행하기 때문이다’란 내외의 현상[事]에서 모든 종류를 다 평등히[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지에 섭수되기 때문이다’란 말하자면 3륜(輪)이 청정한 것이니, 보시한 사람과 받는 사람과 보시한 물건이라는 분별을 모두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나머지 문구는 이해하기 쉽다.
017_0222_b_10L釋曰:依所立相,說如是言:謂由六種最勝故等.六種最勝,其言易了,不須別釋.具足現行故者,於內外事,一切種類,皆能捨故.無分別智所攝受故者,謂三輪淸淨,施者`受者`施物分別,皆遠離故.餘文易了.
‘어떤 것은 보시이면서 바라밀다가 아닌 경우가 있다’란 말하자면 여섯 가지 가장 뛰어난 것을 떠나서 보시를 닦는 것이다. 또 ‘어떤 것은 바라밀다이면서 보시가 아닌 경우가 있다’란 말하자면 여섯 가지 가장 뛰어난 것에 모이게 되는 지계 등이다.
‘어떤 것은 보시이면서 바라밀다인 경우가 있다’란 말하자면 여섯 가지 가장 뛰어난 것에 모이게 되는 보시이다.
“어떤 것은 보시도 아니고 바라밀다도 아닌 경우가
있다”란 말하자면 여섯 가지 가장 뛰어난 것을 떠나서 지계 등을 닦는 것이다. 보시에 대해서 이러한 네 구를 짓는 것과 같이, 이렇게 나머지 지계 등 다섯 가지에 대해서도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 모두 잘 안립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게송에서 설하는 것이다.
017_0222_b_16L有是施非波羅蜜多者,謂離六種最勝,而修布施.有是波羅蜜多非施者,謂六種最勝所集戒等.有亦施亦波羅蜜多者,謂六種最勝所集布施.有非施非波羅蜜多者,謂離六種最勝,而修戒等.如於施中,作是四句,如是於餘戒等五中,如其所應,皆善安立.故有頌言:
017_0222_c_01L
기린의 뿔은
6바라밀다가 존재하지 않음을 비유하네.
오직 나만이 가장 뛰어난 존귀한 자이며
상품(上品)으로서 저 언덕에 이르네.
017_0222_b_23L麟角喩無有,
六波羅蜜多,
唯我最勝尊,
上品到彼岸.

【論】무슨 까닭에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이 순서대로 설하는가?10) 말하자면 앞의 바라밀다를 수순하면 뒤의 바라밀다를 생겨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釋】‘수순하면 뒤의 바라밀다를 생겨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란 말하자면 재물[財位]에 탐착하지 않으면 능히 시라를 지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시라를 갖추게 되면 곧 능히 참고 받아들이며, 능히 참고 받아들이고 나면 어그러짐을 감내하기 때문에 정진을 일으키게 된다. 정진을 일으키고 나면 마음에 곧 선정[定]을 얻으며, 마음에 선정을 얻고 나면 능히 여실히 안다. 그러므로 이 여섯 가지는 이와 같은 순서로 하는 것이다.
017_0222_c_02L論曰:何因緣故,如是六種波羅蜜多,此次第說?謂前波羅蜜多,隨順生後波羅蜜多故.釋曰:隨順生後波羅蜜多故者,謂於財位不貪著,已能守尸羅,具尸羅已,便能忍受,能忍受已,堪耐乖違,故發精進,發精進已,心便得定,心得定已,能如實知,故此六種,如是次第.
【論】또한 이 여러 가지 바라밀다의 명언(名言)을 해석[訓釋]하는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11) 모든 세간과 성문과 독각은 보시 등의 선근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삼아서 능히 피안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통틀어 바라밀다라고 칭한다.
또한 능히 인색과 빈궁을 부수고 능히 광대한 재물과 복덕의 자량을 끌어당겨 얻기 때문에 보시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한 능히 악한 계율[惡戒]과 살기 괴로운 세계[惡趣]를 소멸하고 능히 살기 좋은 세계[善趣]와 삼마지[等持]를 취득하기 때문에 지계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017_0222_c_10L論曰:復次此諸波羅蜜多,訓釋名言,云何可見?於諸世閒,聲聞`獨覺,施等善根,最爲殊勝,能到彼岸,是故通稱波羅蜜多.又能破裂慳悋`貧窮,及能引得廣大財位福德資糧,故名爲施.又能息滅惡戒`惡趣,及能取得善趣等持,故名爲戒.
또한 능히 분노와 원망을 멸진하고 능히 자타(自他)의 안은(安隱)에 잘 머무르기 때문에 인욕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한 능히 모든 게으름과 악과 불선의 법을 멀리 여의고 능히 무량한 선법을 출생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증장하게 하므로 정진이라고 이름한다.
또한 능히 모든 산란한 움직임을 소멸하고 능히 내심의 안주를 끌어당겨 얻기 때문에 정려라고 이름한다.
또한 능히 모든 국집된 견해[見趣]와 모든 사악한 지혜[慧]를 제거하고 능히 진실하게 품류별로 법을 알기 때문에 지혜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017_0222_c_17L又能滅盡忿怒怨讎,及能善住自他安隱,故名爲忍.又能遠離所有懈怠惡不善法,及能出生無量善法,令其增長,故名精進.又能消除所有散動,及能引得內心安住,故名靜慮.又能除遣一切見趣諸邪惡慧,及能眞實品別知法,故名爲慧.
017_0223_a_01L【釋】총체적인 명칭[總名]을 해석하면 모든 세간과 성문과 독각은 보시 등 선근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삼아서 능히 피안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통틀어 바라밀다라고 이름한다. 피안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가장 뛰어남[最勝]의 의미이다.
개별적인 명칭을 해석하면 원인의 때[因時]에서는 능히 인색을 타파하고 또한 능히 광대한 복덕과 자량을 끌어당기며, 결과의 때[果時]에서는 능히 빈궁(貧窮)을 깨고 큰 재물을 얻기 때문에 보시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나머지 개별적인 명칭을 해석하는 그 문구는 알기 쉽다.
017_0222_c_23L釋曰:釋摠名者,於諸世閒,聲聞`獨覺,施等善根,最爲殊勝,能到彼岸,是故通名波羅蜜多.到彼岸名,是最勝義.釋別名者,謂於因時,能破慳悋,亦能引廣福德資糧,及於果時,能裂貧窮,得大財位,故名爲施.餘釋別名,其文易了.
【論】어떻게 이와 같은 바라밀다를 수습하는지 알아야 하는가? 이 수습에는 간략히 다섯 가지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첫째는 현재 가행을 일으키는[現起加行] 수습, 둘째는 뛰어난 이해[勝解]의 수습, 셋째는 작의(作意)의 수습, 넷째는 훌륭한 방편[方便善巧]의 수습, 다섯째는 해야 할 일[所作事]을 성취하는 수습이다.
여기에 네 가지 수습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것과 같다. ‘해야 할 일을 성취하는 수습’이란 말하자면 모든 여래께서는 자유자재로 불사를 짓되 휴식함이 없으며, 그 바라밀다를 원만히 하는 데에 다시 곧 여섯 가지 도피안을 수습한다는 것이다. 또한 ‘작의의 수습’이란 말하자면 여섯 가지 의요에 포함되는 지극히 사랑함[愛重]ㆍ따라서 기뻐함[隨喜]ㆍ즐거워함[欣樂]의 작의를 수습한다는 것이다. 여섯 가지 의요란 첫째는 광대한 의요이고, 둘째는 오랜 기간의 의요이며, 셋째는 환희(歡喜)의 의요이고, 넷째는 은혜를 지는[荷恩] 의요이며, 다섯째는 큰 뜻[大志]의 의요이고, 여섯째는 순수한 선[純善]의 의요이다.
017_0223_a_07L論曰:云何應知修習如是波羅蜜多?應知此修略有五種:一現起加行修`二勝解修`三作意修`四方便善巧修`五成所作事修.此中四修,如前已說.成所作事修者,謂諸如來,任運佛事,無有休息,於其圓滿波羅蜜多,復更修習六到彼岸.又作意修者,謂修六種意樂所攝愛重`隨喜`欣樂作意,一廣大意樂`二長時意樂`三歡喜意樂`四荷恩意樂`五大志意樂`六純善意樂.
017_0223_b_01L만약 모든 보살이 나아가 셀 수 없는 대겁에서 무상정등보리를 현전에 증득하고, 그러한 시간을 경과하는 하나하나의 찰나마다 가령 단박에 모든 몸과 목숨을 버리고, 긍가하의 모래와 똑같은 세계를 7보로 꽉 채워서 여래께 보시하고, 나아가서는 묘한 보리좌에 앉아 있는다 해도 이와 같은 보살의 보시의 의요에는 오히려 만족함이 없다.
이러한 시간을 경과하는 하나하나의 찰나마다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치성한 불이 가득하고 네 가지 위의(威儀)12)에서 항상 모든 생활 도구들이 부족하더라도 지계ㆍ인욕ㆍ정진ㆍ정려 반야의 마음은 항상 현행한다. 나아가 묘한 보리좌에 앉아 있는다 해도 이와 같이 보살이 지니고 있는 지계ㆍ인욕ㆍ정진ㆍ정려ㆍ반야의 의요에는 오히려 만족함이 없다. 이를 보살의 광대한 의요라고 이름한다.
017_0223_a_18L若諸菩薩,乃至若干無數大劫現證無上正等菩提,經爾所時,一一剎那,假使頓捨一切身命,以殑伽河沙等世界盛滿七寶奉施如來,乃至安坐妙菩提座,如是菩薩,布施意樂,猶無厭足.經爾所時,一一剎那,假使三千大千世界,滿中熾火,於四威儀,常乏一切資生衆具,戒`忍`精進`靜慮`般若心恒現行,乃至安坐妙菩提座.如是菩薩,所有戒`忍`精進`靜慮`般若意樂,猶無厭足,是名菩薩廣大意樂.
또한 모든 보살은 여기에서 만족함이 없는 의요를 가지고 나아가 묘한 보리좌에 앉아서 항상 쉴 틈이 없다. 이를 보살의 오랜 기간의 의요라고 이름한다.
또한 모든 보살은 이 여섯 가지 바라밀다로써 중생을 요익하게 하고, 이러한 짓는 것에 의해서 깊은 환희를 내며, 증익을 입은 유정이 다다를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보살의 환희의 의요라고 이름한다.
또한 모든 보살은 이 여섯 가지 바라밀다로써 유정을 요익하게 하여 저들은 자신에게 큰 은덕이 있었다고 보지만, 자신은 저들에게 은덕이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 이를 보살의 은혜를 지는 의요라고 이름한다.
또한 모든 보살은 즉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도피안으로 쌓게 된 선근으로써 깊은 마음에서 모든 중생에게 회향하여 사랑할 만한 뛰어난 결과[勝果]인 이숙을 얻게끔 한다. 이를 보살의 큰 뜻의 의요라고 이름한다.
017_0223_b_05L諸菩薩,卽於此中,無厭意樂,乃至安坐妙菩提座,常無間息,是名菩薩,長時意樂.又諸菩薩,以其六種波羅蜜多,饒益有情,由此所作,深生歡喜,蒙益有情,所不能及,是名菩薩歡喜意樂.又諸菩薩,以其六種波羅蜜多,饒益有情,見彼於己,有大恩德,不見自身,於彼有恩,是名菩薩荷恩意樂.
또한 모든 보살은 다시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도피안으로 모으게 된 선근으로써 모든 유정과 함께 회향하여 무상정등보리를 구한다. 이를 보살의 순수한 선의 의요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이 여섯 가지 의요에 포함되는 지극히 사랑하는[愛重] 작의를 닦는다.
또한 모든 보살은 다른 보살이 여섯 가지 의요에서 수습하고 상응한 무량한 선근에 대해서 깊은 마음으로 따라서 기뻐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이 여섯 가지 의요에 포함되는 따라서 기뻐함[隨喜]의 작의를 닦는다.
017_0223_b_13L諸菩薩,卽以如是六到彼岸所集善根,深心迴施一切有情,令得可愛勝果異熟,是名菩薩大志意樂.又諸菩薩,復以如是六到彼岸所集善根,共諸有情,迴求無上正等菩提,是名菩薩純善意樂.如是菩薩,修此六種意樂所攝愛重作意.又諸菩薩,於餘菩薩六種意樂修習相應無量善根,深心隨喜,如是菩薩,修此六種意樂所攝,隨喜意樂.
017_0223_c_01L또한 모든 보살은 깊은 마음으로 즐거워하고, 일체 유정의 여섯 가지 의요에 포함되는 여섯 가지 도피안을 닦고, 또한 자신이 이 여섯 가지 도피안의 수습과 더불어 항상 서로 분리되지 않기를 원하며 나아가 묘한 보리좌에 앉아 있기를 원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이 여섯 가지 의요에 포함되는 즐거워함[欣樂]의 작의를 수습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보살의 여섯 가지 의요에 포함되는 작의의 수습을 듣고 나서 단지 한 생각이라도 믿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어도, 오히려 무량한 복의 덩어리를 발생하게 되고 모든 악한 업장 또한 다 소멸되는데, 하물며 보살이겠는가?
017_0223_b_23L又諸菩薩,深心欣樂,一切有情,六種意樂所攝,六種到彼岸修,亦願自身與此六種到彼岸修,恒不相離,乃至安坐妙菩提座,如是菩薩,修此六種意樂所攝欣樂作意.若有聞此菩薩六種意樂所攝作意修已,但當能起一念信心,尚當發生無量福聚,諸惡業障,亦當消滅,何況菩薩.
【釋】‘수습’이란 자주 익히는 것을 말한다. 현재 일으키는[現起] 수습 등의 차별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현재 가행을 일으키는 수습’이란 보시 등에서 전도 없이 구르는 것을 말한다. 다음 게송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017_0223_c_07L釋曰:修謂數習.現起修等,差別有五.現起加行修者,謂於施等,無顚倒轉.如有頌言:

보시하는 자는 뛰어나게
믿음 등을 구족하며
공경하는 마음과 상응할 때
자신의 손으로 보시하네.
017_0223_c_10L施者殊勝,
信等具足,
恭敬應時,
自手施等.

또한 다음과 같은 게송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017_0223_c_12L又如頌言:

남을 이롭게 하는 가행은 유정에 대해서
힘이 있거나, 힘이 없거나 구별하지 않네.
모든 시간에서 모든 것을 베풀며
힘닿는 대로 널리 유익하게 하네.
017_0223_c_13L利他加行於有情,
不簡有力若無力,
於一切時一切施,
隨力所能廣饒益.

‘뛰어난 이해의 수습’이란 믿음[信]과 욕구[欲]에 대해서 뛰어난 이해를 생기게 하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성스러운 가르침에 대한 깊은 인(印)을 따르기 때문이며, 즐거운 의욕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다음 게송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017_0223_c_15L勝解修者,謂由信欲而生勝解,於佛聖教,深印順故`生樂欲故.如有頌言:

이로운 업에 공용이 없을지라도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서 뛰어난 이해를 내니
믿음과 욕구가 함께 상응하는
의요에 말미암아 항상 게으름 없이 수습하네.
017_0223_c_17L雖於利業無功用,
而於佛教生勝解,
由信及欲共相應,
意樂常修無懈廢.
017_0224_a_01L
‘작의의 수습’이란 지극히 사랑함과 따라서 기뻐함과 즐거워함의 작의에 포함되는 수습을 말한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것과 같다.
‘훌륭한 방편의 수습’이란 무분별지에서 섭수하는 수습을 말한다. 이것 또한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
‘해야 할 일을 성취하는 수습’이란 말하자면 모든 부처님의 도피안의 법은 매우 원만할지라도, 다른 이를 요익하게 하는 본원력으로 인해 의식적인 노력[功用]을 짓지 않고도 저곳에 따라서 능히 보시 등 마땅히 지어야 할 일을 현행한다는 것이다. 이 수습은 저들을 위해서 닦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수습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한’이라는 말은 앞의 작의의 수습과 차별이 있다는 뜻을 설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여섯 가지 의요에 포함되는 것을 수습하고……의요에는 오히려 만족함이 없다’ 등의 그 문장은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일부분[少處]을 조금만 설하겠다.
017_0223_c_19L作意修者,謂愛重隨喜欣樂作意所攝修習,如前已說.方便善巧修者,謂無分別智攝受修習,亦如前說.成所作事修者,謂諸如來,到彼岸法,雖極圓滿,爲饒益他本願力故,不作功用隨彼所能現行施等所應作事.此卽是修,爲彼修故,亦名爲修.又聲欲說前作意修有差別義,謂修六種意樂所攝,乃至意樂,猶無厭等.其言易了,少處少說.
‘만족함이 없다’란 피곤함이 없음을 말한다.
‘이러한 시간을 경과하는 하나하나의 찰나마다’란 어떤 사람은 “그러한 시간을 경과한 것을 1찰나라고 한다”고 설한다. 말하자면 3무수겁(無數劫)의 양을 경과한 것을 1찰나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찰나를 적집하여 마침내는 대보리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경과하는 하나하나의 찰나마다’라고 하는 그 문장의 뜻은 이해하기 쉽다.
‘치성한 불이 가득하고’란 뛰어난 곳이 피폐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항상 모든 생활 도구들이 부족하더라도’란 고통을 다스리는 생활 도구들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든 고통을 다스려서 섭수하기 때문이다.
‘네 가지 위의에서’란 광대한 의지를 나타낸다. 뛰어난 곳과 생활 도구가 없어진다 해도 모든 네 가지 위의에서 지계 등의 도피안을 수습하는 마음은 항상 현전하기 때문이다.
017_0224_a_06L無厭足者,謂無疲倦.經爾所時,一一剎那,或有說言:經爾所時,爲一剎那,謂經於三無數劫量,爲一剎那,如是剎那積集,乃至得大菩提.經爾所時,一一剎那,其義易了.滿中熾火者,顯乏少勝處.常乏一切資生衆具者,顯無苦對治資生衆具,爲治諸苦而攝受故.於四威儀者,顯志廣大.雖乏勝處及資生具,而於一切四威儀中,修行戒等到彼岸心常現前故.
‘오랜 기간의 의요’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오랜 시간 동안 쉴 틈이 없기 때문이다.
‘은혜를 지는[荷恩] 의요’란 말하자면 깊이 모든 내구(來求)13)는 좋은 벗이라고 믿고 뛰어나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저 내구자들을 믿고 자신의 사랑할 만한 묘과(妙果)인 이숙14)을 보시한다. 그러므로 하은이라 하는 것이다.
‘큰 뜻의 의요’란 말하자면 이 의요는 큰 뜻[大志]과 상응하고 모든 유정을 이익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의 선근을 돌려서 모두에게 베풀어 준다. 이와 같은 의요를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큰 뜻의 의요라고 설하는 것이다.
017_0224_a_16L長時意樂者,謂於久時,無閒息故.荷恩意樂者,謂深信解諸來求者,是善友故.此卽信彼諸來求者,施己可愛妙果異熟,是故荷恩.大志意樂者,謂此意樂大志相應,爲欲利益諸有情故.迴已善根施與一切,如是意樂,最爲殊勝,是故說名大志意樂
017_0224_b_01L‘순수한 선의 의요’란 그 뜻은 하나인데 특별한 명칭을 세우는 것은, 만약 보시 등을 돌려서 3유(有)15)의 재물에 대해서 원만함을 구할 경우에 이와 같은 의요는 고구(苦具)16)를 희구하고 죄가 있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에 순수한 선이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만약 보시를 모든 유정과 함께 돌려서 불과(佛果)를 구하면 이와 같은 의요는 고구를 구하지 않는다. 죄가 모두 없기 때문에 순수한 선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의요에 포함되는 세 가지 작의를 수습하는 것은 그 말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번거롭게 거듭 해석할 필요가 없다.
‘모든 악한 업장 또한 마땅히 소멸되는데’란 말하자면 결과가 없게끔 하기 때문이며 혹은 살기 괴로운 세계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017_0224_a_22L純善意樂,其義是一.立別名者,若以施等,迴求三有財位圓滿,如是意樂悕求苦具,似有罪故,不名純善.若以施等,共諸有情,迴求佛果,如是意樂,不求苦具,都無罪故,說名純善.修此六種意樂,所攝三種作意,其言易了,無煩重釋.諸惡業障,亦當消滅者,謂令無果故,或治惡趣故.
【論】이 여러 가지 바라밀다의 차별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17) 하나에 각각 세 가지 품이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시의 세 가지 품이란 첫째는 법의 보시[法施]이고, 둘째는 재물의 보시[財施]이며, 셋째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無畏施]이다.
지계의 세 가지 품이란 첫째는 율의계(律儀戒)이고, 둘째는 온갖 선법을 닦는 계[攝善法戒]이며, 셋째는 유정을 널리 이롭게 하는 계[饒益有情戒]이다.
인욕의 세 가지 품이란 첫째는 원한을 참는 인욕[耐怨害忍]이고, 둘째는 고통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인욕[安受苦忍]이며 , 셋째는 법을 자세히 관찰하는 인욕[諦察法忍]이다.
정진의 세 가지 품이란 첫째는 큰 서원을 일으키는 정진[被甲精進]18)이고, 둘째는 가행의 정진(加行精進)이며, 셋째는 겁약이 없고[無怯弱]ㆍ물러남이 없으며[無退轉]ㆍ기뻐하여 만족해함이 없는 정진[無喜足精進]이다.
정려의 세 가지 품이란 첫째는 안주함의 정려[安住靜慮]이고, 둘째는 이끌어내는 정려[引發靜慮]이며, 셋째는 해야 할 바를 성취하는 정려[成所作事靜慮]이다.
혜의 세 가지 품이란 첫째는 무분별가행혜(無分別加行慧)19)이고, 둘째는 무분별혜(無分別慧)20)이며, 셋째는 무분별후득혜(無分別後得慧)21)이다.
017_0224_b_07L論曰:此諸波羅蜜多差別,云何可見?應知一一各有三品.施三品者:一法施`二財施`三無畏施.戒三品者:一律儀戒`二攝善法戒`三饒益有情戒.忍三品者:一耐怨害忍`二安受苦忍`三諦察法忍.精進三品者:一被甲精進`二加行精進`三無怯弱無退轉無喜足精進.靜慮三品者:一安住靜慮`二引發靜慮`三成所作事靜慮.慧三品者:一無分別加行慧`二無分別慧`三無分別後得慧.
017_0224_c_01L【釋】이 하나하나의 바라밀다에 각각 세 가지 품이 있는 것에 의하여 차별을 나타내는 것이다.
‘법의 보시’라고 말하는 것은 말하자면 오염된 마음 없이 여실하게 계경 등의 법을 잘 설하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라고 말하는 것은 오염된 마음 없이 생활 도구를 베푸는 것이다.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란 손해를 금지시키고 놀라는 것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이다.
또한 법의 보시란 다른 이의 선근들을 도와서 이익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고, 재물의 보시란 다른 이의 몸을 도와서 이익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며,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란 다른 이의 마음을 도와서 이익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율의계’란 말하자면 불선(不善)을 능히 멀리 여의는 법에 대해서 방호(防護)하고 수지하는 것이다. 능히 모든 악하고 불선한 신(身)ㆍ어(語) 등의 업을 방호하기 때문에 율의라고 이름한다.
017_0224_b_18L釋曰:由此一一波羅蜜多,各有三品,顯示差別.言法施者,謂無染心,如實宣說契經等法.言財施者,謂無染心,捨資生具.無畏施者,謂止損害,濟拔驚怖.又法施者,爲欲資益他諸善根,財施爲欲資益他身,無畏施爲欲資益他心.律儀戒者,謂於不善,能遠離法,防護受持,由能防護諸惡不善身`語等業,故名律儀.
이것은 곧 뒤에 두 시라를 능히 건립하는 계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방호함으로써 능히 부처님을 공양하는 등의 선근을 수습하고 모든 증생을 능히 요익하게 하기 때문이다.
‘온갖 선법을 닦는 계’란 능히 역(力)ㆍ무외(無畏) 등 일체의 불법을 증득하게 한다.
‘유정을 널리 이롭게 하는 계’란 능히 유정을 도와서 여법하게 짓고 평등하게 죄가 없는 작업을 널리 퍼뜨려 유정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원한을 참는 인욕’이란 모든 유정을 계속 성숙하게 하는 원인이다.
‘고통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인욕’이란 성불의 원인[因]으로서 춥고 덥고 배고프고 목마른 갖가지 고통스러운 일들에 대해서 능히 퇴전함이 없이 참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법을 자세히 관찰하는 인욕’이란 앞의 두 인욕의 의지처이다. 왜냐하면 깊고 깊으며 넓고 큰 법을 감인하기 때문이다.
017_0224_c_04L此卽是戒,此能建立後二尸羅,由自防護能修供養佛等善根,及能饒益諸有情故.攝善法戒,能令證得力無畏等一切佛法.饒益有情戒,能助有情,如法所作平等分布無罪作業,成熟有情.耐怨害忍,是諸有情,成熟轉因,安受苦忍,是成佛因,寒熱飢渴,種種苦事,皆能忍受,無退轉故.諦察法忍,是前二忍所依止處,堪忍甚深廣大法故.
‘큰 서원을 일으키는 정진’이란 최초의 때에 스스로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은 일을 짓겠다”라고 책려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계경에서 설한 바, 처음에 “세력이 있다”라고 하는 구절을 해석하는 것이다.
‘가행의 정진’이란 말하자면 가행할 때에 의요하는 바에 따라 부지런히 가행을 수습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계경에서 설한 바, 다음에 “부지런함이 있다”라고 하는 구절을 해석하는 것이다.
‘겁약이 없고, 물러남이 없으며, 기뻐하며 만족해함이 없는 정진’이란 말하자면 의요에 따라서 지은바 착한 일은 마침내 묘한 보리좌에 앉을 때까지 끝내 버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시달리는 고통에 대해서 마음이 퇴굴하지 않는 것을 겁약이 없음이라 하고, 다른 이의 핍박과 시달림에 대해서 마음이 이동하지 않는 것을 물러남이 없음이라고 이름하며, 마침내는 보리에 이를 때까지 그 중간에 나아가 선품을 수습하고 일찍이 게으름이 없는 것을 기뻐하며 만족해함이 없음이라고 이름한다.
017_0224_c_13L被甲精進,謂最初時,自勵我當作如是事,卽是解釋契經所說初有勢句.加行精進,謂加行時,如所意樂勤修加行,卽是解釋契經所說次有勤句.無怯弱無退轉無喜足精進,謂隨意樂所作善事,乃至安坐妙菩提座,終不放捨.於自疲苦,心不退屈,名無怯弱,於他逼惱,心不移動,名無退轉.乃至菩提,於其中閒,進修善品,嘗無懈廢,名無喜足.
017_0225_a_01L이와 같은 세 구는 그 수대로 계경에서 설한 바 “용맹이 있고 굳건하게 맹리하여 모든 선법에 대한 멍에를 버리지 않는다”라고 하는 구절을 해석하는 것이다.
‘안주함의 정려’라고 하는 것은 현법낙주(現法樂住)22)를 얻기 위해서 아만[慢]과 사견[見]과 애착[愛]를 여의고 청정을 얻기 때문이다.
‘이끌어 내는 정려’란 능히 여섯 가지 신통 등 뛰어난 공덕을 끌어당겨 일으키는 것이다.
‘해야 할 바를 성취하는 정려’라고 하는 것은 모든 유정의 부류를 요익하기 위해서 능히 굶주리고 어려움에 시달리는 여러 가지 두려움 등의 고통스러운 일을 끊어 주기 때문이다.
‘무분별가행혜’란 말하자면 진리를 관하기 전의 뛰어난 방편지(方便智)이다.
‘무분별혜’는 말하자면 진리를 관하는 지혜이다.
‘무분별후득혜’는 말하자면 현관이 끝난 후[現觀邊]23)의 모든 세속지(世俗智)로서 능히 갖가지 설법 등의 일을 일으키는 것이다.
017_0224_c_23L如是三句,如數解釋契經所說,有勇堅猛,於諸善法,不捨軛句.安住靜慮,爲得現法樂住,離慢見愛得淸淨故.引發靜慮,爲能引發六神通等殊勝功德.成所作事靜慮,爲欲饒益諸有情類,以能止息飢儉疾疫諸怖畏等苦惱事故.無分別加行慧,謂眞觀前勝方便智.無分別慧,謂眞觀智.無分別後得慧,謂現觀邊諸世俗智,能起種種說法等事.
【論】이와 같이 서로 섭수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24) 이것에 의해서 능히 모든 선법을 섭수한다. 이는 그 양상[相]25)이기 때문이며, 수순(隨順)하기 때문이며, 등류(等流)이기 때문이다.
017_0225_a_09L論曰:如是相攝,云何可見?由此能攝一切善法,是其相故`是隨順故`是等流故.
【釋】‘이것에 의해서 능히 모든 선법을 섭수한다’란 이 답은 이치에 맞지 않는 답변이다. 왜냐하면 질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종합하여 ‘이와 같이 서로 섭수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고 물은 것에는 이러한 과실이 없다. 이것은 능히 모든 선법을 섭수한다고 설했으므로 그 뜻을 이미 설한 것이다. 저기에서도 또한 이 모든 선법을 섭수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보시 등과 믿음 등과 여러 가지 염주(念住) 등과 역(力) 등이 뒤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 양상이기 때문이며’란 체상(體相)을 섭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보시 등과 저 보시 등은 다시 서로 섭수한다는 것이다.
‘수순하기 때문이며’란 믿음 등에 수순하는 선법의 보시 등 선심을 섭수한다는 것이다. 저것은 수습하는 대상이기 때문이고 보시 등에서 저것은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믿음 등은 곧 선대지(善大地)26)이고 염주(念住) 등은 보리분법이다.
‘등류이기 때문이며’란 등류를 섭수한다는 것이다. 무쟁(無諍) 등과 10력(力) 등을 말한다. 이것은 도피안의 등류과(等流果)이기 때문이다. 27) 다음 게송에서 설한 것과 같다.
017_0225_a_12L釋曰:由此能攝一切善法者,此答非理,不如問故.前摠問言,如是相攝,云何可見?無此過失,說此能攝一切善法,其義已說.彼亦攝此一切善法者,謂施等信等諸念住等方等爲後.是其相故者,是攝體相,謂此施等與彼施等,更互相攝.是隨順故者,是攝隨順信等善法,施等善心,彼所修故,於施等中,彼隨轉故.信等卽是諸善大施及念住等菩提分法.是等流故者,是攝等流,謂無諍等及十力等,是到彼岸等流果故.如有頌言:
017_0225_b_01L
지위(地位)와 도피안은
모든 불법이 의지하는 것[所依]이며
전의(轉依)와 법신 등의
모든 공덕을 결과(果)로 삼네.
017_0225_b_01L地及到彼岸,
諸佛法所依,
轉依法身等,
諸功德爲果.

【論】이와 같이 다스려지는 것[所治]에 모든 잡염을 섭수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28) 이것은 이것의 양상이기 때문이며, 이것의 원인이기 때문이며, 이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釋】이와 같이 다스려지는 것인 인색과 계율을 범하는 것과 분에(忿恚)ㆍ해태(懈怠)ㆍ산동(散動)ㆍ악혜(惡慧)는 어떻게 능히 모든 잡염에 섭수되는가?
‘이것은 이것의 양상이기 때문이며’란 말하자면 인색 등과 차별을 섭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성은 타성과 분리되기 때문이다.
‘이것의 원인이기 때문이며’란 불신(不信) 등과 사견(邪見)이 뒤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색 등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017_0225_b_03L論曰:如是所治,攝諸雜染,云何可見?是此相故`是此因故`是此果故.釋曰:如是所治,慳悋`犯戒`忿恚`懈怠`散動`惡慧,云何能攝一切雜染?是此相故者,謂攝慳等差別自性,離他性故.是此因故者,謂不信等邪見,爲後慳等因故.
【論】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바라밀다로 얻게 되는 뛰어난 이익[勝利]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29) 말하자면 모든 보살은 생사를 유전하더라도 부귀를 섭수하기 때문에,30) 훌륭한 삶[大生]을 섭수하기 때문에,31) 널리 알려진 큰 권속[大朋大屬]을 섭수하기 때문에, 광대한 사업의 가행의 성취를 섭수하기 때문에, 모든 시달림과 해가 없고 진구(塵垢)를 경시하는 성품을 섭수하기 때문에, 잘 모든 공론명처(工論明處)를 아는 것을 섭수하기 때문에, 뛰어난 생(生)을 받아 죄가 없고 이에 묘한 보리좌에 편안히 앉을 때까지 항상 능히 현전에서 모든 유정의 모든 이익[義利]을 짓는다. 이를 뛰어난 이익이라고 이름한다.
017_0225_b_10L論曰:如是六種波羅蜜多,所得勝利,云何可見?謂諸菩薩,流轉生死,富貴攝故`大生攝故`大朋大屬之所攝故`廣大事業加行成就之所攝故`無諸惱害性薄塵垢之所攝故`善知一切工論明處之所攝故,勝生無罪,乃至安坐妙菩提座,常能現作一切有情一切義利,是名勝利.
017_0225_c_01L【釋】지금부터 바라밀다의 뛰어난 이익의 공덕을 드러내 설하리라.
‘부귀를 섭수하기 때문에’란 보시바라밀다에 의해서 얻게 되는 뛰어난 이익이다.
‘뛰어난 생을 받아 죄가 없고……이를 뛰어난 이익이라고 이름한다’란 모든 곳에 마땅히 두루 짝을 지어 연결시켜야 한다.
‘훌륭한 삶을 섭수하기 때문에’란 지계바라밀다에 의해 얻게 되는 뛰어난 이익이다. 뛰어난 살기 좋은 세계[善趣]를 섭수하기 때문에 ‘훌륭한 삶’이라고 이름한다.
‘널리 알려진 큰 권속[大朋大屬]을 섭수하기 때문에’란 인욕바라밀다에 의해서 얻게 되는 뛰어난 이익이다. ‘붕(朋)’이란 친족을 말하고 ‘속(屬)’이란 노비를 말한다.
‘광대한 사업의 가행의 성취를 섭수하기 때문에’란 정진바라밀다에 의해서 얻게 되는 뛰어난 이익이다.
017_0225_b_18L釋曰:今當顯說,波羅蜜多,勝利功德.富貴攝故者,是施波羅蜜多,所得勝利.勝生無罪,乃至是名勝利,於一切處,應遍配屬.大生攝故者,是戒波羅蜜多,所得勝利,勝善趣攝,故名大生.大朋大屬之所攝故者,是忍波羅蜜多,所得勝利.朋謂親族,屬謂奴婢.廣大事業加行成就之所攝故者,是精進波羅蜜多,所得勝利.
‘광대한 사업’이란 윤왕(輪王) 등을 말한다. 거기에서 책려하는 것을 ‘가행’이라고 이름하며, 지어야 할 것을 모두 다 처리하였기 때문에 ‘성취’라고 이름한다. 이것을 섭수하는 데에 걸림이 없다.
‘모든 시달림과 해가 없고 진구(塵垢)를 경시하는 성품을 섭수하기 때문에’란 정려바라밀다에 의해서 얻게 되는 뛰어난 이익이다. 정려에 의해서 이러한 위력을 감수한다.
‘잘 모든 공론명처(公論明處)를 아는 것을 섭수하기 때문에’란 혜바라밀다에 의해서 얻게 되는 뛰어난 이익이다.
‘뛰어난 생을 받아 죄가 없고’란 비록 똑같은 세간일지라도 최고로 뛰어난 생을 받는다는 것이다. 뛰어난 세간의 생과 같아서 죄가 있지 않다. 이미 죄가 있지 않을 때에 또한 가없고 끊임없이 상속하여 이에 보리에 이를 때까지, 세간과 같이 오직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항상 능히 현전하여 모든 유정의 모든 이익을 짓는다.
017_0225_c_04L廣大事業,謂輪王等.於中策勵,名爲加行,所作皆辦,故名成就,由此所攝,無所罣㝵.無諸惱害性薄塵垢之所攝故者,是靜慮波羅蜜多,所得勝利,由靜慮故,感此威力.善知一切工論明處之所攝故者,是慧波羅蜜多,所得勝利.勝生無罪者,雖同世閒,得最勝生,不如世閒勝生有罪.旣無有罪,時又無邊無閒相續,乃至菩提,非如世閒唯自利益,常能現作一切有情一切義利.
【論】이와 같이 여섯 가지 바라밀다가 서로 결택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32) 세존께서는 이 모든 여섯 가지 바라밀다에 대해서 혹 어떤 처소에서는 보시의 이름[施聲]으로써 설하고, 혹 어떤 처소에서는 계의 이름으로써 설하고, 혹 어떤 처소에서는 인욕의 이름으로써 설하고, 혹 어떤 처소에서는 정진[勤]의 이름으로써 설하고, 혹 어떤 처소에서는 선정의 이름으로써 설하고, 혹 어떤 처소에서는 지혜[慧]의 이름으로써 설하신다. 이와 같이 설한 것에는 어떠한 취지가 있는가? 말하자면 모든 바라밀다의 가행을 닦는 가운데에 모든 바라밀다가 있으며 상호 도와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것이 곧 취지이다.
017_0225_c_14L論曰:如是六種波羅蜜多,互相決擇,云何可見?世尊於此,一切六種波羅蜜多,或有處所,以施聲說,或有處所,以戒聲說,或有處所,以忍聲說,或有處所,以勤聲說,或有處所,以定聲說,或有處所,以慧聲說,如是所說,有何意趣?謂於一切波羅蜜多,修加行中,皆有一切波羅蜜多,互相助成.如是意趣.
017_0226_a_01L【釋】‘말하자면 모든 바라밀다의 가행을 닦는 가운데에 모든 바라밀다가 있으며 서로 도와서 이루어진다’란, 말하자면 하나하나에서 가행을 수습하는 가운데 곧 일체가 있고 다시 서로 돕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시를 닦을 때에 금하여 방어하고, 참아서 받아들이고, 책려하며, 마음을 오롯이 하고, 능히 잘 업과(業果)를 요지하여 상속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시 중에서도 즉 나머지 것이 전전함이 있다. 만약 계를 닦을 때에는 인색ㆍ분에ㆍ해태ㆍ산동ㆍ사견을 멀리 여읜다. 이와 같이 계 중에 즉 나머지 것이 전전함이 있다.
그 나머지 바라밀다를 수습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이 설한다. 다음 게송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017_0225_c_23L釋曰:謂於一切波羅蜜多,修加行中,皆有一切波羅蜜多,互相助成,如是意趣者,謂於一一修加行中,卽有一切,更互相助.謂修施時,禁防`忍受`策勵`專心`能善了知業果相屬,如是施中,卽有餘轉.若修戒時,遠離慳悋`忿恚`懈怠`散動`邪見,如是戒中,卽有餘轉.修習所餘波羅蜜多,亦如是說.如有頌言:

보시할 때에는 탐욕도 없고 계를 범함도 없으며
질투도 없고 성냄도 없이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네.
모든 내구(來求)자33)는 곧 시여(施與)하며
피곤함[惓]도 없고 혼란함도 없으며 다른 견해도 없다네.
017_0226_a_09L施時無貪無犯戒,
無嫉無恚起慈心,
諸來求者便施與,
無惓無亂無異見.

또 다음과 같은 게송에서 설한다.
017_0226_a_11L復有頌言:

보시의 성품 가운데 현전에 있나니,
여섯 가지 바라밀다가
재물의 보시, 두려움 없는 보시,
법의 보시에 의해서 섭수되기 때문이네.
017_0226_a_12L施性中現有,
六波羅蜜多,
財施無畏施,
法施所攝故.

【論】여기에 하나의 올타남(嗢拕南)34) 게송이 있다.
017_0226_a_14L論曰:此中有一嗢拕南頌:

숫자[數]와 양상[相]과 차례[次第]와
말[訓詞]과 닦음[修]과 차별과
섭수[攝]와 다스려지는 것[所治]과 공덕이
서로 결택함을 마땅히 알아야 하네.
017_0226_a_15L數相及次第,
訓詞修差別,
攝所治功德,
互決擇應知.

【釋】종합하여 앞의 문장을 섭수하는 것이다. 그 뜻은 위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017_0226_a_17L釋曰:摠攝前文,義如上釋.
6. 피수차별분(彼修差別分)
017_0226_a_18L攝大乘論釋,彼修差別分第六
017_0226_b_01L
【論】이와 같이 저기에 들어가는 인과에 대해서 이미 설하였다. 저것을 닦는 차별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35) 보살의 10지(地)에 의한다. 무엇 등을 10이라 하는가? 첫째는 극희지(極喜地), 둘째는 이구지(離垢地), 셋째는 발광지(發光地), 넷째는 염혜지(焰慧地), 다섯째는 극난승지(極難勝地), 여섯째는 현전지(現前地), 일곱째는 원행지(遠行地), 여덟째는 부동지(不動地), 아홉째는 선혜지(善慧地), 열째는 법운지(法雲地)이다.
이와 같이 여러 지위를 안립하여 열 가지로 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열 가지 무명이라 하는 다스려야 할 장애를 다스리기 위해서이다.
017_0226_a_19L論曰:如是已說,彼入因果,彼修差別,云何可見?由菩薩十地.何等爲十?一極喜地`二離垢地`三發光地`四焰慧地`五極難勝地`六現前地`七遠行地`八不動地`九善慧地`十法雲地.如是諸地,安立爲十,云何可見?爲欲對治十種無明所治障故.所以者何?以於十相所知法界,有十無明所治障住.
왜냐하면 열 가지 양상에 있어서 알아야 할 법계에 열 가지 무명이라 하는 다스려야 할 장애가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열 가지 양상의 알아야 할 법계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초지에서는 두루 행함[遍行]의 의미[義]에 의하고, 제2지에서는 가장 뛰어남[最勝]의 의미에 의하며, 제3지에서는 뛰어난 흐름[勝流]의 의미에 의하고, 제4지에서는 섭수가 없는[無攝受] 의미에 의하며, 제5지에서는 상속이 차별 없음[相續無差別]의 의미에 의하고, 제6지에서는 잡염과 청정이 없는 의미에 의하며, 제7지에서는 갖가지 법에 차별이 없는 의미에 의하고, 제8지에서는 증가도 감소도 없음[不增不減]의 의미와 상이 자재한 의지[相自在依止]의 의미와 국토가 자재한 의지[土自在依止]의 의미에 의하며, 제9지에서는 지혜가 자재한 의지[智自在依止]에 의하고, 제10지에서는 업이 자재한 의지[業自在依止]의 의미와 다라니문(陀羅尼門)ㆍ삼마지문(三摩地門)이 자재한 의지의 의미에 의한다. 여기에 대해서 세 게송이 있다.
017_0226_b_04L云何十相所知法界?謂初地中,由遍行義第二地中,由最勝義第三地中,由勝流義第四地中,由無攝受義五地中,由相續無差別義第六地中,由無雜染淸淨義第七地中,由種種法無差別義第八地中,由不增不減義`相自在依止義`土自在依止義九地中,由智自在依止義第十地中,由業自在依止義`陁羅尼門三摩地門自在依止義.此中有三頌:

두루 행함과 가장 뛰어남의 의미와
그리고 뛰어난 흐름의 의미와
이와 같은 섭수되지 않는 의미와
상속의 차별이 없는 의미와
017_0226_b_14L遍行最勝義,
及與勝流義,
如是無攝義,
相續無別義,

잡염과 청정이 없는 의미와
갖가지 차별이 없는 의미와
증가도 감소도 없는 의미와
네 가지 자재한 의지의 의미가 있네.
017_0226_b_16L無雜染淨義,
種種無別義,
不增不減義,
四自在依義,

법계 안에 열 가지는
염오가 없는 무명이네.
이 다스려야 할 장애를 다스리니
그러므로 10지를 안립하네.
017_0226_b_17L法界中有十,
不染污無明,
治此所治障,
故安立十地.
017_0226_c_01L
또한 이와 같은 무명은 성문 등에게는 염오가 아니지만 모든 보살에게는 염오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釋】알아야 할 양상에 들어가는 인과에 섭수되는 바라밀다는 그 상응하는 선(善)의 수습에 따라 능히 견도와 수도에 의해서 마땅히 끊어지는 장애를 제거할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인과의 수습위(修習位)의 차별을 논하는 것이다.
‘보살의 10지에 의한다’란 말하자면 모든 보살은 이 지위에서 현관을 수습하고, 과실을 여의며, 탐욕을 여의고, 보리분을 수습하며, 모든 진리를 관찰하고, 연기를 관찰하며, 공용이 있거나 공용이 없거나 무상(無相) 중에 뛰어난 변재(辯才)를 얻고, 진실한 관정(灌頂)을 체득하고, 소지장과 번뇌장 등을 제멸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수습위에 10지의 차별이 있는 것이다.
017_0226_b_18L復次應知,如是無明,於聲聞等染污,於諸菩薩是染污.釋曰:爲欲顯示入所知相因果所攝波羅蜜多,隨其所應善修習已,能除見修所應斷障,故辯因果修位差別.由菩薩十地者.謂諸菩薩,於此地中,修習現觀,離過離貪,修菩提分,觀察諸諦,觀察緣起,於無相中,若有功用,若無功用,得勝辯才,逮眞灌頂,除滅所知`煩惱障等,故此修位,有十地別.
‘열 가지 양상에 있어서’란 말하자면 두루 행함[遍行] 등이다.
‘알아야 할 법계’란 말하자면 열 가지 양상에 의해서 현현되는 법계이다. ‘열 가지 무명이라 하는 다스려야 할 장애가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란 말하자면 열 가지 양상에 있어서 열 가지 무명이라 하는 열 가지 다스려야 할 장애가 있어서 장애가 되어 머무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를 끊기 위해서 열 가지 양상의 지혜를 닦는 것이다. 열 가지 양상의 지혜에 의해서 10지의 법무아의 지혜에 들어갈 수 있다. 분위(分位)를 지(地)라고 이름한다.
017_0226_c_05L以於十相者,謂遍行等.所知法界者,謂由十相,所顯法界.有十無明所治障住者,謂於十相,有十無明,十所治障,爲障而住,爲斷此障,修十相智,由十相智,得入十地,法無我智分位名地.
‘말하자면 초지에서는 두루 행함의 의미[義]에 의하고’란 즉 초지에서는 일체의 법은 조그마한 법[少法]도 존재하지 않는 공(空)이면서 공이 아니기 때문에 ‘두루 행함’이라고 이름한다. 이러한 의미를 요지(了知)하여 초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제2지에서는 가장 뛰어남의 의미에 의하며’란 말하자면 이 공의 이치는 일체의 법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욕(離欲)을 가장 뛰어나다고 설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의미를 요지하면 2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제3지에서는 뛰어난 흐름의 의미에 의하고’란 말하자면 이 흘러가는 교법은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몸과 목숨을 버려 이 선설(善說)을 구하는 것을 어렵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를 요지하면 3지에 들어갈 수 있다.
017_0226_c_11L謂初地中,由遍行義者,卽初地中,一切法空,無有少法,而非是空,故名遍行,了知此義得入初地.第二地中,由最勝義者,謂此空理一切法中,最爲殊勝,如說離欲最爲殊勝,了知此義得入二地.第三地中,由勝流義者,謂此所流教法最勝故,捨身命求此善說,不以爲難,了知此義得入三地.
017_0227_a_01L‘제4지에서는 섭수가 없음의 의미에 의하고’란 말하자면 계경 등의 법에 대한 애착[法愛]을 끊기 때문에 나의 것[我所]을 계탁하지 않으니, 이것은 “자신도 아니고 남도 아닌 것을 섭수하는 것이다”라고 관하는 것이다. 이러한 뜻을 요지하면 4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제5지에서는 상속이 차별 없음의 의미에 의하고’란 이것은 색 등과 같이 상속하여 차별하지 않음을 요지한다. 이러한 의미를 요지하면 5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제6지에서는 잡염과 청정이 없는 의미에 의하고’란 말하자면 자성의 근본에 잡염이 없고 청정 또한 없다고 아는 것이다. 잡염을 우선으로 하여도 후에 가히 청정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뜻을 요지하면 6지에 들어갈 수 있다.
017_0226_c_18L第四地中,由無攝受義者,謂契經等,法愛斷故,不計我所,觀此非自非他所攝,了知此義得入四地.第五地中,由相續無差別義者,謂了知此非如色等相續差別,了知此義得入五地.第六地中,由無雜染`淸淨義者,謂知自性本無雜染,亦無淸淨,雜染爲先,後可淨故,了知此義得入六地.
‘제7지에서는 갖가지 법에 차별이 없는 의미에 의하고’란 계경 등에 갖가지 법의 차별이 있는 것과 같이 이것은 이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뜻을 요지하면 7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제8지에서는 증가도 감소도 없음의 의미에 의하고’란 말하자면 법 외에 작용이 없는 것은 증가하지 않는 까닭이며, 모든 법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감소하지 않는 까닭이다. 혹은 염법(染法)이 줄어들 때 이것에는 줄어듦이 없고, 정법(淨法)이 증가할 때 이것에는 증가함이 없다.
‘상(相)이 자재한 의지의 의미와 국토가 자재한 의지의 의미’란 말하자면 즉 이 제8지에서 증득하게 되는 법계는 두 가지 자재의 의지처가 된다는 것이다. 구하는 바의 양상에 따라 현전시키고자 하면 그 뛰어난 이해에 따라 곧 능히 현전하는 것을 상(相)의 자재함이라고 이름한다.
017_0227_a_03L第七地中,由種種法無差別義者,如契經等種種法別,此不如是,了知此義得入七地.第八地中,由不增不減義者,謂法外無用所以不增,諸法不壞所以不減,或染法減時,此無有減,淨法增時,此無有增.相自在依止義土自在依止義者,謂卽於此第八地中,所證法界是二自在,所依止處,隨所求相,欲令現前,如其勝解,卽能現前,名相自在.
희구하는 바에 따라 금 등의 보배로운 땅을 그 뛰어난 이해에 따라 곧 능히 현전시키는 것을 국토의 자재함이라고 이름한다. 앞의 여러 지위 중에서도 또한 이 무차별에 머무는 것을 얻지만 공용을 지어서 후에 비로소 성취하게 된다. 이 지위에서는 능히 의식적인 노력이 없이도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곧 성취하므로 자재라고 이름한다. 이러한 뜻을 요지하면 제8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제9지에서는 지혜가 자재한 의지의 의미에 의하고’란 말하자면 이 지위에서는 변재에 걸림이 없는[無礙辯] 의지처를 얻기 때문이다. 분위(分位)에서 지바라밀다를 증득하여 모든 법에 대해서 그 언설을 따르지 않고 능히 모든 의취의 의미를 잘 요지하며 여실하게 모든 유정을 성숙하게 하여 뛰어난 법락을 받게 한다. 이러한 뜻을 요지하면 9지에 들어갈 수 있다.
017_0227_a_13L隨所希求金等寶土,如其勝解,則能現前,名土自在.前諸地中,雖亦得此無差別住,然作功用後乃得於此地中,能無功用隨欲卽成,故名自在.了知此義入第八地.第九地中,由智自在依止義者,謂此地中,得無㝵辯所依止故,分證得智波羅蜜多,於一切法,不隨其言,善能了知諸意趣義,如實成熟一切有情受勝法樂,了知此義得入九地.
017_0227_b_01L‘제10지에서는 업이 자재한 의지[業自在依止]의 의미에 의한다’란 말하자면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신(身)ㆍ어(語)ㆍ의(意)의 업용(業用)의 자재를 얻는다는 것이다. 다섯 가지 신통에 의하고 스스로 지은 업에 따라서 모든 것을 능히 이루며, 문의(文義)를 지니고 있는 모든 다라니의 자재력을 얻기 때문에 능히 모든 부처님께서 선설하신 문의의 의미를 잊어버리지 않고 지닌다. 삼마지의 자재력을 얻기 때문에 모든 선정[等至]에서 능히 지니며 능히 끊는다. 그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허공장 등 모든 삼마지(三摩地)ㆍ삼마발저(三摩鉢底)36)는 그러므로 능히 현전한다.
017_0227_a_22L第十地中,由業自在等依止義者,謂隨所欲,得身`語`意業用自在,依五神通,隨自作業,皆能成辦,得文義持諸陁羅尼自在力故,能持一切佛所宣說文義無忘得三摩地自在力故,於諸等至,能持能斷,隨其所欲,虛空藏等,諸三摩地,三摩鉢底,而能現前.
제10지에서 증득되는 법계는 이와 같은 등의 자재의 의지처이다. 이런 의미를 요지하면 10지에 들어갈 수 있다.
‘이와 같은 무명은 성문 등에게는 염오가 아니지만’이란 끊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저 능히 다스리는[能治] 지위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며 그 열반에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보살에게는 염오이다’란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끊어지는 것이란 바로 저 능히 다스리는 지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보살이 구하는 바 일체종지(一切種智)는 이와 같은 무명이 능히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초지에 들어갈 때 이미 모든 법계에 통달하게 되는데 무슨 까닭에 계속 그 뒤에 차별을 세우는가? 모든 머무름의 현행을 현시하기 위해서 계속 그 뒤에 여러 지위의 차별을 세우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소득(所得)의 법계와 같이 뛰어난 머무름에 안주하는 품의 분류를 현행시키기 위해서이며, 오직 증득하는 것에서만 곧 기쁨[喜足]을 생하여 만족[坦然]하게 머무는 것이 아니다.
017_0227_b_06L第十地中,所證法界,是如此等,自在所依,了知此義得入十地.如是無明,於聲聞等非染污者,非所斷故,非所斷者,不爲入彼能治地故,於其涅槃,不爲障故.於諸菩薩,是染污者,是所斷故,是所斷者,正爲入彼能治地故,菩薩所求一切種智,如是無明,能爲障故.入初地時,已得通達一切法界,何故復立後後差別?爲欲顯示諸住現行,故立後後諸地差別.謂爲安住如其所得法界勝住品別現行,非唯證得便生喜足坦然而住.
017_0227_c_01L【論】또한 무슨 까닭에 초지를 극희(極喜)라고 설하는가?37) 이것에 의하여 최초로 자신과 남의 이익을 성취하는 뛰어난 공덕을 얻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2지를 이구(離垢)라고 설하는가? 계를 범하는 번뇌[垢]를 매우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3지를 발광(發光)이라고 설하는가? 퇴전함이 없는 등지(等持)38)ㆍ등지(等至)39)가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큰 법의 광명이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4지를 염혜(焰慧)라고 설하는가? 모든 보리분법40)모든 장애를 태워 없애기 때문이다.
017_0227_b_18L論曰:復次何故,初地說名極喜?由此最初得能成辦自他義利勝功德故.何故二地說名離垢?由極遠離犯戒垢故.何故三地說名發光?由無退轉等持等至所依止故,大法光明所依止故.何故四地說名焰慧?由諸菩提分法焚滅一切障故.
무슨 까닭에 5지를 극난승(極難勝)이라고 설하는가? 진제(眞諦)의 지혜와 세간의 지혜는 다시 상호 서로 어긋나서 이와 같이 합하기 어려운 것을 합하여 상응시키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6지를 현전(現前)이라고 설하는가? 연기의 지혜를 의지처로 삼아서 능히 반야바라밀다로 하여금 현전시키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7지를 원행(遠行)이라고 설하는가? 의식적인 노력[功用]의 행이 마지막 끝에 이르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8지를 부동(不動)이라고 설하는가? 모든 모습[相]과 의식적인 노력이 있는 행이 능히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9지를 선혜(善慧)라고 설하는가? 가장 뛰어난 걸림 없는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10지를 법운(法雲)이라고 설하는가? 일체의 법을 반연하는 지혜를 모두 얻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다리니문과 삼마지문을 포함하니, 비유하면 큰 구름[大雲]과 같아서 능히 허공과 같이 광대한 장애를 덮기 때문이다. 또한 법신에 대해서 능히 원만하기 때문이다.
017_0227_c_02L何故五地名極難勝?由眞諦智與世閒智更互相違,合此難合,令相應故.何故六地說名現前?由緣起智爲所依止,能令般若波羅蜜多,現在前故.何故七地說名遠行?至功用行最後邊故.何故八地說名不動?由一切相有功用行不能動故.何故九地說名善慧?由得最勝無㝵智故.何故十地說名法雲?由得摠緣一切法智,含藏一切陁羅尼門,三摩地門,譬如大雲,能覆如空廣大障故,又於法身,能圓滿故.
【釋】소리가 전전하는 원인41)에 의지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설명을 하는 것이다.
‘이것에 의하여 최초로 자신과 남의 이익을 성취하는 뛰어난 공덕을 얻기 때문이다’란 말하자면 보살이 현관에 들어가는 때와 같은 것은 능히 자신과 남의 이익을 성취하는 가장 뛰어난 공능을 얻어서 지극한 환희를 내는 것이다. 성문 등이 현관에 들어갈 때는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성취하는 공능을 얻고 이와 같은 기쁨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러한 경우를 극희지라고 설하지 않는다. 만약 초지에 상응하지 않는 자는 이후의 여러 지위에서도 또한 상응하지 않는다. 이 극희지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017_0227_c_13L釋曰:依聲轉因,故作是說,由此最初得能成辦自他義利勝功能故.謂如菩薩,入現觀時,得能成辦自他義利,最勝功能生極歡喜,非聲聞等入現觀時唯得成辦自利功能生如是喜,故不說彼名極喜地.若初地中,不相應者,自後諸地,亦不相應,此爲先故.
017_0228_a_01L‘계를 범하는 번뇌를 매우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란 말하자면 이 지위에서는 성계(性戒)42)를 이루기 때문에 모든 계를 훼손하는 더러운 번뇌[穢垢]를 멀리 여읜다.
‘퇴전함이 없는 등지(等持)ㆍ등지(等至)가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며’란 말하자면 이 지위에서는 희유(希有)의 선정을 증득하고 능히 지혜의 빛을 내어서 모든 법을 비추기 때문에 발광이라고 이름한다. 이미 얻은 것을 잃지 않는 것을 ‘퇴전함이 없는’이라고 하며, 모든 정려의 선정(定)을 등지(等持)라고 설하며, 모든 무색정을 등지(等至)라고 설하는 것이다. 흑은 등지(等持)란 심일경(心一境)의 모습[相]이며, 등지(等至)라고 말하는 것은 정수(正受)43)를 현전하는 것이다.
017_0227_c_20L由極遠離,犯戒垢者,謂此地中,性戒成故,遠離一切毀戒穢垢.由無退轉等持等至所依止者,謂此地中,證希有定,能發智光照了諸法,故名發光.得已不失,名無退轉,諸靜慮定,說名等持,諸無色定,說名等至.或等持者,心一境相.言等至者,正受現前.
‘큰 법의 광명이 의지하는 것’이란 말하자면 이 지위에서는 선정과 상응하여 퇴전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대승의 계경 등의 법에 대해서 지혜의 광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지위는 저 의지처[所依]의 원인[因]이기 때문에 ‘발광’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염혜(焰慧)’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이 지위에는 지혜의 불꽃이 있기 때문에 염혜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모든 보리분법을 모두 불꽃[焰]이라고 이름하니, 왜냐하면 모든 장애를 태우기 때문이다. 이 보리분에 많이 안주할 때 모든 번뇌로 하여금 다 없어지게 한다.
‘극난승(極難勝)’이란 매우 어려워도 가히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017_0228_a_04L大法光明所依止者.謂此地中,與定相應無退轉故,於諸大乘契經等法得智光明,此地是彼所依因故,名爲發光.言焰慧者,謂此地中,有慧焰故,名爲焰慧.此卽一切菩提分法,皆名爲焰,燒諸障故.此菩提分,多安住時,令諸煩惱,皆成灰燼.極難勝者,最難可勝.
말하자면 진제(眞諦)의 지혜는 분별이 없고 세속의 서인공론(書印工論) 등의 지혜44)는 분별이 있어서 진제와 속제의 지혜는 다시 서로 어긋나서 끌어당기기 어렵지만, 그것으로 하여금 상응시키고 이것을 능히 화합하여 서로 어긋나지 않게 하기 때문에 극난승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전(現前)’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뛰어난 반야도피안에 머물러서 현전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지위에서는 연기를 증득하여 머무르고 연기의 지혜의 힘으로 하여금 분별이 없게끔 하여 가장 뛰어난 반야도피안에 머물러 자재하게 현전하며, 염오도 없고 청정도 없는 일체의 법을 아는 것이다.
‘원행(遠行)’이라고 하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의 작용이 마지막 끝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지위에서는 모든 의식적인 노력의 작용이 가장 구경이 된다. 모든 법상(法相)은 비록 움직일 수 없지만 무상(無相)에 오히려 공용이 있다.
017_0228_a_11L謂眞諦智,是無分別,世閒書印工論等智,是有分別,眞俗諦智,更互相違,難可引發,令其相應,此能和合,令不相違,故極難勝.言現前者,最勝般若到彼岸住,現在前故,謂此地中,證緣起住,緣起智力,令無分別最勝般若到彼岸住,自在現前,知一切法無染無淨.言遠行者,至功用行最後邊故,謂此地中,諸功用行,最爲究竟,一切法相,雖不能動,而於無相,猶有功用.
017_0228_b_01L‘부동(不動)’이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모든 모습과 모든 작용은 모두 다 저 마음을 능히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제7지 중의 모든 모습은 현행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전전하여 가행이 있기 때문이다. 8지 중에서는 자유자재로 움직여서 전전하니 가행을 짓지 않고 의식적인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7지와 8지 두 지의 차별이라고 한다.
‘선혜(善慧)’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가장 뛰어난 4무애해(無礙解)를 얻는 것이다. 무애해의 지(智)는 모든 지(智) 중에서 가장 수승한 것이며 지 그 자체가 혜(慧)이기 때문에 ‘선혜’라고 이름한다.
017_0228_a_21L言不動者,謂一切相,及一切行,皆悉不能動彼心故.第七地中,雖一切相,所不能動,不現行故然不自在,任運而轉,有加行故.第八地中,任運而轉,不作加行,無功用故.是名七`八二地差別.言善慧者,謂得最勝四無㝵解,無㝵解智,於諸智中,最爲殊勝,智卽是慧,故名善慧.
4무애란 법(法)ㆍ의(義)ㆍ사(詞)ㆍ변(辯)이다. 법무애자재에 의해서 모든 법구(法句)를 요지하고, 의무애자재에 의해서 모든 의리(義理)에 통달하며, 4무애자재에 의해서 모든 언사(言詞)를 분별하고, 변무애에 의해서 두루 시방에서 그 적당한 것에 따라 자재하게 잘 말한다. 이 지위에서는 최초로 앞에서 일찍이 얻지 못했던 무애해지를 얻기 때문에 선혜라고 이름한다.
‘법운(法雲)’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일체의 법을 반연하는 지혜를 얻었기 때문에 진여와 분리되지 않는 모든 계경 등의 법을 다 반연한다.
017_0228_b_06L四無㝵者,法`義`詞`辯.由法無㝵,自在了知一切法句,由義無㝵,自在通達一切義理,由詞無㝵,自在分別一切言詞,由辯無㝵,遍於十方隨其所宜自在辯說.於此地中最初證得先未曾得無㝵解智,故名善慧.言法雲者,由得摠緣一切法智,摠緣一切契經等法,不離眞如.
이러한 일체의 법과 공상(共相)인 경지(境智)는 비유하면 큰 구름[大雲]과 같고 다라니문, 삼마지문은 마치 청정한 물과 같아서 지혜는 능히 저것을 갖추니 구름이 물을 머금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저 뛰어난 공능을 생기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큰 구름이 허공을 부은(覆隱)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을 모두 다 반연하는 지혜는 허공과 같이 광대하고 끝이 없는 혹(惑)ㆍ지(智)의 두 가지 장애45)를 부은한다. 부은이라고 하는 것은 막는다는 의미이며 끊는다는 의미이다. 또한 큰 구름은 청량한 물을 허공에 충만하게 흘러내리게 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을 모두 반연하는 지혜는 한량없는 뛰어난 공덕을 출생하여 증득한바 소의의 법신에 충만하다.
017_0228_b_13L此一切法,共相境智,譬如大雲,陁羅尼門,三摩地門,猶如淨水,智能藏彼,如雲含水,有能生彼勝功能故.又如大雲,覆隱虛空,如是摠緣一切法智,覆隱如空廣大無邊惑智二障.言覆隱者,隔義斷義.又如大雲,澍淸冷水,充滿虛空,如是摠緣一切法智,出生無量殊勝功德,充滿所證所依法身.
017_0228_c_01L【論】이러한 여러 지위를 얻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46) 네 가지 양상[相]에 의한다. 첫째는 뛰어난 이해를 얻는 것이니, 말하자면 모든 지위에서 깊은 믿음[信]과 이해[解]를 얻기 때문이다. 둘째는 바른 행[正行]을 얻는 것이니, 말하자면 여러 지위와 상응하는 열 가지 바른 법의 행47)을 얻기 때문이다. 셋째는 통달을 얻는 것이니, 말하자면 초지에서 법계를 통달할 때 일체 지위에 두루 능히 통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원만히 성취함[成滿]을 얻는 것이니, 말하자면 여러 지위를 닦아서 구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017_0228_b_21L論曰:得此諸地,云何可見?由四種相:一得勝解,謂得諸地深信解故二得正行,謂得諸地相應十種正法行故三得通達,謂於初地,達法界時,遍能通達一切地故四得成滿,謂修諸地到究竟故.
【釋】여러 지위를 얻음에 의지하여, 이와 같은 말을 설하는 것이다.
‘네 가지 양상에 의한다. 첫째는 뛰어난 이해를 얻는 것이니, 말하자면 모든 지위에서 깊은 믿음과 이해를 얻기 때문이다’란 지위의 교법에 대해서 결정하고 인가(印可)하며 진실함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둘째는 바른 행을 얻는 것이니, 말하자면 여러 지위와 상응하는 열 가지 바른 법의 행을 얻기 때문이다’란 교법에 대해서 열 가지 법의 행을 얻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여러 지위와 상응하는 교법에 대해서 베껴 쓰고[書寫] 공양하고 계속 보시하고[轉施] 청문하고 펼쳐서 읽으며[披讀] 받아 지니고[受持] 열어 보이고[開示] 읊고[諷誦] 사유하고, 수습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통달을 얻는 것이니, 말하자면 초지에서 법계를 통달할 때 일체 지위에 두루 능히 통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란 만약 초지에서 바르게 통달할 때는 속히 뒤에 있는 모든 지위에서 능히 통달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종류이기 때문이다.
다음 게송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017_0228_c_04L釋曰:依得諸地,說如是言,由四種相.一得勝解,謂得諸地深信解者,於地教法,決定印可眞實如是.二得正行,謂得諸地相應十種正法行者,得於教法.十種法行,謂於諸地相應教法,書寫`供養`轉施`聽聞`披讀`受持`開示`諷誦`思惟`修習.三得通達,謂於初地,達法界時,遍能通達一切地者,若於初地,正通達時,速能通達後一切地,此種類故.如有頌言:
대나무의 첫 마디를 꺾으면
나머지 마디는 속히 꺾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초지의 진지(眞智)를 얻으면
모든 지위를 속히 이룰 수 있으리.
017_0228_c_14L如竹破初節,
餘節速能破,
得初地眞智,
諸地疾當成.

‘넷째는 원만히 성취함을 얻는 것이니, 말하자면 여러 지위를 닦아서 구경에 이르기 때문이다’란 지위와 지위에서 과분(果分)을 원만히 이루고 또는 최후를 원만히 이루는 것이다.
017_0228_c_16L四得成滿,謂修諸地,到究竟者,謂地地中,果分成滿,或最後滿.
017_0229_a_01L【論】이러한 여러 지위를 닦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말하자면 모든 보살은 지위와 지위 중에서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를 닦는 데에 있어 다섯 가지 양상의 수습에 의한다. 어떤 것들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총체적인 것을 일으키는 수습[集總修]ㆍ형상 없음의 수습[無相修]ㆍ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수습[無功用修]ㆍ맹렬한 수습[燃盛修]ㆍ기뻐하고 만족함이 없는 수습[無喜足修]을 말한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수습은 모든 보살로 하여금 다섯 가지 증과를 성취하게 한다.
말하자면 생각생각 가운데 모든 추중(麤重)48)의 의지를 없애며, 갖가지 생각[想]을 여의어 법원(法苑)49)의 즐거움을 얻으며, 능히 바르게 두루하고 한량없고 분한(分限)의 모습[相]이 없는 큰 법의 광명을 바르게 요지하며, 청정분에 수순해서 분별함이 없는 무상(無相)50)을 현행하고, 법신을 원만히 이루게 하기 위해서 능히 바르게 뒤에 계속해서 뛰어난 원인[勝因]을 섭수한다.
017_0228_c_18L論曰:修此諸地,云何可見?謂諸菩薩,於地地中,修奢摩他`毘鉢舍那,由五相修.何等爲五?謂集摠修`無相修`無功用修`熾盛修`無喜足修,如是五修,令諸菩薩,成辦五果.謂念念中,銷融一切麤重依止,離種種想,得法苑樂,能正了知,周遍無量無分限相大法光明,順淸淨分無所分別無相現行,爲令法身圓滿成辦能正攝受後後勝因.
【釋】‘지위와 지위 중에서’란 말하자면 여러 지위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중복하여 말하는 것이다.
‘사마타’란 말하자면 모든 산란한 움직임을 능히 다스리는 선정[定]이다.
‘비발사나’란 말하자면 모든 전도를 능히 다스리는 혜(慧)이다. 지위와 지위 중에서 이와 같은 두 가지 지위를 닦는 데에 있어서 모두 다섯 가지 양상에 의해서 자주자주 수습한다.
다섯 가지 양상이란 즉 총체적인 것을 일으키는 수습[集總修] 등이다. ‘집총수’란 말하자면 모든 것을 모아서 긴요한 것을 가려서 한 무더기로 하여 수습하는 것이다. 나머지 골쇄 등의 현상의 경계관도 또한 모두 모아서 종합적으로 요약하여 한 무더기로 하여 수습한다.
저것과 구분하기 위해서 ‘형상 없음의 수습’을 설하는 것이다. 여러 모습[衆相]을 여읜 진실한 법계에서 현상[事]의 차별을 없애고 수습하기 때문이다.
017_0229_a_05L釋曰:於地地中者,謂諸地非一,故作重言.奢摩他者,謂能對治諸散動定.毘鉢舍那者,謂能對治諸顚倒慧.於地地中,修此二種,皆由五相數數修習,五相卽是集摠修等.集摠修者,謂集一切,摠爲一聚,簡要修習,餘骨鎖等,事境界觀,亦集一切,摠爲一聚,要略修習,爲簡彼故,說無相修,於離衆相,眞法界中,遣事差別,而修習故.
형상 없음의 수습에는 어떤 경우에 의식적인 노력이 있지만 이 수습에는 공력을 빌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다음에 다시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수습’을 설하는 것이다. 의식적인 노력을 짓는 것을 떠나서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비록 의식적인 노력이 없이 자유자재로 수습할지라도 어떤 경우에는 뛰어나고 어떤 경우에는 열세한 두 가지 종류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네 번째로 ‘맹렬한 수습’을 설하는 것이다. 맹렬한 수습이라고 하는 것은 즉 증가함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비록 맹렬하게 수습 할지라도 어떤 경우에는 적게 얻었는데도 곧 기쁨[喜足]을 생하여 “또한 이것을 닦으면 나머지 것들은 무슨 소용이 있으랴”라고 말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기쁘게 만족함이 없는 수습’을 설하는 것이다.
017_0229_a_14L無相修,或有功用,爲顯此修,不藉功力,任運而轉,故次復說,無功用修,離作功用,任運轉故.雖無功用,任運而修,或勝或劣,二種不定故,復第四說熾盛修.言熾盛者,卽是增勝.雖熾盛修,或少所得,便生喜足,謂且修此,餘何用爲?故最後說,無喜足修
017_0229_b_01L단지 무상(無相)과 무공용(無功用)에서만 맹렬하게 닦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최상의 불과를 증득하는 것인가라고 하면 마땅히 부지런하게 수습하는 것이다.
‘모든 추중의 의지를 없애며’란 아뢰야식을 추중의 의지라고 이름한다. 저 아뢰야식의 더미[聚]를 손괴(損壞)하기 때문에 ‘없앤다’고 말한다. 매우 좋은 약이 모든 병괴(病塊)를 없애는 것과 같다.
‘갖가지 생각을 여의어 법원의 즐거움을 얻으며’란 나를 여의고 부처님과 법 등의 모습[相]과 생각[想]을 여의는 것이다. ‘원(苑)’이란 그 가운데에서 놀고 장난할 수 있는 곳을 말하며, ‘법(法)’이란 법계를 말한다. 법은 곧 원이기 때문에 ‘법원(法苑)’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희락을 법원의 즐거움이라고 하며, 이것을 증득하기 때문에 법원의 즐거움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왕궁의 바깥에 있는 높고 묘한 원원(苑園)에서 유희하면 뛰어난 희락을 얻는 것과 같이 법계 또한 이와 같다.
017_0229_a_21L非但無相及無功用熾盛而修.何者?爲證最上佛果,應勤修習.銷融一切麤重依止者,阿賴耶識,名麤重依止,損壞彼聚,故名銷融,如大良藥,銷諸病塊.離種種想,得法苑樂者,離我離法,佛等相想.苑謂於中,可以遊翫,法謂法界,法卽是苑,故名法苑,於此喜悅,名法苑樂,證此故,名得法苑樂.如王宮外,上妙苑園,遊戲其中,受勝喜樂,法界亦爾.
‘능히 바르게 두루하고 한량없고 분한의 모습이 없는 큰 법의 광명을 바르게 요지하며’란 말하자면 바르게 끝없는 시방의 분량 없는 모습에 통달하는 비춤의 작용이기 때문에 ‘법의 광명’이라고 한다. 잘 문자를 외우고 익히는 것이 광명과 같다.
‘청정분에 수순해서 분별함이 없는 무상(無相)을 현행하고’에서 ‘청정분’이란 미래의 불과를 이름하고 이것은 저것을 능히 이끌기 때문에 ‘수순해서’라고 하는 것이며, ‘분별함이 없는 무상을 현행’ 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나 전륜성왕의 곱고 흰 일산 등과 같다.
‘법신을 원만히 이루게 하기 위해서 능히 바르게 뒤에 계속해서 뛰어난 원인을 섭수한다’에서 ‘원만’이라고 하는 것은 제10지를 말하며, ‘이룬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지위에 있을 경우를 말한다. 이것을 감수하는 원인이 가장 뛰어난 것을 ‘뛰어난 원인’이라고 설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앞에 있는 여러 가지 원인이 소집되기 때문에 ‘뒤에 계속해서’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수습은 그 수량에 따라서 다섯 가지 증과를 얻는다.
017_0229_b_08L能正了知周遍無量無分限相大法光明者,謂正通達十方無邊無分量相,顯照行故,名法光明,如善誦習文字光明.順淸淨分無所分別無相現行者,當來佛果,名淸淨分,此能引彼,故名爲順.無所分別無相現行,如佛輪王鮮白蓋等.爲令法身圓滿成辦能正攝受後後勝因者,謂第十地,說名圓滿,若在佛地,說名成辦,感此之因最爲殊勝,說名勝因,前前諸因,所招集故,說名後後.如是五修,隨其數量,得五種果.
017_0229_c_01L【論】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10지 가운데 별도로 닦는 열 가지 바라밀다를 설한다. 앞의 여섯 지위에서 닦게 되는 여섯 가지 바라밀다는 앞에서 이미 설한 것과 같다.
뒤의 네 지위에서 닦게 되는 네 가지는 첫째가 훌륭한 방편(方便)바라밀다이다. 말하자면 앞의 6바라밀다에서 모아진 선근을 모든 유정과 함께 돌려서 무상정등보리를 구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서원[願]바라밀다이다. 말하자면 갖가지 미묘한 대원(大願)을 내어 미래의 바라밀다의 뛰어난 여러 조건[衆緣]을 끌어당겨 섭수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힘[力]바라밀다이다. 말하자면 사색하여 간택함[思擇]과 수습의 두 가지 힘에 의해서 앞의 여섯 가지 바라밀다로 하여금 끊임없이 현행시키기 때문이다.
017_0229_b_19L論曰:由增勝故,說十地中,別修十種波羅蜜多.於前六地,所修六種波羅蜜多,如先已說.後四地中,所修四者,一方便善巧波羅蜜多,謂以前六波羅蜜多,所集善根,共諸有情,迴求無上正等菩提故二願波羅蜜多,謂發種種微妙大願,引攝當來波羅蜜多,殊勝衆緣故三力波羅蜜多,謂由思擇修習二力,令前六種波羅蜜多,無閒現行故
넷째는 지(智)바라밀다이다. 말하자면 앞의 여섯 가지 바라밀다에 의해서 묘지(妙智)를 이루고 법의 즐거움을 수용하여 유정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또 이 네 가지 바라밀다는 반야바라밀다의 무분별지와 후득지에 섭수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한 모든 지위에서 모든 바라밀다를 수습하지 않음이 없다. 이와 같은 법문은 바라밀다장(波羅蜜多藏)에 섭수되는 것이다.
017_0229_c_06L四智波羅蜜多,謂由前六波羅蜜多,成立妙智受用法樂,成熟有情故.又此四種波羅蜜多,應知般若波羅蜜多,無分別智`後得智攝.又於一切地中,非不修習一切波羅蜜多.如是法門,是波羅蜜多藏之所攝.
【釋】‘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10지 가운데 별도로 닦는 열 가지 바라밀다를 설한다’란 말하자면 결정적으로 수습의 차별의 뜻을 설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하나의 지위 중에서 모두 열 가지 바라밀다를 닦는다. 그러므로 마땅히 단지 이 지위에서만 이 바라밀다를 닦는다고 결정적으로 설해서는 안 된다. 매우 뛰어나다고 하는 말에 의해서 이러한 과실이 없다. 여기에서는 단지 매우 뛰어난 수습의 의미를 설할 뿐 나머지를 닦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과 같이 계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초지는 보시바라밀다를 가장 뛰어난 것으로 삼지만 그 나머지 모든 바라밀다를 수습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힘에 따르고 분위(分位)에 따른다.…… (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017_0229_c_11L釋曰:由增勝故,說十地中,別修十種波羅蜜多者,謂決定說,修差別義,爲不爾耶?一一地中,具修十種波羅蜜多,是故不應但決定說此地修此波羅蜜多,由增勝言,無此過失.此中但說,增勝修義,不遮修餘,如契經說:初地布施波羅蜜多,最爲增勝,其餘一切波羅蜜多,非不修習,隨力隨分,乃至廣說.
017_0230_a_01L‘앞의 여섯 지위에서 닦게 되는 여섯 가지 바라밀다는 앞에서 이미 설한 것과 같다’란 극희 등 앞의 여섯 지위에서 보시 등 6바라밀을 닦는다는 것이다.
‘뒤의 네 지위에서 닦게 되는 네 가지’란 원행 등의 뒤의 네 지위에서 방편 등의 네 가지 바라밀을 닦는다는 것이다.
‘훌륭한 방편’이란 생사를 버리지 않고 열반을 구하면 즉 훌륭한 방편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만약 앞의 6바라밀다에 의해 모아진 선근을 모든 유정과 함께 하면 모든 유정을 요익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유정을 저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생사를 버리지 않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이것으로써 무상정등보리를 잘 돌려 구한다면 위없는 불보리를 증득하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열반을 희구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7_0229_c_20L於前六地,所修六種波羅蜜多,如先已說者,謂極喜等,前六地中,修布施等六到彼岸.後四地中,所修四者,謂遠行等,後四地中,修方便等四到彼岸.方便善巧者,謂不捨生死而求涅槃,是則說名方便善巧.若以前六波羅蜜多,所集善根,共諸有情,爲欲饒益諸有情故,不捨有情,當知卽是不捨生死.若以此善迴求無上正等菩提,爲證無上佛菩提故,當知卽是希求涅槃.
‘말하자면 갖가지 미묘한 대원(大願)을 내어 미래의 바라밀다의 뛰어난 여러 조건을 끌어당겨 섭수한다’라고 하는 것은 미래세의 바라밀다[到彼岸]의 연을 구하고, 또한 모든 유정을 요익되게 하기 때문이며, 속히 불과의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원을 지어서 말하기를, “만약 이곳에 바라밀다[到彼岸]의 연(緣)이 있으면 나는 미래에도 저기에 반드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등의 원이 한량없고 끝없기 때문에 ‘갖가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색하여 간택과 수습의 두 가지 힘에 의해서’는 이 힘 중에서 대략 두 가지를 설한다. 그 나머지 여러 가지 힘 또한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앞의 6바라밀다에 의해서 묘지(妙智)를 이루고 법의 즐거움을 수용하여 유정을 성숙시킨다’란 보시 등의 여섯 가지에 의해서 이러한 지혜를 이루고, 또한 이러한 지혜에 의해서 여섯 가지를 성립한다는 것이다.
017_0230_a_07L謂發種種微妙大願,引攝當來波羅蜜多殊勝衆緣者,求未來世到彼岸緣,亦爲饒益諸有情故,及爲速證佛果涅槃,作是願言:若是處有到彼岸緣,願我未來當生於彼.如是等願無量無邊,故言種種.謂由思擇修習二力者,於此力中,且說二種,其餘諸力,亦攝在中.謂由前六波羅蜜多,成立妙智,受用法樂,成熟有情者,由施等六,成立此智,復由此智,成立六種.
이른바 숫자의 모습[數相] 등의 여러 가지 품류를 즉 ‘법의 즐거움을 수용하여’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묘지(妙智)에 의해서 능히 바르게 이러한 보시와 이러한 지계와 이러한 인욕과 정진 등을 요지하는 것이다. 듣는 바의 법과 같이 모든 유정의 부류를 요익하게 하는 것을 즉 ‘유정을 요익되게 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또 이 네 가지 바라밀다는……후득지에 섭수되는 것이다’란 말하자면 여기에서 설해진 방편 등의 네 가지는 무분별후득지에 섭수된다는 것이다. 만약 열 가지 바라밀다를 세우면 여섯 번째 반야만이 근본무분별지이다.
017_0230_a_17L謂數相等,種種品類,是則名爲受用法樂.由此妙智,能正了知此施此戒此忍進等,如所聞法,饒益一切有情之類,是則名爲饒益有情.又此四種波羅蜜多,乃至後得智攝者,謂此所說,方便等四,是無分別後得智攝.若立十種波羅蜜多,第六般若,唯是根本無分別智.
017_0230_b_01L만약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세우면 여섯 번째 반야는 무분별지와 후득지의 두 가지 지혜에 포함된다. 왜냐하면 후득지 중에 네 가지 바라밀다 또한 여섯 번째 반야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법문은 바라밀다장(波羅蜜多藏)에 섭수되는 것이다’란 모든 대승의 교법은 모두 다 바라밀다장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10지 법문은 저 장(藏)에 섭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하나의 지위는 다 모든 바라밀다장[到彼岸藏]에 섭수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써 모든 지위에 모든 바라밀다를 다 수습함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017_0230_b_01L若立六種波羅蜜多,第六般若,無分別智,及後得智,二智所攝.後得智中,四到彼岸,亦在第六般若攝故.如是法門,是波羅蜜多藏所攝者,一切大乘教法,皆名波羅蜜多藏,如是十地法門,是彼藏所攝.由一一地,皆是一切到彼岸藏之所攝故,以此證知一切地中,具修一切波羅蜜多.
【論】또한 무릇 얼마간의 시간 동안 여러 지위를 수행해야 원만하게 될 수 있는가?51) 다섯 가지 보특가라가 있는데 3무수52)의 대겁을 지난다. 말하자면 뛰어난 이해의 행을 하는 보특가라는 처음의 무량대겁을 지나서 수행이 원만하게 된다. 청정하고 매우 높은 의요를 행하는 보특가라와 형상이 있는 행[有相行]53)과 형상이 없는 행[無相行]54)의 보특가라는 앞에 있는 여섯 지위와 제7지에서 제2의 무수대겁을 지나서 수행이 원만해진다. 즉 이러한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無功用行]55) 보특가라는 이것으로부터 그 이상 제10지에 이르기까지 제3의 무수대겁을 지나서 수행이 원만해진다. 이에 대한 게송이 있다.
017_0230_b_09L論曰:復次凡經幾時,修行諸地,可得圓滿?有五補特伽羅,經三無數大劫.謂勝解行補特伽羅,經初無數大劫,修行圓滿.淸淨增上意樂行補特伽羅,及有相行`無相行補特伽羅,於前六地,及第七地,經第二無數大劫,修行圓滿.卽此無功用行補特伽羅,從此已上,至第十地,經第三無數大劫,修行圓滿.此中有頌:

청정과 매우 높은 힘으로
마음을 견고히 하여 앞으로 나아가
보살이 비로소
3무수대겁을 수행한다고 하네.
017_0230_b_18L淸淨增上力,
堅固心昇進,
名菩薩初修,
無數三大劫.
017_0230_c_01L
【釋】‘다섯 가지 보특가라가 있는데 3무수의 대겁을 지난다’란 오직 하나의 보특가라에서도 지위가 차별이 있기 때문에 다섯 가지를 건립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나중에 설하는 바 승해행지[勝解行地]56) 등이다. 승해행이란 아직 진여를 증득하지 않았으나 오직 뛰어난 이해[勝解]에만 의지하여 모든 행을 부지런히 닦는 것이다. 이것은 제1무수대겁을 지나서 수행이 원만해진다.
‘청정하고 매우 높은 의요를 행하는’이란 말하자면 청정하고 매우 높은 의요를 얻으며 모든 행을 부지런히 수습하는 것이다. 이것이 6지에 있을 경우에는 형상이 있는 행[有相行]이라 하고, 제7지에 있을 경우에는 형상이 없는 행[無相行]이라고 한다.
017_0230_b_20L釋曰:有五補特伽羅,經三無數大劫者,應知唯一補特伽羅位差別故,建立五種,謂後所說勝解行等.勝解行者,未證眞如,但依勝解,勤修諸行,此經第一無數大劫,修行圓滿.淸淨增上意樂行者,謂得淸淨增上意樂,勤修諸行,此在六地,名有相行,在第七地,名無相行.
이와 같은 두 가지 보특가라는 제2의 무수대겁을 지나서 수행이 원만해진다. 그 이상 내지 제10지에서는 곧 이러한 전전을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행[無功用行]이라고 하고, 제3무수대겁을 지나서 수행이 원만해진다. 제8지에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행[無功用行]이 아직 완전하게 성취되지 않으며, 제9ㆍ제10지에서 이 행이 마침내 완전하게 성취된다. 이것은 오직 하나의 보특가라이지만 다른 지위에 상응하는 차별이 다섯 가지가 된다는 것이다. 예류(預流) 등의 아득한 옛적부터 생사유전하는 것 중에서 어디까지를 3무수대겁의 처음 수행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가타를 설한 것이다.
017_0230_c_05L如是二種補特伽羅,經於第二無數大劫,修行圓滿.已上乃至第十地中,卽此轉名無功用行,經於第三無數大劫,修行圓滿.第八地中,無功用行,猶未成滿,第九`第十地中,此行方得成滿.此唯是一補特伽羅,異位相應差別成五,如預流等,從無始來,生死流轉.齊何當言,三無數劫,最初修行?爲答此問,故說伽他.
‘청청과 매우 높은 힘’이란 말하자면 선근의 힘을 청정한 힘이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곧 선근의 힘이 있는 자를 설하는 것이다. 만약 큰 원력인 경우에는 매우 높은 힘이라고 한다. 이러한 뜻은 큰 원력이 있는 자를 설하는 것이다. 선근의 힘이 있기 때문에 능히 다스려져야 할 것을 항복시키고, 큰 원력이 있기 때문에 항상 선지식을 만난다.
‘마음을 견고히 하여’란 비록 악한 벗을 만난다 할지라도 방편으로써 부수어 없애 끝내 대보리심을 저버리지 않는다. 현세와 미래세에서 닦는바 선법을 계속해서 증장시켜 끝내 물러서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이와 같이 만약 선근의 힘과 큰 원력을 갖출 때에는 큰 보리심은 견고하여 물러서지 않으며, 수행한바 선법은 생각마다 증진하되 기뻐하여 만족함[喜足]을 생하지 않는다. 옛 주장을 따라서 이것까지를 최초로 수행하는 3무수대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017_0230_c_13L淨增上力者,謂善根力,名淸淨力,此卽說有善根力者.若大願力,名增上力,此意說有大願力者.有善根力故,能降伏所治,有大願力故,常値善知識.堅固心昇進者,雖遇惡友,方便破壞,終不棄捨大菩提心.現世當來,所修善法,運運增長,終無退減.如是若時,具善根力,及大願力,大菩提心,堅固不退,所修善法,念念增進,不生喜足,順舊而已,齊是名爲最初修行三無數劫.
017_0231_a_01L

7. 증상계학분(增上戒學分)
017_0231_a_01L攝大乘論釋,增上戒學分第七

【論】이와 같이 이미 인과의 수습의 차별에 대해서 설하였다. 여기에서 매우 높은 계[增上戒]의 뛰어남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57) 보살율의(菩薩律儀)를 바르게 수지하는 보살지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한 간략하게 네 가지 뛰어남에 의하기 때문에 이것이 뛰어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첫째는 차별의 뛰어남에 의하고, 둘째는 공통되거나 공통되지 않는 계율[學處]58)의 뛰어남에 의하며, 셋째는 광대한 것의 뛰어남에 의하고, 넷째는 깊고 깊은 것의 뛰어남에 의한다.
017_0231_a_02L論曰:如是已說因果修差別.此中增上戒殊勝,云何可見?如菩薩地,正受菩薩律儀中說.復次應知略由四種殊勝故此殊勝:一由差別殊勝`二由共不共學處殊勝`三由廣大殊勝`四由甚深殊勝.
【釋】매우 높은 계[增上戒]에 의지하여 배우기 때문에 증상계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보살율의를 바르게 수지하는 보살지에서 설한 것과 같다’란 말하자면 저 시라바라밀다품에서 자세하게 설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간략하게 네 가지 뛰어남에 의하기 때문에……마땅히 알아야 한다’란 이 뛰어남 등은 뒤에서 자세히 해석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017_0231_a_08L釋曰:依增上戒而學故,名增上戒學.如菩薩地,正受菩薩律儀中說者,謂如彼尸羅波羅蜜多品中廣說.復次應知略由四種殊勝故,此殊勝等,如後廣釋.
【論】차별의 뛰어남이란 말하자면 보살계에 세 가지 품류의 차별이 있으니, 첫째는 율의계(律儀戒)59)이고, 둘째는 섭선법계(攝善法戒)이며, 셋째는 요익유정계(饒益有情戒)60)이다.
여기에서 율의계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계가 건립하는 의미에 말미암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61) 섭선법계는 모든 불법을 닦고 모으는 것을 건립하는 의미에 말미암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요익유정계는 모든 유정을 성숙시키는 것을 건립하는 의미에 말미암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7_0231_a_13L論曰:差別殊勝者,謂菩薩戒有三品別:一律儀戒`二攝善法戒`三饒益有情戒.此中律儀戒,應知二戒建立義故,攝善法戒,應知修集一切佛法建立義故,饒益有情戒,應知成熟一切有情建立義故.
【釋】‘차별의 뛰어남’이란 말하자면 모든 보살은 세 가지 계, 즉 율의계ㆍ섭선법계ㆍ요익유정계를 갖춘다. 성문승 등은 오직 한 가지 율의시라(律儀尸羅)62)만이 있다. 그러므로 보살은 저들에 비해서 뛰어나다.
‘율의계’란 말하자면 바르게 수지하여 모든 품류의 악불선법(惡不善法)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017_0231_a_19L釋曰:差別殊勝,謂諸菩薩,具三種戒,卽律儀戒`攝善法戒`饒益有情戒,聲聞乘等,唯有一種律儀尸羅,是故菩薩,望彼殊勝.律儀戒者,謂正受遠離一切品類惡不善法.
017_0231_b_01L‘섭선법계’란 말하자면 역(力)ㆍ무외(無畏) 등의 모든 불법을 바르게 닦고 모으는 것이다.
‘요익유정계’란 말하자면 자신의 즐거움을 돌아보지 않고 감능하는 바에 따라 3승(乘)으로 들어가 생사의 괴로움을 버리고 열반의 즐거움을 증득하게 하는 것이다.
‘율의계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계가 건립하는 의미에 말미암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란 이것은 두 가지 계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만약 신(身)ㆍ어(語)ㆍ의(意)를 방어하고 지키는 자는 곧 능히 전도 없는 모든 청정한 불법을 닦고 모으며 또한 능히 모든 유정을 성숙시켜 3승에 들어가게끔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즉 그렇지 않다.
017_0231_b_01L攝善法戒者,謂正修集力無畏等一切佛法.饒益有情戒者,謂不顧自樂,隨所堪能,令入三乘,捨生死苦,證涅槃樂.律儀戒應知二戒建立義故者,是二戒因故.謂若防守身`語`意者,便能無倒修集一切淸淨佛法,亦能成熟一切有情,令入三乘,餘則不爾.
【論】공통되거나 공통되지 않는 계율의 뛰어남이란 모든 보살에게는 모든 성죄(性罪)63)가 현행하지 않기 때문에 성문과 같지만 공통적으로 서로 비슷하다. 가벼운 죄[遮罪]64)는 현행하기 때문에 저 성문과 같지 않다. 이 계율에서 어떤 경우에 성문에게는 범하는 것이지만 보살에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다. 또 어떤 경우에 보살에게는 범하는 것이지만 성문에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다. 보살은 신(身)ㆍ어(語)ㆍ심계(心戒)를 갖추지만 성문은 오직 신ㆍ어 두 가지 계율만이 있다. 그러므로 보살은 마음에 또한 범하는 것이 있지만 모든 성문은 그렇지 않다.
요약해서 이를 말하면 모든 유정을 요익하게 하면서도 죄가 없는 신업ㆍ어업ㆍ의업을 보살은 모두 다 마땅히 현행해야 하고, 마땅히 닦고 배워야 한다. 이와 같은 것을 공통되거나 공통되지 않는 것의 뛰어남이라고 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7_0231_b_08L論曰:共不共學處殊勝者,謂諸菩薩,一切性罪,不現行故,與聲聞共,遮罪有現行故,相似與彼不共.於此學處,有聲聞犯,菩薩不犯,有菩薩犯,聲聞不犯.菩薩具有身`語`心戒,聲聞唯有身`語二戒,是故菩薩,心亦有犯,非諸聲聞.以要言之,一切饒益有情,無罪身`語`意業,菩薩一切,皆應現行,皆應修學,如是應知說名爲共不共殊勝.
017_0231_c_01L【釋】살생ㆍ투도ㆍ사음 등과 탐욕 등이 생기게 되는 것을 ‘성죄’라고 한다. 자라나는 풀을 꺾는 등의 탐욕 등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 것을 ‘가벼운 죄’라고 설하는 것이다. 보살이 여기에서 이익이 있으면서 죄가 없음을 관하는 경우에 모든 것을 마땅히 닦아야 하지만 성문은 그렇지 않다. 또한 모든 보살은 마음에도 또한 범함이 있지만 모든 성문은 그렇지 않다. 말하자면 오직 안에서 욕심과 진에와 해침 등의 모든 악한 심사(尋思)를 일으키고 신ㆍ어의 두 가지 업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유정을 요익하게 하면서도 죄가 없는 신업ㆍ어업ㆍ의업’이란 말하자면 능히 유정을 이익하게 하고 안락하게 하며 자신과 남의 탐욕 등의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을 보살은 마땅히 닦아야 한다.
017_0231_b_17L釋曰:殺`盜`婬等貪等所生,名爲性罪,斷生草等,非貪等生,說名遮罪.菩薩於中,觀有利益,而無罪者,一切應修,聲聞不爾.又諸菩薩,心亦有犯,非諸聲聞,謂唯內起欲恚害等諸惡尋思,不爲發起身`語二業.一切饒益有情,無罪身`語`意業者,謂能利益安樂有情,不發自他貪等煩惱.如是一切菩薩應修.
【論】광대한 것이 뛰어남이란 다시 네 가지 광대함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갖가지 무량한 계율이 광대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무량한 복덕을 섭수함이 광대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모든 유정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하는 의요를 섭수함이 광대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무상정등보리를 건립함이 광대하기 때문이다.
017_0231_c_03L論曰:廣大殊勝者,復由四種廣大故,一由種種無量學處廣大故`二由攝受無量福德廣大故`三由攝受一切有情利益安樂意樂廣大故`四由建立無上正等菩提廣大故.
【釋】‘갖가지 무량한 계율이 광대하다’란 말하자면 모든 보살이 배우는 바 시라의 갖가지 품류에 무량한 차별이 있는 것이 광대하기 때문이다.
‘무량한 복덕을 섭수함이 광대하다’란 말하자면 이 시라는 능히 무량한 복덕의 자량을 능히 섭수함이 광대하기 때문이다.
‘모든 유정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하는 의요를 섭수함이 광대하다’란 말하자면 이 시라는 모든 유정을 섭수하여 이 세간, 저 세간, 또는 세간, 출세간에서 악을 버리고 선을 섭수하여 원인[因] 또는 결과[果]로 요익하는 의요가 광대하기 때문이다.
‘무상정등보리를 건립함이 광대하다’란 말하자면 이 시라는 대보리를 건립함이 광대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문 등은 이와 같은 일이 없다. 그러므로 뛰어난 것이다.
017_0231_c_08L釋曰:種種無量學處廣大者,謂諸菩薩,所學尸羅,種種品類,無量差別,所以廣大.攝受無量福德廣大者,謂此尸羅,能攝無量福德資糧,所以廣大.攝受一切有情利益安樂意樂廣大者,謂此尸羅,攝諸有情,此世`他世,世`出世閒,捨惡攝善,若因若果,饒益意樂,所以廣大.建立無上正等菩提廣大者,謂此尸羅,建大菩提,所以廣大.諸聲聞等,無如是事,是故殊勝.
017_0232_a_01L【論】깊고 깊은 것의 뛰어남이란 말하자면 모든 보살은 이 품류의 훌륭한 방편에 의해서 살생 등의 열 가지 업을 지어도 죄가 되지 않고, 무량한 복을 일으켜서 속히 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보살은 변화(變化)해서 신업과 어업의 두 가지 업을 현행하니, 또한 깊고 깊은 시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인연에 의해서 어떤 경우에는 국왕이 되어서 갖가지 유정을 괴롭히는 일을 하는 것을 보여서 유정을 계율[毘奈耶] 가운데 안립한다. 또 갖가지 모든 본생(本生)의 일을 나타내어 모든 나머지 유정을 핍박하는 것을 보여서 진실로는 모든 나머지 유정을 섭수한다. 먼저 다른 이의 마음으로 하여금 깊이 깨끗한 믿음을 내게 하고 나중에는 전전하여 성숙하게 한다. 이를 보살이 배우는 시라의 깊고 깊은 것의 뛰어남이라고 한다.
017_0231_c_18L論曰:甚深殊勝者,謂諸菩薩,由是品類,方便善巧,行殺生等,十種作業,而無有罪,生無量福,速證無上正等菩提.又諸菩薩,現行變化身,語兩業,應知亦是甚深尸羅.由此因緣,或作國王,示行種種惱有情事,安立有情毘奈耶中.又現種種諸本生事,示行逼惱諸餘有情,眞實攝受諸餘有情,先令他心,深生淨信,後轉成熟.是名菩薩所學尸羅甚深殊勝.
017_0232_b_01L【釋】‘이 품류의 훌륭한 방편에 의해서’란 말하자면 모든 보살의 자비의 원[悲願]과 상응하는 후득의 묘지(妙智)이다.
‘살생 등의 열 가지 업을 지어도 죄가 되지 않고’ 등이란 말하자면 선법을 좋아하고 불선을 증오하며 모든 삿된 성품을 보는 것을 뒤의 세 가지65)라고 설하는 것이다. 이것에 의지하기 때문에 살생 등의 일곱 가지를 행해도 죄가 되지 않고 무량한 복을 내어서 속히 보리를 증득한다. 혹은 앞의 일곱 가지를 행해도 뒤의 세 가지를 일으키지 않는다. 큰 수(數)를 10이라고 말한다. 혹은 이미 조복시켜서 없앴어도 저 힘을 시험하기 위해서 마음을 점차 일으키되 괴로움을 능히 부르지 않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 능히 도를 돕기 때문에 무량한 복을 내는 것이다.
‘변화(變化)해서 신업과 어업의 두 가지 업을 현행하니’란 말하자면 화신에 의지하여 두 가지 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실제의 몸을 의지하고 변화하는 마음[化心]에 의해서 신ㆍ어의 두 가지 업을 일으킨다. 의업으로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가히 변화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현재 탐욕과 진에 등의 일이 있다 해도 유정을 교화하는 데에 커다란 이익이 없다. 그러므로 설하지 않는다.
‘유정을 계율[毘奈耶] 가운데 안립한다’란 국왕이 되어서 법률을 제정하여 핍박을 시행하여 거기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혹은 모든 선이 능히 모든 악을 멸하며, 혹은 대열반의 생사를 없애 버리는 것을 비나야라고 이름한다.
‘또 갖가지 모든 본생의 일을 나타내어’란 말하자면 모든 보살의 모든 본생의 일은 변화하는 마음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것이다. 혹은 오래전에 성불한 것 또한 다시 모든 본생의 일을 행하는 것임을 보여서 유정을 요익케 하고 보살로 하여금 배우게 한다. 그러므로 뒤에 설하기를 ‘이를 보살이 배우는, 시라라고 이름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017_0232_a_05L釋曰:由是品類,方便善巧者,謂諸菩薩,悲願相應後得妙智.行殺生等,十種作業,而無有罪等者,謂愛樂善法`憎惡不善`見諸邪性,說名後三,依止此故,行殺等七,而無有罪,生無量福,速證菩提.或行前七,不起後三,大數言十.或已伏除,爲試彼力,故心蹔起,不能招苦,故無有罪,能助道故,生無量福.現行變化身`語兩業者,謂依化身,發起兩業,或依實身,由化心發身`語二業,意業無形,不可變化.或雖現有貪瞋等事,於化有情,無大義利,是故不說.安立有情毘奈耶中者,謂作國王制諸法律,示行逼惱,令住其中.或一切善,能滅衆惡,或大涅槃,滅除生死,名毘奈耶.又現種種諸本生事者,謂諸菩薩,諸本生事化心所現,或久成佛,復示現行諸本生事,饒益有情,令菩薩學,故後說言:是名菩薩所學尸羅.
【論】이 간략하게 설한 네 가지 뛰어남에 의해서 보살의 시라율의를 가장 뛰어나다고 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차별하는 보살의 계율은 또한 무량한 차별이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며, 『비나야구사방광계경(毘奈耶瞿沙方廣契經)』66)에서 설한 것과 같다.
【釋】지금 여기에서 간략하게 설한 네 가지 뛰어난 양상은 『비나야구사경』에서 자세히 설해지고 있기 때문에 무량한 뛰어남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경은 곧 보살장에 포함되기 때문에 방광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017_0232_b_02L論曰:由此略說,四種殊勝,應知菩薩尸羅律儀最爲殊勝.如是差別菩薩學處,應知復有無量差別,如毘奈耶,『瞿沙方廣契經』中說.釋曰:今於此中,略說四種殊勝之相,於『毘奈耶瞿沙經』中,廣說,復有無量殊勝.此經卽是菩薩藏攝,故名方廣.
攝大乘論釋卷第七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이하 제1인과위장(因果位章)이다. 이제부터 바라밀다의 수행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설명한다.
  2. 2)범어 pāramitā의 음역으로서 보통 바라밀이라고 한다. 도피안(到彼岸)ㆍ도(度)로 번역한다. 미혹의 이 언덕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으로서, 보살이 그것에 의지해서 닦는 행을 말한다.
  3. 3)범어 citta-ekāgrata의 번역어로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선정에 드는 것이다.
  4. 4)의지(意志)의 노력으로써 가행하는 것, 즉 다음의 자유자재[住運]한 가행에 대비된다.
  5. 5)백법(白法)은 잡염을 떠난 청정한 법의 의미이다.
  6. 6)분별은 심식(心識)의 반연ㆍ훈습작용이다. 여기서는 유식의 이치를 증득함을 나타낸다.
  7. 7)법인(法忍)을 잘 성찰[諦察]한다는 것은 법인을 관찰한다는 뜻으로 제법이 불생불멸하는 진리를 확실하게 인정하여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것을 뜻한다. 인욕바라밀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워하고 증오하며 괴로움을 받고 피해를 받아도 감인(堪忍)하는 내원해인(耐怨害忍)이고, 둘째는 질병이나 천재 등의 고통에 시달려도 감인하는 안수고인(安受苦忍)이며, 셋째는 위에서 밝힌 체찰법인(諦察法忍)이다. 이 체잘법인은 인(忍) 중에서 상품에 해당하고, 첫째와 둘째의 인은 연품(軟品)과 중품(中品)에 해당한다.
  8. 8)이하 제2성립육수장(成立六數章)이다. 바라밀다의 숫자를 여섯 가지로 안립하는 이유를 밝힌다.
  9. 9)이하 6바라밀다의 양상에 관하여 설명한다(第3 相章).
  10. 10)이하 6바라밀다의 순서에 관하여 설명한다(第4 次第章).
  11. 11)이하 6바라밀다의 명칭을 해석한다(第5 立名章).
  12. 12)일상의 기거하는 동작으로서 행(行)ㆍ주(住) 좌(坐)ㆍ와(臥)를 말한다. 여기에 지켜야 할 것을 계율로 정하고 있다. 행법에는 “여인 또는 취한 사람과 더불어 함께하지 말고, 손을 올리지 말며, 좌우로 돌아보지 말고, 7척 전방의 땅을 곧바로 보라” 등이 해당된다. 주법에는 “똑바로 앞에 서지 말고, 똑바로 뒤에 서지도 말라” 등이 해당된다. 좌법에는 좌구를 깔아라, 결가부좌를 하라, 반가부좌를 하라 등의 여러 가지가 해당되는데, 피로하여 다리를 뻗을 때에는 한 다리만 뻗어야 하고 두 다리를 뻗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다. 와법에는 와구를 깔고 바른 손을 베개로 하여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워야 하며 두 발을 겹치게 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있다.
  13. 13)여래를 지칭한다.
  14. 14)육신을 말한다. 보살은 자신의 신체의 일부분인 눈ㆍ귀ㆍ수족(手足)조차도 보시한다는 것이다.
  15. 15)삼계의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를 말한다.
  16. 16)고구(苦具)라고 하는 것은 3유에 생을 받아서 재위의 자구(資具)에 대해서 고뇌를 증익하기 때문이다.
  17. 17)이하 바라밀다의 각각 종류에 관한 장이다(第7 差別章).
  18. 18)피갑(被甲)은 갑주(甲胄)를 입는다는 뜻으로서 보살의 수행을 말한다. 갑옷을 입고 군대가 진(陣)을 친 곳에 들어갈 때 두려워하지 않고 큰 위세가 있는 것과 같은 정진을 말한다.
  19. 19)아공을 체득한 무분별지혜이다.
  20. 20)법공을 체득한 무분별지혜이다.
  21. 21)아공과 법공을 체득한 무분별지혜이다.
  22. 22)현법락(現法樂)ㆍ현법희락주(現去喜樂住)ㆍ현주법락(現住法樂)이라고도 한다. 현재 안락한 경지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다.
  23. 23)현관의 후변에서 얻는 유루의 세속지를 말한다.
  24. 24)이하 서로 포섭함에 관한 장이다(第8 攝章).
  25. 25)여기서 상(相)은 체상(體相)의 의미이다.
  26. 26)선대지(善大地)라고 하는 것은 심소법에 해당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선대시(善大施)라고 되어 있다. 의미상 믿음[信] 등은 대지법에 속하므로 ‘시(施)’라는 글자 대신 ‘지(地)’를 넣어 해석하는 것이 옳겠다.
  27. 27)바라밀다로부터 등류(等流)된 결과를 의미한다.
  28. 28)이하 다스림에 관한 장이다(第9 對治章).
  29. 29)이하 바라밀다의 공덕에 관한 장이다(第10 功德章).
  30. 30)부귀하여 자재하다는 의미이다. 범천(梵天)ㆍ제석천(帝釋天) 등에서 생을 받는다.
  31. 31)인간계에 태어나더라도 최상의 과보를 받음을 말한다.
  32. 32)이하 제11 호현장(互顯章)이다.
  33. 33)여래를 가리킨다.
  34. 34)범어 udāna의 음사어이다.
  35. 35)이하 10지(地)의 수행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설명한다. 그 수행의 차이를 대치장(對治章)ㆍ입명장(立名章)ㆍ득상장(得相章)ㆍ수상장(修相章)ㆍ수시장(修時章)의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우선 다스림의 장이다(第1 對治章).
  36. 36)범어 samāpatti의 음사어로서 삼마발제(三摩鉢底) 혹은 줄여서 발제(技提)라고도 음사한다. 삼마발저는 유심무심(有心無心)에 통하고 다만 정에만 한한다. 이에 비해 삼마지는 유심위(有心位)에만 통한다.
  37. 37)이하 10지의 명칭 이유에 관한 장이다(第2 立名章).
  38. 38)범어 samādhi의 번역으로 삼마지(三摩地)ㆍ삼마제(三摩提)ㆍ삼매(三昧)라고 음사한다.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킴으로써 평등을 계속하여 보존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색계의 4선친(禪天)을 말한다.
  39. 39)범어 samāpatti의 한역어로 삼마발저(三摩鉢底) 등으로 음사한다. 마음과 몸이 평등ㆍ안온해지는 것을 등(等)이라 했고, 사람을 이 등(等)의 상태에 이르게 하므로 지(至)라 한다. 여기서는 4무색정(無色定), 즉 공무변처(空無邊處)ㆍ식무변처(識無邊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말한다.
  40. 40)37도품(道品), 즉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정도분(正道分)이다.
  41. 41)여기에서 소리라고 하는 것은 10지 각각의 명칭을 말한다.
  42. 42)주계(主戒)ㆍ실계(實戒)ㆍ성중계(性重戒)라고도 한다. 살(殺)ㆍ도(盜)ㆍ음(婬)ㆍ망(妄)과 같은 그 행위 자체가 본질적으로 죄악성을 지니고 있다.
  43. 43)범어 samādhi의 한역어이다. 곧 선정의 다른 이름으로 정심(定心)ㆍ산란(散亂)을 여읜 것을 정(正)이라 하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계에서 법을 받아들여 마음에 두는 것을 수(受)라 한다. 마치 거울이 무심하게 만물의 모습을 받아들여 비추는 것과 같음을 가리킨다. 또는 대경(對境)을 관하는 마음과 관할 바 대경이 일치되어 명경(明鏡)과 같이 무심하게 대경을 섭입(攝入)하는 심적 상태이다.
  44. 44)학예(學藝)ㆍ기술(技術) 등의 세속의 지혜이다.
  45. 45)번뇌장과 소지장을 가리킨다.
  46. 46)이하 증득의 양상에 관한 장이다(第3 得相章).
  47. 47)경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행법을 말한다.
    ① 서사(書寫):경ㆍ율ㆍ논 3장을 기록해서 오래 보존케 함.
    ② 공양:경전이 있는 곳을 부처님의 탑묘(塔廟)처럼 공양 존중함.
    ③ 시타(施他):다른 이를 위해 바른 법을 말하거나 경전을 남에게 주어서 널리 교화함.
    ④ 제청(諦聽):다른 이가 경을 읽거나 강의하는 것을 지극한 마음으로 경청함.
    ⑤ 피독(披讀):경전을 독송하고 외우는 것.
    ⑥ 수지(受持):부처님의 교법을 받아 지님.
    ⑦ 개연(開演):불법을 말해서 다른 이로 하여금 믿고 알게 함.
    ⑧ 풍송(諷誦):소리를 내어 경전과 게송 등을 읽어서 다른 이로 하여금 좋아하는 마음을 내게 함.
    ⑨ 사유(思惟):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의 뜻을 생각하고 헤아리며 기억해서 잊지 않음.
    ⑩ 수습(修習):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몸소 수행해서 물러남이 없는 것.
  48. 48)추중(麤重)은 번뇌장과 소지장의 종자를 말한다.
  49. 49)법의(法意)의 정원. 불교의 범위는 법의가 모두 있으므로 법원이라 한다.
  50. 50)무상(無相)의 진여를 반연함을 말한다.
  51. 51)이하 수행의 기간에 관한 장이다(第5 修時章).
  52. 52)무수(無數)는 범어 asaṃkhya의 번역어로서 무앙수(無央數)라고도 한다. 아승기(阿僧祇)로 음역하며 보통 아승지라고 부른다. 124대수(大數) 중 제105의 숫자라고 한다.
  53. 53)제6지 이전에 관찰되는 대상은 형상이 있다. 전5지(前五地)에서는 유상관(有相觀)이 많고 무상관(無相觀)이 적으며, 제6지에서는 무상관이 많고 유상관이 적다. 제7지 이후에는 순전한 무상관으로 된다.
  54. 54)제7지에 이르러 관찰되는 대상은 형상이 없다.
  55. 55)공용(功用)은 신체ㆍ입ㆍ뜻으로 짓는 동작ㆍ말ㆍ생각을 가리킨다. 공용지(功用地)는 보살의 10지 가운데 초지(初地)에서 제7지까지이다. 이 지위에 있는 보살은 이미 진여를 깨달았으나 아직 가행(加行)의 공을 쌓아야 하므로 그렇게 부른다. 무공용은 보살이 제8지 이상의 경지가 되면 의도적으로 수행을 닦지 않더라도 자연히 진여에 계합함을 말한다.
  56. 56)10신(信)ㆍ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回向)에 이르는 수행단계이다.
  57. 57)이하 3학(學) 가운데 매우 높은 계율의 수행에 관하여 설명한다(第7 增上戒學分). 보살의 3학 수행은 성문 등과 차원이 다르므로 3학의 명칭 앞에 증상(增上)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58. 58)범어 śikṣāpada의 번역어로서 계율을 말한다. 계율은 비구ㆍ비구니가 배워 수행할 근본이므로 학처라고 한다.
  59. 59)섭률의계(攝律儀戒)의 준말이다. 수계작법(受戒作法)에 의해 5계ㆍ10계ㆍ구족계 등을 받아 지녀서, 몸이나 입으로 짓는 악업을 따로 따로 해탈케 하는 계율이므로 별해탈계(別解脫戒)라고도 한다. 진제 역본[陳本]에는 섭정호계(攝正護戒)로, 급다(笈多)ㆍ행구(行矩)의 역본[隋本]에는 수호계(守護戒)로 되어 있다.
  60. 60)대승보살이 닦는 계법인 삼취정계(三聚淨戒)를 말한다. 대승과 소승의 모든 계법이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취(聚)라고 하고, 그 계법의 자성이 청정하므로 정(淨)이라고 한다.
  61. 61)율의계를 근본으로 해서 섭선법계와 요익유정계를 건립하기 때문이다.
  62. 62)율의계를 말한다.
  63. 63)성죄(性罪)는 자성죄(自性罪)ㆍ실죄(實罪)라고도 한다. 살생ㆍ도둑질ㆍ삿된 음행 등은 어떤 환경에 있는 이가 행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죄악 행위이기 때문에 성죄라고 한다. 성죄에 대한 금계(禁戒)를 성계(性戒)ㆍ성중계(性重戒)ㆍ주계(主戒)ㆍ구계(舊戒)라고 한다.
  64. 64)차죄는 제죄(制罪)ㆍ차제(遮制)라고도 한다. 여러 가지 과실을 수반하기 때문에, 또 세간의 비방을 피하기 위해서 석존이 제정한 계를 범하는 가벼운 죄를 말한다. 음주는 대개 차죄라고 한다. 차죄에 대한 금계를 차계(遮戒)ㆍ이악계(離惡戒)ㆍ객계(客戒)ㆍ신계(新戒)라고 한다. 성계가 제정되지 않더라도 성죄는 죄이기 때문에 범해서는 안 되지만, 차죄는 차계가 제정되어야 비로소 죄가 된다.
  65. 65)10불선법 중에 뒤에 있는 세 가지를 말한다. 즉 탐ㆍ진ㆍ치를 말한다.
  66. 66)『비나야구사(Vinayakośa)』는 율(律)의 집대성이다. 중국에는 전역(傳譯)되지 않았다.